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3-05 22:27:56
'복수심'에 집중한 새로운 배트맨
-<더 배트맨>(2022)
어떤 피해를 받으면 그것에 대한 앙갚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 피해나 감정적 손실이 크던 작던, 받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그 상처를 다시 돌려주는 복수를 생각하게 된다. 과거 고대 사회에는 이런 사적 복수가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그러다 점차적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법이 제정되면서 공적으로 벌하는 형태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다툼이 커지기 시작하면 법적인 형태로 고소나 고발을 하기도 한다. 상대가 범죄자라면 경찰과 검찰, 법원 같은 공적기관을 통해 상대의 죄에 대해 벌을 받게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잘 구성된 법 체제 안에서도 모든 감정이 다 치유되지는 않는다. 개인 간의 작은 피해들은 다시 크고 작은 복수로 돌아오기도 하고, 큰 범죄의 가해자라고 할지라도 법의 구멍을 잘 파고들면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발생한 억울한 피해자들은 분노의 감정을 더욱 느끼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피해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무척 애쓰게 된다. 그렇게 복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시야는 좁아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복수를 위해 사회 시스템의 눈에서 벗어난 복수를 택하기도 한다. 그건 안전하지 않은 범죄지만 복수에 눈이 멀어버리면 그것을 똑바로 보기 어렵다.
새로운 배트맨이 가진 강력한 감정, '분노'와 '복수심'
영화 <더 배트맨>은 개인적인 복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포심과 분노를 다룬다. '공포'라는 감정은 이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인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이 시리즈에서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은 어릴 적 박쥐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고, 그 공포심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배트맨이 가진 힘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니까 '공포'는 그에게 내재된 힘이자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무기로 변경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리부트 된 <더 배트맨> 속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이 가진 강력한 감정은 '분노'와 '복수심'이다.
영화 속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 활동을 한 지 2년 정도 된 초보 히어로다. 과거 시리즈의 배트맨이 그렇듯, 그는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상대방의 공포를 이용해 상황을 장악하고 주도한다. 그는 고든 형사(제프리 라이트)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고담시의 범죄를 해결하는 일종의 탐정 역할을 하고 있다. 브루스 웨인이 이렇게 고담시의 범죄 소탕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복수심'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부모님에 대한 복수를 하는 방법으로 찾은 것이 바로 고담시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범죄를 소탕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는 배트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난 이후, 사적인 복수의 감정을 공적인 일에 쓰고 있는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적인 일을 행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개인적 복수를 하기 위해 배트맨이라는 가면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은 복수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 주요 유력인사에게 테러를 하는 리들러(폴 다노)는 아주 직접적으로 배트맨을 향해 수수께끼를 내기 시작한다. 리들러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그 수수께끼는 배트맨의 과거를 향한다. 이 리들러의 수수께끼는 다음 희생자가 누구인지를 추리하게 만들고 그것의 단서가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이 행했던 활동과 연관되어있다. 그래서 리들러를 추적하면 할수록 배트맨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놓인다. 리들러는 배트맨의 복수심과 공포를 역으로 이용하여 시종일관 그를 자신의 게임에서 꼭두각시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리들러의 연쇄살인과 브루스 웨인의 과거가 함께 얽히면서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긴장으로 가득 찬 추리극으로 진행된다.
빌런 리들러가 던지는 수수께끼가 몰고 온 혼란
이번 <더 배트맨>에서는 '복수'라는 감정을 문제적으로 제시한다. 사건 추적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셀리나 카일/캣우먼(조 크라비츠)은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그만의 추적을 한다. 전형적인 사적 복수를 행하려 하는 셀리나를 막는 배트맨은 그 자신이 행하는 '복수'의 행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셀리나와의 관계와 셀리나의 행동을 보는 배트맨은 자신도 하고 있는 복수라는 행위의 목적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하게 된다. 그가 가진 분노가 복수라는 것을 행하게 만들었고 그 복수가 공적 시스템을 이용해 진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를 시종일관 생각한다. 단순히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라는 사적 행위를 완성하는 것보다 자신이 들어간 사회 시스템 안에서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하고 분노를 어떤 방향으로 해소시켜야 할지가 이번 배트맨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모든 배트맨 시리즈가 그렇듯 고담시는 사회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틈은 온갖 범죄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펭귄(콜린 파렐)과 팔코네(존 터투로)다. 이들은 고담시의 음지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배트맨이 시종일관 상대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더 배트맨>에서는 이 모든 악당을 비롯해 배트맨조차 리들러의 게임 안에서 자신들조차 모르게 이용당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서 악당 리들러는 그만의 방식으로 고담시의 음모를 파헤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을 꽉 채운다. 일반적인 액션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게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의 근본적인 고민으로 다시 돌아간 영화는 액션보다는 추리에 좀 더 방점을 찍으면서 악당 리들러가 벌이는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배트맨의 추적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긴 상영시간 동안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은 배트맨이 가진 고민과 매끄럽게 맞물리며 그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펭귄, 팔코네 같은 악당 캐릭터들이 리들러의 게임 안에서 소비된 느낌이 있다. 하지만 펭귄과 팔코네를 일종의 ‘사회 틈을 파고들어 이득을 취한 존재’로 활용하면서 고담시 전체 시스템에 대한 고발을 하는 듯한 메시지를 준다. 여기에 배트맨의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더해지면서 리들러의 범죄의 큰 틀이 군더더기 없이 담겨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과거 배트맨과 차별화시키며 탄생시킨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
영화를 연출한 맷 리브스 감독은 세 시간이 넘는 영화안에 브루스 웨인이 가진 고민을 담고 리들러의 살인 게임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까지 담아내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과거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이나 <혹성탈출:종의 기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 <더 배트맨>에서도 전반적인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캐릭터의 심리적인 고민을 잘 담아냈다. 특히나 과거 시리즈의 배트맨이 했던 고민과 겹치지 않게 '복수심'을 활용하여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복잡한 사건이 연달아 이어지지만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이야기 속에 배치되면서 영화의 집중도를 흐리지 않도록 연출되었다.
마이클 키튼, 크리스찬 베일에 이어 세번째로 배트맨 솔로 영화의 주연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은 젊은 배트맨에 무척 잘 어울린다. 그가 가진 조금은 유약하고 퇴폐적인 이미지는 그가 겪는 영화 속 브루스 웨인의 혼란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캣우먼 역을 맡은 조 크라비츠도 배트맨과 좋은 케미를 보여주며 그만의 캣우먼이 가진 당당한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나 리들러 역을 맡은 폴 다노는 아주 선한 이미지지만 약간 정신 나간 듯한 미소를 보여주며 영화에서 강력한 악당 연기를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배트맨의 '복수'는 가야 할 방향을 보기만 했을 뿐 어떤 식으로 배트맨이 그것을 행해야 할지를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브루스 웨인 이라는 인물이 배트맨 역할을 하는 동안에 계속 하게될 질문이자 고민이 될 것이다. <다크나이트>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배트맨이라는 가면을 언젠가는 벗어야할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번 <더 배트맨>은 분노심을 가지고 있는 브루스 웨인의 성장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좀 더 젊어진 브루스 웨인은 아마도 향후에 이어질 다음 시리즈에는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 사이에서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금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웨인의 고민을 확인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그가 행하는 '복수'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을 극장에서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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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https://www.youtube.com/watch?v=bYZ_a7_awhk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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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인과 악인, 그 사이에 서 있는 흑기사의 라스트 미션!
2015년 위험에 처한 콜걸을 도와주며 시작한 맥콜 아저씨의 여정이 끝이 났다. 약자를 위해 나선 흑기사 맥콜의 마지막 여정지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 이곳에서 그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라는 그 임무를 멋지게 수행한다. 1, 2편과 마찬가지로 맥콜은 존 윅처럼 화려한 건(gun)격 액션이 난무하거나 제이슨 본처럼 리얼리티 액션과 거리가 먼 그저 무겁고, 조용하고,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준다. 그것도 9초 안에. 더불어 시리즈를 관통하는 맥콜의 부채감과 선인과 악인 그 사이에 놓인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뇌도 잊지 않는다.
맥콜이 앉아 있는 곳은 어느 이탈리아 포도 농장 지하창고다. 보나마나 마피아 소굴인 이 곳에서 그는 시계 타이머에 맞춰 악인을 심판한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등에 총을 맞은 그는 사력을 다해 차를 몰고 그곳을 빠져나가지만 결국 어느 해변 도로에서 의식을 잃는다. 마을 경찰관과 의사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맥콜은 상처가 아무는 동안 그곳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지만, 차츰 마을 사람들과 유대감을 나누는 그는 오랜만에 평화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 마피아 집단이 등장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경찰관 가족은 물론, 사람들을 공격한다. 잠자는 맥콜의 코털을 건드린 마피아. 그것도 모른 채 오만방자함의 극치를 달리고, 맥콜은 보란 듯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이들을 처단한다.
<더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1980년대 중반 방영했던 <맨하탄의 사나이>를 각색한 작품이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주된 이야기는 달라졌지만, 근간은 1980년대 감성을 오롯이 옮긴 스타일과 권선징악의 주제는 변함없다. 약자를 위해 나서고, 악인은 무조건 처단한다는 맥콜의 기조는 영화의 중심이 되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안긴다.
이번 3편에서도 그 기조는 변함없다. 주요 무대와 주변 인물이 달라졌을 뿐이지 맥콜의 흑기사 활약은 계속된다. 초반 등 총상 이후 지팡이를 든 그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이는 후반부 지역 마피아를 상대로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휘두르는 폭력의 파괴력을 더하기 위한 장치처럼도 보인다. 전편들 모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지만, 3편의 액션 수위는 좀 더 강하다. 마지막 편에 걸맞은 피날레를 장식하듯 액션은 좀 더 강하고, 잔인하다. 물론 이를 자행하는 맥콜은 눈 하나 깜작하지 않지만 말이다.
<더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액션에 치중한 작품이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오로지 전진하는 한 남자의 단선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단순 액션 영화로 치부하지 않는 건 맥콜의 고뇌 덕분이다. 감독은 맥콜의 액션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 과묵한 남자에게 죄책감을 안긴다. 1편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2편에서는 사랑하는 동료, 3편에서는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 등 실력이 출중한 요원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힌다.
이런 상황에서 맥콜은 1편에서 자신의 고뇌에 발버둥치고, 2편에서 과거 자신이 살던 집을 찾아가면서 내면의 고통을 들여다보며, 3편에서 이 모든 걸 고통과 속죄에서 벗어나 비로소 구원받는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다. 특히 3편에서 마을 의사와의 대화 내용은 그가 구원의 길을 걷게 된다는 걸 암시한다. 의사는 맥콜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물어보는데, 정작 맥콜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나쁜 사람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 조차 안한다며 그를 선인으로 인정하고 포용한다. 마치 예수가 죄인을 사하여 주는 것 처럼 말이다.
덴젤 워싱턴은 액션은 물론, 자신이 가진 연기 스펙트럼을 최대한 활용해 맥콜이란 캐릭터를 감정적으로 공감하게 한다. 그는 단순히 정의 구현에 그치지 않고, 이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이는 앞서 소개한 의사와의 대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액션의 파괴력이 현란한 촬영과 움직임이 아닌 감정의 진폭에서 비롯된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다.
<더 이퀄라이저 3>에는 특별한 손님이 참여했다. 바로 덴젤 워싱턴과 연이 깊은 다코타 패닝이 등장한다. 극중 CIA 금융 작전팀 소속 콜린즈 요원으로 나온다. 오지랖 넓은 맥콜 아저씨와 알게 모르게 공조 수사를 하는 다코타 패닝의 연기는 반가움 그 자체 <맨 온 파이어>에서의 연이 이 영화를 통해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물론, 캐릭터 구축이나 활용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한 장면 안에서 이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큰 즐거움. 후반부 맥콜이 수많은 요원 중 콜린즈 요원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도 나오니 끝까지 집중하시길.
사진: IMDB
평점: 3.0 / 5.0
한줄평: 이름처럼 시원하고 마무리. 흑기사여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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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하고 폭력적인 사회, 그 속에서 시끄럽게 서로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원작, 이언희 감독
김고은, 노상현 주연* 해당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웃어주지 않는 곳에서
영화의 주인공,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는 대도시를 살아가는 20대 청년들이다. 인구 밀도 과다, 남에게 관심 많은 사람들 사이 끼어 살아가야 하는 두 남녀. 어느 누군가는 도시가 '시끄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도로에 꽉 끼어 클락션을 울리는 차들, 좁은 길을 지나다니며 떠드는 사람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각종 사건사고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끄러운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바깥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시끄러움으로 무장한 도시의 이면에는 조용한 폭력이 있다.
재희와 흥수, 그들이 살아가는 대도시는 조용하고, 폭력적이다. 자유로운 영혼, 재희는 대학교에서 홀로 다니는 동안 여러 동기들의 소문에 시달린다. 눈에 띄는 빨간 니트로 코디한 '유러피안 스타일',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 눈치도 보지 않는 과감한 행동들. 동기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그리고 눈에서 눈으로, 귀에서 귀로, 재희는 '옷이 저거밖에 없는' 애가 됐다가, '유출된 누드 사진의 주인공'이 됐다가, 문란하다는 소문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이 과정 내내, 누구도 재희에게 다가와 알려주거나 직접 부딪히지 않는다. 그저 등을 돌리고 속삭일 뿐이다.
주먹을 쥐지 않고도 가닿는 조용한 폭력. 재희는 그래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채 자꾸만 밀려난다. 해명할 기회도, 설명할 시간도 없이, 재희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폭력적인 시선들이 '재희'라는 여성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쉽게 정의내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웃어주지 않는 곳. 그곳에서, 재희는 자신과 너무도 다른, 그러나 어딘가 비슷한 것만 같은 흥수를 만난다.
두려움을 마주하는 법
재희가 온갖 소문과 관심에 시달리는 비밀스러운 인물이라면, 흥수는 비밀을 들키고 싶지도, 눈에 띄고 싶지도 않아하는 인물이다. 재희와 흥수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자신의 엄마조차 애써 외면하려 하는 성정체성을 이유로 남들 앞에 떳떳하게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는 흥수, 헛소문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 시험을 보고 나오다 강의실 앞에서 직접 옷을 벗고 해명하는 재희.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과,스스로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오르기를 꺼리는 사람.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희와 시선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흥수.
그런 흥수에게, 재희에게 비밀을 들켰다는 사실은 또 다른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소문을 만들어내던 동기들의 의심의 타깃이 된 순간 재희가 흥수를 구해주면서, 흥수는 재희에 대해 두려움 대신 조금의 신뢰와 흥미를 가진다. 선입견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함께하자고 내미는 손. 새학기에 '너는 무슨 아이돌 좋아해?' 를 묻듯, 재희와 흥수는 '술이나 마시러 가자.'는 말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함께 이태원으로 향한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랑법
서로 사랑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사랑을 응원해 줄 수는 있다. 영화 내내 흥수와 재희는 대도시의 사람들과 '사랑'을 한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더 시끄럽고 반짝거리는 클럽으로 향하면서, 신나게 웃고 싶어서 술에 취해보려 들면서. 그러나 그들이 이어가는 '사랑'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인다. 재희의 애인은 재희를 숨기려 들다 애인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들키고, 흥수는 당당히 성정체성을 밝히고 싶다는 애인의 뜻을 응원해주지 못하고 화를 낸다. 뜻이 맞지 않는 사랑, 무게가 달랐던 관계. 그 속에서 이 젊은 주인공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함께 공유하는 작은 집, 하나의 공간으로 모인다. 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다른 이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애인도 아닌 남녀가 동거한다는 사실, 서로의 연애사, 성정체성까지. 남들이 들으면 웃어주지 않을지도 모를 사실들이, 재희와 흥수가 공유하는 집에서는 그저 공기처럼 당연하게 녹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각자의 사랑을 응원하면서, 서로에게서 '사랑법'을 배우면서.
상처가 난 뒤에는 성장을 향해서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각자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 속에서 서로를 응원해주던 두 주인공이 서로 상처를 주는 장면이 있다. 재희가 믿었던 애인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날, 그리고 흥수와 재희의 동거를 재희의 애인이 알게 된 순간 재희가 흥수의 성정체성을 '아웃팅'한 날. 재희는 안정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원해온 인물이며, 흥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재단하고 함부로 말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인물이다. 재희와 흥수도 서로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폭력보다 서로가 '알면서도' 그랬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더 큰 상처로 다가오게 된다.
재희가 흥수에게 상처를 준 날, 그리고 흥수가 재희에게 상처를 준 날. 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애인을 지키고 싶어서, 숨고 싶지 않아서. 사랑을 위해 우정이 잠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서로에게 일 순위가 아니라 이 순위가 되는 순간. 두 주인공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균열은 금방 사그러든다. 싸웠지만, 서로의 말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서운함보다는 상대의 다친 얼굴이, 속상함보다는 상대의 우는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이. 서로 화를 내고 나서도 해장 라면 하나를 나눠먹고 나면 다시 이전처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 그리고 애인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 그건 이들이 '애인'이 아닌 '친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성장한다. 재희는 안정적인 사랑을 찾아 나아가고, 흥수는 엄마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한다. 취업 준비를 하고, 군대를 가고, 다시 그 집에 모여 변한 서로를 바라본다. 술에 취해 이태원 클럽을 돌아다니던 그때와, 멀끔한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지금. 누군가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어느 한 쪽을 깎아내릴지도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그 순간도, 지금도, 모두 청춘일 뿐이다.
조용한 사회 속에서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옆에 재희가 있다면, 그리고 내 옆에 흥수가 있다면, 나는 저렇게 대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재희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흥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쉽게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떳떳하게 '나는 누군가에게 폭력적이게 굴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재희와 흥수는 각각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재희와 흥수의 동거 사실을 안 재희의 애인이 재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을 막아서던 흥수가 흥수의 애인 대신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장면에서 우리는 직접적인 폭력을 마주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장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폭력들.
하지만 뺨에 손이 닿아야만, 얼굴에 상처가 나야만 폭력이 아니다. 조용하게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말들, 밤이 되면 내 성정체성을 부정하며 조용히 기도하는 목소리, 맞는 말을 해도 예민하다며 궁시렁대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대도시의 '폭력법'이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조용한 폭력 가운데 이들은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재희는 자신을 '예민하다'거나 '시끄럽다', '튄다', '문란하다' 등으로 깎아내리는 대신 '멋있다'고 말해주는 직장 동료와 사랑을 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시선을 두려워했던 흥수는 엄마에게 성정체성을 고백하고 재희의 결혼식 축가로 당당히 걸그룹 노래를 선곡해 춤을 춘다. 앞으로 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다가올지라도, 이들은 가만히 앉아 스스로를 파먹고 울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잘못된 것에 잘못되었다고 소리칠 것이다. 그것이 '대도시의 사랑법'을 배우며 20대를 거쳐온, 젊은 청춘들의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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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추억, 그 어디쯤에서 기억될 여행
이 영화는 어느 부녀의 터키 여행을 그린다. 겉보기에는 친구 같아 보이지만 이 부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고 서로 간의 벽이 있다. 어딘가 나이에 비해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와 조숙한 편이지만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딸아이의 여행, 이 여행은 과연 잘 끝날 수 있을까?
1 .영화 속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의 기운
이 영화는 세 가지의 시점을 가진다. 소피와 아빠 캘럼이 여행하는 과거 시점, 어두운 클럽 안에서 해매이고 있는 캘럼의 모습, 카메라에 담긴 이들의 여행을 어른이 된 소피가 지켜보는 현재의 시점이 있다. 부녀의 과거 여행 시점에서는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자고 먹고 수영하고 간혹 가다 게임하고 이혼 가정의 부녀가 간만에 만나 할 법한 웬만한 일들을 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하지만 이들 부녀가 공유하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면 '우울감'이 될 것이다. 소피가 침대에 누워 마치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자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는 캘럼의 모습을 통해 캘럼이 느끼는 우울함을 소피 또한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캘럼은 소피와 함께 있을 때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은 아빠이지만 혼자 있을 때 그는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사람이기에 소피의 말에 캘럼은 찔렸던 듯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캘럼의 우울은 점점 가시화된다. 그에게 어떤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음을 짐작하게 되는데 캘럼은 그 어떤 공동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지난날이 있었지만 안정은 찾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소피와의 관계가 살짝 삐끗하자 갑자기 한밤중에 바다로 성큼성큼 뛰어들어가기도 하고 소피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호텔방에 와 혼자 오열하기도 하는 그의 행동을 통해 그가 소피와의 이번 여행을 끝으로 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2. 클럽씬이 가진 의미
중간중간 등장하는 클럽씬에서 캘럼은 향락적인 불빛이 난무하는 어둠 속에서 해맨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장면은 왜 계속 등장해 몰입을 방해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영화가 가진 루즈함을 전환시키는 화면이기는 하지만 뜬금없고 어둠이 지배해 인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루즈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캘럼이 어둠 속 클럽을 해매는 모습을 통해 마치 소피가 아빠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꿈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클럽 장면에서는 글리치처럼 전개가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클럽은 소피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향락의 공간에서 춤을 추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아빠를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 끝내 아버지의 손을 놓아버리는 연출을 통해 소피가 아빠에 대한 기억에 몸부림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길을 잃은 영혼의 종착지처럼 죽은 캘럼의 영혼과 현생의 소피의 영혼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설정된 것은 아닐까.
예상해 보건대 현재의 시점에서 캘럼은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장면, 여행이 끝나고 소피와의 작별 후 카메라를 끄고 허탈하게 공항 문을 열어 클럽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통해 캘럼은 심연, 소피의 무의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존재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죽었고 여행 직후 죽은 것이 아닐까 예상한다. 그들은 계속 여행을 카메라로 기록하는데, 그 녹화된 테이프를 감상하는 현재의 소피 또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그가 느꼈던 우울을 느끼는 듯하다.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 재기발랄한 소피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의 소피는 무표정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볼 뿐이다.
3. 독특한 연출
이 영화는 감정 관계를 명쾌히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감정을 다른 물건의 잔상에 숨겨버린다. 꺼진 티비에 비친 부녀의 모습을 관객이 관찰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을 물에 비추어 보여주기도 하고 거울을 이용하기도 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기도 한다. 직관적인 시각보다는 어떤 물체에 비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연출로 부녀의 시시껄렁한 농담과는 달리 이들 부녀는 각자의 속마음을 한 겹씩 숨기고 있음을 강조한 것 같다. 관객들이 솔직하지 못한 부녀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 클럽씬의 묘사만큼이나 독특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재미있는 연출을 꼽는다면 엔딩 씬의 카메라 워크를 들 수 있겠다. 마지막 씬에서 여행에서 소피와의 작별을 녹화하던 캘럼의 카메라가 녹화를 멈춘다. 이후 카메라의 시선이 녹화본을 보고 있는 어른 소피의 방을 비추고 녹화본을 보는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또다시 옆으로 움직이며 클럽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캘럼의 모습을 논스톱으로 담는다. 이 카메라 워크가 인상적인데 녹화본을 보는 소피의 모습이 마치 소피 없이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한 캘럼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4. 총평
영화에서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그들의 휴가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왜 우울한 것인지, 이들 부녀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등 디테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불친절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상상의 여지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여행 막바지에 그들은 춤을 추는데 이 장면에서 가족 간의 유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해석을 한다면 이전부터 알 수 없던 춤을 추던 캘럼이 소피와 함께 춤을 추며 자신의 인생의 화양연화를 맞이하는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과거에 소피는 캘럼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함께 춤을 춰주는 소피의 모습을 통해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던 캘럼이 소피에게만큼은 이해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소피의 이해로 그의 인생은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른이 된 소피에게 큰 잔상을 남겼을 이 여행에서 카메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메라 녹화본을 보면서 아빠와 나눴던 대화, 사춘기 시절 첫 키스를 하며 이성에 눈을 뜨는 과정 등등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카메라 녹화본은 자신은 없는 미래에 남겨질 소피에게 아빠가 전하는 사랑이 담긴 유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녹화본을 보는 소피에게 터키 여행은 여전히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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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공화국의 지옥 같은 현실 우화!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다. 10명 중 6명은 아파트에 살 정도로 타 국가에 비해 거주자 수가 많다. (필자도 아파트에 산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몰리는 건 주택, 빌라 보다 더 나은 편의성 때문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그 놈의 돈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곧 돈이자 권력인 셈. 이로 따라 차별과 계급, 집단 이기주의라는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상황 속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피부에 와닿는 아파트 공화국의 지옥 같은 현실을 그린다.
대지진이다. 거짓말처럼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거짓말처럼 유일하게 황궁 아파트만 멀쩡하다. 아파트 주민은 기적과도 같은 현실에 기뻐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재난에 살아남은 이들이 이 아파트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자신의 보금자리와 식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외부인들을 쫓아낸다. 이때 본의 아니게 피 흘리며 선봉장 역할을 한 영탁(이병헌)은 대표로 추대된다. 평범한 공무원인 민성(박서준)은 아파트 주민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영탁과 함께 일하고, 그의 아내 명화(박보영)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불안감을 내비친다. 안정적이면서 폐쇄적인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도중, 과거 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혜원(박지후)이 들어온다. 그리고 영탁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쌓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의 재난은 설정에 불과하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건 폐허가 된 상황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행동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사회를 견고하게 가져가기 위해 똘똘 뭉친다. 폭력을 쓰면서까지 어떻든 자기 마을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첫 행동이 바로 외부인을 몰아내는 것이다. 가족과 마을을 위한 일로서 이해되지만, 한편으론 그 행동에 다른 의도가 섞여 있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재난 이전 옆에 있던 고급 아파트 드림팰리스 사람들에게 무시당해 왔다. 아파트도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니까. 그러다 황궁 아파트만 남게 된 상황에서 부녀회장 금애(김선영)는 이때가 기회라 생각하고 드림팰리스에 살았던 이들을 몰아낸다. 차별은 차별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걸 잊어버린 채 이들은 폐해가 된 곳에서 자신들만의 사회를 재구성하려고 한다.
문제는 주민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이전 사회의 폐단을 반복하는 것에 있다. 극 중 금애는 다 평등해졌고, 리셋된 거라고 말하지만, 아파트 내에서 참여도와 공헌도에 따라 계급이 나눠지고, 그에 따른 생필품과 식료품이 차등 지급된다. 열심히 일한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게 나름 이성적인 판단이고, 다수결을 통한 주민들의 선택은 옳아 보이지만, 결국 이 결정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낳는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으로 범죄 행동을 일삼는 주민들은 그 자체로 집단 이기주의 늪에 빠지고, 비극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간다.
이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에서도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은 우리의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결은 다르지만, 주민들의 행태를 보면 단지 내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는 명목하에, 택배, 배달원을 향해 갑질을 하고,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인요양원 건립을 반대하는 이른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끌해 집 한 채를 소유하는 게 평생 과제로 삼은 이들의 행동은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씁쓸함을 남긴다.
아파트 공화국인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관객에게 질문한다.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공동체를 지키는 영탁이처럼 행동할 것인지, 그 대척점에 서서 인류애를 실천하는 명화처럼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고 기류에 휩쓸려 공동체를 지키는 행동이 옳다고 믿는 민성이처럼 행동할 것인지 말이다. 영화가 끝나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영화는 주민과 외부인으로 나눠버리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향한다면 황궁 아파트의 비극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전한다. 명화의 마지막 모습과 그 대사는 이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계속해서 관객에게 딜레마를 안기는 건 김숭늉 작가의 웹툰 원작을 각색해 재난 장르에 한국 사회의 현실을 녹여낸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에 기인한다. 간간이 클리셰가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지만, 아파트 층을 올리듯 켜켜이 쌓은 밀도 높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흡입력이 강하다. 여기에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등 극한에 몰린 다양한 인간군상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선과 악을 넘나들며, 한국 사회 속 괴물이 되어버린 한 평범한 사람의 페이소스를 확실히 전한다.
극 중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공간은 사람들의 욕심으로 디스토피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자도 아니고 딸랑 집 한 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이타심보단 이기심이 더 앞설 수 있다. 우리 또한 평범한 사람들. 과연 나라면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4.0 /5.0
한줄평: 아파트 공화국의 지옥 같은 현실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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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과 돌봄 속 물의 이미지
<말없는 소녀>는 이미 돌봄의 감각을 잊은 관객의 몸과 마음마저 어루만진다.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각색한 영화 <말없는 소녀>는 무심한 부모 사이에서 방치된 아이가 애정과 돌봄의 손길로 다시 성장을 시작하는 어떤 여름을 그린다. 시골의 벌판에 코오트를 찾는 소리가 매섭게 울려 퍼진다. 카메라는 가만히 고개를 내려 웃자란 풀밭 사이에 모로 웅크려 그대로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비춘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서 비틀거리는 위태로운 이 아이가 코오트(캐서린 클린치)다.
코오트는 사람들의 눈빛을 피해 눈을 돌리고 말을 삼키며 도망가는 것이 익숙하다. 코오트는 어른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의자에 튀어나온 솜, 귓가의 귀걸이, 버려진 담배꽁초 따위로 시선을 돌린다. 말수 적은 소녀를 대신한 시점숏은 코오트가 보고 느끼는 바를 충실히 전달한다. 가사와 육아에 지친 엄마는 여섯 번째 아이를 배에 품은 채 분주하다. 엄마의 지친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역시 코오트다. 코오트는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에이블린(캐리 크로울리)과의 첫 만남에서 코오트는 에이블린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말없는 소녀>는 모든 대사가 사라져도 무방할 정도로 말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영화다. 왜곡되고 범람하는 말 대신 시선과 침묵이 영화를 이끈다.
코오트의 언니들은 송아지와 아기의 탄생에 대해 말하다가 아빠 댄이 들어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문다. 이 가족의 소리를 억누르는 힘은 댄에게 있다. 댄은 영어를, 엄마 메리와 아이들은 아일랜드어를 사용하며 코오트는 학교의 또래 친구보다 영어에 서투르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코오트의 집을 단절된 침묵의 공간으로 만든다. 킨셀라 부부 역시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에이블린이 영어로 흘러나오던 라디오를 꺼버리자 아침 식탁 위에는 식기들의 조용한 부딪침과 새의 지저귐만이 남는다. “아무 말 안 해도 돼. 언제나 그걸 기억하렴. 많은 사람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서 많은 걸 잃었단다.” 침묵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존중하는 어른의 존재는 말 없는 소녀에게 침묵이 불행의 증거만은 아님을 일깨운다. 압박에 못이겨 짓눌린 침묵이 아닌 공기 사이에 따스하게 스며드는 침묵도 있음을 보여준다.
부실한 점심을 먹은 코오트는 다른 아이의 책상 위에 있던 우유를 몰래 따라 마시려 한다.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에 의해 엎질러진 우유는 코오트의 치마를 적신다. 코오트의 옷이 젖는 일은 몇 번씩 일어난다. 첫 장면에서 코오트가 그토록 숨었던 이유는 침대에 소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 간 첫날밤에도 코오트는 오줌으로 침대와 옷을 적신다. <말없는 소녀>에서 목을 축이고 몸을 적시는 행위는 내면과 외면의 결핍과 갈증을 드러낸다. 에이블린은 코오트를 손수 목욕시킨다. 아이의 몸은 따뜻한 물속에서 깨끗하게 씻겨진다. 몸에 비누칠 하는 소리와 살갗이 부드럽게 쓸리는 촉감은 어떤 대사보다도 따뜻한 환대의 표현이다. 경제적 궁핍과 내면의 척박함을 채워주는 물속에서 코오트는 시든 꽃이 물을 머금듯 생기를 찾아간다. 예컨대 션과 에이블린이 따라주는 모든 음료는 클로즈업으로 천천히 찍혀 있다. 우유 한 잔 마음껏 마시지 못하던 아이는 갈증을 해소해낸다. 킨셀라 부부의 집을 떠나기 전 코오트는 샘터에 홀로 가서 물을 떠 오려다 도리어 물에 빠지고만다. ‘양동이와 그 안의 물에 반사된 소녀의 모습’이라는 이미지에서 시작된 <맡겨진 소녀>에서 이 부분은 물속에서 코오트와 똑같은 손이 “물속으로 끌어당긴” 것으로 묘사된다. 온몸을 적신 샘물은 세례이자 양수로 코오트는 마침내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코오트가 떠나가는 킨셀라 부부의 차를 뒤쫓아 뛰어가는 동안 사랑이라 부를 만한 기억들이 불려 나와 화면을 채운다. 마침내 션의 품에 안긴 코오트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댄의 모습을 흐릿하게 본다. 청각보다는 시각과 촉각에 집중하는 <말없는 소녀>에서 가장 중요한 발화는 코오트의 목소리로 간결하게 전달된다. 두 번의 “아빠”는 댄이 걸어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와 션과 에이블린의 사랑에 부응하는 의미로 각각 쓰인다. 침묵과 돌봄 속에서 다시 태어난 소녀는 명료한 목소리로 새로운 가족을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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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대교처럼 와르르
제작비 185억 원이 무색하게 할 정도의 결과물이다. 어떻게든 탈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나 예상대로 흘러갈 줄이야.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갯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물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는 작품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만큼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을까 생각될 법도 한데, 그간 봐왔던 국내 재난영화의 모든 걸 담아냈다. 재난물에 익숙지 않다면 무난할 수도 있지만, 눈치가 빠르다면 절정에 다다르기도 전에 김이 팍 샐 것이다.
뻔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탈출'은 흥미로운 소재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방위산업 일환으로 암살용 군견 개발에 착수했으나 문제가 생겨 폐기하려던 당일 추돌사고로 인해 개들이 풀려난다. 위험천만한 차량 연쇄추돌로 공항대교가 마비되고 개들이 케이지에서 탈출하기까지 20분은 관객들에게 긴박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이번 재난의 원인인 군견들은 진짜처럼 느껴질 만큼 디테일하게 CG로 구현했다. 하지만 공항대교에 갇힌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관객들에게까지 무서운 존재로 각인될지는 미지수다. 어느 장면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긴장감을 100% 불어넣진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따로 논다. 주지훈이 연기한 견인차 기사 조박이나 김희원이 맡은 양박사는 극 전체 분위기와 맞지 않아 방지턱 역할을 한다. 분명 조박 캐릭터가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인 건 알겠으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정원(이선균), 경민(김수안) 부녀 관계 또한 영화 '부산행'과 흡사해 기시감이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김수안이 주인공의 딸로 출연해서인지 끊임없이 오버랩된다. 이선균의 유작으로 남겨두기엔 영화 전반적인 완성도가 영화 속 공항대교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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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영화 감기와 코로나 사태는 얼마나 닮았을까?
#감기 #리뷰 #코로나
재미 없다는 추천 때문에
오랫동안 안 보고 묵혀뒀던
영화 감기를 꺼내 봤습니다시국이 시국인만큼
흥미로운 요소는 가득했지만
결국 보지 말라는 평이
왜 나왔는 지 이해만 해버렸습니다다음 재난 영화는 부디
제대로 된 영화가 나와 보기를
희망해봅니다물론 그전에 코로나부터
어서 빨리 잡히면 좋겠네요모두 화이팅입니다!
※ 추천 영상
1. 토니피터 환상의 케미,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명장면'
https://youtu.be/CoQ2ne32vHU
2. 극장내 침묵금지! '북미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https://youtu.be/K2L99rGOyS8
3. 나루토 질풍전 오프닝, '이승열 풍운'
https://youtu.be/t3W9eVu1m5E
4. 천조국 관객 클라스, '인피니티 워 리액션'
https://youtu.be/aKr-hZJtBcU
5. 어벤져스 어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https://youtu.be/X5MqhEaF3Is
6. 예고편에서 히나만 모아봤다, '날씨의 아이 히나 예고편'
https://youtu.be/BWPZiHAm9no
7. AV보다 야하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리뷰'
https://youtu.be/rXgpROvqxvo
8. 불매운동 중에 일본 애니를? '불매운동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알려드림'
https://youtu.be/ow10tiErTiU
9.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과 얼마나 똑같을까?
https://youtu.be/O4TpyQm9L_M
10. 토니는 영화에서 멱살을 얼마나 잡힐까?
https://youtu.be/v7au_Lx_N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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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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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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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티저 예고편
2023년 2월, 새로운 스케일의 양자 영역을 맞이하라!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티저 예고편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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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허슬> 공식 티저 예고편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트(애덤 샌들러)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실력에 험난한 과거를 가진 선수를 외국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결국 그는 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독단으로 이 천재 선수를 미국에 데려가는데. 두 사람은 난관을 무릅쓰고 NBA에서 성공할 자질을 갖췄음을 입증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