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2-02-08 14:17:49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리셰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리뷰
이 심란한 마음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나는 홍콩, 대만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SNS에 해시태그를 단 리뷰를 써서 당첨되면 대만 고량주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당연히 해 봐야지 생각했다.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굳이 한 마디 남긴다면 '일본 영화에서 본 난감한 캐릭터, 중국 영화에서 본 조잡한 CG, 한국 영화에서 본 불필요한 연출'이 마구 섞인, 동아시아 대통합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영화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서사
영화의 시작은 나이 든 동네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던 '샤오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오고,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 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예상할 수 있듯이 번개에 맞아 죽는다. 그러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샤오룬을 데리고 저승으로 간다. <신과 함께>를 봤다면 대만 저승은 좀 만만하게 느껴질지도.
저승에 가면 몇십 년 된 컴퓨터로 갓 죽은 인간의 삶을 평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봤다면 저승도 기술발전 속도가 현저히 차이나는구나 싶을 거다. 생의 정보를 이마에 바코드를 대서 알아보는 시스템은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 같다. 저승에 가면 누구나 염주를 하나씩 받게 되는데, 착하게 살았으면 흰색 염주알, 나쁘게 살았으면 검은 염주알이다. 검은 염주알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어 저승에서 일을 돕는다. 염주알이 흰색으로 바뀌어야 인간 환생 확정. 자, 또 떠오른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배지를 모으는 <소울>의 아기 영혼들이. 왜 이렇게 비슷한 영화들을 끌어오냐 하면, 무엇하나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상상의 산물일진대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판타지도, 로맨스도 놀라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역시 예상할 수 있듯, 샤오룬은 죄가 많아 사람으로 환생할 수 없다. 그리고 옆방에는 죽음을 수용하지 못해서 억울해 미칠 지경인 여자 '핑키'가 있다. 이들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초면이면서 갑자기 서로를 비난한다. 둘이 욕하며 싸울 때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 둘이 뭘 하겠구나.
그렇다. 그들은 죄를 갚기 위해 월노(月老), 우리나라에서는 월하노인이라 부르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붉은 실로 맺어주는 인연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아주 임무가 막중한 역할이다. 핑키는 월노가 되기 전 악귀가 되지 않겠냐는 검은 유혹을 받는데, 잠시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샤오룬에 의해 저지당한다. 판타지임에도 저승이라는 배경이 광활하지도 아득하지도 않다.
캐릭터의 존재 이유
귀신도 되었겠다, 핑키는 자기를 죽인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죄책감도 없이 핑키가 죽음으로써(어떻게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챙긴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산다. 샤오룬은 복수를 해주겠다며 그 남자와 밖에 서 있던 오토바이를 묶고, 갑자기 남자는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져 오토바이에 유사성행위를 한다. 이 영화, 12세 이상 관람가로 해도 될까.
핑키는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죽었으면서,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았으면서 고작 그 정도로 원한이 다 풀린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로 샤오룬에게 반한다.
번개 맞아 이마에 상처가 생긴 샤오룬은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다. 파트너가 핑키와 샤오룬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샤오룬이 원래 살았던 동네로 가게 된다. 왜 살았던 동네와 출신 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다 키우던 개가 샤오룬에게 달려가면서, 별안간 기억이 떠오른다. 세상에...
개를 찾으러 온 여자 '샤오미'를 보며 오열을 하는 샤오룬. 드디어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쉽게 찾아질 기억이란 말인가. 허무하다.
그때부터 샤오룬은 샤오미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저승의 임무를 맡은 귀신들이 너무 태만하다. 샤오룬에게 빠진 핑키는 샤오미와 다른 남자를 엮어주려고 하지만, 샤오미에게는 인연의 실이 묶이지 않는다. 왜겠나. 관객들은 다 알고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대체 핑키와 샤오미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핑키는 한 남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여성, 귀신이 된 후 샤오룬을 좋아하는 여성 이외에 아무런 서사가 없다.
샤오미 역시 '샤오룬이 좋아하는 여성' 외에는 특징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첫눈에 반한 여자, 샤오미가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말할 때,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라고 말하게 하는 여자, 싫다고 싫다고 아무리 거절해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고백하게 만드는 여자,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갑자기 기억을 되돌려주는 여자, 귀신이 되어서도 지켜야 할 여자. 오직 샤오룬을 위해 존재하는 두 여자. 이들은 성격이라 할 것도, 배경이라 할 것도, 서사라 할 것도 없다.
두 여자주인공이 이런 마당에 남자주인공이라고 특별한 서사가 있겠나. 남자주인공 역시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죽고 나서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동네 까불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따금 일본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당황스러운 캐릭터들을 모아둔 것만 같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의 당황스러움 같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인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이 정도이다.
불필요한 연출
그러다 또 갑자기, 저승에서 원한을 풀지 못한 악귀가 이승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과거 인연들을 죽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박중헌쯤 된다. '파국이다'를 읊조려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저승에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한다.
이 악귀가 원한을 품은 것은 500년 전의 일 때문이다. 수많은 살생을 해 오던 도적떼 출신으로, 환생은 커녕 지옥에나 안 떨어지면 다행인 남자. 그런데 여기에서도 서사의 부재가 여실없이 드러난다. 이 도적떼는 왜 도적질을 하는가. 돈 때문인가? 아니다. 이들은 쫄쫄 굶는다. 의로움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무고한 이들을 가차없이 죽인다. 나라에 대한 역모인가? 그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악한 자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
원한을 품고 염라 밑에서 일하게 되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줄줄이 환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하기로 한다.
첫 번째 타자는 어린 아이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500년 전의 일을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며 양치하고 있는 아이를 공격하고, 이 아이는 또 수산물 파는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는 또 다른 남자를 공격하고, 남자는 샤오미를 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샤오미가 공격당하자 그때서야 샤오룬과 기타 저승 인물들이 나서는데, 그 이유도 역시 알 수 없다.
문제는, 왜 보는 사람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을 연출했는지이다. 목을 꺾고, 칼로 찌르고, 아기가 조개를 생으로 씹어 먹어서 피를 토해야 하는지 전혀 개연성이 없다. 악귀에게 씌인 이들은 죄다 좀비화된다. 좀비 영화, 좀비 드라마가 유행인 건 알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해야 했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도 있지만 복수심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이 징그러운 복수극은 로맨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악'은 스릴감도 주지 않고, 공포심을 주는 것도 아닌, 징그러움뿐이다.
논외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 어쩌고 하는 인터뷰들을 몇 편 읽어 보았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우리가 왜 영화로 봐야 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간접경험을 통한 외연의 확장에 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당장 포털사이트를 켜서 아무 기사나 눌러 보면 경험 가능하다. 굳이 간접경험하지 않아도 직접경험이 가능한 영역이지만 우리는 법과 제도와 문명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심하며 살아간다. 욕망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면 욕먹을까 봐 속으로만 생각했던 추악함(약자를 타자화, 대상화하는 등)에 픽션이라는 핑계가 하나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인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서양영화에서 'God bless you'를 말하는 상황에 이 영화는 '아미타불'을 말한다. 대체로 불교적 관점의 영화이다. 윤회와 환생, 극락과 지옥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스와 복수극은 테마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독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보여주었던 애틋하고 풋풋한 로맨스가 한 스푼 정도 들어가 있다.
왜 샤오룬이 샤오미를 그토록 쫓아다녔는지, 악귀가 왜 여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초반에 뿌려놓은 떡밥들이 뒤에서 조금씩 회수가 되는데(물론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생명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악귀는 매미였던 시절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샤오룬의 격한 감사 인사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진다. 윤회고 극락이고 필요없다더니,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랬던 건가 싶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하나 마음에 담아둘 것이 있다면 인연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함부로 죽인 개미도, 나쁘게 대한 사람도, 나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도 나 나의 인연이니 소중히 대하자. 그들은 어쩌면 전생에 내가 빚진 사람,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인연이다.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자. 언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
나는 맛이 없었던 식당을 리뷰하지 않는다. 입맛이 달라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니까. 영화도 마찬가지로, 재미없었던 영화에 악평을 하지는 않는다. 십수년간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열광적인 팬이었지만 <매트릭스4>에 대해서 함구한다.
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하여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의무가 생겼으니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도 안내할 필요가 있겠다.
관람 포인트1.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대만영화 특유의 풋풋한 로맨스 감상 가능.
관람 포인트2.
인연, 사후세계 등의 요소들과 기괴한 장면들을 좋아한다면 재미있을 듯.
관람 포인트3.
떡밥이 하나하나 회수되는 걸 보는 즐거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더욱 강력한 귀여움으로 무장한 이 영화
어젯밤의 나로 시간을 돌린다. 김승옥의 <생명연습>을 읽다 책장을 닫았다. 10시에 약속이 있었다. 정확히 2시에 잤다. 새롭게 글을 쓰려고 했는데 뭔가가 생각나지 않아 노트북의 키보드를 치는 게 어려웠다. 화면을 켜놓고 정신 말짱한 채로 두 시간쯤 누워있었다. 웃긴 유투버의 영상을 보며 또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근데 생산적인 뭔가를 또 한다기엔 한국사 공부가 머리 안으로 안 들어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무튼 늦게 잤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일(그러니까 오늘) 약속이 있으니 일찍 일어나야 했다. 6시간 넘게 좀 자서 8시 30분에 일어났다.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 머리를 감아서 버스에 탔다. 식사는 어제 사놓은 빵으로 대체했다.
10시 약속인데 10시 10분가량에 도착했다. 일행 둘에게 미안하단 말을 해야 한다. 2주 전에는 글을 안 쓰고 왔는데 이번엔 지각까지 했다. 발바닥이 다쳐서 후다닥 뛰지를 못해 답답했다. 이 덕에 최대한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그렇게 느린 듯 빠른 속도로 스타벅스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단톡방을 확인했다. 아무 말도 없다. 어? 일단 자리에 앉아서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다. 10시 20분이 됐다. 이상했다. 왜 아무말도 없고 아무도 없지?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거 오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로. 친구들에게 답장이 왔다. '바보야 다음 주 12일이잖아'라고 한다. 하. 나의 정신머리에 통탄을 금치 못했다. 오랜만에 없는 이런 정신 빠짐은 늘 느껴도 새롭다. 그렇게 뭐하지 싶다가, 어제 밤에 읽던 김승옥의 소설집을 꺼내 <건>을 읽던 도중에 갑자기 생각났다. 김형은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시오? 나의 일상도 그런 꿈틀거림의 연속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상도 어떤 관점에선 꿈틀거린 것 중 하나겠지. 집에서 잉여롭게 과자나 먹으면서 시간 보내는 게 싫어서 이 아침에 밖에 나온 것 아닌가? 그렇게 머릿속을 둥둥 떠나는 생각을 흘려보내니 습관이 된 글쓰기에 이 영화를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심심하고 외로운 나의 단면이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극히 나스러운 시트콤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감독 웨스 앤더슨이 더욱 업그레이드된 덕후력(?)으로 작년에 신작을 발표했다. 자기만의 시각을 오롯이 다룬 채로 말이다. 제주는 상영관이 없어 디즈니 플러스로밖에 볼 수 없어 씁쓸했다. 그래도 ott에 풀리는 기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비행기로 13시간 걸리는 프랑스로 날아가자. 이번엔 가상의 도시 앙뉘다.
1. 어떤 것에 관한 영화인가요?
영화는 한 기자의 부고로 시작한다. 그 기자는 미국인 기자 아서였다. 미국에 살던 기사 아서는 프랑스의 도시 앙뉘에서 50년 전에 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잡지사의 이름은 '프렌치 디스패치'다. 좋은 필진들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아서. 50년 동안 열심히 잡지를 운영해왔지만 당연한 끝을 마주하게 된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서. 아서는 유언으로 신문사를 폐업하라는 말을 남겨놓는다. 이에 대한 결과로 마지막 최종본 인쇄본 발간만을 남겨놓고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 이를 위해 에디터들이 모여 자기가 잡은 소재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어떻게 세상에 대해 조사해온 바를 어떻게 창작자들이 자기만의 코드로 소화해냈는지에 대한 영화라는 뜻이다. 더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영화의 명대사 같은 영화다. 당연히 명대사가 시네마의 속성 전부인 건 아니다. 뭐 연출력도 있고 개연성도 있고 이런저런 부분에서 좋은 작품을 각자가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할 것이다. 근데 대사를 잘 못쓰면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들을 예술가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잘 못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대사와 같이 인물과 감독이 어떻게 세상을 극화시키는지를 소재로 삼는다.
다른 지점은 감독의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기사를 쓴다는 것은 전적으로 과거의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하지 않나. 이 잡지사에서 어떤 것에 대해 기사를 쓰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기자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내용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근데 그 기사를 쓰는 소재는 전적으로 저널리스트들에 따라 달려있다. 이 뿐인가?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창작자에 따라 달라진다. 기삿거리로 삼을 수 있는 몇몇 에피소드는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 가령 첫 번째 일화에서 화가는 자살하기 싫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만약 기사를 '이 화가는 매일 어두운 생각만 하는 범죄자'라는 기사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딱히 틀린 말은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근데 이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처럼 말을 전달한다면 약간 다른 뉘앙스로 접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창작자, 예술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대로의 세상을 보여준다. 때에 따라서는 그게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도 있다. 감독은 이 부분을 노렸다. 세 에피소드의 변용에 자기의 최대 장점을 활용하며 아름답게 이야기를 극화시킨 것이다. 그러면 알게 된다. 웨스 앤더슨이 지나간 것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정말 지나간 시간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게 멋진 걸까?라는 의문을 던진다는 걸.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예시로 영화의 연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아니라서 말할 수 있지만- 영화는 컬러와 흑백 연출을 통해 말하는 이와 극의 주인공들을 별개로 구분해놨다. 이때 컬러로 처리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웨스 앤더슨이 어느 쪽에 중점을 더 두고 있는지, 또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다음 두 번째는 창작자의 결과물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가?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사 아닌가? 이 잡지사의 직원들이 취재한 걸 기사 쓰는 것 역시 창작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서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한다. 또 나머지 두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화가/요리사다. 이 둘도 창작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화가는 재료로 그림을 만들고 누구는 음식으로 행복을 준다. 기자와 같이 이 세 직업군은 어떤 것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근데 이게 나는 ~~ 다라고 말하면 독자들이, 소비자들이 그렇게 곧이곧대로 해석하나? 당연히 아니지. '그 어떻게 세상과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가?' 역시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미장센. 끝. 이 글을 읽는 몇몇 독자분들 중에 그라운드 시소라는 곳에서 열렸던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란 전시관에 가본 적이 있는 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제주에 살아서 이 전시관에 가지 못했다. 검색해보니 <그란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문라이즈 킹덤>에서 나올법한 영감을 전시관에 전시했다고 나와있다. 이렇게 관련한 전시관도 열릴 정도로 웨스 앤더슨은 현대미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에게 따라오는 이런 칭찬을 동의하는 바다.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연출했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이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름다운 색감과 귀여운 유머가 재밌다. 어떤 느낌이냐면. 극에서 등장하는 도시 앙뉘는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 일주일에 사체가 8.25구나 발견되고 지하철은 쥐가 많으며 아이들에게 노인공경 같은 건 없다고 초입부에 나온다. 딱히 영화로 삼을만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일단 나라면 거기서 안 산다. 근데 영화의 미장센과 장면 하나하나마다 있는 소소한 유머로 마을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 쓴 비율에 색감 덕에 영화를 보는 게 지루하지 않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막 엄청난 비유를 쓴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 근데 어렵긴 하다. 후술할 6번에서 알 수 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티모시 샬라메. 프랜시스 맥도먼드. 레아 세이두, 에드리언 브로디, 빌 머레이 등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호화 출연진이 총 줄 동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극의 연기 퀄리티가 확 올라가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좋은 배우라는 것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특유의 웨스 앤더슨의 귀여운 세계관을 배우들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녹여낸다. 분명 <듄>과 <노매드랜드>, <007 : 노타임 투 다이>에서 본 사람들인데 그냥 어딘가에서 데리고 온 다큐멘터리 같다. 난 영화언어에 놀랐다.
6.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네. 있다. 이거 이 부분 모르고 가면 보는데 지장 있을 수도 있다. 대사량이 엄청 많다. 그래서 난 극장보다 디즈니+로 보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7. 어떤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나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 있지 않나? 소소하게 귀여운거 좋아하는 사람. 지치는 경쟁에서 벗어나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받고 싶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좋을 것이다. 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위시한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무. 조. 건. 필견이다. 나는 이 작품이 이 감독의 최고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8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
2주 전부터 엄청난 예매율을 자랑했던 <오펜하이머>! 하지만 어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오펜하이머>를 제치고 예매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북미에서는 <바비>는 승승 장구중인데요. 이외의 영화 핫한 소식들 같이 만나러 가보실까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오펜하이머> 밀어내고예매율 1위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예매 관객수 17만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다음 주 공개되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에 예매 순위에서 밀려나
2위에 머무르다가 전날 예매 순위 최상단을 차지했습니다. 현재 추세라면 개봉일에 무난히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를 거로 예상됩니다. 영화는 오는 9일 개봉예정입니다
<바비> 누적 매출 10억 달러 여성 감독 최초 기록
<바비>는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면서 전세계 누적 매출액 약 10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공개된 영화 중 누적 수익 10억 달러를 넘긴 작품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바비> 2편입니다. 또 <바비>는 역대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최초로 매출액 10억 달러는 넘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밀수> 300만 돌파, 400만 향해 순항
<밀수>가 3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13일째 366만명을 기록했습니다. 2주째 정상을 유지하고 있어 이번주중 손익분기점 400만을 가뿐히 넘길것으로 전망합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열리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해양범죄활극입니다.
<달짝지근해: 7015> 유쾌한 웃음과 사랑을 전하는 영화
김희선은 “우리나라에서 유해진씨 안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로맨스 상대역이 저라고 했을 때 고민도 안 했다”고 밝혔습니다. 유해진은 “시나리오가 되게 재밌었고 어떻게 보면 성인 버전의 소나기 같은 느낌도 있어서 훈훈함도 줄 수 있겠구나”해서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비공식 작전>, <더 문> 사실상 참패
<밀수>가 개봉 2주차 주말에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으며 누적 관객수 360만명을 넘기면서
순항한 반면 <비공식 작전>과 <더 문>은 개봉 첫 주 주말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했습니다.
<비공식 작전>은 44만명 <더 문>은 18만명이 보는데 그펴 4위에 머물렀습니다.
누적 관객수는 각각 70만명, 36만명 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태풍 영향으로 개막식 장소 변경
충북 제천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카눈의 한반도 상륙 예보에 따라 오는 10일 제천 청풍랜드 특설무대에서 제천시 화산동 제천체육관으로 변경했다고 7일 밝혔습니다. 제천지역은 강풍반경에 들면서 9~10일 제천을 비롯한 충북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릴것으로 예상합니다.
-
- 흔적만 남긴, <파이어버드>
파이어버드 Firebird, 2021 제작
에스토니아, 영국 / 15세 이상 관람가 / 107분
감독: 페테르 레바네
흔적만 남긴, <파이어버드>
"검은 가시와 장미, 미소와 눈물은 함께 태어나 같이 존재한다."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인생이 인간에게 쥐여준 필연적인 균형에 대해 낮게 읊조리는 한 남자.
주인공 '세르게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파이어버드>는 배우 세르게이 페티소프의 회고록(로만 이야기)을 담은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얼마나 섬세하게 뚜렷한 목적을 영화 안에 녹여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다. '왜' 실제 인물의 삶을 영화로 만드는지 묻기보다, '어떻게' 그의 삶을 조명하고 그려낼 것인지가 더 중요한 이유다. 감독이 여러 실화 혹은 사건 중 콕 집어 그의 기록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썼다면, 영화의 정체성과 세르게이의 신념을 대변하는 독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르게이는 1970년대 냉전 시대 안에서 수많은 금기에 묶인 채 자기 삶의 목적을 찾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달랐다. 그들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했고,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됐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오는 것임을 터득한 뒤로는 친구들이 오늘 뭐 하고 놀까 생각할 때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찍었다. 단순한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힘에 관해 탐구했다. 이미 상실과 고통을 경험한 그에겐 반드시 해답이 필요했다. 물속에서 절친 디마를 영영 놓친 어린 세르게이는 성인이 된 후로도 여전히 그때의 사건을 악몽으로 꾸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그 당시 '다른'이 아닌 '틀린' 형태의 사랑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사랑. 단순하고도 너무 얇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너무 깊고 단단해서 영원할 수밖에 없는 사랑. 대체 왜 그에겐 그런 사랑이 필요했을까. 세르게이는 검은 가시와 장미. 미소와 눈물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함께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를 맞다고 입 밖으로 내뱉으며 스스로 사각 틀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입을 닫고 말이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투쟁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조용히, 또 자연스럽게 자기의 풀리지 않는 길에 대해 치열하게 부딪칠 수 있는, 나만의 방법.
그의 열망을 카메라의 초점이 대신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연기자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꿈을 접고 의무 복무를 하기 시작한 날부터? 아니 삶이 처음 흔들렸던 사건? 아, 디마를 잃고 난 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그의 침묵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진으로 대체되었고, 지금도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협적인 현실을 투정하기보다 자신의 아픔과 본인이 바라는 것을 같은 선상에 두고 끊임없이 '살아가는 방법'에 집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안전한 믿음이 필요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확신이 필요했고, 확신을 넘어선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길 원했다. 세르게이에게 사랑은 그런 의미였다. 문을 열고 집을 나간 순간부터 사람들이 원하는 자로 연기하며 살아도 좋으니 진짜 나란 자아를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 답은 로만이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자기 사진에 담긴 격렬한 투쟁을 로만이 알아준 순간 세르게이는 카메라에서 멀어진다. 그 순간을 평생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유로워진다. 로만이 준 비행기 모형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그때부터 꿈도 다시 꾼다. 의무 복무를 마치고 연기를 하겠다는 꿈, 그것은 분명 로만이 불어넣어 준 사랑의 결과물이 될 예정이었다. 세르게이는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 용기를 갖게 되면서 직접 사진 밖으로 나갈 아주 좋은 명분도 함께 얻었다. 그만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참이었다.
늘 친구들에게 현실 세계로 돌아오란 장난 섞인 진담을 들어야 했던 세르게이. 그럴 때마다 그는 "나중에-"라고 말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조금만 스쳐도 살이 베어나갈 것 같은 냉전 시대 속에서 로만과 세르게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더 단단하게 서로를 붙잡는다.
스스로 몇 번이고 되뇌며 명심하고 또 명심했던 독백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잊어버린 건 세르게이만이 아니다. 로만이 숨겼던 가시를 드러낸 순간 <파이어버드>는 흔들린다. 군부대에서 혼자 카메라를 들고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담던 세르게이는 애초에 없던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자를 바라보는 강렬한 남자의 눈과 그의 뜨거운 신호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여자의 입가만을 틀 안에 담으며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또 기다렸던 세르게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남자의 눈과 여자의 입은 아무리 강한 압력에도 절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세르게이만의 사랑 언어로서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던 '나의 것'이었다. 동시에 <파이어버드>만의 독특한 색깔이었다.
로만과 세르게이에게 잇달아 주어지는 문제와 반복되는 우정과 사랑의 격돌은 구조 속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다시 카메라 렌즈 안에 갇히고 만다. 직접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또 아는 퀴어 영화의 상승과 하강 꼭짓점들을 그대로 밟으며 전개된다. 영화 속 인물은 가장 먼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의 매력을 결정짓는 것 역시 인물이다. 세르게이 역시 그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쉽게 예측되는 그들의 다음 행위로 인해 <파이어버드>가 초반에 쌓았던 견고한 정체성은 무너진다. 특별하지도, 특색이 있지도 않은 무난하고 평범한 전개 방식을 그대로 표방해 초반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던 인물들은 이미지 몇 장으로 기록된다. 세르게이가 담담히 건넨 인생의 균형도 물거품으로 흩어지고 만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시점에서 벗어나, 영화 <파이어버드>가 남긴 건 무엇일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란 표면적인 주제를 제외하면 세르게이와 로만이 서로를 향해 혹은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들만이 남는다. 관객이 인물에게 깊이 공감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연민의 지점(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끝내 실패해 흔적만 남은 대사들.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과 결정이 작품을 다 채우지 못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해할 순 없어도 사랑할 순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믿지만, 그들을 완전히 사랑할 수 없었기에 <파이어버드>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 또한 어려웠다.
-
- [SIWFF 데일리] 흡연하는 페미니스트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영화
8★/10★(신수원 감독 작품, 2021년, 108분, 한국.)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역사를 기록하는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의 계보를 기록한다면 어떤 영화가 포함될까?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시네마 천국〉부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나 소외되어온 흑인의 기여를 영화사에 기입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최근의 〈놉〉까지 다양한 영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 〈오마주〉가 있다. 〈오마주〉는 종종 ‘홍일점’ 대접을 받았으나 대체로 빛 좋은 개살구로 취급되었던 여성 영화인에게 바치는 헌사다. 여전히 영화계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시대 여성 영화인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 영화감독 지완이다. 지완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나 흥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집에서는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진다’는 핀잔을 받거나 돈 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지완이 여기서 별다른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족의 말이 지완에게 모욕이 아닌 일상이란 의미다.
그러던 지완에게 영상자료원에서 일 하나가 들어온다. 1960년대에 활동한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재원 감독의 〈여판사〉* 상영회를 준비 중인데 필름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복원해달라는 의뢰였다. 〈여판사〉는 판사로 일했던 여성이 남편에게 독살당했다는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어 제작된 영화였다. 홍재원 감독은 결말을 바꾸어 주인공이 좋은 판사인 동시에 효부로도 인정받았다는 영화를 만들었다. ‘슈퍼우먼’을 강요하는 상상 속 세계에서나마 ‘단죄’ 당한 여성을 복권시켜준 것이다. 현실의 홍재원 감독은 혹시나 모를 불이익에 절친한 동료에게조차 자신에게 딸이 있음을 밝히지 않았을 정도로 고독하게 영화 작업을 이어갔지만 말이다.
지완은 어렵게 〈여판사〉의 대본을 구하고 성우와 후시녹음을 하며 영화의 사운드 공백을 채워나가는 등 복원 작업에 매진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영화가 뚝뚝 끊긴다. 중간에 잘린 부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검열 때문이다. 검열당한 장면이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페미니스트 관객이라면, 홍재원 감독의 옛 여성 동료인 필름 기사가 복원해낸 이 장면에서 기품 있는 뒷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화면 속 주인공과 함께 흡연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담배는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된다.
〈여판사〉의 잊힌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지완은 홍재원 감독에게서 자신을 본다. 홍재원 감독 역시 여성이 소수자인 영화판에서 힘겹게 버티며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힘들었지만 적게나마 자신의 곁을 지키는 동료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아내, 엄마이자 좋은 감독이어야 했다. 지완과 놀랍도록 닮은 데가 많다.
지완은 두렵다. 홍재원 감독을 향한 연대의 마음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공포가 샘솟는다. 홍재원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했다. 그 시절 그녀와 함께 영화를 작업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와 2020년대가 겹치기 시작한다. 지완은 세 번째 영화가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고, 오랜 세월을 함께 작업한 동료 여성 PD는 눈물 흘리며 그 영화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지완은 남편‧아들과 다정하게 투닥거리지만 그들이 지완의 꿈을 응원해주지는 않는다. 자궁에 큰 혹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을 받기도 한다.
영화계 여성 선배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공포의 혼재 속에서 지완은 깨닫는다. 멈추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지완을 다잡는 건 지완 자신뿐만이 아니다. 〈여판사〉를 복원하며 가슴으로 깊게 공명한 홍재원 감독, 그리고 이제는 노쇠해진 그녀의 여성 동료도 지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자네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완에게 여러 여성의 삶과 꿈이 포개진다. 이제 지완은 혼자가 아니다. 끝내 히트작은 만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완은 영화를 계속함으로써 무언가가 변화했음을,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여성 선배들에게 빚진 것임을 기억하며 영화를 만들 것이다. 존경과 헌사로서의 ‘오마주’. 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그녀가 언젠가 후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받을 것이기도 하다.
여성 영화의 계보와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이 〈오마주〉의 전부는 아니다. 〈오마주〉에는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어놓는 것의 중요성도 담겼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하찮은’ 결과물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판사〉가 그러했듯 성실하고 뜻있는 후배에게 발견되는 일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다르게 살아냈음을 나 자신에게, 언젠가 만나게 될 이름 모를 후배에게 증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벅차오를 정도로 감동적인 이 영화는 잊힌 창작자들에게,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창작자들에게 진한 위로와 연대의 계기로 다가갈 것이다.
*〈오마주〉가 참고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는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
- 에이리언: 로물루스 | 클래식의 트렌디한 변주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142년, 웨이랜드 유타니 사가 경영하는 식민지 행성 '잭슨의 별'에서 살아가는 '레인'(케일리 스패니). 그녀는 남동생이나 다름없는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와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한다. 마침내 주어진 작업 시간을 모두 채워서 꿈이 이뤄지려는 순간, 레인은 작업 시간이 다시 늘어났고 그녀는 평생 식민지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 '타일러'(아치 르노)가 접근한다.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있는 연료와 우주선을 활용하면 새로운 행성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레인은 목숨을 건 식민지 탈출 계획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어긋난다. 의도치 않게 로물루스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을 깨워버린 것. 에이리언이 습격하는 가운데 레인과 앤디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사투에 나선다.
오마주와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한 재화의 소비를 한 단위 변화시킬 때 체감하는 효용의 변화분을 한계 효용이라고 할 때, 그 효용의 증가분이 점점 줄어든다는 법칙이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장수 시리즈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한 시리즈가 장수할 수 있는 힘은 첫 편의 임팩트에서 비롯한다. 액션, 볼거리, 스토리, 캐릭터 중 하나라도 관객의 눈을 붙잡으면, 그 매력이 곧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이 된다.
그런데 시리즈가 반복될수록 이 매력은 장애물이 된다. 한 번 자극에 익숙해진 관객은 더 이상 효용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변화를 주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오마주와 변화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과하게 변주하면 기존 정체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프랜차이즈를 떠날 테니까. 물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이름값만 남은 채 도태된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어깨도 같은 이유로 무거웠다. 본편 4개와 프리퀄 2개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관객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던 시리즈도 되살려야 했다. <로물루스>는 영리하게 과제를 해냈다.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클래식한 매력을 선보이면서도 시대에 맞게 달라진 공포를 선보인다. 그 덕분에 <로물루스>는 다른 시리즈의 수많은 속편과는 달리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준수한 공포 영화
<로물루스>는 독립적인 공포 영화로서 준수하다. 중반부까지는 <에이리언> 1편을, 후반부는 2편을 오마주 하되 전편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초반에는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에이리언과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페이스 허거가 사람의 체온과 소리에 반응한다는 점을 역이용해 복도를 지나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장소만 우주선 내부로 바뀌었을 뿐, 마치 좀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억지스러운 전개가 없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몇몇 공포 영화는 상황을 손쉽게 설정하려고 주인공들을 바보처럼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로물루스>는 다르다. 여섯 캐릭터를 둘씩 짝지어서 남매 또는 커플이라는 관계성을 부여한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인간 주인공의 선택에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생긴다.
각각의 쌍을 다른 공간에 던져두면서 다양한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 쌍은 화물선에, 다른 한 쌍은 로물루스 기지에, 또 다른 한 쌍은 두 공간에 찢어서 배치하는 식이다. 그 결과 죽거나 도망치기만 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벗어날 수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여동생 '케이'(이사벨라 메르세드)가 죽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 타일러, 그를 도우려는 레인과 그녀를 막는 앤디, 앤디를 원망하는 레인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후반부에는 나름 화끈한 총기 액션을 선보인다. 우주선 내부 중력 생성기와 제모노프의 산성 피라는 변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쌓아 놓은 서스펜스를 일거에 해소하는 쾌감을 안겨준다. 각각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구성은 마치 게임처럼 보이기에 신선하다. 반면에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는 외계 괴물의 끈질긴 생명력은 <에이리언> 시리즈다워서 반갑다.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하지만 <로물루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오마주가 아니다.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1편이든, 2편이든 <에이리언> 시리즈는 같은 공포를 다뤘다. '미지의 존재로부터의 습격'이 원천이었다. 에이리언은 인류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우주에 대한 공포감을 시각화한 캐릭터였다. 아무리 죽이고, 우주 공간으로 떨궈도 기어코 살아 돌아오는 이 괴물은 이해할 수 없어서 더욱 무서웠다.
특히 그들은 '인간다움'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존재였다. 에이리언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인간다움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들은 인간 숙주의 입을 통해 잉태되고,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난다. 태어날 때는 모체를 찢고 나온다. 이 과정은 인간답지 않아서 불편하고, 잔혹하게 느껴진다.
<로물루스>는 그와는 결이 다른 공포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범죄자나 인공지능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반영했다. 그래서인지 <로물루스>는 인간을 닮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인조인간이 있다. 그들은 인간을 똑 닮았다. 인간과 똑같이 말한다. 심지어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레인을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 양식은 인간답지 않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희생한다. 과학장교 '룩'(이안 홈)은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거리낌이 없다. '검은 액체'를 이용해 개량 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지속하려고 정작 사람을 가차 없이 희생한다. 앤디도 잠시 포맷된 동안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을 빼닮았지만 전혀 인간답지 않은 행동은 에이리언과는 다른 두려움을 자아낸다.
인간다움을 잊은 세상
달라진 속성의 공포는 <로물루스>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잭슨의 별'에서의 삶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해가 뜨지 않는 곳을 벗어날 수 없다. 레인이 계약한 노동 시간을 다 채워서 이주 신청을 하자마자 노동 시간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듯이. 즉, 인간이 더 풍요롭고 넓은 공간에서 살겠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개척은 오히려 인간들을 사지로 몰고 간다.
로물루스 기지 안에서도 비슷한 결의 사건이 반복된다. 인간을 더 완전하게 개량하겠다는 목적의 실험은 오히려 로물루스에 타고 있던 모든 인간을 해친다. 즉, 인간을 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욕망은 인간 같지만 인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조인간의 행위와 같은 궤에 있는 셈이다.
이는 익숙한 형태의 에이리언 대신 '오프스프링'이 마지막 장애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프스프링은 제모노프의 몸과 인간의 얼굴을 지녔다. 인간을 닮았고, 인간처럼 표정도 짓지만 결코 인간은 아닌 '불쾌한 골짜기'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선사한다. 이는 인간을 위하는 존재나 행위가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세태와 그 세태가 유발하는 두려움을 시각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시리즈의 새 출발
<로물루스>의 스토리텔링은 <에이리언> 시리즈에 일관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에 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피에르 죄네가 각자 개성을 녹여낸 시리즈였다. 반대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로 이어지는 프리퀄은 리들리 스콧만의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본편과 프리퀄은 분위기가 상이하고, 설정도 미묘하게 달랐다. 특히 프리퀄은 기원이 분명하지 않았던 에이리언의 신비함을 벗겨내 시리즈 개성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로물루스>는 바로 이 괴리감을 채워준다. 기존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장르 영화로서의 쾌감은 본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에 인조인간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자극하는 프리퀄과 궤를 같이 한다.
미술 디자인의 영역도 가교 중 하나다. 로물루스 기지를 비롯해 우주선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1편과 같이 투박한 기계미가 돋보인다. 반면에 검은 액체가 있는 실험실만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한 유려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있다. 프리퀄과 본편의 장점만을 더해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를 공간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영화의 부제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인 것도 시리즈의 새 출발을 알리는 듯 보인다.
방점은 찍지 못했다
다만 <로물루스>는 시리즈를 회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뛰어난 연출과 편집, 스토리텔링으로 서스펜스를 끌어올려도 기존 시리즈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에이리언을 완전히 격퇴한 줄 알았지만 인간 몸에서 새로운 괴물이 튀어나온다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이 죽지 않고 등장하는 식이다. 다음 사건을 예상할 수 있다 보니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캐릭터 구축도 아쉽다. 사실 남매애를 내세운 선택은 꽤 흥미롭다. 보통 상업영화에서는 이성애, 동성애, 우정, 형제애나 자매애를 감정적인 동력으로 자주 활용하기 때문. 그런데 정작 앤디와 레인을 제외하면 남매애를 보여주는 형태는 일차원적이다. 또 앤디와 레인의 남매애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레인이 특유의 개성을 보여주는 대신 '엘렌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2024년에 맞게 업데이트한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
결과적으로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연결고리, 혹은 새 출발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서지는 못한다.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레인의 다음 이야기는 여전히 기대가 크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모처럼 명성에 맞게, 또 시대에 맞게 배출한 수작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과거와 현재를 모범적으로 묶은 새 출발
-
- 무한 긍정은 무한 연습에서 나온다
- 인생은 즉흥 연주가 많은 재즈일까, 철저히 악보와 지휘에 맞춰 연주하는 클래식일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 따르면 J의 인생은 클래식이고 P의 삶은 재즈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죽기 전까지 나의 목표와 계획과 의도를 100%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 야구 만화 속 주인공과 같은 실력을 현실에서 뽐내던 오타니 쇼헤이도 FA 대박 계약을 코앞에 두고 팔 부상이 재발했다. 그의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주는 것 같다. 얼른 산 정상에 올라 표지석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에 들뜨지만 등산로에서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무한 긍정의 마음가짐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영화 <블루 자이언트>의 주인공 '다이'는 강렬하고 뜨거운 재즈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도쿄에 온 '다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다이가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고향에서나 도쿄에서나 변함없이 매일매일 맹렬하게 색소폰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다이가 넘어서야 할 유일한 상대는 '어제의 나'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다이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다이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영상은 다이가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비교적 예상하기 쉬운 이야기와 달리 영화 <블루 자이언트>의 비주얼, 음악, 음향은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 예상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압도적이다.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을 극대화해 실사 촬영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을 듯한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화면 전환, 기발한 앵글과 미장센을 구현한다. 폭발하는 재즈 사운드의 박력을 실감하게 해주는 총천연색의 화면, 동명 원작 그래픽 노블의 매력을 십분 살린 화면의 질감, 실제 재즈 연주자의 동작을 생생하게 본뜬 영화 속 캐릭터들의 연주 자세가 압권이다. 적재적소에 들어간 스틸 이미지는 편집의 리듬감을 살린다. 지나치기 쉬운 장면이지만 고기 석쇠 밑에서 다이의 얼굴을 찍는 과감한 앙각 숏도 기억에 남는다. 유리컵에 맺힌 물방울들 위에 포개지는 '유키노리'의 식은땀도 인상적이었다.다이가 테너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오직 다이의 들숨소리만 들려서 이후 이어지는 연주에 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재즈 문외한이 들어도 바로 탁월함을 느낄 수 있는 연주는 실제로 재즈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녹음했다고 한다. 특히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인 우에하라 히로미가 음악과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고, 색소폰은 전 세계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친 후 바바 토모아키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드럼은 우에하라가 이시와카 슌을 지명하여 그가 맡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라이브 연주 장면들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단, 필자는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관의 Dolby Vision과 Dolby Atmos로 관람했기 때문에 다른 일반 상영관보다 훨씬 더 감흥이 컸을 수도 있다.)재즈 밴드의 연주는 "따로 또 같이"를 추구한다. 함께 연주할 때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솔로 파트에서는 테너 색소폰, 피아노, 드럼 등 개별 연주자가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표출해야 한다. 솔로 파트의 문제는 다른 밴드 멤버들이 도와줄 수 없고 결국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재즈 밴드는 록 밴드와 달리 평생 함께하지 않는다."는 유키노리의 대사가 암시한 것처럼 주인공들이 가장 큰 공동 목표로 삼았던 'SoBlue'에서의 공연이 밴드 'JASS'의 마지막 공연이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쓸어 담으면서 공연할 수 있을 텐데 해체하다니! 최고의 순간에 미련 없이 해산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이, 유키노리, 타마다가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고 연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은 후회가 없는 법이다. (끝)* 10월 11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블루 자이언트> 언론/배급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블루자이언트 #BlueGiant #절찬상영중 #영화리뷰 #영화추천
-
- 촌지전문교사의 시골분교 탈출기 '선생 김봉두' - 라떼극장 EP.15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5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며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보자
무리한 촌지 요구로 시골분교로 부임하게 된 선생 김봉두
1년만 버티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임해보지만
이 마을은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
촌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클린 빌리지
촌지 금단 현상에 산내분교 탈출이 절실해진 '선생 김봉두(2003)' 과연 탈출 할 수 있을까?
흡연욕구를 뿌리치지 못한 김봉두의 최애담배는?
-
- 슈퍼 리그 : 축구의 몰락 - 축구 카르텔의 실체와 민낯 l 지금 바로 왓챠에서 감상가능
-
아래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시청하세요 :)
https://watcha.com/browse/video
팬데믹 기간동안 유럽 대형구단주 12개팀이 유럽축구연맹과 프리미어리그에 대항해 수퍼리그를 결성하려다 팬들의 반발로 무산되기까지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
- 영화 <거미집> 메인 예고편
"완성이 코 앞인데 모두 다 방해만 합니다" 1970년대, 영화 ‘거미집’의 좌충우돌 촬영장! 예측불가 메인 예고편 공개
-
- 영화 <달짝지근해 : 7510> 본 예고편
OMG! 세상에 이런 맛이!? 완전히 새로운 올여름 코믹로맨스? [달짝지근해: 7510] 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