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1-03-01 00:00:00
영화가 특별하다는 뻔뻔한 주장
영화 〈헤일, 시저!〉(2016),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2020)
영화 〈헤일, 시저!〉(2016)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2020)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까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두 작품 모두 할리우드가 상징하는 이야기와 꿈의 크기를 잔뜩 부풀린다.
〈헤일, 시저!〉의 주인공 에디 매닉스는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다. 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영화 제작이나 회사 관리 외에도 그의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 그런데 캐피틀 픽쳐스 최고의 기대작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영화계 인사들에게 납치당한다. 주인공이 사라지자 촬영 일정이 꼬이고, 수상한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에디는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고 모든 것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에디의 능력을 높게 산 항공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 에디는 과연 난장판인 할리우드를 떠나 더 좋은 조건의 항공 업계로 이직할까?
영화 〈헤일, 시저!〉 스틸컷 ⓒ네이버 영화
한편, 〈오, 할리우드!〉는 ‘멕’이라는 가상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난한 배우 지망생 잭 카스텔로, 재능 있는 흑인 게이 작가 아치 콜먼, 아치 콜먼의 연인이자 배우 지망생 록 허드슨, 필리핀 혼혈 감독 레이먼드 에인슬리,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받는 여배우 커밀 워싱턴 등등.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밑바닥에서 출발하지만 계급, 인종, 성적 지향을 따라다니는 편견을 뒤집고 기념비적인 영화 ‘멕’을 완성한다. 이들의 여정은 엉망진창인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좋은 영화가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헤일, 시저!〉와 〈오, 할리우드!〉에는 할리우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겼다. 아니, 애정 그 이상이다. 이들은 할리우드가 난장판임을 신랄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난장판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꿈의 가능성을 예찬한다. 영화 산업은 다른 산업과 무엇이 다르기에 그런 걸까? 왜 이들은 폭로하고 비판하는 대신 폭로하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 스틸컷 ⓒ넷플릭스
이 질문은 예술 전체로도 확대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대다수의 예술가가 생계를 걱정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술을 꿈꾸고 동경할까? 예술이 생산되는 구조적 착취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왜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날까? 왜 그들은 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는 데서 그치지 못하는 걸까?
두 작품은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난장판에 불과한 할리우드라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영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느냐고 샐쭉거린다. 대책 없는 뻔뻔함에 어이없을 정도다. 하지만 앞의 질문들은 그 누구도 명확히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다. 예술을 한답시고 끙끙거리는 모두는 이 질문이 답변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만 예술가다. 모든 것이 명쾌한 질문은 꿈과 이야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딘가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어야 이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고민, 즉 예술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헤일, 시저!〉와 〈오, 할리우드!〉가 문제 투성이인 할리우드를 예찬함에도 밉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도덕을 기준으로 영화의 표현을 규제한 '헤이스 규약'이 기세 등등하던 시대에도, 공산주의자·게이·여성·흑인을 비롯한 수많은 타자가 적나라한 적의를 마주해야만 했던 시대에도 어쨌든 할리우드는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의할지 말지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있다. 호레이스 맥코이의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2020)는 할리우드가 얼마나 기형적으로 누군가의 꿈을 착취하면서도 아무 보상도 하지 않는지를 엿보게 해 준다. 이는 적당히 낭만적이고 두루뭉술한 설명이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기는 질문. 할리우드는, 예술은 여전히 특별한가?
*드라마 전반부가 할리우드 조감도를 흥미롭게 펼쳐놓는 데 반해 후반부는 ‘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유치할 정도로 낭만적으로만 재현한다. 너무 뻔한 전개에 후반부의 몰입도는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제이크 피킹이 연기한 록 허드슨이 실제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배우 록 허드슨을 오마주했다는 점에서 낭만적 유치함이 조금은 용인된다. 록 허드슨은 제임스 딘과 함께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유명인사 중에서는 최초로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오, 할리우드!〉 의 뻔한 로맨스(그중에서도 게이 커플의 로맨스)는 에이즈로 죽은 록 허드슨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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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스포일러 없는 리뷰 - 권태로운 삶에 위스키 한 잔을 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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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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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디그>
영국의 한 미망인이 알려지지 않은 고고학자를 고용하여. 그녀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을 파헤치고, 거대한 유물을 발견하게 되는 실화를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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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그레이트 샤크> 메인 예고편
행복한 휴가를 떠난 5명의 여행객.
그러나 우연히 상어에 의해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그들의 여행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높아지는 불안감 속에 급히 수상 비행기에 오르지만
굶주린 상어 떼의 습격으로 망망대해에 조난 당하고 만다.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탔지만
그들 주위를 맴도는 식인 상어 떼로 인해
점점 두려움이 극한으로 치닫는데…
극한의 공포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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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자식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면회하는 이유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중범죄자도 경범죄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까?
흉악범은 교화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나에게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의 범죄 사회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차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변덕스럽습니다. 범죄자도 사람이므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가족을 해친 사람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다고 상상하면 절로 피가 거꾸로 솟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이처럼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에 관한 고민을 다시 한번 촉발하는 영화였습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
Kaneko′s Commissary
Summary
폭력으로 수감된 '가네코'는 면회 온 아내에도 화부터 내는 남자였다. 개차반이던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 삼촌이라는 가족의 힘이었다. '가네코'는 과거 자신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영치물품을 넣어주고 대신 면회를 해주는 영치품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는 아들의 친구인 어린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후루카와 고
출연: 마루야마 류헤이, 마키 요코, 미우라 키라
'옥바라지'도 대행이 됩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영치품을 대신 전해주거나 면회를 대행해 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과자였던 '신지'의 과거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치품점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영치품점은 이른바 옥바라지 대행 서비스입니다. 정부 시설의 특성상, 구치소와 교도소는 주민센터와 같은 평일 낮 시간에만 방문객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평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문이 쉽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우려해 일부러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영치품점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옥바라지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지요. 취재 과정에서 영치품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루카와 고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치품점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전과자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지'는 삼촌이 운영하던 영치품점을 물려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잇고 있습니다. 영치품과 면회는 수감자들의 권리이며, 이를 대행하는 자신의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카즈마'의 동네 친구 '카린'이 묻지 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일로만 여겼던 강력 범죄가 내 일이 된 동네 사람들은 '가네코' 가족이 범죄자를 돕는 일을 한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죠. '신지'는 그 과정에서 무력함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혼란을 겪던 그에게 '카린'을 살해한 범인의 어머니가 영치품과 면회를 대행해 달라며 찾아오면서 ‘신지’는 또 다른 괴로움과 직면합니다.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을 모두 경험한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 선을 망치는 악과 악을 품는 선에 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을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악이지만, 그러한 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선이지요. 선과 악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더라도, 이 세상에 절대불변의 가치란 없고요. 관객은 교정 시설을 오가는 '신지'의 혼란을 스크린 너머로 체험하며, 선악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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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것, 결국 가족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에는 선과 악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지'가 그렇습니다. 그는 동료를 폭행해 징역 3년을 받고, 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이전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 되었죠.
엄마를 살해한 야쿠자를 면회하기 위해 매일 교정 시설을 찾는 고등학생 '사치'도 그렇습니다. '사치'의 이야기는 '신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서브플롯인데요. 초반에는 '사치'가 그저 강도에 의해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로 보였지만, 실은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에 시달리는 소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쿠자는 성매매를 위해 그 집에 들렀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어린 '사치'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했던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사치'였습니다. 선이었다가도 악이 되고, 악이었다가도 선이 되는 인물들. 이처럼 영화 속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듯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선의 방향으로, 또는 악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지'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미와코'의 단단한 지지와 아들 ‘카즈마’를 향한 부성애 덕분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분명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치'와 야쿠자는 어떨까요? 가족에게 이용당한 '사치'와 출소 후 가족 같았던 조직의 해체를 맞닥뜨린 야쿠자는 혈혈단신인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서서히 악에서 벗어납니다. 이렇듯 영치품점을 소재로 벌어지는 여러 선과 악의 이야기 아래에는 따스한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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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가족의 힘을 말하는 영화지만, 메시지를 소구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다소 과장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영화의 탄력을 저해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식 신파가 무릇 그렇듯이 어쩐지 다정함이 넘쳐, 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작품이랍니다.
극 중 '카린'을 살해한 범인이 늘어놓은 궤변이 떠오릅니다. 100마리 개미를 모아 놓으면 그중 20%는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데, 일하던 80마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또 그중 20%가 일하지 않다는 실험을 언급하며 성악설을 주장하는 장면이었죠. 영화를 곱씹어 보니, 이처럼 쉽게 뒤바뀌는 선악 속에서도 언제나 80%의 보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20마리를 따로 떼어놓으면 그중 80%는 다시 선해진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One-Liner
누구나 흐릿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악으로도, 다시 선으로도.
Schedule in BIFF
2024.10.03(목) 영화의전당 소극장 19:30
2024.10.04(금)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CGV센텀시티 7관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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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쁘진 않았는데 낯설어서 그래
내가 만약 돈이 무진장 많으면 난 어떻게 변할까? 예쁜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겠지. 그럼 나도 감사함을 몰라 점점 이상하게 변할까? 26살쯤 되니 내가 한 건 없고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종종 들 곤 한다. 이제까지 만났던 부자들은 다 성격 좋았다. 남들 배려할 줄 알고. 따뜻하고. 근데 이 세상 사람들 다 성격 똑같은 것 아닌 거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만난 부자들이 못돼먹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된다는 보장이 있나?
오늘도 글을 쓰면서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한다. 사실 간단하다. 그냥 매일 염두하고 책 많이 읽으며 살면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일단 부자가 되기 위해 비트코인과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지만 역시 돈은 일해서 벌어야 얻는 게 많아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사람 고마운 걸 알아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난 일 많이 해서 돈 벌거고 밥맛 떨어지는 나쁜 놈이 될 생각 없다. 이왕에 어려운 사람들 도우고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저번 주에 밥 맛 떨어지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다른 때 같으면 영화를 추천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보고 어떤 작품인지 다들 생각해보길 바란다.
인생은 원래 생각지도 못한 것의 연속이지
남자가 느닷없이 한 건물 문을 연다. 시선을 어디로 둘 지 몰라 고정하지 못하는 이 남자. 집주인이 빈 시간에 딱 맞춰 올 정도로 주도면밀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남자는 뒤적뒤적 집주인의 물건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남자는 도둑이다. 도둑이 들어간 이 별장의 주인은 IT업계의 억만장자 CEO다. 집주인이 외부 행사로 잠깐 비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도둑. 금세 주인장의 롤렉스와 현금을 찾아 도망치기로 한다. 그렇게 주섬주섬 모든 짐을 챙기고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아. 그전에 오줌 한번 시원하게 누고 가야지. 마치 자기 집에 온 사람처럼 도둑은 최후의 끝마무리(?)까지 하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원래 외부 행사로 별장 주인이 자리를 비워야 이치에 맞는데,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생겨버렸다. 당황하는 도둑. 그 주인 부부가 별장에 들어온 것이다. 도둑은 숨었다가 아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혼자 있던 아내. 아내는 인질로 잡혔고 부부는 이도 저도 못 가게 손발이 묶이게 된다. 도둑은 이 집에 있는 모든 카메라를 찾아 기록을 은폐하고 남편이 도주를 위해 제시한 금액을 위해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 이후의 영화가 작품의 줄거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 느껴지는 계급 차이
이 영화는 계층에 대해 다룬 영화다. 주인공 도둑은 최근에 어떤 일이 있어 빈곤을 겪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덕에 인물은 도둑질을 계획하게 된다. 이 계획이 원래대로 이뤄졌다?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가 들어와서 다 엎어지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세 명이 처해있는 처지를 대비시키며 계급 격차를 부각한다. 예를 들어 50만 달러라는 금액에 대해 논할 때, 도둑이 제시한 15만 달러를 남편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조소한다. 이 대사를 듣고 도둑이 답한 것이 있다. '우리 생각하는 삶의 질이 다르네'였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계속해서 남편과 도둑의 관점 차이를 보여준다. 빈곤과 부유의 뚜렷한 대조인 셈이다. 그리고, 계급과 입장에 대한 차이는 하나 더 있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엔딩과 관련이 있어서 더 쓸 수는 없을 듯하다. 각본의 완성도를 떠나 인물의 캐릭터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의 대비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급 갈등 문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살짝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좁은 공간. 계급 격차.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그리고 엔딩까지. 이거, 난 <기생충>에서 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생충> 만큼이나 철저하지는 못하다. <기생충>은 계단을 비롯한 여러 도구와 '냄새'라는 모티브로 기득권층의 모순과 계급에 의한 전락을 탄탄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대사에 의존하는 계급 격차를 보여준다. 이러다 보니 극 자체의 보는 재미는 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가 무난해도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 다른 영화를 의식할 필요야 없겠지만 사전 조사가 좀 더 철저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감독도 관객이라 연출자가 제일 중요하나, 두번째로는 역시나 타인이 보기 때문에 염두해야 할 구석이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생충>과는 다른 스탠스를 유지하며 이런 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찾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이왕에 미국의 계급 격차를 다룰 것이었다면 밑도 끝도 없이 도둑질하는 것부터 보여줄게 아니던가, 결말을 좀 수정하는 식으로 인물에게 감정 이입할 만한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별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굳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거 영화 배경을 바다나 성당으로 바꿨어도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이 역시 뭐 영화를 보는데 심각하게 지장이 가는 건 아니나 극의 전개를 좀 더 천천히, 깊게 제시했으면 극이 충분히 꼼꼼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좀 더 꼼꼼하면 좋았을 걸
이 영화가 조명하는 문제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다. 계급 문제 물론 심각하다. 당연히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배려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이 극의 주인공이 벌였던 강도라는 범죄가, 사회가 만든 비율이 단 1%라도 없다면 거짓말 아닌가. 그러나, 한 처지에 있는 인간이기를 떠나서 영화 전체적인 전제들이? 쳐지는 구석이 많다. 빈곤하거나 부유해도 전적으로 사람 아닌가?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 인물들이 희생된 느낌이 있다. 또 다른 '계급 격차'역시 묘사가 아쉽다. 이 갈등 역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에 굳이 묘사되어야 했나?라는 것도 의문점이다. 결말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순 있으나 깊게 생각하면 몰입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기생충>이 선택과 집중으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만든 반면 이 <윈드폴>은 분산으로 몰입도가 떨어진다. 배우들의 호연이 좋았고 메시지 자체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라 나쁘지 않았지만 극이 좀 구멍이 나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부 둘의 좋은 연기
제시 플레몬스 연기 좋았다. 극을 보면서 주먹으로 한대 치고 싶었다. 자기밖에 몰라 부끄러움을 까먹은 후안무치의 CEO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또 아내 역의 릴리 콜린스도 내면에서 꾹꾹 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 둘의 연기만으로도 극을 보는데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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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소통과 교류는 창조를 만들어 낸다.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 창조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2023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의 황제'
폐막작 기자회견에서 닝하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0월 13일 오전 부산 KNN 시어터 진행된 폐막작 기자회견에는 닝하오 감독과
영화의 황제에 출연한 다니엘 위, 리마 제이단 그리고 남동철 BlFF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이 함께 했다.
17년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찾은 닝하오 감독은
"부산에 영화 관련 시설도 많아졌고,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며"
"이와 같은 영화제를 통해 영화인들이 교류와 소통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고 설명했다.
영화 "영화의 황제"는 영화를 제작 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영화의 황제'는 홍콩의 스타 유덕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면는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감독은 중국의 영화와 홍콩의 영화 사이에 복잡하면서 미묘한 관계들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스텝들과 관계자들이 영화속에서 연기를 하며 진행되는 과정에서
리얼리티와 연출이 살아 있는 그런 이야기가 주목할만하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iff.kr/kor/html/schedule/date.asp?day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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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얼굴이 그립다.
소꿉놀이, 공놀이, 곰인형놀이, 아이스크림 가게놀이, 공주놀이, 잡기 놀이... 끊이지 않는 놀이는 결국 2시간을 채웠다. 허리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놀아주는 건지, 하늘이가 날 놀아주는 건지, 곰인형이 우리를 놀아주는지 분간이 안 되는 그때 자리에 슬그머니 눕기 시작했다. 눈치 빠르고 예리한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또 놀자.”
정말 신기하고 신비할 정도로 놀이에 몰입한다. 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호모 루덴스”.
바로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 유희적 존재라는 것이다.얼마나 멋진 말인가. 인간의 다양한 정의 중에 정말 마음에 들고, 인간의 본질을 너무 잘 파악하는 말이다. 슬프게도 내 인생의 30대는 놀이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10대, 20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놀았던 나. 삶에 점점 치여, 빠르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놀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졌다. 과거 친구들과 놀다가 찍혔던 사진 속의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살아있음. 생기. 활력. 그것들이 느껴졌다. 부러웠다. 사진 속에 놀고 있는 내가 부러웠다.
그 얼굴을 덴마크 할아버지 얼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그득하고 흰머리 가득한 그는 재밌게 놀면서 집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것도 레고(Lego)를 가지고 12000 제곱미터 면적에 외관과 내부를 레고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생기와 활력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꿈을 이루어가는 표정이었다. 그가 바로 레고 창업자의 손자이자 경영자인 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다. *(현재 CEO는 닐스 B. 크리스티안센이다.)
사실 레고의 시작은 1932년 그의 할아버지가 나무 장난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업의 이름을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의 'leg godt'를 착안하여 “레고”로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레고 하우스>는 이런 전 세계 ‘레고 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레고로 만든 집을 꿈꿀 텐데 그것을 실현해 가는 모습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레고 놀이 중에 최고가, 이번 레고 하우스 설계였다.”
레고 하우스의 설계자 비아케 잉겔스라는 레고하우스 설계소감을 이처럼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레고하우스를 만들어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과정을 꿈의 실현이자, 놀이의 모습처럼 나타내고 있다. 쉽지 않은 건축 과정과 내부의 아이디어들 하나하나를 놀이로 여기고 그것 이루어가는 과정이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느껴지도록, 보는 내내 함께 흥분하게 되고, 함께 놀게 된다.
<레고하우스> 초기 설계 모습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한참뒤에 또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그리고 최근에 한번더 봤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왜 이 다큐멘터리를 세번이나 보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그 아저씨들과 할아버지의 노는 모습, 노는 얼굴이 부러워서 일찌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즐겁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노는 얼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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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감흥 없는 번역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광풍에도 불구하고 농구와 복싱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구진우'(진영). 어느 날, 그는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걸린 나머지 벌을 받게 된다. 모범생 '오선아'(다현) 앞자리에 앉아서 특별 감시를 받으라는 것. 선아를 짝사랑하는 친구들은 진우를 부러워하지만,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진우는 그저 벌을 받아야 해서 불만스러워한다. 선아 역시 시끄럽기만 한 그의 존재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선아가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자, 진우가 자기 책을 선뜻 빌려주고 대신 벌을 받은 것.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선아와 진우. 선아는 진우에게 공부를 알려주고, 진우는 특유의 멋모를 자신감으로 선아를 웃게 만들면서 감정을 쌓아 나간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속마음과 달리 그들은 자기 마음을 좀처럼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대학생이 된다.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하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중화권의 청춘 로맨스 영화는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1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해도, 수십만 명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하는 흥행력은 보장되는 장르니까. 2010년대에 개봉한 <장난스런 키스>, <나의 소녀시대> 모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다. 2023년 여름에 재개봉한 <여름날 우리> 역시 4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팬데믹 이후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꾸준한 흥행력을 과시하는 중화권 청춘 로맨스가 돌파구로 여겨졌던 모양새다. 비슷한 시기에 과거 인기를 끌었던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 세 편이 일제히 리메이크됐기 때문. 작년에 개봉한 <청설>과 설날 연휴에 공개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각각 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문제는 3번 타자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다. 대만 영화 리메이크 열풍을 이어갈 매력이 안 느껴진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시절>은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했기 때문. 앞선 두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따르되 플롯이나 감성을 차별화했다. 그에 반해 <그 시절>은 배경만 한국으로 바꾸는 데서 그쳤다. 그러다 보니 원작을 이미 본 관객으로서는 굳이 번역본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낄 법하다.
그 시절의 소녀가 뇌리에 각인될 두 가지 조건
<그 시절>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결혼식에서 커징텅이 션자이의 남편에게 키스할 때 스쳐 지나가는 평행 세계 시퀀스다. 그들이 연애할 때 마주한 몇 차례 분기점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다른 선택을 내리면 달라졌을 현재와 미래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주는 순간의 임팩트가 핵심이다. <라라랜드>에서 남남이 된 세바스찬과 미아가 과거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결말과 유사하다.
이처럼 클라이맥스가 관객 뇌리에 각인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예뻐야 한다. 예쁜 대상은 다를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의 풋사랑이 귀여울 수도 있고, 연기와 재즈에 몰입하는 두 주인공의 열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두 주인공이 그 시기를 회상하면 다시 사랑에 빠질 정도로 강렬하게 예쁜 게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이별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명백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 과거가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머지, 그 시절로 돌아가거나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어야만 할 때, 즉 가능성이 현실로 될 수 없는 한계와 제약이 있을 때 평행 세계는 간절한 만큼 강렬하니까.
예쁘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 시절> 리메이크가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첫 번째 조건은 절반 정도만 갖췄다. 진우와 선아의 사랑이 시작되는 배경과 분위기는 예쁘다. 2000년대 배경의 고등학교 풍경은 관객에게 자기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교실이나 운동장처럼 한국적 배경에 맞게 바뀐 장소는 필연적으로 대만 원작보다 흡입력이 뛰어나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당시의 향취가 주는 아련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그 안에서 피어나는 풋사랑이 부자연스럽다는 것. 두 주인공의 톤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진우는 너무 가볍고 동적이며, 선아는 지나치게 정적이다. 그 결과 진우에게 '그 시절의 소녀'여야 할 선아의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공부할 생각이 아예 없는 진우와 모범생 선아가 처음부터 잘 어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두 주인공의 톤이 같은 층에서 만나지 못하니까 문제다.
이는 영화가 진우 시점에서 전개되는 데서 기인한다. 진우 관점에서의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 분위기는 자연히 그의 감정선에 따라 달라진다. 그 대가로 선아의 심리 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 공백으로 인해 선아와 진우의 연결점도 약화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데뷔작인 다현 개인의 역량으로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 결과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두고두고 그리울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끝내 못 보여준다.
명백한 이유 없는 이별
두 주인공의 이별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치함을 못 견디겠다는 선아의 말에 내포된 본 이유를 못 보여줬기 때문. 선아는 진우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 진우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답한다. 실제로도 그는 학생들을 함부로 다니는 교사에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고, 2년만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교에 입학하며 자기 포부를 증명해 낸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반한다. 그녀에게 꿈이란 삶의 지향점이었고, 그에게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다음이 문제다. 대학에 들어간 진우는 선아가 말리는 일만 골라 한다.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고, 취객과도 싸운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유치하다며 이별을 고한다. 그녀에게 유치함이란 꿈이 없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꿈을 꾼다는 표현이었던 것. 하지만 상술했듯이 극 중 선아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유치함의 속뜻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갈림길의 순간도 인상적이지 않다. 이별로 인한 진우의 흉터가 진할수록 클라이맥스에서 '그때 그랬을걸'이라는 회한의 파도가 더 강하게 밀려올 수 있는데, 정작 갈림길마다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하기 때문. 남산 데이트 직후 격투기 동아리 장면, 이별 후 입대로 이어지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진우의 불안함과 아픔이 전해지기도 전에 유머로 상황을 무마한다. 그 대가로 파노라마 장면의 임팩트가 좀처럼 살지 못한다.
리메이크는 번역이 아닌데
사실 리메이크는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다. 특히 추억이라는 최고의 아군이 함께하는 이상, 원작의 첫인상에 범접하기가 특히 어렵다. 오래전 작품일수록 관객은 그 영화의 장단점, 완성도보다는 그 영화가 남긴 추억을 간직하기 때문. 따라서 리메이크는 원작이 남긴 추억을 존중하되, 원작과는 또 다른 메시지나 의도가 담긴 포인트를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작 대신 리메이크를 보게 하는 소구력을 갖출 수 없다.
이 대목에 있어서 <그 시절>은 다소 안일해 보인다. 공간, 시대, 설정만 한국적으로 바꿨을 뿐, 알맹이는 원작 영화의 것을 고스란히 따왔다. 재구성 대신 번역만 한 셈이다. 원작을 재구성한 다른 리메이크 작품들과 비교하면 방향성 문제가 더 도드라진다. 일례로 <청설>만 하더라도 원작의 소재나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여름이라는 계절감을 강조하는 각색을 통해 원작과의 비교를 영리하게 피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그 시절>은 추억을 되살리고, 그 추억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외에는 굳이 리메이크 영화를 보면서 예전 감성을 찾아야 하는 차별화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판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지만, 되려 그래서 특별한 것 없는 하이틴 로맨스로 귀결됐다.
Poor 형편없음
원작을 읽은 이상 사족인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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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책 속의 등장인물이 현실에 나타났다
- 6명의 등장인물Six CharactersCast감독: M.L. 뿐드헤바놉 데와쿤출연: 마리오 마우러, 탁손 팍숙차레른, 케마닛 짜미콘, 나타폰 떼미락, 챠이야폴 줄리언 포우파르트, 빠껀 찻버리락Synopsis긴장감이 감도는 영화 세트. 호러영화를 촬영하려는 감독은 무척이나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제멋대로인 배우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갑작스럽게 정체불명의 여섯 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죽은 작가가 남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은 낯선 이방인들을 비웃지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치명적인 가족의 이야기에 도취되기 시작한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Review부산국제영화제에 태국 영화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네.드라마 <상속자들>의 대사 ‘사학루등’을 아시나요?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네.” 드라마가 종영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센세이셔널한 대사인데요. 감히 이 대사를 패러디할 정도라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된 태국 영화를 향한 제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충분히 느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태국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탓인지, 좌석이 매진되어 하마터면 영화를 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상영 직전에야 겨우 표를 구할 수 있었죠. 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 들어섰습니다. 낯선 태국어만큼이나 생경하고 신선한 영화 <6명의 등장인물>을 소개합니다.⊙ ⊙ ⊙감독, 배우, 그리고 인물(Character)의 이야기<6명의 등장인물>은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작품을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키워드로 소개하는데요. 정말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인 감독과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 사람들도 빼놓을 수 없죠.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떠올릴 때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 바로 이야기 속 인물들입니다.이 영화의 골자는 원작과 유사합니다. 죽은 작가의 등장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준비 중인 연출진과 배우들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고 호소하죠. 극을 이끄는 건 감독과 배우여야 마땅하나, <6명의 등장인물>의 흐름을 쥐고 흔드는 건 책 속에만 존재해왔던 인물들입니다. 연출진과 배우들은 어느 순간 관객이 되어, 배우보다 더 배우처럼 격렬하게 무대를 장악하는 인물들을 그저 지켜봅니다. 누군가에 의해 표현되어야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그들은 고삐 풀린 듯 자신들의 이야기를 토해냅니다. 독자 또는 관객의 흥미에 따라 외면되곤 했던 인물들의 숨은 사정을 조명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 ⊙원작의 철학을 녹여내는 이 영화만의 방법영화 촬영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6명의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스토리텔링되는 사건,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 관객을 향한 독백 같은 대사,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들과 짐짓 꾸며낸 듯한 과장된 제스처와 말투까지. <6명의 등장인물>은 어찌 보면 조악한 연극 같아 보입니다. 극의 전개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데가 하나 없습니다. 영화를 찍으려고 모인 사람들이 영화를 찍기는커녕, 어디선가 난데없이 나타난 인물들의 이야기에 속절없이 빠져버리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원작자 루이지 피란델로가 자신의 예술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철학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영화의 접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헛되고 실체가 없다”고 말한 피란델로는 인간의 부조리를 내용으로 하는 작품을 많이 썼거든요. 작가가 정해놓은 대로 살아가는 인물들마저도 진실의 일면만을 설파하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내려 한다는 ‘의붓딸(6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의 고백에서 피란델로의 철학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무의미하고 불합리함으로 점철되어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느 것이 현실이고, 이야기인지, 누가 배우이고, 인물인지 끊임없이 모호하게 하는 <6명의 등장인물>. 아마도 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과한 연극적 요소와 조악함, 불합리함 등은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품을 영화적 방법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선택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한 상상에 인간의 부조리에 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더한 작품, <6명의 등장인물>. 이야기 속 인물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상상은 뻔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습니다.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태국어 원제 <มายาพิศวง>를 안 살펴볼 수 없죠. มายา는 기만이나 속임, พิศวง는 기이하게 느끼거나 의혹을 품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기이한 속임, 의심스러운 기만으로 풀어볼 수 있는데요. 이 영화에 대한 한 줄 평을 해야 한다면 딱 저 제목을 빌리고 싶습니다. “기이한 속임과 의심스러운 기만.” 6명의 등장인물의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혹시 기만은 아닌지 의심하다 보면, 진실과 거짓, 현실과 이야기를 오가는 기이한 속임을 경험하는 작품. 제목처럼 묘하고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Schedule in BIFF2022.10.06(목)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16:302022.10.07(금) 영화의전당 소극장 12:302022.10.09(일)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3:30부산국제영화제 기간: 10월 04일 -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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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스포일러 없는 리뷰 - 권태로운 삶에 위스키 한 잔을 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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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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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디그>
영국의 한 미망인이 알려지지 않은 고고학자를 고용하여. 그녀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을 파헤치고, 거대한 유물을 발견하게 되는 실화를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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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그레이트 샤크> 메인 예고편
행복한 휴가를 떠난 5명의 여행객.
그러나 우연히 상어에 의해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그들의 여행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높아지는 불안감 속에 급히 수상 비행기에 오르지만
굶주린 상어 떼의 습격으로 망망대해에 조난 당하고 만다.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탔지만
그들 주위를 맴도는 식인 상어 떼로 인해
점점 두려움이 극한으로 치닫는데…
극한의 공포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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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자식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면회하는 이유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중범죄자도 경범죄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까?
흉악범은 교화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나에게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의 범죄 사회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차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변덕스럽습니다. 범죄자도 사람이므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가족을 해친 사람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다고 상상하면 절로 피가 거꾸로 솟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이처럼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에 관한 고민을 다시 한번 촉발하는 영화였습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
Kaneko′s Commissary
Summary
폭력으로 수감된 '가네코'는 면회 온 아내에도 화부터 내는 남자였다. 개차반이던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 삼촌이라는 가족의 힘이었다. '가네코'는 과거 자신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영치물품을 넣어주고 대신 면회를 해주는 영치품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는 아들의 친구인 어린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후루카와 고
출연: 마루야마 류헤이, 마키 요코, 미우라 키라
'옥바라지'도 대행이 됩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영치품을 대신 전해주거나 면회를 대행해 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과자였던 '신지'의 과거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치품점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영치품점은 이른바 옥바라지 대행 서비스입니다. 정부 시설의 특성상, 구치소와 교도소는 주민센터와 같은 평일 낮 시간에만 방문객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평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문이 쉽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우려해 일부러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영치품점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옥바라지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지요. 취재 과정에서 영치품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루카와 고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치품점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전과자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지'는 삼촌이 운영하던 영치품점을 물려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잇고 있습니다. 영치품과 면회는 수감자들의 권리이며, 이를 대행하는 자신의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카즈마'의 동네 친구 '카린'이 묻지 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일로만 여겼던 강력 범죄가 내 일이 된 동네 사람들은 '가네코' 가족이 범죄자를 돕는 일을 한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죠. '신지'는 그 과정에서 무력함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혼란을 겪던 그에게 '카린'을 살해한 범인의 어머니가 영치품과 면회를 대행해 달라며 찾아오면서 ‘신지’는 또 다른 괴로움과 직면합니다.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을 모두 경험한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 선을 망치는 악과 악을 품는 선에 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을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악이지만, 그러한 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선이지요. 선과 악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더라도, 이 세상에 절대불변의 가치란 없고요. 관객은 교정 시설을 오가는 '신지'의 혼란을 스크린 너머로 체험하며, 선악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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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것, 결국 가족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에는 선과 악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지'가 그렇습니다. 그는 동료를 폭행해 징역 3년을 받고, 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이전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 되었죠.
엄마를 살해한 야쿠자를 면회하기 위해 매일 교정 시설을 찾는 고등학생 '사치'도 그렇습니다. '사치'의 이야기는 '신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서브플롯인데요. 초반에는 '사치'가 그저 강도에 의해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로 보였지만, 실은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에 시달리는 소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쿠자는 성매매를 위해 그 집에 들렀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어린 '사치'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했던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사치'였습니다. 선이었다가도 악이 되고, 악이었다가도 선이 되는 인물들. 이처럼 영화 속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듯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선의 방향으로, 또는 악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지'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미와코'의 단단한 지지와 아들 ‘카즈마’를 향한 부성애 덕분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분명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치'와 야쿠자는 어떨까요? 가족에게 이용당한 '사치'와 출소 후 가족 같았던 조직의 해체를 맞닥뜨린 야쿠자는 혈혈단신인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서서히 악에서 벗어납니다. 이렇듯 영치품점을 소재로 벌어지는 여러 선과 악의 이야기 아래에는 따스한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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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가족의 힘을 말하는 영화지만, 메시지를 소구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다소 과장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영화의 탄력을 저해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식 신파가 무릇 그렇듯이 어쩐지 다정함이 넘쳐, 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작품이랍니다.
극 중 '카린'을 살해한 범인이 늘어놓은 궤변이 떠오릅니다. 100마리 개미를 모아 놓으면 그중 20%는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데, 일하던 80마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또 그중 20%가 일하지 않다는 실험을 언급하며 성악설을 주장하는 장면이었죠. 영화를 곱씹어 보니, 이처럼 쉽게 뒤바뀌는 선악 속에서도 언제나 80%의 보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20마리를 따로 떼어놓으면 그중 80%는 다시 선해진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One-Liner
누구나 흐릿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악으로도, 다시 선으로도.
Schedule in BIFF
2024.10.03(목) 영화의전당 소극장 19:30
2024.10.04(금)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CGV센텀시티 7관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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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쁘진 않았는데 낯설어서 그래
내가 만약 돈이 무진장 많으면 난 어떻게 변할까? 예쁜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겠지. 그럼 나도 감사함을 몰라 점점 이상하게 변할까? 26살쯤 되니 내가 한 건 없고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종종 들 곤 한다. 이제까지 만났던 부자들은 다 성격 좋았다. 남들 배려할 줄 알고. 따뜻하고. 근데 이 세상 사람들 다 성격 똑같은 것 아닌 거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만난 부자들이 못돼먹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된다는 보장이 있나?
오늘도 글을 쓰면서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한다. 사실 간단하다. 그냥 매일 염두하고 책 많이 읽으며 살면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일단 부자가 되기 위해 비트코인과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지만 역시 돈은 일해서 벌어야 얻는 게 많아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사람 고마운 걸 알아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난 일 많이 해서 돈 벌거고 밥맛 떨어지는 나쁜 놈이 될 생각 없다. 이왕에 어려운 사람들 도우고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저번 주에 밥 맛 떨어지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다른 때 같으면 영화를 추천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보고 어떤 작품인지 다들 생각해보길 바란다.
인생은 원래 생각지도 못한 것의 연속이지
남자가 느닷없이 한 건물 문을 연다. 시선을 어디로 둘 지 몰라 고정하지 못하는 이 남자. 집주인이 빈 시간에 딱 맞춰 올 정도로 주도면밀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남자는 뒤적뒤적 집주인의 물건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남자는 도둑이다. 도둑이 들어간 이 별장의 주인은 IT업계의 억만장자 CEO다. 집주인이 외부 행사로 잠깐 비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도둑. 금세 주인장의 롤렉스와 현금을 찾아 도망치기로 한다. 그렇게 주섬주섬 모든 짐을 챙기고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아. 그전에 오줌 한번 시원하게 누고 가야지. 마치 자기 집에 온 사람처럼 도둑은 최후의 끝마무리(?)까지 하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원래 외부 행사로 별장 주인이 자리를 비워야 이치에 맞는데,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생겨버렸다. 당황하는 도둑. 그 주인 부부가 별장에 들어온 것이다. 도둑은 숨었다가 아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혼자 있던 아내. 아내는 인질로 잡혔고 부부는 이도 저도 못 가게 손발이 묶이게 된다. 도둑은 이 집에 있는 모든 카메라를 찾아 기록을 은폐하고 남편이 도주를 위해 제시한 금액을 위해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 이후의 영화가 작품의 줄거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 느껴지는 계급 차이
이 영화는 계층에 대해 다룬 영화다. 주인공 도둑은 최근에 어떤 일이 있어 빈곤을 겪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덕에 인물은 도둑질을 계획하게 된다. 이 계획이 원래대로 이뤄졌다?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가 들어와서 다 엎어지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세 명이 처해있는 처지를 대비시키며 계급 격차를 부각한다. 예를 들어 50만 달러라는 금액에 대해 논할 때, 도둑이 제시한 15만 달러를 남편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조소한다. 이 대사를 듣고 도둑이 답한 것이 있다. '우리 생각하는 삶의 질이 다르네'였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계속해서 남편과 도둑의 관점 차이를 보여준다. 빈곤과 부유의 뚜렷한 대조인 셈이다. 그리고, 계급과 입장에 대한 차이는 하나 더 있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엔딩과 관련이 있어서 더 쓸 수는 없을 듯하다. 각본의 완성도를 떠나 인물의 캐릭터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의 대비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급 갈등 문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살짝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좁은 공간. 계급 격차.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그리고 엔딩까지. 이거, 난 <기생충>에서 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생충> 만큼이나 철저하지는 못하다. <기생충>은 계단을 비롯한 여러 도구와 '냄새'라는 모티브로 기득권층의 모순과 계급에 의한 전락을 탄탄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대사에 의존하는 계급 격차를 보여준다. 이러다 보니 극 자체의 보는 재미는 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가 무난해도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 다른 영화를 의식할 필요야 없겠지만 사전 조사가 좀 더 철저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감독도 관객이라 연출자가 제일 중요하나, 두번째로는 역시나 타인이 보기 때문에 염두해야 할 구석이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생충>과는 다른 스탠스를 유지하며 이런 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찾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이왕에 미국의 계급 격차를 다룰 것이었다면 밑도 끝도 없이 도둑질하는 것부터 보여줄게 아니던가, 결말을 좀 수정하는 식으로 인물에게 감정 이입할 만한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별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굳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거 영화 배경을 바다나 성당으로 바꿨어도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이 역시 뭐 영화를 보는데 심각하게 지장이 가는 건 아니나 극의 전개를 좀 더 천천히, 깊게 제시했으면 극이 충분히 꼼꼼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좀 더 꼼꼼하면 좋았을 걸
이 영화가 조명하는 문제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다. 계급 문제 물론 심각하다. 당연히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배려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이 극의 주인공이 벌였던 강도라는 범죄가, 사회가 만든 비율이 단 1%라도 없다면 거짓말 아닌가. 그러나, 한 처지에 있는 인간이기를 떠나서 영화 전체적인 전제들이? 쳐지는 구석이 많다. 빈곤하거나 부유해도 전적으로 사람 아닌가?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 인물들이 희생된 느낌이 있다. 또 다른 '계급 격차'역시 묘사가 아쉽다. 이 갈등 역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에 굳이 묘사되어야 했나?라는 것도 의문점이다. 결말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순 있으나 깊게 생각하면 몰입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기생충>이 선택과 집중으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만든 반면 이 <윈드폴>은 분산으로 몰입도가 떨어진다. 배우들의 호연이 좋았고 메시지 자체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라 나쁘지 않았지만 극이 좀 구멍이 나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부 둘의 좋은 연기
제시 플레몬스 연기 좋았다. 극을 보면서 주먹으로 한대 치고 싶었다. 자기밖에 몰라 부끄러움을 까먹은 후안무치의 CEO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또 아내 역의 릴리 콜린스도 내면에서 꾹꾹 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 둘의 연기만으로도 극을 보는데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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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소통과 교류는 창조를 만들어 낸다.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 창조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2023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의 황제'
폐막작 기자회견에서 닝하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0월 13일 오전 부산 KNN 시어터 진행된 폐막작 기자회견에는 닝하오 감독과
영화의 황제에 출연한 다니엘 위, 리마 제이단 그리고 남동철 BlFF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이 함께 했다.
17년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찾은 닝하오 감독은
"부산에 영화 관련 시설도 많아졌고,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며"
"이와 같은 영화제를 통해 영화인들이 교류와 소통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고 설명했다.
영화 "영화의 황제"는 영화를 제작 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영화의 황제'는 홍콩의 스타 유덕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면는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감독은 중국의 영화와 홍콩의 영화 사이에 복잡하면서 미묘한 관계들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스텝들과 관계자들이 영화속에서 연기를 하며 진행되는 과정에서
리얼리티와 연출이 살아 있는 그런 이야기가 주목할만하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iff.kr/kor/html/schedule/date.asp?day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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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얼굴이 그립다.
소꿉놀이, 공놀이, 곰인형놀이, 아이스크림 가게놀이, 공주놀이, 잡기 놀이... 끊이지 않는 놀이는 결국 2시간을 채웠다. 허리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놀아주는 건지, 하늘이가 날 놀아주는 건지, 곰인형이 우리를 놀아주는지 분간이 안 되는 그때 자리에 슬그머니 눕기 시작했다. 눈치 빠르고 예리한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또 놀자.”
정말 신기하고 신비할 정도로 놀이에 몰입한다. 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호모 루덴스”.
바로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 유희적 존재라는 것이다.얼마나 멋진 말인가. 인간의 다양한 정의 중에 정말 마음에 들고, 인간의 본질을 너무 잘 파악하는 말이다. 슬프게도 내 인생의 30대는 놀이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10대, 20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놀았던 나. 삶에 점점 치여, 빠르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놀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졌다. 과거 친구들과 놀다가 찍혔던 사진 속의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살아있음. 생기. 활력. 그것들이 느껴졌다. 부러웠다. 사진 속에 놀고 있는 내가 부러웠다.
그 얼굴을 덴마크 할아버지 얼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그득하고 흰머리 가득한 그는 재밌게 놀면서 집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것도 레고(Lego)를 가지고 12000 제곱미터 면적에 외관과 내부를 레고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생기와 활력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꿈을 이루어가는 표정이었다. 그가 바로 레고 창업자의 손자이자 경영자인 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다. *(현재 CEO는 닐스 B. 크리스티안센이다.)
사실 레고의 시작은 1932년 그의 할아버지가 나무 장난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업의 이름을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의 'leg godt'를 착안하여 “레고”로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레고 하우스>는 이런 전 세계 ‘레고 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레고로 만든 집을 꿈꿀 텐데 그것을 실현해 가는 모습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레고 놀이 중에 최고가, 이번 레고 하우스 설계였다.”
레고 하우스의 설계자 비아케 잉겔스라는 레고하우스 설계소감을 이처럼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레고하우스를 만들어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과정을 꿈의 실현이자, 놀이의 모습처럼 나타내고 있다. 쉽지 않은 건축 과정과 내부의 아이디어들 하나하나를 놀이로 여기고 그것 이루어가는 과정이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느껴지도록, 보는 내내 함께 흥분하게 되고, 함께 놀게 된다.
<레고하우스> 초기 설계 모습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한참뒤에 또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그리고 최근에 한번더 봤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왜 이 다큐멘터리를 세번이나 보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그 아저씨들과 할아버지의 노는 모습, 노는 얼굴이 부러워서 일찌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즐겁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노는 얼굴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