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2-04 21:59:47
‘정치’가 변질시킨 두 사람의 관계
-<킹메이커>(2022)
정치는 세상을 바꾼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접 정치를 하려고 선거에 나선다. 선거에 당선되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정치인을 위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진심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모여드는 모든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정치는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려 애쓴다.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까지 진짜 자신을 생각해주는 존재들은 정치라는 것을 떼어놓고 봤을 때도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온갖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주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변의 친구들은 정치적인 의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의견을 내놓으며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론 다른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서로 거리를 두며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건 그들이 가진 정치적인 생각과 해석들이다.
정치인 운범과 조력자 창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킹메이커>
영화 <킹메이커>는 정치인 운범(설경구)과 조력자 창대(이선균)의 이야기를 담는다. 운범은 몇 번의 선거에 실패하다 사무실에 찾아와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창대와 만난다. 창대는 운범에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실제로 그 방법은 운범을 선거에서 이기게 만든다. 영화는 초반에 창대의 선거 전략을 영상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아주 기발한 방법이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방법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느끼는 그 불편한 마음을 운범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정치는 대체적으로 불쾌한 것이다. 그 불쾌함은 그동안 정치인들의 행태가 만들었다. 선거 전에 이야기했던 여러 공약들은 당선 후 지켜지지 않고 어물쩍 폐기되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 다시 들고 와 이번에는 해내야 할 공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치적 노림수들이 이제는 많이 알려져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 영화 속 창대의 선거 전략들은 그런 정치적 노림수가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이 방법에는 일반 국민을 교묘히 속이면서 여론 몰이를 하는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것이 상대 정당의 전략을 그대로 되치는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정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운범은 창대를 한동안 중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다음 당내 선거에 창대를 불러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그가 썼던 정치적 모략은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용당하고 나쁜 이미지를 만든다. 이용하는 수단이 좋은지 나쁜지는 ‘승리’라는 큰 목표 앞에서 판단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들은 그저 승리하기 위해 어떤 수단들을 쓴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제대로 먹혀 승리로 이어지게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런 나쁜 면이 악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모든 것이 행해지고 난 이후에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대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면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없어지지 않게 된다.
씁쓸하게 만드는 운범과 창대의 관계
이 영화를 보며 씁쓸해지는 건, 꽤 오랜 시간 이어질 것 같던 운범과 창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가진 이상은 비슷한 듯 보였고, 이들의 전략이 성공했을 때 오래도록 계속될 것만 같았다. 비록 정치판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그 둘은 잘 맞는 친구였다. 서로의 생각과 전략은 달랐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선거의 결과들은 훌륭했고, 그건 정치적 경쟁자들에게도 위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창대가 가진 전략의 불편함은 운범과 창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영화 속 어떤 사건이 그들을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가진 정치적 과정과 방법이 너무 다른 것이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맨 마지막 몇 년이 지난 후에 한 식당에서 운범과 창대가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운범은 활짝 웃지만 창대는 그렇게 크게 웃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서로 과거와 같은 가까운 관계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은 그저 예전처럼 밥한 숟가락을 뜨면서 대화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선다.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에서 외로움이 그대로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도, 마지막 장면도 창대의 모습이 화면에 담긴다.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은 정치라는 혼탁한 영역에서 아주 영민하고 똑똑한 전략가였지만 결국 외로움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어서 씁쓸해진다.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외롭지 않았을까. 영화는 그것에 대한 답을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는 관객들은 이 영화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엄창록 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이었는지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적을 통해서 대충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운범은 창대의 나쁜 선거 전략을 활용하지 않고도 정치인으로서 성공했고 크든 작든 자신의 정치를 펼쳤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의 삶의 어떤 부분에는 그만의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듯.
‘정치란 무언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영화 <킹메이커>에는 정치와 친구, 그리고 배신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다. 운범과 창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다 보면 결국 정치라는 것이 무언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과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담길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덕이 컸다. 운범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연설의 모습과 목소리 톤을 그대로 보여주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창대를 맡은 배우 이선균은 부드럽지만 교묘한 선거 술수를 가지고 있었던 선거 전략가 역할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조연 배우들도 눈에 띄는데, 박 비서 역을 맡은 배우 김성오와 이실장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은 평소에 연기했던 발성과 다른 톤으로 연기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2017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이 영화 만의 팬덤을 가지고 있다. 크게 관객을 모은 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계속해서 재개봉시키면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었다. 이번 <킹메이커>에서는 좀 더 안정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찬찬히 두 인물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좀 더 촘촘해졌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도 어렵지 않아 이전 연출작보다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킹메이커>는 두 인물의 이상과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한 방법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 두 인물의 우정도 같이 담겨있다. 정치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영역에서 만났던 두 인물의 궤적이 영화에 잘 담겨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인물의 감정 모두를 다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기에 정치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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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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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벤지의 말
오랜만에 만난 너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평범한 직장인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다. 통화하느라 바쁜 데이비드. 아마 사촌 벤지와 이야기하는 중일 것이다. 벤지(키에런 컬킨)는 데이비드의 사촌으로, 어릴 적부터 친형제처럼 지냈다. 태어난 지 3주 차이밖에 나지 않는 두 사람. 말이 친척이지 사실상 친구나 다름없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폴란드로 여행을 떠난다. 분주한 데이비드는 시간에 쫓기듯 공항으로 향하고, 오랜만에 벤지와 재회한다. 여행을 시작한 두 사람은 잊혀져 가던 수많은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길을 찾아 떠나가리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로드무비에 속한다.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한 여행담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는 두 개의 여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데이비드와 벤지가 함께 할머니가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물리적 여정이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되짚는 내면의 여정이다.
로드무비에서 ‘왜 여행을 떠나는가?’는 중요한 질문이다. <본즈 앤 올>에서는 주인공들이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이 핵심이었다.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는 가족의 유대감이 여행의 주된 의미였다. <리얼 페인> 역시 여행의 이유와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두 사람이 ‘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친척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인간관계에서 결함과 공감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 결함을 정면으로 다룬다. 여행 중 드러나는 두 사람의 결함과 주변 인물들의 공감이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또한, 영화는 역사적 배경을 중요한 장치로 활용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영화의 배경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두 사람이 할머니를 떠올릴 때의 애틋함에도 이 역사적 맥락이 작용한다. 할머니가 겪었던 상처는 두 사람의 기억 속에서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상처라는 모티브는 결국 벤지와 데이비드, 그리고 여행에 합류한 사람들의 내적 결함과 연결된다. 영화는 개인의 상처와 민족의 상처를 함께 조명하며, 공감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더욱 강조한다.
공감의 화법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벤지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벤지는 자유롭고 유쾌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만큼 남들과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샤워 중에도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 피아노 연주도 할 줄 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그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벤지의 행동을 통해 그의 내면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벤지는 샤워 중 음악을 듣기 위해 데이비드의 휴대전화를 빌린다. 이 장면은 영화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비극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벤지의 행동을 보며 ‘이 사람은 왜 2025년에도 휴대전화가 없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즉, 벤지의 개인사가 직접적으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도록 연출된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 후반부에서 음악이 벤지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에서도 이어진다. 영화의 러닝타임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며, 이를 통해 벤지뿐만 아니라 관객도 그와 교감하도록 유도한다.
영화가 실제 역사와 교감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초반에 벤지와 데이비드가 어떤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곳에는 군인 동상이 있다. 벤지는 동상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실감 나?”라고 묻는다. 실감이 날 리가 없다. 하지만 벤지는 이러한 존재 양식의 차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현상의 이면에 깔린 무언가를 직관적으로 느끼는 인물이다. 이런 그의 섬세한 감성은 영화 내에서 여러 장면과 충돌하며 인상 깊은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우울함을 체화하다
벤지를 연기한 키에런 컬킨의 연기는 대단했다. 벤지는 특이한 만큼 깊은 우물을 판 듯한 인물이다. 그는 소위 말하는 ‘4차원’ 캐릭터로,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단순한 기행으로 보이면 안 된다. 벤지는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벤지가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눈빛에 슬픔이 있더라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혼자이고 싶은 사람은 없어, 데이비드.” 이 대사는 각본의 뛰어남을 보여줌과 동시에, 배우가 극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선언과도 같다. 컬킨은 이 대사를 단순히 감상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벤지의 내면을 전달한다. 벤지는 때로는 생생하게 날뛰지만, 동시에 그 우울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애프터썬>의 캘럼(폴 메스칼)의 연기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컬킨의 연기가 가진 깊은 울림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롭다는 말
이 영화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우리 내면의 벤지를 비추고, 데이비드를 확인하게 만든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만나거나 만날 ‘상처를 가진 사람’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한다. 엔딩은 관객에 따라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였다.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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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뿐인 삶,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고래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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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어딘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지나가고 있는 선교사 토마스. 어느 외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로 한다. 뭐지? 집에 들어가 보니 어떤 남자가 낑낑대고 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어딘가 좀 특별하다. 엄청난 거구의 남자.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것 같다. 남자의 노트북에선 야한 동영상이 나오고 있다. 황급히 닫는 거구의 남자. 거동이 힘들어 보인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황급히 묻는 토마스. 엄청난 몸무게에 앞가림도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토마스에게 별 말 하지 않는다. “거기 종이에 써져 있는 몇 문장 보이죠? 그걸 읽어줘요!” 911이 아닌 부탁,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읽는다. 이게 뭔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세이 같은 글. “이게 뭐죠?”묻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이다”란 답만 할 뿐이다. 읽어준다. 금세 침착해진 거구의 남자. 하지만 토마스가 그곳에 간 이유는 분명하다. 선교사 일을 하는 토마스. "도와드릴까요?" 하지만 어림없다. 곧이어 남자의 간호사가 왔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이름은 리즈. 어렵지 않게 거구의 남자 이름이 찰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0kg도 넘어가는 체중.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지만 이유가 무엇인지 찰리는 버티고 있다. 리즈의 입에서 병원 타령을 반복하기엔 이제 그녀도 지쳤다. 마지막 경고를 전하는 리즈. 이렇게 돼지 취급받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계속하다간 주말 즈음에 고혈압으로 마지막 날을 맞이할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와 버렸나. 끝이 두려운 찰리. 어쩌면 생의 마지막 날을 앞둔 오늘, 이제 마지막 끝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딸 엘리와의 마지막을 앞둔 채로.
연극 무대같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주인공 찰리가 272kg의 거구이기 때문에 이 특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생긴 이야기의 배경은 찰리와 영화를 설명하는 좋은 특성이 된다. 우선 첫 번째. 영화의 핵심인 구원이다. 이 영화에서 찰리가 움직이는 행동은 결국 어떤 것과 은유된다. 이는 공간을 벗어난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영화에서 공간적 배경을 설정한 것이 연출 요소 활용한 것이다. 또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데도 경제적이다. 방구석이 더럽다. 이런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공간을 그렇게 설정한 느낌이 좀 있다.
인물들의 리액션에 집중한 영화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집의 공간적인 특성이 인물과의 대화에 특화된 곳으로 묘사되는 것 같이 보인다. 문이 많은 방문, 부엌과 거실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 거실과 집 입구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 장면 연출에 있어 특이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 전체적으로 묘하게 연극 같은 느낌이 있다. 이는 인물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거리감과 관련이 있는데, 후반부 폭발하는 에너지를 어느 정도는 제어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연극이 원작인 것을 영화화시킨 결과가 돋보인다.
구원에 관한
영화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단어는 '구원'이다. 영화는 여러 구원을 묘사하고 있다. 우선 영화를 보다 보면 러닝타임 내내 드는 생각이 있다. '아니 왜 병원을 안 가지? / 왜 음식을 안 끊지?'라는 생각이다. 이 찰리가 지은 원죄는 굉장히 원초적이다. 그냥 폭식을 끊거나 병원에 가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우리 입장에서나 쉬운 말이다. 영화 중 어떤 인물의 입에서 찰리의 위기를 반박하는 것도 그 일부인데, 이를 반영하듯 인물의 욕망이 굉장히 복잡하게 연출된 것이 극에서 하고자 했던 말과 관련이 있다. 사실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인물의 단면마저도 촘촘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슨 말이냐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찰리/리즈/엘리/토마스의 속사정이 후반까지 쭉 나온다. 이 중 대표적으로 찰리의 문제는 영화 모든 내용을 관통하며 이어져 있다(나머지 세 명도 마찬가지). 찰리가 왜 혼자가 되었는가? 와 찰리가 왜 음식을 끊지 못하는가? 는 큰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는 곧 영화 후반부에서 전반부의 떡밥을 수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모든 행동의 원인과 이유는 간단해서 말은 쉬워 보이지만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당연하다.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이 '너무 멀리 왔다'의 딜레마는 우리 삶 속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오늘 하는 생각들, 지금 당장 내일 일어나서 안 할 거라고 100% 확신할 수 있을까? 점점 줄어들 순 있어도 완벽하게 싹 낫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찰리와 같이 어떤 것에 후회하는 일도 지금 당장 내일 없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다. 이 깊은 골을 영화는 죽음이라는 소재로 풀어가려고 했던 흔적이 보인다. 영화에서 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또 리즈가 죽음에 반응하는 방식을 보면 묘한 공통점이 느껴진다. 이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스탠스는 결국 어떤 공통점을 도출한다. 바로 자기 파괴적이라는 속성이다. 자기 파괴적인 태도로 변한 것에 '어?'로 마음이 변해가는 것이 영화의 강점이 된다.
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어떻게 인물마다 표현하는지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강점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의 네 인물이 갖고 있는 모티브는 '그럴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다'라는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를 다른 말로 하면 '타인이 내리는 해결책이 절대 모든 것의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영화 최후반부 하이라이트 신 연출이나 전반부 주인공이 늘 갖고 사는 에세이, 토마스라는 인물이 내포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가 '구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부분 연출이 어떤 분들에게 좀 무책임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야기의 끝마무리가 모호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영화가 제시하는 구원의 양태는 관객에게 하여금 감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서려있는 연기
1999년이었다. 한 남자가 할리우드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건장한 피지컬에 섹시한 이목구비가 매력이었다. 출연 영화는 <미이라> 시리즈. 그전부터 쌓아 올린 인기가 폭발한 것이다. 연기력. 외모. 스타성 모두 다 인정받은 프레이저. 그에게 위기가 들이닥친다. 누군가의 성희롱과 이혼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미이라> 시리즈에서 일하다 생긴 신체적인 문제다. 무릎 연골을 죄다 수술해야 했던 프레이저. 악재는 한꺼번에 겹쳤다. 사람이 미웠다. 오랫동안 암흑기가 있었다. 2014년 이후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브랜든 프레이저는 <이니셰린의 밴시> 콜린 파렐, <앨비스>의 오스틴 버틀러와 함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유력하다. 현재 미국 배우조합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레이저. BAFTA에서 상을 받은 오스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신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연기가 아카데미를 위시한 여러 시상식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확신한다. 영화에서 봤던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단순히 특수효과를 끼었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가 품고 있는 딜레마인 자기 파괴라는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잘 알고 보여주는 연기였다. 가령 리즈에게 음식을 달라는 신이 있다. 이 목소리 톤과 시놉시스에 나왔던 "내가 인생에서 잘한 일이 단 하나라도 있단 것을 알아야겠어!"신의 말투는 정말 강약조절에 있어 능수능란한 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당연히 이 <더 웨일>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사람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감정을 이입하고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이디 싱크나 홍 차우의 퍼포먼스도 좋았지만 이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가 두드러졌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심지어 폭식 연기도 잘한다. 감독 의도를 잘 살리면서 먹는다.
뭐 이런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자기의 삶이 투영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무의식 중에 이 찰리 캐릭터에 감정이입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자기와 닮아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브랜든 프레이저. 이 물아일체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나도 저렇게 이해 안 되고, 깊은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또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고래'라는 키워드에 감정이입하게 도와준다. 영화는 살짝 무책임하기도 하다. 또한 영화의 몇몇 설정은 감독의 전작에서 갖고 온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하는 카타르시스는 아는 맛임에도 폭발적이다. 이제는 멍하니 앉아있을 때가 아니다. 다시 한번 더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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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아카데미에 최초로 도전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최근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총 4개 부문 수상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의 영예를 안으며 그동안 로컬 시상식으로 인식되어왔던 외국어 영화의 장벽을 허물었다. 한편,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또한 오스카의 가다로운 입후보 요건을 충족하며 한국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아카데미에 도전하게 되면서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미국 아카데미 심사위원회는 지난달 말 제 93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1차 후보인 총 27개 작품을 발표했다. <레드슈즈>는 해외 제목인 <Redshoes and the Seven Dwarfs> 로 디자니픽사의 <소울>,<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 드림웍스의 <크루즈 패밀리:뉴에이지 >, <트롤 : 월드투어> 등의 유명 스튜디오 작품들과 함께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은 입후보의 자격과 절차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만큼 <레드슈즈>가 한국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입후보 한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인이 일부 제작에 참여하거나, 투자/기획으로 참가한 작품이 미국에 진출한 사럐는 있었으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 과정을 한국 제작진이 손수 만든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미국 배급사를 통해 현지에 진출한 사례는 <레드슈즈>가 최초이다. 즉, 이번 <레드슈즈>의 아카데미 도전은 순수 국내 제작진이 이루어 낸 토종 애니메이션의 아카데미 도전으로도 볼 수 있다. <레드 슈즈>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싸이더스 애니메이션이 기획한 3D 애니메이션으로 각본 및 연출은 홍성호 감독이, 캐릭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감독은 김상진 디자이너가 맡았으며 김형순(주)로커스 대표와 황수진 PD가 프로듀서인 작품이다. 싸이더스 애니메이션 황수진 프로듀서는 "어려웠던 미국 진출에 이어 아카데미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아직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는 도전하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계속 문을 두드리다 보면 머지않은 시기에 높은 위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애니메이션과 싸이더스 애니메이션의 도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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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적으로 착한 인간은 없다
한 여자가 법정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법정복을 입지 않는다. 수많은 재력가, 사교계 셀러브리티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의 돈을 뜯어간 당돌하다 못해 위험한 여자. 이 여자의 이름은 애나 델비. 본명은 애나 소로킨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이 사기를 치고 다녔다는 증거가 이렇게도 많은데, 끝까지 자신은 소로킨이 아니라 애나 델비라고 우긴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각기 다른 상반된 입장을 표출하니, 애나를 취재하는 기자인 비비안은 점점 더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 버린다. 과연 진짜 애나 델비는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그녀의 측근들은 그녀의 어떤 매력에 매료되었던 걸까.
1. 셀러브리티의 시대, 셀럽의 이면.
애나 델비를 두고, 그 주변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은 복합적이다. 누군가는 불여우로 보았고, 누군가는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연약한 여자로 보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거만한 여자로 보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를 명확히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셀러브리티". 그녀는 셀럽이었다.
셀럽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유명하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녀가 유명하다는 사실은 그녀 한 명을 판단내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쥐고 흔드는 잣대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녀는 인스타 셀럽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외면을 부러워하며, 그녀를 추종했던 수많은 팔로워들이 있었지만 그녀를 질투하며, 그녀를 까내리려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녀의 관종력에 박수를 쳤든, 비판을 했든 그녀를 판단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라는 한 사람을 상대로 각자의 경험, 편견을 대입해 그녀를 판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애나 델비가 제공한 제한된 정보로 그녀를 보고 싶은 대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셀럽들이 보여주는 한정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한 사람을 모두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는데, 우리들은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들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그 한정된 정보들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 행동 등을 단정짓는다. 마치 자신이 홈즈라도 되는 듯이, "내가 다 경험해 봤어"라고 으스대며, 경험의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확증 편향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2. 하이에나들이 득실거리는 뉴욕 사교계
애나 델비라는 사람에 대해 각기 평가가 달랐지만 그녀에 대한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녀는 돈 많은 독일의 상속녀였다는 것이고, 그녀는 항상 자신의 부를 드러내어 상대의 호의적인 태도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항상 도도했고, 높은 수준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애나의 일부 성격만을 보고, 그녀의 전체를 단정지어 섣불리 판단했던 그들, 이 드라마는 그들이 오히려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상류층들은 그녀의 높은 취향과 도도한 성격에 시선이 사로잡혀 그녀의 거짓말의 맹점을 보지 못헀다. 이런 걸 보고 있자면, 확증 편향은 사회적 지위, 경제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인 것이다. 하지만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그들이 범하는 오류는 그들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기에 자신의 판단이 무조건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자신감, 오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를 판단할 때에 내 판단이 전부 옳다는 오만 이전에 열등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경우가 그녀의 친구인 네프였다. 그녀의 친구들 중 하나였던 네프는 그녀의 사기행각의 전말을 눈으로 보고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어준다. 그녀의 사기 행적의 증거들을 보고도 끝까지 그녀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녀는 그 삶이 거짓이었다고 하더라도 애나가 선사한 상류층의 삶을 맛보게 해준 것만으로도 애나에 대한 충성심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애나가 네프에게 충족시켜 준 것은 가난한 자신의 삶에 한 줄기 화려함이었기 때문에 애나가 무너진다는 것은 자신이 누려온 화려함이 끝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나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혹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그녀가 그 정도의 화려함을 이룩해내었다는 점에서 그녀를 존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로 시작했지만 원수로 끝난 레이첼의 경우도 독특하다. 레이첼이 애나와 친구가 된 동기는 네프와 비슷하다. 애나의 화려한 삶의 일부라도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이첼은 네프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레이첼은 애나와의 관계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둘은 서로를 그저 이용당해 주고, 이용했을 뿐이었다. 애나는 레이첼을 시녀처럼 이용했고, 레이첼은 애나가 가진 이름값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애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애나에게 이용당했다고 주장헀지만 사실은 그들도 애나를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애나를 취재했던 비비안조차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글을 쓰는 척했지만 사실 그녀도 자신의 망가진 커리어를 되살리기 위해 애나를 이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3. 애나를 두고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성
애나 델비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fake self를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 과정이 사기였지만. 그런 그녀의 처절한 노력의 근원에는 그녀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이 되고 싶은 fake self를 재창조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애나 델비는 그 수많은 인스타 스타들 중 안 좋은 쪽으로 배짱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드라마를 보다보면, 상류층의 오만에 어퍼킥을 날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비안과 애나의 변호사,네프 등,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애나의 변호사가 그녀에게 시달리면서도 그녀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상류층의 오만, 판단에 지쳐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질려버린 상류층의 독단적인 태도에 폭탄을 던져버린 애나의 모습에 되려 그가 대신 통쾌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비비안이 애나를 취재하면서 애나와 싸워가면서 정드는 모습, 그녀에 대해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모습 등을 통해 애나 델비라는 문제적 인물을 두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고, 그 감정들이 모두 입체적이라는 데에서 인간은 정말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이 드라마에서 애나델비는 수많은 착한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나쁜 사람으로 설정하지 않고, 그녀에게 당한 사람들도 무조건적인 착한 사람으로 설정하지 않아 도대체 인간에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내 자신이 관계에 대한 불안으로 복잡한 생각을 오래하기 싫어 사람에 대해 쉽고 빠르게 단정지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이 드라마는 한 여자의 사기극을 관망하기 위해 가볍게 시작하지만 관계에 대한 무거운 고민으로 끝맺게 되는 드라마인 것이다.
한 줄 평
사람은 인간을 평가내릴 때, 빠른 단정적 판단으로 안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이 왜 다른 이들을 한정된 정보로 단정지으려 하는가에 대해 성찰해보면, 결국 인간의 복잡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그에 대해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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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자에게 서사는 필요없다. [넷플릭스] 더 서펀트
1970년대 동양으로 여행을 온 서양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강도와 살인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찰스 소브라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드.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임에도 피해자의 가족들을 고려해서인지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다. 실화의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이 개인적으론 더 서펀트의 몰입도를 높였다.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주인공 찰스 소브라즈는 심리조종에도 탁월한데, 외로움이나 일탈 혹은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도구로 이용해서 상대방을 무너뜨린다.
그는 자신 만으로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캐나다 퀘백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을 자신의 범죄에 끌어들이고 조종한다. 작품을 보는 내내 여배우의 미모에, 실제로도 저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면 여행자의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유혹할 수 있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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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비저블맨 -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졸라온다는 것
의외로 고전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많다. 옛날 영화는 진부하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편견과는 다르게 지금 봐도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많다. 특히 공포 영화들이 그러한데, 개인적으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나, 무성영화로 가보면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지금봐도 보는 이들을 진정한 공포에 빠지게 하는 걸작들이다. 유니버설의 다크 유니버스는 고전 공포가 가진 창의력의 힘을 빌려온 것이라고도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 인비저블맨은 1933년의 "투명인간"의 리메이크 영화이다.
필자가 이번에 리뷰하는 영화 "인비저블맨"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공포를 보여주는 방식의 능숙함에 있다. 한국 공포 영화 중 개인적으로 졸작으로 평가하는 "곤지암"과 비교해보자면, 곤지암은 그냥 유령의 집처럼 점프스케어 요소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만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걸로 그치는데 반해, 이 영화는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후반부에 분출해낸다. 투명인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여러가지 힌트로 제공하면서 보이지 않는 이가 스크린에 존재한다는 공포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투명인간은 붕대를 두르고 모자를 쓴 그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는 리메이크를 하면서 투명인간을 현대화 시켰다. 바로 투명 슈트라는 SF적 요소를 차용함으로서 말이다. 현대 시대는 옛날과 달리 초현실적인 요소가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 현대화를 한것이라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 미래공학적인 느낌을 주어 더 긴강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다크 '유니버스' 작품 답게 후속 작품과의 연계성을 제공하고 납득할 수 있는 엔딩까지 보여줌으로서 다크 유니버스의 첫작품인 "미이라"의 심각한 부진을 충분히 회복하고도 남을 영화라 평할 수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공포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어 매우 기분 좋게 생각한다. 이번 인비저블맨의 흥행과 비평의 긍정적 모습을 보아, 다크 유니버스의 후속 작품들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공포 매니아라면 꼭 놓치지 말아야할 영화.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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