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4 23:21:04
아이의 삶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전쟁의 찬혹함 <독일영년>
독일영년 영화 리뷰
지금까지 봐왔던 전쟁 영화는 대부분 전쟁 상황을 스케일 크게 표현하고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성인 의 이야기만 보았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이 끝난 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 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비극을 맞았는지 아이가 가는 동선을 따라 보여주었다. 그래 서 전쟁 후의 독일 아이들의 삶이 어땠는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에드문트의 12세라는 나이가 어딘가에 소속 되기에 애매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드문트는 계속 새로운 자신의 소속을 찾아 헤매는것 처럼 보였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어리다고 배제 당하고 어른들 사이에서는 일자리도 못구하고 당연히 무시 당한다. 가족내에서도 막내이며 아빠 마저도 큰아들을 먼저 챙긴다. 여기저기 치이다가 선생님 한테 마음을 주 지만 그 선생님 마저도 나치의 일원이었다. 에드문트가 마지막에 본인 보다 어린 아이들 과 축구를 하고 싶어하지만 거기서도 거절을 당한다. 결국 에드문트는 계속 여기에도 저 기에도 속하지 못하고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벼랑으로 몰려 혼자가 되는 모습이 더 비극 적으로 느껴졌다. 감독이 에드문트를 자살하는 결말로 만든 것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기 위한 방법이 에드 문트가 자살하는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주었다 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드문트가 자살하지 않고 선생님한테 일을 받고 의지 하여 살았다 면 아마 나치 일원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일을 세습하지 않기 위해서 에드문트의 죽음 으로 끝냈다고 생각한다. 또 한 명의 어른이라도 아이에게 손을 뻗어 주었다면 죽음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 같지만 과연 전후 폐허의 상태에서 남을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있었 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런 전쟁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 할리우드가 취하는 전쟁 영화가 과연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영화하면 멋지게 표현하고 더 큰 자본과 규모로 전쟁을 미화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큰 아픔이자 상처인데 그런 맥락을 무시한채 블록버스터 액션이라는 것에만 치중해서 눈의 즐거움을 위해 전쟁이라는 요소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또 이 영화를 보면서 현대 감독 중에 <신의 소녀들>, <엘리자의 내일>의 크리스 티안 문쥬 감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형식이 비슷했다.
에드문트가 마지막까지 그나 마 비슷한 또래애들한테도 끼 지 못하고 다시 길을 나설 때 주변 환경이 전쟁의비극을 더 자세히 보여주었다. 주변의 건물과 에드문트가 한 프레임에 잡히니까 이 아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 비교가 더 극대화 되었다. 그래서 비참 하고 쓸쓸한 감정이 더욱더 잘 전달 되었다.
Relative contents
-
- 10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낯선 이모 ‘마키오’와 세상에 홀로 남은 조카
‘아사’가 함께 쌓아가는 서투르지만 특별한 동거를 그린 영화 <위국일기>가
10월 2일 개봉합니다.
<위국일기>는 일본 거장들이 선택한 명품 제작진들의 만남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드라이브 마이 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시노미야 히데토시 촬영감독,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의 음악감독 마사카츠 음악감독이
참여하며 더욱 탄탄한 작품성을 예고했습니다.
180만 부를 기록한 동명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위국일기>를 10월 2일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위국일기
Worlds Apart
개요: 드라마 | 일본 | 140분
감독: 세타 나츠키
주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카호, 세토 코지, 코미야마 리나
개봉: 22024.10.02.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조커: 폴리 아 되
Joker: Folie a Deux
개요: 범죄, 드라마, 뮤지컬 | 미국 | 138분
감독: 토드 필립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레이디 가가, 재지 비츠
개봉: 2024.10.01.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아캄에 수감된 조커와 할리 퀸의 운명적인 만남과 조커의 재판과정을 다룬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Love in the Big City
개요: 드라마 | 한국 | 118분
감독: 이언희
주연: 김고은, 노상현
개봉: 2024.10.01.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줄거리
시선을 싹쓸이하는 과감한 스타일과 남 눈치 보지 않는 거침없는 애티튜드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자유로운 영혼 재희. 그런 재희가 눈길은 가지만 특별히 흥미는 없던 흥수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하필 재희에게 들켜버린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희와 흥수는 알게 된다. 서로가 이상형일 수는 없지만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모먼트가 있다는 것을.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재희와 흥수는 사랑도 인생도 나답게! 의기투합 동거 라이프를 시작하는데...
와일드 로봇
The Wild Robot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102분
감독: 크리스 샌더스
더빙: 루피타 뇽, 페드로 파스칼, 캐서린 오하라, 빌 나이, 키트 코너, 스테파니 수
개봉: 2024.10.01.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이 비행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우연한 사고로 거대한 야생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는 주변 동물들의 행동을 배우며 낯선 환경 속에 적응해 가던 중, 사고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보호자가 된다. ‘로즈'는 입력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역할과 관계에 낯선 감정을 마주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떠나야 하는 '브라이트빌'을 위해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이주를 위한 생존 기술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몸집이 작은 '브라이트빌'은 짧은 비행도 힘겨워 하는데... 로봇 '로즈'와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은 특별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
- 넷플릭스 10월 신작!
넷플릭스 10월! 신작 추천5편
백스피릿
10월1일 시즌1 공개
장르: 토크쇼, 다큐
크리에이터: 박희연, 이은경, 곽청아
출연: 백종원 등
술을 마실 땐 누구와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이 술자리의 호스트는 무려 주방의 지휘자 백종원
그가 각계각층의 셀럽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인생, 음식, 술에 대한 이야기를 안주삼아...
예고편 보러가기▼
마이네임
10월15일 시즌1 공개
장르: 액션, 스릴러
출연: 한소희, 박희순, 안보연, 김상호 등
아빠를 잃었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반드시 내손으로 복수하겠노라고 딸은 결심한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방법은 상관없다 마약 조직의 언더커버가 되어
경찰에 잠입하는 것이라 해도...
예고편 보러가기▼
더길티
10월1일 공개
장르: 스릴러, 수사
감독: 앤트완 퓨콰
출연: 제이크 질렌할 등
911 전화 교환원으로 좌천된 경찰관
심각한 위험에 처한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를 구하기 위한 추적에 매달린다
수화기 너머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네 집에 누군가 있다
10월6일 공개
장르: 호러
감독: 패트릭 브라이스
출연: 시드니 박, 테오도르 펠르랭, 에이자 쿠퍼 등
오즈번 고등학교에 다니는 마카니와 친구들을 덮친 공포
누군가가 학생들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들을 죽이려 한다
가면에 가린 정체를 밝혀야 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다
9월29일 공개
장르: 미스터리, 공포
감독: 산티아고 멩기니
출연: 크리스티나 로들로, 마크 멘차카, 데이비드 피글리올리 등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에 밀입국한 멕시코 여성
허름한 클리블랜드 하숙집에 묵으면서 섬뜩한 환영에 시달린다
수상한 집주인, 불길한 울음소리, 알 수 없는 형체까지
이곳엔 무언가 있다
예고편 보러가기▼
-
- 비로소 진짜 자신의 운전대를 잡게 된 모든 이들에게.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이니 원치 않으시거나 관람 전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하마구치 류스케가 돌아왔다. 이번 12월은 그의 달이라고 해도 될 만큼, 두 작품이 국내 관객들에게 무사히 안착했다. 바로 <해피 아워>와 <드라이브 마이 카>이다. 먼저 개봉한 <해피 아워>는 사실 2015년에 현지에서 개봉했지만, 한국에는 무려 6년이나 흐른 지금 개봉을 한 것이다. <해피 아워>가 개봉 후 몇 주 뒤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개봉을 하는데, 이렇게 같은 감독의 작품 더군다나 해외 감독의 작품이 연달아 개봉하는 것은 국내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또한 러닝 타임도 어마어마하다. <해피 아워>는 328분, 무려 5시간 반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는 179분, 약 3시간이다. 그만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찾는 국내 관객들이 많아졌다는 뜻도 되겠지만, 동시에 두 작품을 만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국내에는 지난 2019년 개봉한 <아사코>로 이름을 날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영화를 본격적으로 파헤쳐보면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흔적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목소리가 숨겨져 있었다. 장르와 플롯의 틀 속에서 완전한 류스케의 해석을 한 번에 읽어내기는 어렵지만, 개봉 당시 국내 씨네필들에게서 아주 열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나 또한 <아사코>를 관람하고 난 후의 나의 주관적인 감상과 다른 관객들의 깊이 있는 해석을 비교하는 재미가 아주 컸었는데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 또한 어떤 매력이 있을지 매우 기대가 되었다. 지난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단숨에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제 74회 칸 영화제 각본상 그리고 최근 LA 비평가 협회 최우수 작품상까지 수상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을 한 번에 받고 있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으로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는 겉보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와 오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남편 가후쿠는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 오토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 가후쿠가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운전사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저 건조했던 둘 사이에 깊은 공감의 연대가 피어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줄거리가 명확하게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 영화다. 그만큼 러닝타임이 길기도 하고 (약 179분) 한번에 영화적인 재미를 찾는 작품이기보다 천천히 그리고 묵묵하게 영화가 제시하는 텍스트를 해석해야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단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차’ 그리고 ‘연극’ 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 시피, 영화의 주요 소재는 바로 ‘차’이다. 그리고 당연히 가후쿠와 미사키 두 사람은 차에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후쿠는 우선 ‘차’라는 공간이 그의 최적의 연극 연습 공간이었다. 가후쿠는 상대 배우의 대사를 녹음해 준 아내 오토의 테이프를 매일 틀며 대사를 외운다. 그에게 있어 ‘차’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자 누구에게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사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서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한 뒤로부터는 이런 성질이 더욱 강해진다. 어떻게 보면 그 이후에는 ‘연극 연습’이라는 틀 안에 그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사키에게 ‘차’란 상처가 가득한 공간이다. 미사키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고 자랐으며,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어머니를 차에 태우면서 아주 섬세한 운전을 강요받았다. 그 덕에 운전 실력이 아주 뛰어난 미사키는 운전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어릴 적 그녀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이렇게 ‘차’라는 공간에서 각자 나름의 상처와 좌절감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다뤄왔던 가후쿠와 미사키. 매일 운전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달려도 마음속에서 그들은 수없이 방황하고 멈춤을 반복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달려 왔던 이 둘이 마침내 만났을 때, 그들은 진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연극’이다. 영화의 8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러시아의 유명 극작가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라는 연극이 영화에서 대단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가후쿠가 수도 없이 연습했던 연극 그리고 연출자로서 연극제에 출품하는 연극이 「바냐 아저씨」이고, 영화에서 자주 가후쿠와 배우들이 이 「바냐 아저씨」 대본 연습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초반에는 이 극본의 대사가 무작정 흘러나오기 때문에 무슨 의미이지하고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대사들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바냐 아저씨」의 설명을 가져 오자면, ‘개인의 고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서 반복되는 절망과 후회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나와 있다. 영화를 다 본 후, 이 연극의 설명을 읽었을 때 정말 소름이 돋았다. 저 설명이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시사하는 바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도 없이 연습해온 대사들과 연기,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익숙해져버린 모든 것이 다 자신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배우들이 읊기도 하고 본인이 읊기도 했었던 대사들 하나하나가 결국 자신을 향하는 메시지였다. 단순히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화법보다, 모든 것이 ‘연극’으로 통하는 전체적인 구성을 통해 인물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매우 고급스럽고 아릅답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감정을 끌어올려주는 류스케의 화법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다루는 연극 <바냐 아저씨>에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동안 뒤편 스크린에서는 모든 대사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이 나온다. 영화 전반적으로 이 연극의 대본 연습을 하는 과정들이 나온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역할의 대사가 끝나면 책상을 가볍게 노크한다. 각 배역의 대사가 모두 다른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심오해 보일 수도 있고 긴 러닝 타임을 생각하면 다소 친절한 설정은 아니다.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영화를 보고난 뒤 왜 류스케 감독이 이런 설정을 넣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직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배우들은 언어를 초월한 연대 속에서 연기한다. ‘언어’는 비록 다르지만 모두 같은 감정과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이 점이 핵심이다. 「바냐 아저씨」는 물론 주인공 가후쿠와 미사키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어떤 위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언어를 초월한 연대에서 외치는 ‘살아가야 한다.’라는 말은 어떠한 위로의 방식보다도 강력하다. 살면서 다른 언어로 위로 받아 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없었지만, 각자 다른 언어의 형태로 와닿는 이 메시지는 같은 언어 열 마디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생생했다. 류스케가 만들어낸 섬세하고 정교한 이 위로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도 따라하지도 못할 것이다.
두 가지 특징을 모두 다 훑어 봤을 때, 영화가 정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해석과 리뷰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이렇다.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차’란 가후쿠와 미사키의 주체성을 나타낸다. 매일 똑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고 있는 가후쿠와 미사키. 동시에 그들 내면의 깊은 상처도 오랜 시간 쳇바퀴 도는 듯 반복된다. 종이와 펜을 생각해보자. 펜을 들고 종이에 원을 그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린다. 그 원들이 반복되면, 점점 원 안이 채워지면서 진해지고 이내 점이 된다. 그리고 이내 그 농도를 버티지 못한 종이에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통해 그 원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가후쿠와 미사키도 마찬가지다. 같은 곳을 수도 없이 빙빙 맴돌다 비로소 만나게 된 서로는 앞으로 나아가게 할 원동력이 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운전처럼, 매일 같은 곳을 덤덤히 맴돌았던 서로는 마침내 진짜 자신의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된 그들 사이로 새하얀 눈이 내린다. 새카맣게 타버린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녹여주듯이. 비로소 진짜 자신의 운전대를 잡게 된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
-
-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JIFF 데일리] 예측하지 못한, 차마 예상치 못한
마스터즈 | 호텔 The Hotel 왕 샤오슈아이
한 영화제의 성격 혹은 비전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고른다면 어떤 섹션의 영화를 봐야 할까? 물론 개폐막작과 주요 경쟁 섹션을 들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이자,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대한 생각이 정립된 ‘마스터즈’를 꼽는다.
12편의 영화들로 구성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스 섹션 영화들 중 눈에 띈 작품은 왕 샤오슈아이의 <호텔>과 아다치 마사오의 <레볼루션 +1>. 둘은 코로나19와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 피격 사건과 같은 시의성 높은 소재를 다루며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가치관, 세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 중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왕 샤오슈아이의 <호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태국 치앙마이의 한 호텔에 갇히게 된 관광객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게 되는, 된다는 이 영화의 로그라인으로 예측 또는 내심 기대한 바는 코로나라는 예측 불가한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 혹은 그 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인간의 본성,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작품에서 다루는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영화 말미에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다.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은 챕터 구성과 흑백 화면의 4:3 화면비가 호텔에 갇혀 멈췄지만, 멈추지 않은 시간을 견뎌내는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고 효과적으로 잘 담아냈다. 이와 더불어 실제 제작자들이 실제로 그 장소에 갇힌 채로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것 같은 즉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예측하지 못한, 차마 예상치 못한’ 결말은 차치하고 고립된 호텔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관계 맺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심리 변화들을 때론 관망하듯, 때론 개입하듯 생동감 있는 시각적 시선이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이지 않나 싶다.
에디터. 민병채
<호텔>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시간표
-
- 나의 능력은 내면의 가능성이야
줄거리
신비한 마법이 흐르는 '엔칸토'에서 살아 움직이는 집인 '까시타'에 살고 있는 마드리갈 가족.
그들은 때가 되면 각자의 문을 열고 자신만의 능력을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게 된다. '미라벨'은 유일하게 아무런 마법 능력도 가지지 못했지만, 마드리갈 가족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집의 막내인 '안토니오'의 마법 의식이 있는 날,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미라벨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집에 금이 가는 것을 발견한 미라벨은 분명 마법의 힘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믿고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데...
감상 포인트
1. 노래가 웬만한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더 흥겹고 잘 어울린다.
2. 캐릭터 고유의 능력들이 어우러져 영상미가 폭발한다.
3. 코코에 이은 디즈니의 가족 애니메이션 명작.
감상평
"능력이 있든 없든 나도 다른 가족들처럼 특별하거든."
능력이 없어서 슬프겠다는 동네 꼬마의 말에 미라벨은 답한다. 자신은 여전히 특별한 존재이며,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미라벨은 아무 능력이 없더라도 가족들이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혼자 놀 수 없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미라벨을 보고 할머니 아부엘라는 말한다.
"미라벨, 거들고 싶겠지만 오늘 밤은 완벽해야 한단다."
완벽하기 위해선 네가 빠져야 한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할머니에게, 미라벨은 차마 한 마디 반발조차 못하고 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특별해, 나는 소중해, 계속 되뇌었지만 결국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은 사진을 찍을 때 빠져도 티가 나지 않는, 그 정도 사람이었다.
영화 [엔칸토]는 마법의 가족이라는 소재로 믿음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날씨 조절, 치료, 힘, 식물, 소리, 변신, 동물. 모든 가족이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할머니인 아부엘라는 미라벨과 마찬가지로 어떤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부엘라에게 마법의 힘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이 모든 마법의 힘이 아부엘라에게서 왔다고 믿으니까. 아부엘라의 꺼지지 않는 촛불은 마법의 힘을 유지하는 기적과도 같으니까.
아부엘라는 눈앞에서 남편을 잃고 남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기적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마법을 유지하는 힘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까시타는 그런 아부엘라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허나 세월이 지나며 그녀는 가족을 위협하는 악이 가족 내부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시작은 자신의 아들 브루노였다. 예지력을 가진 브루노가 미라벨의 의식 전에 까시타가 부서지는 미래를 보자, 아부엘라는 브루노와 미라벨이 가족들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착각하게 된다. 실제로는 브루노와 미라벨만큼 가족들을 위하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는데도.
누군가를 지킨다는 행위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될 수 있지만, 믿는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까시타에 금이 가고 부서지는 것이 먼저였고, 촛불이 꺼지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촛불이 꺼졌다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지켰다고 믿은 아부엘라의 마음이 져버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까시타가 부서진 것은 아부엘라가 아니라 미라벨의 마음이 다쳤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비록 능력은 없어도 자신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미라벨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까시타가 무너진 것이다.
집은 지친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한다. 까시타는 곧 미라벨 그 자체였다. 아부엘라가 가족들이 결속을 다질 수 있게 한 데 모으는 힘이라면, 미라벨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서 스스로의 힘을 유지하게 만드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라벨의 엄마인 '어거스틴'이 치료의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영화 [엔칸토]는 나만 초라해 보일 때,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을 때, 본다면 좋을 영화다.
결국 집을 일으켜 세우는 미라벨의 모습은, 당장 보이지 않는 능력에 연연하기보단 내면의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영화라서 더욱 좋았다.
-
-
- 영화 빅 피쉬 후기 / 팀 버튼 감독 영화 맞아?! / 이완 맥그리거의 영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 감동 있는 판타지 드라마 / 부자가 같이 보기 좋은 작품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빅 피쉬”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넷플릭스, #왓챠, #팀버튼, #판타지, #드라마
-
- 쿠팡플레이 <안나> 메인 예고편
"남들이 나를 두려워했으면 좋겠어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
-
- 영화 <마크맨> 티저 예고편
그가 가진 것은 트럭 한 대와 총 한 자루!
한 소년을 지키기 위한 목숨 건 추격전이 시작된다!최고의 사격수였다가 은퇴한 군인 ‘짐’(리암 니슨)은
애리조나 국경 지역을 지키며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쫓기는 모자를 구해주지만
무자비한 놈들의 공격에 소년의 어머니가 숨을 거둔다.
소년을 시카고에 있는 친척에게 데려가 달라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짐’은 길을 나서고
마약 카르텔의 표적이 되어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