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1-06-08 16:04:06
제한된 색감으로 집약적 표현을 해낸 영화 《자산어보》
흑백영화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내게 흑백영화를 보는 재미를 알려준 영화 《자산어보》. 컬러풀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검정색과 흰색 이 두가지로만 이뤄진 영화를 두 시간 동안 보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웠었는데 그 생각을 바꿔준 작품이었다.
영화 《자산어보》 시놉시스
“이 양반은 대역 죄인이니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 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기로 한다. 이에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창대’가 혼자 글 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약전’은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거래라는 말에 ‘창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간다.
"너 공부해서 출세하고 싶지?" 그러던 중 '창대'가 출세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약전'은 크게 실망한다. ‘창대’ 역시 '정약전'과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정약전'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결심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자산어보》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색에 가려진 아름다운 선을 조망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느낌은 ‘이게 바로 움직이는 산수화구나’였다. 정약전이 배를 타고 귀양지를 가는 장면에서 바다와 산, 구름을 보여주는데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출렁이는 바다의 모습과 하늘, 바다, 산의 다양한 색과 같은 정보들이 다가왔다면 저곳이 흑산도구나 하는 지역으로서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흰색과 검정색이라는 제한적인 정보로 산, 바다 그리고 하늘을 표현하다보니 그 아름다운 곡선들이 눈에 띄게 보였다. 수려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순간적인 탄성이 나왔다.
색이 보이는 듯한 고증
사극을 많이 접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분명 흑백 영화를 보는데 컬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이유는 옷이나 배, 당시 가옥 고증이 매우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흑백으로 보기만 하더라도 헤질대로 해진 누더기 옷들을 입은 백성들과 너무나도 곱디 고운 무명비단을 입고 있는 양반들까지 질감을 굉장히 선명하게 대비해서 꼭 색이 보이는 듯한 풍성함이 느껴졌다.
특히 막판에 가서 창대가 출세의 뜻을 가지고 스승인 정약전이 아닌 아버지를 따라 양반이 되었을 때 명도의 대비가 가장 크게 드러났다. 출세를 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선햇던 창대는 하얀 무명비단을, 관직을 돈으로 사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아버지와 늙은 관료는 검정색과 같은 어두운 비단을 입고 있어서 그 차이를 흑백영화이기에 더욱 극명하게 잘 볼 수 있었다.
영화 내용 그대로일까?
사실 정약용이라는 인물은 알았어도 정약용의 형제에 대한 이야기에는 무지했다. 이번 영화 《자산어보》를 통해 거의 처음 안 것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창대는 왜 그렇게 늦게 스승님을 만나러간거야,,, 아니 만나서 마지막 자산어보 마침표는 같이 찍는 해피엔딩이길 바랬는데!!’ 이러면서 혼자 안타까워서 펑펑 울다 나왔다.
그렇게 다 울고 근데 이게 사실은 맞는건지 의문스러웠다. 영화의 내용과 실제 역사가 맞는지 다시 찾아봤는데 영화에서는 정약전의 흑산도 생활을 깊이 있게 풀어내고 우이도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흑산도에서의 삶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역사는 우이도에서의 귀양살이가 더 오래됐다고 한다.
뭐 영화는 극히 일부분의 기간을 편집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마저 딴지를 걸면 안되니 말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역사 영화를 통해서 가려진 인물들을 대중화시켜서 역사적 인물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만족한다. 그 사실에 대해 왜곡만 없다면 말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내용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굉장히 큰 감동과 여운이 있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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