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2-07 08:54:02
<어나더 라운드> 디오니소스와 함께 술 마시며 춤추다
<어나더 라운드>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촉망받던 역사학도였으나 지금은 일상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고교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 그는 각각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와 함께 한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흥미로운 심리학 가설을 듣는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정도를 채워주면 더욱 편안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직접 실험에 나선 마르틴은 음주가 지루한 수업과 가족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후일담을 전해준다. 이에 네 친구는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한 뒤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에서 탈피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나선다.
현대 사회로 오면 올 수록 술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술의 정(精)이여! 너에게 아직 이름이 없다면 앞으로 너를 악마라고 부를 테다"라고 외친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2011년에 술은 세계보건기구(WHO) 선정 1급 발암물질이 되기도 했다. 특히 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구하기 쉽다는 접근성과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오래도록 쓰인 문화적 특징과 결부되어 사회적, 개인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서인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술은 흔히 파국을 불러오는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반면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고, 지난 19일에 개봉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결이 다소 다르다. 덴마크 대표 배우인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이 <더 헌트> 이후 처음 합작한 이 영화의 종착역은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깃든 다크 초콜릿처럼 마냥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술 내음이 가시지 않는 데도 말이다. 실제로 술이 등장하기 전 마르틴과 그의 친구들의 일상은 잿빛이다. 그러나 보드카·와인·샴페인 등이 등장하자 스크린에는 활기가 돌고, 색채가 살아난다. 왜 그럴까? 이는 <어나더 라운드>가 단지 술 문화 그 자체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술을 매개로 흔히 간과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나더 라운드>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두 신의 이름을 빌려 술을 둘러싼 네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폴론은 시와 음악의 신이자, 빛의 신이고, 또 질서와 진리의 신이다. 이처럼 다양한 아폴론의 신격은 그의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통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이 문구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로서 신들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알라는 격언으로, 인간의 본성적 한계를 강조한다. 달리 말해 아폴론은 한계와 한도를 통해 무질서에 맞서 질서를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관장하는 예술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일정한 한도와 질서라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 즉, 시와 음악을 관장하는 그의 역할은 개인적으로는 몸을 훈련시키는 체육처럼 영혼을 갈고닦는 교육의 기능에 속하고, 더 넓게는 이성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인식하는 지성적 목적을 갖는다.
실제로 영화는 이러한 아폴론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학교인 것만 해도 그렇다. 학교라는 공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대학교 정장에 'VERITAS LUX MEA', 곧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네 친구가 각각 역사, 체육, 심리학, 음악 등 그의 신격과 관련된 영역의 교사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질서와 진리를 강조하는 신의 가치가 지배적인 공간과 직업답게, 그 안에서 지내는 구성원들에게도 강력한 규칙과 규율이 적용된다.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하면 교사들은 면담을 통해 학부모들로부터 직접 컴플레인을 들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학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학생은 졸업 대신 재수강을 반복해야 한다. 당연히 술의 존재 역시 학교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질서가 확고한 공간 안에서 작중 구성원들은 행복해지는 대신 오히려 피폐해진다는 점이다. 교사라는 직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사는 그 무기력함이 가족 관계로 번지는 것마저 막아서지 못한다.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는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졸업 시험에서 거듭 낙제를 경험했던 학생은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며, 축구팀 내에 스며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어린아이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러한 공통의 좌절감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학교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처럼 강력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는 기반이 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술을 매개로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 광기, 야성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를 불러온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을 산과 들로 이끌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게 하면서 열광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신이다. 그는 질서와 같은 이성적 틀이 사람들의 삶에 가하는 억압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춤과 노래의 인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삶의 생명력으로부터 반지성적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다. 이는 그가 포도주로 상징되는 비이성적인 도취 상태로 사람들을 이끄는 신인 이유다.
그래서 <어나더 라운드> 속 술 역시 단순한 일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형화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진정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그 의지를 일깨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마르틴이 술을 마신 이후로 크게 세 가지의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선 인생에서 지나가 버린 젊음이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마치 젊은 적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한다. 다음으로는 그간 손 놓고 있었던 관계다.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거나 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마지막은 잃어버렸던 열정이다. 수업 진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시험 문제 출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마르틴. 그러나 그는 이제 실험적인 강의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과거의 본인이 품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전해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의 신격과 그 함의는 마르틴이 항구에서 술 마시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대로 분출된다. 고대에 이루어지던 디오니소스 제의 중에는 “코레이아”(choreia)라고 불리던 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해당 장면이 바로 시, 음악, 무용의 원시적 융합 형태였던 코레이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코레이아가 춤추는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마르틴의 춤은 더욱 인상적이다. 매즈 미켈슨이 젊은 시절 기계체조를 배우고 무용수로 활동하던 경력을 발휘해 재즈 발레를 추는 사이, 무기력했던 마르틴의 삶에는 활력이 돌고, 그의 무채색 일상에는 빛이 들어오며, 그의 삶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간다. 술로 인해 인생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는 이처럼 아폴론의 가치에 눌려 있었던 디오니소스적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에 비로소 완결된다. 이는 영화 속 술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대신, 영화가 끝날 때 제목대로 “한 잔씩 더(Another Round)!”를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다.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마냥 술과 디오니소스가 대변하는 삶의 태도를 긍정하지는 않는다. 네 친구의 실험은 그들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고, 그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며 온갖 사고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굳이 점차 터부시 되는 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때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본성에 대한 합당한 배려가 결여될 경우,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나 술과 같은 쉼터, 혹은 탈출구를 경시하지 않고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술과 술의 신의 이름으로 통찰하면서 <어나더 라운드>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길을 보여준다.
A(Acceptable, 무난함)
아폴론의 빛을 견디기 힘들 때면, 디오니소스와 함께 마시고 춤추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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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듄' 리뷰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주로 영화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세계관에서 파생되는 생각을 쓰겠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SF 영화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일까? 21세기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듄은 이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떠올랐던 영화였다. 나는 정확하게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신뢰하는 이유는 경계 없는 사유의 여지를 만들어두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내가 생각했던 부분의 이유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온다면 영상화를 굉장히 잘 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실물로 구현해낸다고 했을 때 원작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내용을 표현하는 것보다 구현하기 어려운 건 저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나 통념, 구조를 시각화하는 일이다.
이게 말이 쉽지 단지 몇 마디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인물들의 대사나 자막 몇 개로 설득할 수는 없다. 극 중에 등장하는 사건-대화-도구를 종합해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사고방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 관객들은 그 세계에 몰입한다. 스크린이라는 벽을 넘어서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하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긴 호흡으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길다는 특징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이야기 자체를 까다롭게 고르지 않는 편이라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주변에선 몰입이 아예 어려웠다고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재미를 붙이고 몰입할 수 있었던 근거는 영화에서 묘사하는 사회 구조에 있었다. 영화에는 제국과 공작, 남작과 같은 작위가 등장하며 향신료와 '상호 간의 계약'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지점이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봉건제 구조를 SF 배경으로 옮겨놓았다. 귀족 집안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역학 관계의 현실감이 굉장히 핍진했다. 현실 세계의 역사를 상징으로 치환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더욱 명확해질 거 같지만, 이런 이유로 배경은 익숙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저 봉건적 구조의 작동 원리를 안다면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가주인 레토 공작의 행동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봉건제는 계약을 통해 형성되는 주종 관계다. 유럽의 봉건제는 아시아의 봉건제와는 다르기에 레토 공작의 행동도 그런 배경을 염두하고 보면 이해가 쉽다. 그가 함정임을 알면서도 임무를 수행했던 이유는 충성과는 거리가 멀다. 아들인 폴의 생모인 레이디 제시카와의 관계도 그렇다. 그녀는 레토 공작의 연인이지만 부인은 아니다. 정략혼인은 봉건적인 정치 체제 아래에서 동맹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니까 레토 공작은 부인의 자리를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은 머나먼 미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구조는 고전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SF를 다루는 다양한 문학이나 영상 작품들을 보면 꼭 '은하 제국'이 등장한다. 각 행성마다 지적 생명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 은하계를 다스리는 제국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SF 세계 속의 정치 체계가 전제군주정이라는 점은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만약 행성 간 여행이나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시점이 오게 된다면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의 규모도 달라질 것이다. 행성 단위로 주거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차이가 발생할 것이고 국가라는 단위의 인식 체계 또한 바뀔지 모른다. 혹시 모르지 그때가 되면 한국 사람이라는 설명보다 '지구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자유로운 이동의 수준에 따라 수많은 시스템이 바뀐다. 성간 이동의 연료가 되는 스파이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이 장대한 서사시는 그래서 매혹적이다. 이권을 중심으로 인물 간의 당위와 목적이 명확하게 엿보인다. 저 스파이스의 유통권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렇기에 유통시켜야만 한다 '스파이스는 흘러야 한다'. 성간 이동이 어려워지면 궁극적으로는 저 체제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테니까. 그만큼 귀중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명확하게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자원의 생산부터 정제, 활용까지의 과정이 막히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정, 공화정은 행성 규모의 생명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듄을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은하영웅전설'도 생각이 나고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도 생각이 났다. 은하영웅전설을 통해서는 카리스마를 지닌 걸출한 한 인물에 집중해서 정치 체제를 고찰해볼 수 있고 크루세이더 킹즈를 통해서는 가문의 존속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런 작품들이 떠올랐다. 이 시리즈 자체가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번 편은 주인공인 폴의 기원을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 나올 내용에는 정치적인 내용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주 사극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근사한 영화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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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넷플릭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오래되고 고된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나는 어느 해가 됐든 연말을 맞이할 때 가족-따스함-파티 분위기보다는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쓸쓸한 기분을 더 좋아한다. 그 한 해에 만족하든 안 하든, 좋았던 나빴던 어쨌든 한 해를 살아냈으니 맞이하는 마지막 달이다. 남들이야 어찌 평가하든지 어쨌든 나는 내 인생에 1년 치의 무언가를 또 적립했고 살아내야 할 한 해를 마친 것이다. '끝'은 두렵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아이리시 맨>의 200분이나 되는 러닝 타임을 어찌어찌 견뎌내고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에 이르면 실제로 1년 정도는 산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는 길고 자세한 마피아 생활의 묘사는 실제로 아일랜드 출신 백인 범죄자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함께 늙어버린 듯 지친 기분이 들 때쯤 왜 스콜세지가 작정하고 영화를 이렇게 길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양로원에 홀로 앉아 있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으로 분장한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을 보며 드는 복잡한 감정은 노쇠하고 힘이 없어진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아니다. 그를 동정하기엔 우리는 그 남자가 저지른 너무 많은 죄악을 200분 내내 목격했다. 인간에게 늙고 초라해졌기 때문에 사함 받을 수 있는 죄란 건 없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의 얼굴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며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당화했던 그의 젊은 날 마피아의 모습이 겹쳐질 때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정체는 의문이다. 그 모든 잔인함과 비인간성은 뭘 위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딸들에게 너희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자기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이 있다고 변명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 짙은 회의감이 느껴진다. 진심으로 모든 순간 그렇게 믿었을까? 이제 와서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선택에 의한 득과 실은 결국 인생의 말년에 이르자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순간순간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무엇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뎀얀유크라는 남자가 있다.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를 보고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뎀얀유크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가담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데에 동참했다. <아이리시맨> 속 프랭크 시런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말년을 맞이했지만 뎀얀유크는 실제로 전범 재판을 받으며 끔찍한 악행이 까발려지면서도 가족들의 무조건적이고 따듯한 사랑을 받았다. 말년까지 그는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하고 가난한 삶,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삶, 학살자의 삶, 부귀영화를 위해 타인을 서슴지 않고 짓밟는 삶, 이 모든 선택지는 서로 대립하거나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삶은 각각 독립되어 있고 권선징악 같은 인과관계는 실제로 필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살면서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갑작스러운 두려움을 느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죽음은 목전에 와 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회개의 기도문을 중얼거려 보는 것 밖에는 없다. 역으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 왔지만 그 대신 타인에게 짓밟힌 가여운 인생들에게도 딱히 그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은 없다. 사후 세계를 믿는다면, 죽음이 안식이란 것을 믿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는 훗날의 무언가를 임의로 상상하며 선택할 수 없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살아가는 도중의 모든 선택에 대한 기준은 결국 단 한 가지의 확실한 사실, 죽음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설령 존재한다 해도 인간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그 존재에 대해 알 수도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그걸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온 시내가 루미나리에로 반짝거리고 울려 퍼지는 캐럴로 가득 차 있을 때, 모두가 쓸쓸함과 설렘과 자신의 삶에서 밀려오는 각종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내가 끝나가는 한 해를 보내며 생각하는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문장은 전혀 슬프거나 허무하지도, 동시에 위로가 되지도 않는다. 굳이 나의 느낌을 묘사하자면 ‘고요하다’ – 나는 연말의 고요 속에서 되뇐다. 언젠가 반드시,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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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프레스 배지를 차고 전주로... 양선생's 개막식 방문기
[JIFF 데일리] 프레스 배지를 차고 전주로... 양선생's 개막식 방문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방문기>
2024년 5월 1월 오후 6시 30분 수요일 전주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저는 본격적인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하기 1시간 전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감독님, 배우님 그리고 제작진의 사진을 찍으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열정! 전주, 무주, 부산, 부천 등 국내 굵직한 영화제를 많이 가보았으나 매번 개막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적이 없었거든요. 열기! 5월 첫날,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도 이미 많은 관중들이 개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VIP분들이 하나둘 등장하자 모두가 환호와 사랑을 보냈습니다. 즐거움에는 국적도, 인종도, 피부색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분, 영화에 참여한 분이 붉은 카펫 위로 지나가면 영화를 사랑하는 시선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저도 연신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두근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현장을 체험한 경험자로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 팁(Tip)을 드리자면, 야외 자리를 선점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빠르게 실내 입구 쪽이나 2, 3층으로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밝은 조명 아래 놓인 스타와 감독님을 볼 수는 없지만 실내에서는 직접 악수를 받을 수도 있거든요. 야외보다 실내가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2, 3층으로 올라가셨다면 절대 난간에 기대거나 걸 터 서 있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더 개막식은 배지, 초청장, 일반 티켓이 각각 입장 시간이 다르다는 점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배지와 초청장은 개막식이 시작하기 2시간 전부터 입장이 자유롭게 가능했습니다. 일반 티켓은 1시간 전부터 입장했고, 처음에는 줄까지 서 있던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본격적인 개막식은 공승민, 이희준 배우님이 MC로 등장하시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무료로 사회를 맡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관객이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실제로 이희준 배우님이 에드리브를 하실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개막식은 영화제 트레일러, 정준호-민성욱 공동 위원장 환영사, 우범기 시장 개막 선언, 개막 공연 <조선팝 - 오감도>, 개막 상영으로 이어졌습니다. 영화제 트레일러를 감상하며 이번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하나의 쿼터’라는 의미와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을 설명하셨습니다. 개막식은 생각보다 빠르고 매끄럽게 흘러갔습니다. 특히 신인 배우를 포함해 관객석에는 어린 학생분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영화를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전주국제영화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100회를 향한 첫 번째 쿼터를 달성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개막작 ‘새벽의 모든’의 ‘마야케 쇼’ 감독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본 개막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개막작에 대한 이야기는 맨 하단 링크로 달아두겠습니다. 개막식에 참여할 기회를 주신 ‘씨네랩, ㈜하이스트레인저’ 관계자분들께 엎드려 절하고 싶네요. 만수무강 하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엔 지프지기(전주국제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영화제를 방문했었습니다. 다시 프레스 배지를 달고 개막식을 방문하니,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지프지기분들이 특별하게 보이더라고요. 상영관 파트에서 열심히 일했던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배지를 착용한 분들이 얼마나 멋지고 부럽던지! ‘씨네랩’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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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날 본 행사가 시작하고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화창한 초여름 날씨였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저에게 전주국제영화제는 준비된 '간이 비닐 우비'를 무료로 나눔해 주시더군요. 우천시 어떻게 대응하고, 관객들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지 만반의 준비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분들의 센스에 감동하며 영화제에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
1) 개막식 초청작 '새벽의 모든' 기획기사 링크
2) 양선생의 인스타그램 계정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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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위대한 개츠비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에 호화롭게 잘 사는 장면만 나와도 바로 '그 장면'이 나오는 영화. 영화를 보기 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아이리시 맨>처럼 메인 인물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영화일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초반은 개츠비의 외적인 매력에 빠지고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점점 그의 내적인 매력에 빠진다.
#사진 밑으로 스포가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당시 미국
누구나 자신의 꿈이 있지 않은가. 돈과 명예, 남들 부럽지 않은 재력과 행복한 나날들 같은 꿈 말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당시 미국에서 드리우는 '아메리카 드림'으로 엄청난 호황기를 누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희망찬 꿈과 포부를 안길 수 있는 시대에 개츠비 역시 그 꿈을 달성한다. 화려한 대저택과 신나는 파티, 언제나 밝은 그의 저택 조명은 개츠비의 능력을 과시하게 만든다. 개츠비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나오는 부자들의 파티 장면은 영화 중간마다 나오는 노동자들과 상당히 대비되어 나온다. 즉, 영화는 당시 1920년 호황기를 맞는 미국 사회에 따라 빚어지는 빈부격차와 계층 분화의 대립을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당시 갑작스러운 호황기에 따라 나날이 발전하는 물질의 변화에 맞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문화지체현상(culture lag)이 벌어진다. 영화는 이 현상을 역시 포커스를 맞혔는데 부패한 권력과 사치 넘치는 모습들, 거짓으로 꾸민 허상이 확장되가는 미국인의 모습을 드러내며 당시 미국 상황을 느낄 수 있다.
위대함
개츠비라는 사람이 왜 위대할까. 필자는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위대한'을 적은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의 시점 그리고 소설에서 말하는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츠비가 가지고 있는 진심 즉, 데이지(캐리 멀리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닉은 첫 장면부터 각종 정신병을 앓고 있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예전 만났던 개츠비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개츠비가 엄청난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는 5년 전 헤어졌던 데이지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거나 오히려 그 꿈이 현실의 제안으로 메워버린다. 닉도 이 같은 과정으로 결국 정신병을 앓는 지경까지 이르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츠비는 다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돈을 인식으로 삼지 않고 수단으로 이용해 데이지의 사랑을 얻고 싶어 한다. 현재도 이어지는 물질적 욕망과 욕망으로 만들어진 허상 된 세상 속에서 물질적 욕망을 이기는 진정한 사랑. 이 얼마나 위대한가. 닉이 왜 마지막에 '위대한'을 적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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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일 때 사랑하면 최악이 된다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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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개봉 전부터 이미 포스터로 유명해진 영화다. 배우 정재영이 주연을 맡은<나의 결혼 원정기>(2005)의 한 장면과 유사하다는 것. 배급사인 그린나래미디어는 공식 트위텅 정재영 배우로부터 온 메시지를 게재하며 이 밈(meme)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한국 사람들은 재미있다. 어쩌면 머나먼 노르웨이에서 온 이 영화가 포스터 때문이라도 한국에서 대박을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선언은 진부하지만 나름대로 유효하다. 나는 자꾸만 '누구나 사랑할 땐 최악이 된다'로 제목을 혼돈했다. 주어의 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누구나 사랑할 때 최악이 된다고 할 때는 최악이 되는 사람의 변명 같이 들리지만 주어의 자리를 바꾸었을 때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종종 저지르는 귀여운 어리석음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사랑할 때 사람들은 자주 바보가 된다. 나도 그렇다.
사랑할 때 나는 얼마나 최악인가를 떠올렸다. 성숙한 사람들은 사랑할 때 최고의 모습만 보여줄까? 지나고 나서 보면 나는 항상 최악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미성숙해서일까.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며 성숙해지기는 할까. 언젠가 성숙한 어른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는 할지 의문이다.
'사랑할 때'라는 때는 언제일까. 영화의 원제는 덴마크어, 영제는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이다. 세상에서 제일 별로인 사람. 그 제목이 어쩌다 '사랑할 땐'이라는 조건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이 멋지다. <더 워스트 퍼슨 인 더 월드>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랜만에 음차번역을 하지 않은 제목을 만나 반갑기까지 하다.우리나라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라고, 그렇기에 '사랑하면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선언에 공감하며 영화표를 끊을 관객도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나?
율리에는 의학을 공부하다가 때려치우고,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또 때려치우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연애도 하고, 사람도 만난다. 그러다 <밥캣>의 작가로 유명한 악셀과 사랑에 빠진다. 악셀과 살림을 합치고, 악셀의 친구들과 가족을 만난다. 40대 중반인 악셀은 율리에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율리에는 이제 겨우 서른이다.
'서른'이라는 숫자는 유난히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마치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난다는 듯이, 혹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듯이. 나는 스물아홉 살에서 서른 살로 넘어가던 날 밤에 혼자 집에 앉아 나의 이십대에 관하여 구구절절 썼다. 이제 그 파일은 어디에 갔는지 지워졌는지 기억도 안 나고, 그 사이 내 노트북이 두어 번 바뀌었으며 뭐라고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문장이 '다 사랑 때문이었다'였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어리석었다. 사랑할 때 최악이 되었다는 진부한 생각을 했다. 나의 방황과 슬픔과 우울과 불면의 밤들을 사랑 때문이었다고 단순히 정의내렸다. 20대의 나는 공공연하게든 공공연하지 않게든 늘 누군가를 만나왔고,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어떤 사랑의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율리에의 부모는 이혼하였고 아버지는 새 가정을 꾸렸으며 율리에에게 절대 먼저 연락하거나 찾아오는 법이 없다. 율리에가 악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자 악셀은 그 점을 지적한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악셀에게 전이된 거라고.
악셀은 40대 중반의 남성으로, 카툰 <밥캣>으로 이미 성공을 거둔 작가다. 악셀을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 결혼하여 자식을 키우며 평범하게 산다. 악셀은 율리에와 동거하면서 율리에와 친구들처럼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율리에는 자꾸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만 한다. "넌 좋은 엄마가 될 거야"라는 악셀의 말들은 율리에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지만, 악셀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악셀은 다정하고 섬세한 남자다. 물론 그의 작품에 성차별적 요소가 다분하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여성혐오적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예술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율리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엄마가 되면 앞으로의 인생은 오직 '엄마'로만 점철될 것이다. 악셀은 아빠가 되어도 여전히 유명한 만화가이자 아빠로 존재하지만 율리에는 그냥 누군가의 엄마일 뿐이다.
악셀이 새로 나온 만화의 출판기념회를 하던 날, 율리에는 떠들썩한 행사장에서 조용히 빠져나온다. 한참을 하염없이 걷다 어느 파티장으로 들어가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또 자기가 의사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장소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설령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익명의 파티장에서 익명의 참가자가 된 율리에는 익명의 남자와 대화를 시작한다. 둘 다 동거인이 있는 상황이기에 '선'을 정하고, 어디까지가 바람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를 테스트한다. 이들은 '테스트'라는 이름 아래 온갖 기행을 하는데, 이들 스스로가 '이건 바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에 거침이 없다.
날이 밝아 헤어질 때까지도 서로의 본명을 모른다.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알면 궁금해지고, 찾아보고 싶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그들이 정한 '선'을 넘어버리게 되니까.
중요한 건 타이밍
의사가 아니라 서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율리에의 앞에 운명처럼 그 날의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난다. 그의 애인과 함께.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 그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율리에는 그가 일한다는 카페로 달려간다. 그의 이름을 부른다(에이빈드). 주변의 모든 시간이 멈추고 세상에 오직 그와 자신만 존재하는 듯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율리에는 악셀에게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악셀은 '오래 살아봐서 아는데, 이런 사랑은 없다'며 율리에를 붙잡는다. 그러므로 율리에는 악셀의 곁을 떠나야 한다. 아직 이룬 것도, 원하는 것을 찾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직업적으로도 성공한데다 율리에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까지 미리 살아본 악셀과 함께 있으면 율리에는 자꾸만 스스로를 악셀과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 마음을 티낼 수도 없다.
악셀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율리에의 상황이 최악이라서다. 타이밍이 안 좋다. 상황이 최악일 때 사랑(또는 연애)을 하면 최악이 된다. 가진 것도 없고 내밀 것도 없고 당당하지도 못하고, 하필이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 비교하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고 마는, 세상에서 제일 후진 사람이 되는 거다.
에이빈드 역시 수니바와 헤어진다. 에이빈드의 여자친구였던 수니바는 어느날 자신의 멀고 먼 조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별안간 요가를 시작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에이빈드는 딱히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하자는 대로 잘 따랐던 것 같다. 운명처럼 수니바는 요가와 명상을 위해 떠나고 SNS 스타가 된다. 헤어져야 할 타이밍이다.
각자의 관계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율리에와 에이빈드. 이들의 앞에도 비단길만 깔려있지는 않다. 에이빈드는 환경을 위해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실수로 율리에가 임신을 하게 되고, 율리에의 눈에는 미래 계획도 없이 파트타이머로만 일하는 에이빈드가 한심해 보인다.
영화는 프롤로그와 열두 개의 챕터,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의학을, 심리학을, 사진을 찍다 사귀게 된 남자친구를, 오슬로를 싫증내는 율리에의 모습을 담는다. 에필로그에서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아내고 마침내 홀로 선 율리에가 등장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쉽게 속인다. 어쩌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연애가 아니라 성취가 아닐까. 율리에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한 서른을 눈앞에 두었을 때 연애에 몸을 내던졌다. 하지만 그 연애는 율리에의 내면 깊은 곳에 있던 결핍을 채워주지 못했다.
율리에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악셀과의 운명같은 사랑도, 에이빈드와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낭만적인 오역이다. 율리에는 사랑해서 최악이 된 것이 아니었다. 최악일 때 사랑하는 바람에 최악의 상황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허함을 사람으로 채우려고 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영화의 위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악셀의 출판기념회 현장을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율리에.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하는 못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별로인 사람(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이 되는 순간. 그 감정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감독 : 요아킴 트리에
출연 :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슨 다니엘슨 라이, 할버트 노르드룸 외
상영시간 : 121분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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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아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
공포영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귀신, 악령 등 초자연적인 현상에서부터 잔혹한 살인마와 같은 실질적인 공포까지. <에이리언 시리즈>는 호러영화 중에서도 크리쳐물에 속하는 장르지만, <쥐라기 공원>, <죠스>, <피라냐>등과는 다른,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절망을 자극한다. 바로 이성과 본능의 선과 악을 뒤집는 내용들과 무자비한 성폭력의 메타포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제노모프'로도 불리는 이 괴생명체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인간과 제노모프의 기원을 다루는 <프로메테우스>에서도 나오듯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창조주들이 만들어 낸 생물이다. 이 제노모프는 알에서 태어나 '페이스허거'로 불리는 상태로 숙주를 찾아 얼굴에 들러붙고 입에 삽입해 제노모프의 유충을 넣는다. 제노모프의 유충은, 숙주의 DNA와 결합해 숙주에 따라 다른 형태의 성체로 자라난다. 인간의 DNA와 결합한 제노모프는 뛰어난 지능과 포악한 본능으로 생물들을 잡아먹는다.
<에이리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그 특유의 미술은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던 화가 H.R. 기거가 만들었다. 제노모프의 디자인도 애초에 그가 그렸던 한 그림에 나오는 괴물을 모티브로 했다. 바이오메카니즘으로도 불리는 기거의 그림들은, 뼈와 기계 관들을 반복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면서 반투명한 미끌거리는 질감을 넣어 무척이나 기분 나쁜 느낌을 준다. 특히 제노모프의 머리는 남성 성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이러한 기거의 디자인은 후에 다양한 곳에 영향을 주었는데, 만화 <베르세르크>의 사도와 5인의 천사들 디자인이 그 예다.
디자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페이스허거는 강제로 얼굴에 들러붙어 삽입을 해서 유충을 몸속에 넣고, 나중에 체스트버스터가 되어서 가슴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이 과정은 그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서 무섭다기 보단 성폭행에 의한 강제임신과 출산을 연상시켜 더 끔찍하게 만든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전부 여성이고, 여성이 침을 질질 흘리는 남성 성기모양의 머리를 가진 폭력의 화신인 괴물과 대항해 싸우는 내용이다. 그 세세한 영화 뒷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영화 미술이나 디자인, 연출들이 그걸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끔찍함을 넘어서서 불쾌함으로 다가가 영화 자체를 보기 힘들어할 수도 있다.
또한 제노모프는 태어난 본능으로 인간의 뇌를 주식으로 먹는다.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는 것이다. 본능과 이성의 뒤집힘은 작중에서 여러 번 나오는데, 앤디와 같은 합성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제노모프는 본능적이고, 인간은 그 중간에서 이성과 본능을 다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능은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전혀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살려는 본능이나, 친구를 살리려는 본능에 이끌려 죽음을 자초한다. 이 와중에 이성만이 극대화된 합성인간들은 합리적인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주인공들이 들어가게 되는 우주정거장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모듈로 이루어져 있는데,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를 건국한 형제의 이름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전쟁의 신 마르스의 강간으로 낳은 자식이다. 또 로물루스 모듈은 모두 제노모프의 근거지가 되어 승무원들이 잡혀가 숙주가 되어있는데, 역사에서도 로물루스는 로마에 여성이 부족하다고 이웃나라의 여자들을 납치했었다. 레무스 모듈이 그나마 웨이랜드 유타니의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듈이라면, 로물루스의 연구소는 그들의 끝없는 탐욕의 본능을 드러내는 모듈이다. 이 탐욕은 제노모프보다 더욱 끔찍한 것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모든 본능이 나쁜 것이고, 이성은 합리적이며 옳은 것일까? 망가진 합성인간이 인간성을 되찾고, 인간성은 죽음을 무릅쓰고 친구를 구한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 완벽할 순 없다. 제노모프도 통제할 수 있다는'합리적 이성'으로 통제하려는 사람들을 본능으로 끔찍하게 이성의 상징인 뇌를 잡아먹으며 죽이지 않은가.
수많은 시리즈를 낳은 <에이리언>이지만,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그 근본의 메시지에 가장 충실하다. 70년대 사이버펑크가 지닌 우주선의 디자인부터, 남성의 성폭력과 여성이 대항하는 힘, 본능과 이성의 줄다리기. 그리고 <이블데드>를 리메이크하면서 인정받은 페데 알바레즈의 뛰어난 연출력까지. <에이리언 시리즈>가 가진 특징과 재미를 그대로 살려냈고, CG가 아닌 실물이 보여주는 질감과 레트로한 감성은 <에이리언>을 처음 접하는 젊은 관객들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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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듣보 크리에이터
무제한 핏빛 라이브 스트리밍 시작!100만 유투버를 꿈꾸며 장장 10년간 '커트의 세상'에 꾸준히 콘텐츠를 올려온 커트(@KurtsWorld96). 하지만 조회 수는 두 자릿수를 넘긴 이력이 없다. 그렇게 삶의 의미조차 희미해지던 그때, 확실하게 대박을 낼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바로 카풀 서비스를 운전하며 만나는 승객들과 특별한 라이브 소통 콘텐츠를 만드는 것. 지금부터 조회 수 떡상을 향해, 인생을 남김없이 갈아 넣은 욕망과 광기의 스트리밍이 시작된다.
너도 내가 궁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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