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7-05 00:19:50
[BIFAN 데일리] 찌개와 어항의 소리
영화 <독친>

감독] 김수인
출연] 장서희, 강안나, 최소윤, 윤준원 외
프로그램 노트]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댔지?” “알았어, 알았어.” 학교에 데려다주던 엄마의 잔소리를 적당히 웃어넘기는 듯하던 고등학생 딸은 그날 세상을 영원히 등지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학교폭력,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 등 통상적인 청소년 문제를 중심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주변인 증언을 확보하면서 처음에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오묘하게 뒤틀린 모녀 관계를 발견하게 되는데….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장서희가 딸 인생의 성공을 위해 그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표독스러운 엄마 역을 맡아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친다. 고생스러웠던 지난 삶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식의 인생을 통제하고드는 폭압적인 부모의 행동이 얼마만큼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현실 밀착 스릴러로, 관객에게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박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참으로 기묘하다. 코앞에서 싸우지 않아도 갈등은 감지되고, 통화의 일면만 듣거나 인사치레 같은 말만 들어도 상대와 관계의 거리감을 쉬이 가늠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펼쳐지는 엄마 혜영과 딸 유리의 대화처럼, 유리와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처럼.
혜영은 일에 바쁜 와중에도 자녀 교육을 끔찍하게 챙기는 엄마다. 학원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따뜻한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밥상에 내놓는다. 딸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꽁치찌개를, 두뇌 발달에 좋다는 이유로 늘. 꽁치찌개가 끓는 소리는 어쩐지 거실 어항의 산소 발생기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기른다는 것과 잡아먹는 것의 소리가 같아진다는 것,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독친은 그 소리가 들리는 지점을 포착한다.

*이하로 영화 <독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배우 장서희는 얼굴 가득 표정을 잘도 담아낸다. 피로와 짜증, 노력과 애착, 불안과 추궁, 아집과 독선 같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인 혜영의 얼굴을 하고, 그 감정들의 농도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모든 것을 수치화해 등급을 매기는 일터에서 듣는 닦달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지친 노동자의 것인 동시에, 자식을 향한 지독한 마음이 뒤섞인 것이다.
호러 영화가 아님에도, 엄마 혜영의 표정에서, 딸 유리의 표정에서, 냉한 기운이 자꾸 읽힌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이 영화에서 목격한 것이 애정을 가장한 폭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놓고 펼쳐지는 폭력도 소름 끼치지만, 애정을 가장할 때 더욱 교묘하게 피부 바로 아래 끼치는 소름이 있다.
애정을 가장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상대를 직시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면서, ‘너를 위해’라는 말로 칭칭 동여맨 폭력에 몇 번 타격감을 느끼다 보면, “내가 잘못된 건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폭력의 가해자를 탓하지 못하는, 그러다 또 그런 스스로를 탓하는, 생각의 굴레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무력해지기 쉽다.

그럴 때 무심한 말들은 아프게 와 닿는다. 무심하다는 건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거기에 진심 어린 애정은 없으므로. 담임 기범과 주변 친구들이 유리를 볼 때 집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애, 비뚤어질 이유도 없고 우울할 이유도 없고 그냥 반듯하고 행복한 애일 거라고만 봤듯이. 그러나 친구들은 이후 형사들의 질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이상했다고 말한다. 학교에 찾아와 예나를 찾는 혜영을 보며, 불쾌를 기민하게 감지하고 자리를 피했던 아이들이다. 결국 갈등은, 아픔은 어렴풋하게나마 감지될 수 있다. 누구도 유리를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에야 유리에 대한 기억들을 조각조각 모으다 보면, 사랑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다면 거기서 인간이 죽어가도 우리는 모르겠구나 통감하게 한다.

영화 속 아이들은 버티다 무너지기도 한다. 라이터로 마시멜로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속눈썹을 올릴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다짜고짜 담배를 의심하는 시선을 던지는 것은 어른들이다. 의구심의 시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짐을 얹었다. 글만 보면 다 안다던 국어 교사는 결국 끝내 아무 것도 몰랐고, 정작 영화 후반부 유리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것은 철저한 타인의 몫이다.
사랑은 결국 직면하는 일이다. 예나는 직면했다. 유리를, 그리고 자신을. 그 결과 깨닫는다. 내가 주는 사랑이 상대에게 행복을 줄 거라는 오만,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은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편견. 예나는 그 결론에 이르게 한 마음을 “믿음”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그 믿음이라는 말은 사실 “속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기 전에 섣불리 내린 결론을 믿은 것이므로. 예나는 속단의 위험을 깨달았고, 속단하지 않고 깊이 애정을 품으며 앓기도 했으니,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공교롭게도 예나가 지망하는 직업 세계에서 꼭 필요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유리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는 친구들 사이, 영화과 입시생이라며 옛날 영화에서 흰 우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분위기를 가볍게 털고 넘어간 일화지만, 어쩌면 그의 말에도 일말의 진실은 묻어 있다.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진실이 들어있다. 이 영화에도 그럴 것이다.
극화되긴 했지만 혜영의 초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헬리콥터맘’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라며 신문에 나왔던 것도 옛날 일이 되었으니까. 사실 요즘은 혜영과 정반대 유형, 그러니까 자식에게 모든 걸 허용하는 방식의 양육자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곤 한다. 인터넷에는 10년 이상 교사 혹은 강사로 살아온 사람들의 고충담이 넘쳐나고, 전문가들은 그렇게 ‘건강한 거절’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작은 거절에도 위축될 것을 지적한다. 아이를 잘 양육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상이 될 수 없다.
유리의 행적을 담은 CCTV 속 날짜는 2024년 6월, 지금으로부터 1년가량 남은 시간이다. 그 안에서 유리는 ‘빅 스튜던트’라는 애칭의 커다란 백팩을 메고 움직인다. 항공모함처럼 물건이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무거운 가방이다. 학생 유리의 가방이 그렇게 무거워지기 전에, 민준이가 힘차게 동화책을 읽는 걸 끊지 않아도 될 기회가, 아직 1년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혜영과 유리처럼 달려가는 현실 속 수많은 곳에, CCTV 속 숫자가 작은 희망의 이스터에그가 되길 바랄 뿐이다. 끝까지 사랑의 시선 하나로 버티던 아이들의 마음이, 어딘가에는 가 닿길 바랄 뿐이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중 상영일정
7월 1일 19:30-21:14 CGV소풍 4관 (상영코드 338)
7월 4일 19:30-21:14 CGV소풍 4관 (상영코드 634)
7월 6일 11:00-12:44 CGV소풍 10관 (상영코드 809)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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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한 두 번의 큰 불행을 맞이한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병에 걸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표적인 불행의 한 종류 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남은 가족들은 그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견디고 또 견딘다. 그 과정은 꽤 길게 이어진다. 한 순간에 갑자기 없어진 사람은 평생 지워낼 수는 없다. 단지 일상을 살면서,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잠시 그 생각과 감정을 떨쳐내려 노력할 뿐이다. 남은 모든 가족이 마찬가지다. 황망스럽게 떠난 사람의 자리는 채울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떠난 사람이 원하던 삶의 모습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 사람의 빈자리는 크지만 그것을 채우려 애쓰며 보내는 시간은 삶의 의지를 더 다지게 만들기도 한다. 때론 절망적인 감정들이 괴롭히지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어느덧 그 사람이 있었던 그 자리에 자신이 서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큰 슬픔과 불행을 맞았지만 그것이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 넘기고 극복하는지가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주장 송태섭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과거에 크게 유행했던 코믹스 [슬램덩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코믹스의 주인공들이 소속된 북산고와 산왕고가 토너먼트에서 만나 대결을 벌이는 경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경기 장면 중간중간에 플래쉬백으로 북산의 부주장인 송태섭의 과거를 끼워 넣었다. 기존 코믹스에서 주인공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서사는 충분히 담겨있었고, 나머지 멤버들인 채치수, 정대만의 뒷 이야기도 꽤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하지만 송태섭의 서사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었다.
이번 영화에서 보이는 송태섭의 과거는 꽤 슬픈 사연이 있다. 송태섭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었고, 뒤이어 태섭에게 농구하는 법을 알려주던 태선의 형 준섭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태섭만 남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태섭이 황망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태섭은 준수한 농구 선수였던 형 준섭의 뒤를 이어 농구 선수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늘 형의 그늘에 가려 그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된 플래쉬백을 통해 태섭의 성장 이야기가 꽤 큰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다.
송태섭은 가까운 사람을 두 사람이나 잃었다. 가족이 의지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형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태섭은 자신이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만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는 못한다. 형을 뛰어넘는 농구 실력을 가지지 못한 그는 계속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때 들어가게 된 게 바로 북산고의 농구팀이다. 이 팀의 멤버들을 만나 그는 완전히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송태섭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코믹스에서 보았던 강백호와 서태웅의 모습도 그대로 담겨있지만 산왕과의 경기에서 가장 집중하는 건 송태섭이 경기 중에 만나는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 이겨내는지가 중심이 된다. 더 나아가 송태섭이 북산에 어떤 존재인지 중점적으로 화면에 담는다.
박진감 있게 펼쳐지는 북산과 산왕의 농구 경기
이야기가 송태섭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멤버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불꽃 남자 정대만, 고릴라 채치수, 에이스 서태웅, 천재 강백호도 경기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서 이들을 보던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나머지 멤버들의 과거 서사를 자세히 제시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코믹스를 보지 않았던 관객이라면 이들의 행동이나 능력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존 팬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만족도를 보이겠지만 [슬램덩크]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원작이 가지고 있는 유머의 상당 부분을 덜어냈다. 가족을 잃은 송태섭의 성장기에 좀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분위기보다는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다. 기존 주인공인 강백호가 가지는 유머러스하고 엉뚱한 모습을 완전히 덜어내지는 못하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인 산왕과 펼치는 북산의 대결 자체는 무척 긴장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경기 안에서 송태섭이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농구 영화답게 경기 모습은 굉장히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나 농구할 때 들리는 소리들이 인상적이다. 공 튀기는 소리, 신발이 미끄러지는 소리, 골이 들어갔을 때 공이 그물을 통과하는 소리 그리고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소리들이 실제 관객이 경기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플래쉬백에서 보이는 길거리 농구 장면도 마찬가지다. 드리블을 하며 상대방을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은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역동적으로 담겨있다.
과거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영화다. 그 당시 TV 애니메이션과 코믹스로 접했던 팬들은 그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과 경기모습이 좋은 감정을 떠올리게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원작 코믹스를 직접 그리고 만들어냈다. 과거에 다소 소홀히 다뤄졌던 송태섭이라는 인물을 주심으로 북산의 마지막 경기를 보여주면서 재미있는 농구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들어냈다. 과거 플래쉬백이 조금 많이 들어가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다는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과거 코믹스의 분위기와 감정을 무척 훌륭하게 영상으로 옮긴 영화다.
이 영화는 송태섭이 북산이라는 팀에서 자신의 형이 가고자 했던 길을 똑같이 가게 되는 이야기다. 더 나아가 형의 그늘을 지우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무척 흥미롭게 담겨있다. 과거 원작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송태섭의 성장이야기와 경기를 보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또한 원작을 잘 모르더라도 농구라는 스포츠의 박진감을 느끼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북산이라는 팀원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영상으로 만난다면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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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불호큰인줄 알았다!
<브로큰>이라 보고 ‘블호큰’이라 불렀다. 개봉 당시 관객에게 외면당한 영화의 운명은 아이러니하게 OTT에서 달라졌다.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넷플릭스 영화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 차마 극장에서 돈을 지불하고 이 영화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관객들은 그 호기심을 OTT로 풀고 있는 듯하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 스토리 설정에 따른 호기심, 하정우의 날 것 액션 등 아예 장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지만, 다수의 부분이 작품을 향한 관객의 관심을 가차 없이 부러뜨린다.
하나뿐인 동생 석태(박종환)가 사라졌다. 그리고 동생의 아내 문영(유다인)도 자취를 감췄다. 민태(하정우)는 음성 메시지를 남긴 채 연락이 두절된 동생을 찾기 위해 형제가 몸담았던 조직을 찾아가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찾아 나선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과 같은 흔적을 쫓는 소설가 호령(김남길)을 만난 민태는 호령의 소설 ‘야행’처럼 동생의 죽음이 예견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의뭉스러운 문영을 찾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애증의 관계에 놓인 동생의 죽음, 홀연히 사라진 동생의 아내, 그리고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 이 사건이 오롯이 담긴 베스트셀러와 이를 집필한 작가. 초반 설정은 좋다. 한때 조직에 몸담았던 이가 동생의 죽음에 둘러싼 일들을 파헤쳐가면서 수면위로 드러나는 진실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얼마 되지 않아 이 호기심은 반감된다.
영화가 제목을 따라가듯 캐릭터와 이야기가 따로 논다. 본격적으로 민태가 사건을 추적하는 가운데, 호령의 실체가 드러난다. 비밀로 감춰진 문영과의 관계로 궁금증을 야기시키는 호령은 민태와 더불어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호령은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민태의 원맨쇼가 이뤄진다. 두 바퀴로 굴러가다 한쪽 바퀴가 고장 난 8t 트럭처럼 영화는 덜컹거리는데,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영화는 그냥 밀고 나간다.
민태 또한 날 것의 추적자로서 일임을 다 하지만, 공감대를 부여하는 서사가 약하다 보니 점점 설득력이 떨어진다. 죽은 동생의 범인을 찾는 형이라는 설정이야 이해는 되지만, 왜 저렇게까지 집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그 힘이 떨어진다. 물론, 사나이픽쳐스 제작 영화라는 점에 기인해 하드보일드 장르로서 날 것의 쇠 파이프 액션은 그 자체로 보는 재미를 더하지만, 앞서 소개한 단점이 상쇄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동생의 죽음에 둘러싼 진실도 예측 가능한 지점에 있어 그 반전의 쾌감도 크지 않다.
또 하나의 안타까운 부분은 배우들의 활용도다. 호령은 물론, 문영, 민태의 과거 조직 보스(정만식) 등 주변 인물들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머물거나 거세당하기 일쑤다. 호령은 분량이, 문영은 대사가 실종된다. 플래시백 대신 소설을 통해 고통의 삶을 산 문영의 내레이션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게 다다. 이 역을 맡은 유다인은 인물의 분량도 많지 않지만 표정으로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데, 그 존재감이 크지 않아 이마저도 잘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박종환, 임성재, 이설, 서현우, 정재광, 허성태, 차미경, 김시은 등 다들 한 연기 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그 활용도가 단순해 각 인물의 매력이 살지 않는다. 적은 분량이라도 임팩트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마저도 없으니 배우들의 연기는 이내 휘발된다.
연출을 맡은 김진황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사는 한 여인에게서 출발해 그에게 고통을 안기는 주변인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문영을 화자로 두자니 플롯 상 내가 염두에 둔 그림대로 가기 어려울 것 같았고, 고심 끝에 화자를 바꿨다”고 말했다. 어쩌면 화자와 장르가 바뀌면서 영화의 결함이 생긴 건 아닐까. 민태처럼 기존 이야기처럼 뚝심 있게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감독의 전작으로 디테일한 서사의 재미가 다분했던 <양치기들>이 더 그립다.
사진제공: 바른손이엔에이
평점: 2.0 /5.0
한줄평: 그러니까.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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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하지 않는 <그레타 툰베리>
오는 6월 17일 개봉을 앞둔 <그레타 툰베리>는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다수의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들에서도 상영된 스웨덴의 15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현존하는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만큼,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그레타의 모습은 어떤 부분이었을까.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레타 툰베리는 역대 타임지 올해의 인물 최연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줄은 알았지만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그녀의 명확한 행보는 알지 못했었다. 영화는 기후 변화 법안 마련 촉구를 위해 금요일마다 의회 앞에서 홀로 결석 시위를 하며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eature)’을 외치던 평범한 소녀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녀를 향한 반응은 갈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니?'부터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라는 차가운 시선까지. 만약 그녀가 후자의 말대로 결석 시위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면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31만 명이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이고 전 세계 106개국에서 청소년 기후 활동가들을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
'유능한 환경운동가가 되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보기 싫어하는 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풍파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열 받게 해야 되죠. 그러지 않으면 제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그린피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시셰퍼드의 창립자인 폴 왓슨 선장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이 다수에게 불편한 소리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이 기록물은, 환경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부터 자신만의 외침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까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레타의 행동들이 설사 퍼포먼스라 할지라도 그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생각만 많고 용기 없는 어른들보다 먼저 소리를 낸 그레타 툰베리에게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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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을 만드는 건 누구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왔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브로커> 등을 만들며 해외 유량을 끝낸 그가 드디어 자국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 류이치 사카모토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은 <괴물>. 감독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를 들고 와 관객의 시야를 가리고 ‘괴물은 누구게?’라고 묻는다. 이후 가려진 시야를 조금씩 넓혀가며 또다시 묻는다. ‘괴물을 만드는 건 누구게?’
| 다중시점을 통해 완성한 진실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의 걱정이 많다. 이상한 질문을 하고, 학교에서 상처를 입은 채 귀가하고, 심지어 담임인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에게 폭언을 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즉시 학교로 달려간 사오리는 진정 어린 사과를 받으려 하지만, 학교 측은 형식적인 사과와 더불어 이 사건을 덮으려고만 한다. 한편, 사오리는 우연히 미나토와 같은 반 친구인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 사건이 일단락되고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미나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동안 비밀에 감춰졌던 진실이 밝혀진다.
<괴물>은 초반, 제목처럼 주요 인물 중 누가 괴물인지 찾게 되는 영화로 인식한다. 사오리의 시점으로 보이는 미나토의 이상행동, 담임 선생의 책임감 없는 모습, 진실 규명은커녕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학교의 대처 등 사오리의 주변엔 죄다 괴물 같은 이들만 존재하는 듯하다. 더욱이 4학년 때와 달리, 뜻 모를 질문과 낯선 것을 넘어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아들이 낯설기만 하다.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사오리의 감정이입을 통한 괴물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영화는 관객을 보기 좋게 배신한다. 곧바로 이어지는 미치토시의 시점으로 영화는 흘러가고, 왜 미나토가 상처를 입었는지, 사오리에게 책임감 없이 앵무새처럼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는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교장(다나카 유코), 미나토, 요리의 시점이 이어지며, 사오리의 시점으로 시작한 이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처럼 다중시점을 통해 진실이 완성되는 <괴물>은 결국, 누가 괴물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의 시선, 사회의 시선으로 자신이 괴물로 살아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남을 괴물로 보는 어른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어른(괴물)이 아닌 두 소년의 순수한 모습,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본연의 마음(꿈과 사랑, 불안, 걱정 등)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관객은 자신의 시선으로 이 아이들을 판단했을 본인을 되돌아보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짓는다.
| 흰 선, 교열, 그리고 사회의 시선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 등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일본 사회를 비판 어린 시각으로 바라봐 왔다. 이 영화에서도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갖고도 그동안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감독은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듯한 이야기를 전한다. 극 중 사오리는 흰 선, 미치토시는 교열로 그들이 가진 강박과도 같은 제도와 규범을 강조한다. 등교하는 미나토가 흰 선을 밟자마자 ‘흰 선을 밟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내뱉고, 미치토시는 책, 잡지 등 오타를 찾으며 기뻐한다. 마치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제도와 규범을 건실하게 더 나아가 병적으로 수행한다는 걸 내보인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편부모 가정이라는 공통점에서 기인한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오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미치토시는 그 누구보다도 사회가 주는 시선의 공포를 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살이 타들어 가는 그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사오리는 홀로 열심히 아이를 키우려 하고, 외도로 죽은 남편에게 매일 같이 인사를 하며, 세탁소 일도 열심히 한다. 특히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으려는 그녀의 특성상 세탁소에서 일하는 설정은 묘한 교차점을 이룬다. 미카토시 또한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 선생님이 되었다. 걸스바 단골이고, 교열 악취미도 갖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이들과 더불어 차 사고로 손녀딸을 잃은 교장의 삶도 마찬가지다. 선생으로서 교장으로서 학교 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감과 중압감을 잘 안다. 더불어 중요한 건 자신의 의도가 아닌 사회적 시선이라는 걸 이미 통달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오리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반복하고, 이 사건을 마무리짓기 위해 미치토시를 교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사오리의 흰 선, 미치토시의 교열처럼 그 또한 학교 바닥에 껌과 얼룩을 손수 제거하는 등 사회적 시선에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고, 그 자체로 괴물이 되어간다.
|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건 어른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결국,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건 어른들이다. 요리에게 ‘돼지의 뇌’를 가졌다고 말하는 아버지 키요타카(나카무라 시도)나, 따돌림을 당하는 요리를 위한 미나토의 행동이 오히려 싸움이라 생각한 미치토시, 달리는 차 안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린 아들에게 대화가 아닌 MRI를 찍는 사오리 모두, 아이들을 지켜보거나 마음의 문을 여는 대신, 어른의 방식대로 조치를 취한다.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어른들의 시선이 빠지고, 미나토와 요리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후반부 이야기는 그래서 더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그 누구보다 상실감과 부모의 부재를 아는 두 소년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가까워진다. 학교를 포함한 사회의 시선에 눈치를 보면서도 이들의 우정을 두터워져 가는데, 동급생들에게 신발을 뺏긴 요리를 위해 자신의 신발 한 짝을 벗어주는 미나토와 자신의 아지트를 기꺼이 소개하는 요리, 그리고 조금씩 자신들의 우주를 키워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초반 이들을 괴물로 의심한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시간이 없어서,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먹고 살기 바빠서 같은 이유를 대며 순수한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고,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제단하고 판단하는 등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이 영화를 마주한다면 후회와 반성이 밀려올 것이다.
| 미스터리 장르로 얻은 것, 잃은 것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영화는 괴물의 실체보다는 괴물을 만드는 사회를 곱씹게 한다. 나도 그렇게 살았으니 너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라는 다소 위압적인 어른들의 자세는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태풍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자신들의 아지트에 도착하는 두 소년의 모습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전작을 통해 확인했듯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지막 시선은 언제나 사회를 향한다. 제대로 된 어른을 갖지 못한 아이들의 고된 여정은 이번에도 반복되는데, 감독은 다중시점을 활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고, 진실로 가는 여정을 긴장감 있게 연출한다. 이는 사카모토 유지가 집필한 각본의 힘이라고 생각하며, 감독은 어느 정도 대중적인 요소와 절충한 듯하다.
감독의 선택에 이견은 없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운 건 전작에서 느껴지는 감독 특유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마치 매끈하게 세공되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이러니하게 이 영화를 보면 감독의 이전 작품을 더 찾게 될 것 같다.
영화 <괴물> 스틸 / 제공 (주)미디어캐슬
극 중 교장은 음악실에서 만난 미나토에게 발설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비밀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어떻게든 뱉어야 하는 순간이면 호른을 부르라며, 있는 힘껏 숨을 뱉는다. 손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교장은 진실이 어떻든 이 사회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옥죄는 상황에 놓인다. 그녀의 응어리짐을 해소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호른 소리를 통한 아우성뿐. 괴물로 살아가는 교장의 유일한 맨얼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도 호른이 필요할지 모른다.
평점: 4.0 / 5.0
한 줄 평: <아무도 모른다>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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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트홈>, 괴물화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
넷플릭스 최고 히트작 중 하나, <스위트홈>.
내가 평상시 선호하는 장르(잔인함+ 폭력성+공포/ 크리쳐물)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스위트홈>에 열광하나"하는 궁금증에서 올해 초 정주행을 시작했고, 그 여정은 2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편당 50분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체감상 10~20분 정도 되는 것처럼,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이렇게 평상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에 푹 빠진 것도 참 드문 체험이다.
<스위트홈>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전제들!
'정체불명의 원인으로(욕망으로 추정) 괴물화가 되가는 사람들'
누가, 왜 괴물이 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욕망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그 욕망이라는 것도 비구체적이다. 욕망이 없는자가 있겠는가.
절망, 좌절을 심하게 겪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작품 속에서 정말 멀쩡해보이는 사람도, 차분하고 의롭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갑자기 괴물이 된다. 아무 이유없이. 아무 맥락없이. 허무하게.
(그러고보니, 긴급속보를 발표하던 대통령도 생방송 중에 갑자기 괴물이 된다.)
<스위트홈> 속 괴물들 1
<스위트홈> 속 괴물들 2
결국, <스위트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 세계관은 이것이다.
괴물이 되는 자와 여전히 사람으로 남은자 간의 '차이점'이 없다.
모두가 '잠재적 괴물'이다. 누구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너도. 나도.어떤 블로그 리뷰에서, <괴물화가 되는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논리적 허점>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괴물화가 되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괴물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은 절대 "괴물"이 안될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별거 아닌 일에도, '나 지금 피곤하다, 나 지금 힘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괴물같은 모습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올 때가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더 그렇다.
나에게도 "나쁜 어른, 나쁜 부모"의 모습이 종종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대하면서 "괴물"같은 모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별거 아닌 일에 소리지르고 화를 내며 윽박지른다.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뉴스 속 괴물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라고 욕을 하면서,
나와 그 사람들을 구분지으면서, '에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
나는 괴물이 아닌 것처럼, 나는 마치 "성숙한 어른"인 것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스위트홈> 속 '괴물'보다 더 악질인 '인간들'
<스위트홈>에도,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진짜 악질 인간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그 속은 더이상 사람이 아닌 괴물들.
<스위트홈>에 내가 끌렸던 이유를 이해했다.
원인불명의 괴물화에 수긍한 이유.
'나'도 언제든 '괴물화'가 될 수 있으니까.
<스위트홈> 메인 주인공 '현수'는 '특수감염인'으로 분리된다. 괴물이 되긴 되었는데, 다른 괴물과는 달리 여전히 사람의 본성이 남아 있는 존재! 괴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괴물의 무시무시한 힘과 사람의 자제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특수감염인.
나 역시 특수감염인이 아닌가.
코피를 쏟고 있는 특수감염인 '현수'
현수는 괴물이 되기 기전 폭포수 같은 피를 쏟는다.
'코피'는 중요한 상징이다. 코피가 마구마구 쏟아지는 것은 그 사람이 '괴물화'가 되고 있다는 전조증상이다. 일종의 신호다. '너 곧 괴물된다!'
쏟아지는 코피를 보며 자신이 괴물화가 되고 있음에 충격을 받은 <스위트홈> 속 등장인물
특수감염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괴물이 될 때 '코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스위트홈> 속에서 주인공 현수가 '특수감염인'인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이, 현수를 방출할 것인지 남길 것인지 '투표'하는 장면은 참 의미심장하다.
현수를 방출할지 말지 투표하는 생존자 주민들
특수감염인 현수를 추방할 것인가 우리와 함께 지내게 할 것인가.
무서워서 당연히 현수를 방출시키자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으나, 그 결과는 의외였다.
팽팽한 접전! 추방시키자는 사람들, 남기자는 사람들이 반으로 나뉜다.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도 언제든지 괴물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괴물은 무섭고 내쫓고 싶지만, 한편으로 그 내쫓겨지는 것이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으니,
쉽게 내쫓지도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폭포수 같은 코피를 쏟아내면,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도 괴물화가 되고 있군!'을 알아채고 겁을 먹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코피'를 쏟아내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스위트 홈> 살아남은 주민들은 괴물화가 되고 안되고의 여부를 떠나, 모두 자기만의 치부를, 자기만의 약점을, 자기만의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자국을 남긴다. 코피처럼 당장에 눈에 확 드러나는 자국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자국을 남기고야 만다.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거나, 상대방에게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거나, 상대를 근거없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등의 모습들..)
그 코피 만큼이나 빨갛고, 선명하고, 무섭고, 자국이 강하게 남아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무언가를, 밖으로 쏟아내면서 그것이 괴물화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수도.
나는 괴물이 아니라고, 괴물과 다르다고,
괴물과 나를 구분지으며, 내 코피를 슬쩍 슬쩍 닦아내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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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녀에겐 그 무엇보다 대화가 필요해
3일의 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박복자(김해숙)이다. 복자는 휴가를 앞두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복자. 유령인 채로 3일간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 휴가의 내용이다. 그 대신 조건이 있다. 복자는 현실세계의 그 어떤 인물과 대화할 수 없다. 단지 현실세계의 기억만 머릿속에 포착하는 것이 휴가의 목적이다. 주저하지 않고 딸 진주(신민아)에게 향하는 복자. 딸이 미국 UCLA에서 교수 일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던 복자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다. 바로 자기가 살던 고향 집에, 그것도 혼자 살고 있는 딸을 본 것이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답답해 죽을 것 같은 복자. 유령인 복자는 딸이 처한 처지를 옆에서 바라보며 그녀의 휴가를 완성한다.
이거 달라는 거 맞지
<3일의 휴가>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영화다. 이 영화의 목적은 가족영화로서 감동을 주는 것과 음식을 다룬 영화로서 관객들의 허기짐(?)을 유발하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 영화가 취한 전략은 ‘김해숙’이다. 김해숙 배우는 이 영화에서 순박한 어머니상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그 중 글쓴이가 기억하는 장면은 후반부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이 장면에 오기까지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 박복자가 딸 진주에 대해 깨닫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보여준 김해숙 배우의 표정연기는 진한 울림을 준다. 또 복자 역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딸 진주와의 대화 씬이다. 이 대화들은 영화 안에서 중요한 과제가 있다. 관객들이 ‘내가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해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김해숙 배우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연기지만 그래도 이 몫을 충실히 이행한다. 물론 상대역의 신민아 배우도 훌륭했다. 신민아 배우가 맡은 진주는 가족과 관련한 어두운 상처가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이 인물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이를 체화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으로 이 인물의 평소 말투는 어두운 내면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또 이 영화는 음식을 잘 다룬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배고픈 분들은 이 영화 보면 안된다. 대표적으로 화사한 조명으로 온기를 살린 촬영 방식은 음식의 생동감을 살리는 좋은 연출이었다. 심지어 요리하는 과정도 영화에 등장한다. 글쓴이는 멸치국수를 만드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면도 예쁘게 배열하고 국수도 푹 우려서 만드는데, 이 영화에서 가족영화로서의 특징뿐만 아니라 이런 '먹방'요소도 담고자 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음식 종류도 현실감이 있어 좋았다. 보통 이런 음식 영화(그것도 한국영화)들은 고기류를 잘 안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스팸김치찌개나 멸치국수 같은 소재들이 등장한다.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들이 등장해서 리얼리티를 높인 것이다. 물론 이야기 도중에 음식이 등장하는 이유도 타당하다. 가족의 의미를 강조하는 영화인 만큼 음식이 인물간의 대화를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줬어
<3일의 휴가>에 대해 변론을 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 영화가 너무 신파극이다’라는 코멘트다. 물론 이 영화가 익숙한 공식을 답습하는 감은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상황을 억지로 짜 맞춰서 관객을 울리지는 않는다. 윤리적인 거리를 붕괴시켜 관객을 억지로 울리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또 반대로 2023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3일의 휴가>를 보고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거야’ 예측하지 못할까? 글쓴이는 어떤 관객이든 이런 전개를 예상할 것이라고 본다. 두가지를 고려해서, 글쓴이는 마음을 열고 이 영화가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찾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이 윤리적인 문제, 그러니까 소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이냐에 대한 부분은 잘 지켰기 때문에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카페에서 핫초코라떼를 주문하고 ‘왜 이거 달아요’라고 사장님에게 물으면 뭔가 이상하잖아?
1차원적인 관계
당연히 이 영화의 단점도 느껴졌다. 일단 진주와 복자의 모녀관계다. 이 영화의 모녀관계는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어떻게 요약할 수 있냐?’가 중요할 텐데, 한쪽이 일방적이면 다른 쪽은 받아주기만 한다. 이게 지나친 탓에 글쓴이는 두 사람이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보통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 져주는 관계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는 심지어 어머니 복자가 유령이 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서로 물고 물리며 어머니로서, 딸로서 성장하는 서사를 가졌다면 관객 입장에서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름대로 이 모녀가 서로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의 연출이 그렇게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와닿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사실 복자 캐릭터는 모녀관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아니더라도 아쉬웠다. 바로 복자가 인물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복자는 유령이기 때문에 딸 진주와 대화할 수 없다. 이를 복자 입장에선 초반에 파악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리액션을 반복한다. 글쓴이는 이것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굳이 복자가 이렇게 행동할 필요 없는 것이다. 아예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불안정한 마무리
다음으로 아쉬웠던 점은 엔딩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인과관계를 무너트린다는 점에서 아쉽다. 영화 후반부가 되면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한참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은 이것과 상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이렇게 끝낸다면 가이드(장기영) 캐릭터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반대로 이 인물이 이 선택 중 다른 것을 골라도 영화 마무리에는 큰 차이가 없을 듯 싶다. 또 인물이 이 선택을 고른다는 것에 감정선이 얕기 때문에, 후반부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쓴이는 인물의 이 선택이 과연 정말 딸을 위한 길이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또 이 영화만의 개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콘셉트는 특이했다. 딸과 엄마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대화할 수 없다 / 음식을 바탕으로 가족 간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라는 점이다. 영화가 이 목표 말고 나머지에선 다 실패하고 있다. 모녀관계를 얕게 탐구해서 개성이 느껴지지 않고 코미디로 보기엔 애매하며 힐링물로 받아들이기엔 이웃들의 캐릭터가 아쉽다. 두가지 요소 말고 나머지 것들이 얕기 때문에 영화의 많은 요소들이 기존 작품들의 연장선상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모 영화도 생각나고, <사랑과 영혼>, <리틀 포레스트>가 연상된다. 이런 영화들을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신선하다고 느끼겠지만 이외의 사람들에겐 이 <3일의 휴가>가 진부하게 들릴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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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4]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접근
Rabbitgumi 입니다! 김혜수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내가 죽던 날 을 보고 왔어요.
자살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마무리 수사를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이 자살로 이르는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자살보다는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사람의 믿음과 도움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봐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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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거야. 이 복수의 끝에 영광 따윈 없다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멈출 수 없는 비극의 시작 《더 글로리》 12월 30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