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8-16 14:01:55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인 난맥상
<행복의 나라>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법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승패를 가리는 장소라고 믿으며 각종 꼼수와 편법에 능통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그는 감옥에서 암에 걸린 아버지의 가석방을 약속받자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 대령의 변호를 맡기로 결정한다.
군인 신분 때문에 재판 기회가 한 번 밖에 없는 박태주. 하지만 그는 변호인에게 쉽사리 협조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인 그의 눈에 정인후는 양아치니까. 그가 내란을 사전에 공모했는지, 아니면 위압에 의해 명령을 따랐는지가 재판의 쟁점인 가운데 박태주는 거짓 혹은 편법 증언을 요구하는 정인후와 거듭 부딪힌다.
한편, 10.26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의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잡겠다는 야욕을 품은 합수부장 '전상두'(유재명). 박 대령 재판을 자기 발판으로 삼기로 결정한 그는 실시간으로 재판관에게 쪽지를 전달하고 재판을 도청 및 녹음하며 정인후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무위에 그친 역발상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경호원들은 박정희 대통령 외 5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다룬 <행복의 나라>는 시간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어중간하다. 사건의 전후사정이 이미 영화화돼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의 동기를, <서울의 봄>은 사건 이후 12.12 군사반란을 영화화했다. 심지어 둘은 장르도 달랐다. 전자는 누아르를, 후자는 전쟁 영화의 속성을 강조했다.
이에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년의 밤>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역발상을 했다. 10.26 사태나 주동자인 김재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은 공범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에게 주목했다. 특히 그들의 인생사를 각색해 극명하게 반대되는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게 되는 과정을 법정물로 포장해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는 역발상의 힘을 스스로 포기했다. 신념과 규칙에 충실한 삶 대 생존을 위해 유연해야 하는 삶이라는 대립 구도를 깊게 파고드는 대신 쉬운 길을 간다. 무조건적인 악역 전두환을 전면에 내세워 스케일을 키우고 군사 정권과 민주 시민의 대립을 강조한다. 문제는 같은 이야기로 천만이 넘는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 선배들이 있다는 것. 결국 노선을 바꾼 순간 <행복의 나라>는 자기 자리를 잃고 말았다.
거대한 사건 속 개인적인 이야기
장르만 놓고 보면 <행복의 나라>는 <변호인>과 비슷해 보인다. 둘 다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법정물이니까. 하지만 두 영화의 지향점은 전혀 다르다. <변호인>은 분노를 연료로 삼아 달리는 작품이었다. 무고한 피고인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군사정권의 무도함과 그에 맞서는 변호인의 투쟁. 이 명확한 선악 구도에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력을 더하니 마치 들끓는 불과도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행복의 나라>는 다르다. 선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고 있는 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성이 핵심이다.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두 주인공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정인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을 꿈꾸며 판검사가 되려다가 실패한 변호사다. 법정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곳이 아니라 이기고 지는 곳이라는 대사에는 그의 인생이 축약되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박태주 대령이 앉아 있다. 그는 중앙정보부 비서실장인데도 판자촌에 집이 있을 정도로 청렴한 군인이다. 요직에 있지만 권력을 마다하고 최전방 전출을 거듭 요청한 참군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10.26 사태를 매개로 완전히 다른 두 삶을 충돌시킨다. 배경은 대한민국의 향배를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지만, 정작 내용은 철저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감독의 전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와도 유사하다. <광해>도 중심 사건은 광해군을 축출하기 위한 정치극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된 내용은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충(忠)으로 무장한 유학자 '허균'(류승룡)이 광해군으로 위장한 광대 '하선'(이병헌)과 지내면서 자기 신념과 사상의 문제를 깨닫고 새 나라와 새로운 왕을 꿈꾸게 되는 티키타카야말로 천만 관객을 휘어잡은 원동력이었다. <행복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두 인생의 충돌로 빚은 법정극
전혀 다른 삶의 궤적과 신념을 지녔다 보니 정인후와 박태주의 첫 만남은 엉망이었다. 정인후는 철저한 원칙주의자 군인 박태주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관등성명, 상명하복이 권위주의의 발현에 불과하다며 비웃는 사람이니까. 박태주도 다르지 않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법정에서 온갖 편법을 써가며 승리를 추구하고, 정의가 아니라 돈과 이익을 위해 변호를 맡는 정인후는 단지 변호사일 뿐, 신뢰할만한 변호인이 아니다.
1차 공판만 해도 정인후는 자기 의도대로 재판에 임한다. 군인이니 군법에 따라 단심제 군사 재판을 받겠다는 박태주. 정인후는 그를 설득하는 대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 군사 재판은 받지만, 단심제는 3심제로 바꿔달라며 위헌심사요청을 한다. 위헌심사요청이 기각되자 재판관을 교체해 달라며 재판을 여론 싸움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2차 공판부터는 다르다. 정인후는 점차 피고인의 입장과 신념이 녹아든 전략을 수립한다. 군인에게 명령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저 명령을 따른 박태주의 책임을 부정하는 식이다. 대통령을 살해한 후 정보부가 아니라 육군본부로 가자는 의견을 박태주가 냈다는 진술에 착안해 내란죄 혐의를 부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태주도 정인후를 만나 변한다.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재판을 포기하려던 그. 그는 군인이고 원칙주의자면 규칙대로 재판장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서 책임을 지라는 정인후의 일갈에 마음을 다잡는다.
이는 법정극 특유의 쾌감으로 이어진다. 감정 호소로 일관한 <변호인>과 달리 <행복의 나라> 속 재판씬은 판세가 거듭 뒤집히다 보니 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에 더해 흐름을 가져오려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변호인과 피고인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 팀이 되는 이야기가 병행되니 복합적인 재미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인권변호사가 되어가는 정인후를 보면서 박 대령이 웃음과 하이파이브로 화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익숙한 맛으로 돌파하는 고구마
정인후와 박태주가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칫 고구마일 수 있다. 비록 역사를 반영한 것이기는 하나, 박태주라는 캐릭터가 다소 과하게 올곧은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 자기는 죽고, 아내와 두 아이만 남아 험난하게 살아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자기 신념을 좀처럼 꺾지 못한다. 상관도 못 버리고, 명령에 충실한 군인이라는 자부심도 저버리지 못하고, 대통령을 살해했지만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도 내려놓지 못한다.
추창민 감독은 고구마를 익숙한 맛으로 뚫어버린다. 정인후의 아버지와 박 대령을 겹쳐 보이게 한다. 개척 교회 목사로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돕다가 수감되고, 가족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 정인후는 자기 신념대로 살아야 하는 아버지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해도 가슴으로 이해해 간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가 박태주를 만나는 장면과 이어진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뻔한 전개는 가족애로 변환되어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물론 다소 양식적인 스토리텔링이기는 하다.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통해 시대적 사건에 접근하면서 특히 감정선을 자극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유발하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화법이니까. 야매 변호사였다가 사건을 맡은 후 진정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성장 서사는 정인후나 <변호인>의 송우석이나 다를 바 없다. 또 정인후와 아버지의 관계성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신파를 의도한 구조 배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과욕과 함께 무너지다
하지만 과욕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행복의 나라>는 이내 본연의 색을 잃는다. 의외로 초중반부까지 이 작품은 10.26 사태의 배경이나 실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부마 민주 항쟁이 대학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한 김재규의 결단 정도로 언급할 뿐이다. 애초에 핵심 플롯 자체가 정인후와 박태주 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이는 의도적인 공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12.12 군사반란을 필두로 실제 사건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역사적 맥락의 공백이 서서히 두드러지면서 영화의 만듦새도 무너진다. 배경이어야 할 사건이 돌연 주인공이 되다 보니 묻어 두었던 의문점이 한 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 일례로 중반부까지만 해도 매력적이었던 입체적인 인물상은 중심점을 잃고 흩어진다. 정인후의 경우 단지 박태주를 살리려는지 민주주의 투사가 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박태주도 명령에 의한 피해자인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투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가 청렴한 군인이고 신념에 맞는 명령을 따랐으니 민주주의 투사로 여겨야 하는지, 군사 정권에 협력한 군인을 살리는 게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10.26 사태의 본질과 맥락을 외면한 채로 시작한 미시적인 이야기를 무리하게 거시적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장르적으로도 균형을 잃는다. 12.12 군사반란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서울의 봄>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서울의 봄>처럼 쿠데타 과정을 자세하거나 긴장감 넘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10.26 사태는 지우고 12.12 군사 반란을 부각한 선택은 법정극이라는 장점도 희석시키고, <행복의 나라>만의 개성을 깎아먹는 악수가 되고 만다.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마지막으로는 극 중 전상두, 곧 전두환을 다루는 방식도 <서울의 봄>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황정민의 전두광과는 달리 유재명의 전상두는 상대적으로 일차원적이다. 전자는 들끓는 성공욕,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보스 기질, 위기 때마다 빛나는 간교함이 어우러진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반면에 전상두는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살인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절대악으로만 묘사된다.
그 결과 전상두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영화는 편의적으로 느껴진다. 전두환이 의문의 여지없는 악역이기는 하나, 그를 덮어두고 비난하면 메시지가 뻔해지고 재미도 덜해지기 때문. 정인후가 전상두 면전에서 욕을 하는 골프장 시퀀스가 통쾌하거나 희열이 느껴지는 대신 지루하고 늘어진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슈퍼맨처럼 압도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를 잘못 활용해 액션의 긴장감과 쾌감을 모두 놓친 <저스티스 리그>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행복의 나라>가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포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유독 짙다. 악명 높은 한 인물 대신 비교적 덜 알려진 이들의 서사에 우직하게 집중했다면 한국 현대사를 다룬 이전 시대극들과는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조정석과 이선균, 다시는 재회할 수 없는 두 주연의 연기도 함께 빛이 바래기에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시대의 그림자에 가려진 개인을 비추기에는 조명이 너무 약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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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부수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던 마녀 시리즈가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긴 공백 끝에 개봉한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은 김다미 배우가 아닌 새로운 신인, 신시아 배우가 새로운 마녀로 등장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또한 사라졌던 캐릭터들이 다시 그 자리를 채우면서 새로운 발견까지 함께하며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자윤이 사라진 뒤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과거의 뿌리부터 시작하여 1보다 더 강력한 존재들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강렬한 액션과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가 꽤 인상적이다. 다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잔인함과 욕설의 정도에 비해 15세 관람가라는 게 약간 걱정스럽다.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다시 시작하는 마녀 두 번째 이야기는 이야기의 확장을 더한 마녀2는 자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자윤이 사라지고 어떤 집단의 습격으로 아크가 초토화되면서 탈출한 소녀가 길을 서성이게 된다. 우연히 만난 경희에게서 처음 느껴보는 따스함이 그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한편,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 대상은 같은 그들이 모이면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소녀의 능력이 발산되기 시작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소녀의 존재는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을 구원하는 순간, 소녀도 구원받게 되었다.
늘 그렇듯 목적을 위한 목적이 가치를 잃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조차 잊게 만드는 순간을 조명하며 순진무구한 표정에 떠오르는 광기를 강렬한 액션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또한 마녀의 뿌리를 찾아가듯 이야기의 흐름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며 어떤 존재의 탄생을 알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끔 만든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서 자윤과 소녀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왜 모체가 소녀를 그렇게 찾았는지를 다루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을 능가하는 힘 앞에서는 그저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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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기 혼란을 담은 아름다운 영화
개봉 전 시사회에서 먼저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어떤 소녀가 자신의 친구가 좋아하는 소년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의 친구와 만나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거리낌 없이 소년에게 다가간 소녀는 자신의 친구를 불러보지만 친구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그런 소녀의 행동이 귀엽다. 그리고 소녀의 친구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이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싶어서 핑곗거리로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녀는 정말 자신의 친구가 그 소년을 좋아한다며 다시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은 소녀를 쫓아가며 계속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은 영화 <남색대문>의 한 장면이다.
영화 <남색대문>은 고등학생 멍커로우(계륜미)와 장시하오(진백림) 그리고 멍커로우의 친구 린위에전(양우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소녀와 소년은 멍커로우와 장시하오다.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좋아하지만 미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친구인 멍커로우에게 대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서도 린위에전은 차마 장시하오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심지어 연애편지를 쓴 후 보내는 사람의 이름에 멍커로우를 쓰고 그 편지의 전달까지 부탁한다. 그렇게 전달된 편지로 인해 장시하오는 멍커로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멍커로우는 그가 불편하다.
청소년기의 첫사랑,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는 영화 <남색대문>
청소년 시기인 그들은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모두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큰 확신이 없는 상태다. 그저 기분 좋은 상상처럼 미래의 모습을 생각한다. 영화 초반 린위에전이 눈을 감고 미래의 자신과 남편을 상상하는 장면을 보면 그가 그리는 삶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지는 못한다. 장시하오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만이 그리는 미래가 있지만 그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멍커로우는 아예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눈을 감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청소년들은 그 시기가 되면 자신을 알아가기보다 좋아하는 상대방을 더 집중해서 본다. 친구들을 보고, 좋아하는 이성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집중하며 그들에게 맞추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한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다. 이 시기에 자신이 가진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성인기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마음이 수시로 변하고 감정적인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상대방에 대한 원망을 같이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피하고 부정하려 애쓰기도 한다.
<남색대문>의 멍커로우는 사실 가장 친한 친구인 린위에전을 좋아한다. 하지만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좋아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를 돕기 위해 장시하오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멍커로우는 영화 속에서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억누르려고 노력한다. 어딘가에 자신은 남자를 좋아해야 한다고 쓰거나 장시하오와 진지하게 만나보려고 시도를 해본다. 사실 그의 정체성이 정말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성을 좋아하지만 그럴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멍커로우가 택하는 것은 실제로 해당되는 대상과 행동을 해보는 것이다. 그 실행 이후 멍커로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결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온전히 앞으로 삶을 걸어 올라가야 할 그 자신의 몫이다.
멍커로우의 고민이 표출되는 순간
맨 처음 이야기했던 소녀와 소년, 즉 멍커로우와 장시하오의 대화를 보면 멍커로우는 계속 자신의 친구인 린위에전을 만나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실체는 그들 앞에 보이지 않는다. 멍커로우는 단지 그 보이지 않는 존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때 린웨이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의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멍커로우는 현재의 자신도 잘 보이지 않고 미래의 자신의 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한다고 믿는 대상을 위해 대신 사랑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받아주는 장시하오는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인물이다. 몇 번의 만남에도 린위에전을 실제로 보지 못한 그는 그것이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는 눈앞에 실재하는 멍커로우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멍커로우와 장시하오의 첫 만남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꼬여버린 첫 장면이기도 하지만 멍커로우의 보이지 않는 정체성과 고민이 처음 표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의 질문에 대부분 대답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장시하오의 모습은 마치 멍커로우의 내면이 던지는 질문처럼 그의 마음속에 계속 메아리친다. 그 물음은 결국 멍커로우의 대답을 이끌어내지만 그걸 말하고 있는 멍커로우 자신도 혼란스럽고, 그걸 듣고 있는 장시하오도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이 실제로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그 시기에서 만큼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존재였다.
어쩌면 영화 속 세 인물이 모두 좋아한다는 그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는 순간이 많지 않다. 고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그저 짧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아주 짧은 순간에 전달하지만 여기서 성공하는 고백은 없다. 오히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특히 멍커로우의 1년 후, 3년 후, 5년 후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게 된다.
영화 <남색대문>은 여름을 지나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장시하오는 여름이 다 지났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치 청소년기를 지나는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는 말로도 들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무언가는 남는다.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성적 때문에 고민하고, 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고민하는 동안 그 고민을 한 이들은 모두 한 걸음 성장해 있다. 멍커로우와 장시하오도 그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상처 받으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당장 그들이 자신에 대해 다 알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영화에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지만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건 그런 확신이 따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의 여름 풍경이 가득한 영화
2002년에 만들어진 <남색대문>은 대만의 여름 풍경이 가득 담겼다. 조금은 바래 보이는 화면과 그때의 물건들과 도시의 모습은 아련한 느낌을 주어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두 남녀 주인공이 대만의 거리를 지날 때 보이는 풍경들은 더욱 대만이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느끼게 한다. 여기에 피아노 반주와 함께 나오는 배경음악은 더욱 영화를 감성적으로 만든다.
멍커로우 역을 맡은 배우 계륜미는 이 영화로 첫 데뷔를 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데뷔작 <남색대문>에서의 연기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이후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사랑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척척 해나가려 하는 멍커로우의 모습을 복합적인 감정으로 잘 담아냈다. 장시하오 역의 배우 진백림은 <티이페이에 눈이 내리면>, <기약 없는 만남>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2016년에는 한중 합작 영화 <나쁜 놈은 죽는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멍커로우를 좋아해 자신 만의 노력을 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따뜻한 장시하오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제목인 <남색대문>은 영화 속 장시하오가 남색대문 앞에 서있는 모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멍커로우가 생각했던 그 모습은 어쩌면 영화 속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라는 문을 열기 직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미래, 즉 그 남색대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그들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여러모로 따뜻함과 아련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여름 영화로 유명한 이 영화는 19년이 지난 이제서야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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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서부시대 어떤 이들의 우정
제86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NYFCC) 작품상 수상과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후보를 포함, 세계 유수 시상식에서 24회 수상 및 143회 노미네이트를 했고 봉준호 감독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시적이다”라는 찬사를 보내며 강력 추천했던 영화 〈퍼스트 카우〉 리뷰입니다. 국내에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정적인 스타일로 자연과 인물을 관찰하며 페미니즘적인 주제의식과 노동자 계급 등 비주류 사회를 주목해 온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켈리 라이카트의 7번째 장편 연출작이죠. 그녀의 작품 중 처음으로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 제26회 BIFF에 초청되어 특유의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좋은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시사회를 통해 미리 접했는데, 기존 19세기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흥미롭게 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찾으신다면 추천드리고 싶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퍼스트 카우〉 줄거리 정보
쿠키에게는 우유를, 인간에겐 우정을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와 함께 화면이 밝아지고, 커다란 증기선 한 척이 허드슨강을 지나가며 시작됩니다. 그 옆으로 강아지와 함께 강변을 산책 중이던 한 소녀, 진흙으로 뒤덮인 땅에서 나란히 누워있는 두 개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고 시간은 그들이 살았던 1820년대로 전환됩니다.
모피 사냥꾼들의 식량 배급을 담당하며 어느 마을을 향해가던 요리사 쿠키는 여느 날과 똑같이 주변 식재료를 수집하던 중 벌거벗은 채 추위에 벌벌 떠는 중국인 킹 루를 만나 일행 몰래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줍니다. 이후 마을에 도착하고 우연치 않게 다시 마주한 두 사람, 지낼 집이 없는 쿠키에게 루는 자신의 허름하고 좁은 집에서 지낼 것을 권하고 그렇게 함께 지내게 되죠. 그리고 곧이어 그의 베이킹 실력을 확인한 루는 마을의 권력자 팩터 대령이 소유한 유일한 젖소로 부터 우유를 몰래 짜 빵을 만들어 팔자는 계획을 제안하는데...
예고편│ Trailer
영제 : First Cow│감독 : 켈리 라이카트│원작 : 조나단 레이먼드의 2004년 단편 소설 〈The Half Life〉│각본 : 조나단 레이몬드, 켈리 라이카트│출연진 : 존 마가로, 오리온 리, 토비 존스 외 多│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22분│개봉일 : 2021년 11월 4일│국가 : 미국│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8.5, 왓챠피디아 예상 3.8, 로톤 토마토 신선도 96% 팝콘 63%, IMDB 7.1, 메타 스코어 89점│수상 내역 : 85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작품상)│시청 가능 서비스 : 11월 4일 극장 개봉
감독의 세계관
마초적인 남성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며 혈투를 벌이는 야만적인 19세기 서부극을 흔히 떠올릴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같은 시대가 배경이지만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로 여성들의 비주류 사회를 비추던 감독이 이번에는 확실한 남성 중심의 시대를 선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고정된 사고를 깨부수는 변주를 보여주고 있죠. 백인이지만 언제나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던 유대인, 그저 생존이라는 위대한 도전을 이어온 중국인, 이렇게 힘의 논리로 지배되던 사회의 약자에 속한 그들을 통해 기존의 사고를 무너뜨립니다. 그렇게 옛날 서부극의 공식을 뒤엎는 평범한 일상 속 두 인물 사이의 대화만큼이나 견고해가는 우정과 연대에 대한 서사를 잔잔한 강물처럼 보여줍니다.
# 〈퍼스트 카우〉는 이러합니다.
예술 영화의 잔잔함
백인 주류의 서부 세계에서 두 사람은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의심하기보다는 우정이라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으로 더욱 가까워집니다. 벌거벗은 채 쫓기는 자신을 감싸준 친절에 혼자 지내기도 좁은 집으로 불러 함께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존재는 미약할지언정 결코 불안하거나 외롭거나 흔들리지는 않죠. 그렇기에 폭력이 난무하며 자본주의로 치닫는 사회에서 그들의 관계는 어쩌면 목숨이 오가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강렬함이 느껴지는 연기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도, 드라마틱한 액션도 없고, 기존과 다른 1.37:1 화면비의 35㎜ 필름으로 프레임은 작고, 카메라는 고정돼 있으니 동적인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어쩌면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오래 바라보아야 가치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이 작품 역시 두 인물의 인종을 넘어선 우정에 집중하다면 “우리들의 집은 우정이 있는 곳이다"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잔잔한 드라마를 찾으신다면 추천드리며, 이상 글쓰는 식팔이 모모파로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줄 평 :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서부시대 어떤 이들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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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묘한 심리전 이 후, 진정한 목표에 도달하다.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눈빛에서 오는 사소한 오해에 놓인 관계는 섣부른 판단과 엇갈린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행동이 아닌 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린 수많은 관계를 경험하면서도 쉬이 지나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을 잘 풀어놓은 영화 ‘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ㄴ이 누구인지 추리 해보면서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대 저택에서 사용인으로 일하고 있는 하윤은 새로 들어온 지영과 사장님 사이의 묘한 기류를 감지한다. 그것도 잠시 사장님의 사냥 제안에 모두가 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다수의 목표가 되어버린 ㄴ을 잡기 위한 사냥이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단어가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ㄴ‘이라는 단어 선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다수의 목표인 ’ㄴ’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게 한다. ㄴ은 누구일까.한 사람을 사랑할 때 그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말이다. 대화가 이루어지고 눈빛과 행동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미숙함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괴롭히는 행동을 통해서 전달하곤 했다. 그것은 폭력의 일부임에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이렇게 당연한 것들은 우리가 표현하는 모든 것에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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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여성의 성장기
* <바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바비 (2023)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마고 로비, 라이언 고슬링, 아메리카 페레라, 케이트 맥키넌, 엠마 맥키, 시우 리무 등
장르: 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상영시간: 114분
개봉일: 2023.07.19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클래식 장난감, '바비 인형'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어릴 적 바비 인형을 갖고 논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이름을 모를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날씬하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을 두고 만들어진지 60년도 넘은 이 오래된 인형의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까. 모두가 바비 인형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저 마르고 예쁜 백인 금발 여성을 모델로 한 스테레오타입 인형 정도로만 여겨져 왔을 뿐 '바비'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궁금함을 가진 사람은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 속 '바비'는 언제나 예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존재로만 비쳤으니까.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의 성공으로 할리우드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레타 거윅' 감독. 그는 예쁜 인형의 전형으로 소비된 '바비'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로 결정했다. 주연과 제작을 함께 맡은 배우 '마고 로비'와 함께 '바비 프로젝트'를 이끌며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Barbie is everything'. 사실 '바비인형'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젊은 여성을 모델 삼아 수많은 종류의 인형을 생산해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주었던 존재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그레타 거윅' 감독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핑크빛 낭만으로 가득 찬 '바비랜드'를 구현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바비의 드림 하우스를 현실 공간에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긴 충분했다.
'바비랜드'를 소개하는 극의 초반부는 아기자기하고 황홀한 핑크빛 세상 그 자체다. 주인공 '바비(마고 로비)'를 비롯해 극에 등장한 수많은 '바비'와 '켄'들은 어딘가 핀트가 조금 나간 듯한 행동들로 놀이 속에 등장하는 장난감들처럼 그려지고, 실체 없는 모션만으로 이뤄진 행동들은 이곳이 현실과 분리된 판타지적 공간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바비랜드'의 곳곳을 스크린에 최대한 예쁘게 펼쳐 놓아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껍데기뿐인 장면이라는 감상을 유발하진 않는다. '바비'들의 흥겨운 댄스파티 같은 장면들은 세상이 평화롭고 완벽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단편적이고 순수한 가치관을 보여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매일 그런 바비들처럼 산다면... 아마 '전형적 바비'처럼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일은 절대 없을 터이다.
하지만 동화는 딱 거기까지다. '바비랜드'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넘어온 '바비'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만의 단꿈 속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바비'가 마주한 인간 세상의 첫인상은 무언가 뒤틀린 듯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비랜드'에서 여성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 대통령도, 대법관도, 물리학자도, 의사도 모두 여성인 '바비'였고, 남성인 '켄'은 그저 '켄'일뿐이었다. 현실 세계 역시 '바비'가 살고 있는 이상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당황을 금치 못한다. 여성차별을 해결하고, 페미니즘을 완벽하게 실현하는데 자신이 일조했다는 착각 속에 살았던 '바비'는 친구라 여겼던 여학생들에게 잔인한(?) 팩트 폭격을 맞고 충격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바비'의 각성을 기점으로 극의 템포와 장르는 급격히 뒤바뀐다. 앞서 '바비'와 '켄'을 통해 남녀의 전복된 성 역할을 보여준 '바비랜드' 시퀀스만으로 본작이 페미니즘 성향을 띤 영화라는 걸 예감하긴 어렵지 않다. 주체적인 여성들과 그들에게 눈길조차 못 받는 엑스트라 남자들로 이뤄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성을 탈피한 영화이니까. 하지만 '바비'가 현실 세계로 넘어온 직후부터 <바비>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며 페미니즘 자체가 스토리의 핵심임을 또렷이 각인시킨다. 모든 여성들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던 '바비랜드'와 달리 현실은 '바비'를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시선이 가득하고, 그들은 숨 쉬듯 추파를 던지며 당연하다는 듯 존중 없는 태도를 보인다. '바비랜드'에서 여성들이 차지했던 직업군들은 모두 남성들의 손아귀에 있고, 하물며 '바비인형'을 만든 마텔사의 임원들도 온통 남자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성보다 뛰어나다는 이유로 고위직을 하나씩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마텔 사의 임원들은 도망친 '바비' 한 명을 붙잡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고 멍청하게 그려지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건 '켄'의 태도 변화다. 언제나 '바비' 옆에서 조역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그는 현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접한 가부장제에 신선한 매력을 느끼고,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을 표출한다. 급기야 그는 '바비랜드'를 마초적 정신과 구시대적 성차별이 만연한 '켄덤'으로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앞서 주체적인 여성들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바비'들이 덜떨어진 '켄'의 옆에서 커피를 타거나 치어리딩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개탄스러움에 이마를 퍽 짚게 된다. 특히 가부장제에 취한 '켄'들의 모습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같잖은 이유로 서열 싸움을 벌이는 뮤지컬 신은 실소를 유발할 정도다. 이에 맞서는 '바비'들의 활약은 남성 중심 사회에 가려진 여성들의 기지와 단결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뭉친 여성들은 영리한 전략으로 '바비랜드'를 원상복구시키는 데 성공한다. 결국 '바비'는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에 사로잡힌 남성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허울뿐인 남성 중심 사회의 비효용성, 그리고 스스로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이들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특히 후반부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의 긴 독백 신은 페미니즘 교과서라 느껴질 정도로 극의 메시지를 강하게 주입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바비'는 남성은 원래 멍청하고, 여성은 우월하며 뛰어난 여성들이 이끄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장하는 영화일까. 각본상 그렇게 보일 만한 지점이 있긴 하지만 본작이 '성별 갈라치기'나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작품이라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켄'의 허점이 남성을 비판하는 요소로 활용되었지만, '바비' 역시 마냥 완벽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켄'이 '바비'에 대한 존중을 잊은 채 '켄덤'을 건설하려 했던 것처럼 과거 '바비'들 역시 '켄'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완벽하고 단단해 보였던 '바비'들의 논리는 '켄'의 허점 투성이인 가부장제가 들어서자마자 쉽게 무너졌고, '전형적 바비'는 누군가 구하러 올 때까지 가만히 주저앉아 있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수동적인 면을 지녔기도 하다. 특히 한 나라 안에서 권력 신장을 위해 성별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한국의 현 사회와도 많이 닮았다. 급진적인 전개이긴 하지만 '바비'와 '켄'은 결국 화해를 한다. 투표를 통해 '바비랜드'로 다시 복구한 대신 '켄'의 역할도 존중할 것이라는 게 결론. 이를 통해 <바비>는 여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게 아닌 여성을 억압하고, 괴롭혀 온 사회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를 주창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 바비'의 서사를 살펴보면, 이는 곧 여성들의 성장 과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무런 변화 없이 평화로운 나날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극 초반부의 '바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선을 가진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같다. 현실 세계에 나와 비로소 세상은 온갖 위험과 문제들, 불합리와 불평등이 숨 쉬듯 벌어지는 곳이란 걸 깨달은 '바비'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금씩 알아가는 십 대들을 닮았다. 그리고 '바비'의 발명가 '루스 핸들러'를 만나 자아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은 마치 사회에 막 진출하려는 성인들의 내적 혼란을 대변하는 듯하다. 인간으로 살 것인지, 인형으로 살 것인지 깊은 고민과 함께 불안을 느끼는 '바비', '내가 그래도 될까'라며 확신을 못 가지는 '바비'. 그런 '바비'에게 마음 가는 대로 하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루스'. 캐릭터에 갇혀 주어진 역할대로만 살려고 했던 '바비'는 끝내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바비'들이 '바비랜드'를 '켄'으로부터 되찾는 과정보다 '전형적 바비'로 보여준 한 여성의 성장기가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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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영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속 주인공들의 근황이 궁금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2005~2010)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를 아시나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등 수많은 판타지 영화가 있지만 이제는 정말 추억속으로 사라진듯한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한 주연 배우들(보통 어린 배우들 이었죠)은 현재 무슨 활동을 하면서 지내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3편이 나온지 벌써 11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가장 최근 근황이 궁금궁금!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윌리암 모즐리
4남매 중 첫째, '피터 페벤시' 역
첫번째는 극중에서 맏 형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었던 첫째 '피터 페벤시' 역을 맡은 87년생 배우 윌리암 모즐리라는 배우인데요, <나니아 연대기>이후에 유독 눈에 띄는 작품 출연이 얼마 없었으나 짧게 출연한 3편을 마지막으로 여러 작품에 간간히 눈도장을 찍은 배우인데 최근 2016년도엔 <언프렌드>라는 독일 영화, 또 가장 최근엔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베일>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배우였는데 그 이후에 작품 활동이 얼마 없어서 아쉬운 배우이기도 하네요,,
<나니아 연대기> 이후의 작품.
안나 팝플웰
4남매 중 둘째, ‘수잔 페벤시’ 역
페이스만 본다면 여러 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느낌을 주는 88년생 그녀이지만,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이후에 '헤일로: 슈퍼솔져 2012'라는 작품과 '레인 1, 2' 드라마 시리즈 밖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요, 특히 이 배우는 나니아 연대기 후 영화보다 드라마 쪽으로 많이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지만 영화쪽으로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배우였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둘다 활동을 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는 본래 4편까지 계획 했으나 배우들의 나이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죠,,
<나니아 연대기> 이후의 모습들
스캔다 케인즈
4남매 중 셋째, '에드먼드 페벤시' 역
91년생 배우로 나니아 연대기라는 작품 이후에 유일하게 작품활동이 하나도 없는 셋째, 에드먼드 페벤시 역을 맡았던 '스캔다 파인즈', 그 이유는 시리즈 이후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했다고 하는데요, 그 선택은 정말 성공적 이었다고 합니다. 최근 근황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을 다닌다고 해요. (유독 호강하는 미모로 많은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끈 배우였던,,) 마지막으로 이 배우는 근황이 얼마 없기 때문에 최근으로 추정되는 사진들과 여심을 울렸던 <나니아 연대기> 속 모습들과 함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워후,, 잘생기긴 했,,,
조지 헨리
4남매 중 넷째, ‘루시 페벤시’ 역
"가장 잘 자라준 배우"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막내 역을 맡았던 순둥순둥 배우 95년생의 '조지 헨리', 그녀도 유난히 눈에띄는 작품 활동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안나 팝플웹과 비슷하게 <퍼펙트 시스터즈>, <더 시스터후드 오브 나이트>란 드라마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요, 그 이후에 작품 활동은 되지 않지만 95년생 이라는 아직 어린 나이의 여배우인지라 꼭 영화 작품에 출연했으면 하는 배우이기도 하네요. 아래사진은 거의 최근 사진들!
벤 반스
'캐스피언 왕자/왕’ 역
다음은 그래도 국내 팬들의 눈에 익숙한 81년생 배우 '벤 반스' 입니다. 그는 어린 던스텐 쏜 역을 맡았던 영화 <스타더스트>라는 작품으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이기도 한데요, 또한 그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2편의 주인공격 캐스피언 왕자로 나왔던 그는 시리즈 이후에 큰 작품들은 아니지만 영화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에서 조연, <빅 웨딩>이란 영화에서 주연, 그리고 상당히 많이 아쉽던 2015년에 개봉한 판타지 영화 <7번째 아들>에서 주인공 톰 역을 맡으면서 여러 작품들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입니다. 7번째 아들이 흥했었으면,,
<7번째 아들> / <재키 앤 라이언>
윌 폴터
'유스터스 스크럽’ 역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주연은 4남매의 사촌으로 나오는 유스터스 스크럽 역을 맡은 배우이자 나니아 연대기 이후 가장 눈에띄는 작품들에 다양하게 출연한 배우인 윌 폴터 입니다. (3편에만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죠),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영화 <메이즈러너> 1편에서 갤리 역, 디카프리오, 톰 하디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선 짐 브리저 역으로 출연해 많은 분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배우인데 93 년생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중에 한명이기도 한 배우입니다. 2014년도엔 제67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 신인상을 수상!!
<메이즈러너> /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리암 니슨 / 틸다 스윈튼
'아슬란’ / ‘하얀 마녀’ 역
또한 그 외에 간간히 등장한 1, 2, 3편에 진정한 주연 사자 역의 에슬란/아슬란의 목소리를 녹음한 '리암 니슨'과 1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등장한 하얀 마녀 '틸다 스윈튼' 배우들은 현재 최고의 헐리우드 배우들로 자리 매김 하고있으며 더 쟁쟁한 배우들이 되었습니다.
진짜 4편 은의자가 너무 보고싶은(..)
소설도 굉장히 재밌습니다 ( ^ω^ )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배우들
7년이 지난 이젠 정말 추억속의 영화가 된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배우들을 앞으로도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로
만나보았으면 합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영소남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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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스포일러 없는 리뷰 - 권태로운 삶에 위스키 한 잔을 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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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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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비우스> 리뷰 예고편
?마블 히어로의 틀을 깨다!? 개봉과 동시에 반응 대폭발한 #모비우스 압도적 액션 스케일 극장에서 직접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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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파라다이스> 메인 예고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여 사는 ‘파라다이스’ 이 고요한 곳에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스털링 K. 브라운, 제임스 마스덴, 줄리안 니콜슨이 쫓는 거짓 속 숨겨진 진실의 정체는? [파라다이스] 1월 28일, 디즈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