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2021-05-11 11:14:52
범죄자에게 서사는 필요없다. [넷플릭스] 더 서펀트
[The Serpent] [영국 드라마 _ 실화 기반]
1970년대 동양으로 여행을 온 서양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강도와 살인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찰스 소브라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드.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임에도 피해자의 가족들을 고려해서인지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다. 실화의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이 개인적으론 더 서펀트의 몰입도를 높였다.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주인공 찰스 소브라즈는 심리조종에도 탁월한데, 외로움이나 일탈 혹은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도구로 이용해서 상대방을 무너뜨린다.
그는 자신 만으로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캐나다 퀘백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을 자신의 범죄에 끌어들이고 조종한다. 작품을 보는 내내 여배우의 미모에, 실제로도 저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면 여행자의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유혹할 수 있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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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 | 의도는 좋았던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시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촉토 부족 보호구역 마을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청각 장애인 '마야 로페즈/에코'(알라콰 콕스). 하지만 그녀는 쇼핑을 가던 중 교통사고에 휘말리고, 다리 한쪽과 엄마를 잃는다. 이에 마야의 외할머니 '출라'(탄투 카디널)는 갱단에서 일하던 마야 아빠 '윌리엄'(잔 매클라넌)을 비난하고, 윌리엄은 마야를 데리고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마야.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아빠를 따라간 체육관에서 '킹핀'(빈센트 도노프리오)을 만난다. 마야는 자기를 아껴주는 킹핀을 삼촌처럼 따르고, 아빠가 살해당하자 킹핀의 권유로 그의 갱단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호크아이'(제레미 레너)와의 만남 이후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과 자기 과거에 얽힌 진실을 깨닫고, 항상 배후에 있었던 킹핀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시작
디즈니+ 드라마 <에코>의 공개를 앞두고 마블 스튜디오는 새로운 레이블 '마블 스포트라이트(Marvel Spotlight)'를 론칭한다고 발표했다. 스트리밍 부문 사장 브래드 윈더바움은 '마블 스포트라이트'를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다양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작품들이 있는 레이블"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MCU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변화로 보인다. 최근 MCU는 초창기와는 달리 세계관 연계에 집중한 나머지 캐릭터 각각의 매력을 부각하는 데 실패했다. <더 마블스>만 해도 캡틴 마블, 모니카 램보, 미즈 마블의 개별 서사와 팀의 결성 과정 모두 미흡하다는 평을 받았다.
즉,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출범은 초심을 찾는 시도다. 한 캐릭터에 오롯이 집중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기존 드라마와 달리 <에코>의 에피소드 5편을 동시에 공개한 이유라 할 수도 있다. 다만 <에코>가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시작을 제대로 알렸는지는 의문이다. <에코>는 팬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이질적인 드라마이기 때문. 그 중심에는 드라마의 지향점과 어긋난 마케팅 전략이 있다.
에코가 적임자인 이유
물론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정체성을 보여줄 1번 타자로서 에코는 부족함이 없다. <호크아이>에서 모습을 비췄지만, 비중 있는 조연에 불과했기에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차별화된 개성도 명확하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면서도 호크아이나 킹핀에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니까.
또 그녀는 나날이 거대해지는 멀티버스 사가의 세계관에서 자칫 가려지기 쉬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에코는 MCU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에 들어맞는다. 지구에서 현실적인 스케일로 활약하는 소소한 히어로들의 활약을 최근 MCU에서는 보기 어렵기 때문.
이에 더해 기존 팬들의 관심을 끌 포인트도 있었다. 그녀가 비록 중심 캐릭터는 아닐지언정, 여러 주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 <호크아이>에서 에코와 접점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 킹핀이 현재 제작 중인 디즈니+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에 출연 예정이듯이.
착실한 '에코'소개서
<에코>는 목표에 걸맞은 이야기를 착실하게 채워 넣었다. 우선 에코의 특징을 잘 살렸다. 그녀는 다양성 코드를 살리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다. 여성이고, 청각장애인이며, 아메리카 원주민이기 때문. 아직도 백인 남성으로 가득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파격적인 캐릭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는 대사 연출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에코는 모든 대사를 수어로 처리하고, 상대역도 대사를 말할 때 수어를 같이 사용한다. 덕분에 <에코>의 감상 경험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잠깐만 눈을 화면에서 떼도 내용을 놓칠 수밖에 없다. 이는 호불호가 나뉘는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각 장애인의 일상 속 불편함을 주류 미디어에 메타적으로 반영한 대목처럼 보이기도 한다.
촉토 부족의 일원으로 에코를 설정한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촉토 부족이 지하에서 태어나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전설을 에코라는 히어로의 정체성과 연결시킨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 덕분에 <호크아이> 속 조연은 차별화된 서사를 만들 수 있다. 어릴 적 촉토 부족 마을을 떠난 킹핀의 후견 하에서 지낸 에코. 킹핀의 악행과 음모를 깨달은 그녀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킹핀의 파트너가 될지, 아니면 자기 부족에게 돌아갈지.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문제점도 간접적으로 지적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젊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대도시로 떠나다 보니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인프라도 부족해지면서 원주민 마을과 보호구역이 슬럼화되기 때문.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할지, 아니면 주류 사회에 동화될지 선택해야 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뇌가 <에코>에 담겨 있는 셈이다. 출연진 다수를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캐스팅하고,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감독을 고용한 제작진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MCU다운 액션
그뿐만이 아니다. <에코>는 MCU 드라마 최초로 TV-MA(19세 관람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액션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그래서인지 <에코>는 디즈니+에서 공개된 MCU 드라마가 공유한 단점도 피했다. MCU 드라마는 그간 액션 연출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토리 전개, 캐릭터 구축 면에서 호평받은 <완다비전>, <로키>, <문나이트>, <호크아이> 등도 이 지적을 못 피했다.
<에코>는 다르다. 과장 보태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연상시키는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액션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스케이트장에서 갱들이 대치하는 장면에서 총에 맞아 피가 튀기는 장면을 굳이 가리지 않으며 생생함과 잔인함을 살렸다. 다른 육박전이나 기차 액션 시퀀스에서도 합을 맞추기보다는 보다 날 것의 액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특색도 있다. 귀가 안 들리는 캐릭터의 특성을 액션 연출에 반영했다. 드라마는 액션씬이 펼쳐지기 직전에 배경 음악을 일부러 제거한다. 음향도 가능한 작게 볼륨을 낮춘다. 마치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러다가 액션씬이 시작되는 순간 비명소리, 타격음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배경 음악을 일제히 터뜨린다. 마지막 화에 등장하는 클라이맥스가 대표적이다.
이는 짧은 찰나에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켜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탁월하다. 액션은 일종의 폭발이다. 지속적으로 커지던 감정골의 불씨가 특정 계기로 불타오르는 순간, 감정은 액션으로 표출된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이듯, 액션은 스토리와 감정의 연장선이다. <에코>는 그 순간에 한 템포를 쉬어가면서 폭발의 임팩트를 최대한 누리려 한다.
포장지를 잘못 쌌다
하지만 <에코>의 특색 있는 지향점과 준수한 완성도는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마케팅을 통해 만들어진 드라마의 이미지와 본편 내용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 캐릭터의 독립적인 서사에 집중한다는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취지가 무색하게 포스터와 예고편은 다른 작품과의 연계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그 결과 예상을 많이 벗어난 본편 내용과 퀄리티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키운다.
포스터만 봐도 그렇다. 에코보다도 악역인 킹핀의 모습이 더 크다. 예고편에서는 데어데블이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현재 제작 중인 <데어데블: 본 어게인>에 킹핀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할 예정이라는 점, 데어데블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변호사 쉬헐크>에 이미 출연한 점 등을 고려하면 <에코>를 일종의 중간다리로 간주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본편에서는 MCU 작품과의 연계성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새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호크아이> 속 에코의 분량을 일부 가져온 게 전부다. 마지막 보너스 영상 정도를 제외하면 킹핀도 본인만의 서사를 많이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에코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된다. 예고편에서 모습을 비춘 데어데블은 말 그대로 카메오다. 즉, <에코>는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고 기대한 이야기와는 분명 다르다.
이는 예상 못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제작진의 노력, 중요도, 의의와는 별개로 촉토 부족 관련 플롯은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 에코가 촉토 부족이라는 사실이 <호크아이>에서 드러난 바 없다. 코믹스 팬이 아닌 이상에야 촉토 부족의 등장이 급작스러운 이유다. 결국 촉토 부족 분량에 비해 에코보다 친숙한 킹핀이 등장한 대목이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에코>는 기대에 따라 만족도가 극과 극으로 나뉠 작품이다. 앞으로의 스토리나 캐릭터와 관련된 암시나 힌트 같은 MCU와의 연계성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반면에 드라마와 영화가 긴밀히 연계되는 현재 MCU에 지쳤다면 오히려 흥미로울 수 있다. 주인공 한 명의 매력에 집중하고, 다른 작품과의 연계는 쿠키 영상에 맡긴 초창기 MCU로 돌아가려는 마블 스포트라이트의 의지가 만족스러울 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에코>가 점점 식어가는 MCU 팬들의 애정을 전부 되살릴 만한 드라마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로 마블 스포트라이트와 MCU의 미래는 아직, 그리고 여전히 불확실해 보인다.
Poor 형편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는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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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TI_INFJ 영화인들 모아보기
내일 놀래? / infj : 생각해볼게 (놀 의향 / 생각해볼의향 없음)
웃으면서 거절 잘하는 인프제. 친한 지인들은 안다는 인프제의 영혼리스 리액션..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따숩답니다(?) 친구들의 고민 들어주기 장인, 도어슬램 장인, 혼자있기 장인.
알다가도 모를 인프제! mbti infj라고 밝혀진 영화인들 같이 만나보아요
✅ 친구들에게 내 성격 알려주기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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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세대 조커라 불리던 '배리 케오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차세대 히스 레저로 꼽히기도 했던 배우 '배리 케오간'이 <이터널스> 개봉을 앞두고 피습을 당했다고 할리우드 통신 "The wrap"이 전했습니다.
배리 케오간은 아일랜드의 서부 도시인 골웨이에 방문했다가 변을 당했는데요. 아일랜드 신문사인 “Sunday World”에 따르면, 케오간은 골웨이의 한 호텔 앞에서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곧바로 골웨이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베인 상처 등을 치료한 뒤 퇴원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할리우드 배우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얼굴 부상에도, 그는 사건에 대해 별다른 기소 없이 넘어간다고 밝혀 화제 되고 있습니다.
배리 케오간은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각인시켰는데요. 최근,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A24 작품 <그린 나이트>에서 다시 한번 씬스틸러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케오간은 <그린 나이트> 이전까지 휴식기는 중요치 않다는 듯, 마블과 DC 영화에 동시에 캐스팅되며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는 ‘클로이 자오’ 감독이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더욱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MCU의 <이터널스>에서 드루이그 역을 맡아 ‘길가메쉬’ 역의 마동석 배우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10년 만에 돌아온 배트맨 실사 영화 <더 배트맨>에서는 스탠리 머클 역을 맡아 블록버스터 양대산맥에 모두 출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배리 케오간 배우의 쾌유를 빌며,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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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심연에서 벗어나 숨을 쉬다
심연에서 벗어나 숨을 쉬다, 감독 문근영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음악영화의 범주를 총망라하는 섹션 ‘음악영화의 풍경’으로 소개된 영화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 '심연'의 감독은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심사위원이기도 한 문근영이다.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문근영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언제부터 작품을 구상하신 건가요? 처음부터 연작으로 기획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심연'은 사실 굉장히 오래되었어요. 예전에 전시를 보고, 제 마음을 적은 글에서 시작되었어요. 전시회에 물이 가득 나오는 스크린이 있는 거예요. 계속 물이 흐르고 물만 나오는 영상을 보는데, 내 마음 상태가 깊은 물 속에 빠져 있는 상태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심해, 심연, 물, 사람, 이런 키워드들이 연결되면서, 이를 장면화한 글을 다시 썼었어요. 그렇게 쓴 것이 2016년, 2017년쯤이었습니다. 몇 번 제작해보려고 시도했었는데 그때는 제가 용기가 없어서 못 하다가, 바치 창작집단을 만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진행형'과 '꿈에 와줘' 같은 경우는 '심연' 작업과 함께 연작으로 기획해서 동시에 진행이 되었어요.
바치 창작집단은 어떤 곳인가요?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연기 외에 창작에 대한 욕구들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연기자는 누군가에 의해 쓰인 대본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까 아무리 캐릭터를 창작한다고 하더라도, 창작에 대한 욕구들이 다 해소가 되지 않는 답답함을 갖고 있더라고요. 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연기로서 보여줄 수 있고, 창작욕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가수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고 노래를 만들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댄서들이 안무를 만들어서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듯, 연기자도 직접 하고 싶은 연기, 캐릭터,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을 직접 만들어서 보여주는 작업을 해보자, 해서 ‘바치 창작집단’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번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배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연기해보는 것을 주제로 하며, 제목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대사가 없이 진행되다 보니, 대사를 대신해줄 음악이 중요해서 요크라는 아티스트 분과 협업하게 되었어요.
영화에서 음악이 주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하나의 호흡인 것 같아요. 긴장감을 줄 때는 그에 맞는 호흡으로 음악이 흐르고, 잔잔하고 감동을 줄 때는 또 그만큼의 호흡으로 흘러가는 숨 같은 존재가 음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진행형'에서는 흑백으로 표현된 무대가 인상 깊었는데요.
'현재진행형'은 정평 배우님의 이야기로, 배우로서의 고민을 담은 작품이에요. ‘처음에는 내가 이 무대에 설 자격이 있나, 나에게 재능이 있는 걸까, 내가 연기를 해도 될까’, 하는 어떤 자의적인 의문이 있다면, 조금 더 지나가서는 이제 좀 외부적인 압박이나 질문, 고민, 또 무대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 어떤 얄팍한 미련 같은 것들, 이런 어떤 수많은 고민의 과정들을 담은 게 현재 진행형이고요. 그래서 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제가 배우로 사는 이상 계속 현재 진행형의 형태로 고민은 계속될 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제가 의미를 부여했던 점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 사실 깊숙이 들어가면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잖아요. 근데 그 고민은 내가 이 인생이란 무대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사실 계속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해서 만든 작품이 '현재진행형'입니다.
무대 위 핀 조명의 존재감이 매우 크게 느껴졌는데요. 어떻게 핀 조명을 활용하게 되신건가요?
어떻게 이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이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조명이 떠올랐어요. 조명을 활용하여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었죠.
그래서 처음에 비추는 조명은 이제 자신의 어떤 의문이나 자의적인 어떤 질문이라면, 좁혀 들어오는 조명은 외부적인 압박으로 표현했고, 포기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조명에만 묶여 있는 발은 미련이나 숙명처럼 이 무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껴가는 조명들은 기회라는 걸 표현하려 했고, 조명을 하나의 인격체로 설정해서 이 사람이 본인이 되기도 했다가 뭔가 다수의 어떤 사람들의 외부적인 세계가 되기도 했다가 그냥 정말 스포트라이트 자체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설정을 넣어 표현해보려고 했습니다.
'꿈에 와줘'는 어떤 작품인가요?
'꿈에 와줘'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담은 작품이에요. ‘만약 네가 내 꿈에 다시 와준다면 나는 너와 이런 하루를 보내고 싶어’라는 메세지를 담은 작품입니다.
음악에 맞춰서 두 남녀가 무용을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우선은 안승균 배우가 몸을 움직이고 싶다고 요청을 했던 게 있어서, 어떻게 이 이야기에 춤을 녹여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둘이 같이 함께 춤을 췄던 춤을 초반에 혼자 추거든요. 그렇게 빈자리, 상실감을 표현하는 식으로 하고, 꿈에서 만났을 때 둘이 같이 춤으로써 완성되는 거죠. 사실 그것도 꿈에서만 가능하기에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해요. 춤을 통해 예쁘지만, 가슴 아픈 두 사람의 모습을 연출해보았습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이다겸 무용수와 만나서 춤에 대한 이야기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둘만의 추억과 기억으로 상징될 만한 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미러링이라는 안무 방식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로를 바라보면서 똑같이 미러링하는 동작인데 거의 그 동작이 주가 되어서 안무가 만들어졌어요.
관객들이 주목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꿈에 와줘'를 만들면서, 배우와 같이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소중한 사람이 떠올랐으면 좋겠다’하는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라고 봐주셔도 좋고, 영화를 보시면서 소중한 누군가가 떠올랐으면 좋겠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에서밖에 볼 수 없는 존재를 설정하고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도 영화를 보면서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문근영의 이야기, '심연'
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어딘가에 갇혀 있는. 벗어나도 벗어나도 벗어나지지 않는 곳에 갇혀 사는 상태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연기에 대한 한계를 한 번 넘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한계가 오고, 또 그걸 깼다고 생각하면 한계가 또 오고. 이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저는 정체되어있고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때의 답답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것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울한 감정이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굴레 속에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 심연이라는 작품입니다.
대사 없이 연기만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고려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엔딩이었는데요. 엔딩에서 내 안의 숨을 발견하고 숨을 쉬는 장면이 엄청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촬영하는 내내 최대한 숨을 내뱉지 않고 촬영을 하려고 제일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중간중간에 가만히 누워 있는 장면도 더 이상 벗어나는 것을 포기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어서, 그 자세도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물을 걷는 장면에서는 물을 벗어났는데 다시 또 물속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촬영 감독님과 함께 고민하다가 앵글을 뒤집고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수면을 걷는 장면을 담아보자 해서 그런 움직임들을 좀 사전에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주인공이 물거품이 되는데, 이러한 결말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원래 결말은 사실은 더 비극적이었거든요. 원래 찍으려던 거는 결국에는 벗어나도 벗어나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게 뭔가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벗어날 방법은 그냥 삶이 끝나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엔딩을 썼었어요. 그런데 ‘심연’ 작품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약간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이 들면서 엔딩을 조금 긍정적으로 바꿔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엔딩으로 바꾸게 되면서 공기 방울과 숨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 존재 자체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서 나라는 사람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내가 머무는 그 어떤 굴레든 우울함이든 한계든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 굴레는 나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숨을 쉬고 그 숨과 함께 심연이라는 곳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점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이번 영화제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는데 심사위원 일정으로 인해 다른 영화를 많이 못 봐서 아쉽습니다. 제가 바치를 하며 뭔가를 한번 만들어본 입장에서 보니까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대단하고 박수 쳐주고 싶더라고요. 어쨌든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 고생, 열정, 또 사람들 이런 게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것을 저도 이제 아니까 그냥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들 응원하고 싶고, 저도 많은 걸 배우기도 한 일정이었습니다.
감독님께 바치 창작 집단은 어떤 의미인가요?
탈출구 혹은 놀이판인 것 같아요. 연기로 해소되지 못한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된 것 같고요. 그리고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배우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판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섞여 있습니다.
앞으로 ‘감독 문근영’으로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아직 감독이라는 단어가 어색한데요. 바치 창작 집단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것이 목표고요. 배우로서도 또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것도 저의 목표예요. 그래서 다음에는 감독으로도 배우로서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또 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민서, 김혜지
에디터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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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용주의 스승과 이상주의 제자의 이야기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가서는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해 나간다. 그렇게 알게 되는 지식은 개인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준다. 다양한 종류의 책과 이론들을 배워나가면서 사람마다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배워 나간다는 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선택지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던 조금씩 앞으로 나가다 보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를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 또다시 향후의 방향성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놓인다. 그래서 무언가를 평생 배워나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지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배움의 한가운데에서 누구나 인생의 스승을 하나쯤은 만난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물이나 동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스승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그것을 관찰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그렇게 스승을 삼을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배워왔던 그 배움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시각을 알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된다. 만약 그 스승 또한 사람이라면 스승도 제자를 만나 다른 시각을 보게 된다. 제자가 가진 새로운 관점의 질문들과 패기, 열정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그것에도 무언가 다른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는 서로 한 뱡향으로 배움을 전달한다기보다 서로 상호 작용하며 각자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도 유배지에서 생활하는 정약전(설경구)과 흑산도에서 물고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창대(변요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약전은 그의 동생인 정약종, 정약용(류승용)과 함께 그 당시 실학과 같이 들어왔던 천주교의 교인이 되었는데 이후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 시작된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반면 창대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틈틈이 혼자 여러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탐구하는 청년이다. 그는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점점 난이도 높은 책을 읽음으로써 향후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길 원하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 이 두 인물은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데 정약전에게 창대는 그저 섬에서 일하는 젊은이로, 창대에게 정약전은 조정에 반하고 성리학을 욕보인 죄인으로만 보인다.
영화 속 정약전과 창대의 만남은 실용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만남같이 보이기도 한다. 유배 전까지 다양한 정치활동을 해왔던 정약전은 이미 성리학의 이상적인 길을 가려고 노력한 여러 가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정치적 경험을 한 이후, 그가 흑산도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탐구보다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활동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으로 유배 갔던 정약용이 올바른 정치에 대한 글을 무수히 써나갈 때, 좀 더 실용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에 대한 글을 썼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다 생물들에 대해 정리한 자산어보(玆山魚譜)다. 그는 성리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 창대는 글을 읽고 배우면서 성리학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길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대는 책과는 다르게 하찮게 보이는 백성을 위한 서적을 만드는 것처럼 다른 접근을 하는 정약전이 못마땅하다. 성리학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그저 잘못된 길을 가는 정치인으로 보일 뿐이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다. 정약전은 다양한 바다 생물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써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 작업을 하는 데에는 창대가 가진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창대는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어려운 책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데에는 그것을 쉽고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에겐 박학다식하고 경험이 많은 정약전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지식에 대한 배움은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성리학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이들이 가진 배움의 열망은 그들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보이는 지식과 인간적인 면들을 온전히 바라보게 만든다.
창대는 정약전에게 여러 책에 대해 배워 나가며 자신 만의 지식을 쌓아간다. 그러면서 그는 성리학에서 내세우는 것을 바탕으로 좋은 정치를 실제로 행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영화 속에서 창대는 양반인 아버지(김의성)의 혼외 자식이다. 하위 계층인 그에겐 관직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 시험 조차 볼 수가 없어 계속 공부를 해나가서 자신의 배움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 시험의 기회가 주어져 관직에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창대가 보기에 그저 앉아서 쓸데없어 보이는 책을 쓰고 있는 정약전이 답답하기만 하다. 반대로 창대를 바라보는 정약전의 마음엔 성리학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정약전의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지만 그것을 활용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결국 제자의 몫이다. 그것에 대해 스승이 어떤 의견과 방향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제자는 그 의견을 모두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정약전의 지식과 혜안에 감탄하며 책을 배우던 창대는 스승으로 삼은 정약전의 총명함에 완전히 빠져든다. 하지만 한참을 그에게 책을 배운 이후 그가 선택한 삶은 스승 정약전이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둘은 서로 아주 먼 관계였다가 조금씩 가까워져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가, 이내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영화 속에는 크게 위기상황이 있지는 않지만 이 스승과 제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그 상황 자체가 두 사람에게 닥쳐오는 가장 큰 위기이자 또 다른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보는 관객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유배시절 쓴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구성한 영화다.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는 물고기에 대하여 박학다식하다고 적혀있고 자산어보를 완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둘이 실제로 스승과 제자 관계였는지 그리고 각자 어떤 길을 가게 되었는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흑산도(黑山島)의 모습을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담는다. 마치 그 당시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영화에는 흑과 백으로 구성되어 빛바랜 앨범을 꺼내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흑백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비추는 흑산도 주변의 모습이나 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는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친다.
자산어보가 흑산어보가 아닌 이유는 창대라는 인물의 의견이 영향을 주었다고 실제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혀있다. 흑(黑)은 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어둡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검다는 뜻을 가지면서 부정적 의미가 없는 또 다른 글자인 자(玆)를 가져와 자산어보라는 이름으로 책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책의 제목까지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정약전이라는 인물은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학자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보이는 정약전의 모습은 일반인들의 삶과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런 생각을 가진 정약전이 만인이 평등하고 모두가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약전이 최하층 계급인 창대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최대한 그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됨됨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정약전의 열린 생각은 가거댁(이정은)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가거댁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수발을 드는 가거댁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양반이지만 집의 청소를 하려고 한다거나 최대한 빚을 지지 않으려고 돈을 건네는 등의 행위가 그것이다. 또한 관련하여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가거댁과 창대가 이야기하는 장면인데, 그때 가거댁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씨만 중하고 밭은 귀한 줄 모른다”. 실제 농사에서 좋은 씨앗 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가거댁이 한 말이다. 여기에는 그 당시 아이를 낳는 여자는 홀대받고 씨를 뿌리는 남자들만 대우를 받는 그 시대 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거댁의 말을 들은 정약전은 그에 대해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 하찮게 취급받던 여인의 말에도 반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영화적 설정일지라도 그런 정약전의 열린 모습은 보는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 즉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로 보인다.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가르쳐주고, 제자가 품고 있는 이상향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가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준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다. 이번이 첫 사극 연기인 설경구는 열린 생각을 가진 정약용처럼 보이고, 변요한은 그가 가진 퉁명스럽지만 총명한 이미지로 청년 창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영화의 이야기에 허구가 다수 섞여있다 할지라도 이 영화가 담은 내용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정과 지식을 담고 있다.
영화는 정약전과 가까웠던 정약용이 서로 주고받았던 시를 배우의 목소리를 빌어 들려주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관객들에게 그 시의 한자를 그대로 화면에 보여준다. 그 한자로 된 시의 구절들을 실제로 모든 관객이 이해하며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화면으로 제시되는 한시는 실제로 감정을 담아 그 한시를 읽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 화면과 함께 하나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 한시와 어우러진 이 영화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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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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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씨, 껍데기가 참 무겁죠?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전, 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작품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넷플릭스가 버릇 나빠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기 시작했다. K콘텐츠로 쏠쏠하게 재미를 본 것은 인정하지만. 그 뒤로 넷플릭스를 뒷배 삼아 제작된 한국 작품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도, 그렇다고 참신하지도 않았기 때문.
게다가 최근 작품들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우가 주연진에 들어차고 있다면, 배우의 이름값으로 인해 반가우면서도 작품 자체에 대한 우려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OTT시청자들에게야 작품 하나는 그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작품이 별로라면 손쉽게 종료 버튼 한 번으로 물려버릴 수도. 좋았다 하더라도 또 다른 좋은 것들에 파묻히기 좋을 작품들 중 하나로 남아 버릴 테니.
그러나 넷플릭스에게도. 그리고 출연진들에게도. 작품 [전, 란]은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 될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대한 억울함도. 그동안의 치욕도. 함께 벗어던질 수 있을 만큼의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는 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특히 시청자의 입장인 내게는 몇몇 출연자들에게 이번 작품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게 느껴졌다. 배우 차승원의 경우 선조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수라간에서 더 많이 마주칠 것만 같았고. 천하의 연진이도 입 닫게 만든 말솜씨의 나이스한 강아지 이미지를 과연 정성일 배우가 벗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사실 가장 큰 궁금증이자 의문은 배우 강동원에게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에게는 배우로서의 꽤 많은 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매번 배어 나오는 사투리.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얕은 호흡과 그로 인해 더 처참한 대사 전달력. 그리고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올려준데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공을 세웠겠지만 그와 동시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 벚꽃을 뿌려준 것만 같은 그놈의 용안(?)까지.
그 후광효과를 깨고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기까지 무던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특히 최근 작품들에서는, 아쉽다기보다 절망에 가까웠다. 그에게 단단히 결속되어 벗겨지지 않는 이 껍데기를 과연. 이번에야말로 주연 배우의 위치에서 벗어던질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였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작품 바깥에서의 상황은 작품 속 인물들이 맞이한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자신의 것이 아닌 영광을 가진 종려(박정민;AKA 짜증계의 신예)와 거적때기에 불과하지만 청의검신으로 불리게 해 준 옷과 검을 걸친 천영(강동원)의 모습이 그러하다. 만인지상이라는 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지만. 붉은 옷과 그 한 글자를 제외하면 그저 생떼 쓰는 수염 난 늙은 아이에 불과한 선조(차승원)까지도.
등장인물들은 껍데기가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거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기도 한다. 좋든 싫든 영화 속 인물들은 상황에 맞게 자신이 지녀야 하는 그 껍데기를 꾸깃꾸깃 눌러쓰고 삶을 연장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배역과 배우로서의 껍데기를 가장 먼저 벗어던진 사람은 놀랍게도 정성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이 켜켜이 쌓인 껍데기 논란(?)에 가장 맞닿은 통쾌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청의검신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겐신은 자신의 신분을 은닉하기 위해 꾹꾹 눌러썼던 갓을 홱 내팽개치고 말에 박차를 가한다. 앙다문 입 사이로 그의 숙적을 향한 결의가 비치는 순간은 짧았지만. 하도영의 남은 그림자를 완벽히 날려버리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정성일 배우는 자신의 숙적과의 결투를 고대한 장수인 겐신 그 자체였다.
겐신으로 재탄생한 정성일 배우와 가장 많은 대립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천영이다. 그리고 다행히 배우 강동원은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약점을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했다. 이 정도면 "스울 사람"이라고 봐도 될 법한 수준의 언어 구사. 염소 같은 목소리의 소리침이 아닌. 그래도 제법 포효의 느낌이 나는 호통과 절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게 스턴트 장면을 해낸다는 장점까지 십분 살려, 두 사람의 대결 장면은 꽤 긴장감 넘치는 "대등한"승부를 보여준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출처:다음영화
하지만 작품 전체로 보았을 때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롯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개연성도 마음에 날아와 박히지 않고. 종려와 천영사이의 오해가 빚어내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꽤 많은 장면들이 그저 다음 장면을 위한 흐름에 쓰일 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 쉽지 않다. 그로 인해 극 중 존재하는 모든 갈등이 깊어지기보다 퍼지기만 해서 극의 후반부에 도착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또한 극 중 인물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너무 극대화되어.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어느 작품에나 악역이나 천덕꾸러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애초에 "그럴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형성되기 쉽지 않다. 분명 장면들은 아름다운데. 그 안에서 뛰어노는 인물들에서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국 극 중 거의 모든 배우들의 선입견을 날려버릴 만큼 애쓴 영화임에는 확실한 이 작품은. 볼만한 장면들이 분명 많음에도 불구하고 봐줄 만한 작품이 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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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영상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2월 8일 개봉하는 '플랜75'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된 영상입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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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게 됐어. 내가 뭘 해야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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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알레르기가 있는 쟝쥔은 졸업 후 투자회사 MH에 입사하기 위해 최종 면접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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