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0-21 17:08:42
[10월 마지막 주 영화 한줄평] <아네트>
씨네랩 연구원 시사 리뷰
8월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A24의 대작 <그린 나이트>의 언배시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그린 나이트>를 보고 오신
'씨네랩' 연구원 분들의 한줄평, 한 번 확인해볼까요?
1. <그린 나이트>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의 귀환
다시 영화의 세계로 관객들을 불러모을
2021년 칸영화제 개막작 & 감독상 수상 <아네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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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첩보 액션 그리고 캐릭터로 담은 변혁의 과정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에 맞추어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암울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힘을 저금이나마 보탠다. 그 방식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그 힘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사회를 바꿀 행동을 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반전의 에너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회를 바꾸려 애쓴다. 학생, 직장인, 주부 같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의 각기 다른 목적이 하나로 모이면서 사회 변혁이라는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한국사회가 정치적인 혼란기에 있었던 1980년대는 전두환이라는 인물의 군부독재가 계속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런 암울한 시기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힘이 빠져간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독재라는 껍질을 조금씩 벗을 수 있었다.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했고 일상 속에서 변화의 기회를 만났다. 그 변화의 기회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목적을 만들어주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은 모두 달랐다. 각자의 목적이 같다는 걸 깨닫기까지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속 가상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헌트>에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안기부 안으로 카메라를 비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과 사건들은 그 당시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지만 대체적으로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해외팀 박평호 차장(이정재)과 국내팀 김정도 차장(정우성)도 허구의 인물들이다.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두 인물이 영화 초반 가지고 있는 공통의 목표는 대통령 암살을 막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부터 두 인물은 껄끄러운 관계를 드러낸다.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
처음엔 두 인물 모두 대통령을 보호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안기부라는 조직이 원하는 것이고,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안기부 내부에 ‘동림’이라는 첩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동림을 찾기 위한 두 사람이 갈등을 겪는 과정이 이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동림이라고 의심하고 총구까지 겨누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건 조직인 안기부의 목적에 더 가깝다. 두 인물은 그 조직의 목적인 ‘첩자 색출’ 임무에 부합하기 위해 서로 감찰을 피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게 된 상황 자체는 안기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팀장 중 누가 하나가 죽거나 조직을 떠나더라도 첩자를 찾아내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사람은 대체적으로 안기부의 목적에 충실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필사적으로 첩자 동림을 찾아내기 위해 매달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의심을 시작하고 파국 직전까지 가는 과정을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첩자 동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각 인물들이 상대방을 추적할 때 전달되는 서스펜스가 끝까지 시선을 잡는다. 여기에 대규모 자동차 추격 장면과 총기 액션 장면을 넣으면서 더욱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준다. 박차장과 김차장이 서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영화가 하는 이야기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흥미진진한 첩자 동림을 찾는 과정
영화에서 더 훌륭한 건 후반부다. 후반부에는 첩자 동림이 누군지 드러나고 박차장과 김차장의 목적도 선명해진다. 결과적으로 두 차장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영화는 그렇게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 영화 초반에서 후반으로 오면서 드러나는 과정을 세밀히 보여준다. 영화 안에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 교차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때는 김차장의 목적과 박차장의 목적이 정반대인 것 같아 보여 특정 인물을 의심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만큼 영화는 각 인물이 어떤 곳을 보는지에 따라서 섣불리 첩자가 누군지 추측할 수 없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스파이 장르의 특성을 과거 한국 현대사의 한 지점에 적용하여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인물은 국내팀과 해외팀을 맡고 있는 팀장이다. 완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방법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목적이 같은 곳으로 모이는 모습은 마치 그 당시 사회 변혁을 시도하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군부독재를 끝내려 했지만 그들의 다양한 시도는 오히려 하나의 방법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목적은 마지막 순간 갈라져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몇 년이 지난 이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그것이 결국 이루어진다. 영화 속 박차장과 김차장이 서로를 바라보고 대립하며 만들어낸 것들을 결국 후대에서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영화 <헌트>는 그 귀결적인 결과까지 보여주진 않지만 관객들이 충분히 그 이후의 일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두 인물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박진감 넘치게 구성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꽤 오랜 시간 앉아서 두 인물이 지나온 길이 어땠을지, 그 이후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의 거울처럼 느껴지는 박차장과 김차장 대립의 결과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은 무척 박진감이 넘친다. 10,000발 이상의 총알과 520대의 차량을 이용해 만들어진 전투 장면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세심한 미장센과 로케이션을 통해 보다 사실성을 높였다. 그렇게 탄생한 카체이싱과 총기 액션은 무척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중반 중반 배치된 액션 장면들은 영화가 늘어질 때즘 한 번씩 등장해 관객이 끝까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를 연출한 이정재 감독은 이번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오랜 배우 생활에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카메라의 구도나 인물 배치 같은 사소한 것도 무척 완성도 높게 구성하였다. 촬영 전문 감독인 이모개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의 장면들은 무척 공들인 티가 난다. 또한 공동 주연인 정우성 배우를 몇 년 동안 설득한 끝에 캐스팅하였는데 김정도 차장 역할에 무척 잘 어울린다. 슈트가 잘 어울리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한 화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눈을 즐겁게 한다.
영화 <헌트>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파이 액션 장르를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군부 독재 하에서 사회 변혁을 위해 애썼던 다양한 인물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갈등을 무척 잘 담아냈다. 현재에도 정치적인 갈등 속에는 다양한 목적들이 섞여있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 모아질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다. 군부독재를 하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좀 더 나은 나라로 만들어내려는 일은 현재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현재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이 현재의 거울처럼 느껴지게 하는 부분도 있다.
여러모로 영화 <헌트>는 이정재 감독의 훌륭한 데뷔작이다. 액션도 이야기도, 캐릭터도 무척 생동감 있는 영화다. 그 당시의 시대상과 북한과의 관계 등도 효과적으로 포함시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고 있다. 올해 공개된 여름 기대작 중 가장 기대받지 못했던 영화였지만 가장 좋은 완성도와 재미를 가진 영화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정재 감독의 다음 연출작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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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의미에서 <듄>이 떠오르는 시작
스포일러 주의!
<퇴마록>은 해동밀교의 145대 교주인 서교주가 완전한 악이 되기 위해 생명을 재물로 바치는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는 박윤규 신부에게 장호법이 찾아온다. 장호법은 서교주가 아들 장준후를 이용해 완전한 악이 되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으니 준호를 몰래 구출하여 이를 막아내자고 제안한다. 박신부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금세 이를 받아들이며 함께 해동밀교로 향한다. 한편,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과거로 인해 귀신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있는 이현암 역시 혈도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동밀교로 향하게 되면서 이 네 명의 인물은 의도치 않게 서로 얽히게 된다. 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끔찍한 존재가 되어가는 서교주. 그렇게 박신부, 장호법, 현암은 모두 서교주와 맞서기로 결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김동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다.
제목을 보고 오해하지 마시라. <퇴마록>이 <듄>만큼 어마어마한 대작이라는 뜻이 아니다. 여러모로 비슷한 지점이 많다는 뜻이다. 거대한 전체 이야기의 프롤로그라는 점, 약한 이야기를 메꾸기 위해 시청각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 원작을 안 본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노력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더불어 거대한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것에서 오는 필연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문제는 결국 세계관 소개에 머문 이야기다. 낯선 설정, 낯선 인물, 낯선 상황들이 초반에 몰아치는데 원작을 안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를 따라가기 꽤나 버겁다. 특히 <퇴마록>은 <듄>과 달리 85분이라는 짧은 상영 시간 내에 많은 것들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명쾌히 설명해 주기보다는 찰나의 이미지나 플래시백으로 암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분명 여기서 조금만 나아가면 세계관도 더 친숙해지고 개연성 확보도 가능했을 텐데 제작 여건의 한계 때문에 이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것 같아 큰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한 부족한 설명은 캐릭터와 후반 전개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박신부, 장호법, 준호, 현암의 서사가 조금만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그려졌다면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인물들로 다가왔을 것이다. 해동밀교의 호법들도 너무 빠르고 허망하게 퇴장하여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진다. 후반에 장호법이 사실 준호의 아버지였다는 반전도 아무런 복선 없이 갑작스레 튀어나와 당혹감을 준다. 후반부에 장호법이 호법을 맡기 위해 아들을 서교주의 양자로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굉장히 중대한 사항인데도 준호는 이를 너무 빠르게 납득한다.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면 안 될 것 같은 문제인데도 영화는 별 대수가 아닌 것처럼 다음 장면으로 서둘러 넘어간다. 이런 부분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퇴마록>은 실망스러운 영화였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퇴마록>은 올해 가장 즐겁게 본 영화 중 하나였다. 영화가 꺼낸 회심의 일격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바로 액션이다. <퇴마록>의 액션은 볼거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물론 단순한 볼거리로만 봐도 충분히 즐겁지만 이를 넘어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과 서사를 대신하는 수단으로서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다소 허무하게 퇴장하는 세 명의 호법들도 액션 장면에서만큼은 이들이 어떤 존재이며 왜 이 영화에 필요한 존재인지를 순간적으로 납득시킨다. 이후에 박신부, 준호, 현암이 힘을 합쳐 서교주에게 맞서는 장면에서는 이전까지 플래시백으로 펼쳐졌던 박신부의 서사, 준호의 서사, 현암의 서사가 서로 교집합을 이루면서 진한 울림을 준다. 여기에 장호법과 장준호의 아버지-아들 서사도 다소 뜬금없었던 것과는 별개로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정서가 주는 힘 덕분에 어느 정도의 감동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덩달아 플래시백 덕분에 빈약하게 보일 수 있는 영화 전체 이야기가 굉장히 풍성해 보이는 효과까지 생겼다. 이러한 강력한 장점들이 이야기의 아쉬움을 메꿔주었다.
<퇴마록>은 원작을 본 사람에게는 감격스러운 팬 서비스를,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한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의 팬들을 챙기면서도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도 만족감을 주는 적절한 모범례를 만난 것 같았달까. 후속작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결말을 보고 나면 "함께 하겠나?"라고 묻는 박신부의 대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게 된다.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니 부디 더 큰 이야기를 펼칠 후속작들을 만날 수 있길 염원한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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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실 콘셉트로 밀어붙이는 섹슈얼 치정극
젊은 지휘자 안드레아(킴 구티에레즈)는 우울하다. 어느 날 연인 벨렌(클라라 라고)이 이별 영상편지만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 실연의 아픔에 힘들어하던 그는 우연히 만난 파비아나(마르티나 가르시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는 듯 그녀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벨렌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도 집 안 비밀의 방에서 말이다. 예전만큼 안드레아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벨렌은 사랑을 확인하고자 스스로 비밀의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요한 열쇠를 빠뜨린 채 들어간 그녀는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벨렌은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적이기도 한 파비아나에게 계속해서 사인을 보낸다.
밀실에 갇혀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걸 보는 심정은 어떨까? 강도 높은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출되는 이 설정은 <히든 페이스>의 강한 동력이자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수위 높은 베드신과 노출 장면도 한몫한다. 영화를 보면 남자 친구를 향한 의심과 질투, 그리고 자신을 향한 사랑을 시험하기 위한 벨렌의 선택은 자칫 무모해 보이는데, 후킹한 설정을 보여주기 위한 수동적 행동으로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스스로 밀실에 들어간 이유는 안드레아의 바람기. 바이올린리스트와 묘한 관계를 이루던 남자 친구의 마음을 알아보고 예전처럼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이 위험한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밀실에 갇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마주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은 그녀의 질투와 그릇된 욕망이 주는 벌처럼도 느껴진다.하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 이를 선회한다. 자신의 일이 있음에도 안드레아를 따라 지인 하나 없는 타지에 간 그녀는 사랑 밖에 없는 여자다. 마치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주하는 연주차처럼 사랑이란 신뢰로 그의 요구에 맞춰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밀실에 갇히고 남자친구의 본모습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차세대 지휘자의 여자친구, 능력이 출중한 남자의 여자친구가 아닌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감독은 밀실에 갇힌 상황 자체가 벨렌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구조로도 활용하며, 문제 많은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한 여성의 탈출기를 보여준다.
문제는 관객을 사로잡는 독특한 콘셉트에 깔린 이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실 활용에 따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주는 부분은 좋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개연성과 그에 따른 디테일은 떨어진다. 특히 파비아나가 집 안에 벨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외면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이뤄진다. 더불어 수위 높은 베드신은 물론, 파비아나의 빈번하고도 의도된 노출은 벨렌의 분노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어 활용 부분에 아쉬움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히든 페이스>는 밀실 콘셉트로 밀어붙이는 섹슈얼 치정극으로서 장단점이 명확한 작품이다. 완성도를 떠나 이 작품이 인도, 멕시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었다는 건 그만큼 영화의 매력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반대로 빈 곳이 많아 각색의 여지가 많다는 것도 방증한다. 과연 에로틱 영화의 장인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송승헌, 조여정, 박주현이 출연하는 리메이크 영화는 어떻게 나왔을까?사진 제공: (주)더블앤조이픽쳐스
평점: 2.5 / 5.0
한줄평: 밀실 콘셉트로 밀어붙이고, 버티는 용한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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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놉시스를 보고 재밌어보여서 보기 시작한 영화 <동네사람들>. 마동석의 통쾌한 액션과 추리를 기대했지만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영화 <동네사람들> 시놉시스
여고생이 사라졌지만 너무나 평온한 시골의 한적한 마을, 기간제 교사로 새로 부임 온 외지 출신 체육교사 기철은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실종된 여고생의 유일한 친구 유진만이 친구가 납치된 거라 확신하여 사건을 쫓고, 의도치 않게 유진과 함께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선 기철은 누군가에 의해 그녀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침묵하는 사라진 소녀,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녀를 찾아야만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동네사람들>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마동석표 액션
범죄도시, 신과함께 등 전작에서 봐왔던 마동석 배우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볼 듯한 체격에 기술보다는 남다른 체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스타일의 액션을 많이 보였다. 그래서 마동석 배우가 이번 영화 <동네사람들> 속에서 다른 액션을 선보일 것이라고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남다른 피지컬로 헐크처럼 쓸어버리는 액션을 선보일 수 있는 남자 배우는 마동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액션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영화 <동네사람들>의 연출이 잘못한 것 같다. 하나도 통쾌하지 않다. 액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지루할 수 있을까. 전작에서 그의 액션 역시 영화 <동네사람들>의 액션처럼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액션이었지만 엄청난 희열감과 통쾌함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 <동네사람들>은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은 액션 영화였다. 좋은 배우를 가져다가 나쁘게 써먹은 예로 영화 <동네사람들>이 한동안 거론되지 않을까 싶다.
범접할 수 없는 악인의 부재
어쩌면 마동석표 액션이 큰 통쾌함을 주지 못한 이유에는 악한 상대가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악인의 힘이 크면 클수록 마동석의 액션은 더욱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악역을 하는 캐릭터는 기존 범죄물의 악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유약한 면이 많이 부각됐다. 대표되는 악인이 미술선생님과 그 아버지다. 미술선생님 김지성은 몰카를 달아 여학생들을 훔쳐보고 여학생들을 유인해 집까지 끌어들이지만 그렇다고 살인까지 계획을 하진 않는다. 어쩌다 보니 여학생을 기절시켰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술선생님은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자라다보니 측은한 느낌마저 자아내다보니 악인이라는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액션의 통쾌함이 반감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주제가 무엇인가?
영화 <동네사람들>을 다 보고 나서 이 작품을 보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나? 하고 혼란스러웠다. 화끈한 범죄 오락 액션이었다면 보는 동안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고, 액션, 스릴러, 추리였다면 적어도 추리하는 데 머리를 쓰면서 그 에너지를 소비라도 했을텐데 이 작품은 약간 3초 스포식으로 머리 속에서 다음 내용을 넌지시 알아서 알려주다보니 흘러가는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회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극심하고 있는 몰카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어서 영화의 방향이 모호한 상태에서 끝나다 보니 끝나고 얻은 깨달음은 ‘아! 끌리지 않는 영화는 시간이 남더라도 보지 말아야겠다’였다.
영화 <동네사람들>은 마동석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나쁘지 않지만 작품 자체는 추천하진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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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지 없이 귀신처럼 떠돌다 끝나는
아무튼 퇴마사
이 영화의 주인공은 퇴마사 천박사다. 큰 차를 끌고 천박사와 강도령이 이동하고 있다. 차의 뒷부분에 짐들이 바리바리 쌓여있다. 강도령, 그러니까 인배는 이게 맞나? 싶다. 몇 번 따라다녀 보니 이 퇴마가 나름 고객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면 다행인 셈이다. 이번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배와 천박사.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번 고객은 중학생이다. 점점 부모에게 투덜대는 딸. 얼핏 보면 이 집안에 되는 일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한 강도령과 천박사. 두 사람이 차에서 주섬주섬 짐을 꺼낸다. 근데 이거 차 견인 안 되겠지? 어차피 조금 하고 나올 건데 고객 부부의 딸은 대놓고 ‘주작이지?’ 의심한다. 원래 처맞기 전에는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마 용한 퇴마사를 만나지 않으니까 이런 소리를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것 같다.
퇴마가 진행된다. 안 믿었던 부부의 딸. 딸의 눈빛이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한 기운이 왠지 모르게 집안 전체에 흐르는 것 같다. 확실히 진짜인 것 같다. 부정적인 기운이 이 집에서 사라지는 것 같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강도령과 천박사가 무엇인가를 꾹꾹 누르고 있다는 건 부부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리도 깨지고 붉은색 액체도 흘리고 별의 별것이 보이는데 리스펙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이 퇴마의 뒷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천박사와 강도령은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가짜 퇴마사인지, 진짜 의사인지 구분이 안 되는 천박사. 천박사에게 특별한 고객이 찾아왔다. 진짜 귀신을 다루는 고객이 온 것이다. 과연 천박사는 고객 유경을 둘러싼 저주를 없앨 수 있을까?
만화 같은 이야기
이 영화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 실제로 김용태, 후렛샤가 연기한 <빙의>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잘 활용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만화란 매력적인 세계관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만화 시리즈인 마블 코믹스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약 이 만화에서 다루는 에피소드가 타노스와의 일전이라고 가정한다. 그럼 우선 타노스가 어떤 욕망이 있어 빌런으로서의 목표를 이루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준다. 욕망만 있으면 안 된다. 그만큼의 무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의 아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탄생한다. 무작정 싸우기만 하면 또 안된다. 인피니티 스톤들을 모으기도 하고, 외계 행성에 있는 슈퍼히어로도 새롭게 등장시킨다. 슈퍼히어로들이 연대를 통해 빌런 타노스를 무찌른다. 전우주적인 존재를 이기는 힘이 캐릭터들의 매력과 연대라는 감정이 된 것이다.
본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은 만화가 가진 매력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관을 이끌어야 할 천박사(강동원)는 개성이 빛나는 캐릭터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 안에서의 천박사는 허상인 퇴마능력을 뛰어난 추리능력으로 둔갑시킬 만큼 능글맞다. 이 능력 묘사는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 능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부 유경과 천박사가 대면하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영화의 사실상 진정한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관객은 유경이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이야기 안에서 천박사의 수가 너무 대놓고 드러나면(사기행각이 들킨다면)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장면에 현실성을 부여해서 초반부의 설득력을 만들었다. 이 초반부 이후 전개는 장르가 급변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코미디/액션에서 호러/오컬트로 급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스타트를 잘 끊어 후반부까지의 토대를 세운 것이다.
눈요기 칭찬해
영화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 하나는 액션이다. 영화에서 액션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두 명이다. 주인공 강동원, 허준호 배우가 맡은 역할이다. 우선 허준호 배우의 액션연기는 훌륭했다. 허준호 배우가 맡은 범천은. 영화의 기본 설정 상 인물 서사에 곡선을 만들면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 영화가 이를 의식해서인지 초반부와 후반부의 활동 범위 차이를 일부러 대조한 감이 있다. 실제로 영화의 편집이 범천이 실내에 있을 때에는 다각도로 인물을 보여주지만 밖에 있을 땐 테이크가 짧다고 보긴 어렵다. 전반부, 후반부 모두 허준호 배우의 경험치가 빛난 셈인데, 글쓴이는 후반부의 연기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중후반부에 늘어지는 이야기 흐름을 확 휘어잡는 좋은 연기였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호불호가 갈릴 부분은 cg 시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에도 당연히 좋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극 중 중반부에 핵심 조연(특별출연)으로 누군가가 등장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영화가 이 장면에서 관객에게 준 힌트가 이후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두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 이전에, 이 이야기를 설득시키기 위해 시각자료를 첨부한 성의가 좋았다.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인 자료를 적절하게 활용한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산만한 연출
이 영화의 플롯 구조가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면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긴박감을 조성하는 연출이다. 중반부부터 악당의 정체가 밝혀진다. 이 악당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를 것 같은 건 당연한 이야기이다. 대표적으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 <더 배트맨>의 리들러가 그랬듯이 말이다. 앞 두 영화가 악랄한 빌런이 잡힐 듯 말 듯 긴장감을 유지했던 것과는 별개로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은 단조롭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클로즈업이다. 영화에서 그럴듯한 위기가 벌어질 때 인물들은 인상 찌푸리기만 한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영화에 빼곡히 있어 다양한 리액션이 나와야 할 판에, 같은 리액션만 반복하니 단조로워진다.
또한 이야기에 한 번에 몰입하지 못하게 등장인물 중 몇 명은 영화를 방해하고 있다. 인배 캐릭터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체적으로 방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인물의 억지 유머가 전체적으로 고르게 있지만 특히 이야기 중반부 즈음 빌런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신에서 강하다. 이 장면에서 영화가 가진 과제는 빌런(허준호)이 이런 인물이라고 관객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인배의 캐릭터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인배가 이 장면에서 정확히 이런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애매모호해
이 영화는 애매모호하다. 코미디라고 보기에도 그렇게 웃음 타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호러/오컬트라고 보기엔 주요 장면에서 cg티가 나고, 오컬트물로 볼 수 있을 만큼 퇴마라는 것에 중점을 두지도 않았다. 이 영화가 이렇게 모호한 육각형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등장인물 천박사의 퇴마의식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천박사가 딱히 퇴마사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 없다. 그렇다고 무슨 심리치료사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도 아니다. 영화가 천박사를 퇴마사도 아니고 심리치료사도 아닌 무언가로 설정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천박사가 사용하는 도구가 이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도구를 가지고 퇴마의식을 했다던가 유령과 관련된 어떤 것이 나왔던가 하면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쉽게 수긍했을 것이다. 정작 주인공 천박사가 칼 휘두르는 모습만 기억에 남으니 액션물도 아니고 오컬트물도 아닌 모호한 무언가로 기억되기 쉬울 듯하다. 이러다 보니 영화의 연결고리들이 매끈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두드러진다. 확실한 장점이 없으니 불확실한 단점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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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넷(Tenet/ 영국, 미국/ 2020)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악의 진부함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 있는 기술, '인버전'을 발명한 미래의 한 과학자는 이것이 매우 위험하게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전 세계 특정 지역 9 곳에 인버전 기술을 실행시키는 도구인 '알고리즘'을 분산하여 숨겨두고 자살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중 하나가 러시아인 안드레이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다.
한편 자연 현상을 거스르는 무기가 속속 발견되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미국 CIA는 추적 끝에 이 무기들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막기 위해 정예 요원 주도자(protagonist, 존 데이비드 워싱턴, 그의 역할에는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다.)를 작전에 투입하는데 그에게 임무를 부여한 상급자는 양 손가락을 겹치는 제스처와 '테넷'이라는 암호를 알려준다.
주도자는 미래에서 온 무기의 성분을 알아내어 이 금속을 다루는 전문가 산제이 싱을 만나기 위해 인도로 날아간다. 인도에서 철옹성 같은 은둔지에 거주하고 있는 산제이를 만나기 위해 지역의 요원 닐(로버트 패틴슨)의 도움을 받아 산제이를 만나지만 그는 허수아비였고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아내 프리야(딤플 카파디아)였다. 프리야는 사토르에 대해 알려주고 주도자를 영국 정보기관으로 연결해준다.
영국 첩보 기관의 도움으로 사토르에 이르는 길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임을 알게 된 '주도자'는 캣의 약점을 알고 있다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한편 사토르에게 약점이 잡혀 그의 조종을 받는 처지에 놓인 아내, 캣은 남편을 증오하지만 아들 맥스를 포기할 수 없어 사토르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영국 귀족 가문 출신으로 미술품감정사이다. 극도로 이기적이며 자기애가 강한 사토르에게는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 남편의 지위를 상징하는 아내)인 셈이다. 그녀가 매우 특별하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게 큰 키에서도 잘 드러난다.
캣으로부터 사토르가 오슬로 공항의 프리포트에 자주 출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담한 작을 펼쳐 잠입한 주도자와 닐은 사토르가 인버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를 프리포트에 설치하고 과거로 가서 미래의 무기를 가져옴으로써 거대한 부를 쌓았음을 알게 된다.
주도자는 의심 많은 사토르의 마음을 살 방법을 알기 위해 프리야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사토르가 플루토늄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운반 중인 플루토늄을 가져다주겠으니 도와달라며 사토르에게 접근하여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찾고 있던 플루토늄은 플루토늄이 아니라 인류를 멸망시킬 알고리즘이었고 사토르는 이미 8개의 알고리즘을 확보한 뒤였다.
사토르가 모든 인류의 생명을 단번에 끝내려는 순간, 주도자와 닐은 각각 시간을 순행하는 팀과 시간을 거스르는 인버전 팀에 배치되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시간의 협공'을 펼친다.
사실 <테넷>은 '인버전'을 젖혀두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영화도 아니고 주제도 매우 고전적이다. 세상에는 항상 악이 존재하고 이 악을 물리치기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구하는 힘은 '사랑(예를 들면 캣이 아들 맥스를 악한 남편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랑, 이를 두고 주도자는 영화에서 프리야에게 "세상을 바꿀 진짜 폭탄"이라고 가르쳐 준다.)'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종종 악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자기애에 가득 차 타인을 조종하는 자, 그리고 타인의 생명을 마음대로 파괴하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신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자로 설명되는데 <테넷>의 사토르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인류를 멸절시키려는 이유를 환경 파괴 때문이라고 둘러대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그가 가질 수 없는 세상이라면 아무도 갖지 못하게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파괴력이 그에게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오만이 정확한 그 이유였다. 악에 대한 묘사가 진부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악에 대한 설명만 제외하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창의적인 상상력과 표현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천재적이다.
<테넷>이 관객을 사로잡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리고 담론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영화의 모호함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설명을 아낌으로써 모호함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그 모호함 때문에 관객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되고 영화 관람 후 모호함에 대한 해석을 저마다 내어 놓다 보니 영화에 대한 담론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안내가 없다.
주도자가 인버전된 총알을 소개 받는 연구실 B-2는 영국일까, 미국일까, 캐나다일까, 호주일까. 연구실의 인테리어는 매우 고풍스럽다. 전화도 아날로그 식이다. 연구원의 옷 무늬도 복고풍이다. 시대적 배경은 언제일까. 감독의 불친절함 때문에 관객은 혼란스럽기까지 하여 다음, 또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다는 것은 현실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물리학적 가설에 입각하여 영화 안에서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고 한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일반 관객은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앎과 모름 사이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놓인 채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이해하기보다 느낀다는 것은 글이나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더 알고 싶은 마음에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둘째, 스크린에 펼쳐지는 공간 구성이 낯설 정도로 새롭다.
일반인들이 흔히 접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러시아, 인도 등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라들이 아니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자연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산제이 싱을 만나기 위해 곡예사처럼 건물 벽을 타고 내리는 장면, 시간의 협공을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방식 등은 경이롭다. 이 새로움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셋째, 안정감이 결여된 상황 때문에 관객들은 불안하고 불안은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안정된 건물 안이 아니라 이동하는 배, 자동차이다. 실내도 실외도 아닌 애매한 곳이다. 안심하고 정착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발을 견고하게 내디딜 수 없는 바다 위, 혹은 빠르게 이동하는 도로 위이다. 이 지속적인 역동성은 관객을 영화에 붙들어 놓는다.
넷째, 현실적인 설정이 공감을 자아낸다.
무고한-그러나 그의 인생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생명을 해치려 할 때 같은 목적을 지닌 동료일지라도 가차 없이 살해하는 주도자의 캐릭터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모른 채 임무에 뛰어들어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자신이 바로 작전의 주도자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 이는 마치 우리가 인생을 한참 산 후에 되돌아보고 나서야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현실과 닮아있다.
결국 감독은 비현실적인 스크린 속 세상에 현실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짚었다고 하겠다.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된 고전적인 주제가 화면에 웅장하게 펼쳐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어떤 중요하고 큰 일에 동참하고 난 듯한 뿌듯함마저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원하는 특정 시간과 장소로 인버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물리학적으로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 영화에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그만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해져 버렸다(©2021. 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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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스포일러에도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관람하고 시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재밌게 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 '빅 식'입니다.
코미디언이자 배우, 쿠마일 난지아니가 자신을 연기한 실화 바탕의 영화인데요. 아카데미가 주목한 로맨틱 코미디, 함께 봐요 :)영화는 7월 18일 개봉입니다!
** 왓챠에 '진상명'을 검색하시면 빠른 단평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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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CIA 요원 로빈 맥콜은 고모인 바이올라 마세트 그리고 딸 딜라일라와 함께 지낸다.
CIA는 최고의 요원이었던 로빈이 복귀하도록 회유하기 위해 로빈의 친한 선배이자 전직 CIA 소속이었던 윌리엄 비숍을 보내 보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그러던 중 로빈은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가 오히려 살인 누명을 쓴 십대 소녀 쥬얼 마차도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쥬얼을 돕기 위해 옛 동료인 스나이퍼, 멜로디 바야니와 해커인 해리 케시지언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