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9-17 16:38:10
참 잔인한 인생.
[리뷰] 인사이드 르윈
1961년, 뉴욕의 뒷골목에 자리 잡은 어느 라이브 카페. 주인공 ‘르윈(오스카 아이작)’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무대를 마친 후,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얘길 전해들은 그는 밖으로 나간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르윈을 구타한다. 영문도 모른 채 이곳저곳 얻어맞는 르윈. 이것이 바로 <인사이드 르윈>의 첫 시퀀스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영화는 시작된다.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은 무명의 포크가수다. 얇은 코트 하나로 한겨울 칼바람을 버텨야 하는 신세에, 자기가 참여한 노래의 저작권료도 받을 수 없는 무일푼 처지다. 집도 없어서 온갖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잠을 잔다. 여기까지는 처량하게 봐줄 만도 한데, 코엔 형제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들의 캐릭터에 심술을 부린다. 그는 동료의 여자친구와 애를 만들고는 책임도 못 져서 낙태를 시키는데, 그것도 벌써 두 번째다.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내 이상적인 미래상이야”라며 불편한 농담을 던진다. 모처럼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는 옆에서 자기 노래에 화음을 넣었다는 이유로 신경질을 부리며 자리를 뜬다. 아. 정말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르윈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코엔 형제는 전작들에서 주로 인생에 대한 회의를 역설했다. 그들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평소 인터뷰에서 무심하고 냉소적인 그들의 말투로 “뭐 어쩌겠어, 인생이 그런걸~”하고 말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들은 앞일에 대해 희망이나 낙관을 갖지 않는다. 그들이 주요 소재로 삼는 것은 범죄나 폭력이며, 이야기는 오해와 엇갈림으로 전개된다. 인물들은 줄곧 자가당착에 빠지거나 구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리곤 한다.
<인사이드 르윈>도 마찬가지다. 60년대 미국, 포크송을 부르는 인디 뮤지션의 이야기라는 점이 꽤나 흥미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는 망할 대로 망한 한 남자의 초라한 실패담이다. 르윈은 정말 끝까지 잘 ‘안 된다’. 유명 매니저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지만 역시나 결과는 별로고, 심지어 더 이상 음악 못하겠다 싶어 오래전 몸담았던 선원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자격증을 잃어버려 배에 발 한번 붙이지 못한다. 그냥 삶 자체에 발이 꽉 묶여버린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첫 시퀀스와 동일하다. 한번 더 보는 장면이지만 이번에 관객들은 르윈이 누구에게, 왜 맞는지 알 수 있다. 이 수미상관의 구조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자신을 구타한 남자가 차를 타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르윈이 속삭이는, “또 봅시다(Au revoir)”라는 대사다. 마치 잘 안 풀리는 이 삶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전언 같아 섬뜩하게 들린다.
코엔 형제는 인생은 그렇게 안 좋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골목에서 쓰린 몸을 부여잡고 앉은 르윈의 모습과 함께, 카페 안에서 그의 다음 순서로 노래를 부르는 밥 딜런(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 내내 르윈이 부르는 노래에 그토록 집중해주던 코엔 형제가 정작 엔딩 크레딧과 함께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건 르윈의 노래가 아닌 밥 딜런의 노래다. 참, 잔인하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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