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1-24 15:49:00
소설(小雪)부터 대설(大雪)까지 영화롭게
겨울 추천 영화
소설(小雪) 과 동시에 찾아온 강추위에 벌써 겨울이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 어느덧 올해가 한 달여 남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데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2021년이 가고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생각에 아쉬우면서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왔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합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마냥 아쉬워할 수도 없으니 남은 2021년을 행복하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길거리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우리의 마음을 크리스마스 바이브로 가득 채워줄 '영화'가 있다면 다가오는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씨네픽이 겨울에 의한, 겨울을 위한 겨울의 영화들을 준비해보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겨울 바이브 가득 담은 영화들을 함께 만나볼까요?
잇츠 CINE PICK!!
<러브레터>(Love Letter), 1995
드라마, 멜로/로맨스 | 일본 | 117분
감독 : 이와이 슌지 | 출연 :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 9.39 (네이버 관람객)
오늘에서야 다시 꺼내봅니다. 당신이 머문 곳에서…
“가슴이 아파 이 편지는 차마 보내지 못하겠어요.”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그녀, 와타나베 히로코
“이 추억들은 모두 당신 거예요.”
첫사랑을 알지 못했던 그녀, 후지이 이츠키
씨네 pick : "아직까지 <러브레터>를 뛰어넘는 일본 멜로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맥스무비 정유미 기자) 라는 평을 입증하듯, <러브레터>는 국내에서 무려 5번이나 재개봉된 명작입니다. '겨울'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며 절대 잊혀지지 않을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 영화는 포스터만으로도 겨울의 설렘이 느껴지는데요. 여러분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어떤 하루에 <러브레터> 속 오타루의 겨울이 따스한 온기를 채워주길 바랍니다.
<윤희에게>(Moonlit Winter), 2019
멜로/로맨스 | 한국 | 105분
감독 : 임대형 | 출연 :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나카무리 유코
⭐️ 9.23 (네이버 관람객)
다시 날 가슴 뛰게 만든 그 말
"윤희에게, 잘 지내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씨네 pick : 얼마전 개봉 2주년을 맞은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깊은 영화인데요. 겨울의 오타루와 '편지' 그리고 필름 카메라까지 <러브레터>와 비슷한 소재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정을 그려내는 <윤희에게>는 겨울을 담아낸 시 한 편을 본 듯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꿈을 꾸셨나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요즘, <윤희에게>를 감상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멜로/로맨스, 드라마, SF | 미국 | 107분
감독 : 미셸 공드리 | 출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 9.26 (네이버 관람객)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 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기만 하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요?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씨네 pick : 이 영화 추천이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는 있어도, 영화가 식상하다고 느낄 일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은 명작 <이터널 선샤인> 입니다. 여름만 되면 공포 영화가 개봉하는 것처럼, 겨울엔 특히 '사랑'과 관련된 영화가 많은 것 같은데요. 겨울 감성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맞닿아 있어서일까요? 겨울이라는 계절은 절절한 사랑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같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감정은 어떤 상태인가요? 우리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
멜로/로맨스, 드라마, 코미디 | 영국, 미국 | 130분
감독 : 리차드 커티스 | 출연 :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엠마 톰슨, 키이라 나이틀리, 빌 나이
⭐️ 9.24 (네이버 관람객)
크리스마스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로맨틱한 고백
사랑에 상처받은 당신을 위해,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사랑에 확신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선물이 찾아옵니다.
씨네 pick : <러브 액츄얼리> 라는 제목만 들어도,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의 전주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마법! 음악뿐 아니라, 스케치북 고백, 영국 명배우들의 열연 등 <러브 액츄얼리>는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정말 많은 영화인데요. 위 영화들이 말그대로 '겨울 영화'라면 <러브 액츄얼리>는 보다 크리스마스 영화에 가깝습니다. 선물상자 같은 포스터처럼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봐야하는 정석 같은 영화이기도 하죠. "To me, this film is PERFECT"
<미져리>(Misery), 1990
스릴러, 공포, 드라마 | 미국 | 104분
감독 : 로브 라이너 | 출연 : 제임스 칸, 케시 베이츠
⭐️ 9.03 (네이버 네티즌)
'미저리'란 이름의 순애보적 여인상을 등장시킨 대중 소설 시리즈로 여러해 동안 인기를 누려온 소설가 폴 셸던(제임스 칸)은 연작 속의 여주인공이 죽는 마지막 완결편을 끝으로 시리즈를 마감하고, 오랫 동안 쓰고자 했던 진지한 작품 완결 후 차를 몰아 뉴욕을 출발한 폴은 산 길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휘몰아쳐 온 눈보라를 만나 길 밖 벼랑으로 핸들을 꺾고 만다. 심한 부상으로 의식 불명이 된 폴을 때마침 구해내는 수수께끼의 인물 애니 윌킨스(캐시 배이츠)는 미저리 시리즈의 애독자로 폴의 재능을 동경해 온 간호사 출신의 여자다. 애니의 집으로 옮겨져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로 의식을 회복하는 폴. 그러나 그의 몸은 양다리가 참혹하게 부러지고 어깨마저 심하게 다친 처참한 상태다. 애니는 눈보라로 길이 막혀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으며 전화마저 불통이어서 외부에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이 녹고 길이 뚫려도 애니는 폴을 병원에 보내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마을에 나가 미저리 시리즈의 최신판을 사다 읽은 애니는 마지막에 미저리가 죽는다는 걸 알고 폴에게 분노의 광기를 발산하는데...
씨네 pick : 겨울 로맨스 영화에 질린 당신을 위한 추천작! 진눈깨비도 아니고 폭설을 볼 수 있는 진정한 겨울 영화 <미저리>는 작년 보기 힘들었던 눈을 가득 볼 수 있는 영화인데요. 사실 '눈'은 로맨스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지면, 스릴러의 단골 소재이기도 합니다. 눈보라 치는 날,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이유! 이 영화에 다 있습니다. 눈 오는 날엔 꼭 집에 있기로 해요.
여러분은 올해 첫눈을 보셨나요? 아직 못 보셨다고요?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첫눈이 아니니까요~
아직 보지 못한 첫눈을 기다리며, 씨네픽 추천 겨울 영화와 함께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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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도 할수 없어서
나는 군대 이야기를 싫어한다.
이야기에는 상상력이 들어간다. 그 상상력은 과거의 일과 사건을 현재로 가져다준다. 단순히 듣는 소리로의 청각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했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그때로 돌아간다. 군대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멈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때로 나를 이끌어 간다. 축축한 침낭 속에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던 그때. 커대 한 코골이 소리와 이가는 소리. 미련하게 꾸역꾸역 들어오던 한기. 조금 몸을 움직이다 걸린 총기 거치대.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어느새 터득한 얕은 호흡으로 얼마 있다 보면 기상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과 생각에 틈도 없이 몸은 일어나 불을 켠다. 겨우 하루. 하루다. 하루가 지났다. 도대체 하루가 왜 이토록 길고 무서운지.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바뀌었다는데. 어쩜 이 제도는 꿈틀거리지도 않을까?
지금껏 살아가며 가장 떠오르고 싶지 않은 순간. 바로 이등병 시절이다. 그토록 길었던 2년 넘는 시간. 남북통일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방학을 기다렸던 것보다, 핑클 3집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욱 간절하게 기다렸던 전역. 그리고 위병소를 통과해서 세상에 나오던 발걸음의 무게와 함께 허무함. 아무렇지 않음과 함께 씁쓸함. 유쾌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전역 후에도 몇 년 동안 군대의 악몽을 시달리게 했다. 그리고 한동안 꾸지 않았던 그 악몽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를 시청한 뒤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중에서
인스타와 페이스 북에 계속되는 광고 속에 호기심이 있었지만, 정해인, 김성균, 손석구. 색이 있는 연기자들이 펼쳐나갈 이야기도 기대가 되어 손이 갔지만, 눈이 가지질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는데 예상 못한 D.P의 반응과 호평 속에 결국 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6화까지 모두 섭렵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보는 내내 계속되는 한숨과 나도 모르게 움켜쥐어진 주먹, 그리고 떠올리기 싫었던 그 시절의 냄새가 느껴졌다. 몰입도 있는 스토리 라인은 긴장과 완화를 반복해서 일으켜 주었다. 각각의 사정과 상황으로 인해서 탈영이라는 극단적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그리고 탈영병을 잡는 과정 속에서 어느덧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되는 주인공들, 섬세한 이야기꾼의 스토리 전개로 인해 한눈팔기 어렵도록 만들어버렸다.
특히 당시 상황의 연출의 디테일은 실제 부대와 거의 같은 수준이며, 그것으로 보는 내내 괴로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더 잡아주는 OST도 칭찬할만하다. 개인적으로 프라이머리 음악을 좋아하는데 몽환적이며, 놀랍도록 스며드는 음악은 이 시리즈의 별미다. 또한 군 시절 휴가 나가서 헌병대 앞에서는 늘 긴장하라고 했던 선임들의 목소리가 생각날정도로, 기대했던 연기자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배우들의 선전에 긴장감이 조여올 정도였으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과한 설정과 거기서 뭉그러지는 배우들의 과한 에너지에 부대끼기도 하고, 계속되는 긴장의 노출이 피로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인공 안준호와 한호 열의 티키타카와 함께 군부대 내의 박범구 중사와 임지섭 대위와의 기싸움이 피로감을 덜어준다. 마지막 탈영병 조석봉 일병의 이야기는 극 중 가장 몰입되면서도 안타까움이 컸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극적 장치를 위해 진행되었던 내용이었겠지만, 과몰입해서 시청하던 내게는 오히려 과한 설정이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뭐라도 바뀌려면 뭐라도 해야지" 이 드라마가 마쳤음에도 귓가에 떠나지 않았던 대사. 그러나 뭐라도 할 수 없기에 여전히 군에서는 수많은 탈영병과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아카데미와 빌보드 차트에 취해 어깨가 으쓱해졌던 대한민국의 실제 민낯에 당황하고 있을 사람들이 꼭 "뭐라도 할 수 없어서" 오늘도 그 자리에서 당하고 있는 그들을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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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영화후기
영화<미나리>는 1980년대 한국 이민자 가족이 아칸소 주의 시골에서 농장을 가꾸는 이야기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이들이 한국의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에 비유한 작명이라 한다. 제이콥(스티븐 연)와 그의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70년대 초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와서 병아리감별사로 거의 10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재산으로 아칸소 주의 농지 5에이커를 구입한다. 10살이 된 의젓한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심장병이 있는 7살짜리 아들 데이빗(앨런 S. 김)도 부모를 따라 낯선 땅에 도착한다.
제이콥은 미국에서 희귀한 한국산 채소를 길러 대박을 노리지만, 수원지와 떨어져있어 전 땅주인조차 포기한 황폐한 땅임을 모른다. 모니카는 낯선 아칸소로의 이주가 썩 내켜하지 않지만, (남편을 믿고) 농작물이 경작될 동안 병아리 농장에서 생계를 책임진다. 그녀가 일하러 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고국에서 친정어머니 순자(윤여정)을 모시게 된다.
1.헐리우드가 <미나리>를 주목하는 이유는?
영화 <미나리>는 거시적인 이민이야기와 미시적인 개인사를 교묘히 배치해 놨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인공 시점을 둘로 쪼개 놓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제이콥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는 데이빗의 시점으로 나눠놨다. 아버지와 아들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어서 진부한 가족드라마로 낭비되지 않도록 막고 있다.
또,이 자전적인 영화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다. 한국인의 정(精)과 가족애를 내세웠음에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기존 한국영화들이 감정적으로 관객을 동요시키려 애쓰지만, <미나리>는 굉장히 냉철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결말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끝나지만 다 보고나면 우리는 이 가족에 대해 안심한다. 가족이 안고 있는 갈등이 '미나리'라는 희망으로 봉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마법이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재하고 영화에서 이해가 안 될 부분들만 논의해보겠다.
주인공 데이빗의 눈에 비친 부모님, 이민 1세대는 전형적인 20세기 한국인이다. 가족을 위해 농장을 이루려는 아버지와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남편을 믿고 묵묵히 서포트하는 어머니가 그렇다. 반면에 이민 2세대는 미국 사회에서 미국인처럼 생활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아칸소의 ‘신앙공동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폴(윌 패튼)은 중남부에 걸친 복음주의 개신교가 강한 '바이블 벨트(Bible Belt)'을 의인화했다. 그가 십자기를 지고 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신앙심 깊은 모니카가 한인교회가 없는 아칸소에서 개신교들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미국 사회에 동화되는 장치로 활용했다. 이 점만 봐도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한예리 배우가 밝힌 비하인드에 의하면, 모니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제법 큰 돈을 벌었지만, 남편은 그 돈을 고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했다. 그 와중에 남편 제이콥은 자신의 꿈이라며 농장을 계약하고 아칸소로 이사왔다. 그녀는 남편의 뜻을 존중하지만, 가슴 한편으로 조국을 그리워하고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모니카는 이민자의 설움을 같이 공유하던 캘리포니아 한인교회를 그리워하지만, 아이들은 지역교회를 배먹지 않고 다니며 백인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미국 청교도 문화에 동화되었다.
반대로 한국에서 온 순자는 낯선 존재다. 그녀는 딸이 아이들에게 데려가면 안된다고 한 위험한 숲으로 손자손녀를 데려가면서 뱀을 쫓아내려는 데이빗에게 위험한 건 눈에 보이는 게 좋으니 내버려두라 타이른다. 이것은 가정 내부의 문제를 서로 대화하고 같이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이다. 즉, ‘농장’을 두고 제이콥과 모니카의 의견 차이에 대한 할머니의 조언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미국사회에서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2.외할머니 순자는 왜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미나리의 의미는?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미국에서 본적이 없는 한국적인 할머니 상이라서 신선해서이다. 순자는 요리에 서툴지만, 어머니와는 다른 할머니의 애틋함을 보여준다. 또,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한국에서 바리바리 음식보따리를 풀어놓는다거나 딸과 사위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그런 태도는 미국인에게는 굉장한 문화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말이다.
“‘미나리’가 얼마나 좋은 건데...‘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하든. 김치에 넣어 먹고 찌개에 넣어 먹고 국에도...아플 때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순자(윤여정)의 대사
할머니 순자(윤여정)의 대사를 유심히 들어보면 미나리의 의미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손자 데이빗(앨런 킴)에게 ‘너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스트롱한 보이야!‘라고 칭찬하거나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 여러 곳에 쓸 수 있다"라고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미나리’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질긴 생명력과 할머니와 손자의 정(情)을 실로 우아하게 의인화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끈질긴 생명력과 이민자로써의 정착을 상징하는 소재가 순자가 심은 ‘미나리’다. 앞서말한 거시적·미시적 관점이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것이다. 동시에 프로테스탄티즘과 프론티어 정신을 한국인의 민족성과 결부짓는다. 이것이 할리우드가 <미나리>를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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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는 악만큼 중요한 것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라사와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 딸과 살고 있는 남자 타쿠미(오미카 히토시)다. 조용히 일 하는 중인 타쿠미. 장작을 열심히 팬다. 톱으로 나무도 자른다. 일하다 담배 한 번 피워준다. 이런 타쿠미에겐 일행이 있다. "타쿠미 상!" 타쿠미에게 다가오는 타쿠미의 친구. 타쿠미는 친구에게 자연물의 많은 것들을 알려주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 '땅와사비' 하나를 뽑는 타쿠미. 친구에게 "너희 우동집에 이거 넣어서 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니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런데, 딸 하나(니시카와 료)는요?" 사실 타쿠미는 건망증이 심하다. 하나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때가 오면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내 정신 좀 봐! 사랑하는 딸을 데리러 가는 타쿠미. 그러나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넨다. "오늘 우리 동네에 글램핑을 짓겠다면서 워크숍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 올 거죠?"라고 묻는 친구. 타쿠미는 "간다"라고 답한다. 모든 것이 상류에서 하류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영화는 서늘하게 이 마을에 일어나는 일들을 비추고, 특별한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일반적이지 않다. 영화의 느릿느릿한 템포때문에도 그렇고, 인물의 감정선엔 특히 더 그렇다. 영화의 많은 것들은 상황만 몇 개 보여줄 뿐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 덕에 영화가 좀 뭉뚱그려진 채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왜 타쿠미는 타카하시를 죽인 거야? 하나는 어떻게 된 거야?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 의문점만 생긴다. 단순히 줄거리와 결말만 그럴까?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기이할 정도로 길어서 어느 부분에서 장면이 끊길지 예상이 잘 안 간다. 단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직관적으로 들어와서 '이 영화가 복잡다단한 인간성을 보여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엔딩에서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공격하는 일이 영화 내내 반복됐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몇 키워드에 대해 써 볼 것이다.
첫 번째 키워드는 단절이다. 글쓴이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단절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다. 이 팬데믹 사태는 영화에서 두 사건에 개입하며 인물 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우선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마을의 어느 곳에 글램핑 터를 짓는 것이다. 이 글램핑 터를 짓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영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으니 정부에 보조금을 받기 위해'다. 이 공사는 곧 양 측을 갈라놓는 계기가 되어 중반부까지 인물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또 다른 단절은 의사소통의 단절이다. 워크숍에서 박살이 난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주민들에게 "사장에게 말하고 오라"라는 피드백을 듣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사장과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 의사소통은 무언가 특별하다. 바로 줌(zoom)으로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 역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보기 어렵다. 타카하시와 마유즈키의 상사는 두 사람의 주장을 별로 귀담아 안 듣고 그냥 무작정 "선주민 남자(타쿠미)에게 글램핑 터 부지의 관리인 직을 제의해라"라고 말한다. 이 대화는 방식의 측면에서도 제약이 많은데 내용도 알차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 둘의 상사 간의 대화가 단절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연출이다.
두 번째로 암시하고 있는 이 영화의 단절은 건망증이다. 타쿠미는 뭐든 잘 잊어버린다. 영화 초반부에 딸 하나를 데리러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친구 덕에 그 약속을 떠올린다. 사실 처음 볼 때 이 장면을 그냥 별 것 없다고 넘겼다. 깜빡 잊어버리는 건 그냥 우연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잊어버린다'라는 모티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본다면 분명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타쿠미는 앞과 뒤에 일어난 일 중 먼저 발생한 사건을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가 (후술 하겠지만) 자연의 순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특별하다. 타쿠미는 전을 잊어버리고 이후에 일어난 일만 기억했다. 이 결과로 딸 하나를 데려오는 걸 잊어버렸다. 영화가 전에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 자에게 소소한 벌을 내렸다고 볼 수 있고, 역시 타쿠미는 사건의 전부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아 '단절'을 체화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를 둘러싼 단절도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초반부에 하나는 사슴의 사체(뼈)를 본다. 아빠에게 "얘는 총에 맞았다"는 말을 들은 하나. 이 하나는 연이어서 사슴을 목격한다. 초반에 사슴이 죽은 걸 봤다. 그다음 장면은 사슴이 살아있는 장면이었다. 그다음의 다음 장면은 하나가 사슴에게 공격당한 뒤의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시간 순서대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글쓴이가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두 번째 장면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니는 모습만 나온다. 이야기를 이끄는 동력도 뭣도 없는 채 신화의 한 장면 같은 장소를 돌아다닌다. 하나가 공격당했다는 묘사가 있을 리가 없다. 엔딩에서 코피 흘리는 하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신기루 같은 하나의 행보를 더 신비롭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소파에서 잠을 자는 하나. 카메라는 아버지 타쿠미가 하나를 업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이 끝나면 다시 하나가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과연 뭐가 진짜일까? 어떤 장면이 영화의 메인 플롯인지는 하마구치 류스케도 모를 것 같지만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와 관련된 몇 장면들은 순리를 벗어나는 연출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나는 "숲 깊은 곳에 들어가면 사슴에게 공격당할 수 있어"라는 경고를 무시한다. 종합해 보자. 하나는 섭리를 어기는 존재다. 이를 영화 안의 이야기로, 또 연출로 보여주고 있다. 단지 하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그 모든 모순을 이을 뿐이다.
단절 다음으로 설명하고 싶은 키워드는 양 측간의 갈등이다. 영화는 성실하게 두 집단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한다. 이 소시민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우선 전반부. 영화의 주인공이 타쿠미이기 때문에 타쿠미 쪽 서사가 나온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귀여운 딸 하나와 함께 산다. 어떤 장면에선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길을 걷는 장면이나 자연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있다. 인물의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사실 영화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쿠미한테 어떤 사정이 있건 없건간에 살인자는 살인자 아닌가? 하지만 이 묘사는 후반부에 타카하시와 마유즈키가 자동차에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차 안 대화 장면은 사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서 자동차 안의 대화를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으로 소화했다. 이 장면은 그 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역시 적용된다. 관객들도 인물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 장면의 역할까지 본다면 두 세계에 정을 붙인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소개팅 앱이나 마유즈키의 직업이 요양보호사였다는 사실이 굳이 들어간 이유는 역시 이 둘(타카하시, 마유즈키)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차 안 대화 장면이 들어간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야기의 중후반인데, 이 영화가 가령 <매그놀리아> 내지는 <도그데이즈>(2024)같이 각자의 입장이 중요한 옴니버스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 타카하시-마유즈키의 인간적인 면모는 초반부에 들어가야 적절하다. 왜? 이 둘에게도 마음을 열 만한 가치가 충분하고 역시 주인공이니까.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과감하게 중후반부에 배치한다. 이 장면 이후 '하나가 실종되고 - 타카하시가 살해당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을 통해 그린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지 느껴지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전적으로 동격에 놓인 선량한 사람이다. 악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 영화의 살인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더 직설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 하이라이트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100%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작용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위에서 단절과 양 측의 갈등에 대해 서술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필연이다. 사실 글쓴이가 쓰지 않은 부분이 있다. 단절과 갈등에 대한 부분을 더 깊게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위에서 쓴 '단절'과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은 필연이라는 키워드 하에 묶여있다. 첫 번째 예시. 마유즈키가 팔을 다치고 하나가 공격당한 사건이다. 이 둘은 전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다. 마유즈키는 집에서 쉬는 걸 선택했고 하나는 촌장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공통점을 가지며 반복된다. 두 인물은 자연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두 인물에게 공통된 필연이 주어졌고 이 필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점이 갈린 것이다. 두 번째 예시. 주인공의 집에 회장님이 와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후반부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엇으로? 마유즈키와 타카하시가 상사와 비대면으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둘은 겉으로 보기에 목적과 내용이 아예 다르다는 점에서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대화는 상호 간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일이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각기 다른 입장에 놓인 인물들이 당연한 순리를 거치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과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잊어버린 것 역시 상호 충돌한다. 하지만 둘이 별개의 것인 거랑 이 두 사건은 하나의 키워드로 엮인다. 타쿠미가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그 줄기다. 이렇게 두 별개의 사건이 하나의 필연으로 이어진다는 방식은 영화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과도 이어진다. 바로 초반부 타쿠미와 하나가 사슴의 뼈를 보고 "총을 맞았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둘은 별개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 장면을 묘사하는 전후의 톤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전반부는 다큐 같은 템포였지만 후반부는 판타지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건은 별개의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 같다. 하지만 이 두 장면 역시 공통점이 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이 간다. 명확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이럴 땐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연적인 일들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필연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것들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가 존재해서 이 사건을 연결시킨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단순히 플롯에서만 이런 맥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향이나 편집, 촬영 같은 것도 이 충돌을 시청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초반부.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걸어가고 있다. 영화가 있는 그대로 보여줄 거면 하나를 만나고 업히고 하는 장면을 보여줘도 된다. 하지만 영화는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해서 부녀를 보여준다. 이러면 뭐가 생기냐. 이야기가 초장부터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기이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이 장면에 들어가는 음향은 역시 이 연출의 연장선상이다. 사운드가 부녀간의 감정을 쭉 보여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끊는다. 단절이다. 우리가 영화까지 가는 감정선은 단절되지만 영화 안의 내적논리는 그 순간에도 재생되고 있다. 심지어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들리다가 끊기는 형태는 반복된다. 단절의 이미지를 하나로 이어서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영화의 편집 역시 이상한 리듬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마치 사운드가 들리다가 끊기는 것처럼 영화가 테이크를 길게 뺄 때의 규칙이 안 보인다. 가령 초반에 주인공이 물통에 물을 채울 때를 본다면 그냥 물만 길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고 지나가는 것까지 다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한다. 또 어떤 장면에선 두 사람의 시점을 고의적으로 충돌시키는 편집까지 보여준다. 가령 주인공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을 보면 재미있다. 카메라에서 땅와사비 뽑는 장면을 보면 땅와사비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자연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자연물의 시점을 동시에 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타쿠미가 자동차를 끌고 주차하는 장면을 보면 초반에는 타쿠미의 차량을 보여주다가 후반에는 차 뒤편에 있는 여자를 카메라가 보여준다. 이 주차 장면이나 땅와사비 장면이나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 안의 누군가도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이야기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두 사건에 묘한 선후관계를 제시해서 필연으로 만든 걸로 모자라 카메라워킹으로 영화 안에 존재하는 3자를 등장시킨 것이다. 악인이 존재하지 않지만 3자는 존재하다는 것. 그리고 이 3자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3자는 무엇일까? 영화의 첫 장면과 가장 마지막 장면이 아예 다른 맥락임에도 이야기의 틀을 이룬다는 점에서 수미상관처럼 느껴지고, 엔딩에서 새끼 사슴과 하나를 동일시시키고, 이 폭넓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영화 등장인물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묻게 하는 것. 그게 무엇일까?
글쓴이는 이 엇갈리지만 영화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을 한 단어로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쓰다가 갑자기 네이버 검색창에 '순리'라고 검색하면 '순한 이치와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라는 의미가 나온다. 이치와 도리. 당연하게 당면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 하나처럼 영화 안에서 독립된 사건으로 움직이는 인물들도, 타쿠미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도, 타카하시처럼 사람은 착하지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들도 이 순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 생각은 영화에서 하나가 실종되면서 시작되는 장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장면의 시작을 잘 보시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쪼르르 흘러가는 장면이 기점이다. 이 장면은 영화 안에서 맥락이 생기기도 한다. 워크숍 장면에서 마을회장 할아버지는 "상류에서 만들어진 일이 하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하류의 사람들이 상류의 주민들을 원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에 힘입어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말한다. 영화 안에서 개입을 지양하고 순리에 따르자는 논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하나의 실종도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맥락이라는 걸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하나의 실종이 순리에 따른 결과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물론 영화는 하나의 실종만을 순리로 단정짓지 않았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들은 영화 전,후반부에 두 개나 있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벌인 각각의 실수는 인물들에게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실수를 저지른 인간들은 영화 안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 첫 번째 실수는 타카하시의 것이다. 그 질문이 뭐냐. 영화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는 "사슴은 그래서 어디로 가지?"라는 질문이다. 타카하시는 이 질문에 그냥 대충 얼버무린다. 인간의 개발을 위해서라면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 위협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 사슴의 생사에 대해 깊게 탐구하지 않은 인간의 벌이 뭘까? 타쿠미에게 글램핑 터의 관리자 역할 같은 걸 대안으로 내민 벌은? 살인이다. 목숨을 잃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필연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고 길게 쭉 썼다. 이 필연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인간의 개입에 대해 경고하는 자연을 무시하고 대충 얼버무리다 처형당한 인간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까? 자연에 의해 팔을 다친 마유즈키는 타쿠미의 집에서 쉰다. 경고를 마지막엔 받아들인 마유즈키는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타쿠미와 동행했다면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실수에 의한 처벌'이라는 부분에 근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두 번째로 범한 실수에 대해 적는 것이다. 영화가 두 상황을 필연으로 잇는다고 길게 써왔다. 그럼 이 것(타쿠미의 살인)과 유사한 상황이 영화에 있다는 뜻이겠지? 글쓴이는 총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 총성이 탕 울린다. 이 총성 때문에 사슴이 죽었다는 걸 타쿠미는 이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관한다.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소리지만 원인을 규명하지 않는다. 이는 곧 타쿠미도 타카츠키와 유사하게 자연의 경고를 방관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에 노력하지 않은 것. 이는 영화 후반부 타카츠키가 의무를 포기한 것과 겹쳐 보인다. 그럼 어떻게 돼? 당연한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나태한 인간이 방관한 탓에 애 먼 사슴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슴은 총을 쏜 인간에게 분노해서 하나를 공격했다. 심지어 하나는 마유즈키처럼 자연의 경고, 그러니까 회장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조건이 충분하다.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자를 보여주면서 순리를 묘사하는 만큼 엔딩에서 타카하시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 내지는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심지어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대신 그 이유를 뭉뚱그려 보여준 것이야 말로 영화의 기획의도를 살리는 좋은 선택이다. 애초부터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면 자연 그 자체지 인간이 아니다.
카메라와 편집도 이 이야기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그대로 구현한다. 하나 보여준 다음 사슴 보여주고 사슴의 피살 보여준 다음 하나를 비춘다. 이건 편집이 의도적으로 두 존재를 동일시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살인을 저지르고 하나와 함께 도망가는 타쿠미를 먼발치서 익스트림 롱쇼트로 찍는다. 어느새 형상조차 보이지 않으면 의식이 흐릿한 타카하시가 몸을 비틀거리면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중후반부 차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가락국수집에서의 장면을 통해 강박적으로 대칭을 이룬 것과는 대비된다. 균형을 어긴 인간이라는 걸 영화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그냥 뚝딱 만든 각본 같아 보이지만 영화 안에 잡혀있는 내적 체계가 굉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 안에서 구현하는 것. 이거야 말로 영화의 목적이자 모든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천천히 쌓아 올려 한 번에 터트렸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정성이, <우연과 상상>에서 인간이 서로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묘한 스파크가 터졌던 그 순간을 엔딩으로 치환시켜 관객에게 강력한 충격을 선사한다. 또한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예술의 속성과 동일시했던 것이 굉장히 신선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우리 세상에 살고 있는 무형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괴력을 보여준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치를 거부한 인간에게 응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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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즈 앤 판처 최종장 - 4DX의 기술적인 혁신으로'만' 주목할만한 영화
필자는 개인적으로 4DX를 좋아하는 편이다. 1회차로는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N차 관람을 할 때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4DX 여부에 따라 영화의 몰입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수준의 영화도 존재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제작사가 철저하게 관여해서 4DX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퀄리티가 좋은 편이다. 이번에 리뷰할 "걸즈 앤 판처 최종장"도 이런 경우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타겟층은 확실하다. 전형적인 재패니메이션 캐릭터를 내세워 오타쿠층을 노린 것과, 탱크, 전함 등 밀리터리 요소들을 이용해 일명 "밀덕"들을 노린 작품이다. 일반적인 대중에게(필자를 포함한) 매니악한 요소들은 다 모아둔데다가, 본 작품 역시 TVA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다보니, 이미 원작을 보았고 전체적인 내용을 이미 감상 및 이해하였다는 전제하에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로서의 독립성은 매우 낮다고 평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필자도 기본적인 영화 스토리를 보고 "아니 3학년 한 명이 유급당하는 거 가지고 왜 전교생이 나서서 도와주는거지? 라는 의심이 들었을 정도니. 사실 애초에 전차를 이용한 가상의 무도 전차도(戦車道)가 여자로서의 소양이라 여겨지는 세계관이라는 것 부터가 일반적인 관객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하다. 독립적인 서사가 아닌 원작과 전작 극장판을 봐야 이해가 간다는 점에서 본 영화의 입문 난이도와 더불어 영화로서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혹평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4DX 기술 활용의 혁신". 2017년에 나온 극장판의 경우에는 필자는 보지 않았지만 그 당시 4DX가 매우 호평이었다고 알고 있다. 왜냐하면 상술하였듯이 대부분의 4DX는 제작 후에 효과를 이식하는 방식인데, 이 작품은 철저하게 관여해서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이 영화의 본질은 4DX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스토리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전차 전투씬이기 때문에, 훌륭한 효과들이 지속적으로 알차게 나온다. 전차포의 포격, 전차의 궤도 움직임, 심지어 비와 눈, 번개와 같은 기상 효과까지. 4DX 효과의 대부분을 경험해볼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설정만 알고 등장인물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필자 마저도 몰입해서 봤을 정도로 4DX 효과의 힘이 정말 강력하게 발휘된다. 영화의 자체적인 작품성이라면 몰라도 4DX 영화가 어떠한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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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사라진 거장 피아니스트를 찾아서
시놉시스
뉴욕의 한 음악 비평가가 브라질의 젊은 피아노 거장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행방불명 사건 뒤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탐험에 나선다.
EDITOR AMY PICK
쿠바 라틴 재즈를 다룬 <치코와 리타>를 만든 트루에바와 하비에르 마니스칼이 만든 신작 영화로브라질 천재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좇는 영화다. 피아니스트 이름은 ‘테노리우 주니오르’. 남미에서 일어난 군사독재 정권과 문화인들의 탄압과 함께, 당시 테노리오의 동료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역사적 상황들을 단서 조각들로 진실을 맞춰간다.
테노리우 주니오를 찾아서
이 영화의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 1960년대 재즈 삼바의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가 브라질 음악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그의 선율은 예술적이며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그의 지인들은 입을 모아 그의 예술성 뿐만 아니라 인간성에도 극찬을 보낸다.
그런 브라질의 인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당시 군사독재를 펼치던 브라질 군부에 의해 한밤중에 잡혀간 것.
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음악가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 한 가정에서 사라지는 것,
문화와 개인적인 측면에서 상황을 조명하며 지인들이 안고 갈 고통과 그리움을 담아낸다.
다큐멘터리를 뛰어넘어
자칫 지루한 다큐멘터리로 끝날수 있는 영화를 다채롭게 꽉꽉 채워넣었는데,
브라질의 음악 거장들의 인터뷰와 테노리우의 음악을 애니메이션과 결합하여 시청각을 모두 사로잡았다.
또 감독은 수많은 테노리우 지인들의 인터뷰와 당시 감금되었던 수용소를 직접 찾아가 테노리우가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이 관객들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가감없이 던지며 사라진 예술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표한다.
영화, 음악, 미술 LET'S GO
영화는 음악, 인터뷰, 역사,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작화가 조화를 이뤄 재즈와 브라질 역사를 알지 못해도 충분히 즐길수 있는 영화다. 또한 브라질의 음악이 전세계 음악을 뛰어 넘어 영화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담겨져 있으니 씨네필들이라면 안 볼 이유가 없는 작품!
EDITOR_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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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Heretic, 2025)>, 종교는 거들 뿐인 밀실 탈출 스릴러
A24에서 또 한 번 강렬한 공포 영화를 내놓았다. <유전>, <미드소마>, <톡 투 미>와 같은 특유의 신선한 호러 감각이 이번엔 종교를 만났다.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야기, <헤레틱>이다. *필자는 지난 3월 27일, 씨네렙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를 통해 <헤레틱>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헤레틱'은 영어로 '이단'이라는 뜻이고, 바로 내일(2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 기본 정보
제목: 헤레틱 (2024)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휴 그랜트
장르: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11분
국내 개봉일: 2025년 4월 2일
제작/배급: A24
줄거리: 어느 눈 오는 날, 몰몬 선교사 자매인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는 전도를 위해 한 남성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집 주인 리드(휴 그랜트)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맞이하며 날씨가 궂으니 잠깐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규칙상, 여성이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내가 있다'는 말에 두 자매는 의심 없이 문을 넘는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남자의 대화는 점차 묘하게 불편한 질문들로 이어지는데... 자신들이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두 자매는 탈출을 감행한다.
1. 믿음과 의심 사이의 긴장감
최근 공포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서스펜스와 심리적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헤레틱>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낯선 남자의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긴장감을 점진적으로 쌓아올린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에는 '종교'라는 소재가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무섭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섭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중심에 두고, 영화는 관객을 믿음과 의심 사이 긴장으로 이끈다. 궤변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시험 속에서,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끊임없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시험대에 놓인다.
물론 영화가 처음부터 이 철학적 긴장감만으로 공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궂은 날씨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외딴집, 그 안에 두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과 함께 있다는 상황만으로 관객은 익숙한 불안을 감지한다. 이 상황 속에선 성별에 따른 물리적 힘의 위계가 힘의 비대칭을 만든다. 이는 남성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성, 그리고 관객이 처음으로 의심하는 것은 바로 남성의 정체이다. 중년 남성 리드가 정말로 겉모습처럼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곧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이 역할에 ‘노팅 힐’로 유명한 휴 그랜트를 캐스팅했다. 그는 젠틀하고 따뜻한 미소의 리드를 연기하며, 두 여성이 기꺼이 스스로 낯선 남자의 집 안으로 향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이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리드가 ‘집 안에 아내가 있다’고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리드는 부인이 낯을 가린다며 계속해서 그녀의 등장을 지연시킨다. 리드라는 인물에 대해 신뢰를 거둘지에 대한 판단은 영화 초반부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두 자매는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그들의 본래 목적대로 리드에게 전도를 하려 한다. 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점차 리드에게 넘어간다. 그는 점점 종교적 신념을 정면으로 겨누기 시작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리드는 계속해서 두 여성의 신념을 흔든다. 그리고 두 여성은 점점 그가 만들어낸 심리 게임의 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는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리드의 질문에 동참하게 되고, 함께 시험을 받는 듯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헤레틱>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존적인 위협에 기반한 상황을 통해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믿음에 관한 심리 게임을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방식은 매우 치밀하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설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2. 치밀한 설계
영화는 상당히 치밀히 짜여져 있다. 결말에서 치밀한 설계는 단순히 장르의 플롯을 넘어서 주제의식으로 발현된다. 동시에 관객으로서 이 치밀함 덕분에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도 준다. 먼저 캐릭터의 균형이 잘 맞춰졌다고 생각했다. 팩스터와 반스는 모두 독실한 몰몬교 신자이다. 그들은 속옷마저 교회가 규정한 의상을 입고, 교회의 공동체에 기반하여 생활한다. 반스는 현실감이 없이 순진한 전형적인 신자처럼 보인다. 반면, 팩스터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팩스터는 리드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 덕분에 일방적으로 리드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맞서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고 탈출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인물들이 상당히 실행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심이 거두어진 순간에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저건 믿으면 안 될 거 같은데’하는 답답함이 들 때쯤, 타이밍 좋게 인물들도 움직여준달까. 그런데 그 순간마다 절묘하게 새로운 변수나 불가항력적 상황이 또 던져진다. 결국 그들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설계한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빈틈 없다고 느낀 부분은 대사이다. 감독들의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설정 아래 대사를 최소화하며 긴장을 유도했다면, <헤레틱>은 그 정반대 지점에서 대사로만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감독들 역시 이런 극적인 대비를 하나의 창작 실험으로 삼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말맛'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즉흥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모든 대사가 계산된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리드가 반스에게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자 반스는 ‘스파이더맨’이 말한 것이라고 받아친다. 리드는 이를 ‘볼테르’가 말한 것이라 정정한다. 처음 이 장면에서 이 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갔기 때문에, 자그마한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겼다. 그러나 이후 영화가 반복적으로 원형과 복제, 신념의 계승과 변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앞선 대사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분위기를 조이고, 이후 그 대사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올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심지어 음악마저 아무 의미 없이 삽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지점들이 감상 이후 곱씹을수록 서늘함을 안겨준다.
3. 총평
<헤레틱>은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정교하게 설계한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긴장을 구축하는 연출이 인상 깊었고, 이야기 자체도 흡입력이 있어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극의 대부분이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 과하게 설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리드라는 인물의 특성상 몇몇 장면은 마치 신학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대사의 길이나 논리적 구성이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다시 보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이 ‘강의 장면’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리드가 주도하는 그 ‘강의’가 실제로는 힘의 위계와 물리적 위협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그의 논리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앞서 언급한 실존적 위협은 장르적으로는 훌륭한 장치지만,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적 메시지(믿음과 확신에 대한 탐구)와는 결이 어긋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 시험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만 주던 초반부에서 다소 노골적인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매력이 한풀 꺾인다. 결말 또한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렵다. 여러 버전의 결말을 놓고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덧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끝내 찾지 못한 채, 결국 캐릭터가 가진 ‘선(善)’의 속성에 기대어 마무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의심하는 리드가 실은 누구보다 믿음을 갈구하는 인물처럼 마무리되는 아이러니도 다소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휴 그랜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상징과도 같던 자신의 이미지를 이번 작품에서 기민하게 비틀었다. 그가 완전히 다른 역할로 변신한 것은 아닌, 기존의 친근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미묘하게 왜곡해 섬뜩한 설득력을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당신이 알고 있던 '로맨틱한 휴 그랜트'의 잔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팩스턴을 연기한 소피 대처는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다 싶었는데, 제나 오르테가와 안야 테일러 조이를 반씩 섞은 것 같다. 실제로 과거 몰몬교 신자였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이 캐릭터의 미묘한 디테일을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컴패니언>에서도 색다른 연기를 보여줬는데, 배우에 관심이 생겼다면 해당 작품도 꼭 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컴패니언>에서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스를 연기한 클로이 이스트는 <파벨만스>에서도 얼굴을 비췄던 배우다. 그녀 역시 몰몬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다른 삶을 살았으면 자매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 모두 2000년생으로 비교적 어린 배우들이다. 실제 나이와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지며, 두 사람의 호흡도 매우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캐스팅이 탁월하게 어우러졌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재밌게 감상했다. 필자는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 처음엔 관람을 망설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종교적 맥락보다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와 장르적 매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 간의 긴장감이 주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면, 종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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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루벤 플레셔
제작: 아비 아라드, 찰스 로븐, 알렉스 가트너
각본: 아트 마컴, 맷 할로웨이
출연: 톰 홀랜드, 마크 월버그, 안토니오 반데라스
장르: 액션
제작사: 컬럼비아 픽처스,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 너티 독, 아라드 프로덕션, 아틀라스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소니 픽처스 릴리징, 소니 픽처스 코리아
촬영 기간: 2020년 3월 16일 ~ 2020년 10월 29일
촬영 감독: 정정훈
개봉일: 미국 2022년 2월 18일
원작: 너티독의 언차티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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