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기 전이었다. '텔레그램'이라고 하는 것을 적당히만 알던 나. 충격적인 기사를 읽게 된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 누군가가 누구를 조종해서 성착취 물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묘사가 현실로 이어졌다. 곧이어 이 가해자가 몇 만 명이라는 기사가 우후죽순 뜨기 시작한다. 제일 첫 번째로 이 기사를 읽던 때가 생생하다. 강박증이 심한 나. 강박증이 심하면 신체화 증상이 제깍제깍 나타난다. 읽고 헛구역질을 했다. 큰 스트레스가 쑥 들어오니 몸이 반응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추적단 불꽃의 한 멤버는 현재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영상 내부 검열이 아닌 성 범죄물의 코드를 검사하는 'N번방 방지법'이 입법과정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19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엔데믹 추세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 트위터에 #일탈계라고 검색하면 이상한 사진들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지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서로에게 반문해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에 이 질문을 대신 전해주는 영화가 업로드됐다,
생각하지 못했던 문자
문자가 왔다. 트위터 DM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닉네임이 뭐 이렇게 생겼어? 발신자는 대충 확인하고 문자 내용을 본다. 엥? 내 사진이 도용됐다고? 뭔 소리야? 정체 모를 이상한 인간은 누군가의 사진이 도용됐다고 말해줬다. 내 사진이 왜 도용이 되지? “장난하지 마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는 발신자. “장난치지 마세요, 누구세요?”라는 답장에 발신자는 “걱정돼서 알려드리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링크 안을 들어갔다. 충격적이었다. 다 발신자의 사진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거 누가 올렸는지 아세요?”라고 묻는 발신자. 문자 수신자는 어떤 이의 소속 학교와 이름을 말해준다.
지옥이 시작됐다. 문자 발신자의 닉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로 한다. 그의 닉네임은 갓갓이었다. 발신자의 이름을 한 번에 맞춘 수신자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사진을 학교에 뿌리겠다”라고 말한다. 텔레그렘 깔고 들어오라는 갓갓. 갓갓은 대화방에서 발신자의 이름, 전화번호까지 모두 대 버린다. “아빠랑 친구들이 네 사진 보면 좋아하겠다 그렇지?” 발신자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뿌리지만 말아주세요”라고 답한다. 갓갓은 이 답에 간단한 문장으로 응수했다. “옷 다 벗고 얼굴 가리지 말고 사진 찍어. 10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사진 유포 시작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2019년의 서울, 일요일 아침. 한겨레 소속의 김완 기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입수한다. 애들이랑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던 김완 기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제보가 왔다는 말이었다. 메일의 제목은 “텔레그램 아동 유포자 제보”였다. 뭔 소리야? 이걸 기사로 쓰라고? 아동 포르노라는 소재는 이미 예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이거 뭐 기사 되려나? 적당한 일거리로 생각했던 김 기자. 김완 기자는 메일에 딸려온 첨부파일을 천천히 확인했다. 충격적이었다. 한 10대 여학생이 9천여 명이 담겨있는 텔레그렘 단톡방에서 자기의 신체가 담겨있는 영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켜볼 수 없었다. 기사를 송고하는 김 기자. 기사가 발표된 이후 김완 기자의 신상이 털렸다는 제보 메일이 가득했다. 한 텔레그렘 단톡방에서 저급한 언어로 자기가 모욕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김 기자. 누군가가 김 기자의 아들부터 아내의 이름을 목표로 신상 털기를 주문했다. 포상은 “노예 사진 1회 사용권”이었다. 한겨레는 이 사안을 같이 움직이기로 한다. 같이 한겨레에서 일을 하던 오연서 기자는 이 소재를 취재하기 앞서 그렇게 무거운 마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 기자 역시 알면 알수록 분노할 수밖에 없는 성착취물 범죄의 민낯을 맞이하게 된다. 이게 이러다가 끝나는 선이 아니었다. 진짜 성착취물 범죄의 몸통이 ‘박사’라는 유저였다는 제보 메일이 왔다.
더 이상 알면 안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구에 살았던 익명의 제보자 조커. 조커의 지인이 ‘박사방’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박사를 찾아와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했다”라고 심하게 울었다는 말을 전하는 조커. 나체 사진 뿐만아니라 ‘박사 노예’라는 인장까지 찍힌 성착취물이 있었다. 박사와 갓갓의 사기 수법은 교활했다. 갓갓은 트위터에 자기 신체 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에게 해킹 파일이 담겨있는 메일을 보냈다. 박사는 고액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개인 정보를 빼냈다. 다른 주동자 코알라는 아이돌 팬들이 많이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만들었다. 수십 명의 피해자들을 모으며 성범죄 가해자들을 린 치하던 갓갓과 박사. 알면 알수록 이들의 범죄수법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 대구에 살았던 익명의 제보자 조커. 조커의 지인이 ‘박사 방’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박사를 찾아와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했다”라고 심하게 울었다는 말을 전하는 조커. 나체 사진뿐만 아니라 ‘박사 노예’라는 인장까지 찍힌 성착취 물이 있었다. 박사와 갓갓의 사기 수법은 교활했다. 갓갓은 트위터에 자기 신체 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에게 해킹 파일이 담겨있는 메일을 보냈다. 박사는 고액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개인 정보를 빼냈다. 다른 주동자 코알라는 아이돌 팬들이 많이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꾀어냈다. 박사 방을 모니터링하던 한겨레 기자들. 갓갓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이미 이 소재로 보도물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추적단 불꽃’이다.
요란하지 않고 정확하게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의 제작진, 추적단 불꽃, 한겨레의 두 기자들을 중심으로 이 ‘텔레그렘 N번방 사건’에 대해 추적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이 범죄를 구성하기 위해 가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가해자들의 수법은 더러웠다. 몇 번 방에 누가 들어있고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자그마한 성행위 특징까지 세세하게 담겨있던 N번방. 영화는 이런 범죄 수법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범죄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모양을 애니메이션처럼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영화가 보여줬던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범죄에 있어 피해자라고 하면 역시 성착취 물에 나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때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해 끔찍한 사진/영상물의 내용은 구술로 전하고, 이 외에 범죄 방식을 추적할 때는 시각 애니메이션을 통해 내용을 전개한다. 이때 사운드-시각 그래픽 - 카메라 워킹까지 몰입에 탁월했던 연출 방식을 활용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역시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영화 뒤의 사람들
영화 <스포트라이트>부터 시작해서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다. 역시 이 작품도 언론인들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언론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차이점은 실화인 범죄 묘사가 현명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N번방과 박사 방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범죄다. 또 텔레그렘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잡히기가 굉장히 어려운 매개체 기도 하다. 이 두 매개체의 특성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정서 중 하나인데, 이 심리 묘사에도 역시 주안점을 둔 것이 영화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몇 편을 찍으셨던 것 같은데 특정 정당 지지를 떠나 경험치가 드러나는 연출법이었다. 적절한 거리를 두며 분노하고, 추적 과정까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가 좋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있고 나서의 몇몇 행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일부 피해자들이 '트위터 일탈계(자기의 신체를 일부러 노출시켜 특정 유저들에게 관심을 받는 행위)'나 스폰을 구하려고 했었던 사람이라는 점에 '이 피해자들이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어렵지 않게 이 피해자들이 일부였다(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70107/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8637.html/)라는 걸 찾을 수 있다. 일탈계를 운영해서 법적으로 처벌받는 건 그때 가서 따질 일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끔찍하고 역겨운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라는 지점일 것이다. 또 이 피해자들(스폰, '일탈계' 운영)이 실질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멀쩡한 바닥을 핥거나 '박사의 노예'라며 모멸감을 주고, 또 어쩔 땐 신체 훼손 같은 걸 하며 자기의 성적 행위가 담긴 영상을 신상과 함께 공개되는 짓을 받아도 된다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주빈과 문형욱 같은 범죄자들이 딱 한 만큼만 처벌받고 고통받길 바란다. 이 영화는 그냥 성욕이 있는 우리 일반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성욕과 이 영화에 나온 성범죄는 아예 궤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며 몇몇 10대와 20대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성범죄자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