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1-05-04 13:43:18
다른 존재를 통해 정상의 의미를 모색한 영화 《가위손》
어렸을 적 OCN에서 방영해주는 영화 《가위손》을 몇 번 본적이 있었는데 크게 와닿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대학원 과제로 영화 《가위손》을 분석해야 했고, 과거에 큰 감흥이 없던 영화로 기억을 해서 미루고 미루다 봤었는데 굉장히 생각보다 재밌고 교훈적인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가위손》 시놉시스
다가설수록 아픈, 그래서 더 애틋한 가위손
화장품 외판원 펙은 마을 언덕 외딴 성에서 상처투성이 창백한 얼굴과 날카로운 가위손 때문에 외롭게 살고 있는 애드워드를 만나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평범한 일상에 무료해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된 애드워드, 펙의 딸 킴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남자친구 질투와 이웃들의 편견으로 도둑으로 몰리며 더 큰 오해에 빠지게 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가위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려한 색감과 무채색의 의미
영화 가위손을 색채대비를 굉장히 강하게 쓰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의 시작 장면부터 굉장히 다채로운 지붕 색들을 가진 마을을 보여주다가 애드워드가 살아가는 성은 검정색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드워드가 마을에 내려와 입는 옷들은 무채색인 반면에 마을 사람들은 그와 대비되는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고 있었다.
처음 볼 때는 다양한 색감이 일반적인 것이 무채색을 벗어나지 못하는 애드워드가 외로움과 우울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니 오히려 그 반대를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혼자 살아왔고, 아버지라 믿었던 박사와 자신이 사랑한 킴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움과 우울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애드워드와 애써 자신들의 욕망과 부족한 점을 화려한 색감으로 감추려 드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을 할 수 없는 애드워드
감출 수 없다는 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은 바로 애드워드가 화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펙의 말이었다. “왜 화장이 하나도 먹질 않는거지...!” 마을에 있느 사람들은 화장품 외판원인 펙의 화장품을 구입해 화장을 하며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감춘다. 하지만 애드워드는 얼굴에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에 펙이 그 상처를 화장을 통해 감춰주고자 하지만 화장품은 애드워드의 얼굴에 스며들지 않고 계속 들뜰 뿐이었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애써 상처들을 감추고 사회가 정의한 정상의 범주에 머무르려는 마을사람들과 그러지 않는 애드워드를 보면서 과연 어느 쪽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다름과 정상의 차이
어렸을 때 영화 가위손을 봤을 때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사회를 떠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보면서 오히려 정반대의 주제로 다가왔다.
애드워드가 과연 정상의 범주가 아닌 것인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는 것이 정상인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작품이었다. 우리가 정상적이고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를 통해 그것은 정상이 아니라 그저 암묵적인 룰일 뿐이라는 것을 꼬집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영화 《가위손》을 그저 동화같은 이야기로 생각했었는데, 정상이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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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에 대하여>에 없고 <침범>에는 있는 것
* <침범>과 <케빈에 대하여>(2011)의 장면과 결말 묘사 포함
<케빈에 대하여>, 케빈이 아빠와 동생, 동급생들을 살해하고 청소년 교도소에 간지 2년이 되던 날, 그의 엄마 에바는 면회 자리에서 묻는다. “왜 그랬어?(Why?)” 케빈은 답한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I used to think I knew, now I’m not so sure.)” 영화가 조명하는 그의 마지막은 에바의 포옹을 받는, 떨리는 뒷모습이다.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된 에바가 빛이 쏟아지는 열린 문을 마주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런데… 케빈은 왜 그랬을까. 작품이 ‘당연한, 타고난 모성’을 의심하는 것과는 별개로, ‘에바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라는 단언은 부적절하고 부당하다. ‘원래 그렇다’는 설명은 어딘가 충분치 않다. 모든 기행은 ‘에바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 케빈이 비틀린 근친 이성애를 품고 성장하기를 거부한 탓이었을까? 허나 적의는 분명하지만 그 동기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케빈의 낯에 떠오른 혼란처럼 모호하다. <케빈에 대하여>에는 케빈의 언행을 관찰하거나 그가 의도적으로 전시하는 감정을 클로즈업하는 숏은 있어도, 그의 본성을 은유하는 숏은 없다. ‘악행의 원인’은 물음표로 남는다. 에바의 입장에서 이해를 시도하되, ‘안다’고 확언하는 오만은 보이지 않는다. 원제 “We need to talk about Kevin.(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은 에바가 남편에게 아마도 수 차례 했을 요청이자, 영화가 관객에게 건네는 제안으로 다가온다.
<케빈에 대하여>가 에바의 시선으로 케빈을 관찰하듯, <침범>의 전반부는 영은의 시선으로 소현을 관찰하며 관객이 영은과 호흡을 맞추도록 유도한다. 전개상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소현의 기행은 반려견 살해다. 영화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친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영은이 수영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 모습, 아파트 앞에서 사람들 몇에게 둘러싸인 소현을 발견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영은의 허벅지에 흉터가 생긴 정황을 알려주는 과거 장면을 살펴보면, 잠에서 깬 영은이 문에 기대 기묘하게 웃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소현을 목격한 후, 이내 허벅지의 상처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서로 전개된다. 이처럼 소현의 행위와 관찰자/화자인 영은의 인식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자리하고, 이 점은 효과적인 서스펜스를 구성한다. 소현은 끊임없이 통제를 벗어남으로써 영은의 일상을 침범한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 흉으로 남아 있듯, 그 영향력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까지 뻗는다.
<침범>은 영은에게 찍힌 낙인의 압박 또한 담아낸다. 미술관에서 영은과 그의 전남편이 소현에 관해 대화하다 언성을 높이는 씬, 영상 전시물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몸에는 스크린 이미지가 문신과도 같이 드리워져 있다. 장면의 끝에 전남편은 전화를 받겠다며 빠져나가고 영은은 그대로 남겨진다. ‘병원에 입원시키자’는 전남편의 제안은 영은에게는 아마 다른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누구의 탓이라기보다는, 공식적으로는 흩어졌으나 사회와 개개인에게 촘촘히 스며들어 있는 오래된 관습의 영향이다. 소현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고/행동 방식만이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일반적’ 관습과 시선 역시 영은의 삶에 침범한다. 영은이 엄마의 권유로 나간 교회에서 마주친 ‘소라 엄마’는, ‘소현이 때문에 소라는 아직 정신과를 다닌다’며 분노한다.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라는 지혜 엄마의 말이 상징적으로 나타내듯, 그 분노들은 자주 (‘미성숙하다’고 여겨지는) 소현이 아닌 영은을 향한다. 아빠들이 상냥하게 타이르거나 양해를 구하는 동안, 분노하거나 사죄하는 것은 엄마들의 몫이 된다. 이를 영화는 선명하게 짚어내기보단 은근히 암시한다.
그렇기에, ‘차라리 나만 해하면 좋겠다’던- 영은이 받는 극한의 스트레스가 결국 고립된 (엄마)자신에게로 수렴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다. 영은이 소현 담당 정신과 의사의 당부를 듣는 장면, 의사의 대사가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발화자가 아닌 영은의 얼굴만을 촬영한다. 의사는 ‘엄마가 지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영은은 키우던 강아지를 산에 묻은 날부터 이미 지쳐 보였다. “엄마가 왜 울까.”는 물음보단 새어나온 한탄으로 들렸다. 지친 영은의 방법은 설득과 사과에서 물리적 차단으로 기운다. ‘소현이 괴롭힌다’는 지혜의 고백을 듣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영은의 얼굴이, 지혜의 몸에 가려 극히 일부만 보이는 숏이 있다. ‘지친 상태’는 그의 균형을 흐트러트리고 시야를 좁힌다. 소현의 행위와 그로 인한 파장을 차단하려는 영은의 시도는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터, 이번엔 그의 시야 내에서 무력하게 실패한다.
소현을 포기하며 스스로를 포기한 영은이 수영장에 가라앉으며 하나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고, 영화는 20년 후로 점프해 ‘민’을 따라간다. 전반부가 영은의 관점으로 진행되며 소현을 침입자로 다루었다면, 후반부는 민의 관점으로 진행되며 해영을 침입자로 다룬다. 영화는 민이 ‘소현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면회하는 ‘엄마’의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려 볼 수 없게 하고, 습관적 절도와 날카로운 태도를 강조한다. 허나 캐릭터성의 차이는 금방 드러난다. 어린 소현은 민과 같이 일관성 있게 방어적이기보단, 해영과 같이 사회적 연기를 하며 상대의 반응을 살피곤 했다. 해영이 소현이라는 반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영화도 딱히 숨겨놓지 않았다.
헌데 이 반전이 공개되는, 그리고 그 이후 영화가 소현을 다루는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침범>의 전/후반부에는 한 차례씩 CCTV 화면이 삽입된다. 그 첫 번째 특성은 객관적 증거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거기 찍힌 소현을 관리자가 목격하고 집단에서 내보내겠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두 번째 특성은, 촬영된 소현이 뭉개져 실루엣에 가깝게 보인다는 점이다. 소현이 유치원을 옮기는 계기로 작용하는 전반부 CCTV 씬은, 소현이 그 속의 상처럼 영은에게 흐릿하고 낯선 존재라는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이때 소현은 영은과 관객에게서 더 멀어진다. 후반부의 CCTV 화면도 전반부와 유사하게 팀장의 판단 근거로 쓰인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해영이 찍힌 영상을 보는 자는 다름아닌 해영 본인이다. 이즈음부터 연출 선택들은 대체로 해영-소현을 ‘선명하게 밝히는’, 관객에게로 ‘가까이 가져다주는’ 방향을 바라본다. 팀장과 해영의 대면은 민과 소현 할머니의 대면과 교차편집된다. ‘해영이 소현’임을 민이 알게 되며 소현이 팀장을 해한 상황이 공개된다. 소현은 스스로 ‘무엇인지’를 강조하듯, 피범벅이 된 팀장의 몸을 과격하게 발로 찬다. ‘해영이 소현’임이 밝혀지며, 소현의 (본질적인) 정체가 밝혀지는 듯한 연출이 아닌가. 그는 이제 CCTV 속 실루엣처럼 흐리고 낯설어 두려운 형상도, 자꾸만 거리를 벌리고 예상을 벗어나므로 매번 새로 파악해야 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무르익어야 할 서스펜스는, 민과 영화가 해영-소현의 ‘정체를 파악했다’는 단정을 내보이면서 설익은 채 사그라든다. 전반부가 훌륭하게 쌓은 물음표의 집은 무너진다. 이제 소현의 폭력성은 누군가의 시선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시되며, (그 정도가 아니라 패턴의 측면에서)예측 가능하다. 기대를 뛰어넘는 것은 오로지 이설의 어마어마한 퍼포먼스 뿐이다. 표면적으로 유사한 성장 배경을 지닌 민을 후반부 화자로 택한 까닭은 일단, 그를 소현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민이 소현과 몸싸움을 하는 와중 자신이 ‘해석한’ 소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와 소현을 철저히 분리/비교하기 위해서’라는 또다른 까닭이 드러난다.
결국 <침범>은 ‘소현이 왜 그랬는지 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정확히는, ‘그럴듯한/인간적인 이유 따위는 없으며 그는 원래 그런 자’라고 못박는다. 거기엔 인물의 ‘본질’에 대한 평가, 악행의 악마화가 수반된다.(준섭이 지닌 ‘비교적 평범한’ 폭력성이 그가 소현의 피해자가 되며 묻히는 것은 덤이다.) 시냇가에 있는 소현을 조명하는 엔딩은 어린 소현의 뒷모습을 보여주던 오프닝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씬이다. 영화는 여기서 영은의 환영을 등장시킨다. 포옹과 ‘왜’의 답까지, <케빈에 대하여>의 엔딩이 겹치지만 전하는 바는 완전히 다르다. 영은과의 대화는 사실상 소현의 독백이다. ‘고통이 좋다’는 고백은 소현과 민이 대립하는 장면의 지난한 대사들처럼, 인물의 언어보다는 작가의 언어로 들린다. 이해의 시도보다는 그를 ‘우리’에게서 분리하는 제스처, 심층적 탐구보다는 표면적 규정이다. 영화는 물에 비친 소현의 상을 어린아이로 그리며, 그의 내면이 일곱 살 때와 다르지 않음을 나타낸다. ‘성장하지 못했다’보다는 ‘완성된 악으로 태어났다’는 관점으로 읽힌다. 소현은 관객에게 공포와 고민을 동시에 선사하는 복잡한 악인에서, 자체적으로 결론과 해석을 지닌 ‘악마’로 변한다. 마지막 숏은 엄마의 환영을 돌로 찍어 ‘죽인’ 소현의 정면 클로즈업, 그 낯은 거의 결연하다. ‘나는 앞으로도 타인의 고통을 즐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도 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침범>은 소현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정해 놓은 채로, 그 (일종의, 이를 테면)‘순수악’이 주변을 잠식하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관점은 ‘교회에 데려가자’에서 ‘걔는 사람이 아니야’로 옮겨가는 소현 할머니의 것과 비슷하다. 제가 낸 불을 후광으로 두르고 무감정하게 서 있는-‘머물렀던 곳을 깡그리 불태우는 존재’-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전하는 소현의 이미지와 가장 가깝지 않은가. <케빈에 대하여>는 케빈의 정체를 모르고, <침범>은 소현의 정체를 안(다고 말한)다. 영화가 알려주므로, 관객은 사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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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내용으로 글이 모였으나, “20년 후” 이전 파트는 매우 좋았다. 곽선영 배우의 서서히 가라앉는 연기가 몹시 인상적이었다.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아쉬웠음에도 이설 배우의 연기만큼은 다시 관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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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외국 유명 배우들
안녕하세요, 영소남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게임하시는 걸 좋아하시나요? 저는 가끔가다 시간이 날 때 게임 플레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게임'과 '영화'가 모두 관련된 글을 준비 해보았습니다. 바로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외국 유명 배우들이란 포스팅인데, 게임을 다룬 포스팅은 처음이라 실수하는 부분도 있겠으나 너그러히 양해해주시길 바라며, 그럼 바로 포스팅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순서와 순위는 상관없는 리스트입니다
• 여러분이 생각하는 배우가 없을 수 있습니다.
• 본 포스팅은 재미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이블 3>
'마이클 패스벤더' - 로건 역
가장 첫 번째로는 플레이어가 성장을 통해 게임 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왕국 알비온의 왕권을 되찾고자 하는게 초반의 주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페이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페이블 3'입니다. 사실 이 게임 속에는 로건 역으로는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 그리고 월터 역으론 버나드 힐, 사빈 역으로는 벤 킹슬리, 벤 핀 역으로는 사이먼 페그, 엘리엇 역으로는 니콜라스 홀트 등 다양한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한걸로 유명한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직접 개척해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계관이 깊은 세상의 이야기를 플레이 하고 싶다면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페이블3' 플레이 사진
<언틸 던>
'라미 말렉' - 조쉬 워싱턴 역
슈퍼매시브 게임즈가 개발하여 PS4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한 게임 <언틸 던>. 저 역시 처음 플레이 영상을 시청 후에 익숙한 배우가 한 명이 등장해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요. 바로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에서 이집트 왕으로 등장한 바 있고, 얼마 전 <보헤미안 랩소디>로는 프레디 머큐리 역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각종 상을 휩쓴 배우 라미 말렉 입니다. 게임 내에서는 유일하게 '미스터리'한 인물로, 1년 전 사건을 잊기 위해 친구들을 모두 별장으로 초대한 장본인으로 등장하죠. 실제로 게임 속 그를 생존 시키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공포 게임이지만 나름 재미있게 잘 짜여져 있으니 직접 한번 플레이 해보시길!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비욘드: 투 소울즈>
'엘렌 페이지' - 조디 홈즈 역
현실과 게임 정말 똑같지 않나요? <비욘드: 투 소울즈>라는 게임은 퀀틱 드림이란 곳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한 소녀가 성장해가면서 경험했던 사건들을 풀어가면서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의 퍼즐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있는 게임입니다. 무엇보다 <인셉션>, <주노>, <엑스맨> 시리즈 등 다양한 영화들에 출연한 엘렌 페이지가 주인공 조디 홈즈 역의 모션 캡쳐와 성우에 직접 참여를 해서 출시 전부터 큰 화제가 되었던 게임인데요. 아예 그녀를 본떠서 만든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유명 배우를 조종해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이 게임 <비욘드: 투 소울즈>에는 배우 엘렌 페이지 뿐만 아니라 얼굴만 보면 "아 이 배우!"하고 바로 생각하실법한 배우 윌렘 대포 역시 네이선 도킨즈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게임 팬들과 영화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 주었는데요. 실제로 게임은 아직 플레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제작사에 말을 따르면 이 게임의 '각본'은 거의 8900 페이지에 가까울 정도로 스토리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 혹시 플레이 해보신 분이 있다면 플레이 후기 좀 살짝 귀뜨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배우들 연기력 보는 것만으로도 한번 플레이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콜 오브 듀티: WW2>
'조쉬 더하멜' - 윌리엄 피어슨 역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게임 시리즈 입니다. 전쟁 속에 참혹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과 동시에 생각보다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저 역시 애정하고 있는 게임 시리즈 중에 하나 인데요. 그런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속에도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엔 <콜 오브 듀티: WW2>에서 <트랜스포머>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배우 '조쉬 더하멜'이 윌리엄 피어슨 역으로 등장하여 큰 관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특히 군인 이미지로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배우인 만큼 모션캡쳐에 직접 참여한 그의 모습을 게임 속에서 만나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네요!
<귀무자 3>
'장 르노' - 잭 블랑 역
이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레옹>이 떠오를 정도로 추억 속의 배우가 된 장 르노 역시 한 게임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귀무자 시리즈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귀무자 3편에서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일부 모션 캡쳐도 담당했다는 소식에 그 당시 상당한 화제를 모았는데요. 하지만 중간에 귀신의 힘으로 자동 통역이 된다는 설정이 존재해 그가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구간은 전체 스토리의 5%도 되지 않아 일부 팬들에게 살짝의 아쉬움을 전하기도 한 게임입니다. 그래도 한때 최고의 배우였던 장 르노를 PC 게임 속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네요.
묘하게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
'게리 올드만' - 빅토르 레즈노프 역
조쉬 더하멜에 이어서 <콜 오브 듀티>에 등장한 기억에 남는 영화배우를 말하라면 저는 당연히 게리 올드만을 말할 것 같습니다. 그가 출연한 다양한 영화들을 살펴보아도 연기력 하나 만큼은 매번 소름돋게 펼쳐주는 그이기에 게임 속 러시아 장교 빅토르 레즈노프라는 인물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인물의 모습을 강렬하게 묘사하여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프라이스라는 인물 못지 않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로 손 꼽히고 있는데요. 또한 비록 모션캡쳐를 하진 않았지만 얼굴도 게리 올드만의 얼굴에 맞춰서 디자인이 된 캐릭터인 만큼 아직 안해보신 분들이 플레이를 해본다면 "아, 게리 올드만 이구나"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실겁니다.
<폴아웃 3>
'리암 니슨' - 제임스 (아버지) 역
그 어떤 영화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과 딸을 지켜내는 배우 '리암 니슨' 역시 폴아웃 이라는 게임 속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게임 속에서도 주인공의 아버지 성우 역할을 맡아 아버지의 눈물나는 사랑을 한층 더 부각 시켜주었는데요. 무엇보다 이 게임은 출시된지 거의 10년 이상이나 된 게임이지만 단순한 게임 속에 숨어있는 감정적인 면들로 인해 상당히 많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죠. 만약 리암 니슨이 성우와 모션캡쳐까지 연기를 했더라면 정말 영화 속에나 볼 수 있었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게임 속에서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다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즐거운 플레이 시간이 됐던 것 같네요.
<GTA 산 안드레아스>
'사무엘 L. 잭슨' - 프랭크 텐페니 역
네? 잠깐만요. 정말 그가 맞다고요? 네 맞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배우 '사무엘 L. 잭슨'이 콜 오브 듀티를 이어서 최고의 게임 시리즈로 자리잡고 있는 'GTA 산 안드레스'에서도 역대급 악역으로 부정 부패의 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경찰인 프랭크 텐페니의 목소리로 등장한 바가 있는데요. 게임을 플레이 할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함께 두고 보니까 아 정말 그가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워낙 사무엘 잭슨은 여러 애니메이션에서도 더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후로도 은퇴 전에 한번 더 게임으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엘더스크롤4>
'패트릭 스튜어트' - 셉팀 7세
2006년 3월에 출시하여 싱글플레이를 기본으로한 롤플레잉 게임인 이 <엘더스크롤4>란 게임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로 <엑스맨> 시리즈에서 프로페서X 역을 맡은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인데요. 그는 이 게임에서 오블리비언에 등장하는 황제인 우리엘 셉팀 7세 역으로 성우를 맡으면서 우리가 들어보자 못했던 그의 목소리로 상상도 못한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완벽한 캐릭터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보자마자 "왜 할머니 역할을 프로페서X가 하는지 모르겠다"며 말 하기도 했다네요. 저는 아마 게임 플레이시 전혀 모를 것 같습니다..!
<배트맨 아캄> 시리즈
'마크 해밀' - 조커 역
마지막은 역시 '조커'의 전담 성우로 불리우는 배우 마크 해밀의 애니메이션 속 조커가 아닌 배트맨 아캄 게임 시리즈 속의 조커로 마무리 해보아야겠죠. 무엇보다 마크 해밀 표 조커는 장난스러우면서도 광기에 찌들어 있는 듯한 목소리와 숨넘어갈 듯한 웃음 소리를 잘 살려내면서 기존 조커들과는 다른 모습 속에서 최고의 극찬을 받고 있는데요. 저는 그의 조커가 극찬받는 이유는 마크 해밀이 '악기'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한다는 조커의 다양한 웃음 소리가 아닐까 하는데, 정말 그건 오로지 마크 해밀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엔 <사탄의 인형>의 '처키' 목소리도 원작과는 다른 소름 돋게 연기하면서 큰 호평을 받기도 하였죠.
이거 보니까 한번 플레이 해보고 싶지 않나요?
지금까지 목소리로든지 얼굴까지 모두 합쳐서라든지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외국 유명 배우들을 만나보았는데 재미있게 보셨나요? 사실 이 외에도 게임 속에서 등장한 배우들은 정말 많은데 다 소개하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혹시라도 이 밖에 생각은 나지만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 아쉬운 배우들이 있다면 댓글에 추천 및 소개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영소남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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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인기 많은 <오징어 게임>, 제가 한번 직접 봤습니다
난 드라마 잘 안 본다. <나의 아저씨>나 <DP>, <인간 수업>도 안 봤다.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장혁의 <추노>를 꼽을 것이다. 점점 살다 보니 TV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지 않게 됐다. 나의 아저씨도 본다 본다 말은 했지만 한 10초 봤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에 진심이 아닌 편이다.
<오징어 게임>은 스킵하는 장면 없이 나온 당일날 9시간 만에 정주행을 끝냈다. 이 작품이 엄청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건 진짜 초 쩌는 작품이다' 싶었던 <추격자>나 <곡성>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랑종>을 보고 극장에서 나온 다음과 비슷하달까? 적당히 잘 만든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해진다. 무려 <오티스>를 이겼다는 말이 들리니 말이다. 나 역시 이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소감을 이 브런치에 공유하고자 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은 있다. 흑막의 정체가 너무 쉽게 예상이 간다던지, 몇몇 인물의 개연성에 있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던지, 베드신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5화의 다리 건너기에서 더 영리한 수를 쓸 수 있지 않은지 등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법한 의문점 역시 나도 갖고 있다. 근데 나는 단점을 제외하고 황동혁 감독이 어떤 걸 의도하고 만든 지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전적으로 나의 의견이며 실제 이 드라마를 만든 제작자들이나 배우들의 의견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그냥 사람들이 제시하는 각기 다른 해석 중 하나로 읽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아래부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흑막은 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된 논리를 펼치는가?
죽은 줄 알았던 일남이 살아서 기훈에게 쪽지를 보냈다. 기훈은 놀란 눈빛으로 쪽지가 적어놓은 장소를 향해 걷는다. 기훈이 묻는다. "당신. 누굽니까." 일남이 대답한다. "저기. 저 남자 말이야. 술에 취했는지 몇 시간째 저러고 있어. 행색으로 봐선 노숙자 같은데. 저대로 놔둔다면 금방 얼어 죽을 텐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자네라면 어쩌겠나. 가던 길 멈추고 저 냄새나는 인간쓰레기를 도와주겠나." 이 대사는 일남을 상징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일남은 지나가는 사람을 '인간쓰레기'라고 규정한다. 다음의 일남의 대사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 돈은 자네의 운과 노력의 대가야. 자네는 그 돈을 쓸 수 있어. 삶은 짦아."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내 고객 한 둘이 그러더군.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다고." "자네가 잊은 게 있어. 난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 자네도 제 발로 다시 돌아왔잖아." 일남은 이 <오징어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결과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마치 시스템을 만든 조물주와도 같이.
일남은 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인물이다. 이 <오징어 게임>에서 프런트맨이 중요시하게 주장하는 원칙이 있다. 바로 평등과 소외된 이에 대한 수용이다. 전자는 111번 참가자가 스태프들과 결탁해 부정을 취한 게 드러날 때 말했던 논리다. 후자는 미녀가 깍두기처럼 남겼을 때 주장한 말이다. 프런트맨이 주장했다고 해서 일남과 무관하냐? 당연히 아니다. 프런트맨은 운영 스태프들을 총괄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호스트의 분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프런트맨의 논리가 일남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오징어 게임> 전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일남이 이 게임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평등과 배려다. 나름대로는 '하류인생들에게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준 것이다. 근데, 이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문답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이 과정이 옳았는가? 아니다. 평등과 배려를 원칙으로 해 1명의 우승자를 찾는 이 <오징어 게임>은 죽는 사람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방식이다. 자세한 묘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이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옥도와도 같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사람이 죽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른 측면을 본다고 해보자. 2화를 봤을 때, 과연 이 456명의 참가자들에게 있어 현실이 게임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애초부터 게임을 재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5대 5로 여론이 나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위기를 겪은 사람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게임은 다르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연탄불에 생을 끝내려고도 하는데, 게임은 살아남기만 한다면 큰돈을 가질 수도 있다. 난 이 2화에서 각자 인물들이 처한 설정과 게임이 대비된다는 지점과 일남이 <오징어 게임>을 기획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이 같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황동혁 감독은 이 설립 의도가 합리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만든 기득권층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지나가는 인간쓰레기'라고 정의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어떤 게임에서는 그가 실제 조물주와 비슷하게 쥐락펴락 갖고 놀았다. 우리 스스로에게 간단하게 물을 수 있다. 이 일남의 스탠스는 옳았나? 아니다. 일남과 프런트맨의 논리는 '겉으로는 평등과 원칙을 주장하지만 결과는 살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또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릴 권한은 없다. 그것이 상금과도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기할 수 있는 도구를 준다고 해도 말이다. 이 과정이 실제로 평등과 배려를 깔았다 하더라도, 하위계층에 대한 거의 유일한 구제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아닌 건 아닌 거다. 우리는 이것들을 절대 모르지 않는다.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사회정의에 대해 석학들이 논의했다. 근데 이 논의가 다 유의미했냐? 아니다. 그거 다 이뤄졌으면 모두가 다 살기 좋았다. 그러니까 이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은 모순투성이인 셈이다. '하위 계층에게 올라갈 기회를 준다. 참여에 대한 강제 없이'가 서로를 죽이는 논리지만 우승자를 골랐던 이유가 '너랑 노는 게 재미있어서'인 것도 이에 대한 근거다. 두 질문은 '왜 게임의 승리자로 나를 설정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한 것과 같다. 애초부터 일남에게 누구를 살리는 데 있어 내적 논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소외된 사람들은 살리고 패배자는 총으로 쏴버리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말을 못 지키는 것이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내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밑에 깔린다는 걸 알면서도 살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남을 밟고 일어날 거라고 예상 못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원리원칙에 대해 하위계층이던 상위계층이던 사실 다 알고 있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가 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오징어 게임>에 강제가 아닌 철저히 본인의 의지로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다. 마음 한 구석에 총알 몇 방 맞아가며 말이다. 내 생각에 황동혁 감독은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 표현하려고 일남과 프런트맨의 논리를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감독은 현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VIP의 구성과 플레이어들에 대해 알아보자. 다양하게 나눠진다. VIP는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이다. '한국의 게임이 이렇게 재밌다니'라고 말하는 거 보면 각국의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또 동성애자도 있다. 이 부분은 드라마를 잘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2번에서도 언급할 것과 같이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평등과 정의를 중요시한다. 또 약자에 대한 배려도 지킨다. 외적으로 보면 기득권층은 각계각층서 온 사람들에 심지어 동성애자까지 껴 있는 평등한 세상이다. 플레이어들에게 부조리가 일어나는 걸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도덕성은 틀렸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도덕성은 지키면서 그 외적인 건 뭐가 일어나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난 이 인원 구성이 한국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내지는 이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소수가 중심이 되는 사회지만 이는 결국 기득권의 이해관계 아래 놓여 있을 뿐이다. 감독은 '이 드라마가 현실에 대한 은유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인원 구성부터 힌트를 준 것이다. 굳이 안 넣어도 됐을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 치매노인이라는 설정도 있으니 말이다.
3. 프런트맨과 29번 스태프는 왜 등장하는 것인가?
프런트 맨이 2화인가 3화 즈음에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다. 난 이것만 듣고도 담당 배우를 맞출 수 있었다. 음성변조를 넣기야 넣었는데 난이도는 쉽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또 지영 역(이유미 배우)이 새벽에게 모히또와 몰디브 어쩌고 하지 않나? 그것도 프런트맨의 정체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이 <남한산성>이었다는 것도 복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또 막상 가면을 벗을 때 솔직히 너무 멋있어서 깜짝 놀랐다. 에이 뻔하지 싶었는데 육성으로 '헉' 소리가 나온 것이다. 눈빛 연기가 대단했다.
아무튼,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29번 스태프의 정체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9번 스태프는 잠입한 황준호다. 황준호는 실종된 형을 찾고 있다. 직업은 경찰이다. 물론 경찰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처음 잠입할 때 29번 스태프를 때려눕히고 변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경찰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영에도 능하고 총도 곧잘 쓰는 부분도 경찰이라는 장점이 작용했다. 그런데 경찰이라는 직업 본질적인 것에 대해 따져보자. 경찰은 사회 부정의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직업적 특성은 황준호의 임무 2순위, 집단살인에 대한 진상규명의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그렇게 모험을 떠나 휴대전화로 이 <오징어 게임>의 전말을 대략적으로는 알리기는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데,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프런트맨의 정체였다. 황준호의 형이자 전직 경찰관이었다. 정의를 추구해야 할 인물이 세상 가장 부조리한 곳의 수장이 되어있었다. 이 <오징어 게임>의 기득권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경찰이 집단살인이 난무하는 곳의 기득권이 되었다는 건 굉장한 아이러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태와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루는 부조리함은 나쁜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정치인들. 금융인들. 기업인들. 나름대로의 선한 논리는 다 있을 것이다. 사회를 바꾸는 선택지가 정말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겐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을 뿐. 그냥 눈 뜨고 일어났는데 2021년에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프런트맨 역시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기생하는 선택지를 골랐으며 이 게임에 대해 폭로하고자 했던 인물(황준호)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형이라는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은 것이 결과로 제시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시스템에서 사회정의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자구책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차피 우리는 이해관계가 만든 판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회 부정의를 해소에 현실에 기여하는 방식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는 셈이다.
4. 결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난 주인공 성기훈이 결국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딸을 주도적으로 키울 수 있었냐? 아니오. 돈 쓸 수 있었냐? 아니오. 만원도 못 써 은행 직원에게 돈을 빌린다. 상우 어머니에게 진상을 세세히 말할 수 있었냐? 아니오. 살리고 싶은 사람들 다 살리고 빠져나왔나? 아니오.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냐? 아니오. 승리는 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일남이 마지막 병원에서 했던 말이 이 인물에게 제일 중요하다. 이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성기훈은 드라마의 끝까지 본인의 허술한 부분만 드러나다 끝난다. 검은 머리의 성기훈은 부조리가 벌어질 동안 손가락만 빨다가 끝난 셈이다. 근데 한 변곡점을 통해 머리 색이 바뀐다.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분기점을 상징하는 사건이 있다. 게임의 호스트 일남과의 내기다. 일남은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패배한 듯 보인다. 이 내기에서 이긴 이후에 염색을 한다. 머리색을 주인공의 각성이라는 상징으로 가정해보자. 빨간 머리로 염색한 장면은 '이 인물이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특별한 해결방법으로 시스템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것의 암시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빨간색으로 염색 안 한다. 보통 그런 차림이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아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파란 모자를 쓰고 검은색 머리 스타일에 대해 무난한 코디라고 받아들인다. 기훈은 머리의 염색을 통해 한풀 더 각성해 이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당연히 쉽진 않겠지. 맞은편 지하철에서 의문의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자. 다른 남자가 따귀를 맞고 있는걸 뻔히 보면서도 다른 <오징어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의 어머니에게 돈을 주고 떠나거나 게임의 참여자가 되는 등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입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황동혁 감독은 각본을 촘촘히 쓰면서 색상의 대비나 머리색이라는 상징으로 어떻게 이 성기훈이라는 인물이 <오징어 게임>을 받아들일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결말의 의미는 성기훈이 이제 우리 사회의 패배자가 아닌 맞서 싸우는 주체가 된다는 의미. 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쓰다 보니 막 뱉어낸 것 같다.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 무조건 따른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 좋은 드라마를 본 것 같아 시간이 후딱 갔다고 생각한다. 시즌 2 계획 없다고 하던데 솔직히 그냥 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빠른 시일 내에 후속작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아. 정호연이란 탑 모델을 배우로 발굴해준 황동혁 감독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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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분위기 속 경쾌한 액션
성장기에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이기에 앞서 여러 가지 행동과 선택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스승 같은 존재로 그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은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일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비슷한 직업을 갖게 되거나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일을 찾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보호자로서 가장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인 엄마는 아이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아이 옆에서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보호자이면서 스승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아이는 굉장한 혼란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간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받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절망 속에 보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청소년 정도의 나이라면 아이는 엄마에게 배웠던 것을 이용해 자신의 다음 삶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했던 일들, 행동들을 떠올리며 자신 만의 커리어를 만들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간다.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잠적해 버린 엄마를 잊고 스스로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사라진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카렌 길런)은 킬러 생활을 하는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을 보며 성장기를 보냈다. 성장기의 어느 시점, 스칼렛은 갑자기 샘을 떠나 잠적해버린다. 그 후 샘은 떠난 엄마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하면서 성인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사라진 엄마에게 엄청난 서운함과 무수한 질문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와 똑같은 일을 택해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의 차가운 말투와 넘치는 에너지는 스칼렛이 가지고 있던 모습이다. 자신의 일을 할 때, 그에겐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한 편으론 여전히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소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샘을 돕는 회사의 간부인 네이선(폴 지아마티)은 과거 스칼렛을 도와줬고, 이제는 샘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지금의 샘에게 네이선의 도움은 필요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회사라고 불리는 청부살인 업체의 간부는 모두 남자가 중심이 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대표자 격인 네이선은 선한 의도를 가진 듯 보이고 마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샘이 가야 할 길을 지정해 알려준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네이선이 가진 의도가 회사라는 시스템 보호라는 것이 천천히 드러난다.
사실 네이선은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안정감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켜나갔던 인물인지 모른다. 그가 만든 그 안정감은 한순간에 엄마가 사라진 샘에게 어느 정도 의지할 구석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형성된 안정감은 샘에게도 실력 있는 킬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 회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에게 가진 신뢰는 깨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샘이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어떤 사건은 회사의 안정적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다시 그 안정을 찾기 위해 네이선은 샘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기반성 없는 보수적 시스템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조직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다르게 보면 시스템의 안정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여성들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로 명칭 되는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안정을 깨트려 부도덕을 드러내고 대결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렇게 이 영화를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시스템과 진보적인 사람들 간의 대결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보수적인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한 순간도 반성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면 시스템과 대항하는 입장에 있는 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며 반성한다.
샘의 반성을 이끄는 건 그가 죽인 어떤 인물의 딸인 에밀리(클로에 콜맨)이다. 실수로 에밀리의 아빠를 죽였지만 그 이후 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갑자기 혼자 남겨진 에밀리를 보며 그를 지키기 위해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에 샘을 돕는 조력자로 다시 등장하는 엄마 스칼렛, 애나(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린(칼라 구기노)은 그들의 위치와 지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시스템에 대항해 싸운다.
영화의 전반적인 등장인물과 구성을 보면 영화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른다. <존 윅>에서 킬러들이 도움을 받는 호텔은 이 영화에서 도서관이 되고, 킬러들에게 임무를 주고 대가를 주는 회사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존 윅>은 개인과 시스템의 대결이 좀 더 강조된다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시스템에 반기를 든 작은 조직이 대결을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존 윅>에는 꽤 유능한 킬러들이 존 윅을 죽이기 위해 대결을 자처했다. 하지만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조직에서는 그런 유능한 킬러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위기를 맞은 시스템을 지켜줄 유능한 존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샘과 친구들을 제거하려 하는 건 시스템의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쟁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런 무능한 시스템은 영화의 전반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구성이 어떠하든 이 영화는 액션 영화다. 배우 카렌 길런이 보여주는 액션은 꽤 다채롭고 사실감이 넘친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격투 액션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꽤 빠르고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그의 액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액션 장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샘을 도와주는 애나, 플로렌스, 매들린과 스칼렛은 총기나 도구를 활용한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근접 액션을 보여주는 샘의 액션 장면과는 다른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레트로 한 액션과 분위기, 그럼에도 떨어지는 긴장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등장하는 음악과 레트로 감성이 듬뿍 담긴 화면은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이미지들은 영화의 액션이 벌어지는 볼링장이나 작은 식당의 이미지와 융합되며 꽤 근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에도 액션만큼은 돋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샘과 에밀리가 유사 모녀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샘은 자신의 엄마 스칼렛이 범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의 실수를 바로잡고, 또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반성하면서 에밀리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과 상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에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시스템에 대항하는 용기로 전환된다. 샘은 자신이 엄마에게 받지 못한 신뢰와 믿음을 에밀리에게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아마도 에밀리도 샘이 하는 일과 행동을 따라가겠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겪었던 혼란과 아픔을 에밀리가 겪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샘은 그렇게 엄마에 의지하고 신경쓰던 삶 뿐만아니라 자신이 얽매고 있었던 조직에서도 독립함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나봇 파푸샤도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스릴러나 공포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 왔다. 특히 그가 2013년 연출한 영화 <늑대들>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연출작인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그가 가진 감각과 연출 스타일을 그대로 뽐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이미지와 액션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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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봄과 예술은 양립 가능할까
몰입은 개인의 의지로 깔끔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몰입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가족 중에 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나를 먹여 살림으로써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며 생애 주기 속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는 돌봄 노동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는 조각가 리지의 삶을 그려내면서도,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보다는 작품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적인 순간들을 더 집중해서 다룬다.
이를테면 리지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오빠에게 종종 달려가야 하고, 이혼한 부모님을 각각 신경 써야 한다. 여기에 2주째 온수기를 고쳐주지 않는 집주인까지 온갖 자잘한 일들이 리지를 정신 사납게 만든다. 전시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리지의 심경에 큰 변화를 주도하지만 정작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발화되지 않는다. 리지의 중핵으로 여겨질 법한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오히려 한 부분으로만 그려질 뿐이고, 실제로 리지의 일상 대부분은 무언가를 돌보는 데 할애된다. 그 돌봄은 가족을 향하고, 나를 향하고, 때로는 리지의 삶에 갑자기 얽혀든 야생 동물을 향한다.
그러나 돌봄과 함께 하는 예술은 때로는 느리고, 작다. 예술 대학에 근무하는 리지는 퇴근한 후에야 공방에 틀어박혀 조각을 빚는다. 전시 준비하려고 연차까지 낸 날에는 다친 비둘기를 떠맡게 되는데, 적당히 모른 척하지도 못해 병원도 데려가고 온수 주머니도 갈아주다 하루를 날린다. 샤워할 곳을 찾아 학교 건물을 떠돌고 전시 직전까지 오빠의 행방을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면서 리지의 시간은 주변에 갉아 먹히고 만다.
한편 같은 시기에 전시를 앞두고 있는 동료 작가 조는 리지에게 월세를 받아 생활을 꾸리는 데다 주목받는 신진 작가이기까지 하다. 그는 전시를 핑계로 리지의 온수기를 고쳐주길 계속해서 미루고, 다친 비둘기를 구조하고도 리지에게 떠넘기며 나 몰라라 한다. 조에게 우선순위는 작품이고 세입자와 돌봄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성공한 예술가가 되려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런 조의 작품은 전시장을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반면, 리지의 조각은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다. 어쩌면 이것은 리지가 직장을 다니며 작업을 병행하는 상황, 주변을 보살피느라 곧잘 중단되는 작업, 아직은 자리 잡지 못해 가마를 빌려서 조각을 구워야 하는 처지, 그리고 세 들어 사는 집에 작게 마련한 공방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생산성과 성취는 자신을 향한 돌봄도, 타자를 향한 돌봄도 무시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만든다. 야생 비둘기를 향한 돌봄이 비웃음 당하고, 오빠에 대한 걱정이 과하다고 핀잔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리지는 성취를 방해하는 것들을 삶 한가운데 놓고 씨름함으로써 성취와 돌봄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그래서 리지의 예술은 일상에 의해 갉아 먹히고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을 잘 살아내기 위한 조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에는 예술가의 삶에서 주로 그려지는 천재성이나 예술적 성취에 대한 찬탄도, 어중간한 위치의 예술가의 자기 연민도 없다.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을 누락시키지 않고 함께 가는 사려 깊고 섬세한 손길만이 존재할 뿐이다. 보살핌이 예술을 더디게 만들지언정 결코 방해물이 될 수는 없다. 돌봄과 예술 모두를 삶의 조건으로 삼은 리지의 모습에서 그것들의 양립 가능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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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주 차, 위클리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지난 한 주,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
그럼,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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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구교환, '신인류 전쟁: 부활남' 캐스팅
ⓒ 나무엑터스
네이버 웹툰 '부활남'이 영화화된다는 소식과 함께, 타이틀 롤인 '석환' 역을 구교환 배우가 맡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신인류 전쟁: 부활남>은 웹툰보다 더 확장된 세계관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이 맡아 제작한다고 합니다.
<모가디슈> <자백>, 오포르토 국제 영화제 수상
ⓒ 네이버 영화
'판타스포르토 - 오포르토 국제 영화제'는 세계 3대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이자, 포르투갈 최고의 영화 축제이다.
이 영화제에서 <모가디슈>는 오리엔트 부문 최고 작품상을 받았고, <자백>의 윤종석 감독은 감독 주간 부문 최고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국내 영화 2편,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선정
ⓒ 네이버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정됐습니다.
5년 만에 한국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경쟁 부문에 오르게 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메가박스, 세계 최초 '퍼피 시네마' 오픈
ⓒ 메가박스
메가박스와 반려동물 컬쳐 브랜드 스타트업 '어나더베이비'가 손잡고 세계 최초 반려견 영화관
'퍼피 시네마'를 론칭하였습니다. 오는 16일 메가박스 영통점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별도의 이용료를 지불하거나,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면 영화관 이외에 미용, 스파, 탁견 서비스 등까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 20일 온라인 영화제 개막
ⓒ 유엔난민기구
유엔난민기구가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제1회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영화제 상영 목록에는 <경계에서>, <호다>, <안식처>, <실향민>, <기록>, <소속>이 있습니다.
<기록>을 제외한 5편의 영화에는 모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이 출연하거나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25일, 영화관 팝콘 취식 가능
15일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 방안'에 따르면,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25일부터 실내 취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해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전작에 비해 하락한 매출
ⓒ 네이버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전작과 비교했을 때 낮은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신비한 동물' 시리즈에서 1편은 7440만 달러, 2편은 6216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3편은 4300만 달러를 기록하였습니다.
<탑건: 매버릭>, 800시간 촬영
ⓒ 네이버 영화
한 인터뷰에서 <탑건: 매버릭>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밝히기를,
속편 제작을 위해 약 800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영상을 촬영한 이유는 촬영장이 좁을 경우 배우들이 직접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에게 조명, 렌즈, 앵글 등 촬영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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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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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감독 정이삭 / 역대급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 4DX관 연속 매진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트위스터스"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에 캐릭터들의 후기를 담은 쿠키영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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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그데이즈> 메인 예고편
사람도, 강아지도 '개' 귀엽다! 행복만 가득해지는 [도그데이즈] 메인 예고편 공개? 2024년 기분 '개' 좋은 영화 2월 7일은 극장에서 [도그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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