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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비됴2025-10-13 22:28:21

미국 분열의 시대 속 PTA식 혁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리뷰

 

 

트럼프에게 고마워 해야할까? 폴 토마스 앤더슨(일명 ‘PTA’) 감독에게 창작의 영감과 동력을 주고, 대중성, 감독의 영화 중 최고 제작비인 1억 3,000만 달러(약 1,830억)를 들여 만들겠다는 용기를 줬으니, 박수라도 보내야 할 듯 싶다. (노벨평화상 수상 실패의 아쉬움을 이 박수로 대신하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트럼프 시대가 재 점화 시킨 분열의 시대를 맞이해 감독이 내놓은 통렬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블랙 코미디이자, 작은 희망의 불씨를 쏘아 올리는 혁명적 영화다. 그동안 갈고 닦은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파헤치는 그의 실력은 또 한 번 빛나고, 가족 드라마로서도 감동을 전한다. K 막장 드라마의 쾌감까지 가져올정도. 역시 PTA는 PTA다. 

 

16년 전에는 자유를 외치며, 모든 걸 날려버렸던 혁명가이자 폭탄 전문가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라리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술과 약의 힘으로 살아간다.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의 존재는 그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지만, 딸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의 숙적이자 인생을 망가뜨린 주범 록조(숀 펜)가 윌라를 납치한다. 밥 또한 록조가 이끄는 군대에 쫓기는 신세. 그는 세르지오(베니시오 델 토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딸을 찾고 록조와의 끝없는 대결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추격을 시작한다. 

 

 

| 밥의 혁명은 실패이자 성공! 

 

 

밥의 라떼 시절로 돌아가보자. 반정부단체 ‘프렌치 75’에서 활동한 폭파 전문가였던 그는 사실 혁명보단, 혁명 조직에 들어가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심취해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혁명 리더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를 만나 결혼하고,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낳는다. 

 

윌라의 탄생은 밥에게 큰 분기점이 되는데, 오로지 혁명이 최우선인 퍼피디아와 달리, 밥에게는 딸을 키우는 게 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생각이 다른 이 부부는 결국 다른 길을 가고, 밥은 과거를 지우고 어떻게든 윌라를 키우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간접적으로 혁명을 이룬 그에게 평범한 삶은 어울리지 않을 터. 변변한 직장 없이 술과 약에 의존해 살아가는 그저 그런 기성세대가 된다. 

 

 

 

밥의 혁명은 실패처럼 보인다. 혁명에 발을 담근 과거의 족쇄로 인해 자신과 딸의 신분을 감춘 채 살아가야 하고, 록조 등 프렌치 75를 소탕하는데 앞장선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어쩌면 이런 삶을 쳇바퀴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술과 약은 떼레야 뗄 수 없는 안정제처럼 느껴진다. (이건 밥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집을 나간 퍼피디아도 비슷하다.)

 

영화는 이런 인생 루저가 딸의 유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자신을 증명해내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 잊고 지냈던 옛 동료들과 연락을 할 때 필요한 암구어를 까먹어 집결지에 바로 가지 못하거나, 세르지오가 마련한 계획에 따라가지 못한다. 그눔의 저질 체력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철없는 전직 혁명가 아비는 딸을 찾는 여정을 지속한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지만, 결국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방법으로 어떻게든 딸을 찾는다. 밥의 혁명은 실패로 보이지만, 결국 성공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 PTA에겐 혁명 같은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감독에게 혁명과도 같은 영화다. 일단 재미있다. (감독의 전작이 재미없다는 게 아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재미있다. 자신도 이렇게 대중 영화를 잘 만들 줄 안다고 자랑이나 하는 것처럼, 약 3시간을 육박하는 러닝타임의 작품임에도 시간 순삭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작품 중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였기에 볼거리가 많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건 바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극 중 부녀간의 이야기이자 세대 간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다뤄지는데, 감독은 밥의 기나긴 여정을 통해 불일치했던 세대 간의 합일을 보여준다. 감독의 전작을 보면 부자 혹은 유사 부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세대 간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고,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H.W. 플레인뷰(딜런 프레이저), <마스터>의 랭커스터(필립 셰이모어 호프먼)와 프레디(호아킨 피닉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극과 극의 위치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관계가 끊어지거나 파국으로 치닫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반대로 세대간의 합일을 보여주고 일말의 희망을 드러낸다. 이는 후반부 고속도로 추격장면에서 잘 보여주는데, 부녀를 위협하는 존재들이 모두 사라진 후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비로소 현 세대와 이전 세대가 아닌 딸과 아빠로서 재회한다. 

 

일단 파도처럼 종으로 넘실대는 이 도로에서의 추격전은 일단 비주얼적으로 최고의 서스펜스를 주는 장면인데, 이는 밥이 어떻게든 윌라에게 다가가기 위해 거센 파도를 헤치며 가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비로소 딸과 만난 밥은 자신의 인생을 건 최고의 행복을 다시 찾은 표정으로, 윌라에게는 그동안 망각했던 자신의 유일한 아군을 알게 된 표정으로 마주한다. 특히 그동안 ‘밥’으로 불렀던 윌라가 처음으로 ‘아빠’라 말하는 순간이다. 이를 축복하듯 믿어도 되는 존재를 만나면 울리는 이상한 수신기의 멜로디가 들린다. 

 

 

| 트럼프 시대 속 PTA가 보여주고 싶은 크리스마스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숀 펜이 연기한 록조 대령이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로 똘똘뭉쳤지만 흑인인 퍼피디아를 사랑하는 이중적인 남자다.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불법 이민자를 싹 잡아들이고, 이를 위한 강경진압에 군대를 투입하는 등 시쳇말로 간댕이가 부은 미친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인물은 강한 힘, 권력을 추종하는 성향이 강한데, 퍼피디아를 사랑하게 된 건 그녀가 성적 우위를 점하며 그를 농락했기 때문이다. 록조는 강한자에게는 약하고, 약한자에게는 강한 치졸한 인간의 전형성의 합일물처럼 보인다. 극 중 록조가 윌라를 잡아가고 강경진압을 불사하는 행동을 보인 건 바로 백인우월주의집단단체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애 가입하고 싶어서다. 자신의 결격사유를 어떻게든 없애려는 그의 이중성은 클럽 수뇌부가 알게 되고, 록조는 파국을 맞는다. 

 

극 중 트럼프 시대라 칭하지 않지만, 록조의 미친짓, 특히 불법 이민자 강경 진압은 현 정부의 행태와 오버랩된다. 더불어 미국 내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백인우월주의집단의 행태는 의미심장하다. 

 

 

 

이런 상황에서 끝없는 전쟁이라는 의미의 제목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세대가 바뀌어도 이 전쟁은 계속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밥의 세대가 실패한 듯 보이지만, 어떻게든 그 혁명 정신과 의지를 이을 다음 세대를 키워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충분해 보인다. 누군가에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보일 이 영화. 생애 처음 셀카를 찍는 밥의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말

 

1.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영화의 또 다른 동력으로 작용한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피아노 선율은 제목처럼 끝없는 전쟁처럼 이어진다. 어떻게든 이어지고 되풀이되는 전쟁의 반복성을 조니 그린우드 형님은 음악으로 표현한다. 특히 ‘Ocean Waves’는 이를 잘 보여준다.

 

2. 배우들의 연기는 말해 뭐하나!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처럼 끝없는 전쟁을 이어나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숀 펜 형님이다. 어떻게 연기하냐고? 일단 영화를 보면 안다. 오스카 남우조연상 받기 전에 이 형님의 위대한 연기를 꼭 영접하기 바란다. 

 

3.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그 포문을 열었다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그 바통을 이어받고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트럼프가 시카고에 텍사스 주방위군을 투입하려는 등 내전의 불씨가 스멀 스멀 피어오르는 상황에서 두 영화가 주는 의미는 남다를 터. 작품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오스카 회원들이 어떤 작품에 힘을 실어줄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출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평점: 4.5 / 5.0

한줄평: 흠잡을 때 없는 PTA의 압도적 대중 영화! 

작성자 . 또또비됴

출처 . https://blog.naver.com/anqlepdl/22403930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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