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AD2025-10-02 09:40:22
북극으로 간 듯 얼어붙은 로맨스 서사
드라마 <북극성> 리뷰
드라마 <북극성>
감독 김희원
각본 정서경
주연 문주, 산호
유엔대사로서 국제적 명성을 쌓아온 문주(문주)가 대통령 후보 피격 사건의 배후를 쫓는 가운데,
그녀를 지켜야만 하는 국적불명의 특수요원 산호(산호)와 함께 한반도를 위협하는 거대한 진실을 마주하는 첩보 멜로 시리즈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되었던 드라마 <북극성>은 배우 문주과 산호이 처음으로 함께하게 된 로맨스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 <아가씨>, <헤어질 결심>, 이외에도 드라마 <작은 아씨들>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로 주연 인물들 간의 서사를 촘촘하게 쌓아올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로 호평을 받아왔던 정서경 작가가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개봉 후, 개봉 전 <북극성>이 끌어왔던 기대에 비해 큰 화제를 모으지 못하며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개, 시리즈 진행 도중에도 더 높이 도약하지 못하고 이번 주 마지막 시리즈를 공개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북극성>이 시청자의 시선을 잡지 못한 이유는 뭘까?
* 본 리뷰는 주관적 견해를 포함하고 있으며, 시청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먼저, <북극성>이 공개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이유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설정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리뷰에서는 그 '성공할 수밖에 없는' 설정들을 <북극성>이 어떻게 녹여냈는지를 중심으로 해당 작품에 대한 비평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1.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들
로맨스에서 벗어나 '특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치계에 발을 딛은 주인공' 이라는 설정만을 먼저 보았을 때, 이미 대통령 자리를 두고 다투는 주연들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수없이 다루어졌다. 서울시장의 도전기를 다룬 <특별시민>, 선한 정치인과 선거 전략가의 선거판 도전기를 다룬 <킹메이커> 등 정치 소재의 선거판 영화나 드라마들을 찾아보면 남자 주인공의 혈투기는 다양하게 쏟아진다. 그러나 주체적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 작품은 많지 않다. 코믹한 소재를 섞었던 여성 주연 <정직한 후보>, 남성 주연과 여성 주연의 치열한 다툼을 그린 <돌풍> 등이 개봉 당시 호평을 얻었던 건 그러한 면에서 '주체적 여성상'을 등장시켰기 때문에서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해당 작품은 현 대통령, 대통령 후보, 잠수함과 관련된 비밀을 숨기고 있는 파급력 있는 인물까지 힘을 가지고 판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들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 그들을 돕는 인물들을 남성으로 설정했다. 이 때문에 주연인 문주이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협상을 시도할 때, 대통령과 적대하면서도 본인의 의견을 밝힐 때 모두 여성과 여성이 대적하는 구도를 이뤄, 여타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여성과 여성의 연대와 대결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초반부 긴장과 여성간의 관계 설정을 흥미롭게 이끌었던 것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해당 설정이 빛나지 못했던 이유는 이들끼리의 대결을 보기만 해도 바쁜 와중에 문주이 최전방에서 퇴장해 산호과의 관계 진전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야기, 정치적 관계를 다룰 때 문주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인물로 다루어진다. 해당 분야에서는 산호이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반부에서 문제인 점은 '로맨스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둘만의 세계로 도망칠 때, 둘만이 남은 세계인 것처럼 굴 때 정치적 문제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고, 이들은 오직 서로만을 바라본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언제 누가 들이닥칠지에 대한 두려움은 시청자의 몫인 것처럼 두 인물은 평온하기만 하다.
문주의 상승을 향한 앞길에, 정치적 문제를 풀기 위한 방식에 로맨스는 오히려 긴장을 해소시키는 불필요한 요소로 자리잡아 있을 뿐이다.
-2. 긴장과 갈등을 이끌 수 있는 정치 소재
정치와 국제 정서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인물들 간의 서사를 굳이 깊고 복잡하게 설정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정치 소재와 국제 정서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건의 볼륨도 허구를 얼마나 넣을지, 국가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따라 전쟁, 핵폭탄 등과 같이 거대한 사건으로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주요 서사를 이끌어야 하는 주인공들은 사랑에 집중하기 바쁘다. 중반부터는 안전과 사랑 사이 어딘가로 도피해버린 바람에 현 시국에 대해 파악하지도 못한 채 둘만 있는 아지트로 들어가고 만다. 어릴 적부터 대통령이 꿈이었다던 여자 주인공, 파급력을 가진 시어머니와 동맹을 맺어 대통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협상을 시도했던 여자 주인공은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함과 동시에 사라진다. 전쟁 직전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인물이 최전방이 아니라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구석진 곳에 숨어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다. 그래서 이 정치 소재를 전개해 나가는 건 분량도 많지 않은 조연들에게 맡겨진다. 증거를 찾는 건 조연의 몫이고, 국제 정서 속 긴장과 갈등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인물들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들 중 한 명은 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 대한민국이 망하건 말건 내 옆에 있는 이 여자를 지켜야겠다는 태도다. 경호원으로서는 정말 바람직하지만, 정치 소재를 활용하면서 긴장과 갈등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여자 주인공만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도 무언가 절박하거나 간절한 목표가 있어야 했다.
-3. 나서야만 하는, 그리고 숨어야만 하는 정반대의 시점에서
앞서 서술했듯 두 주인공은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직업군에 있다. 문주의 경우 공석에 나서왔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더 높여왔던, 범죄나 부정적인 이야기와는 엮여서도 안 될 '깨끗한' 공직자로 등장한다. 그런 여자 주인공을 지키는 경호원, 산호은 매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숨어왔던, 다른 사람들 몰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숨소리까지도 죽였던, 목적을 위해서는 기꺼이 총도 쏜 '어두운' 직업군에 있다.
이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들이 로맨스 서사로 묶였을 때 흥미로운 지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동화되고, 서로 사랑에 빠지기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의문스럽거나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이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이들이 서로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해 시청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북극성은 그 과정을 달리듯 뛰어넘는다. 경호원이었고, 가까웠고, 가까이서 서로를 지키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식이다. 현재의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북극성은 과거로 급하게 돌아간다. 회차 중 산호은 과거 문주이 공석에서 연설하던 방송 화면을 보았고, '저 사람에겐 햇빛도 다르게 비치는 것 같다' 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서술한다. 현재의 서사가 치밀하게 연결되어가는 상황에서 삽입되는 과거 서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그러나 해당 과거 회상은 단순히 현재만으로는 도저히 이들이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어 급히 넣은 보충 설명에 가깝게 느껴진다. 과거부터 관심이 이어져 왔다는 정보가 시즌의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등장한 이유는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4.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사별 이후 새로 시작하는 사랑, 그리고 공개되는 불륜의 비밀
극 중 문주은 원래 자신의 경호를 맡고 있었던 인물에게 '남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고 싶다'는 이유로 산호을 가까이에 두어야겠다고 말한다. 문주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사랑을 끝내기 전에 남편이 죽어버렸고, 그의 죽음은 너무도 의문스럽다. 이는 문주이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남편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려 살게 만들기 충분한 설정들이다.
이 와중에 문주이 죄책감 없이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기 위해, <북극성>은 남편에게 한 가지 비밀을 덧댔다. 바로 숨겨진 연인과 아이가 있다는 것. 심지어 몇 년 동안이나 그 사실을 숨겼다. 잠수함과 어머니, 그리고 북한과 정치에 대해서도 남편만이 알고 있는 비밀들이 많은데, 이 와중에 불륜으로 문주이 남편이 죽은 뒤에도 빠른 기간 내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이상하게 보이도록 하지 않기 위해 또 하나의 부담을 떠안은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비밀을 밝히지도 못하고 1화에서 퇴장해 버렸다.
시청자들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주인공들은 이미 세기의 사랑을 하고 있다. '어떻게 날 잊고 살려고 했어요?', '이 새끼 운이 좋네요. 뼈라도 건드렸으면, 내가 죽였을 테니까.' 와 같은 무거운 감정을 잔뜩 안은 대사들은 저절로 "너... 뭐 돼?"를 외치게 만든다. 산호은 사실 얼굴로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었을 뿐, 파 보면 문주과 만들어낸 이야기도 사건도 많지 않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캐 보겠다던 문주은 (불륜과 관계없이 남편의 죽음이 정치적 사안과 관련이 있다고 느꼈다면 계속해서 집중했어야 한다.) 이제 사랑을 하느라 스스로 비밀을 만들고 아지트에 숨어버린다.
그나마 문주과 산호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는 씬은 두 사람이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대사로라도 이루어지지만, 이미 초반에 퇴장해버린 남편이 숨기고 있었던 이야기는 문주이 대부분의 사실을 파악한 뒤에야 편지의 형태로 뒤늦게 전해진다.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편지를 통해 쏟아지는 '사실 나 다 알고 있었고 말하려고 했어'와 같은 식의 고백은 옳지 않다. 내레이션으로 해석해주는 수준을 넘어, '난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넌 받아들이기만 해' 의 단계에 다다른 빈틈 채워넣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주의 남편과 불륜을 했던 한나는 어떤가. 불륜의 비밀이 공개되고 나서, 그녀는 당당하게 공석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문주의 '모든 것'을 뺏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주이 산호과의 아지트로 들어갔다 나온 뒤, 전쟁의 위협이 대한민국의 목을 죄여오면서 한나의 당찬 포부는 모두 흩어져 버린다.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공동 목표 아래 한나는 본래 품고 있었던 문주에 대한 증오심은 어디로 갔냐는 듯 문주에게 호의적으로 대한다. 심지어 '그 사람, 나 사랑한 적 없어요.'와 같은 말을 건네고 퇴장하기까지 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아래 모두의 긴장 관계를 뭉개고 연대할 것이었다면, 애초에 이 '불륜' 설정은 필요하지도 않은 자극적 소재에 불과했다.
<북극성>의 공개를 기다리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지점은 문주과 산호의 로맨스였다. 비주얼로 늘 화제를 모았던 두 배우의 만남, 그리고 늘 울림이 있는 대사를 써 온 작가의 대본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들을 묶어줄지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고 느꼈다. 그러나 공개된 회차들을 이어보면서, 내가 느꼈던 대부분의 아쉬운 지점은 모두 인물들의 로맨스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거운 소재와 복잡한 정치적 이야기, 거대한 '전쟁' 이라는 사건을 풀어내고 결말에서 끝을 맺기도 바쁜 와중에 화제의 인물들이 어떻게 로맨스로 이어질지를 집어넣느라 작가가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내용들,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씬들이 있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생략된 카메라 뒤의 서사를 보지 못한 시청자들에게는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사랑과 연대가 의문스럽기만 할 뿐이다. 북극성이 빛나기 위해서는, 로맨스를 우겨넣은 자리를 비웠어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꽉 채운 것보다 여백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어두운 하늘이 텅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별도 누군가에게 보이도록 빛날 수 있으므로.
- 1
- 200
- 13.1K
- 123
- 1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