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2025-07-05 17:42:01
가족은 족쇄다 vs. 가족은 보호막이다
폭싹 속았수다(2025)
경고: 스포일러 주의
탈주 사건 = 전체 이야기의 윤곽
오애순(아이유, 문소리)과 양관식(박보검)이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이들은 가족들에 반발해 부산으로 탈주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그러나 여관 주인은 그들에게 누명을 씌웠다. 여관 손님의 물건을 훔친 도둑이라고 말이다. 근데 그 문제를 양관식의 어머니가 해결한다. 어머니가 부산까지 갔던 것이다. 그리고 실은 여관 주인이 도둑이라 밝혀진다. 오애순-양관식은 제주도로 돌아간다. 문제가 터지면 가족이 수습하는 전개. 이 전개는 드라마 내내 나타난다. 가족이 족쇄이자 보호막이란 특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 특성은 고광례(염혜란)-오애순-양금명(아이유) 3대를 걸쳐 이어진다.
요약
- 오애순-양관식의 부산 탈주 사건 + 누명 사건은 양관식의 어머니에 의해 해결된다.
- 부산 탈주 사건은 드라마 전체를 요약한 사건이다.
가족의 특징이 전수(?)되는 과정
광례는 해녀였다. 집에서 차별을 많이 받았던 존재이기도 했다. 남편이 이미 죽은 탓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딸 애순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처럼 살지 마라." 그리고 광례는 해녀 일을 하다 사망했다. 애순은 생각했다. '어머니 말처럼 어머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나답게 살자. 자식을 낳으면 힘든 일 시키지 말자.' 처음에는 이 목표 속에 모순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시인이 되는 걸 꿈꾸고 열심히 하면 된다 생각했다. 그런데 양관식(박보검)과 결혼하고 세 명의 아이가 생기자 모순이 드러났다. 자신답게 살려면 가족을 포기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살려면 자신은 포기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금명. 금명은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애순한테 이야기한다. 그 때 애순은 자신의 집을 판다. 그리고 그 돈을 일본 유학 자금으로 쓴다. 그런데 그 때부터 금명에겐 일종의 부채가 생겼다. 자신의 결정이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부채감. 그래서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오애순-양관식에게 보상을 해야 했다. 그게 금명이 교육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애순은 꿈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족 탓에 꿈을 포기해야 했다. 금명은 그 일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서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게 금명만의 선택은 아닐 것이리라.
요약
- 자신답게 사는 것 vs. 가족을 위해 사는 것, 애순이 가지고 있던 이 2가지 목표는 애초부터 모순되었다.
- 양금명이 교육 사업을 벌인 이유는 오애순-양관식의 사랑으로 비롯된 부채감 때문이다.
가족만의 선택을 강제하는 장치
개인과 가족 사이 선택을 조율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는 또 있다. 바로 오애순-양관식이 당했던 사건들의 흐름이다. 전체 흐름 속에서 사건들의 범위는 점차 축소된다. 가장 처음 문제는 좋았다. 부상길(최대훈)과 오애순-양관식 간의 갈등을 통해 권위주의적 시대상과 가부장적 가장의 문제를 조명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폭싹 속았수다는 시대극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가족들만의 문제만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의 영향은 점점 커졌다. 점점 이해하기도 어려워진다. 부상길은 시대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파혼, 사기, 가족의 죽음 등 이후의 문제는 이유를 모른다.
그 속에서 가족들은 질문을 멈춘다. 가족 너머를 꿈꾸는 질문과 고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질문 말이다. 대신 이들은 익숙한 해결책을 반복할 뿐이다. 가족끼리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문제가 해결되겠지 하면서 말이다. 정말 불쾌했다. 4.3 사건이 드라마에서 안 다뤄진 게 다행이었다. 만약 4.3 사건이 이런 식으로 다뤄진다 생각해보자. 4.3 사건은 국가가 민간인을 합법적으로 학살한 사건이었다. 공산 세력을 없애겠단 명분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피해자에게 가족끼리 성실하게 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하면? 현실을 무시한 소박한 결론이라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오애순-양관식은 해피엔딩을 맞았다. 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상을 보여주었다.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비현실적인 결론만은 아니다. 나도 가족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산 보상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질문을 멈추기 위한 발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온전한 개인이 되기 위해 가족을 넘어서는 질문을 할 때가 올까?" "드라마의 해결책이 가족 너머의 문제에도 적용이 되나?" 드라마 안에는 금명의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는다. 내 또래 세대 말이다. 나는 일부러 묘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다음 세대들에게 질문할 틈을 주기 위해.
요약
- 드라마의 문제들은 범위는 좁아지는데, 영향이 커지는 식으로 발전한다.
- 문제들이 발전하는 방향은 가족들이 가족들만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 가족들 너머를 꿈꾸는 질문 + 드라마의 해결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계속되어야 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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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향취 풍기며 추는 그들만의 마지막 춤!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기대가 별로 없었다. <베놈> 시리즈를 모두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본 1인으로서 마지막 챕터인 <베놈: 라스트 댄스>는 그동안 방구석에서 쌓은 의리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CU는 물론 SSU와의 연계성도 점점 희박해져 버린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괴랄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개연성 무관한 이야기 구조를 단단하게 깔아 의외로 관객을 피식 웃게 만든다. 그리고 희생이란 가치도 전한다. 종잡을 수 없는 영화는 정말 마지막까지 베놈과 닮았다.
에디(톰 하디)와 베놈은 지명 수배자들이다. 패트릭 멀리건(스티븐 그레이엄) 살해 누명을 쓰고 멕시코로 도망친 이들은 심비오트를 추적하는 의문의 특수부대원들에게 쫓기는 신세다. 더 심각한 건 이들을 추적하는 게 이들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놈을 창조한 널(앤디 서키스) 또한 이들 몸 안에 있는 ‘코덱스’란 열쇠로 영원한 자유를 얻고자 지구로 심비오트 사냥꾼 제노페이지를 보낸다. 쌍방 추적을 피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뉴욕에 가려던 이들은 자신들과 친구들, 그리고 지구를 위해 이 위기를 헤쳐나간다.
<베놈: 라스트 댄스>는 시리즈의 클로징을 담당하는 목적하에 그동안 시리즈가 고수하고 키워왔던 B급 매력을 보란 듯이 펼쳐놓는다. 그동안 살짝 눈치를 봐가면서 B급 향취를 뿜어냈다면 이번 영화는 아예 대놓고 ‘우리 원래 이렇잖아!’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이를 납득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쭉 밀고 나간다.
그 뚝심의 근원은 역시나 에디와 베놈이다. 어느 순간 한 몸이 된 이들의 남다른 브로맨스(?)는 지구와 우주, 인간과 외계생명체의 간극을 뛰어넘을 정도로 찐하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싸우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지켜주고 위하는 이들의 관계는 40년 함께 산 부부나 다름없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티격태격 잦은 싸움은 코미디의 주재료가 되고, 액션의 활력을 불어넣는 불쏘시개가 된다. 별다른 것도 없는 이들의 관계, 그리고 빚어지는 이야기와 퍼포먼스들은 새로움보다는 안전함을 택한 느낌이다. 물론 여기에 낯선 B급 취향을 곁들이긴 한다.
영화는 마지막 챕터 답게 액션에 모든 화력을 지원한다. 사람은 물론,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옮겨 다니며 그 힘을 발휘하는 심비오트의 액션은 그 자체로 볼거리. 말은 물론, 물고기, 개구리 등 지구의 생명체를 탐험하는 베놈의 변신은 흥미를 돋운다. 51구역 안에 있던 다수의 심비오트들과 함께 제노페이지에 맞서 싸우는 액션도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아이언맨 3>의 후반부 액션이 생각나지만, 카니발리즘에 입각한 심비오트들의 액션는 그 자체로 축제다. 여기에 마지막 베놈의 살신성인 액션은 눈물 찔끔 나게 하는 감동을 전한다.
물론, 영화의 만듦새가 좋진 않다. B급 매력을 뿜는 영화라 할지라도 다양한 인물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가 에디와 베놈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접착력이 떨어진다. 심비오트를 연구하는 과학자 페인 박사(주노 템플)의 전사와 외계인이라면 모두 잡아들이려는 스트릭랜드 장군(치웨텔 에지오포), 그리고 51구역을 여행하는 가족 등의 이야기는 구심점 없이 에디와 베놈을 그냥 맴돌 뿐, 큰 의미 없이 겉돈다. 얼토당토않지만 우연히 만나는 첸 여사(페기 루)와의 만남이 더 착 달라붙는다. 뭐 아바의 노래에 춤까지 추니, 말 다했지.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에디와 베놈의 여정을 함께 한다면 시리즈의 멋진 마무리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순도 100%의 마음이 필요하긴 하다. 흥부자 베놈의 바운스를 함께 타며, B급 액션 매력에 몸을 맡겨 보길 바란다. 알고 보면 이런 외계인 흔치 않다. 물론, 공생하기는 싫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말: 쿠키 영상은 2개다. 하나는 널에 관련한 이야기고, 하나는 직접 보기 바란다. 더불어 이번 영화에 삽입된 올드팝 쓰임새가 좋다. 베놈과 첸 여사가 함께 춤을 출 때 나오는 아바의 ‘댄싱 퀸’은 물론, 데이빗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 토토의 ‘홀드 더 라인’ 등 명곡들이 나온다. 베놈의 마지막 춤을 함께 하기 위해서~
사진 제공: 소니 픽쳐스 코리아 제공
평점: 2.5 / 5.0
관람평: B급 향취 풍기며 추는 그들만의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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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를 입은 허수아비는 어떻게 자유를 되찾는가?
해당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스펜서>를 본 후의 감정은 이렇다. 한 움큼의 답답함과 불안함 그리고 약간의 상쾌함. 감독은 극이 시작하기 이전에 앞서 “비극”임을 일러둔다. 실제 다이애나 스펜서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많은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선뜻 비극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이애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뜻을 고집했고 자유를 꿈꿨다. 나는 이러한 삶을 ‘모난 돌이 정 맞은’ 것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올곧게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세상이 뒤틀려 있기에 장애물이 많았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3일간의 샌드링엄 별장 생활은 다이애나에게 비극이다. 찰스 왕세자의 외도와 삭막한 영국 왕실의 예법은 쉴 틈 없이 다이애나의 목을 조여 온다. 그러나 자신을 해치기보다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스펜서>는 깊은 불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을 포착하며 비극 속에서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드레스를 입은 허수아비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연휴를 위한 만찬은 마치 군인들의 특별작전처럼 비밀스럽고도 엄격하게 준비된다. 왕가 사람들의 임무는 삼시 세끼 그 음식들을 먹고 연휴를 즐기는 것. 그 증거로 별장에 들어올 때 잰 몸무게보다 체중이 늘어나면 된다. 정해진 음식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옷을 입고 모여 정해진 일을 하면 된다. 이들은 로열 패밀리로서의 기품을 보여주며 얌전히 일을 수행하면 된다. 영국 왕실의 체면과 품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왕실의 예법에 맞게 모든 것의 쓰임과 용도는 촘촘하게 정해져 있다. 사냥용 꿩, 애완용 강아지는 각자의 용도와 쓰임이 분명하며 그에 걸맞은 의무도 있다. 의상조차 아침식사용 의상, 저녁식사용 의상, 외출용 의상 등등 용도에 따라 계속 갈아입어야 한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이애나 역시 그레고리를 향해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이냐고. 그레고리는 ‘감시자’다. 그렇다면 다이애나의 역할과 쓰임은 무엇인가? 왕실에서 바라는 것은 촘촘히 정해진 임무를 얌전히 수행하는 인형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스스로를 ‘왕세자비’가 아닌 ‘엄마’로 규정한다.
고루하고 엄격한 전통의 집안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찰스 왕세자의 외도는 암묵적으로 용인되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지정된 옷을 바꿔 입는 것만으로 말이 나돈다. 파파라치는 언제나 렌즈를 겨누고 있고 소문들은 언제나 뒤를 쫓아온다.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에게 기대한 건 예쁘게 차려 입고 얌전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비추는 인형이었지만, 다이애나는 독립적이고 당당하며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역할과 상충하는 자아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비극의 시작이다.
불안한 내면의 아름다운 시각화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다이애나에게 가장 고역은 식사시간이다. 최고급 요리들이 즐비해 있지만 한 입 뜨는 것조차 어렵다. 다이애나를 옥죄어 오는 차갑고 숨 막히는 시선들 속에서 남편이 준 진주 목걸이, 내연녀에게 준 것과 똑같은 그 목걸이는 더 깊이 다이애나의 목을 조여 온다.
다이애나의 처절한 내면적 정신적 불안과 공황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통스럽게 목걸이를 뜯어버리려 할 때도, 진주를 으득으득 씹을 때도 심지어 그것을 토해낼 때도 의상과 미술에 눈이 갈 정도로 완벽히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화면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을 때 다이애나는 말한다. “아름다움 따윈 쓸모 없”고,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스펜서>의 미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훌륭하지만, 관객에게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그의 내면에 집중해 주기를 호소한다.
한순간에 외부에서 왕실로 편입된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과 관심은 사랑과 미움을 모두 담고 있다. <스펜서>는 거대한 구조와 억압 속에서 한 여성이 지워지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완벽한 크리스마스 그리고 KFC
크리스마스이브, 한참 동안 길을 헤매던 다이애나는 겨우 길을 찾는다. 약속시간에 늦었음에도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가는 여유를 부린다. 해야 할 일을 앞두고 걱정만 하면서 딴짓을 하는 것처럼 왕가와 만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유예해 보려는 듯 말이다. 마침내 다이애나가 직접 운전하는 차가 아름답고도 완벽한 균형과 대칭으로 조각된 샌드링엄 별장의 정원에 들어선다. 카메라는 높은 부감 숏으로 정원에 들어서는 다이애나의 차를 따라가고 타이틀이 떠오른다.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타이틀 시퀀스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윌리엄은 왕실의 전통에 따라 꿩 사냥을 해야 한다. 다이애나는 이를 막기 위해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낡은 스펜서 가의 유물을 입고 총성이 빗발치는 사냥터로 뛰어든다. 결국 윌리엄의 꿩 사냥은 무산되고 다이애나는 두 아이와 함께 별장으로 돌아간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전통에 맞선다. 세 모자는 차를 타고 별장을 떠나 KFC를 사 먹는다. 그 어떠 만찬보다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이들에게는 분명한 해방이자 탈출이다.
딱딱한 대칭의 정원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들어온 다이애나는 두 아들과 노래를 부르며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따라 나아간다. 자신이 정한 길을 자신의 리듬대로 나아간다.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자 한 다이애나의 선택은 ‘기적’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는 유의미한 한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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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00년의 기다림
여기 요술램프 지니처럼 3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나타났어요.
영화 3000년의 기다림으로 상대방의 소원을 들어주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과연. 주인공은 어떤 3가지 소원을 빌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로 3000년의 기다림 영화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감독 / 각본 : 조지 밀러
출연진 : 이드리스 엘바, 틸다 스윈튼
개봉일 : 2022년 05월 20일
평점 : 7.80
스트리밍 : tvN , NETFLIX, 왓챠, 웨이브
기획 의도
알리세아 비니는 남편과 헤어지고 외롭게 사는 중년 민속학 학자다.
이스탄불로 출장 간 알리세아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왠지 눈길을 잡아 끈 병 하나를
사게 되고 호텔로 돌아와 손질을 하다가 실수로 병을 열게 된다.
풀려난 진은 알리세아에게 소원을 빌라고 말하지만,
알리세아는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이에 진은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여담
영화 3000년의 기다림 주인공인
틸다 스윈튼은 우리에게 설국열차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는 흥행에는 대실패했다.
코로나 시기에 개봉한 작품으로 영화 홍보에 실패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로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니 요정에 대해 한 번 더 재탕?! 하는 느낌으로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모으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후기 및 결말
영화 3000년의 기다림 결말을 살펴보자면.
알리세아 비니는 3가지 소원을 말해야 하는데,
첫 번째 소원으로는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는 소원을 빌며 본인 집의 영국으로 향하게 된다.
두 번째 소원으로는 소원으로 죽어가는 정령을 깨우기 위해 말을 하게 한다.
세 번째 소원으로는 정령에게 자유를 선사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클리셰를 덕지덕지 붙여놔서
영화를 보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전계와 흐름으로 이어간다.
킬링타임으로 심심하다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3000년의 기다림 어떨까 싶다.
한줄평 : 당신의 3가지 소원을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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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가장 손쉽게 불안을 감추는 방법
<독립시대>는 인상적인 자막으로 시작한다.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공자의 다짐과 그 이후엔 무엇을 해야 하냐는 제자의 물음. 곧바로 영화의 배경이 될 타이페이가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 부자 도시로 거듭났음이 텍스트를 통해 전해진다. 이어지는 이미지는 직전의 묵직한 말과는 상반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롤러스케이트를 비추는 클로즈업. 그리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인물이 롱샷으로 비춰진다. 잘 나가는 연극의 연출가로 유추되는 한 남자는 롤러스케이트에 의지한 채 끊임없이 움직이며 기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입도 발도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 기자 또한 끝없이 몸을 움직인다. 언뜻 보기에 그는 무척이나 자유로운 예술가로 보인다. 기자들과 함께하는 공적인 자리에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라니.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 모습에서 그의 불안을 읽었다. 정박된 카메라, 끝없이 움직이는 인물. 풍요를 맞이한 대만 사회는 평온해 보이나, 실상은 혼란스럽다. 제자의 질문을 곱씹게 된다. 풍요, 그 다음엔 무엇이 오는가. 다음 컷은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표절 의혹에 휩싸여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절망한 인물. 그의 친구인 몰리는 묻는다. “그런 비극적인 몰골로 희극을 하겠다고?” 거창한 공자의 말로 시작한 이 작품은 전례 없던 풍요의 시대에도 여전히 불안한 청년들의 일상을 비추며, 본격적으로 당시의 대만 사회로 시점을 이동시킨다.
이 작품의 시작을 장식하는 인물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버디이나, 사실 작품에서 그의 비중은 크지 않다. 대신 이 작품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몰리, 그녀와 약혼을 앞두고 있는 재력가의 아들 아킴, 몰리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비서인 치치, 그리고 그녀의 보수적인 애인 샤오밍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이 작품을 얄팍하게 요약하기는 쉽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네 사람의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의 이야기.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 갈등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 이 정도로 이 작품을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 너머의 이야기가 있다. 네 명의 주인공 중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치치다. 치치는 몰리의 비서로서 표절 사건의 해결사이자, 겉보기에 모난 데 없는 호감형의 인물로 모두의 환심을 사는 인물이다. 게다가 뛰어난 미모로 극중에서 말하는 ‘보조개 미소’를 항상 장착하고 다니는 치치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다. 언제나 친절한 그녀에게 수많은 남자들은 관심을 표하고, 몰리를 비롯한 여자들은 그녀에게 크게 의지한다. 이런 다정한 성격 탓에 그녀는 수많은 갈등 상황의 중재자가 된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도 아닌 갈등 상황들에 휘말려 들어가는 그녀. 어느새 그녀의 매력적인 ‘보조개 미소’는 타인에 의해 ‘위선’적인 미소로 재단 당한다. 표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몰리의 형부에게 그런 가식적인 미소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정도는 그녀에게 익숙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한 친구인 몰리마저 그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그 미소로 눈길은 끌겠지만, 미소 속에 숨겨진 속은 모르겠어.” 사실 이런 치치의 태도는 영화의 태도와 닮아있다. 치치가 언제나 ‘보조개 미소’를 달고 사는 것처럼, 이 영화는 웃음기를 잃지 않는다. 잠깐 진지한 생각을 해볼라치면 그런 시간은 사치라는 듯 관객을 웃긴다. 물론 몰리와 치치, 치치와 샤오밍의 관계에도 어두운 면은 있다. 그러나 작품은 주인공들의 얽히고설켜있는 관계를 이용해 진지한 순간을 손쉽게 빠져나간다. 가끔 인물들이 자신들의 고뇌를 논하느라 진지해질 법하면, 아킴과 버디를 필두로 한 인물들이 등장해 웃음을 주는 식이다. 뼈가 있는 웃음이더라도 웃음은 웃음이다. 참으로 희극적인 영화가 아닌가.
웃음은 사실 불안을 숨기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나 또한 그에 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나에게는 어떤 불행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능력, 심지어는 그 불행을 그저 웃음거리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나의 재능 중 하나다. 이렇게 불안을 끝없이 통제해 온 나는 내 삶이 내가 연출하는 영화이길 바랐다. 노력한다면 원하는 결과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연극에 가까웠다. 아무리 불안을 웃음으로 감추어 봐도 변수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등장하고 NG가 난다. 영화라면 다시 찍으면 될텐데 연극은 그렇지 못하다. OK컷만을 건져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자꾸 많은 것이 어긋난다. 오프닝 시퀀스에 버디는 말한다.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이 곧 인생이에요.” 그의 말은 단순히 연극인으로서 자신의 삶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연극이다. 매일을 연기하고, 매일을 실패한다. 그리고 실패를 감당하고 사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희극 같은 이 작품을 잔뜩 웃으며 즐기고 나면, 아름다운 엔딩이 우리를 반긴다. 서로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건네며 헤어짐을 말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얼굴에 아쉬움이라곤 없어 보인다. 치치는 말한다. “모두가 타인에게서 안정감을 찾는다면 자기 자신은 누가 지키겠어?” 이때 실질적인 주인공인 치치가 어떤 ‘독립’을 하는 엔딩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아름답게 어긋난다.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진 샤오밍에겐 어쩐지 후회가 느껴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을 열자, 치치가 그를 반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산뜻하게 말하는 치치. 샤오밍은 그녀를 꽉 안는다. 꽉 닫힌 해피엔딩 같은 결말. 그러나 이 아름다운 엔딩은 영화 <아사코>의 엔딩과 겹쳐 보였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음에도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 두 사람.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택했던 여자 주인공을 남자 주인공은 내치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구한 집의 베란다에 선다. 처음 집을 계약할 때는 아름답다고 말했던 강을 보며 남자는 다른 말을 한다. “더러운 강이네.” 여자는 답한다. “그래도 아름다워.” <독립시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둘 사이는 나아질까. 그것은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고 샤오밍은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었다. 실패를 각오하고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사이에 두고 서있던 두 사람은 최소한 지금만은 함께하기를 선택한다. 매일을 연기하고 매일을 실패하는 나이고, 우리이다. 그럼에도 함께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나는 실패에 대해서라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굴 것이다. 또 바보같이 능숙한 연기를 하며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문 앞에 서겠지. 풍요도 관계에 대한 갈증과 불안은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독립’ 없는 ‘독립시대’의 흥미로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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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술과 공명과 기억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서 감상 후 작성하였으며,
줄거리가 일부 서술되어 있습니다. 영화 개봉일은 2월 1일입니다.*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푹 젖어드는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보시길 적극 추천 드려요. :-)* * *
영화 <애프터썬>은 20여 년 전 11살 소피가 여름방학 끝자락 아버지와 함께 갔던 튀르키예 여행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현재의 소피, 과거의 소피, 여행에서 찍은 캠코더 영상까지 다양한 결의 영상이 섞여 있다.
리조트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부녀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며 여행은 시작된다. 광활한 들판을 달리는 튀르키예의 버스. 영화는 캠코더 줌 소리와 캠코더 속 계단 현상으로 조각조각 깨진 영상으로 시작하면서 이것이 영상임을 선명하게 느끼게 만들더니, 이내 버스를 같이 탄 것처럼 가장 현실적인 시야 안에 관객을 둔다. 덕분에 새삼 깨닫는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과 축적이 아니라 편집과 서술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을.
촬영한 사람의 1인칭 시선이 반영된 캠코더 영상처럼, 기억은 사실 1인칭으로 서술된 후 편집된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에게 공명한 것만을 서술할 수 있으며, 서술한 후에 비로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방에 앉아 캠코더 속 오래된, 변해버린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 아빠의 모습이야말로 ‘기억을 기억’하는 우리 모습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숨소리만 들리는 이 영화 속 새벽을 가만 집중해 바라보게 되는 것도 어쩌면, 새벽은 모든 추억이 가장 선명하게 요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관객에게 소피와 아빠의 기억을 설명하고 보여주기보다, 그냥 그들의 기억 속에 관객을 덜렁 내려놓는다. 덕분에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들처럼 기억에 숨어든 기분마저 든다. 남의 부녀 여행에 별안간 동승해 버린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열심히 두 사람의 세계를 파악한다. 그러다 보면 영화를 본다는 느낌 그 이상으로, 이 영화를 내 기억으로 새로 쓰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을 적극적으로 이끈다. 기억이란 이렇게도 적극적인, 그럼에도 아주 선명할 수만은 없는 행위인 것이다.
수백 가지 감상문이 가능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튀르키예의 높은 하늘과 어마어마한 광량을 함께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따끈한 햇볕 아래에서 콧날이 시큰거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이 영화의 어떤 순간이 나에게 공명했는지 서술해 보기로 한다. 결국 나에게 이 영화는 나의 서술로 기억될 테니까.
기억은 공명하는 것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단지 지금 내 눈앞의 상대뿐 아니라 그의 과거와 미래까지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순간은 비장하고 묵직한 운명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아주 여상한 순간, 가볍게 찾아온다. 미리 준비할 수도 없게.
튀르키예를 여행하는 중 딸에게 질문을 받은 아빠 캘럼의 순간이 그러했다. 11살 소피는 몰랐지만 그 질문은 삼십대 아빠가 아닌 과거의 11살 캘럼에게 던져진 것이었다. 아빠가 지금 11살이라면 무엇을 할지, 아빠의 11살 생일은 어땠는지. 아직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자신의 11살을 떠올리며 캘럼은 질문을 피하려다가, 캠코더를 끄고서야 대답한다. 조금 슬펐던 생일, 자신이 했던 선택을. 그러자 소피는 잘 선택했네, 하고 은은하게 대답한다. 십 년이 두 바퀴나 지난 지금, 그때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가 지금 말해주는 것이다. 잘했다고. 과거의 자신에게 공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0대의 아빠가 11살 소피에게 해준 말이, 언젠가 30대의 소피에게 공명할지 모른다. 지금은 고향에 소속감을 느끼고 행복하다는 소피에게, 훗날 생각이 변한다 해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을, 아빠는 그래서 남겨두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얘기든 할 수 있는 사이를 꿈꾼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언젠가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고 유별난 듯이 느껴질 때, 더 이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가 온다면 그때, 지금 이 대화가 떠오를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앉아있던 바다의 부표처럼 이 기억 위에 앉아 쉴 수 있도록.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변하고, 어떤 말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게 된다.
마찬가지로, “내일도 신날까?”라는 말에 대한 대답도 이미 두 사람의 생애 다른 순간에서 이미 대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어쩌면, 여전히 섬광 속 아빠를 꿈에서 보는 현실의 소피가 잠에서 깨어 기꺼이 아기 침대로 향하는 선택에는 이런 시간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서술되는 것
아빠와 소피는 기억을 서술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물속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고, 캠코더를 들고 다닌다. 그러나 시간을 물성에 잡아 두는 데에만 얽매이지도 않는다. 담아둘 수 없는 시간도 성실하게 마주한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하나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도 자기들의 행위에 집중하고, 온천에서 머드를 발라 줌으로 미안한 마음을 녹이기도 하면서.
그들이 함께 사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대화에서 금방 드러난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으로 같이 있음으로 같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소피의 말에서 실은 참 그리웠다는 마음이 읽힌다. 같이 있는 가족이 놓치기 쉬운, 애틋한 마음의 무게를 늘 그림자처럼 인지하고 있다. 아마 그 마음이 두 사람의 여행에 보조를 맞춰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눈높이가 그럭저럭 맞는다. 철없는 말도 이따금 툭툭 뱉는 아빠와, 사람들의 어린애 취급마저 여유롭게 소화할 만큼 성숙한 소피는 친구처럼 다양한 대화를 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화장솜으로 얼굴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주는 저녁처럼, 서로 등을 맞댄 느낌으로 나란히 있다. 함께 있지 못한 사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런 시간을 공들여 쌓았을 것만 같다. 호신술이라며 잡힌 손 뿌리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시간처럼, 포켓볼도 아마 저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 시간이 두 사람의 세계를 만들었다.
캠코더에 연결한 호텔 텔레비전 옆에 첩첩 쌓인 몇 권의 책이 두 사람의 세계를 보여준다. <명상하는 법>이라는 가상의 책과 실제 태극권 교본, 마가렛 타이트의 <시, 이야기, 글 쓰기(Poems, Stories, and Writings)>도 놓여 있다. 시인인 동시에 영화인이었던 마가렛 타이트의 책이 놓인 것에 대해, 샬롯 웰스 감독은 독립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갔던 스코틀랜드 영화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라고 대답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자기 손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람의 책을 여행지에서도 읽고 있는 소피가, 훗날 이 순간을 어떻게 서술하고 기억할까.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다. 이 영화 자체가 그 대답임을. 극 중 인물의 미래는 영화 이후의 (관객이 알 수 없는) 선형적 시간이 아닌, 영화 안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억을 서술하는 한, 시간은 회전목마처럼 무한히 순환한다.
기억은 기억되는 것
두 사람의 여행은 적당히 무료하고 적당히 나른하며 적당히 신난다. ‘인스타그래머블’하고 요란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여행답게. 두 사람은 튀르키예 구석구석을 살뜰하게 즐긴다. 소피의 머리에 실을 감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넣어 짰다는 카펫을 구경하면서. 실을 얽고 짜는 데 재능이 있는 땅, 이야기를 얽고 짜는 데 재능이 있는 땅이다.
그러나 삶은 카펫이 아니어서,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다 읽어낼 수가 없다. 모든 자식들이 다 그렇듯 우리는 생각보다 아빠를 잘 모른다. 이따금 캘럼이 보이는 어두운 면들을 영화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까만 티셔츠를 입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 카펫 더미에 기대서 짓는 표정 같은 것들에서, 밝아 보이는 아빠 이면의 캘럼이 있음을 어림짐작하게 할 뿐이다.
저렇게 대화가 많은 부녀여도, 아무리 소피가 성숙해도, 그토록 꼭 끌어안았어도. 아빠와의 기억은 천천히 차오르는 폴라로이드 사진 같아서, 아주 선명하지도 않지만 다시 인화할 수도 없다. 자식에게 부모의 기억이란 대개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두 사람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착실하게 캠코더에 담는다. 지켜보고 있음을 알기에 돌아보고, 장난을 치면서 이별을 조금 유예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이별은 종결될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는 말로든, 잘 가라는 말로든. 밝은 미소로든, 서글픈 미소로든. 우리는 다만 피할 수 없는 종결의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소피는 이제 성인이 되어 그 시절의 기억을 재생해 볼 수 있지만, 어떤 대화와 어떤 뒷모습, 어떤 씁쓸한 미소 같은 것들은 미처 캠코더에 다 담기지 못했다. 그러나 괜찮다. 수영복을 입은 소피의 어깨나 머리칼을 따끈따끈 데워 주었을 어느 여름의 태양 빛처럼, 직면하지 않아도 흔적을 남기는 것들이 있다. 기억으로 서술되고 공명하고 그렇게 끝내 추억이라는 이름을 얻은 어떤 순간들이 있다. 과거의 사람이 되어 버린 그 시절의 아빠는 이제 섬광의 기억 속에 있다. 서술되지 않은 것들까지 총합하여 소피는 아빠의 카펫과 다른, 자신의 기억을 써내려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때에야 비로소 뒤에 있는 이를 인지할 수 있다. 등 뒤의 존재를 생각하며 깨닫는다. 삶은 본질적으로 긴 이별임을, 즐겁고 평온한 순간조차 우리는 다 알 수 없는 서로를 더듬거리며 멀어져 가고 있음을, 함께 있는 순간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그럼에도 서로를 서술하고 서로 공명하고 깊이 기억하는 일이 사랑임을.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따끈한 어떤 여름 햇살 같은 사랑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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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원고지 삼아, 풀을 연필 삼아
이렇게 아름다운 제목은 오랜만입니다. 시에는 운율과 함의가 있듯이, 조경에도 나름의 운율과 함의가 있다는 것을 지금껏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연결사, 정영선 조경가가 땅에 썼고, 땅에 쓰고, 땅에 써갈 시들을 잔뜩 읽고 돌아왔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땅에 쓰는 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땅에 쓰는 시>는 2024년 4월 17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땅에 쓰는 시
Poetry on Land
Summary
도심 속 선물과도 같은 선유도공원부터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경춘선 숲길까지··· 우리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정원을 탄생시키며 한국적 경관의 미래를 그리는 조경가 정영선. 공간과 사람 그리고 자연을 연결하는 그의 사계절을 만나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정다운
출연: 정영선
인간의 삶에 자연의 생기를
잎이 흐드러진 커다란 나무, 그 아래의 그늘, 계절별로 달리 핀 꽃들, 물가에 오리와 새들이 거니는 공원에 가면 저도 모르게 "참 좋다"는 말이 새어 나옵니다. 역시 사람은 자연과 어울려 살아야지, 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도심에서 자연을 느꼈던 그 모든 순간에 단 한 번도, 조경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시를 설계하려면 나무며, 꽃이며 모조리 뽑아버리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죠. 대한민국 도심 속 자연이 이렇게 생기를 띠는 것이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정영선 조경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정영선 조경가는 1세대 조경가이자 국토개발기술사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입니다. 그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어떤 풍경을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자생종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인간의 건축물과 자연의 식물을 조화롭게 융화합니다.
영화 곳곳에는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만 엿보이는 순수한 열정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건물의 부감도가 출력된 대지에 파스텔로 슥슥 색을 입히며 공간을 설계해 나가는 모습에서는 '조경사'라는 직업의 멋이 양껏 느껴지기도 했죠. 그 설계도와 실제 경관을 맞물려 보여주는 영화적 구성은 그가 즐기면서 하는 일이 어떤 엄청난 결과물로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며 새삼스러운 존경심을 불러일으킵니다.
⊙ ⊙ ⊙
땅에 써낸 시의 함의
정영선 조경가는 어렸을 적부터 시인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꼭 문자를 이용해 시를 쓸 필요는 없다고 여기며, 조경사의 길을 걸어오셨다는데요. 그래서인지 <땅에 쓰는 시>에 등장하는 정영선 조경가의 작업들을 보다 보면, 풍경 속에 담긴 의미들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공간은 서울아산병원 신관이었습니다. 그곳은 정영선 조경가가 만든 풍경이 왜 '땅에 쓰인 시'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마치 울창한 숲에 온 것처럼 나무가 빼곡한 병원 속 작은 공원. 그곳에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나무 의자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곳에 잠시 머물거나 산책로를 걷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정영선 조경가는 이곳은 그래야만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병환이 깊은 환자들은 자라나고 피어나는 식물의 생명력을 느끼며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어야 했고, 맘 편히 울 수조차 없는 보호자는 나무가 드리워준 그늘 아래에서 마음을 달랠 수 있어야 했고, 힘들고 지친 의료진들은 치열한 현장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잠시 쉴 수 있어야만 했죠. 이렇듯 조경은 단순히 나무와 꽃을 아름답게 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를 쓰듯 아름다움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일, 그가 가꿔온 풍경은 조경이 이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 ⊙ ⊙
머지않은 때에 정영선 조경가가 땅을 원고지 삼고 풀을 연필 삼아 쒀온 살아 숨 쉬는 시 하나를 직접 경험하러 가보려 합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인간이 가꾼 자연 속에서, 과연 저는 어떤 감정들을 느끼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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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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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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