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2-02-08 14:17:49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리셰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리뷰
이 심란한 마음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나는 홍콩, 대만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SNS에 해시태그를 단 리뷰를 써서 당첨되면 대만 고량주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당연히 해 봐야지 생각했다.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굳이 한 마디 남긴다면 '일본 영화에서 본 난감한 캐릭터, 중국 영화에서 본 조잡한 CG, 한국 영화에서 본 불필요한 연출'이 마구 섞인, 동아시아 대통합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영화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서사
영화의 시작은 나이 든 동네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던 '샤오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오고,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 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예상할 수 있듯이 번개에 맞아 죽는다. 그러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샤오룬을 데리고 저승으로 간다. <신과 함께>를 봤다면 대만 저승은 좀 만만하게 느껴질지도.
저승에 가면 몇십 년 된 컴퓨터로 갓 죽은 인간의 삶을 평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봤다면 저승도 기술발전 속도가 현저히 차이나는구나 싶을 거다. 생의 정보를 이마에 바코드를 대서 알아보는 시스템은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 같다. 저승에 가면 누구나 염주를 하나씩 받게 되는데, 착하게 살았으면 흰색 염주알, 나쁘게 살았으면 검은 염주알이다. 검은 염주알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어 저승에서 일을 돕는다. 염주알이 흰색으로 바뀌어야 인간 환생 확정. 자, 또 떠오른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배지를 모으는 <소울>의 아기 영혼들이. 왜 이렇게 비슷한 영화들을 끌어오냐 하면, 무엇하나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상상의 산물일진대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판타지도, 로맨스도 놀라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역시 예상할 수 있듯, 샤오룬은 죄가 많아 사람으로 환생할 수 없다. 그리고 옆방에는 죽음을 수용하지 못해서 억울해 미칠 지경인 여자 '핑키'가 있다. 이들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초면이면서 갑자기 서로를 비난한다. 둘이 욕하며 싸울 때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 둘이 뭘 하겠구나.
그렇다. 그들은 죄를 갚기 위해 월노(月老), 우리나라에서는 월하노인이라 부르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붉은 실로 맺어주는 인연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아주 임무가 막중한 역할이다. 핑키는 월노가 되기 전 악귀가 되지 않겠냐는 검은 유혹을 받는데, 잠시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샤오룬에 의해 저지당한다. 판타지임에도 저승이라는 배경이 광활하지도 아득하지도 않다.
캐릭터의 존재 이유
귀신도 되었겠다, 핑키는 자기를 죽인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죄책감도 없이 핑키가 죽음으로써(어떻게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챙긴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산다. 샤오룬은 복수를 해주겠다며 그 남자와 밖에 서 있던 오토바이를 묶고, 갑자기 남자는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져 오토바이에 유사성행위를 한다. 이 영화, 12세 이상 관람가로 해도 될까.
핑키는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죽었으면서,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았으면서 고작 그 정도로 원한이 다 풀린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로 샤오룬에게 반한다.
번개 맞아 이마에 상처가 생긴 샤오룬은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다. 파트너가 핑키와 샤오룬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샤오룬이 원래 살았던 동네로 가게 된다. 왜 살았던 동네와 출신 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다 키우던 개가 샤오룬에게 달려가면서, 별안간 기억이 떠오른다. 세상에...
개를 찾으러 온 여자 '샤오미'를 보며 오열을 하는 샤오룬. 드디어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쉽게 찾아질 기억이란 말인가. 허무하다.
그때부터 샤오룬은 샤오미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저승의 임무를 맡은 귀신들이 너무 태만하다. 샤오룬에게 빠진 핑키는 샤오미와 다른 남자를 엮어주려고 하지만, 샤오미에게는 인연의 실이 묶이지 않는다. 왜겠나. 관객들은 다 알고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대체 핑키와 샤오미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핑키는 한 남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여성, 귀신이 된 후 샤오룬을 좋아하는 여성 이외에 아무런 서사가 없다.
샤오미 역시 '샤오룬이 좋아하는 여성' 외에는 특징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첫눈에 반한 여자, 샤오미가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말할 때,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라고 말하게 하는 여자, 싫다고 싫다고 아무리 거절해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고백하게 만드는 여자,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갑자기 기억을 되돌려주는 여자, 귀신이 되어서도 지켜야 할 여자. 오직 샤오룬을 위해 존재하는 두 여자. 이들은 성격이라 할 것도, 배경이라 할 것도, 서사라 할 것도 없다.
두 여자주인공이 이런 마당에 남자주인공이라고 특별한 서사가 있겠나. 남자주인공 역시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죽고 나서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동네 까불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따금 일본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당황스러운 캐릭터들을 모아둔 것만 같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의 당황스러움 같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인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이 정도이다.
불필요한 연출
그러다 또 갑자기, 저승에서 원한을 풀지 못한 악귀가 이승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과거 인연들을 죽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박중헌쯤 된다. '파국이다'를 읊조려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저승에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한다.
이 악귀가 원한을 품은 것은 500년 전의 일 때문이다. 수많은 살생을 해 오던 도적떼 출신으로, 환생은 커녕 지옥에나 안 떨어지면 다행인 남자. 그런데 여기에서도 서사의 부재가 여실없이 드러난다. 이 도적떼는 왜 도적질을 하는가. 돈 때문인가? 아니다. 이들은 쫄쫄 굶는다. 의로움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무고한 이들을 가차없이 죽인다. 나라에 대한 역모인가? 그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악한 자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
원한을 품고 염라 밑에서 일하게 되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줄줄이 환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하기로 한다.
첫 번째 타자는 어린 아이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500년 전의 일을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며 양치하고 있는 아이를 공격하고, 이 아이는 또 수산물 파는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는 또 다른 남자를 공격하고, 남자는 샤오미를 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샤오미가 공격당하자 그때서야 샤오룬과 기타 저승 인물들이 나서는데, 그 이유도 역시 알 수 없다.
문제는, 왜 보는 사람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을 연출했는지이다. 목을 꺾고, 칼로 찌르고, 아기가 조개를 생으로 씹어 먹어서 피를 토해야 하는지 전혀 개연성이 없다. 악귀에게 씌인 이들은 죄다 좀비화된다. 좀비 영화, 좀비 드라마가 유행인 건 알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해야 했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도 있지만 복수심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이 징그러운 복수극은 로맨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악'은 스릴감도 주지 않고, 공포심을 주는 것도 아닌, 징그러움뿐이다.
논외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 어쩌고 하는 인터뷰들을 몇 편 읽어 보았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우리가 왜 영화로 봐야 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간접경험을 통한 외연의 확장에 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당장 포털사이트를 켜서 아무 기사나 눌러 보면 경험 가능하다. 굳이 간접경험하지 않아도 직접경험이 가능한 영역이지만 우리는 법과 제도와 문명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심하며 살아간다. 욕망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면 욕먹을까 봐 속으로만 생각했던 추악함(약자를 타자화, 대상화하는 등)에 픽션이라는 핑계가 하나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인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서양영화에서 'God bless you'를 말하는 상황에 이 영화는 '아미타불'을 말한다. 대체로 불교적 관점의 영화이다. 윤회와 환생, 극락과 지옥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스와 복수극은 테마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독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보여주었던 애틋하고 풋풋한 로맨스가 한 스푼 정도 들어가 있다.
왜 샤오룬이 샤오미를 그토록 쫓아다녔는지, 악귀가 왜 여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초반에 뿌려놓은 떡밥들이 뒤에서 조금씩 회수가 되는데(물론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생명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악귀는 매미였던 시절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샤오룬의 격한 감사 인사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진다. 윤회고 극락이고 필요없다더니,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랬던 건가 싶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하나 마음에 담아둘 것이 있다면 인연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함부로 죽인 개미도, 나쁘게 대한 사람도, 나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도 나 나의 인연이니 소중히 대하자. 그들은 어쩌면 전생에 내가 빚진 사람,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인연이다.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자. 언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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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이 없었던 식당을 리뷰하지 않는다. 입맛이 달라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니까. 영화도 마찬가지로, 재미없었던 영화에 악평을 하지는 않는다. 십수년간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열광적인 팬이었지만 <매트릭스4>에 대해서 함구한다.
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하여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의무가 생겼으니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도 안내할 필요가 있겠다.
관람 포인트1.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대만영화 특유의 풋풋한 로맨스 감상 가능.
관람 포인트2.
인연, 사후세계 등의 요소들과 기괴한 장면들을 좋아한다면 재미있을 듯.
관람 포인트3.
떡밥이 하나하나 회수되는 걸 보는 즐거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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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색감과 촬영, 눈을 사로잡는 도둑 같은 영화
'이 영화 뭐지?' 예고편으로 내용을 알 수 없고, 포스터로는 더더욱 알기 힘들어서 '이 영화 정체가 도대체 무엇일까' 싶어 보게 된 영화였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기 때문에 흥미로움이 더해지긴 했지만 세간에 알려진 특별한 매력이나, 영화의 퀄리티 등에 대해서는 별 흥미를 가지지 못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갖고 있는 습관 중 하나가 볼만한 영화가 생기면 이전 사람들이 남겨놓은 리뷰를 먼저 본다는 점인데 사람들 사이에서도 극한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지루한 데다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팀 버튼의 기묘한 상상력과 샤갈의 색채감을 아우러놓은 환상의 명작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스 감독의 작품은 <개들의 섬>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사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던 터라 그냥 무작정 영화를 트는 것이 전부였다. 큰 기대 없이 영화를 틀고 난 뒤 100분 동안 마법같이 영화를 감상했다. 스토리는 빼더라도, 자꾸 보고 싶어 지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분명했다.
포스터만 보고 들어온다면 영화의 내용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로맨스나 드라마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이게 웬 걸, 범죄 추격 스릴러에 좀 더 가까운 영화였다. 물론, 스릴러라기 보단 미스터리 모험물에 좀 더 가깝지만 말이다. 그런데 영화 전반적으로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거의 전무하다고 이야기해도 무리가 없다. 미스터리 모험물인데 과정이 긴박하지 않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 역설적인 장르를 가능하게 만든다. 영화의 배경이나 공간 자체를 아주 비현실적으로 비틀어놓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를 이어간다. 게다가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기보다,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하듯 흘러가고 각 지점마다 '막'을 만들어놓음으로써 마치 잘 짜인 연극을 감상하는 듯 한 기분을 들게 한다. 때문에 영화 중반부로 가는 데까지도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통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영화인 데다가 현실감도 떨어지는데 어떻게 이 영화가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사랑받는 이유를 꼽자면 이 영화를 논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것. 바로 색감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바탕이 되는 분홍색과 더불어 연한 색감으로 도배된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 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타 영화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분홍색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오묘하고도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특정 장면들의 지점에서 색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거나, 연속되는 장면들 속 전환 지점에서 색감을 유지하거나, 탈락시킴으로써 극적인 전환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 속 메인이 된 '분홍색'은 사랑과 순수함을, 호텔의 유니폼인 '보라색'은 신비로움과 고급스러움을, '푸른색' 계열의 차가운 색깔은 살인이나 추격 등 스토리의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도움을 준다. 영화 배경의 전체적인 톤은 '노란빛' 사실은 베이지에 더 가까운 색으로 구성함으로써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관객의 눈을 자극 없이 편안하게 이끌고 간다. 가히 색으로 시작해 색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되지 않을 영화이다.
색감만큼이나 다채로운 건 바로 촬영 기법이다. 대칭 구도와 평면적 화면 활용을 통해 비주얼적인 매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또한,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1인칭을 활용하거나, 줌, 트랜지션(화면 전환 효과)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지루할 수 있는 전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인물에 포커스를 두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데 전체적인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기보다, 인물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전개함으로써 상세하고도 세밀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돋보인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점은 바로 화면 비율인데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대에 맞춰 환면 비율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1930년대에는 1.37:1, 60년대에는 2.35:1, 80년대에는 1.85:1로 구성함으로써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 시대 전환에 기본적인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순서에 압박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만, 현대 사회 영화 비율에 비해 좌우가 좁기 때문에 다소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배경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샷이나, 여백을 많이 두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색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존재를 부여하고, 각종 소품들을 활용해 인물의 가치관과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은 기존 영화들도 자주 사용하던 연출 방법이다. 다만, 웨스 앤더슨 감독은 더 디테일하고 치밀하게 설계함으로써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영화 속으로 은연중에 빠져들게 만든다. 완벽한 미장센의 향연과 강박증을 의심케 하는 감독의 연출은 놀랍고도 소름이 돋는다. 대칭구조만 보더라도 철저하게 각이 잡혀있는 데다가, 소품과 도구 하나하나마다 배치 위치와 카메라와 맞춘 높이 등 섬세함이 돋보인다. 영화의 연출이나 구도가 가진 의미를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의식하지도 않은 채 홀린 듯이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기법들은 영화가 가지는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색감이나 촬영만큼 스토리도 매혹적이긴 하다.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누명과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설정이 다소 진부하긴 하지만 이만큼 매력적인 클리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미스터리 모험물이라고 해서 으스스한 분위기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매료시키는 코미디 요소들도 영화 전반적으로 적절히 배치해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 한 편이다. 생각보다 놀랬던 점은 간혹 드러나는 장면 연출이 굉장히 원색적인데 손가락이나 목이 잘려 피가 튀거나, 성행위를 연상시키거나 하는 장면들이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 여러 번 등장한다. 지루한 전개인가 싶어 넋 놓고 있다가 당할 수 있다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초반에는 지루한 면이 있고, 중반부까지 흐름을 읽을 수 없는 다소 복잡한 불편함이 있지만,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속도감이 붙어 부담 없이 넘겨볼 수 있도록 스토리를 구성했다. 다만, 기승전결 중 전과 결 파트가 지나치게 허무한 감이 있다. 밀당없이 당기기만 하다가 영화가 끝나버린 기분이라 아쉽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미장센과 연출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호'의 평은 피한 듯하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지만 아마 '향수'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액자 속 액자식의 구성을 따라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스토리 또한 아마 '과거'를 이야기하며 전해져 오는 향수에서 오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한 제로 무스타파(토니 레볼로리 분)의 '내 생각에 그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의 말처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향수는 결국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입을 거쳐오며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그 안에 투과되는 진짜 삶은 현대에 존재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각함으로써 허상이 아닌 현실에 살아가기를 바란 게 아닐까 싶다. 때문에 영화 속, 향수의 허상을 벗어난 진짜 그리움을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은, 사랑했던 아가사(시얼샤 로넌 분)와의 실존하는 기억만을 추억할 수 있는 제로 무스타파뿐일 것이다.
클래식하고도 세련미가 넘치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오래간만에 눈이 즐거운 영화를 봤다. 앞서 말했지만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시선을 빼앗긴 채로 영화를 봤다. 다른 일을 하면서 영화를 보려고 해도 사람을 매혹시키는 장면들로 시간을 빼앗는 감각적인 영화이면서, 동시에 집중해서 보면 볼수록 뜻을 알 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말 그대로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색감으로 시작했지만 영화 속 바니쉬 향수만큼이나 깊은 향을 남긴 영화. 여담이지만, 영상을 공부하는 나로선 이처럼 반가운 영화가 또 없다. 구도나 기법에 대해서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고 하는지,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짜낼 때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마지막으로 우스꽝스럽고 키치 한 감성 속에서도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영화였다. 부담 없이 보기엔 지루한 감이 있지만, 미스터리하면서도 몽환적인 극 전개를 좋아한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게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 <The Grand Budapest Hotel>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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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걸작인 줄 알았다, 1시간 동안은
5★/10★
영화는 긴박한 소리가 오고 가는 병원 안, 검은 배경에 여성 성기의 모양의 빛이 비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엄마 자궁 속에서 처음 빛을 마주한 보Beau의 시선이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는 중인 보의 귓가에 이내 엄마의 분노 섞인 외침이 들린다. 그녀는 간호사가 아이를 땅이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간호사는 건조한 듯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답하지만, 엄마는 계속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미친 듯이 분노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애착적 분노와 함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다. 중년의 남성이 된 보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보는 심각한 편집증으로 고통받는 중이다. 그가 태어날 때 머리를 다쳤다는 엄마의 주장이 사실인 걸까? 혹 엄마의 ‘과한’ 집착이 보를 힘들게 한 것일까? 이번에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정신적 문제를 가진 보가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갈 예정이라는 점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의 계획은 꼬여버린다. 옆집에서 밤새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해도 잠을 잘 자던 보는, 누군가가 이 소음을 보의 집에서 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쪽지를 조심스레 문틈으로 밀어 넣는 아주 작은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그만 늦잠을 자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에게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늘 위협받는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집 밖에 나가기조차 수월치 않은 보가 비행기도 없이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엄마를 찾아가는 보의 여행은 기이하다. 도중에 만난,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그레이스 부부는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보를 입양한 듯 굴며 놔주지 않으려 한다. 숲속 고아들이 꾸린 극단은 보가 갖지 못한 생의 기대를 연극으로 선보여 보를 사로잡는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지 모를 일련의 여정 끝에 마침내 엄마의 집에 도착한 보. 파국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묵혀온 분노, 집착, 의존, 기대가 한데 뒤엉켜 쏟아진다. 문제는 보의 편집증적 공포보다 엄마의 집착이 더 힘이 세다는 것. 두려움에 질린 보는 엄마를 향한 물리적, 상징적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유전〉, 〈미드소마〉 등으로 전 세계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고 전해져 관객의 기대치도 그만큼 올라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르 영화의 문법을 새로이 구축해온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데 대한 기대였다. 감독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인터뷰에서 ‘외롭고 이상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에서 ‘외롭고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선보여 기쁘다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것이라 예상했다. 이왕이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논쟁 끝에 이 영화가 좋다는 사람들이 이기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이상한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맞다. 호불호가 갈릴 영화도 맞다. 그러나 영화가 좋다는 사람이 논쟁에서 이길 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호불호’ 차원이라기에는 단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보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영화의 만듦새가 상당하다. 보가 느끼는 현실의 여러 공포와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촘촘하고 단단하게 펼쳐져 흡인력을 높인다. 현실과 망상 사이에서 분열하며 괴로워하는 보의 캐릭터는 이유는 다르더라도 저마다의 문제를 겪는 모든 동시대 관객을 영화 속 보의 위치로 이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여정이 있고, 그 여정에는 늘 기대와 두려움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여정을 떠나기 전인 보의 위치에 대한 관객의 동일시에서만큼은 분명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정작 보의 여정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를 향한 관객의 동일시가 어려워진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가 너무 과잉이라는 데 있다. 재능을 인정받은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낼 본격적인 기회를 얻었을 때 종종 발생하는 문제다. 절제 없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버리는 것이다. 메시지와 이미지의 과잉은 보와 같은 위치에 섰던 관객을 하나둘씩 밀어낸다. 결국 보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영화 전반부에서 모두를 끌어들인 흡인력의 기반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보 캐릭터를 어린아이(미성숙)처럼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자꾸 눈에 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지 않은 전반부에서는 그의 연기가 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보가 ‘혼자’가 된 후반부에서는 그의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종종 거슬린다. 다소 난삽한 여정 끝에 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장 극적이어야 할 영화의 결말 역시 김이 빠진다. 보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지만, 그 감정은 관객에게 별다른 감정을 자아내지 못한다. 한국의 관객이라면 〈신과 함께〉 시리즈에 대한 기시감으로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요컨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관객이 자연스레 보의 시점에 이입하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메시지와 이미지의 과잉으로 관객을 보의 여정에 끝까지 동참시키지는 못한다. 어쩌면 감독의 세 번째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를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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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이번 설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웡카>입니다. <웡카>는 개봉일이 지난달 31일부터 줄곧 박스오피스 정상을 달리고 있습니다. <시밈ㄴ더그히>는 설연휴를 노리고 나온 신작 영화들을 제치고 역주행에 성공하면서 2위를 기록,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예상 밖의 흥행을 이어가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아가일>이 개봉 첫 주에 이어 둘째 주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2억 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오프닝 성적이 3,700만 달러에 그치면서 최종 박스오피스 성적이ㅣ 1억 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보여 흥행 실패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2위는 호러 코미디 <리사 프랑켄슈타인>이 3위는 제이스 스타뎀 주연의 <더 비키퍼>가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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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형사와 함께 펑펑 터져볼래?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범죄도시 2>가 개봉했다! 1편이 거의 나의 취향저격이었기 때문에 2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목 빠지게 기대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 1편이 처음 개봉할 때는 영화를 지금같이 딥(?)하게 파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알던 정도였다. 근데 분명하게 알던 건 마동석 배우 특유의 캐릭터였다. 2015년에 <부산행>과 2016년 <베테랑>이 개봉했다. 여기서 나왔던 마동석 배우는 모두들 알다시피 싸움 잘하는 아저씨였다. 근데 싸움만 잘하냐? 아니다. 그 마초스러운 이미지에 귀여운 애교까지 장착하기 시작했다. 외적으로는 이랬고 또 배우의 본업 내적으로도 성과가 좋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부터 <부당거래>까지 든든한 조연으로 필모그래피를 하나, 둘 씩 쌓아놓고 있던 터라 그가 잘 되는 건 그냥 시간문제였다. 아무튼, 이 영화 <범죄도시>는 이 배우의 유명세에 기름을 부은 작품이 됐다. 나 역시 마동석표 액션이 재미있다. 이런 사람들의 기대치에 힘입어 이 작품은 대박이 났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나 하얼빈의 장첸이야!!!!'나 '어 싱글이야'같은 유행어들이 우리나라를 강타했다는 건 아마 모두들 기억하실 것 같다. 나도 영화가 한참 유행할 때 보진 않았음에도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중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나. 요즘에서야 책도 어느 정도 읽었고 영화도 보고 있지만 내가 나의 취향을 어림잡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한국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저씨>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최애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에 든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나이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엄~청 기다렸고, 정식 개봉일인 19일보다 며칠 일찍 극장에 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K-슈퍼히어로였다! 2008년의 대한민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일이 있고 4년 후
장첸과의 한바탕이 있었던 4년 후. 금천구 강력반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경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렇게 공을 세웠는데도 뭔가 처우가 개선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 금천구에 사건이 일어났다. 정신병동을 탈출한 남자가 여대생 하나와 가게 주인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홍석과 상훈, 동균은 상황에 어쩔 줄 모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석도의 행방을 찾는 금천구 강력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쿵쿵 걸으며 마석도가 등장했다. 흉기를 휘두르는 남자를 손쉽게 기절시킨다. 그런데 기절시키다 못해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주먹 한방 맞고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은 것이다.
전일만은 금천구 강력반의 반장이다. 상관에게 불려 가서 와장창 깨졌다. 윗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업무 지시사항을 마석도에게 전하게 된다. 그 지사사항은 '베트남에 가서 범죄자 하나를 인도해와라'였다. 듣자 하니 무슨 자수를 했다고 한다. 오케이. 그럼 휴가 쓰는 셈 치고 가지 뭐. 전일 만과 마석도는 더듬더듬 영어실력과 함께 베트남 비행기에 탑승한다. 어렵지 않게 베트남 영사관 쪽 담당자와 연결하고, 그 자수했다던 놈을 심문하기 시작하는 둘. 둘은 베트남에서도 진실의 방을 만들며 하나하나씩 정보를 얻기 시작한다. 뭔 베트남에서 베트남에서의 연쇄살인사건과 강해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장첸과는 다른 부분으로 악랄한 강해상. 이 강해상은 극악무도한 범죄수법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는데,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나쁜 놈을 때려잡는 마석도의 이야기가 영화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데 익숙해서 웃겨
5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그 이유인지 전작에 대한 오마주가 몇 개 보인다. 초반부 마석도가 등장하고 칼을 휘두르는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의 구도만 봐도 1편를 차용한 느낌이 난다. 또 예고편에서 나왔던 장이수 캐릭터 활용법도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또 정인기 배우의 지역 경찰 계급 서장 캐릭터나 휘발유가 다시 등장하는 부분도 전 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팬서비스 차원에서 만족할만하다. 엔딩부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날 것 같다.
근데 이런 전편에 대한 오마주가 단순히 캐스팅에서 짠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하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봐도 웃기다. 예고편에도 나오지 않나? "넌 뭐야?" "까불인데요" "까불고 있어"식의 말장난이 극에서 자주 나온다. 이런 유머 방식은 1편에서 많이 쓰였다. "혼자 왔니?" "어 싱글이야"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런 유머 포인트가 1절 만하고 딱 끝나는 선이 아니라면 좀 식상해지기 쉽다. 그냥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같은 패턴의 유머를 반복해서 하는 사람을 보면 딱 느껴지지 않나. 진짜 재미없어서 말도 걸기 싫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뭐 말장난식 유머만 재밌는 게 아니다. 초반부 반장의 존재 유무도 재미있다. 또 반장이 서툰 영어를 구사하는데, 이거 2007년에 <무한도전>에서도 봤던 유머인데도 웃긴다. 뻔뻔하게 재미있는 영화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근데 또 막상 웃기기만 한건 아냐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고 재밌고 이런 것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강점 중 하나는 촬영이다. 이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장면에서 영화는 베트남의 풍광을 묘사한다. 베트남에서의 이야기와 한국에서의 이야기는 무게감이 살짝 다른데, 어쩌면 난잡해질 수도 있는 영화의 톤을 나름의 영상미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해외 로케이션을 경제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타지의 모습과 범죄의 잔혹성이 매치가 잘 되니 연출의 승리였다. 그냥 자연스러운 풍광만 예쁜 것이 아니다. 베트남의 한 경찰서, 협소한 아파트, 봉고차 안, 식당까지 그냥 단순히 인물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닌 소재를 활용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적절한 촬영은 베트남에서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니다. 가령 중후반부의 마석도 혼자 걸어가는 장면, 최후 반부의 특정 신은 감독이 이 장면에는 '관객이 이런 걸 느껴야 해!'를 생각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아. 촬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롱테이크 신이 있다. 이 부분은 그냥 직접 보시라. 아마 올해의 베스트 신 TOP 3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당연히 액션이다. 액션 연출이 좋았다. 초반부 마석도가 흉기를 든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마석도기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을 보면 무슨 돌로 사람을 머리 찍는 소리가 난다. 난 이걸 처음 들을 때 솔직히 작위적이라고 생각한다. 뭐 내가 적응을 해서인지 이 사운드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가 전개될수록 맞은 인물들의 리액션이 나오는데, 이거랑 잘 맞는다. (이거 외엔 할 말이 없다. 극 중에서 마석도가 성장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퍽 퍽 때리는데 역시 뛰어난 연출이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사운드 연출이 아니더라도 맨몸 액션 자체가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초반부를 지나 한 30분쯤 됐을 때 마석도의 액션신이 나오는데, 뭐 사람 하나몇 대 연속해서 때리지 않아도 이 사람이 얼마나 센지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맨몸으로 두들겨 패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장소마다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는 모습까지 있으니 몰입에 도움이 된다. <이터널스>의 길가메시보다 인물 연출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마석도 캐릭터만 액션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강해상 캐릭터의 액션 연출도 탁월했다. 강해상 (일당)은 민첩성이 좋다. 이 인물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을 습격하는 방식의 캐릭터다. 앞에서 썼던 소리 연출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조용하다가 쉭쉭 나타나서 공격하는데 그냥 간단하게 인물 액션만 보여주고서는 이런 디테일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인물 설정을 십분 발휘했던 액션신도 기억에 남는다. 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요 재미 포인트는 무서운 빌런이 한몫할 텐데, 장첸과는 다른 연기 역시 보는 맛이 있었다. 주인공과 악역 액션 설정만 좋았냐? 아니다. 예고에서도 나왔던 장이수의 카체이싱, 다른 경찰 캐릭터들의 액션까지 전작 1편에서 너무 마석도에게 집중되는듯한 분량을 인물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방식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역시 이상용 감독이 인물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난다.
사실 손석구 배우 작품 처음 봅니다
요즘 <나의 해방 일지>인가? 손석구 배우의 인기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드라마는 사실 손이 잘 안 가는 나. 그의 활약상을 잘 보지 못했다. 목소리도 아예 처음 들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좀 놀랐다. 이 배우가 엄청나게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물론 지금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는 배우지만 이 사람은 <베테랑>의 유아인처럼 여기서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장첸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빌런이었다. 뭐 강해상 역시 감정을 참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뭔가 절제하고 여유 있는 살인마였다. 이때의 강해상이 입에 품고 있는 미소 + 왠지 모를 자신감 + 꼼꼼한 성격까지 다방면의 특성을 가진 인물을 소화해냈다. 전작에서 윤계상-김성규-진선규 세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임팩트가 커서 아마 이 셋의 악역을 지울 수 있을까 싶은 분도 있을 텐데, 아마 이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셋의 존재감을 캐릭터 설정과 좋은 연기로 잘 틀어막았다.
통통 튀는 조연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조연들이다. 물론 마동석의 마석도, 손석구의 강해상의 카리스마는 탁월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둘이 빛나기 위해 조연들이 배경을 깔아주다시피 했다. 인물들은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며 이야기에서 적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는데, 감독의 인물 설정을 알맞게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가 빛났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작 1편에서 장이수 캐릭터가 살짝 허무했다고 생각한다. 흑룡파 3인방이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개성을 줄였다고 하면 사실할 말은 없다. 물론 극에서 장첸에게 한방 먹이기에는 성공하지만 이것 말고는 좀 끌려다니는 느낌이 강했다. 가리봉동의 대표 조폭 아니었나? 장첸의 카리스마에 찍소리도 못하는 게 사실 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장이수가 2편에서는 단순히 유머 소재로만 쓰이지 않는다. 이 인물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쌓아놨던 성격과 서사가 극에서 경제적으로 잘 쓰인다. 이런 인물 설정은 다른 조연들에게도 적용된다. 전일만-오동균은 전편이나 지금이나 마석도의 응원단장 같은 느낌이다. 사실 당연할지도 모른다. 장첸이나 강해상이나 싸움 자체는 잘한다. 그래서 이 둘과 전면전을 붙으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각각의 특정 시점을 지나가면서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앞에서도 언급했듯 홍석-상훈 둘에게 액션신을 준 것도 이 둘이 그냥 나이가 비교적 어리고 무력이 약하다고 해서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둘은 다른 부분에서도 주체적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한 특정 인물에 대해 쓸 수는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입체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후반부는 거의 이 인물 덕에 극이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캐릭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가 좋을 것이다.
그냥 재밌는데 어떡해
사실 길게 이 영화의 장점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영화는 그냥 재미있다. 한 줄 요약. 잘 만든 영화다. 코로나19 여파로 우리나라 기대작들이 개봉이 많이 밀렸다. 이제 6월이 되고 나서야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하나, 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이 레이스의 좋은 스타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이랑 삼삼오오 놀러 가서 봄 극장 나들이 하기 딱 좋은, 그런 잘 만든 킬링타임 영화다. 부럽다! 안 본 사람이 있어서! 이 시리즈의 3,4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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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어 아이즈 텔> 감성 장인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오감을 일깨우는 눈부신 로맨스!
<유어 아이즈 텔> 감성 장인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오감을 일깨우는 눈부신 로맨스!
출처 : 더쿱/리틀빅픽쳐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사랑 <유어 아이즈 텔>로 일본 최고의 감성 장인 미키 타카히로 감독이 돌아와 다시금 극장가에 감성 로맨스 신드롬을 일으킬 것을 예고한다. 영화 <유어 아이즈 텔>은 마음을 닫아버린 남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가 그리는 아름답고 눈부신 로맨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감독이자 최고의 감성 장인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유수 영화제를 휩쓸며 실력을 입증한 그는 뮤직비디오, 광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2005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재팬에서 베스트 비디오 상을 받는 등 일본 최고의 비주얼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2010년, 동명의 일본 대표 청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소라닌>을 통해 성공적으로 장편 영화 데뷔 신고식을 치른 미키 타카히로 감독은 이후 요시타카 유리코와 첫 호흡을 맞췄던 <우리들이 있었다> 전편과 후편을 비롯해 <양지의 그녀>, <입술에 노래를>,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나다> 등을 선보이며 일본을 넘어 전 세계를 휘어잡는 최고의 감성 로맨스 장인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번 <유어 아이즈 텔>은 감각적인 영상미를 만들어내는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집약된 작품으로, 단연 필모그래피 최고의 작품으로 등극할 예정이다. 송일곤 감독, 소지섭, 한효주 주연의 <오직 그대만>이 입증한 탄탄한 멜로 드라마에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풍부한 예술성이 결합해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로 탄생한 <유어 아이즈 텔>은 원작의 명성을 뛰어넘는 올봄 최고의 감성 로맨스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은 “관객들이 시각적인 것 이상의 정보를 얻기를 원했다”라며 “영화는 보는 것이지만, 영화 속 내용을 만지거나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랬다”라고 사고로 시력을 잃어가는 ‘아카리’(요시타카 유리코)가 주인공인 만큼 영화로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또한, “이 영화는 단순히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궁극적으로는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라며 보다 성숙한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감독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미키 타카히로 감독은 3월 최고의 데이트 무비로 등극할 <유어 아이즈 텔>에 이어 ‘체리마호’ 신드롬의 주역 아카소 에이지가 출연한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를 통해서도 국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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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와 비극이 만나 빛나는 속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숱한 모험과 전투를 거듭한 끝에 아홉 개의 목숨 중 단 하나의 목숨만 남은 장화신은 고양이 '푸스(안토니오 반데라스)'. 우유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그는 현상금 사냥꾼 ‘빅 배드 울프(와그너 모라)’에게 기습당한 순간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강력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에 푸스는 마지막 남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전력으로 도망치고, 히어로가 아닌 반려묘로서 살 수 있는 피신처를 찾아낸다. 어느 날, 푸스는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별의 위치가 적힌 지도의 행방을 알게 되고, 다시금 여덟 개의 목숨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소원별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는 앙숙 '키티 말랑손(셀마 헤이액)'과 모든 게 행복한 강아지 '페로(하비 길렌)'와 예상치 못하게 동행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위협하는 또 다른 빌런을 마주하며 위험에 빠진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제각각의 특징을 지닌다. 일례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작품은 유서 깊은 라이벌인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과 상당히 다른 노선을 걷기로 유명하다. 성인 취향의 영화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즈니와 픽사가 고전 동화의 내용을 가급적 충실히 따르되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편이라면, 드림웍스는 <슈렉>처럼 동화를 완전히 비틀어버린다.
<슈렉> 시리즈의 스핀오프이자 2011년에 개봉한 <장화신은 고양이>의 속편인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에서도 드림웍스의 성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동화 속 주인공인 '장화신은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고양이 '푸스'의 모험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온갖 동화의 요소를 재조합하고 비틀며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꽤 진중하고도 비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다.
우선 <슈렉> 시리즈의 스핀오프답게 <장화신은 고양이 2>는 익숙한 동화의 흐름을 과감히 거부하고 파괴할 줄 아는 재해석의 묘미를 자랑한다. 당장 영화는 동화중에서도 가장 원형적인 소재 중 하나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소원을 들어주는 별이 지구에 추락했고, 그 소원별을 찾는 고양이의 모험담을 그려낸다. 사실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를 뒤틀어 버린 전편의 화려한 전적에 비하면, 소원별을 땅으로 추락시키는 각색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러나 드림웍스의 성향이 진정으로 빛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빌런의 서사다. 익숙한 동화 속 주인공을 초청하되, 그들의 사연을 조금씩 손보면서 각양각색의 매력을 끌어낸다. 곰 세 마리 가족이 대표적이다. 본래 원전인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서 '골디락스(플로렌스 퓨)'는 곰들 집에 있는 죽을 먹고, 새끼 곰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가 세 마리 곰이 자신을 발견하자 곧바로 도망친다.
하지만 영화는 결말을 바꿔 버린다. 골디락스를 발견한 곰 세 마리는 그녀를 입양해 가족으로 삼는다. 또 골디락스가 두뇌 역할을 하고 곰 세 마리가 행동 대장 역할을 맡은 도둑단이 만들어졌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에 더해 골디락스의 심경의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동화 속 인물을 입체화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인간인 골디락스는 진짜 가족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던 그녀는 별을 찾는 여정 중 곰 세 마리 가족을 진정한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이렇게 영화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준다.
또 다른 빌런인 꼬마 '잭 호너(존 멀레이니)'의 등장도 인상적이다. 동요의 원래 가사를 뒤틀어 아이들이 가질법한 잘못된 욕망을 꼬집는다. 동요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꼬마 잭 호너, 구석에 앉아 크리스마스 파이를 먹었지. 엄지손가락을 찔러 넣어 자두를 빼내고 말했지. 난 정말 착한 아이야!" 단순히 보면 그냥 한 아이의 성탄절 모습 같지만,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가 보인다. 구석에 있는 아이가 관심을 갈구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에 상상력을 더해 꼬마 잭 호너를 원하는 게 있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가져야 하는 악독한 제과 공장의 주인 '거대한 잭 호너'로 성장시킨다. 그래서 그는 여러 동화 속에 등장하는 숱한 마법 도구와 보물들을 수집하고, 세상 모든 마법을 독차지하겠다는 소원을 빌기 위해 땅에 떨어진 별을 찾아 나선다.
<피노키오>와 연결해 잭 호너의 사악함을 부각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피노키오> 속 말하는 귀뚜라미인 '지미니'의 등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피노키오의 양심을 대변하고 동시에 그의 멘토로 활동했던 지미니는 이번에도 잭 호너의 양심이 되어주고자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잭을 계도하려는 지미니의 기대와 달리 양심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잭은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사악함을 온전히 표출한다. 지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처럼 자기가 수집한 각종 마법 도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식이다. 이 대목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이면서도 본래 동요 가사의 어두운 이면을 극대화한 영리한 재해석으로 읽힌다. 특히 영화가 말하고 싶은 '소원'의 의미가 골디락스와 잭 호너를 대조할 때 명확해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푸스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빌런 ‘빅 배드 울프’의 존재가 눈에 띈다. 그의 존재감 덕분에 영화는 동화를 변형하고 비트는 데에서 그치는 대신, 한층 더 깊고 무거운 비극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홉 개나 있던 목숨이 어느새 하나만 남은 것을 깨달은 푸스. 우유 한 잔의 여유를 즐기려던 그는 살면서 처음 느끼는 살기를 접하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를 잡으러 온 현상금 사냥꾼 ‘빅 배드 울프’는 단순한 사냥꾼이 아니라 하나의 목숨만 남은 푸스가 처음 마주한 '죽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용하는 낫은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더해준다. 결국 죽음이 내뿜는 스산함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푸스는 모자와 칼도 내버린 채 도망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처럼 그 어떤 현상금 사냥꾼보다 무서운 '죽음' 그 자체의 추격에 시달리는 한 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하나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가치를 조명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장화신은 고양이 2>는 그리스 비극의 향기를 뿜는다. 그리스 비극 속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다. 인간은 단 하나뿐인 목숨이라는 유한성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유한한 시간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신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항상 시간이 부족한 인간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마지막처럼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간절한 소망과 기대, 패배와 몰락, 위대한 승리와 성취와 같은 가치로 가득하다. 영화 <트로이> 속 아킬레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에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그런 이유로 인간은 신보다 아름답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신들조차 부러워하는 인간만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이는 푸스에게도 해당되는 교훈이다. 마지막 순간 두려움에 빠졌던 푸스는 달라진다. 그는 남은 삶을 지키기 위해 마냥 도망치지 않는다. 이전에 자기가 누린 여덟 번의 다른 삶처럼 불멸이라고 여유를 부리며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별에게 목숨을 다시 아홉 개로 늘려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대신 ‘빅 배드 울프’와 당당히 맞서 싸운다. 죽음을 인정하되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과의 다음 만남을 약속하면서도 명예롭게 맞서 최선을 다해 싸운다. 언제나 ‘위풍냥냥’하면서도 허세가 잔뜩 섞여 있는 고유의 매력을 되찾는다. 또 앙숙이자 연인인 키티 말랑손과 언제나 해맑은 강아지 페로와의 사랑과 우정도 끝끝내 지켜낸다. 그렇기에 <장화신은 고양이 2>는 단순한 동화 패러디가 아니다. 고전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성인들을 위한 우화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특한 작화 덕분에 <장화신은 고양이 2>의 매력은 배가된다. 마치 손으로 그린 만화를 보는 듯한 작화가 동화적인 느낌을 주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스케일을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한 외곽선과 단순화된 색감과 그림자를 강조하고, 초당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카툰 렌더링 기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디즈니나 픽사가 꾸준히 선보인 실사 영화적인 비주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화적인 느낌을 강화한 덕분에 오프닝 시퀀스나 클라이맥스에서 푸스의 활약은 유달리 빛이 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그림체를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과 몰입도를 선사한다.
이처럼 스토리, 주제의식, 메시지, 볼거리가 모두 한 데 어우러진 결과 <장화신은 고양이 2>는 오랜만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알려주는 수작처럼 보인다. 또 영화의 마지막 장면 덕분에 재미와 만족감은 또 하나의 기대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푸스, 키티, 페로가 탄 배가 '머나먼 왕국'으로 향하는 장면은 <슈렉> 시리즈의 부활을 기다리게 만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의 독특한 매력과 높은 완성도를 고려하면, 그 기다림이 보답받을 것이라는 기대 또한 과하지 않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예상 못 한 겨울철 복병의 등장. 이런 고양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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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겠어? 사랑이잖나, 사랑.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명대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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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세계 최초 개봉 확정! 5월 17일, 시리즈 역대 최강의 캐스트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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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라이드 오어 다이>
[2021년 4월 15일 넷플릭스 공개]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무너뜨려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갈 곳 없는 두 여자의 도피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