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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플레2021-08-11 19:37:33

탈출만큼이나 중요한 상생

맥스 바바코우, <팜 스프링스>(2020)

 

 

 

타임 루프에 갇힌 인물들은 어디로 향할 수 있는가. 루프를 탈출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루프에 속박된 세 인물(나일스, 세라, 로이)을 응시하는 영화 <팜 스프링스>(2020)는 남녀의 로맨스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로이라는 제3의 인물이 나일스와 호응하는 지점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로이는 나일스로 인해 세라보다 먼저 타임 루프에 갇힌 인물이다. <팜 스프링스>는 루프에 빠진 인물을 셋이나 등장시킨다. 세 사람 모두 루프에서의 삶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영화는 충분히 실존적 고뇌를 다층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팜 스프링스>는 진중함 대신 장르의 질감을 덧대는 경쾌한 무드를 선택한다. 허무맹랑해 보여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감싸는 감정선 자체를 부각하겠다는 영화의 태도는,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로 전이되어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

 

 

 

 

로이는 루프 속에서의 삶을 전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일스를 증오한다. 그렇게 타임 루프에 갇힌 두 남자의 촌극이 벌어진다. 로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망쳐 버린 나일스에게 응징한다. 그는 나일스를 고통스럽게 죽이지만,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절대 루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로이는 병원 신세를 진 이후 심경에 변화가 왔다고 고백한다. 로이는 나일스에게 말한다. 너만의 안식처를 찾아라. 내면의 혼돈을 잠재울 안식처 말이다. 로이는 당연히 예정된 미래를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 자체를 수용한다. 딸이 이따가 자신을 곰으로 그릴 거라면서 사소한 일상을 긍정하려는 로이의 태도는 <컨택트>(2016) 속 루이스 박사의 심적 결단과도 맞닿아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을 만끽하는 로이처럼, 나일스도 안식처를 찾아낸다. 바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공허했던 그를 채우는 건, 진정한 사랑이다.

 

 

 

 

나일스는 루프 이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반복되는 하루에 속박된 채 살아왔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나일스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그는 우연히 세라를 루프로 끌어들이고 만다. 세라는 로이처럼 그 즉시 루프에서의 삶을 거부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나일스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세라에게 거들먹거린다.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루프 속에서 나일스는 흡사 신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하루의 리듬을 관장하는 절대자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일스가 루프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데, 나일스는 루프에 속박된 채, 무용함에 잠식된 인물이다. 루프에서 느끼는 권태감을 슬쩍 매만지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반복되는 안정감에 안주한다.

 

 

 

 

나일스는 루프에 남으려 하고, 세라는 루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나일스가 루프를 떠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에게 있다. 그는 루프에서 벗어난 상황을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반복에 익숙해져 있다. 세라는 어쩌면 나일스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인물이다. 우리는 오늘만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찾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세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루프에서의 삶은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로이처럼 성찰과 사색을 거쳐 실존적 의미를 발전시킬 때만 의미가 있는가? 어쩌면 루프에서의 삶이든 루프를 벗어난 삶이든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일스와 세라는 여전히 반복해온 루틴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인다. 영화는 두 인물이 루프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순간을 강조하지 않는다. 삶을 감각한다는 건, 어쩌면 고독이 아닌 상생에서 시작된다. 로이는 세라로 인해 그만의 안식처를 찾았다. 나일스와 세라 또한 서로를 들여다보고, 삶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따라서 함께하는 순간을 지속해서 담아내려는 <팜 스프링스>의 유쾌한 화법은 여러 장르의 결합과 변주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걸지도 모른다.



 

 


본 콘텐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은 '영화 <팜 스프링스>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작성자 . 드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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