M2025-10-01 16:44:41
스며드는 것은 막을 길이 없지.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리뷰
이 글은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말 많음 주의)
빌런의 새로운 챕터를 열다;숀펜
사진 출처:다음 영화
강인함과 당당함에 내려오지 않을 것만 같은 어깨. 그리고 그 위에 꼿꼿하게 존재하는 고개. 바쁘게 내딛지만, 배어있는 위엄과 여태껏 지나온 전투들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걸음걸이까지. 꿈속에서라도 군인이 아니었던 순간을 찾아보기 힘들 것만 같은 강직함. 그러나 동시에 오만함을 장착한 스티븐 J 록조(숀 펜)를 보면서. 영화 역사 속에 존재한 빌런의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또 하나의 캐릭터가 탄생했음을. 그리고 여태껏 존재한 악역들과는 필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그를 완벽하게 차별화된 경지에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현실성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잔인함으로 혀를 내두르게 하지도. 그렇다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누구를 협박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한다. 마치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 평범성이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는 바람에. 그를 보는 내내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으니까.
그는 영화의 모든 순간을 장악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정말로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서. 그의 절룩거리는 걸음걸이에 소름이 끼치는 순간을 몇 번이고 맞이하다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숀 펜에게 빚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순간을 반드시 느끼게 될 것이다.
역사상 가장 느슨한 카 체이싱;마치 주제를 담은 듯한 장면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 거의 모든 부분이 버릴 곳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 카 체이싱(?) 장면은 이 부분 때문이라도 다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이 보석 같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대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카 체이싱 장면은 속도감이나 규모 면에서는 오히려 소박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와 살인자, 그리고 후발주자인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으로 이어지는 소소한 차 세대(three cars in a row)의 행진은(?) 마치 영화 [죠스]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충분한 제작비가 없어서 상어의 지느러미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 상어의 등장을 암시하는. 그로 인한 서스펜스를 관객의 입장에서 상상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방식 말이다.
에스파가 서 있어야만 할 거 같은 허허벌판 광야 위의 도로에서. 윌라와 살인자의 이 숨 막히는 긴장감은 백미러로 보이는 뒷 차의 간격으로 만들어진다. 분명 점 정도로 보였던 뒤차가. 이제는 백미러의 뒤꽁무니에 걸리기 시작하더니 두 고개 차이로. 그리고 한 고개 차이로 좁혀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발이 동동 굴러지는 것은 당연하고 윌라가 훔쳐 탄 차가 엔진 오일을 언제 갈았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할 정도로 차 두 대 사이의 좁혀지는 거리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 세 사람이 연신 넘어가는 작은 굴곡들을 볼 때마다. 영화의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어야만 했는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하나를 넘었더니 또 하나가 존재하고. 따라잡았다 생각했더니 그것이 장애물이었고. 부딪치고 추락할 때도 있지만 끝까지 나아가는 것 또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느끼다 보면. 안 그래도 갈길 바쁜 관객들은 발을 더 빠른 속도로 구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Can't fight the moon light:스며드는 것은 막을 길이 없지.
사진 출처:다음 영화
총각 시절 잘 나갔던 폭탄 제조자 시절을 보여주는 퍼거슨의 모습을 제외한다면. 영화가 혁명의 진전을 보여주는 방식도 조금은 독특하다. 그들의 혁명은 연기(smoke)로, 그리고 그 연기가 퍼져나가는 방식으로 대변할 수 있다.
극 중에서 록조는 하얀 최루탄 가스로 반란을 저지하려 한다. 희고 뿌연 매캐한 억압은 뿌리는 사람의 눈에도. 그것의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눈에도 명백히 보이기에, 혁명단원들은 그 연기에 닿지 않으려 사력을 다해 도망친다. 행여나 그 압력에 발끝이라도 닿는다면 숨을 잠시 참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꼼수라도 쓰며 일단 살아남으려 기를 쓴다.
그러나 퍼거슨(혹은 윌라)으로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의 혁명은 다르다. 그들의 혁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가 되어 뻗어나간다. 자신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과 단어들로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서로의 살 길을 터준다. 이들의 혁명 방식은 그들을 제압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기에, 록조 역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여지없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그들의 복수 혹은 혁명은 마치 달빛과도 같아서. 싸울 수도 그렇다고 만져질 수도 없다.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그들의 혁명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의 TMI]
먼 훗날.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값지게 쓴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내 늙고 녹슨 머리를 굴려서 찾아낸 순간들 중에 오늘 이 영화를. 위해 쓴 세 시간은 반드시 후보군에 오를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전율이었다고나 할까. 영화에 나온 모든 배우들의 모습을 내가 지켜봐 왔다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은데 휴가 첫 날이라 영화 두 편 보기로 해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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