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3-11-21 16:32:56
긍정의 농도, <어나더 라운드>
인생을 사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해.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2020
덴마크 | 116분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긍정의 농도, <어나더 라운드>
<어나더 라운드>는 '결핍'에서 출발한다. '부족하다', '사라졌다', '무언가가 없다'란 의미로는 결핍을 설명할 수 없다. 결핍은 단순히 뭔가를 잃었다며 슬퍼하는 감정 따위가 아니다. 인간에게 결핍은 갖고 있던 것을 자기 자신을 포함해 타인에게 빼앗겨 더는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마치 이미 내뱉은 숨을 다시 빨아들이려는 시도와 같달까. 분명 있었지만 없고, 당연하다 여긴 마음을 질책하는. 자의든 타의든 '나'를 지탱하던 힘이 사라진 자리를 상실로 채우는 게 바로 결핍이다.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따라 삶의 과정과 끝이 달라진다.
여기 삶의 의미를 잃은 중년 남성 사인방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선생님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학생들의 불량한 수업 태도보다 선생님으로서 가져야 할 카리스마와 수업 역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업적인 문제는 사실 부가적인 사항에 속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마르틴(매즈 미켈슨)과 체육 선생님인 톰뮈, 심리학 선생님 니콜라이, 음악 선생님 페테르가 가진 진짜 결핍은 '나'란 껍데기 안에 숨긴, '삶의 가치관과 신념이 명확했던 과거를 과거로 둔 자아'에 있다.

그 자아는 기본적으로 지루하다. 아니 열정도 자존감도 차갑게 식어 지루해졌다.
마르틴의 아내는 그에게 "처음 만났을 때의 마르틴은 아니야"란 말로 그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가끔 열정이 없어 보인다는 학생의 말에 바로 받아치지 못한 건,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한테도 항변하지 못한 이유와 다를 바 없다. 마르틴의 결핍은 무관심과 현실 타협의 교집합으로 탄생했고, 스스로 가정에서조차 웃음 한 번 짓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지루하다는 말을 넘어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한다. 그리고 욱한 마음에, 될 대로 되란 심보로 술병을 학교에 반입한다. 니콜라이의 생일날 들었던,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는 이론(스코르데루의 가설)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서.
마르틴은 술 한 모금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한 채, 수업에 들어간다. 결과는 대만족.
180도 달라진 마르틴에, 친구들은 물통에 물이 아닌 술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들은 분명한 목적과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을 명시하며 얼토당토않은 실험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가치 있는 연구'로 탈바꿈한다. 삶을 다시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의미부여도 빠지지 않는다. 철없는 어른들의 일탈이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젊음의 상징(호수 경기)과 대비되는 건 당연하다. 시간을 족쇄라 탓하는 전자와 인생 자체를 열정과 생기로 가득 채운 후자는 다르니까.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건넨 젊음이란 키워드는 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영화가 제시한 젊음은 첫 장면에서부터 명확히 풀이된다.)

이성의 끈인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기와 변화의 주인공, 술병을 옆구리에 낀 채로 세상 당당하게 학교와 집에 출근하는 네 명의 중년 남성. 재미있고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친 삶을 살게 된 이들은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놀라게 한다. 오래전부터 남편이 가족에게 마음을 닫았다고 생각했던 마르틴의 아내 역시 마르틴의 입가에 도는 웃음에 행복한 눈물을 흘린다. 마르틴은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가족에게 무심했으며, 오랫동안 외로움과 무력감에 젖어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통해서 말이다.
육아의 덫에 빠진 니콜라이, 이혼한 뒤 살아있기에 사는 톰뮈,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페테르까지, 회의감과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절여있던 친구들은 다시 널뛰는 심장박동에 취해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역시 '연구를 위한' 정직한 목적의식에서 출발한다. 음주를 건강한 자아 찾기를 위한 실험으로 속인 학교 선생님들의 만행은, 결핍을 채우겠단 목적 아래 방향을 잃고 한 명씩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더 큰 결핍을 만들어낸다. 마치 모든 걸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새로운 자극이 위험한 칼날이 되는 순간.
<어나더 라운드>는 네 명의 인물이 기존에 각자 갖고 있던 결핍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궁극의 카타르시스와 진정한 해방을 경험하기 위해 농도 측정기를 버리고 술을 제한 없이 마셨던 친구들은 알코올 중독이란 기로(현실)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그토록 끈끈하게 뭉쳐 진행했던 연구는 주변인들의 신뢰와 함께 끝없이 하늘 위로 비상하던 풍선이 펑! 터지면서 막을 내린다.
결핍이 강력한 독이 되는 순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괜히 우리가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 '가끔 외롭고 무력해 우울하다', '밥을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와 같은 철학적이면서도 순식간에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감정적인 말에 익숙할까. 중요한 건, 너무 늦지 않게 원래 자신의 트랙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정확히 0.05%를 유지했던 날을 되짚어보며 무엇이 자신들을 다시금 힘차게 일어나게 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그러니까 그들을 다시 움직이게 한 '결정적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사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말 0.05%의 술기운이었을까. 용기, 희망, 설렘, 흥분, 재미, 벅참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수많은 날것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잃어버렸던 삶의 목적, 나아가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꿈일 수도 있다. 젊음은 꿈이며 사랑은 꿈의 내용이란 그의 말은, 누구나 언제든 젊음을 가질 수 있단 얘기니까.
우린 늘 결정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책임진다. 결정과 선택이 출발점이라면 책임은 종점이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종점. 그렇기에 책임지는 일은 성장한다는 의미이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희망을 뜻하며, 더 큰 의미로 삶의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웃집 앞에서 이마에 피를 흘린 채 잠에서 깬 마르틴과 침대에 어린 아들처럼 오줌을 싼 니콜라이가 마주한 책임은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 톰뮈에게 주어진 책임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추락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톰위가 추락을 멈추는 법을 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톰위의 자살은 알코올 중독자의 어두운 미래 중 한 예로 극단적이며 자극적이지만, 영화가 건넨 표면적인 메시지에 불과하다. 비슷해 보이는 인생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누군가의 결말은 될 수 있지만, 그게 나인 이유는 없는 것처럼.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에게 용서해 달라고, 사랑한다고 고백한 마르틴의 용기가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건 <어나더 라운드>가 준 0.05%의 진짜 힘이다. 우아하면서도 격정적인 그의 춤이 완벽한 노래와 만나 한 편의 짧은 뮤지컬로 펼쳐질 때 우린 마르틴을 감싸고 있는 긍정의 농도가 딱 0.05%란 사실을 눈치챈다. 각자에게 필요한 긍정의 농도가 있으며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을 제법 풍요롭게 할 거란 기분 좋은 예감까지 더하고 나면, <어나더 라운드>의 엔딩은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결핍은 허무와 고독을 동반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오기를 가슴 깊숙이 불어넣어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 없게 만든다. 완생이란 목표를 가진 인간을 끊기지 않는 트랙에 던져놓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린 이 모든 질주가 '선택과 책임의 쳇바퀴'란 사실을 깨닫고,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아닐까. 마지막 기회란 말은 없다. 잃은 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고, 얻은 것을 언제든 잃을 수 있다고 여기는 자에게만, 결핍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무기로 기능할 것이다. 긍정의 농도를 조율하듯이.
<어나더 라운드>는 알코올 중독에 한정된, 머물러 있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좋은 영화다.
멋진 인생, 멋진 밤. 이 얼마나 멋진 여정인가. 남들이 하는 말은 집어치워.
난 지금 너무 황홀해. 왜냐면 난 지금 터지고 있으니까.
-'What A Life'_Scarlet Pleasure (마지막 엔딩 삽입곡)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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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보면 화들짝 놀랄 00년대 청춘 갬성
감성에 살고 감성에 죽다.
그시절 반윤희, 강지한은 모이세욘..타고난 파이터이며 아웃사이더인 민, 폭력 조직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태수,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을 버리지 않는 환규는 무차별적 싸움과 혼돈속에서 10대를 보낸다. 어느날 환규를 따라 나간 노예팅에서 민은 로미를 만나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이날 이후 민은 기꺼이 로미의 노예가 된다. 민과 환규는 방황하던 마음을 잡고 분식집을 개업하여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고 감옥에서 나온 태수는 전갈 조직의 중간 보스로 자리를 잡는데..
우연히 다모임 게시판에서, 우리 학교 여자애들의 외모를 탓하는(--;) 지은성의 글을 보고 리플을 단 나 한예원. 아니 불만 있으면 달래서 달았더니 그녀석,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대고 쫌스럽게 군다.
날 자기 여자친구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해주지 않는 녀석.... 정말, 나를 진짜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성격과 외모에서 모두 '갓 상경' 한 느낌을 풍기는 한경,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말 그대로 '갓 상경'하여 강신고로 전학을 오는데... 그러나 그녀의 서울 생활은 정신적, 신체적 충격의 연속이다. 인근 학교의 여자애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원조 킹카 반해원은 허둥대는 한경의 안쓰럽고도 귀여운 모습에 반한다. 그리고 성격대로 저돌적으로 대시한다.. 문제는 옆 학교 성권고의 짱 정태성도 바로 이 정한경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자존심과 사랑을 모두 건 둘의 대결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모범시대, 불량영웅 중삘(feel)이가 왔다!. 은하 미용실의 외동아들이자 문덕고의 '쌈장'인 중필(류승범 분)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고단하다. 물론,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가는 일. 일단 학교 조무래기들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 위해선,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무리들과 겨뤄 심심찮게 얘깃거리를 제공해야 하고, 비밀 아지트로 활용하고 있는 학교 옥상도 관리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태풍처럼 등장한 전학생 상만. 그 일대를 초토화하며 주먹세계를 평정하려 한다는 소문이 그의 귀에도 들려온다.
그와중에 중필을 보호하겠다고 겁없이 나선 나영은 무모한 상만과의 싸움에 참패,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다..자유롭게 세상을 날고 싶은 엉뚱한 몽상가 태희 사회로 첫 발을 먼저 내딛은 현실주의자 혜주 생계를 위해 꿈은 잠시 뒤로 미뤄둔 꿈많은 모험가 지영 친구들의 든든한 버팀목 쌍둥이 비류와 온조 십대에 만나 모든 게 행복했고 즐거웠던 우리 각자 다른 네 갈래 길의 스무살을 만났다. 그렇게 서로의 길로 향하던 우리에게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 우리를 하나의 길로 이어줄 수 있을까? 잘 있었니?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아버지의 실직으로 닭집 딸이 된 수완, 대학 2학년인 그녀는 등록금을 위해 고액과외를 뛴다. 책상 밑으로 거울을 들이밀며 그녀의 치맛 속이나 궁금해 하는 골칫덩이들과의 험난한 대결, 불의를 참을 수 없는 그녀는 오늘도 과외 7일만에 짤리는 사고(?)를 치고 만다. 그러나 "과외 없으면 등록금도 없다"를 외치는 엄마 등쌀에 또다시 과외전선으로 뛰어든 그녀, 마침내 막강 난적 지훈을 만나게 된다. 벼락부자집 장남, 싸움꾼에, 학교 '짱'에, 고등학교를 2년 꿇은(?) 전적 화려한 동갑내기 제자 지훈...
첫 만남부터 반말은 기본이고 수업시간 내내 담배를 피워대는 지훈에게 질려버린 수완, 그만 두기엔 또 사고 치고 엄마 볼 면목이 없고 어떻게든 기선을 제압하려 두 팔 걷어 붙여 보지만 지훈의 적시타 한 방에 나가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동갑내기 과외 수업, 그러나 그 둘 주변엔 심상찮은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는데...
2002년 서울, 63빌딩. 30층, 게임 기획자 형태는 2년 넘게 준비해온 채팅 게임 사이트 ‘후아유’의 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회사는 자금줄이 끊기고, 월급은 막히고, 여자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채이기까지 한다. 그러던 중, ‘후아유’를 비방하는 당돌한 여자 별이를 만난다. 지하 1층, 수족관 다이버 인주는 한번도 시연해본 적 없는 인어쇼를 위해 연습에 열중이다. 동료들 모두 마다하는 인어쇼를 준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가능성이 안 보이고,수영선수 시절 남자친구였던 호진의 유학 소식에 쓸쓸해하던 중 채팅게임 사이트 ‘후아유’에서 맘이 통하는 친구 멜로를 만난다. 별이가 인주라는 걸 알고 멜로라는 아이디로 의도적으로 접근한 형태는 게임과 현실, 양쪽에서 이중적인 모습의 인주에게 호기심을 느끼다가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인주는 멜로가 바로 형태라는 걸 모르는채, 얼굴도 모르는 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형태를 무시하고 멜로만 찾는 인주의 모습에 아이러니를 느끼는 형태.. 급기야 자기의 분신인 멜로를 질투한다. 온라인의 관계와 현실 관계의 간극이 커지면서 갈등하던 형태는 인주를 만나 고백할 것을 결심한다. 서로 연락도, 만나지도 않기로 약속했던 인주도 만나자는 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169cm, 95kg. K-1이나 씨름판에 나가도 거뜬할 체격을 가진, 그러나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 한나. 신이 그녀에게 허락한 유일한 선물인 천상의 목소리로 가수를 꿈꾸지만 미녀 가수 ‘아미’의 립싱크에 대신 노래를 불러주는 ‘얼굴 없는 가수’ 신세다. 생계를 위해 밤에는 ‘폰팅 알바’까지 뛰어야 한다. 쉴 틈 없이 혹사당하는 목. 그러나 정작 가장 괴로운 건 그녀의 마음이다. ‘아미’의 음반 프로듀서이며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해준 유일한 사람 한상준을 남몰래 사랑하게 된 것. 짝사랑에 몸달아하던 그녀,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고 들뜬 마음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나는데... 그런데 그날 밤 이후 거대한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69cm, 48kg. 뽀샵으로 그려도 힘든 완벽한 S라인 몸매의 소유자 ‘제니’. ‘한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음반활동을 중단하게 된 ‘아미’의 공백을 멋지게 메꾸어 줄 상준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다.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병원가기를 잊을 만큼 황홀한 미모의 그녀는 고맙게도 노래실력까지 사라진 ‘한나’ 만큼 돼주신다. 그러나 떨이로 파는 생선에 환장하고, 넘어진 자장면 배달부의 빈 그릇을 친절히 주워주며, 예쁘다는 말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동하고, 남이 먹다 남긴 것도 거침없이 주워 먹는 등 희한한 엽기행각을 벌인다. 이상하리 만큼 착한 미녀 제니! 이 모든 상황을 의혹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라이벌 ‘아미’. 점점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제니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끼고, 독특한 미녀 제니의 뒷조사를 감행한다. 과연 그녀의 S라인 뒤에 숨겨진 살 떨리는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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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의 판타지아 그리고 우드잡
2015년 어느 날, 좋은 영화라 같이 보고 싶다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날은 상영 마지막 날이었고, 관객석은 꽉 차 있었다. 내가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대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정보는 배경이 일본이라는 것.
배우도 감독도 아무것도 모른 체 영화 관람이 시작되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흑백이라면 좀 답답할 것 같지만 몰입도가 높은 영화라 어느새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이 흑백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 중심엔 조감독 '미정'역의 김새벽 배우가 있었다. 영화감독 태훈과 새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 나라현을 방문한 미정. 그녀는 외지인임에도 자연스럽게 마을에 녹아 들어가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 필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그녀의 연기는 이후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어서 그랬을까? 1부와 2부의 주인공이 같은 사람들인데, '배우가 바뀌었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남주인공인 ‘이와세 료’씨는 2부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3일 동안 일부러 살을 까맣게 태웠다고 했고, 여주인공인 ‘김새벽’씨는 영화가 전환되는 시점에 머리를 풀고 나왔다. 참 신기하게 2부의 새벽씨는 다른 여자라고 느껴질 정도로 예뻤다.
영화는 큰 굴곡 없이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힐링 무비였다. 그리고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끝나고 난 후, 고조라는 일본의 어느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듯 느껴졌다. 또 영화 내내 떠오르던 미우라 시온의 책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영화 '우드잡'으로 개봉했는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함께 보기 좋은 영화다.
순서는 조금 더 자극적인 우드잡을 뒤로 해야 한다.
워낙 미우라 시온의 원작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좋아해서 영화 '우드잡'을 보기 전에 기대와 불안감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아, 좋다."라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는 원작 소설과 약간 다르지만, 그 다른 점이 영화를 더 살렸다.
대학 시험에 떨어졌는데, 여친에게 차이기까지 한 우드잡의 주인공 히라노. 홍보 전단의 모델이 예쁘다는 단순한 이유로 산림관리 연수에 지원한다. 깊고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다뤄야 하는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의 무서움을 모른 체, 모델만을 찾아 가무사리 마을에 떨어진 히라노. 휴대 전화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식객으로 산림관리 연수를 시작한 그. 고된 노동에 열두 번도 더 도망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어느새 벌목과 산림관리에 익숙해져 가고, 그를 가무사리로 이끌었던 홍보 모델인 이시이 나오키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따뜻하고 먹먹한 소설 '가무사리 숲의 나날'에 스윙걸즈의 감독인 야구치 시노부의 유쾌함을 덧입혀 탄생한 영화 우드잡. 장면 장면을 사진으로 소장하고 싶은 영화다. 눈이 편해지면서 마음도 편해지는 영화의 색감도 좋았지만, 그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히라노 유키역의 소메타니 쇼타의 구부정한 어깨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영화다.
소메타니 쇼타의 어벙한 표정은 우드잡의 별책부록.(귀여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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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뉴커런츠' 경쟁부문 심사의 성대한 시작
- 아름다운 가을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인들이 모이는,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의 영화 축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올해도 성대한 포문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 경쟁 부문인 ‘뉴 커런츠’ 섹션 심사 또한 시작되었다. ‘뉴 커런츠’는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 신인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 경쟁 부문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총 10편을 선정하였으며, 이 중 최우수작 2편이 순위 없이 뉴커런츠상을 받게 된다. 또한 올해는 LG전자와 함께 ‘LG 올레드 뉴 커런츠상’이 신설되어, 해당 1편까지 10편 중 3편이 수상할 예정이다.10편 모두 프로그램 노트만 읽어보아도 다각도로 매력적인 작품들이다.관동 대지진에서 100년이 흐른 2023년을 기억하며 나온 모리 다츠야 감독의 <1923년 9월>,일반적인 성장 서사가 아닌 치열한 ‘청소년 치정 멜로드라마’ 손현록 감독의 <그 여름날의 거짓말>,방글라데시 전통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퀴발 초두리 감독의 <더 레슬러>,매력적인 이미지의 ‘세련된 괴작’이라는 평을 받은 이종수 감독의 <부모 바보>,중국 본토와 홍콩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씨실 날실처럼 엮은 초이지 감독의 <빌려온 시간>,태국 남부를 배경으로 전통이 금지하는 사랑의 충돌을 담은 파티판 분타릭 감독의 <솔리드 바이 더 씨>,방글라데시의 일가족을 통해 이해와 성장의 이야기를 담은 비플랍 사르카 감독의 <스트레인저>,바라나시에서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를 투과해 보여주는 라제쉬 잘라 감독의 <스파크>,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사사를 받은 야마모토 아키라 감독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작품 <열병을 앓고 난 뒤>,사전 제작 기간에 다양한 초청을 받은 치아 치섬 감독의, 이민자를 소재로 묵직하게 엮어낸 <지금, 오아시스>까지.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가 각각 2편씩 있고, 한국 관객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여겨졌던 방글라데시 영화 또한 2편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영화가 각각 1편씩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겠다는 열의를 밝히며, 심사위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2023년 10월 6일 KNN시어터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정성일 영화평론가/감독을 심사위원장으로 하여, 아바 카헨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 인도네시아의 에드윈 감독, 미국의 영화 제작자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 한준희 감독까지 총 5인이 자리했다. 정성일 심사위원장은 심사 과정에서 “난투극”이 벌어지길 기대한다며, 쉽게 합의되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각들이 오가길 바라는 소회를 밝혔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있는 분들만 모시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인연이 있는 분들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다”며 가벼운 미소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 보러 부산을 찾았다는 한준희 감독부터, 역시 영화과 학생 시절 처음 왔고 뉴커런츠 초청 작품의 감독이기도 했던 에드윈 감독, 이전 회사에서 <더 킹: 헨리 5세>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 3년째 오고 있는데 올 때마다 생기있고 즐겁다는 아바 카헨 집행위원장, 비평가로도 찾았지만 2번째 연출작이 뉴커런츠 초청되었으나 수상하지 못했다며 질투심까지 담아 열심히 심사하겠다는 정성일 평론가까지 모두 부산과의 인연을 즐겁게 풀어놓았다.
심사위원단은 모두 향후 아시아 영화계를 이끌 감독을 기대하는 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특히 정성일 평론가가 고수하겠노라고 밝힌 3가지 원칙은 관객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원칙이었다. “영화 전반적으로 다 괜찮은데 특출하게 좋은 점이 없는 영화 vs 실패작이더라도 한 장면이 전에 없이 새로워 놀라울 정도인 영화”, “동시대에 많은 응원을 받을 만한 영화 vs 미래의 관객이 호응할 만한 영화”, “보면서 ‘이 사람의 최고 걸작이 되겠구나’ 싶은 영화 vs 보면서 ‘이 사람의 다음 영화가 보고 싶다’ 싶은 영화”에서 모두 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는데, 더없이 뉴커런츠라는 부문에 어울리는 기준일 듯싶다.
아바 카헨 집행위원장은 “미장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제스처나 캐릭터 등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들을 보겠다”고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 우리 안에 어떤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지”를 보겠다는 평도 있지 않았다. 에드윈 감독은 여기에 더해, “서로 다른 문화를 어떻게 잇는지, 아시아 사람의 정체성과 다른 문화를 배워 가는 모습”을 살피겠다는 말로 뉴커런츠 부문이 동시대와 미래를 이어갈 부문임을 확고히 했다.
한준희 감독은 “수상이라는 것이 결국 심사위원의 취향, 어떤 작품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수상 여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고,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 또한 “심사는 개인적인 것이 반영되고, 예컨대 자신은 사진을 좋아하여 프레임이 잘 짜인 장면을 좋아한다”고 밝히면서도, 스토리와 캐릭터 같은 굵직한 요소를 함께 언급했다.
전반적으로 좋은 영화를 찾겠다는 기쁜 기대가 묻어나, 수상의 권위는 권위의식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발생하는 것이리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뉴커런츠 부문의 10개 작품의 프로그램 노트를 보면, 어느 하나 전형적으로 굴러가리라 예상되는 작품이 없다. 모두 신선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영화일 듯하다. 기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각자의 기대를 담아, 부산에서 새로운 바람을 마주해 보자.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상영시간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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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운 완성도, 그래도 시원은 하네!
완성도는 아쉽다. <무도실무관>은 사적제재를 가하고 싶은 진짜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이야기로,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동일한 장르 영화와의 차별화 포인트를 찾기 어려운 건 맞다. 그럼에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실존하는 무도실무관이란 존재와 공분을 사는 극악무도한 성범죄자들을 잡는 이들의 고군분투다. 뻔한 시원함이라도 뭐든 사이다가 필요한 이 시대에 이 영화는 잠시나마 갈증을 풀어준다.
‘재미 빼면 시체’처럼 사는 정도(김우빈)는 유도, 검도, 태권도 도합 9단 실력자다. 아버지의 치킨 가게를 도우며 살던 어느 날, 전자 감독 대상자에게 구타당하는 무도실무관을 발견하고 이를 도와준다. 얼떨결에 표창장을 받은 정도는 보호관찰관 선민(김성균)에게 무도실무관 제의를 받는다. 재미가 있냐는 정도의 질문에 선민은 더 큰 의미가 기다리고 있다는 우문현답을 내놓는다. 이후 전자 감독 대상자들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제압하는 등 혈기 왕성한 신참은 점점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아동 성범죄로 20년간 복역한 강기중(이현걸)이 출소하고, 정도와 선민은 그를 관리한다.
올 추석 극장과 OTT 화제작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적제재를 가하고 싶은 이들을 어떻게든 때려잡는 주인공들의 힘겨운 싸움이 그려진다는 것. <베테랑2>와 <무도실무관>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현시대 공분을 사는 빌런과 이를 막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다르다. <베테랑2>는 빌런을 통한 이 시대 정의와 신념에 대한 자문이라면, <무도실무관>은 빌런을 통해 재미로 살았던 한 청년이 삶의 의미를 깨닫는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연출을 맡은 김주환 감독은 전작인 <청년경찰>의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 <사자>의 용후(박서준)처럼 정도 또한 한 사건을 계기로 변화하는 삶을 부여한다. 되고 싶은 거 하나 없이 오롯이 재미만 쫓는 청춘이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멋짐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정도의 성장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에 또다시 성범죄를 일으키려는 악인들을 일망타진하는 모습은 통쾌함을 전한다.
뻔한 이야기임에도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무도실무관’이란 존재다. 지난 2022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안병헌 무도실무관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 직업이 영화로 다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 내에서 그려지는 무도실무관은 물론 보호관찰관의 임무를 상세히 알려준다. 출소한 전자 감독 대상자들을 어떻게 감시하고 이상 징후 파악 및 재범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을 소개한다. 더불어 무도실무관 과 보호관찰관이 2인 1조로 다니고, 이들이 담당하는 전자 감독 대상자들이 20명 내외로 현실적인 인력 부족 문제도 보여준다. 이런 부분이 다소 설명적으로 다뤄져 법무부 홍보 영화로 각인 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럼에도 이 생소한 직업이 가진 신선함을 저해하지 않는다. 이는 성공 공식이라 할 수 있는 사이다 액션 영화에 무도실무관이란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기획력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MZ세대를 주 타깃으로 하기 위한 방편으로 극명한 권선징악 서사를 견고히 하고, 빌런을 처단하는 주인공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보는 이에게 계속해서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릴레이 타격 액션은 주요한데, 태권도, 검도, 유도 기술을 넘나들며, 빌런을 잡는 주인공의 액션이 빛을 발한다. 액션 구성이나 리듬이 무딘 것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 나름대로 타격감을 살아 있어 보는 맛은 유지한다. 살신성인 자세로 고강도 액션을 소화한 김우빈은 물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았을 이현걸 및 빌런 역 배우들의 액션도 박수를 보낸다. 특히 초반과 점점 달라지는 김우빈의 표정 연기도 집중해서 보기를 권한다.
실존하는 직업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후반부 극적 쾌감을 증대하기 위해 리얼리티 보다는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이야기는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특히 친구들과의 공조를 통해 강기중을 잡는 내용은 극 흐름상 극적 요소를 위해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강하다. 길 잃은 청춘들이 합심해 사회에 이로운 일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둘 수 있으니 사족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성범죄의 심각성을 오롯이 전하는 목적하에 등장하는 범죄 장면도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다.
<무도실무관>은 완성도를 떠나 사이다 필요한 분들에게 알맞은 영화임엔 확실하다. 연휴 기간 시원함이 당기는 분들은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길 바란다. 더불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자신만의 방법도 고민하면 더 좋을 것 같다.사진 제공: 넷플릭스
평점: 2.5 / 5.0
한줄평: 뻔한 시원함, 김우빈이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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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노래는 한밤의 불빛처럼 달려, <마이 웨이> 티에리 테스톤 감독 인터뷰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가 클로드 프랑수아라는 프랑스 가수의 ‘습관처럼(Comme d’habitude)’라는 샹송이었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감을 투영해 ‘마이 웨이’를 불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노래 한 곡의 여정을 따라간 동명의 이 영화는 단순히 노래를 넘어 더 넓은 의미와 시대를 우리에게 전해왔다. 리자 아주엘로스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이 풍성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 티에리 테스톤 감독을 만나 보았다.
<마이 웨이>가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는데요.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요?
한국에 꼭 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오게 되었어요. 그것도 영화를 소개하러 온 자리라니 너무 감동적이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기쁜 기회 같습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작업하게 되셨는지 들려주세요.
프로듀서가 <마이 웨이> 노래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사실 저는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에 관한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특히나 흥미로운 지점은, 누가 리메이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을 때에는 백인 남성이 은퇴를 고민하는 순간의 매력적이고 감상적인 노랫말인데, 니나 시몬이 부르면 70년대 미국에서 흑인 여성 아티스트로서 그가 해온 투쟁이 가사에서 느껴집니다. 심지어 음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적이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이 노래는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고, 리메이크될 때마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마치 노래가 사람인 것처럼, 이 영화를 <마이 웨이>라는 노래의 전기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내레이션은 노래의 시점에서 쓴 것입니다. 노래가 화자 역할을 하는 거죠.
노래의 관점에서 쓴 내레이션을 미국 배우 제인 폰다가 맡았습니다. 어떻게 제인 폰다를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캐스팅 과정의 에피소드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제인 폰다의 인생 또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측면이 강하죠. 제인 폰다의 목소리가 실리면서 이 영화에 페미니즘적 가치가 부여되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그동안 남성 위주 리메이크 역사를 갖고 있었거든요. 스트롱맨으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 즐겨 부른 곡으로 유명해지기도 했고요. 이 작품을 통해 여성 특히 제인 폰다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되살려냄으로써, 이 노래의 소유를 뒤집는 의미가 있습니다.
노래 역할로 어떤 목소리가 어울릴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노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일찍 정해져 그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영어 버전에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미국 쪽 제작자가 전화를 해서, “지금 우리 사무실 옆방에 제인 폰다가 와 있는데, 제인 폰다는 내레이터로 어떨 것 같냐”고 물어 왔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제안을 듣는 순간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작자가 단박에 옆 사무실로 가서 제인 폰다에게 부탁을 했죠. 제인 폰다는 전설적인 대배우지만 마음이 매우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즉각 승낙을 받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다음 월요일에 바로 녹음을 했습니다. 6-7시간씩 녹음하는 강행군이었는데, 힘들다는 기색 하나도 없이 말끔하게 진행해 주었습니다. 제인 폰다라는 대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한 기억입니다.
영화 속에 <마이 웨이>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담겼는데요. 최근 프랑스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이 노래가 불렸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도 이 노래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혹시 이 영화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 중, 편집 과정에 담지 못했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찾아보니 녹음된 앨범으로 남아있는 <마이 웨이>만 4,500개 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만 170시간 정도의 분량이 되더라고요. 전 세계의 영상인데 저작권 문제도 있고 여러 이유로 사용이 어려운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똑 같은 노래를 여러 언어 버전으로 이어 붙이면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노래를 너무 많이 듣게 되다 보니 그 중 일부를 골라내야 했습니다. 또 이 영화의 다른 편집 버전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 들어갈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그리고 올림픽 폐막식에 이 노래가 불린 일은 저희 영화 소개를 앞두고 너무 좋은 타이밍이라 꼭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파리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니, 실제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이 노래만큼 적합한 선택이 없었죠. 사실 옛날 노래다 보니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되겠어?”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올림픽 덕분에 화제성을 얻게 된 거죠.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하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건 어떤 버전인가요?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을 제일 좋아해요. 시나트라가 이 노래를 선택한 당시 그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마피아에 연루되었다는 루머가 들끓고,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가 등장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가수들의 노래는 한물 간 장르 취급을 받았죠. 결정적으로 배우 아바 가드너와의 사랑이 끝나 깊은 슬픔과 실패감에 빠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에서는 아바 가드너의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어요. 프랭크 시나트라와 아바 가드너의 사랑 이야기가 제 마음에 그만큼 오래 남았습니다. 물론 니나 시몬, 섹스 피스톨즈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느낌으로 부르는 것도 좋고, 이 영화에 나온 벤 하퍼(Ben Harper)와 클라라 루시아니(Clara Luciani)의 노래도 제 눈앞에서 펼쳐져 유난히 좋았습니다. 결국 다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벤 하퍼와 클라라 루시아니 두 아티스트가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다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매우 아름답고 흡입력 있었습니다. 수많은 뮤지션 중 이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클라라 루시아니는 프랑스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런데 11살에 이미 키가 176cm까지 자라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슬프고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힘들었던 성장기를 생각할 때, 그가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죠. 치열하게 싸워 왔고 지금은 충분히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클라라의 삶 자체가 노래와 많이 닮았습니다.
벤 하퍼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열성 팬입니다. 모르는 노래가 없고, 시나트라와 똑 같은 반지를 끼고 다니기도 해요. <마이 웨이>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저희한테 연락을 먼저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본인의 의지로 참여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이 웨이>라는 노래에 대해 또 하나의 기억을 가져가실 관객 분들을 위해 한 말씀 남겨 주세요.
2년 반 전에 이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노래 얘기를 지금 하는 게 맞아?” 하는 우려의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노래를 되살려내려 애쓴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죠. 다시 말해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옛날 노래가 되어 간다는 거겠죠.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프랭크 시나트라도 잘 모르죠.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훌륭한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이 노래와, 이 노래가 담긴 한 세대의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나면, <마이 웨이> 노래를 검색해 보시고, 전세계에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래할 만큼 많이 공유된 음악이라는 걸 함께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래 한 곡의 풍성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한 자리였는데, 한 세대의 문화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까지 받았다. 페퍼톤스의 노래 가사처럼 “노래는 한밤의 불빛처럼 달려” 또 여기에 이른다. “수많은 날들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던 뒷모습” 같은 <마이 웨이>를, “서툰 첫 인사로 다시 만나기를 또 빛나기를 눈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들어 본다. 이 마음이야말로 음악의 힘, 영화의 힘일 것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정유선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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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마주하고 환하게 웃는 우리들
첫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내 첫사랑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다. 글쎄. 누구였을까. 막연하게 생각이 안 난다. 이 글을 쓰며 몇 명의 얼굴이 지나간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넌 아니고. 걔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까. 지금 2022년에 뒤돌아 봤을 때 '걔는 사랑이었어!'라고 생각하면 첫사랑이 될 것이다. 어렵지 않게 한 도착점으로 향한다. 일단 이성 이전에 인간관계도 똑바로 만들지 못했던 나였기에 손가락과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싶은 이불 펑펑 흑역사를 만들어 첫사랑을 떠나보냈다. 첫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겁나 창피해서 자기 전에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첫사랑은 창피한 게 매력이지.
다른 첫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아니지. 그 '다른 첫사랑'은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게 재밌었던 나. 내가 하는 위로가 사람들에게 닿을 때마다 짜릿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이유로 이 글쓰기가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울컥하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에 들어가는 문장을 쓰고 싶었던 나. 난 아직도 그것에 낭만이 생겨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지치기도 지치지만 난 이런 시간이 즐겁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글을 쓰는 재미는 엄청 크다. 또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호칭도 포기하기 싫기도 하고. 어렸을 때 순수하게 쓰는 거에 집중해서 문예부 동아리 편집장까지 했던 다. 이상한 인간관계법이 있긴 했지만 여러 사람을 감동하는 글을 쓰는 순수한 재미는 그때가 20대인 지금보다 더 반짝반짝 빛났다. '왜 항상 대비해도 창피한 흑역사가 생기는가'라는 내 삶의 과제가 있어도 이 동기부여를 포기하기는 너무나도 싫다. 역시 이 마음이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들 무언가에 진심일 것이다. 그래서 즐거움과 꿈에 투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흐뭇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2021년, 일본의 여름에 영화 제작에 진심인 여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근데 좀 특별하다. 사무라이 액션 영화다. 이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어보자. <썸머 필름을 타고!>다.
시대극에 진심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데?" "널 좋아한다고!" 모니터 안의 남녀는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선남선녀가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는 걸 보니 지켜보는 우리까지 뿌듯해진다. 카메라는 모니터 밖으로 옮겨간다.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독과 배우. '이 장면은 어떻게 찍었어야 했는데-'라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여고생 영화감독 카린은 로맨스 장르를 만드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다. 곧잘 영화를 잘 만들어서 학교 내에 인기가 있는 카린. 대중적인 장르에 사랑스러운 연출 방식까지 과연 인기가 있을 만하다. 그런데 그런 카린을 이글이글 바라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맨발이었다. 저게 영화야? 까르르 웃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뭔가 착잡한 표정으로 속상해하고 있다. 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서는 맨발. 이런 맨발을 망원경으로 쳐다보던 킥보드. 맨발에게 '(영화 제작) 동아리 끝났어?'라고 묻는다. 맨발과 킥보드는 어디 놀러 가기로 한 것 같다. 시골의 어느 외진 곳에 가는 두 사람. 폐차가 머지않은 트럭에 도착해서 DVD를 연다. 재생한 것은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시대극이었다. 영화사에 전설적으로 남은 <7인의 사무라이>부터 갖가지 시대극을 죄다 꿰뚫고 있다. 맨발은 시대극이라는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영화 제작에 나선다. 우리의 감독 맨발은 친구 '블루 하와이', '킥보드'와 함께 길이 남을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더 상큼발랄하게
일본의 틴에이저물이다. 주인공 3인방 이토 마리카, 카와이 유미, 이노리 키라라의 통통 튀는 연기는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영화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카와이 유미가 인상 깊다. 단발 헤어스타일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등장하는 '킥보드'. 극에서 주인공 3인방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시대극, 액션 영화를 그렇게까지 선호하지 않는 킥보드. 이 킥보드는 두 사람과 적당히 잘 어울리면서도 중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인물의 성격을 잘 유지해야 한다. 이 두 사람과 킥보드의 차이점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데다가 이 작품의 사랑스러움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이 인물의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부터 시각적인 구현 방식까지 초중반부 극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 배우의 분위기가 아주 큰 몫을 했다.
다른 인물인 '맨발' 역시 과하지 않게 적절한 선을 잘 탔다. 사실 또래들에게 대중적인 취향으로 꼽히기엔 거리가 아~주 멀다. 지금 20대인 나 주변에도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작품을 본 사람은 몇 없으니까. 이걸 10대로 범위를 넓히면 더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 설정에 왠지 모르게 진심이 느껴지는 뛰어난 캐릭터성을 선보였다. 왠지 류수영 배우 닮은 외모에 귀여운 사랑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꿨던 매력이 큰 덕을 봤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배우들과 감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스러움을 영화로 잘 구현해냈다. 여러분도 10대 때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난 가끔 그립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 단편 소설 읽던 때가 정말 순수하게 재밌었던 때다. 그렇게 20대 중반이 된 나. 가끔은 뭐가 재밌는지 생각에 빠질 때 있다. 단순히 나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순수하게 무언가에 부딪히고 싶은 사람들이나 그런 게 이미 있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흐뭇한 미소가 되어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
누구든 어떤 사람을 몰래 짝사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짝사랑을 할까? 사실 사랑에 빠지는데 이유 같은 건 없다.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다. 영화는 이 '좋으면 좋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쭉쭉 전개한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덕질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아닌 사랑 중인 인물들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적으로 '이러저러해서 너는 무언가에 푹 빠져야 함'을 중요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전반적인 영화의 목표는 그냥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울 수도 있는 부분을 절묘하게 빗겨나가서 할 말에 잘 집중한 감독의 수가 돋보인 부분이다.
위의 문단의 예를 들어보자면, 우선 영화 제작 과정이 소상히 잘 들어갔다. 주인공은 10대 학생들이다. 핸드헬드 카메라 큰 걸 들고 다닐 리가 없다.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폰과 거치대 하나만으로 배우들의 모습을 담는다. 뭐 이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영상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건 쉽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외에 배우들을 섭외하거나 스태프를 고용하는 방식은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가령 음향 스태프를 설득할 때 한 야구부원과 이야기한다. 왜? 야구공 던지는 소리만으로도 부원 누가 야구공을 던졌는지 알 수 있으니까.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런 건 처음 들어본다.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 야구부원과 영화 제작이 관련 있는 방식은 다른 영화와 차별점이 있으면서도 유지하고 싶었던 귀여움을 잘 소화해낸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또 영화를 본 분들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조명 감독을 섭외한 방식이다. 진짜 있을법한 사람에게 엉뚱한 특성을 끄집어내서 영화에 조합시킨다. 이런 영화 제작기가 소재인 작품에 스태프를 섭외하는 것은 사실 극의 배경이 될 만큼 중요하다. 근데 이 작품은 이를 괜찮게 잘 전개하니 사려 깊었던 각본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본에서 부분 부분 섬세한 느낌이 잘 느껴진다. 일단 라이벌로 설정된 카린과 '맨발'의 관계다. 일단 '맨발'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카린을 라이벌로 생각해서다. 일본, 10대 소재 영화. 뭔가 예상한 줄거리가 쭉- 나타날 것 같다. 그런데 후반부를 보면 단순히 그 뻔한 방식으로 인물들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영화가 단순히 사춘기 때 학생들이 부렸던 객기가 아니라 순수한 열정을 소재로 삼았다는 건 카린과 '맨발'의 관계 변화가 후반부에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카린과 '맨발'의 행동 근거 역시 이 영화의 배경이 학교 동아리라는 것에서도 시너지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경제적으로 잘 쓴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이 덕분에 후반부의 장르 급변에 더 힘을 준 느낌이다. 뻔할 수도 있는 극의 이야기가 되짚어 봤을 때 살짝 신선해지기까지 하는 좋은 설정의 힘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이유와 계기에 힘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하게 작동한다. 극에 나오는 방식처럼 '난 널 좋아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구나' 느낄 수 있었던 건 짧든 길든 사랑의 모티프가 구석구석 사용됐기 때문이다. 킥보드는 무얼 더 좋아하는지. 블루하와이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맨발이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카린은 어떤 걸 이해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각본 내에서 나름의 이유를 보여주며 잘 전개된다. 계기와 원인, 이유에 물리적인 비중을 많이 할당하면 영화가 번잡해질 수밖에 없다. 왜? 10대 시절 소중한 친구관계와 꿈,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게 이 영화이니까. 그런데 정말 기본적인 설정과 '친구관계'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고 싶은 말에 포커싱을 잘 뒀다. 이 선택과 집중이 '원래 사랑에 빠지면 그런 거지!'라는 걸 생각하게 만드니 아이디어 기획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근데 너무 갑자기야
글쓴이는 영화를 보다 중반부에서 응? 하는 지점이 있었다. 이 소재가 후반부까지 이어지고 나니 '아~'싶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중반부의 갑작스러운 전개와 엔딩의 장르 변화가 장점이었다는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또 사랑스러웠던 이야기가 휙 바뀌는 전개는 살짝 아쉽다. 이게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감독이 이 부분을 찍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영화의 터닝포인트 두 지점이 극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뭐 끝까지 다 보고 나서 뭉클해진 것도 사실이고 이것들을 위해 그렇게 설정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의 인물 특성을 그렇게 하는 게 능사였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들의 개성이 살짝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금세 우리가 알던 일본의 로맨스 영화가 겹쳐 보인다. 보자마자 생각나는 일본 영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설정이 시대극을 소재로 했다는 참신함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또 엔딩에서 장르가 급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쓸데없이 잘 찍어서 더 아쉽다. 어떤 인물들이 하이라이트 신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이 인물 중 한 인물이 이쪽에 능력이 있다는 묘사가 없다. 그래서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동아리 시절에 만든 영화를 유튜브 같은 공개적인 플랫폼이 올리는 게 아닌 한 그 부분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지인 외에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있다. 그냥 남자 주인공이 단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설정 전부를 퉁 친 것이 된 셈이다. 또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닌 한 남자 주인공의 목표가 정말 성공할 수 있는지도 각본에 의문점이 든 부분이었다.
빛나는 청춘
뭐 이건 영화 팬으로서 나의 소견을 담은 것이다. 이 영화는 반짝반짝 빛나는 생기로 가득 차 있다. 이토 마리카와 카와이 유미, 이노리 키라라 셋의 빛나는 귀여움은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관객을 이끈다. 또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재기 발랄함만으로도 극은 후반부까지 충분히 재미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받는 인생도 중요하지만 무언가에 깊게 빠진 삶이야 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일 일어나서 개봉 뭐하지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 중 전설적인 영화(<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를 되짚어보고. 리뷰를 써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고. 그런 생기가 사람에게 상처도 되지만 누군가의 동기부여로 작동하는 건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물로 우리 삶의 열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는 건 영화의 큰 장점이자 재미다. 다들 이 영화로 여러분의 청춘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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