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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예슬2021-11-19 13:56:39

예술가의 사랑 :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불초상 리뷰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하녀는 아가씨를 사악한 보호자의 손에서 구해 멀리 도망갔습니다.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셀린 시아마가 감독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아마 박찬욱의 <아가씨> 역시 보았을 것이다. 공통적으로 두 영화는 두 여자 사이의 로맨스를 다루며 '시대물'이고 두 인물 중 한쪽의 신분이 더 높다. 또한 두 작품에 등장하는 낮은 신분의 인물들은 비밀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아가씨'에게 접근했다 사랑에 빠지고 만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하 '불초상')은 그러나 <아가씨>와는 정반대의 끝을 맞고, 되려 이 결말은 토드 헤인즈의 <캐롤>을 떠올리게 하는 이별의 결말이다. 아가씨, 엘로이즈를 사랑하는 화가 마리안느는 함께 도망치자고 권하지 않으며, 엘로이즈와 함께 바다에 뛰어드는 대신 영원한 작별을 위로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린다.

<불초상>에서 아가씨를 결혼시키려는 보호자는 아가씨를 해치려는 사악한 악당이 아니라 정해진 길 위의 행복을 건네주려는 어머니이다. 엘로이즈와 마찬가지로 얼굴도 못 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백작부인은 다시 고향 밀라노로 돌아가기 위해 결혼을 거부하는 딸(들)의 초상화를 그리려 화가들을 불러들인다. 웃을 일이 없는, 행복하지 않은 백작부인은 자신의 삶을 되물려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첫 번째 초상화가 망쳐지고 백작부인이 떠난 잠깐의 유예기간 동안 바닷가의 저택을 배경으로 평생 잊히지 않을 일들이 일어난다. 소피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조하는 역할인 하녀이나,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무너지고 소피의 이야기가 중심에 선다. 임신을 원하지 않지만 의사를 찾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소피의 임신 중절을 돕기 위해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해변을 달리는 소피를 독려하고, 임신에 해로운 약초를 찾고, 부엌 서까래에 매달리는 소피를 부축한다. 가능한 민간요법을 모두 시도한 후 벽난로와 양초의 어두침침한 빛으로만 밝혀진 방에서 엘로이즈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낭독한다. 소피는 끝내 뒤를 돌아보고 만 오르페우스에 분개하지만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것이 예술가로서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나, 마리안느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롱에 그림을 걸고 엘로이즈는 딸을 낳아 키울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와 두 차례, 살롱의 그림으로 한 번 그리고 비발디 연주회에서 한 번 재회한다. 그러나 이 재회는 두 번 모두 마리안느의 일방적인 조우이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시간, 둘이 사랑했던 시간 속에서는 화가가 모델을 볼 때 모델 역시 화가를 바라보았다. 마리안느의 그림 속 이별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마지막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축제에서 마리안느가 모닥불 너머로 엘로이즈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릴 때 엘로이즈 역시 마리안느를 보았다. 화답하는 사랑의 시간이 끝나고, 엘로이즈와 28쪽을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비발디를 들으며 울고 웃으며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엘로이즈를 멀찍이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응시는 일방적인 예술가의 시선이 되었다. 기성 살롱의 예술가가 된 마리안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술가와 뮤즈의 동등한 사랑과 응시가 끝났음을 알리고 더이상 지속되지 않아 다행일 뿐인 위계이다.

작성자 . 양예슬

출처 . 미다지_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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