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야기2022-09-19 07:39:40
우리가 친구였던 적이 있을까
영화 파수꾼의 불편한 진실
-파수꾼-
"우리의 10대는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입니다. 넘치는 에너지에 비해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필요한 절제와 자성은 부족하기 일쑤입니다. 보통의 10대는 성숙한 말과 행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친구 관계에서의 다툼도 많고 즐거움도 많은 시기, 10대 남학생들의 관계에서는 때때로 '힘의 논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적당한 사과만 해도 되는 친구, 사과조차 필요없는 친구,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친구까지 친구마다 미묘하게 다른 관계의 차이는 대등하지 않은 힘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여기서 힘이란 무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 집에 돈이 많은 것, 부모님이나 형제가 권력자인 것 등 다양한 종류의 힘이 있습니다. '내가 더 힘이 세니 내 말에 따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와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 '파수꾼'의 기태(이제훈)처럼 말이죠. 영화 '파수꾼'은 10대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이제훈과 박정민을 비롯한 주조연들의 뛰어난 연기, 시간의 순서를 뒤섞으며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정교한 플롯 등 높은 완성도를 갖춘 윤성현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파수꾼'을 추천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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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평범한 여행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여행을 떠올릴 때가 있다.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그 여행의 공기와 분위기를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 여행은 마음속 깊이 남아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때 겪었던 즐거운 기억과 부모와 다퉜던 기억까지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당시 부모의 나이가 된 자식의 입장에서 그 여행은 지금의 내 위치에서 그 당시 부모의 어려움과 감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추억이기도 하다.
사실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것을 부모에게 바라지만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그 당시의 상황이 그것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딘가로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은 자신들의 휴양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아니 부모와 자식 모두가 같이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비싼 여행비를 들여가면서 여행을 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여행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식들은 그때 부모의 마음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된다.
아빠와 딸의 평범한 튀르키예 여행을 따라가는 이야기
영화 <애프터썬>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소피(실리아 롤슨 홀)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고 아이도 있다. 그가 과거 아빠의 캠코더에 녹화된 여행 영상을 보며 떠올리는 과거의 모습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영화 속 캘럼과 아내는 이미 이혼한 상태이고, 캘럼은 딸 소피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아빠 캘럼은 튀르키예의 한 호텔에 예약을 하고 딸과 휴가를 보내면서 시간을 보내려 한다.
캘럼이 예약한 호텔은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캘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호텔로 예약했고, 여행 내내 소피에게 미안해한다. 이제 막 사춘기가 된 소피는 그런 아빠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런 아빠와 잘 지내려고 한다. 소피의 눈에는 주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언니와 오빠들의 행동들에 관심이 더 가게 되고 그런 호기심이 자꾸만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짓은 아니고 여행의 일반적인 루틴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다.
수영을 하고, 선탠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아주 일반적인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여행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국적인 튀르키예의 풍광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빠와 소피가 영화가 담는 전부다. 때론 소피는 아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상한 아빠는 소피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내 사과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아빠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영화 후반부 침대에 앉아 펑펑 우는 캘럼의 뒷모습은 무척 공허하고 슬퍼 보인다.
어려움을 감추고 추억을 선사하려 노력하는 아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아주 행복한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꽤 보기 좋다. 서로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면서 작은 농담을 주고받고 주변 여행지에 쇼핑을 다니면서 우스꽝스러운 스트레칭 동작을 같이 하기도 하는 두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특히나 영화 중반에 두 사람은 튀르키예 전통 무늬로 만들어진 카펫을 구경한다. 두 사람이 멍하니 같이 카펫을 보고 앉아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소피가 수영장에서 노는 사이에 캘럼은 혼자 카펫 가게를 찾아 한 카펫을 구입한다. 그 카펫을 자신이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를 영화는 알려주지 않지만 영화 후반부에 비추는 성인 소피의 집에 깔려있는 카펫은 아빠가 구입한 그 카펫 무늬다. 그것이 실제로 아빠가 선물한 것이든 소피가 한참 뒤에 비슷한 무늬의 카펫을 산 것이든 그것이 아빠와의 여행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동영상 캠코터로 녹화된 그 당시의 영상을 보고 있는 성인 소피는 그 여행 즈음 아빠의 나이가 되었다. 조금은 지쳐 보이는 그 모습은 여행지에서 지쳐 보이는 아빠의 모습과 겹친다. 어린 소피가 아빠에게 ‘11살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아빠 캘럼은 답을 하지 못한다. 그 당시 자신이 처한 현실은 11살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해주면서도 그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는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 만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인 소피가 그 여행지에서 본 것들은 새로운 것들이다. 다른 커플들의 스킨십 장명에 특히 눈이 자주 가게 되는데, 그때 본 동성애 커플이나, 자신이 경험한 첫 키스 등은 평생에 걸쳐 성정체성과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지만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조금 적극적이고 과감한 장면들은 아빠와의 추억과는 별개로 소피의 기억에 남았다.
아련한 추억, 이제 여행 갔던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된 소피의 시선
소피의 11살 아빠와의 여행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소피는 과거의 영상을 보면서 그 당시 아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빠가 최선을 다해 행복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아주 평범한 여행의 모습을 담는 것 같지만 그 여행은 소피가 자라면서, 또 성인이 되면서 계속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다. 영화는 어쩌면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순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샬롯 웰스 감독의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년기 시절 빛바랜 사진같이 남아있는 기억들을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담아 보여준다. 유년기에 받은 추억의 감정을 잘 살린 영화 <애프터썬>은 57회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39회 뮌헨 국제영화제에서 시네비전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부모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또한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성인들이 과거 자신들이 부모와 갔던 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약간은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는 화면을 보면서 관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을 꺼내보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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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 틱... 붐!>시계 소리의 강박에서 벗어날 노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0년 뉴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존(앤드루 가필드)'은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8년 간 준비한 뮤지컬의 워크숍을 앞두고 마지막 작곡 작업에 몰두한다. 그런데 서른 번째 생일과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몰려온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꿈꾸는 여자 친구 '수전(알렉산드라 십)',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의 모습을 한 수많은 사건은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한정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틱틱(tick, tick...)'거리는 시계침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가운데 존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틱, 틱... 붐!>은 천재 뮤지컬 제작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린-마누엘 미란다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렌트>로 잘 알려진 조너던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 <틱틱붐>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1인극으로 만들어졌다가 라슨의 죽음 이후 3인극으로 각색되어 관객에게 공개된 바 있는 이 록뮤지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미란다 감독의 영화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존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정감 있고 심플한 발라드와 빠르고 직선적인 선율이 흐르는 록 음악의 만남에서는 청춘의 목소리만이 지닐 수 있는 남다른 호소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틱, 틱... 붐!>의 매력은 음악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보이듯 끊임없는 시계 소리가 존을 시간의 압박 속에 던져놓는 가운데 그 압박에 대처하는 존의 이야기는 음악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의 감동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영화는 존의 일상 속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난이라는 시계 소리를 보여준다. 존이 애써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불현듯이 현실을 일깨우는 연체된 공과금 고지서가 대표적이다. 이 고지서는 'Sunday'라는 제목의 넘버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노래는 더 빨리 음료와 음식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손님들의 제스처와 카운터의 소란, 레스토랑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예약 전화가 울리는 벨소리의 압박을 유머스럽고 판타지스럽게 풀어낸다. 달리 말해 존의 일상에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간의 압박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실제로 마이클의 도움을 받아 얻게 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시간의 압력과 지각의 위험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닌다.
이에 더해 존의 대인관계도 시계의 강박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현대 무용가인 여자친구 수전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댄스 학교로부터 강사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에 그녀는 어찌해야 할 찌 깊은 고민에 빠지고, 존에게도 그의 의견을 알려달라며 뮤지컬 워크숍 공연 외에 또 다른 기한을 존의 캘린더에 추가한다. 또한 사랑만큼이나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의 문제마저 존을 더 옥죄어 온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 프레디가 응급실에 응원해 생사의 기로에 서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배우와 뮤지컬 제작자의 꿈을 공유해왔던 절친 마이클이 에이즈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자 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계의 강박에 시달리며 피폐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지속과 포기 사이에 선 존의 커리어 역시 시계 소리에 에워싸여 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인 존은 아직 작곡조차 다 마무리하지 못한 자신의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성취와 견주며 심한 좌절과 절망감을 맛본다. 이러한 존의 모습은 마치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자신의 나이를 비교하며 좌절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다. 그러다 보니 강렬한 열정의 소유자인 존도 내심 배우였다가 경력을 포기하고 잘 나가는 광고 마케터로서의 삶을 누리는 마이클을 부러워한다. 마이클의 아파트와 자신의 집을 비교하는 'No More'이라는 노래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보잘것없는지 그 처절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때 일상, 대인관계, 그리고 커리어까지 시계 소리에 의해 통제되는 존의 삶은 결코 낯설지 않으며 남일 같지 않다. 이미 현대인의 일상과 우리의 삶도 인간 본연의 생체 리듬과 해와 달의 움직임에 맞춘 시간이 아닌 시계가 정의한 시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시계 밖의 시간>의 작가인 제이 그리피스에 따르면 시계로 측정하고 확인하는 '시계 시간'은 철저히 만들어진 개념이다. 산업화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립됨에 따라 노동력을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시계가 적극 활용되었고, 그 결과 시계가 정밀해지고 시계 소리가 자주 들리면 들릴수록 사람들의 삶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전적인 예술가와 안정된 회사원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에게 시계 소리는 유달리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관객 입장에서도 그의 삶을 옥죄는 수많은 기한과 마감은 자연히 각자의 아침을 깨우고 스케줄을 일깨우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존의 예술가로서의 도전, 열정, 그리고 노력에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존의 귓가에 스치는 시계 소리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그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하며,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이의 바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노래에는 시계의 권력에 종속되기를 거부한 채 보헤미안으로서 자유로이 살고 싶어 하는 욕망과 절실한 소망이 가득하다. 이는 뮤지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악상을 떠올리는 수영장에서의 노래, 뮤지컬의 여주인공인 '카레사(바네사 허진스)'과 현실 속 여자친구인 수전이 같이 부르며 삶의 진짜 가치를 알려주는 노래, 무력함과 외로움이 극에 달해 홀로 무대에서 부르는 넘버까지도 모두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이유다.
이처럼 시계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채워나가자는 영화의 메시지는 서른 번째 생일을 대하는 존의 태도 변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생일이 그저 엄청난 부담감을 간기는 마감 기한일 뿐이었다면, 영화의 끝에서 마주하는 생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다. 존 본인만이 만들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모인 특별한 순간이자, "시계를 멈춰. 시간을 잡아"라고 말하는 첫 노래 가사의 내용을 직접 실천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워크숍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덕분에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대신, 늘 그랬듯이 다시 시나리오를 쓰고 작곡을 해야 하는 존의 인생을 보여주는 전개 역시 인상적이다. 기계적인 시간과 기한에 맞춘 작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그 끝 이후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자고 말하며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조너던 라슨의 뮤지컬을 영상화한 <틱. 틱... 붐!>은 그와 동시에 전기 영화이기도 하며, 그러다 보니 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때 시계 소리에 시달리던 존이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이야기에는 더 큰 힘이 실린다. 라슨은 자신의 이름을 브로드웨이에 알린 뮤지컬 <렌트>의 초연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은 그를 시간에 종속시키는 한계가 될 수 없었다. 그와 그의 작품들은 시간을 초월해 지금까지도 멋진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라슨의 인생은 그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틱. 틱... 붐!>은 언제나 우리 귀를 괴롭히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며 누리자고 노래한다. 그 소망과 메시지 덕분에 <틱. 틱... 붐!>은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건져 올린 수작이자, 동시에 유독 뮤지컬 영화가 많은 올해 초겨울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뮤지컬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계의 노예에서 시간의 주인이 되는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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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는 없다.
이 글은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퀴즈에 출연한 김종기 이사장은 학교 폭력 근절에 앞설 수밖에 없었던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끊어지는 것 같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에 마음이 아팠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더 심한 형태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최근 촉법소년을 필두로 청소년들에게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직설적인 제목에 연기 귀신들로 채워진 듯한 출연진을 앞세워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직시하고 있을지. 포스터 가득한 비장하고도 비열한 분위기를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권력 없는 아이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 건물은 왜 엘리베이터가 없어.
피해자의 핸드폰 (불법) 감식을 위해 강호창이 허름하다 못해 내일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 계단을 오르며 한 말이다.
강호창의 한 몸을 편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존재. 출발은 같은지 몰라도 도착하는 속도만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존재. 엘리베이터는 영화에서 권력이나 재력(돈)의 동의어처럼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결국 이 "엘리베이터"의 유무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잣대가 되었다.
피해자 김건희는 사회적 배려 전형으로 국제 학교로 오게 된 인물이고. 가해자들은 그 점을 이용했다. 바꿔 말하면 가해자들은 권력과 돈이 든든한 방패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점이 건희를 바닥에서 기게 만들었고. 가해자들은 건희를 보며 키득거릴 수 있게 만들었다.
무언가 부족하다 해서 미워해야 할 근거는 되지 않으며. 반대로 가졌다 해서 없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 당연해지는 순간. 강호창처럼 투덜거리게 된다. 왜 원래 "있어야"할 것이 없냐고. 그것은 "없는" 너희의 잘못이지 있는 상태에 익숙해진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다.
문소리, 설경구 두 정상회담.;뭔가 엄청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배우 설경구와 문소리는 영화 [오아시스]에서 만났다.
배우로서의 초반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서로의 이름은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빚어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고. 서로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 법한 내공을 가진 배우가 되어 이 영화에서 재회했다.
젊은 시절(?)의 두 배우는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파격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힘이 들어가 있었다면. 이제 두 사람은 자신의 나이와도 얼추 맞아떨어지는 역할로 한 화면에서 만났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가장 점잖지만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편안한 옷을 입은 모습으로.
덕분에 한 사람이 퇴장하면 한 사람은 등장하고. 누군가가 울고 있다면 또 누군가는 그 모습을 경멸스럽게 쳐다볼 뿐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그 어떤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 인물에게 힘이 치우치지 않은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그만큼 두 배우가 누구에게도 짐을 전가하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는 뜻일 테니까.
두 배우의 영화를 보고 자란 내겐, 스치듯 안녕을 고하며 지나쳐가는 모든 장면들이 그저 귀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쁜 이유.;주인공이 가장 나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보호자들은 그 누구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이기적이고 나쁘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릴까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앞다퉈 자신의 자식들을 권력의 그림자 안으로 숨기는 와중에도. 영화 속에서 가장 "나쁜 놈"을 꼽으라면 나는 결말로 가기도 전에 강호창이라고 말할 것이다.
강호창, 혹은 영화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태도를 취한다.
자신의 아들도 학교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야, 강호창은 자신의 직업의식을 십분 사용한다. 무시했던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진실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화는 후반부에 강호창이 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과정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다지 돈독해 보이지도 않던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이때부터 둘도 없는 부정(父情)의 탈을 쓴다.
이 과정에서 실제 피해자인 건우의 존재감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그러니 강호창이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장면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후반부의 반전(?)을 빼고서라도. 선택적으로 정의를 부르짖는 강호창의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마치면서
흔히 하는 말처럼 연기 구멍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 속 메시지는 아쉽게도 피해자보다는 설경구 부자의 억울함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걸 보며 대체 무엇을 느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이야 예상을 했지만.
트릭은 너무 쉽고. 정작 써야 할 증거들은(자동차 블랙박스, 수표 일련번호 등) 법정에서 들이밀지도 않는다.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 같은 법정 신(Scene)이 나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글의 TMI]
영화관에서 팝콘 등의 음식물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내 의지로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2022년 4월 25일 이후로 팝콘을 상영관에서 먹을 수 있게 되어서, 기분도 낼 겸 팝콘 하나를 샀다. 이직 후 주 4일 근무라 쉬는 평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며 먹는 팝콘은. 당분간은 꽤 기분 좋은 경험으로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물론 와그작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한동안은 사 먹을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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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함을 잃지 않는 클래식한 로드 무비
색채를 통한 성장의 미장센
긴야의 붉은 욕망
초반부, 긴야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남성성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후, 긴야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여성에게 집착한다.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른 여성을 만나기 위한 욕망이 투영된 수단이 바로 붉은색 차이다. 싫다고 거부하는 아케미를 억지로 안으려고까지 하며 상대방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고, ‘욕망’에만 급급하던 긴야를 상징한다. 아케미와 유사쿠와 함께 여행을 할수록 욕망으로 가득하던 붉은색 차는 턱에 막혀 굴러가지 않고, 제동을 못해 온갖 이물질을 뒤집어쓰며 더럽혀진다. 붉은 욕망의 색채가 퇴화된다. 후회가 담긴 유사쿠의 조언과 아케미와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남성성에 대해 학습하며 성장한다.
유사쿠의 노란 성장
노란색은 사랑과 창조,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지닌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시마 미쓰에(바이쇼 치에코)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이다. 노란 손수건을 달아서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노란색은 창조, 생(生)의 이미지이다. 부정적 의미로는 비겁함과 불안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내가 초혼이었을 당시 아이를 유산한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 시마 유사쿠는 못된 말을 퍼부으며 폭력성을 드러내고 집을 나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아내의 상처는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비틀린 남성성’을 드러낸다. 출소 후, 긴야의 모습을 통해 과거 자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자각하고 성찰한다. 세 인물의 여행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져다준다. 노란색이 창조와 생(生)의 이미지로 시작해, 불안정한 비겁함이다가 다시 사랑과 행복의 이미지로서의 의미를 갖기까지가 유사쿠의 전반적 성장 서사이다. 인물의 발전을 한 가지 색채를 통해 표현하였다.
종착지는 유바리
여행이라는 장소의 이동을 따라 각 공간에서 경유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 인물이 성장하는 공식을 가진 로드 무비. 긴야와 유사쿠의 성장 서사가 교차되고, 비틀린 남성성을 가졌던 두 남성의 반성과 성찰의 테마가 주된 플롯이다. 로드무비의 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세 인물의 종착지는 유바리이다. 유사쿠의 과오 청산과 긴야의 깨달음은 유바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긴야와 아케미, 그리고 집 앞 나무에 매달려 펄럭이는 수많은 노란 손수건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선 뭉클한 감동마저 선사한다.
여성 서사의 공백은 1977년도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하였지만, 유쾌함만큼은 넘어선 야마다 요지 감독의 <행복의 노란 손수건>. 유쾌한 로드무비를 찾던 관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영화일 것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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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그림자, 왕과 왕을 만드는 자. 영화 <킹메이커>
영화 <킹메이커> 포스터
킹메이커(Kingmaker, 2022)
장르 : 한국, 드라마 │ 감독 : 변성현
출연 : 설경구(김운범), 이선균(서창대), 유재명(김영호), 조우진(이실장)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23분
메인 예고편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빛과 그림자는 함께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다수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영화 <킹메이커>는 그 빛과 그림자, 왕과 왕을 만들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김대중과 엄창록이라는 실존인물
우선 이 영화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재해석된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야기 자체는 픽션이지만, 영화를 보자마자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김운범’이 어떤 정치인을 모티브로 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구수한 전라도 억양, 카리스마 있는 눈빛, 그러나 한없이 국민을 위한 애정을 겸비한 정치인. 바로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을 지낸 故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의 곁에 머문 ‘서창대’라는 인물은 다소 낯설었다. 그 역시 실존인물을 모티브 한 캐릭터다. 바로, 4수 끝에 김대중 대통령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키며 선거판의 여우로 불렸던 ‘엄창록’이라는 인물.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왕을 만드는 사람, 그 그림자에 대한 조명
사람들은 주로 빛을 본다. 무엇보다 당선된 정치인의 능력과 자질을 높이 평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당선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뒤를 받쳐주는 전략가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빛과 함께 그 그림자를 조명했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 ‘창대(이선균)’는 운범의 그림자였다. 그는 운범을 존경했으며, 같은 이유로 운범을 돕고 싶어 했다. 계속해서 낙마하는 운범의 곁에서 자신의 전략을 총동원해 그를 당선시키고 싶어 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이기기 위해서라면 대의만큼 전략도 중요한 법
대의만 있으면 통할 거라고 믿던 우직한 운범과는 달리, 창대는 셈이 빠르고 영리했다. 상대 당의 수와 선거판의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상대 당을 교란시키거나 민심을 얻는 방법을 그는 알았다. 때로는 이겨야 한다면 마타도어식 술수까지 펼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지금에야 선거캠프를 꾸려 이기기 위한 책략들이 활발히 논의되는 시대지만, 6-70년대 그 시절에 어디 그런 게 있었겠는가. 실제 ‘창대’의 모티브가 된 ‘엄창록’이라는 인물은, 점조직을 도입하고 피켓을 이용하는 등 당시로써는 매우 기발한 전략으로 故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큰 힘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어찌나 대단한 전략가였는지, 박정희 정권에서도 탐내던 인물이었다고.
두 가치는 양립할 수 없는 걸까
운범과 창대는 같은 목적을 가졌으나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너무 달랐다. 그런 서로의 차이점이 시너지를 빚어 눈부신 성공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런 만큼 더 강렬히 부딪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공세도 마다않는 창대의 욕심이, 때때로 운범이 지키려는 가치를 훼손하려 하기 때문이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대의
나는 굳이 따지자면 창대에 가까운 사람이다.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약간의 꼼수쯤은 필요하다고 믿는 얄팍한 인간. 하지만 그런 이유로 늘 운범과 같은 우직한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덜 확실하고, 더 느리게 돌아가더라도, 진심과 떳떳함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운범의 모습을, 창대도 그래서 존경했던 게 아닐까.
물론 때때로 창대 같은 마인드는 분명히 필요하다. 대의를 펼치기 위해서는 일단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 먼저니까. 하지만 운범을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지. 운범의 모티브가 된 故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 역시 그 메시지를 꼭 담고 있다. 편법과 술수를 쓰지 않더라도, 돌고 돌아 아주 느리게 실현되더라도, 언젠가 정의는 반드시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변성현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변성현 감독의 영화 <불한당>에 한참 동안 빠져있었던 적 있었다. 그의 미술적 감각을 특히 좋아했다. 색감을 이용해 달리 연출하는 분위기, 빼어난 미장센, 흥미로운 편집 등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돋우는 그만의 마법 같았다. <킹메이커>에서도 그 감각은 여전했다. 그에 의해 구현된 60-70년대 풍경은 작은 소품부터 의상, 전체적 색감과 분위기까지도 그만의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이 묻어나,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이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이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믿고 보는 명배우들 라인업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운범을 향한 존경, 이기고자 하는 전략가의 야망을 모두 담아낸 이선균의 섬세한 연기는 늘 그렇듯 안정적이다. 각각 청와대의 이 실장과 유망한 야당 국회의원을 연기한 조우진, 유재명 배우의 연기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대단한 배우들의 앙상블 그 중심엔 설경구가 있다. <불한당>에 이어 <자산어보>까지 매번 색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남자 배우 3대 트로이카에서 빠지지 않는 설경구의 연기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만큼 탄탄하다. 전라도 억양과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고, 연설 장면에서는 뜨거운 정치적 신념이 묻어나 너무도 뭉클했다. 그의 관록은 정말이지 언제 보아도 놀랍다.
* 해당 포스팅은 시사회 초대 및 소정의 비용을 지원 받아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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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여운 건 내가 아닌 당신들이지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은 하나같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이야기 구조를 띠고 있다. 그리고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도 갈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신작인 '가여운 것들'도 같은 궤를 띤다. 기괴하고 독한 면이 강하지만, 인간의 본면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들고 동시에 벨라 벡스터(엠마 스톤)의 여정을 응원하게 만든다.
천재 외과의사, 혹은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불리는 갓윈 벡스터(윌렘 대포)의 손을 거쳐 벨라는 태아의 뇌를 장착하고 다시 태어난다. 탄생의 비극을 모른 채 그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삐뚤빼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어떠한 편견이나 좌절, 자기혐오에 갇혀 있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말이다.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이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유혹을 덜컥 받아들이면서 벨라의 기묘한 여정이 시작된다. 리스본부터 파리까지 여행하는 동안 덩컨은 모자라지만 아름다운 벨라를 탐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을 훨씬 빗나가는 벨라의 매력에 되려 덩컨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한순간에 머저리로 전락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최후를 지켜보게 된다.
잠을 잘 때마다 성장하는 벨라는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발칙하다. 파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섹스를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 매료돼 자발적으로 사창가에 취업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이 ‘생산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포주(캐서린 헌터)에게 직접 매춘 여성이 고객을 고를 수 있는 제도를 제안해 그야말로 '거침없다'.
이 지점에서 관람객 일부는 여성혐오로 판단하며 호불호가 갈리긴 하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벨라의 '선택'이다. 그의 여정과 선택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벨라가 거부하는 '사회적인 통념'일지도 모른다. 여성의 성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이라는 틀 안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성적 욕구를 드러내고 충족하는, 즉 주체적인 여성 벨라가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영화는 벨라를 향한 관객의 시선 안에 담긴 통념이란 '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건드린다. 또한 영화 속 배경이 19세기 유럽사회인 걸 감안하면 벨라의 행보는 가부장제를 뒤흔들었다.
벨라의 성장과 함께 맞춰나가는 색의 확장으로 연출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갓윈의 집 안에만 있던 벨라의 삶을 좁은 어안 렌즈에 흑백화면으로 표현했다가 그녀의 모험이 시작됨과 동시에 탁 트인 컬러 화면으로 전환된다. 여기에 초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스팀펑크 배경과 어우러져 기묘한 기운이 강해진다.
재밌는 건,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전작들과 달리 '가여운 것들'은 약간 다른 결을 그려낸다. '더 페이버릿', '더 랍스터', '킬링디어'만 하더라도 많은 인물들이 어리석음과 나약함으로 무너지는 비극으로 향하지만, '가여운 것들'의 세계관은 제법 낙관적이다. 벨라는 자유의지로 통제하며 사람들로 인해 타락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성장한다. 부조리한 세상도 그의 앞길을 막지 못한다. 시작과 달리 영화 말미에 다다랐을 때, '가여운 것들'이 벨라에서 벨라를 제외한 모든 인물로 바뀌는 것도 이 여파일 것이다.
벨라를 기괴한 괴물이 아닌 끝까지 신뢰하는 인물들도 있는데 이들이 과학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벨라의 아버지 격이자 그녀가 '신(God)'으로 부르는 갓윈은 고통을 이성적 사고로 견뎌내려고 한다. 온몸이 수술 자국들로 가득하지만, 원흉인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세상의 진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갓윈의 제자 맥스(라미 유세프) 또한 벨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순수 관찰대상으로 벨라를 처음 접했던 맥스는, 격정에 빠져 추락하는 덩컨과는 다르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재회한 엠마 스톤은 '더 페이버릿'에 이어 '가여운 것들'에서 비범한 연기력을 펼치며 관객들을 압도한다. 벨라의 성장과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그의 열연이 이 영화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시간의 흐름과 성장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벨라의 걸음걸이 및 말투까지 포착해 자연스레 담는다. 골든글로브·영국 아카데미를 포함해 여우주연상만 26개를 거머쥐었고 '2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까지 이어지는 데 다 이유가 있다.
다양한 배우들이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마크 러팔로가 개인적으로 눈이 갔다. 다양한 작품에서 입체적인 연기력을 펼친 베테랑 배우인 건 잘 알려져 있긴 하나, 한동안 MCU 헐크에 눈이 익었기 때문. 한순간에 추락하는 바람둥이 덩컨을 연기하며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노련하게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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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영어토익반#고아성#이솜 저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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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의 기대에 못미친 오컬트 블록버스터 / 퇴마록 애니메이션 / 원조 퇴마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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