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2-03-22 17:41:25
철학적 고찰은 없고 영상미와 액션만 자랑한다
<극장판 소드 아트 온라인 -프로그레시브-: 별 없는 밤의 아리아> REVIEW
필자는 원작 시리즈인 소드 아트 온라인을 단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 걸즈 앤 판처 최종장 같이 내용이 이해 안가면 어떡하나 우려가 많았지만, 다행히 본 영화의 내용은 1부의 리메이크 이기에 서사 이해에 전혀 문제는 없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소드 아트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에서 나갈 수 없게된다는 설정은, 마치 현재 실제로 가상현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비판적 시선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긍정적, 부정적 시선은 이를 심도 깊게 다뤄낸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같은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지만, 본 작품은 단순 오락성 액션만 존재할 뿐, 철학적 고찰은 전무해 안타깝다. 이러한 고찰을 할려고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한 호소다 마모루의 "용과 주근깨 공주" 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가상현실 이라는 심도 깊은 주제를 단순히 유희성 소재로 소모해버린 것은 아쉬울 따름. 다만 액션씬은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띄일 정도며, 캐릭터들은 현재로서는 과하게 통상적인 재패니메이션 캐릭터들이라 특이점이 없지만, 빛을 되게 아름답게 활용하는 영상미가 일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영화 외적인 부분으로 4DX 포맷이 다채롭고 세밀하게 설정되어있어, 4DX라는 포맷의 기술적 측면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는 주목할만한 작품이라 생각이 든다. 심도 깊은 철학적 고찰은 전무해 예술적인 깊이는 없지만, 오락성 재미는 갖추고 있는 영화라 평하고 싶다. 솔직히 현재 TVA 기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는 오락성 마저도 전무한 캐릭터팔이만 존재하는 영화도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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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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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이 꼰대가 필요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목을 매달 밧줄을 산 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집에 들어오던 전기도 끊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오토’(톰 행크스). 정장을 차려입고 죽을 준비를 다 마친 그. 그러나 세상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드디어 죽을 수 있겠다 싶은 타이밍마다 이웃들이 그를 방해하기 때문. 새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과 '토미'(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부부는 주차도 제대로 못해서 오토의 속을 뒤집어 놓고, 아무 때나 먹을 걸 가져다준 뒤 오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오토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레이첼 켈러)'의 묘비 앞에 앉아 이웃들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를 못한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의 인생 최악의 순간, 원치 않았던 이웃들의 관심 덕분에 그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신작 <오토라는 남자>는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영상화한 코미디 작품으로, 인생 최대의 트라우마에 빠진 한 남자가 어떻게 삶의 의지를 되찾는지를 그려낸 착실한 드라마다. 동시에 건실한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향한 오토의 사랑과 회한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코미디로 시작해서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이 정공법은 꽤 성공적이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석에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웃음과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오토라는 남자>를 그저 준수한 코미디이자 가족 영화로만 남겨 두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 오토를 연기한 배우 톰 행크스의 존재 때문이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배우'이자 '미국의 얼굴'이라 불린다. 그의 연기력이나 흥행력을 고려하면 미국의 송강호라고 해도 될 터. 그런 그가 소품이라고 불릴만한 영화에 출연했으니, 한 가지 질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체 톰 행크스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물론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만 영화 속에도 짐작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오토라는 남자>는 단순히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특히 민주주의를 누리는 모두가 곱씹어 봐야 할 이야기에 가깝다.
웃픈 꼰대, 오토
<오토라는 남자>는 코미디로 시작한다. 오토의 괴팍함이 주재료다. 그의 하루 패턴을 훑으면서 그가 얼마나 괴팍한지 보여준다.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오토. 눈이 오는 날이면 자기 집 앞 인도까지 눈을 치운다. 눈이 오지 않으면 아침을 먹고 바로 동네 순찰에 나선다. 주차장에 주차증이 없는 차가 있는지, 도로와 주차장을 분리하는 문은 잘 잠겨 있는지, 쓰레기장 분리수거는 잘 되어 있는지, 자전거 보관대가 아닌 곳에 자전거를 두고 가지는 않았는지, 신문이나 광고가 동네 미관을 해친 건 아닌지. 일일이 확인한다. 오토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그 누구도 독설을 피할 수 없다. 새로 이사 온 이웃도,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도, 갈 곳 없는 길고양이도.
하지만 그가 괴벽해진 이유를 알고 나면,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웃기지 않다. 그의 괴팍함은 트라우마를 숨기려는 방어 기제다. 임신한 소냐와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을 떠났던 오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오토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는 다행히도 무사했지만, 불행하게도 소냐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유산했고, 그녀의 하반신도 마비됐다. 오토는 뒤늦게 버스 회사가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버스를 운행해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이는 마음속 깊은 흉터가 됐다.
그 후로도 오토는 자꾸 다친다. 장애인이 된 아내를 무시하고, 그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점차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아예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졌다. 원칙을 어기는 사람을 싫어하고, 비난한다. 마트 직원이 로프 길이와 가격을 잘못 계산하면 크게 화내고, 회사에서 부사수가 상사로 임명되자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웃들이 혹시나 잘못된 행동을 한 건 아닌지 감시하면서 매일 순찰을 돈다. 그렇기에 오토는 더 이상 우습지 않다. 웃프다.
오토의 트라우마 극복기
동시에 <오토라는 남자>는 눈물을 자아내는 드라마다. 오토의 병든 내면을 가감 없이 펼쳐 보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그가 치유되는 과정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소냐와 사별한 뒤, 트라우마가 더 심해지자 오토는 결국 죽기로 결심한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무덤에 가서 소냐와 대화를 나눈다. 조만간 당신 옆으로 가겠다고. 당신과 재회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라고. 오토는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 천장에 목을 매달기도 하고, 차 안에 가스를 채워서 질식사도 시도한다. 전철에 몸을 던지거나 머리에 총을 쏘는 것도 선택지에 있다. 그는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점차 죽어가면서 아내와 행복했던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에서의 첫 만남, 레스토랑에서의 첫 데이트, 졸업식과 프러포즈, 신혼 생활까지. 오토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치유다.
이상한 일이 생긴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오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다. 하루는 앞집에 이사 온 마리솔이 창문을 고치겠다며 사다리를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 하루는 한때 절친한 친구였으나 사이가 멀어진 루벤의 집 라디에이터를 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무 때나 찾아오는 마리솔은 대뜸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어느 날에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소냐의 제자, 말콤이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부탁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쫓겨났다면서. 편견 없이 자기를 대해줬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왔다고. 새 가족도 생긴다. 눈 내린 날에 얼어 죽기 직전이었던 고양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오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오토는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연다. 자살하지 않아도 이승에서 죽은 아내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깨닫는다. 이웃에게 베풀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소냐의 뜻을 이어가면 된다. 소냐가 말콤에게 그랬고, 마리솔이 자기에게 그랬듯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이웃과의 협력 덕분에 그는 마침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죽음을 포기하고 아내의 유품도 정리한다. 그렇게 오토는 자기 삶을 살아간다. 덕분에 그의 장례식에서 동네 이웃들은 슬퍼하기보다는 기쁘게 웃을 수 있다. 자살을 꿈꾸던 그가 편안히 죽음을 마주한 건 그가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 오토 같은 꼰대가 필요한 이유
여기까지만 보면 <오토라는 남자>는 한 노년 남성이 평화를 되찾는 사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오토의 꼰대스러움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영화에 숨어 있는 사회적 함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루벤의 집 라디에이터를 고치면서 오토는 이렇게 한탄한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더 이상 사람들이 이웃들의 일에, 공동체를 관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각자 살기 바쁘다고. 실제로 오토가 순찰할 때 다른 이웃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웬 오지랖이냐는 식이다. 파편화된 시민의 모습은 다른 장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살하기 위해 전철역을 찾은 오토. 그가 선로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다른 남성이 먼저 선로에 떨어져 버린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오토. 그러나 그는 주위 승객들의 반응에 더 놀란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만 찍을 뿐 아무도 도우려 나서지 않는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공중의 쇠퇴를 경계했다. 그는 기술의 변화로 인해 다른 산업 구조가 등장하고, 사회가 거대해지고 조직화되면 사람들이 점점 비인격적인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작중 듀이가 전망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오토가 퇴사할 때, 같은 부서 직원 한 명은 축하 케이크 위에 그려진 오토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반으로 잘라버린다. 그 결과 민주주의에 필요한 가치나 조건, 그리고 공동체는 훼손된다. 개인은 많지만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오토 말고는 아무도 거리에 신경 쓰지 않고, 공동체가 합의한 규칙을 중시하지 않듯이. 중요한 의사결정은 권력과 재력을 지닌 사람에게 넘어간다. 건설 회사가 오토와 이웃들의 집을 불법적으로 매수하려 해도 그들은 권력자를 막을 힘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토의 꼰대스러움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거대해진 사회에 대응해 '거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듀이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듀이는 이웃 공동체, 지역 공동체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모인 이들끼리 서로 자유롭고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오토와 이웃들은 솔직하게 소통하고 협력해서 루벤의 집을 지켜냈다. 그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될 위기도 타개할 수 있었다. 이웃 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가지고 있었던 오토의 '순찰'에 힘입은 결과였다. 비록 예민하게 원칙을 따지고 방식이 거칠기는 했지만. 뒤집어 보면 <오토라는 남자>는 상이한 정체성 간에 대화 대신 갈등만 가득한 현재 미국 사회를 겨냥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원작 소설과 달리 이웃 주민의 인종이나 성 정체성이 수정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얼굴'인 톰 행크스가 오토 역을 맡은 건 꽤 의미심장하다.
물론 <오토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원작 소설을 읽었다면 내용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452 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의 내용 중 잘려나간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스웨덴에서 먼저 영화화한 <오베라는 남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스웨덴 버전은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분장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호평받은 수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누구와 함께 극장을 찾든 간에 <오토라는 남자>를 보고 나면 옆 사람에게 감사를 전할 일이 생길 거라는 사실이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이 영화의 진가가 담겨 있다. 엔딩 크레디트는 오토와 마리솔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서툰 그림으로 가득하다. 또 홀로 사는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는 문구가 같이 등장한다. 그러니 영화관을 나설 때 마음이 따뜻해지지 따뜻해지지 않기는 어렵다.
A(Acceptable, 무난함)
오토의 순찰이 계속될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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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에놀라는 성격도 좋고 똑똑하고 씩씩해
친오빠는 셜록 홈즈
태어났는데 아빠가 원빈. 아빠가 유재석. 엄마가 탕웨이. 비슷한 맥락에서 친오빠가 셜록 홈즈라는 점은 참으로 신기하다. 오빠 셜록은 정말 똑똑하다. 그리고 잘생겼다. 목소리도 섹시하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오빠 셜록의 직업은 탐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에놀라의 직업도 탐정이다.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에놀라. 나도 오빠만큼 멋진 탐정이 될래! 꿈은 쉽지만 현실은 그만큼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파리만 휘날리는 에놀라 탐정 사무소. 사건 하나라도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 오빠는 나라 돈을 훔쳐간 사람의 행방을 찾은 일을 하는데 여동생인 에놀라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소녀 한 명이 에놀라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사건의 경위를 묻는 에놀라. 의뢰인은 금세 사정을 전한다. 의뢰인의 사건은 친언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의 영국은 노동환경이 열악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여동생의 입장에선 언니가 걱정이 된 것이다. 좋았어! 첫 번째 사건이야!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고 처음 일거리가 들어왔다. 우리의 에놀라 홈즈는 혈혈단신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그 과정 속에서 협동과 신뢰, 연대의 의미를 깨우치면서.
이걸 기다렸지
<셜록> 시리즈 중 최신판이 나온 지 좀 됐다. 이 후더닛 장르 맛집이있던 미드 <셜록> 이후로 뭔가 그럴듯한 추리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나이브스 아웃> 정도? 이 영화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을 맡았던 드라마가 워낙 이런 특성을 잘 살려서인지 글쓴이 같은 후더닛 팬들에게는 좀 아쉽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전작 드라마 <셜록>의 설정 일부를 따 온 영화다. 헨리 카빌이 컴버배치가 맡았던’ 셜록’으로 나오고, 소설의 흑막과 가장 주요한 조력자가 후반부에 나온다. 비단 인물관계뿐만 아니라 서스펜스적인 측면을 잘 살렸다는 점이 영화의 강점으로도 작용한다. 영화의 주요 플롯은 ‘그래서 의뢰인의 언니는 어디로 갔는가?’이다. 이를 추적하는 이야기의 구성이 좋았다.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 이 증거가 왜 중요한지도 다 알려주고. 에놀라의 추론에 카메라가 동행하며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 영화에서 최종 보스까진 아니더라도 중소형 보스(?)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 보스의 계급 설정도 에놀라가 맞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좋은 설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치한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스릴러만 강조된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썼듯 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의 가능성이다. 여자 탐정 캐릭터가 그동안 영화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의 기억 속에는 아마 없던 것 같다. 심지어 ‘명탐정 코난’의 코난도 남자 캐릭터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유럽의 시대 특성상 여성이 주목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무작정 여성 혼자서만 원톱으로 끌고 가는 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핍진성이 성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오빠 셜록, 어머니, 어머니의 조력자 이디스의 존재를 배치해서 에놀라가 주체적으로 서기 위해서 타인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부각했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지금 당장 구글에 ‘밀리 바비 브라운’이라고 검색하면 그녀의 인스타그램이 나온다. 순간 보고 내가 아는 얼굴 아닌 줄 알았다. 분명 뭔가 수수한 이미지인데 케이트 블란쳇이 연상되는 화장법이 느껴졌다. 단순히 화장법뿐만 아니라 배우는 이 캐릭터에 빙의한 듯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똑 부러지는 똑순이 캐릭터는 좀 식상하다. 그리고 제4의 벽 부수는 것도 어디선가 많이 봤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적지 않은 곳에서 봤던 캐릭터 세팅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능수능란하게 이끈다. 이 캐릭터 해석에는 기존에 많이 봐왔던 ‘셜록’ 드라마와 영화판에서 볼 수 있던 해석이 돋보인다. 이는 영화 연출에서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에놀라의 조력자로 나오는 헨리 카빌의 연기와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도 좋았다. 전자 헨리 카빌은 로다주의 셜록, 컴버배치의 셜록과는 다른 느낌의 연기를 했다. 선배 셜록 둘 보다 보다 더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셜록은 과제가 있다. 로다주와 컴버배치가 보여준 것처럼 고지능의 뇌를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에놀라의 조력자로서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버텨주며 사건의 중요한 열쇠로 활약한다. 후술 하겠지만 영화에서 셜록의 지나치게 비중이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헨리 카빌이 맡은 역할은 이를 뒷받침하듯 내적으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인물은 후반부에서 기존의 셜록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게 감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영화는 꼼꼼한 설명을 놓지 않았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맡은 어머니 홈즈 역시 이중적이다. 사회운동가인 어머니 홈즈. 여기서 이 어머니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에놀라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연대의 대상이 되어 엔딩의 디딤돌이 되어준다. 이 배우가 연기를 통해 극에 설득력을 부여하려면 체형,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와 제스처로 주는 신뢰감이 필수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를 이해하고 있는 듯이 극에서 등장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빨아들이며 따뜻한 어머니 연기를 보여준다. 이 사람은 장난기도 있고 성격이 깊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딸 에놀라에게 ‘난 가끔 너를 독립적으로 키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여기서 이 인물이 대사 하는 문장 내용부터 억양까지 어머니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을 잘 강조했다. 베테랑의 클래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새로운 해석
영화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사건 해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코난의 사건이 있다. <바스커빌 가의 개>나 <주홍색 연구>가 그렇다. 만약 이런 사건의 재해석이 궁금했던 팬 분들이라면 살짝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여성 노동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 그래서 셜록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소시오패스적인 측면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장르적인 재미를 중점으로 전개했던 소설, 드라마와는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 구성이 되어있다. 이를 위해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소설을, 영화의 주제와도 맞게 살짝씩 변형한 점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에서 최종 흑막이 드러나는 부분은 이 이름을 말하는 배우의 연기가 좋기도 했지만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적인 측면이 중반을 넘어서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한번 더 꺾었기 때문이다. 이 흑막의 동기 때문에 원작 소설과 전작 영화, 드라마의 팬들은 ‘원작 파괴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불호 여론에 대해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흑막 캐릭터 묘사의 역사를 보면 사이코패스적인 측면만 강조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빌런 유형은 우리가 많이 봐왔다. 대표적으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은 이런 빌런으로 갖고 왔으면서 동시에 그런 맥락을 부여했다. 글쓴이는 감독이 의도한 것 같지만 이런 디테일이 다른 영화들의 흑막들과는 좀 다른 점처럼 느껴진다.
아쉬운 것이 드문드문
영화는 유쾌하고 재밌게 달린다. 제4의 벽을 넘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유쾌한 입담도 재미있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상큼 발랄한 로맨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단점은 또렷하다. 우선 첫 번째. 셜록의 비중이 너무 많은 듯하다. 물론 어머니 홈즈가 말한 대로 이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극에서 혼자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셜록의 도움을 받는 부분은 아쉽다. 후반부 주제적인 측면에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똑똑한 소시오패스인 셜록이 극후 반부 의외의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결정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든다. 헨리 카빌의 카리스마로도 인물의 기능적인 활용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다. 또 구체적으로 초반에 셜록이 어떤 사건을 승계받는다. 이때 이 인물이 사건을 승계받은 것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맥거핀이라기엔 인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마냥 그렇지많은 않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군데군데 살짝 헐겁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느껴진다. 아무리 당시 시대상이 여성 혐오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좀 지나칠 정도로 에놀라를 애 취급하는 것은 아쉽다. 몇몇 장면은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뭐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었고, 현대에 반복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발상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런 말들이 나쁜 게 아니니까. 그런데 꼭 나이 든 중년의 남자가 에놀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핵심 키워드인 ‘여성들과의 연대’를 위해 극단적으로 설정한 부분도 몇몇 보인다. 가령 경찰이 살짝 무기력하게 묘사된다던지 하는 부분이 그렇다. 이를 셜록 홈즈의 조력자 포지션이나 튜르스페리의 존재감으로 메꾸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메시지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엔딩을 보여주려고 준비물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아주 칭찬해
그래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단 재밌다. 스릴러로서 뛰어나다. 또 증거를 모아 모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일단 이런 인물 원톱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추후 행보가 궁금해진다’인 것 같다. 글쓴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에놀라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러닝타임을 이끄는 영화를 보는데 안성맞춤이다. 1편보다 훨씬 더 성장한 영화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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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을 후보로 지명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지난 15일(현지 기준), 총 9명의 유색인종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오스카가 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번 성과는 2015년과 2016년 시상식의 남우·여우주연상, 남우·여우조연상 후보가 모두 백인들로만 이루어진 사태를 계기로, 아카데미 측에서 다변화를 위해 수년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영화 <해리엇>에 출연한 신시아 에리보라는 단 한 명의 흑인 배우만 후보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올해는 다행히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됐다.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스티븐 연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으며, <사운드 오브 메탈>의 리즈 아메드 역시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게 됐다. 또한,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 또한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채드윅 보스만이 속해 있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백인이 과반수를 넘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출처 : Variety
여우주연상의 후보로는 비올라 데이비스(<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앤드라 데이(<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vs. 빌리 홀리데이>), 바네사 커비(<그녀의 조각들>), 프란시스 맥도맨드(<노매드랜드>) 그리고 캐리 멀리건(<프라미싱 영 우먼>)이 있다.
국내에 ‘블랙 팬서’로 잘 알려진 고(故) 채드윅 보스만은 사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유색인종 배우가 됐다.
배우의 범주를 벗어나서도 ‘다양성’이 가득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될 것 같다. 클로이 자오 감독(<노매드랜드>)은 에머랄드 판넬(<프라미싱 영 우먼>)과 함께 감독상 후보로 올라, 93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여성이 후보로 오르게 됐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그리고 편집상 총 4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클로이 자오는 4개의 후보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미아 닐(Mia Neal)과 자미카 윌슨(Jamika Wilson)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를 통해 분장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다.
출처 : Variety
이번 아카데미 사상식의 후보자 명단은 지난 해 해외 누리꾼들이 ‘#BAFTAsSoWhite(BAFTA는 백인 중심적)’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비판했던 결과에 대한 피드백과 같다. 논란 이후, BAFTA(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 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는 회원 자격 구성과 수상 투표 절차를 한 달 동안 검토한 후 120개에 해당하는 부분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또한 AMPAS(아카데미 심사 위원회)는 ‘#OscarsSoWhite(오스카는 백인 중심적)’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비난받던 2015년과 2016년 이후, 2015년 25%에 불과했던 여성 회원을 2020년에는 33%까지 늘렸고, 2015년 10%를 차지한 소수민족 회원을 2020년에는 19%로 늘리는 자체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출처 : Variety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가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작품상 후보들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와 <Da 5 블러드(Da 5 Bloods)> 그리고 <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One Night in Miami)>는 모두 흑인을 위주로 캐스팅 되었고, 미국 배우 조합상(SAG Awards) 영화부문 앙상블상 후보에도 모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작품상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2021년이 되어서야 이렇게 다양한 후보들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아카데미를 포함한 영화 산업 전체가 오랫동안 유색인종을 소외시켰다는 ‘깊이 뿌리내린 편견’이 존재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따라서, 아카데미는 이번이 ‘오직’의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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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서는 안될 욕심을 눈에 담다.
기가 막히는 코믹 연기로 늘 웃음을 주었던 유해진 배우가 '왕'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유해진 배우의 인터뷰 중에 첫 등장부터 웃으면 어쩌나 라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친숙한 이미지와 왕의 이미지가 매치가 되지 않아 이질감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기대되는 가운데, 좋은 기회를 얻어 미리 시사회를 볼 수 있었다. 소현 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 ‘올빼미는 11월 23일 개봉 예정이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수, 그는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형익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어의가 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궁에 들어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동생과 떨어져야 했던 경수는 그럼에도 동생의 약값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매사에 입조심을 해야 하는 궁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8년 동안 청나라에 갇혀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며 굴욕적인 역사를 마주한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인조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되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할 올곧은 시선과 알 수 없는 시선이 교차하지만 좁혀지지 않는다. 조선의 존폐보다는 그때의 치욕이 앞서는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형태를 비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인조는 변화라는 낯선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선의 존폐가 달린 문제에 서로 다른 욕망이 비치며 갈등이 극대화된다. 한편 보이지 않는 탓에 소리에 집중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밤이 되며 스산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날 밤, 보지 말아야 할 핏빛 욕망을 눈에 담게 되며 그의 운명 또한 많은 변화를 맞이 한다.
욕심에 눈이 먼 자, 진실에 눈을 뜬 자의 영화의 갈래가 나뉘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진실을 감출 것인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본 것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안 보는 게 좋다고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는 말과 자신을 믿어주던 두 눈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 선명함에 온 힘을 다하여 진실을 지키지만 자신의 지키려 했던 진실이 권력의 힘에 짓눌린 모습을 마주한다. 무모함을 이길 정도로 그가 믿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권력에 눈이 먼 한 왕의 탐욕적인 모습을 그려 기존의 왕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왕으로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끊임없이 손에 쥐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면서도 내내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다만 근엄함과 중후함은 사라진 열등감과 욕망으로 점철된 광기 어린 왕만이 남아있어 조금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에도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펼쳐 그 단점을 감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틈 없는 연기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기에 극의 몰입을 높였다. 특히 경수와 소현세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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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디슈'의 친구이자 '교섭'의 형님쯤 되는
줄을 잘 서야 해
어느 날의 레바논.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있다. 임무 수행 중이다. 외교관 신분으로 타지에 온 두 사람. 치안이 불안정한 레바논이었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재석에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아무 탈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운전 중인 두 사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실제로 이루어졌다. 차 앞에 갑자기 어떤 차량이 끼어들더니 총기를 든 괴한이 내린다. 재석은 납치당한다.
분명 앞길이 창창할 것 같았다. 외무관 민준. 온갖 고생해서 외무고시에 붙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찬밥 신세다. 제5 공화국 시기. 막상 합격했는데 예상만큼 미래가 밝지 않았다. 이왕 외무관 일 할 거면 미국 정도는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어림없다. 학벌에 밀려난 민준. 무려 서울대 출신에 몇 기수 아래인 후배를 부러워하기만 한다.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뭐 방법이 없을까? 뾰족하게 떠오르는 수는 없다. 괜히 심술 나 후배의 책상 위 물건을 어지르는 민준. 속이라도 시원하면 다행이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길. 복도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갑자기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민준. 수화기 너머에선 암호가 들렸다. ‘저는 대한민국 서기관 오재석입니다. 저는 살아있습니다’ 당황한 민준.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외교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또 그 스스로를 위해 주인공은 레바논 출국길에 오른다.
이 집 잘하네
<비공식 작전>은 김성훈 감독의 주특기가 적절히 잘 들어간 영화다. 전작들과 겹쳐지는 설정이 몇 있다. <끝까지 간다>에서는 두 남자가 대결구도를 이룬다. 이야기의 끝을 모를 정도로 강력한 서스펜스 역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하나다. 틈새마다 담겨있는 유머도 장르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음 작품 <터널>은 거대한 재난영화이면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코멘트하는 영화다. 터널을 둘러싼 설계,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보도윤리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들이 떠오른다. 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은 사실상 영화의 진주인공으로 기능한다. 주인공의 처절함과 터널 외부 환경에 대조를 둬 차이점을 부각했다.
이 <비공식작전>은 전작의 특성들이 이어진다. 영화는 후반부까지 서스펜스를 통해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영화는 크게 두 소재(와 인물)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우선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오재석을 구해라’다. 여기에 주인공 민준이 욕망하는 부분인 출세가 극 중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는 인물설정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판수 덕에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다른 서스펜스 요소인 ‘오재석을 구할 돈을 구해라’도 있다. 이 영화에서 판수는 이야기에서 민준만큼 중요한 주인공이다. 장르적으로 톤 앤 매너를 가볍게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판수 스스로의 욕망이 이야기에서 핵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두 서스펜스를 적절하게 유지하다가 한 번에 합쳐 엔딩즈음에 어떤 장면으로 환기시킨다. 이를 위한 각본의 인과관계를 잘 설정했다는 점, 연출로 이를 살린 점은 김성훈 감독의 경험이 오롯이 들어간 부분이다.
두 주인공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은 네 사람이다. 주인공 민준, 납치당한 재석, 택시운전사 판수,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등장하는’ 한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판수는 실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인물의 어떤 특성은 후반부 사건전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판수 서사는 이 영화에서 낯선 이야기에 넓이를 더한다. 익숙하기도 하다. 이 판수가 이야기에서 어떻게 역할하는지는 <끝까지 간다>에서 봤었다. 그러나 본작에서 둔 차이점은 판수가 자연재해같이 불현듯 찾아오는 악당이 아니라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는 점이었다. 영화의 소재 특성상 올해 개봉했던 <교섭>이 떠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 <교섭>과의 차이점은 인물의 입체성에서 온다. 입체적인 판수, 그 판수만큼이나 입체적인 민준이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교섭>에서 황정민 배우가 맡았던 역할은 성자 같아서 재미가 없는 것과 대조되는 지점이다.
영화에서 빌런 캐릭터로서 활약하는 인물이 있다. 김응수 배우가 맡은 안기부장이다. 이 이야기에서 안기부 내지 제5공화국이라는 세팅은 겉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2009년 즈음으로 옮겨도 이야기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안기부가 외교부에 하는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행정부처는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왜 안기부가 이런 역할을 하는가’라는 점은 ‘비공식 작전’이 제목인 이유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민준에게 던진 질문은 ‘네가 하는 고생 그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코멘트하고 있는지를 사진만 등장하고 실질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캐릭터에서 알 수 있다. 당시 안기부의 위상을 생각하면 더더욱 확실해진다. 이 영화가 공식적과 비공식적인 측면이 대조되어 위선적이었던 당시 시대상에 대한 코멘트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자매품 친구들
영화의 소재만 보면 <모가디슈>와 <교섭>이 떠오른다. 이 영화가 앞선 두 작품과 가지는 차이점과 공통점은 직업윤리를 다루는 방식과 액션에 있다. 영화에서 두 인물은 대비된다. 김응수 배우가 맡은 안기부장 역과 김종수 배우가 맡은 외교부 장관 역이다. 이 두 사람은 첫 등장에 입은 의상부터 대비된다. 이 대조는 영화 후반부에 어떤 장면을 통해 더 두드러진다. ‘외교부 내의 학벌로 인해 승진에 차질이 생겼다’에서 시작한 이야기라 이런 전개가 생뚱맞은 감이 없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이 장면이 엔딩부에서 ‘굳이 필요했을까’라는 점 역시 약간 의문점이 드는 구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연장선상에서 이 시퀀스는 꼭 필요했다. <교섭>에서 황정민 배우가 맡았던 역할의 단점은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 인물은 내내 거룩하기만 해서 결함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유머가 적재적소에 들어간 것이 후반부의 직업윤리에 대해 감정이입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영화의 액션에 관한 부분 역시 <모가디슈>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 우선 영화를 보고 나면 <모가디슈>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디테일에 관한 부분에서는 확실히 차이점이 느껴지기는 하나 <모가디슈>를 봤던 관객분들이라면 감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를 봤던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에 등장한 액션들이 감독의 시그니쳐 유사하게 연출됐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후반부 액션과 별개로 총기를 사용한 시퀀스를 통해 영화에서 무난한 긴장감을 만들어줘 이 영화의 메시지 이전에 상업적인 노선까지 적절히 잘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주지훈, 하정우 배우는 능청맞게 연기 정말 잘했다. 특히 하정우 배우는 전작 <수리남>에서보다 더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훨훨 날아다닌다. 반대로 조력자 캐릭터들이 살짝 작위적으로 연출된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관람에 큰 영향이 갈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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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찰
인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목표와 이를 저지하려는 고난,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동료, 빠질 수 없는 해학 마지막으로 이를관통하는 하나의 문장. 언뜻 보면 재미있는 영화의 요건들 같기도 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선함이 이 자리를 채우고 있긴 하나 결국가장 고전의 조건들이 재미를 보장한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마의 장벽이 존재하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한 번 빠져들면 결국 시간을 바쳐가며 찾아보게 된다는일본 실사화 콘텐츠 <골든 카무이> 이다.
해당 콘텐츠를 강력 추천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만화부터 소개하겠다. 다양한 밈과 짤의 주인공이나 많은 이들이 그 제목을알지 못한 채 암암리에서 마니아들끼리만 일독을 권하는 만화 <골든 카무이>. 배경은 러일 전쟁 이후 훗카이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황금 쟁탈전이다. 주인공 ‘불사신 스기모토(야마자키 켄토 분)’ 는 현재는 수감된 한 아이누가 숨긴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를 찾기 위해 탈출한 수감자들의 문신을 그 단서로 삼으며 아이누 소녀 ‘아시리파(야마다 안나 분)’ 와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같은 대략적인 줄거리에서 우린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황금 찾기, 아이누, 일본 병사, 문신 탈옥 죄수? 프리즌 브레이크? 맞다. 이 만화는 많은 오마주를 기반으로삼아 독보적인 길을 질주하는데, 이 오마주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하게 작성된 글이 있을 정도로 아주 많은 레퍼런스들 위에 쌓아 올려진스토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키워드로 돌아와서 즉 일본 병사와 아이누 소녀가 황금을 찾으러 떠나는 과정에서 짐승을 치타탑 할(다져먹을) 뿐인, 그것도 실사화를 왜 봐야 하는 거지?
실사화에 대한 거부감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활자로 보면 아름답기 그지 없던 말들이 배우의 입을 통해선 그저 견디기 힘든 장면이 될뿐이라는 것. 그들의 멋진 전투가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티 나는 CG 대전이 된다는 것 역시. 하지만 에픽한 사운드트랙 위로 어딘가 익숙한 로케이션이 펼쳐지고 역사극의 한 장면처럼 도주극이 펼쳐지는 것에서 오는 감동은 어느 극영화 못지 않다. 책장에서 튀어나온 것같은 캐스팅에 대한 언급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한 편의 거대한 서사로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실사 영화에 비해 <골든카무이>는 이러한 장점이 더욱 부각된 작품으로, 홋카이도 전역에 퍼져 있는 거대 짐승들을 제외하고는 설원을 횡단하는 서부극에 가까워 그 거리감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다소 추천함직 하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서두는 어쩌다 필요하게 된 것일까.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스기모토는 5분에 한 번씩 본인이 불사신 임을 강조한다. 만화에서야 소개나 선언처럼 보여지나 배우가 대사로써 이를 내뱉는 순간 시청자는 한 가지를 직감할 수 있다. 이것은 소개 이상의의미를 갖는, 자기 암시라는 것. 스기모토는 곰과 대치할 때, 적병들을 뚫고 달아날 때 해당 대사를 읊는다. 즉 위기의 순간에 외치는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마치 ‘난 오늘 죽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죽이진 못해. ‘ 라고 말이다. 이는 스기모토가 전쟁터에서 얻은 칭호이자 각성의 순간이다. 흔히 감동을 유발하거나 주인공의 꺾이지 않을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스기모토의 그 주문은 작중 시간을 기준으로그 과거와 현재의 쓰임이 엄연히 다르다.
죽음을 종용하는 전쟁터 속에서 스스로에게 자꾸만 불사신이라 되뇌이는 스기모토는 일종에 죽지 못한 자로 삶을 저주하는 상황이다. 죽은 소꿉 친구라는 계기가 그를 전쟁터에서 죽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타인을 죽여야만이 가능해지는 명제다. 그렇게 악귀가 되어 살아남은 스기모토는 친구의 부탁을 위해 빈 손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으며 그런 그의 좀비 상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후에도 지속된다. 이를 이루기 전까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라스트 미션을 받은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 만나게 된 소녀 아시리파는 삶의 숭고함을 일깨워주는 존재이다.사냥을 한다는 것은 짐승의 생명을 앗아가되 내삶을 이어주는 행위. 식의 행위로 그들의 죽음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는 단순 목표와는 다르다. 삶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죽은 친구와 고향에 두고 온 소꿉친구와 재회하겠다는 목표와 달리 스기모토는 삶을 저주로 대하지 않는 법을 아시리파와의 여정에서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아시리파를 향한 스기모토의 맹목적인 헌신은 단순 은혜 갚기가 아니다. 짐승의살을 받았기에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화폐를 사용하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장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공존과 교환, 존재하는 의미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유. 아시리파는 그렇게 스기모토에게 삶 그 자체가 되어주고시청자 역시 삶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재정의하게 된다.
영화는 원작 만화의 초반부로 아시리피와 스기모토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의기 투합, 문신 인피를 노리는 다른 세력들의 등장 등을 소개하는 파트 정도로 다뤄진다. 다만 다수의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등장하는 절정 씬 덕에 연대와 경쟁이 명확해지고 주연 인물들의 재회가 가능해진다. 이는 달리 보면 극장판을 통해 이 이야기는 다름 아니라 이 둘의 관계성이 주제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훗카이도 토착민을 일컫는 말 ‘아이누’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근대문명이 들어오기 전 가장 본연의 인간처럼 묘사되는 아시리파의 지혜그리고 그녀를 통해 다시 인간이 되는 스기모토와의 여정이 긴 대화 시퀀스 없이도 전달되는 것은 단순 원작을 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클리셰를 한 번 꺾어가며 여정의 시작에 힘찬 도약을 내딛는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가족이 있는 아시리파에게는 험난할 것이라예감하고 늘 그랬듯 대신 그 짐을 짊어지고자 한 스기모토 앞에 아시리파는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손을 내민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나란히 나아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영화 이후의 이야기는 드라마 <골든카무이: 홋카이도 문신죄수 쟁탈 편> 으로 제작되어 넷플릭스에서 동일하게 스트리밍 중이다. 아시리파와 스기모토의 이후 여정이 궁금해졌다면 한층 더욱 풍성해지고 기괴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드라마로 나아가는 것 역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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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와 태형 시사회에 가다! 영화 마이뉴욕다이어리 시사회 후기 | 씨네마사지 ?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초대 받은 황보와 태형
이들이 본 마이뉴욕다이어리는 과연 어땠을까...?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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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티저 예고편
모두가 행복한 사랑을 바라는 ‘아카리’(하마베 미나미)와
한 발 뒤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유나’(후쿠모토 리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둘.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되고
‘아카리’와 ‘유나’에게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
“너도 내 마음과 같을까…?”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로 가는 길
열일곱, 우리들의 성장형 청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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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메인 예고편
"티모시 샬라메의 완벽한 변신" 밥 딜런의 인생을 노래하다 [컴플리트 언노운] 메인 예고편 공개! 2월 26일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