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2025-08-28 20:11:28
애마 | '픽션'으로서의 의의와 '코미디'의 한계
넷플릭스 <애마>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두환 정부의 등장에 발맞춰 더 노골적인 에로 영화 <애마부인>을 제작하기로 결심한 제작사 대표 '중호'(진선규). 전속 계약을 맺은 스타 배우 '희란'(이하늬)가 노출 영화 출연을 반대하자 중호는 희란을 조연 '에리카'로 내리고 그녀를 대체할 신인을 발굴하기로 한다. 힘없는 신인 감독 '인우'(조현철)는 중호의 요구에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오디션을 진행하지만 좀처럼 적임자를 발견하지 못한다.
어느 날, 인우의 눈앞에 배우 지망생 '주애'(방효린)가 등장한다. 첫눈에 반한 그는 희란의 반대에도 주애를 주연 '애마'로 캐스팅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애마부인>의 제작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희란의 방해로 촬영은 계속해서 중단되고, 심지어 정부에서도 인우가 쓴 대본의 선정성을 문제 삼은 것. 이에 중호는 결단을 내린다. 주애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애마부인>을 완성하기로.
왜 '픽션 코미디'일까?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를 소개하는 홍보문구 중에는 눈에 띄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픽션 코미디'다. 코미디 영화에는 로맨틱 코미디, 블랙 코미디, 블루 코미디, 범죄 코미디 등 수많은 하위 장르가 있다. 하지만 픽션 코미디는 거의 접해 보지 못한 표현이다. '픽션 코미디'를 검색하더라도 <애마>를 소개하는 최신 기사 외에는 제목에 '픽션'이 들어간 <러브 픽션> 같은 코미디 영화에 관련된, 오래된 기사만 나올 뿐이다.
<애마>는 왜 용례가 거의 없는 표현, 특히 '픽션'을 굳이 강조해서 사용했을까? 그 답은 방패막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애마>는 1982년 영화 <애마부인>에게서 영감을 받은 코미디 작품이다. 특히 <애마>는 <애마부인>을 비롯한 에로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의 사회 분위기와 영화계의 병폐를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에 빗대어 풍자한다.
실제로도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 에피소드가 드라마 곳곳에 삽입됐다. '애마'(愛馬)가 아니라 '애마'(愛麻)로 제막을 정한 이유, 알몸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야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사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애마>가 완전히 실화를 다룬다고 볼 수는 없다. 일례로 극 중 <애마부인>의 주연인 주애와 감독인 인우가 모두 신인이지만, 실제 배우와 감독인 안소영과 정인엽은 각각 3년, 15년 이상의 경력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픽션 코미디'라는 표현은 <애마>에게 좋은 방패막이다. '픽션'이니까 현실을 취사선택하여 일부는 실화를 차용하고, 일부는 영감만 얻은 허구로 내용을 구성해도 무방하기 때문. 이는 코미디 영화로서 자유롭게 풍자와 해학을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애마>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픽션'을 표방하지만, 정작 선을 넘는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마다 현실을 의식하면서 자기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세 작품의 공통점
<애마>를 보면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이다. 셋은 공통점이 많다. 주인공은 허구지만, 극 중 등장한 영화는 실제 작품이다. 영화 산업의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활동하는 영화인들의 삶을 다룬다는 점도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셋 다 코미디를 적극 활용하여 암울하거나 비극적인 실제 역사를 영화라는 대안 현실 속에서 바꿔 보려 한 가상 역사물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유행이 저물던 196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 삼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다룬다. 역사대로라면 유망한 여배우, 샤론 테이트는 찰스 맨슨의 사주를 받은 히피 집단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전성기가 지난 영화배우와 그의 스턴트맨이 맨슨 패밀리를 대신 해치우는 과장된 코미디로써 샤론 테이트에게 비극 대신 밝은 미래를 선물하고, 대안 역사를 만들어냈다.
무성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유성 영화가 주받기 시작한 1920년대가 배경인 <바빌론>도 마찬가지다. 셔젤은 무성 영화 시대에는 스타 배우와 제작자였던 세 주인공이 유성 영화 시대에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전성기와는 달리 초라해진 삶에도 불구하고 끝내 영화를 놓지 못한 그들의 진심을 중점적으로 비춘다.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사랑이 지금의 할리우드를 만들었다는 헌사로 <바빌론>이 끝나는 이유다.
<애마>도 유사하다.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은 신예 감독 및 배우와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스타 배우 및 제작자의 갈등으로 가득하다. 이는 전두환 정부의 3S(섹스, 스포츠, 스크린) 정책과 맞물려 에로 영화가 70년대 호스티스 영화를 제치고 인기를 얻은 변화의 시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애마>는 과장된 코미디로 후반부를 가득 채우면서 성적 대상으로 소비된 여배우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애마>가 고쳐 쓴 역사와 영화
그 중심에는 이하늬와 주애의 연대감이 싹트는 서사가 있다. 영화 촬영 전까지만 해도 이하늬와 주애는 앙숙이었다. 자리를 뺏길까 두려운 이하늬가 주애를 경계했다. 하지만 접대 자리에서 마주한 뒤 두 여배우는 같은 처지임을 비로소 이해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동질감이 싹튼다. 그들이 서로 싸울 때가 아니라, 성적으로 착취하는 공통의 적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주애와 이하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주애는 대종상 시상식에 말을 타고 등장한다. <애마부인>의 흥행 이후 그녀는 나이트클럽 댄서였다는 이유로 추악한 성 추문에 시달리지만, 댄서 옷을 입고 말을 탄 채 시상식 레드카펫에 등장하면서 뜬소문이 거짓임을 당당히 밝힌다. 이하늬는 영향력이 더 강한 스타답게 싸운다. 그녀는 시상식 무대에서 제작사의 강요로 인해 여배우들이 고위 정치인을 접대해야 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서로를 보호하면서 그들의 동질감을 연대로 발전한다. 이하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여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진실을 밝힌다. 주애는 그 직후 경찰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한 이하늬를 말에 태워서 도주하며 구해준다. 두 여배우의 연대는 시상자로 특별출연한 안소영의 “돌이켜보면 영광스럽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는 대사와 맞물리면서 당대의 여배우와 여성을 향한 위로로 이어진다.
극 중 <애마부인>과 실제 영화의 결말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애마부인>은 여성의 주체성을 성적 욕망이라는 매개체로써 보여줬다는 의의와 주인공 오수비가 결국 의지를 꺾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한계를 같이 지녔다. 하지만 극 중 <애마부인>은 애마가 에리카의 도움을 받아 진정 자유를 찾는 결말로 막을 내린다. 즉, <애마>는 <애마부인>이 진정으로 말하려던 바를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끝맺어 주는 드라마나 다름없다.
메시지와 형식
<애마>의 메시지는 구조와 형식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해영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면 바로 전환이다. 대부분의 연출작이 후반부에 들어서면 급격하게 장르를 전환하는 것. 전작인 <유령>만 해도 미스터리 추리극에서 급격하게 액션 활극으로 전환됐고,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도 공포영화에서 액션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그 정도가 덜한 <독전> 또한 전후반부의 분위기 차이가 극명한 작품에 속한다.
<애마>도 마찬가지다. 1화부터 3화까지는 평범한 드라마에 가깝다. 희란의 몇몇 등장 장면을 제외하면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4화를 기점으로 드라마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코미디로 전환된다. 특히 희란과 주애가 진선규를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이른바 병맛, B급 연출로 가득하다. 그 덕분에 당대 사회상을 풍자하고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더 확실히 전달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장르의 전환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 내에서 가상의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작품들은 대체로 촬영하는 영화를 일종의 거울로 활용한다. 극중극과 주인공들의 상황과 사연이 겹치는 순간을 강조하며 감정선을 고조하는 식이다. 다만 이 경우 해당 작품의 촬영이 끝난 순간부터는 일종의 구심점이 사라진 나머지 각 인물의 서사가 제각기 흩어지고, 극의 짜임새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애마>도 마찬가지다. <애마부인> 제작 과정과 주애가 성적으로 소비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전반부가 끝나고 나면 드라마는 일시적으로 구심점을 잃는다. 이에 <애마>는 당대 영화계의 병폐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방식으로 과장된 코미디를 일선에 내세우면서 새로운 구심점을 찾으려 한다. 희란과 진선규가 사무실에서 트로피를 서로에게 집어던지는 식의 과장된 연출이 4화를 기점으로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잡다
이때 코미디의 핵심은 선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실제 현실이나 역사가 아닌 대안적 세계를 묘사하는 만큼 과감한 상상력을 보여줘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 오히려 그럴수록 강렬한 쾌감과 큰 웃음이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로 가득해지기도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두 주인공이 화염방사기로 맨슨 패밀리를 불태워 버린 덕분에 샤론 테이트에게 주어진 가상의 미래는 더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애마>는 과감해지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판타지에 가깝게 상상력을 뽐내는 대신, 자꾸만 망설이면서 현실로 회귀한다. 주애의 레드카펫 장면이 대표적이다. 말을 타고 등장하는 아이디어 자체는 파격적이지만, 그 뒤로 평범히 시상식에 참석한 주애를 보여주다 보니 충격이 그 이상으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마치 전투에서 상대 전열을 무너뜨리고도 병력을 투입해서 전과를 확대하는 대신 현상을 유지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희란의 폭로도 마찬가지다. 생방송에서 기습적으로 진실을 밝힌다는 전개는 다른 사회 고발 영화에 비해 독특하다고 보기 어려운, 클리셰에 가까운 전개이기 때문. 그러다 보니 말을 탄 주애가 진실을 폭로한 희란을 구하는 장면은 중요성과 함의에 비해 임팩트가 약하다. 완전히 판타지운 코미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밀하게 짜인 현실적인 전개도 아니다 보니 드라마의 톤이 뜨고, 가상 역사의 쾌감도 줄어드는 셈이다.
‘픽션 코미디’라는 완벽한 수식어
물론 80년대에 여배우와 여성들이 겪은 어려움이 현재에도 유효함을 보여주기 위해 톤을 조절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결말을 장식하는 주애의 일본 방송 인터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섹시 스타로 사는 소감을 묻는 에 대한 주애는 비관적으로 답한다. 희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적인 제약에서 절대 벗어나 있지 않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쾌감보다는 현실적인 씁쓸함이 먼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럴 경우, 왜 굳이 <애마>를 코미디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다. 굳이 코미디가 아니더라도 끝나지 않은 여성 착취를 경계하고 고발하려는 이야기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으니까. 웃음을 자아내어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도를 지니는 코미디 장르로의 전환은 오히려 장애물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위와 같은 의도라면 코미디보다 절제된 톤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애마>는 한국의 <원스 어폰 어폰 타임... 할리우드>나 <바빌론>이 되고 싶었지만, 필요한 만큼 과감하지 못했다. <애마부인> 제작기를 보여주는 픽션과 당대 사회상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대체하는 코미디가 충분히 융화되지 못한 것. 그러다 보니 '픽션 코미디'는 아이러니하게도 <애마>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수식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구조와 내용은 물론, 장르적 재미에 관한 문제점까지 모두 함축하고 있으니까.
Acceptable 그럭저럭
마지막 선을 넘지 않아서 맹숭맹숭한 가상 역사 코미디
작성자 . Kin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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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