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our bunny2021-08-14 10:21:28
<팜 스프링스>, 여름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나일스와 세라의 이야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팜 스프링스>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팜 스프링스>는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나일스(앤디 샘버그)와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세라의 여동생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 팜 스프링스 리조트는 사랑과 신나는 열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 '오늘'만을 살아가는 나일스는 이미 셀 수 없을만큼 많은 결혼식을 겪은 상태이다. 수많은 '오늘 결혼식'의 경험으로 앞으로 이어질 모든 사건들을 아는 나일스는 능숙하게 결혼식 축사를 얘기하고,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인해 세라가 이러한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우연히 나일스의 타임루프에 함께 갇히게 된 세라는 '오늘만 살게 된 시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나일스도 '오늘'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고,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현실을 인정한 세라는 나일스와 함께 파란만장하고 유쾌한 '오늘'을 살아나간다.
많은 '오늘'을 함께한만큼 둘이 나눈 이야기도 많았는데,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이 중 하나였다.
'오늘 하루가 반복되는 일'의 영향을 받은 나일스는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고, 결국 남는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세라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과거'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고, 이 대사를 들은 순간 잠시 나는 영화의 내용에서 벗어나 '나는 과거와 현실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 생각은 계속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의 '과거'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이 이야기의 또다른 주요 인물은 나일스와 함께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로이(J.K. 시몬스)이다.
로이는 세라가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히기 전, 여러 번의 '오늘'을 겪고 있던 나일스와 파티에서 만났다.
나일스와 함께 술을 마시며 신나게 놀던 로이는 '오늘 같은 날이 계속되었음 좋겠다'라는 말을 했고, 나일스는 술김에 오늘만 살게 해줄 수 있다면서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히게 되는 동굴 속으로 로이를 안내했다.
술이 깬 로이는 이 사실에 분노했고, 여러 번의 '오늘'이 반복되는 동안 계속 나일스를 죽이면서 복수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죽으면 또다른 '오늘'이 시작된다. 빠져나갈 수 없는 무한의 굴레인 것이다.
세라가 타임루프 세계관에서 빠져나가기로 결심하고 떠난 후, 혼자 남은 나일스는 세라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고 상실감을 겪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동안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던 로이를 '직접' 찾아간다.
로이는 현실에 적응하고 본인만의 '안식처'를 찾아 살고 있었다.
로이의 안식처는 바로 아내와 두 딸이었다. 하지만 두 딸이 커 가는 모습을 로이는 영영 보지 못한다.
왜 이제 자신을 죽이러 오질 않느냐는 나일스의 질문에 로이는 이렇게 답한다.
- 상황은 변하는거야. 우선순위도 변하는거고.
그리고 세라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는 나일스에게 말한다.
너의 안식처를 찾아보라고. 사람은 누구나 안식처를 가지고 있다고.
이러한 로이의 대사는 영화 속 상황에도 적합하지만, 동시에 우리 현실에도 적용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타임루프'라는 소재 자체는 현실과 어울리지 않지만, 영화 속 인물이 건네는 대사들은 대부분 현실과 매우 어울렸고 적합했다.
이 점이 이 영화의 여러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가 다시 나일스를 찾아온다. 그리고 함께 이 타임루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세라는 이 타임루프가 양자물리학과 관련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공부하러 간 것이었다.
'오늘이 무한히 반복되는' 타임루프의 이점을 이용하여 세라는 전문가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고, 직접 실천하기 전 실험까지 마친 상태였다.
(세라가 영화 속에서 나일스에게 이것저것 설명했지만 사실 나는 한 번에 명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세라는 이과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세라와 나일스의 의견은 갈린다.
세라는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나일스는 현재의 타임루프 굴레에 남으려고 한다.
나일스가 계속 남아있으려는 이유는 '진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나일스가 '과거'와 정상적인 시간 속에서 펼쳐질 '미래'들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모습은 마치 과거나 미래, 혹은 현실마저도 회피하려는 내 모습 같다고도 생각하였다.
나는 가끔씩 지난 일들, 혹은 내가 마주한 현실이나 마주할 일들이 두려워서 무작정 회피하곤 한다. 숨곤 한다.
사실 회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없는데 말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일단 부딪혀보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일이든, 내 눈앞에 펼쳐진 일이든, 앞으로 일어날 일이든, 뭐든.
결국 나일스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세라를 따라 이 세계관에서 벗어나고 '진짜 현실'을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진짜 이 타임루프에서 벗어나기 전, 계속 자신을 보면 질릴 수도 있다는 세라의 말에 나일스는
이미 우린 질릴만큼 봤다고, 난 괜찮다(좋다)
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나일스의 대사가 유독 더 좋았다. 그냥 좋았다.
그리고 당신(나일스)과 함께라면 덜 지루할 것 같다는 세라의 말에 나일스는
기준점이 낮으니 됐다
라는 대답을 한다.
상대방의 기분까지 좋아지는 긍정적인 말을 한다는 것이 바로 나일스의 장점인 것 같다.
그가 가진 긍정적인 분위기는 스크린 바깥의 관객인 나에게도 와 닿았다.
참 밝고 무해한 인물이다.
정말 '밝고 무해한 웃음'을 주는 영화였다.
웃음코드가 나랑 엄청 잘 맞았는데, 특히 나일스와 세라가 함께 무한히 반복되는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는 장면이 다 웃겼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화관을 빠져나온 내게
과거와 현실 중 나는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혹시 나는 지난 과거를 회피하고 있진 않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남겼다.
영화가 끝나고 집을 가는 길에서 계속 이 두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내용이 펼쳐지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 <팜 스프링스>는 다가오는 19일에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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