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1-08-02 01:46:54
그린 나이트 시사회 영화 후기 - 목 베기 게임에 참전한 겁 많은 도전자의 목 베이기
아서 왕의 조카인 가웨인 경은 크리스마스 축제 때 아서왕의 궁전에 침입한 녹색 기사의 목 베기 게임에 출전한다. 딱히 위업적인 이야기가 없었던 가웨인 경은 녹색 기사의 목을 베는 대신 1년이 지난 후에 녹색 예배당에 가서 자신의 목을 내놓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녀이자 엄마인 모건 르 페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명예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니만큼 가웨인 경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곳으로 가야만 하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원작으로는 시로 되어있지만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J.R.R. 톨킨이 이야기로 해석하여 지금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과연 녹색 기사가 가웨인 경에게 주는 마지막 의미란 무엇이었을까?
녹색 기사를 만난 가웨인 경은
목 베기 게임에서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
가웨인 경은 녹색 기사의 목 베기 게임에 참전해 무엇을 얻게 되고 잃게 될까?
녹색 기사와 가웨인 경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고 누구를 상징하는 것일까?
아서 왕의 조카인 가웨인 경은 영화 속에서 녹색 기사의 목 베기 게임에 참전한다. 겁이 나지만 위업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떤 가웨인 경은 녹색 기사의 위협적인 제안에 두려웠을 것이다. 겁도 많고 도전의식도 많은 가웨인 경에게 녹색 예배당으로 가는 긴 여정은 많은 고난이 시작된다. 먼저 도전과제가 주어지는게 많아진다. 첫번째 고난은 어린 양아치들에게 손발이 묶인 채로 가지고 있는 물픔들을 빼앗기고 자신의 힘으로 탈출하는 것이고 두번째 고난은 괴한에게 머리가 잘린 성 위니프레드의 해골을 호숫가 깊은 곳에서 찾는 것을 보답으로 잃어버린 물품 중인 도끼(녹색 기사가 목 베기 게임에서 놓고 간 것)를 찾는다. 세번째 고난은 푹풍우를 피해 동굴에 숨어 지내었을 때 우여를 쫒아내지 않고
들여보내 여정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가웨인 경에게 내려진 고난과 시련은 어떻게 해결될까?
여우도 도움이 많이 되는 역할로 나오는데 거인들을 불러 가웨인 경이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준다. 계속 그렇게 비가 오고 푹풍우가 몰아쳐도 가웨인 경과 여우는 계속해서 여정을 떠난다. 그러자 그들 앞에 보이는 것은 성이었는데
성주를 만나고 귀부인을 만난다. 그리고 가웨인 경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조언도 해주고 책도 선물해준다. 완벽한 초상화 그림까지 말이다. 하지만 귀부인이 가웨인 경을 유혹하고 시험에 빠뜨린다. 그리고는 녹색 허리띠를 찢어서 주며 갖고 있으라고 한다. 아마도 녹색이란 자연을 상징하기도 하고 이끼와 부패도 상징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녹색 기사는 자연과 같다고 한다. 카멜롯은 발전된 문명이고 자연을 이용하는 그런 종족이다. 천년이 지난 현대 시대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자연을 개척하고 이용한다. 하지만 그런 자연에게 감사할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여전하게도 녹색 기사는 목 베기 게임에 가웨인 경만 참전시킨 것만이 아니라 천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종식시키지 못할 목 베기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목이 베이기가 두려워 겁이 나는 가웨인 경은 녹색 기사를 피해 도망쳤지만 자신에게 올 미래의 피해를 알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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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 - 테렌스 맬릭
황무지 - 테렌스 맬릭
많은 영화 목록을 들여다보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영화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를 '클라이테리온'에서 배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 단조롭고 물기 없이 메마른 화면의 나열, 미국중북부의 평범한 주, 사우스다코타의 가난한 동네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남한)보다 두 배나 넓은 면적의 땅에 인구는 70여 만 명에 불과한 곳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지역이다.
이른 아침, 쓰레기 청소차가 골목을 지나가면서 두 사람이 집앞마다 쓰레기통을 들어 차에 옮긴다. 청년 키트(마틴 쉰)는 무심한 표정으로 쓰레기통을 옮기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홀리(씨씨 스페이식)의 나레이션으로 진행한다. 홀리는 고등학생이고, 여기 사우스다코다주로 오기 전에 텍사스주에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텍사스를 떠나 사우스다코타주로 이주하는데, 홀리의 아버지는 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먹고 사는 문제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집도 비교적 깨끗하다.
홀리는 학교에 다니지만, 아직 친구도 없고, 혼자 집에서 곤봉 연습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홀리와 키트는 우연히 만나고, 두 사람은 홀리의 아버지를 피해 점점 깊은 관계를 갖는다.
지루하고 심심할 것만 같은 영화는 키트의 돌발적 행동으로 급변한다. 홀리의 아버지는 키트에게 경고하고, 두 사람이 만나지 말라고 말한다. 키트는 홀리의 집에 몰래 들어가 홀리의 가방을 싸고, 홀리의 아버지와 맞닥뜨리자 그를 살해한다. 첫번째 살해다.
놀라운 것은 홀리의 태도다. 자기 아버지가 키트에게 총맞아 죽었지만, 홀리는 놀라지도, 비통하게 울지도 않는다. 다만, 죽은 아버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걱정한다. 키트는 집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범행을 녹음한 싱글 LP판을 집앞에 놓고 홀리와 함께 도망한다.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이 있었다. 1957년 미국 네브라스크주 링컨에서 연쇄살인을 하던 커플이 있었다. 찰스 스타크웨더와 카릴 앤 퍼게이트가 그들인데, 나이가 19살, 13살이었다. 이들은 약 10여 명의 사람을 살해했고, 1959년 찰스는 전기의자로 사형, 카릴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영화의 흐름도 실제 찰스의 범행과 매우 비슷하게 진행한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주인공의 태도가 비정상적으로 차분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을 죽이면서 감정의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로 추측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이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한 비정상적인 인물일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사랑을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행위가 비정상인 상황에서 두 사람이 갖는 감정 역시 '정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키트가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을 보면서도 홀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닮았다.
감독 테렌스 맬릭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이후 테렌스 맬릭의 작품들을 보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마쳤으며, 서른 살이 되기 전에 MIT에서 철학과 조교수로 강의를 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서른 살에 저예산으로 이 영화를 만들어 감독 데뷔를 하자, 헐리우드에서는 천재 감독이 나타났다는 반응이었다. 영화와 관련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놀라운 영화를 만들면서 등장한 것이다.
데뷔 작품부터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화는 영상으로 철학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만든 모든 작품은 뛰어난 영상 이미지와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철학적 의미를 모색하는 장치를 내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극단적 무심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를 생각하면, 영화가 단순히 미장센으로서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적 상황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지만, 영화에서도 두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열정도, 의욕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좀비'같은 인물인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엄청나게 성장하고, 물질문명의 첨단을 달려왔지만, 70년대의 미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베트남 전쟁을 일으켜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극심한 자본주의의 폐해에 저항하는 히피운동이 일어나고, 이때부터 미국에는 남미에서 들어오는 마약이 급증하면서 마약중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너는 왜 노력도 하지 않고 절망하며, 분노하는가'라고 충고하는 건 꼰대가 하는 말이거나, 자본의 비웃음일 뿐이다. 70년대 미국의 청년들 가운데 특히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평생 다른 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자기가 살던 마을에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부'는 고르게 퍼지지 않았고,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커졌으며, 욕망의 대상은 주로 대도시에서 발생하고, 집중했다. 발버둥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갇힌 것같은 답답한 상태의 청년들 가운데 일부는 대도시로 떠나고, 일부는 체념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극히 일부는 범죄자가 된다.
미국의 평범한 하층민은, 하루 노동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본다. 주급을 받으면 월세를 내고, 일주일치 식량을 구입하고, 다시 주중에는 노동을 하고, 주말에는 비 새는 지붕을 고친다.
평생 이렇게 살 것이 뻔하다는 걸 아는 청년들은, 이 삶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무조건 이 낡고 더러운 고향을 떠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키트는 극단적 방법으로 고향을 떠난다. 그는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아마도 자기 부모를 먼저 살해하고 홀리의 집을 찾아온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홀리의 아버지를 아무렇지 않게 살해한 것이고, 계획적으로 홀리를 데리고 떠난 것이 아닐까.
이후,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일관성이 있다. 그를 추적하는 현상금 사냥꾼들을 살해하고, 자기와 함께 쓰레기 청소부로 일하던 동료의 집을 찾아가 그를 죽이고, 그 동료를 찾아온 남녀를 지하실에 가두고 총을 쏜 다음 도망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두 사람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살해한다.
하지만 키트가 죽이지 않은 두 사람이 있는데, 부잣집에 들어가 주인과 하녀를 감금하고 나올 때, 이 두 사람은 살려둔다. 왜 죽이지 않았을까. 부자가 키트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기 때문에? 저항하지 않고, 신고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찰스와 홀리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오직 부자와 부자의 하녀만 살려두었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키트가 살해하는 대상이 특정 계층이나 계급에 있지 않다는 걸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즉 키트는 20대 청년이지만 대단히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냉혹한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시골 구석에서 배우지 못하고,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서 비껴 있는 소외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외'는 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키트는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것을 자각한다는 것은 사회와 자기의 위치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키트는 그럴만한 지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가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을 읽으면서 키득거리는 것을 보면, 그가 문맹은 아니라는 것이고, 어느 정도 학교 교육을 받았다는 걸 의미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로 보긴 어렵다.
건조하고 냉담한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테렌스 맬릭의 관점은 키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감정을 드러내거나 이입하지 않는 것, 그래서 오로지 인물의 행위만을 관찰하면서 인물과 상황을 객관화하고, 관객으로하여금 인물의 감정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장치는 이후 짐 자무시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과 같은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철학적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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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앵그리 애니〉
아래로6★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레벤느망〉에서 주인공 안은 두 번의 임신중지를 시도한다. 뜨개질바늘을 사용해 혼자서 한 번, 불법 시술소에서 또 한 번. 〈레벤느망〉은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비껴가지 않는다. 안의 거친 호흡과 고통스러운 신음, 날카로운 시술 도구가 안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으로써 ‘불법’이라는 추상적 규범이 초래하는 위험과 이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수치심을 고발한다.
〈레벤느망〉의 배경은 1963년의 프랑스다. 〈앵그리 애니〉는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을 다룬다. 두 아이가 있는 엄마 애니는 임신중지가 가능한 곳을 수소문해 한 서점을 찾는다. 서점 직원은 찾는 책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혹시 모임에 온 것이라면 커튼 뒤쪽으로 가 보라고 말한다. 커튼 뒤에는 ‘불법이지만 비밀은 아닌’ 일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임신중지가 필요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들에게 사려 깊은 태도로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임신중지에 어떤 도구를 활용할지 하나하나 일러주고, 모든 궁금증에 상냥히 응대한다. 겁에 질려 그곳을 찾은 여성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그들은 MLAC, 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활동가다.
이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애니는 임신중지를 위해 침대에 눕는다. 의사 한 명과 활동가 둘이 애니 곁에 있다. 그들은 애니에게 거울로 자궁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기 위함이다. 의사는 애니가 불편함을 느끼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활동가는 애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내내 곁을 지킨다.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끝났다고요?” 임신중지가 마무리되자 애니가 깜짝 놀라 묻는다.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애니에게는 이토록 쉽고 간단하고 안전하게, 심지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임신중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레벤느망〉의 임신중지 장면과 달리, 〈앵그리 애니〉의 임신중지 장면은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영화가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이 어떤 환경과 맥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MLAC 덕에 공포가 안도로 바뀐 애니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경험에 계속 잊히지 않는다. MLAC의 도움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은 안전하고 믿음직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기부금 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됐다. 그들의 활동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커다란 평온에 감명받은 애니는 순수한 호기심이 인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불법 행위를, 심지어 비밀리에 진행하지도 않는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데, 애니는 그런 그들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애니에게도 각성의 순간이 온다. MLAC 조직이 여러 곳에서 활동하긴 했어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모든 여성을 돕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여전히 많은 여성이 위험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이 이 과정에서 죽었다. 애니의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애니는 본격적으로 MLAC 활동을 시작한다. 활동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조금씩 수정해나가고, ‘생명 파괴’ ‘문란함’ 등의 낙인 때문에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얼마나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도 직접 대면한다.
애니가 MLAC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영화의 질문은 확장된다. 〈앵그리 애니〉는 그저 임신중지의 합법화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더 크고 깊은 질문이 담겼다. MLAC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활동가, 의사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오랫동안 단체에서 의사를 돕던 활동가들이 직접 임신중지 시술을 집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MLAC의 의사들이 반발한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전문가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의사 없이 임신중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출산을 인류의 탄생 때부터 서로 도우며 해왔고, 시술법이 발전한 덕에 임신중지의 절차가 비교적 간단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MLAC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이는 남성/국가/전문가 집단이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애니는 화를 내는데(‘앵그리 애니’), 그 이유도 이 때문이다. MLAC의 활동이 큰 이슈가 되어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으나 합법화가 의료 기관이 그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MLAC에서 가능했던 여성들 간의 연대, 여성 경험의 가시화 등은 배제된 채(즉 MLAC에서 여성들이 쌓아 온 역량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채) 여성이 다시금 남성/국가/전문가의 수동적 객체로 위치지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애니는 화가 난다. 임신중지가 합법화된 후 병원에서의 임신중지는 위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여성을 다시금 외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MLAC 활동을 하며 애니가 가족에 ‘소홀해지는’ 과정과 이로 인한 가족 내 갈등을 통해서는 여성이 가사노동의 책무 때문에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는 상황을 짚기도 한다. 〈앵그리 애니〉는 단순히 낙태죄 폐지가 진보·정답이 아님을, 여기에는 이를 초과하는 다양한 결의 질문과 고민이 동반되어야 함을 보인다. 임신중지에 관한 단편적 이해와 서사를 넘어, 여기에 무수히 많은 이슈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이는 이 영화는 낙태죄가 페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후속 입법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무책임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임신중지 이슈에 관한 필람작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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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치곤 심심하게 격려하는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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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될 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할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샤다. 씩씩한 아샤. 아샤는 로사스에 살고 있다. 로샤스는 마법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왕은 매그니피토다. 매그니피토는 1년에 한 번씩 지역 주민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매그니피토를 마음속으로 깊게 존경하고 있는 아샤.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고 ‘성덕’이 되기 위해 왕의 수습생이 되기 위한 면접을 신청한다. 두근두근 설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면접 당일날이 됐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샤의 꿈이 깨졌다. 매그니피토에게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아샤. 아샤는 매그니피토의 꿈을 제지하기 위해 또 다른 소망을 키우기 시작한다.
소원을 빌어
이 영화의 핵심은 꿈이다. 사실 꿈이라는 소재를 예고와 포스터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시>는 꿈을 단순히 소재로만 쓰지 않았다. 플롯의 핵심으로 가져온 것이다. 대표적으로 문제의 발생과 해결방식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영화가 상정한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조명하고 싶었던 건 소원의 낭만적인 속성이다. ‘내가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바라는 것처럼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막연한 희망을 다룬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도 이런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또 이 희망을 이뤄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 영화의 위기상황은 ‘이 희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룰 때 발생한다. 일의 마무리는 글쓴이가 위에 적었던 다른 꿈의 속성에 근거해서 끝난다.
플롯의 핵심이 아니더라도 꿈을 소재로 다룬 방식도 흥미롭다. 인물의 내면과 꿈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있기도 하고 상징화된 무언가를 캐릭터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 두 요소는 영화를 상큼 발랄하게 만드는 중요한 소재기도 하다. 우선 인물과 꿈의 관계도 영화가 생동감이 생기는 요소기도 한다. 인물들이 꿈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꿈에 대해서 어떤 리액션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 두 질문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캐릭터들의 모습은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디즈니의 동화책에서도 읽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또 영화 캐릭터에 ‘별’과 ‘마법’이 등장하는 이유도 꿈이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은 영화에서 특별히 힘을 줬다. 꿈의 속성만 강조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중요하게 강조한 것이다.
동화책을 읽듯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기획한 의도가 무엇인지 체감이 된다. 글쓴이는 디즈니가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 100년 역사를 이 <위시>를 통해 핵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위시>의 핵심은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격려다. 사실 이 격려가 영화의 소재로 쉽게 전달할 수 있어서 설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 전제조건을 아래에 두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인어공주>도 ‘인어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을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터팬>도, <백설공주>도, 심지어 <소울>와 <엘리멘탈>, <주토피아>도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디즈니 100년간의 필모그래피를 한 번에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을 <위시>의 핵심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전적으로 동화처럼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음과 동시에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풀어쓰자면 이 영화 플롯의 연결고리들이 왠지 불안정하다.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글쓴이가 지금 앉아있는 카페 사장님에게 A라는 메뉴를 시켰다고 하자. 그런데 사장님은 느닷없이 ‘A는 별로니까 그냥 B 드세요!’라며 새로운 음료를 가져온다.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적다. 사장님은 글쓴이와 소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앞 문장에서 적었던 예시 사례 같은 느낌이다. 어떤 캐릭터가 있으면 이 영화의 특정 사건이 일어날 일이 없다. 그런데 캐릭터 각자 자기 개성은 강해서 이질감이 든다. 또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근거가 부족해 다른 캐릭터들이 수습하기 바쁜 형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존재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쉽다. 또 어떤 관점에서는 인물들이 상호 간의 작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룰 하에 행동한다. 주인공 아샤의 친구들이 그 근거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를 상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문제 해결까지 개성 있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내 납작한 채로 뭉특한 것이다.
양가감정이 드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과 아쉬운 것이 같다. 바로 별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별은 사랑스러운 매력을 풍기며 중반부 이후를 이끈다. 별은 정말 귀엽다. 특히 '힝-' 하는 표정이 아주 인상 깊다. 이 영화가 윗 문단에서 썼듯 상투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런 플롯에 별 캐릭터는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실 이 영화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별 때문이라도 글쓴이는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주인공 아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이유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이 있다. 글쓴이는 이 별의 존재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생각한다. 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모호한데, 이 영화가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 별의 정체를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풀었다면 이야기에서 의문부호가 드는 지점이 확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섬세하기 챙기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이 캐릭터를 기획한 의도가 궁금해진다. 다른 캐릭터들은 디즈니의 기존 필모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요소가 있지만 별에겐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별은 그냥 단순히 귀여우면서 일만 해결하라고 들어간 캐릭터인 걸까? 단순히 캐릭터가 귀여운 것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차지한다면 사실 그동안 봤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에 좀 못 미치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안 나요
이 영화의 장르 특성 중 하나는 뮤지컬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들어간 삽입곡이 별로 기억 안 난다. 최근작 <엘리멘탈>에서 Lauv가 불렀던 노래가 인기를 끌고, <겨울왕국>에서 ‘Let it go’가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는 것과는 영 정반대다. 그런데 영화에서 음악이 중요하게 들어간다. 플롯을 잇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이런 물리적인 분량과 디즈니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 본다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이 영화가 확실하게 성공하하고 있는 지점도 분명 있다. 바로 기존 디즈니 영화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영화 대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몇 장면은 직접 비유하기도 한다. 또 이 영화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장면이 몇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디즈니의 팬들이라면 한 번쯤 관람을 고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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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의 씁쓸한 뒷면
이 글은 영화 [판의 미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기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혼자서 책조차 읽을 수 없었습니다. 받아쓰기는 늘 30~40점을 오갔죠. 엄마는 속이 터져 한글 개인 과외라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속 편한 아빠는 그런 거 다 때 되면 한다며 저를 품에 안고 파란 물고기가 바다로 간 이야기를 서른마흔다섯 번째로 읽어주셨죠.
딸이 드디어 한글을 깨우친 그날. 아빠는 신이 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제게 동화책 다섯 권을 선물해 주셨고 그 책은 부부 싸움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바로 동화의 실제 모습. 그러니까 팥쥐와 팥쥐 어머니의 알고 싶지 않은 결말이 담겨있는 '잔혹동화'였기 때문입니다. (참고 1)
덕분에 저는 생애 최초로 받은 조기 교육의 결과 동화가 얼마나 잔혹한지 알게 되었고 산타 따윈 없다는 것을 너무도 일찍 알게 된 시니컬한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사준 동화책에서 아는 글자가 나왔다며 환호성을 치는 저를 보며 쟤를 어쩌누.라는 말을 늘 하셨었는데. 결국 이렇게 커 버리고 말았죠.
영화 [판의 미로]는 스페인 전쟁(내전) 상황에서 오필리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제 겨우 한글을 깨친 제가 읽은 진짜 동화처럼 잔혹하고 또 잔인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기이함과 신비함이 섞여 정말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죠.
영화 전체가 암울하고 어둡지만 오필리아의 환상과 현실의 대비로 인해 더더욱 아름답고 슬픈 영화입니다.
이게 어찌 15세란 말이요
나도 무섭다고요.
사진출처:구글 YTN Science/익숙하지 않거나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개봉 당시,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였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동화 같은 분위기의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을 방문했죠. 그 결과 개봉관마다 학생이고 보호자고 할 것 없이 울어 젖혔다는 전설의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동화의 기본 공식을 익히 알고 있죠.
착하고 순진한 주인공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만나며 시련을 겪지만 결국 극복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야 디폴트죠.(인어공주 제외)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큰 줄기 자체가 스페인의 내전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한국 영화 [밀정]을 생각하면 편하실 겁니다. 내부의 스파이가 있고 그를 통해 정보를 얻어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이야기가 주가 되죠. 그 혼란 속에서 어린 오필리아는 임신한 엄마와 낯선 환경 속에 있게 되고. 그 안에서 만난 요정들과 작고 큰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화에 나오는 "의붓"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지만. 이 영화의 대위는 그 수위를 이미 진작에 넘어버린, 너무도 잔인한 사람입니다. 의심 하나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활자 그대로 때려죽이는. 오필리아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뱃속의 아들만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고지식하고 자신의 명예를 누구보다 생각하는 그런 자존심 밖에 남지 않은 사람 말입니다. 그가 벌이는 살인 혹은 살육의 행각은 지금의 제가 보아도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오필리아의 모험 속에 나오는 괴물들 마저 기괴하기 짝이 없죠. 콩쥐팥쥐에서 나왔던 두꺼비는 귀여울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두꺼비와 오물은 물론. 모든 아이들을 울리기 충분했던 그 "손바닥 괴물"까지 나옵니다. 요정이 잡아먹히는 건 뭐 말할 것도 없죠. 저는 정말 이걸 다 오필리아가 겪었다면 다시 기억을 찾아 공주가 된다 해도 PTSD에 걸릴 것이라는 걱정이 더 앞섰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제가 어릴 적 접했던 동화의 진짜 모습, 혹은 숨겨진 동화의 잔혹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익숙해진 달의 앞면이 아닌 숨겨졌던 달의 못생긴 뒷모습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우리가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 영화는 그런 동화나 판타지가 가진 아름다움을 걷어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화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어른들 틈바구니의 오필리아를 통해서 말이죠.
물론 배급사는 진짜 반성(?) 해야 합니다. 15세라뇨.
제가 보면서 먹던 딸기가 목에 걸렸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기예르모 델 토로, 세계관 최강자
역시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사진 출처:구글 etoland/이걸 디즈니가 받아줬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제겐 팀 버튼 감독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사람입니다. 음울하고 어둡죠.
제가 색깔과 냄새로 이 두 감독을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팀 버튼 감독은 총천연색에 가깝고, 녹기 시작한 눅진한 사탕에 가깝습니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텁텁함이 있죠.
그에 반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달빛에 비치는 물체의 그림자 같은, 무언가 생명력이 빠져 가는 죽음과 삶 그 경계에 가깝습니다. 대충 꿈도 희망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덕후들에겐 늘 시련이 존재합니다. 이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잘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그들의 유니버스로 올 수 있는 초대장을 꾸준히 날렸죠. 기괴하지만 각인되기 쉬운 그들의 예술세계는 이제 그들의 이름을 딴 장르로 기억이 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원더랜드가 되었습니다.
기예르모 감독의 취향(?)은 괴수물이었습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취향을 심하게 타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재능이 점점 영화 안에서 발휘되는 것을 보는 맛이 있는 감독이었죠. 다른 세계, 혹은 차원에서 불러들인 것 같은 생명체가 튀어나올 때마다 저는 환호성을 지른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감독 특유의 감성을 제가 좋아하나 봅니다.
이 영화의 판(Pan)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염소(혹은 양)가 악마 혹은 나쁜 기운을 불러오는 장난의 정령 같은 느낌의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로테스크 한 (혹은 쏘우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해 낸 감독을 보며 저는 또 한 번 내적 댄스를 춰야 했죠.
그의 또 다른 영화인 shape of water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합쳐졌기 때문에 더더욱. 저는 이 불행한 결말과 크리처를 사랑하는 감독에게 홀라당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저랑 똑같이(?) 음울한 동화를 보고 자랐지만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고. 저는 그냥 덕후가 되었네요.
이게 나라냐.그래서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꼭 해피엔딩 이어야 하나요.
사진 출처:구글 뉴스 포인트/오필리아 너무 사랑스러움. 드레스 입었을 때 너무 깜찍했다.
오필리아는 마지막에 죽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될 뻔했던 대위가 쏜 총에 맞아서.
그리고 그녀의 피가 지하세계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 닿아 그녀는 지하 세계 공주로 있었던 기억을 되찾고 백성들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이 영화의 끝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녀는 죽은 상태죠.
결말의 해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오필리아가 실제 지하 왕국의 공주였다는 사람들과 전쟁 때문에 힘들었던 아이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만든 판타지일 뿐이라는 부류로 말입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오필리아는 아직 아이입니다. 엄마의 죽음을 비롯한 자신 주변에서 생긴 많은 변화들이 아이에겐 방어 체계를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것이 극대화된 것이 자신이 만든 판타지 속의 세계인 것이죠.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고 목소리를 냈다 해도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이 조그만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들은 정보를 통합해 그 세계 안으로 자신이 숨어버린 것이죠.
그렇기에 결말은 더더욱 안타깝고 아픕니다.
오필리어는 고통만 가득한 기억을 안고 죽어버렸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은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죠. 이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작은 아이는 살아있는 동안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관을 찾았던 아이들이 울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공주님이 죽어버렸으니. 자신들에겐 익숙한 결말이 아니었던 것이죠. 해피엔딩이 디폴트가 아닌 동화는 그들에겐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테니까요.
슬프고 아름답고. 그럼에도 이해가 간다.
동화가 당신을 부를 때.
한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못하던 아이는. 잔혹 동화를 읽고 나서 더 잔혹한 세상을 조금은 더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도피하는 방법을 배워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오필리아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지금도 악착같이 동화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처한 현실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아이의 모습으로 본 전쟁의 힘듦과 무서움을 잘 그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씁쓸함과 행복함이 공존하는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더욱 그러하죠. 이젠 오필리아도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판타지가 아닌 현실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말입니다.
참고 1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정말 글이 그림보다 많은 책이었고 나는 내용보다는 내가 아는 글자를 찾아 읽기 바빴음. 근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다섯 살짜리 애가 "엄마 이거 젓갈!! 엄마 팥쥐가 젓갈!! 젓갈 되었대!!! 맞지!!"라고 하니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그 말에 엄마는 아빠를 베란다로 쫓아냈다고 함.
참고 2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중 크림슨 피크, shape of water, 판의 미로 이 세 편을 가장 좋아함. 감독은 멕시코 사람이었나 그런데 우리나라 전래동화처럼 거기 민화? 도 장난 없다고 한다.
[이 글의 TMI]
1. 정형외과 갔다 옴. 의사 선생님이 운동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안 할 거면 병원도 오지 말라고 함.
2. 집 꾸미는 재미에 폭 빠짐. 아 물론 며칠 안 가겠지.
3. 패딩 찾아야 하는데. 까먹었다.
4. 택배가 하도 와서 이젠 나도 움찔움찔 놀랄 지경.
5. 오늘은 빨리 자야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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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자유를 뺏긴 그들에게 남은 단 한가지 방법
자유를 뺏긴 그들에게 남은 단 한가지 방법
영화 <에틸라트로즈: 아프간의 기자들> 리뷰
감독] 압바스 리자이
시놉시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에 의해 카불이 함락되고, 아프가니스탄의 일간지 에틸라트로즈 소속 기자들은 기로에 선다. 이대로 피신할 것인가, 탈레반의 만행을 고발할 것인가. 결국 신문사 대표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시위를 취재하기로 결정을 하지만, 혹독한 시련에 직면한다. 다섯 기자가 체포되고, 두 명이 끔찍한 고문을 당한 것. 영화는 그렇게 탈레반의 거짓 약속과 아프가니스탄의 비통한 현실을 고발한다.
작년 카불공항에서 IS테러가 일어나면서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사실 개인적으로 IS라는 무장단체의 테러 자체는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무자비함은 지속적으로 봐왔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에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활주로까지 가득차있었고, 비행기 바퀴와 날개를 잡아서라도 이곳을 떠나려는 저 간절함과 극박함이 굉장히 충격적이고 안타깝게 다가와서 아직도 카불공항 테러는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에틸라트로즈: 아프간의 기자들>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관한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었다.
리더의 존재
영화 <에틸라트로즈: 아프간의 기자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바로 편집장이다. 이 팀의 리더였던 그는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언론에 대한 사명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원칙이 동시에 지켜지기는 솔직히 어렵다.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다면 기자의 사명감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편집장은 솔직하게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서 이 현실을 계속해서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왜 그래야 하죠?라고 반문한다. 탈레반 하에 있는 언론사는 그들에게 이용될 뿐 언론의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키며 남아있는 것은 허영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비통한 현실을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아프가니스탄 내부가 아니라 외부이기에 편집장은 어떻게 해서든 기자들을 무사히 다른 나라로 망명을 보내려 한다.
직원들을 안전하게 망명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관련 기관에 직원들의 서류를 등록시키고, 우선적으로 비행기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점점 압박해오는 탈레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국제기구 및 단체들과 화상미팅을 가지며 현재의 상태와 보급, 망명에 대한 도움 요청을 지속적으로 한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고, 직원들이 탈레반에게 잡혀들어갔다가 고문을 당하고 돌아올 때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던 편집장이 회의에서 자신의 직원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리더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남겠다는 직원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편집장의 모습은 끝까지 직원의 안전부터 생각한 이 시대의 참리더가 아니었나 싶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그토록 카불공항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비행기 바퀴에, 날개에 매달리면서 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안전일 것이다. 내일의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그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이유는 안전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탈레반은 굉장히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코란을 보지만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했던 기존 아프가니스탄과는 달리 탈레반은 엄격한 잣대로 코란을 해석했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 속에서 굉장히 큰 제약이 따랐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없었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직업을 가질 수도, 눈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하는 등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와 선택을 지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었던 환경이 파괴되면서 그들은 기본적인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다른 나라로의 망명을 원한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선택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자유의 부재는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공포와 비슷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에틸라트로즈는 과연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카불의 일간지로서 아프가니스탄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자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에틸라트로즈의 기자들이 다시 한 데 모여 보도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9-24 11:00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103호
209
2022-09-28 10:30
메가박스 백석점 2관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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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에 가려진 현실을 들추는 로맨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이 도시는 수많은 영화에서 로맨틱하고 사랑이 꽃피울 것만 같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등장했다. 파리의 예술에 대한 판타지가 집약된 로맨스로 유명한 <미드나잇 인 파리>나 시즌 2까지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의 단편 세 편을 각색한 자크 오다아르 감독의 <파리, 13구>는 다르다. 파리의 20개 행정구역 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 타운이 있는 파리 13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파리는 그저 흑백 필름의 배경일뿐이다. 우연적인 만남은 있을지언정 그 만남은 드라마 같은 낭만적 사랑 이전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그렇게 영화는 절제된 도시의 느낌과 배경을 통해 청춘의 사랑, 자유, 방황, 불안정한 삶을 온전히 전해 준다.
오다아르 감독이 그려내는 파리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다. 텅 빈 도시의 밤거리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불 켜진 창문들을 칸칸이 스쳐 지나간다. 네모난 칸 안에 분절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칸 안에서 비슷하게 또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채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 외로움은 서로 다른 캐릭터의 모습으로, 또 그들 간의 관계와 섹스 안에서 등장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에밀리(루시 장)',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쫓기만 한 '카미유(마키타 삼바)',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노라(노에미 메를랑)',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가 그들이다. 영화는 제각기 처한 상황과 사랑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이 우연히 스치고 만나는 시간과 그 시간에 담긴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첫 만남은 에밀리와 카미유의 만남이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룸메이트를 구하다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를 만난다. 첫 순간부터 카미유와 눈이 맞은 에밀리. 그녀는 함께 섹스를 할 때 비로소 자신을 옥죄는 가족을 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가장 자기 자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밀리만 카미유를 사랑한 일방향적 관계는 이내 틀어진다. 카미유와 다른 여자 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인 것을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카미유가 집을 나가 버리고, 에밀리 본인도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다음 만남은 노라와 엠버 스위트의 만남이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 그러나 그녀는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결국 신과 닮았다는 포르노 배우 엠버 스위트와 직접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엠버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포르노 사이트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를 보면서 엠버도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고, 둘은 개인 계정을 통해 화상 채팅을 이어가며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다음은 노라와 카미유다.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노라는 휴학을 선택한 뒤, 고향에서 원래 종사했던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 취직한다. 에밀리와 몸을 섞으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카미유지만, 그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노라는 카미유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연기한다. 이미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엠버에게 큰 위로를 받고 있던 노라에게 진실되지 않은 카미유와의 만남은 매력이 없다. 그런 노라를 보면서 카미유는 카미유대로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그녀와 재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카미유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이들의 만남은 항상 섹스와 쾌락이 우선하고, 그다음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뇌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그 고뇌가 단지 로맨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관계를 갖는 에밀리와 카미유, 그저 대화를 원한다는 노라에게 망설이지 말고 원하는 서비스를 말해보라는 엠버, 각자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관계를 맺는 카미유와 노라. 이것이 세 여성과 한 남성이 만들어 낸 관계도다. 이 관계도는 통상적인 사랑과 쾌락의 관계가 뒤바뀐 듯하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무시할 만한 무게는 아닌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인터넷으로 만난 관계는 진지할 수 없다는 통념을 조금씩 벗겨내는 감정, 희미한 호감이 있지만 적극적 구애로 전환하기는 애매한 감정이 빚어내는 현대적 사랑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때 영화는 단지 중심 없이 혼란스러우며, 두루뭉술한 사랑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림 밑바탕에 있는 스케치의 모습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 스케치는 청년들이 확신에 찬 사랑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대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 핵심은 불안감이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이에 사랑은 부차적인 이슈가 된다. 경제적 조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믿지 못하고, 그 불안감으로 인해 사랑을 잡을 날을 요원해진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만남은 어느 로맨스 영화처럼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우연은 곧장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은 사랑에 앞서 삶을 돌아보고 뒤바꾸는 기회가 되고,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기회가 된다. 에밀리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답답한 삶을 살았지만, 카미유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수입원이 사라지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며,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필요했을 변화의 순간을 초래한다.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가벼운 성욕 너머에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진짜 외로움이다. <파리, 13>가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흑백으로 담아내어 전달하려는 건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재의 사건과 대화를 인물들을 둘러싼 과거의 배경과 사연으로 눈으로 돌린다. 대만계인 에밀리의 가족을 통해, 카미유의 가족을 통해, 화상 채팅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왜 그들이 사랑에 집착하고 또 사랑을 알지 못하는지를 납득시킨다. 적나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카미유가 동생 에포닌과 오해를 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외적으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이들이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은 덜 섹슈얼하더라도 그 어떤 장면보다도 농도가 높고, 외로운 청춘들의 욕망은 깊은 계곡을 넘어 낭만적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네 주인공의 만남과 욕구, 사랑의 서사를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감각적 요소, 특히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의 활요이다. 우선 영화는 흑백 촬영을 선택해, 파리에 기대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주었다.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도시의 색을 없앴다. 그 덕분에 쾌락과 섹스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다. 자칫 매우 자극적인 영상의 향연일 수 있었지만 파리라는 도시를 이루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제한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의 존재감은 네 주인공의 삶의 무게를 극대화한다. 내용이 전환될 때 들려오는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질적인 인상을 준다. 이는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사정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들의 이면을 음악으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 따르면 “<파리, 13구>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사는 등장인물이 성취감을 얻고, 성적인 면에서는 정체성을 깨닫고 쟁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포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 13구역에서 성장통을 겪는 네 명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배경과 문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육체적 쾌락에서 시작해 낭만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파리의 색다른, 또 색이 없는 사랑을 그려낸다.
A(Accepatble, 무난함)
낭만을 잠시 버린 파리의 색다르고 색 없는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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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스포없음)
+ 매트릭스1 오프닝 초반 장면 리뷰
+ 모달 MODAL 101 / 그 외의 상징 해석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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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외계+인 2부> 메인 예고편
새해를 열 강력한 클라이맥스가 온다! [외계+인] 2부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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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예고편
사라지는 아이들, 목숨을 건 구출 작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실화다! 아동 성범죄자를 추적하는 정부 요원 ‘팀 밸러드’. 288명의 범죄자를 체포한 에이스 요원이지만, 정작 피해 아동은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신매매 조직의 거래 현장 잠입에 성공한 ‘팀 밸러드’는 납치되었던 8살 소년 ‘미겔’을 구출한다. “아저씨는 아이들을 구해주는 사람이죠? 그럼 우리 누나도 찾아주세요” 피해 아동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한 ‘팀 밸러드’. 그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거대 인신매매 조직에 잠입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는데…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NEW 영화 예고편, 미공개 독점 영상 등을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