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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바다2025-08-17 20:47:01

‘용서’를 베풀지 못한, 한 사제를 위한 변명

영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Only God Knows Everything)> 리뷰

▷한줄평 : 영화 <밀양>과 다른 ‘복수’가 남긴 죄책감의 처리 방식

 

▷평점 : ★★★

 

▷영화 :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Only God Knows Everything), 2025.8월

 

※ 본 글은 씨네랩(http://cinelab.co.kr) 초청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신부님, 사람을 죽여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된 신부 도운(신승호)은 살인에 대한 고해성사를 듣고는 ‘하느님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순간 도운은 스스로가 만든 덫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고해성사했던 사람이 13년전 실종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동일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아서 였다. 과연 신부가 된 지금, 그의 공언대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해범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그러나 아주 특별한

 

신부라는 신적 대리인으로서 죄에 대한 용서를 설파해 온 도운은 정작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된 상황에서는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고뇌에 빠져든다. ‘제가 가졌던 믿음은 모두 가짜입니다!’라는 도운의 고백은 우리 모두가 영혼과 육체, 죄와 구원, 선과 악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준다.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일반적인 도덕적 규범은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실존적 자아인 나에게는 특별한 순간이 된다.

 

 

 

그 내면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재단하기 힘든 복잡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당신이라면?’ 어찌할 것인지 선택하기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 영화의 화두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스토리를 쫓아가는 부질없는 감정이입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이미 우리는 그 불편함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영화를 보내 내내 <밀양>의 신애가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신앙적 결단을 하고 교도소에 면회를 가지만, 정작 그에게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스팔트에 주저 앉아 오열하던 신애의 모습은 신 앞에서 좌절할 수 있는 한 인간의 내적 고통을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 영화 <밀양>에서 신애의 대사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도 <밀양>과 마찬가지로 무오(無誤)한 신만이 베풀 수 있는 용서라는 신적 권위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좌절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등지고 사제로 살기로 결심한 신부라고 해서 이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 이 영화는 <밀양>이 천착했던 용서와 복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영화 <밀양>,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스틸컷 / 오열하는 신애(전도연)와 갈등하는 도운(신승호)

 

 

 

※ 이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 속 깊숙이 파고든 광기어린 사이비 종교의 민낯

 

도운은 결국 용서를 포기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거침이 없다. 13년전 실종되었던 어머니의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사이비 종교 광신도인 수연(전소민)과 광기어린 무당 광운(박명훈)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아들을 산 채로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쳤던 아브라함의 신화를 이용하여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드는지 묘사해 낸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이용하여 사이비 종교 ‘전신교’는 살인마저 서슴지 않게 만든 것이다.

 

 

 

 영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 스틸컷

 

 

 

이러한 허황된 종교적 신념아래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광기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현실속에서도 사이비 교주의 일탈마저 감싸기 바쁜 일단의 광신도들은 세력을 형성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도권에 속해 있는 사제 도운이 타개할 대상으로 사이비 종교를 마주한 것은 성, 속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현실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듯하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갖은 종교적 행위들과 무술적 사이비 신앙 간의 분별력을 갖는 일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올바르게 해석해 내기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다.

 

 

 

우연한 고해성사에서 출발한 도운의 복수에의 추적은 결국 전신교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복수를 결심한 도운은 과연 만족한 결론에 도달했을까?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제목이 남긴 씁쓸한 뒷맛

 

그러나 이 영화는 <밀양>과 마찬가지로, 용서는 살인자를 향하지만 복수는 신을 향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 영화의 엔딩은 <밀양>의 하늘거리는 햇빛의 그림자를 비추는 마지막 장면과 묘하게 닮아 있다. 복수를 펼칠 대상은 살인을 벌인 악마와도 같은 인간이지만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신을 향한 궁극적 원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신앙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계인’이라는 원작의 제목에서 ‘나에게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의미로 읽히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Only God Knows Everything)’으로 바꾼 영화 제목은 그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복수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선택되어진 것이다. 하느님만이 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성경 창세기 3장에 보면 선악과를 따 먹고 숨어 있던 아담을 찾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죄를 변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 자신이 죄를 짓게 된 근원을 따지자면 ‘하느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의 모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연약한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에게 책임을 지울 이유가 없다.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실 터, 자유의지라는 선택의 책임조차 회피하고픈 인간의 불순한 욕망은 여기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에서도 극명해 진다.

 

 

 

영화 후반에 용서의 대리인인 사제로서의 사명을 저버린 채, 복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도운은 살해자의 어린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역()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순환하는 복수의 씨앗을 남겨 놓는다. 그 어린 살해자의 아들은 또다시 성인이 된 어느 날 복수의 칼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얽힌 복수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 강력계 형사 주영(한지은)조차 도운의 범죄를 모른 척해 버린다. 하느님만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용서를 하든, 벌을 주든 결정할 것이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야! (Only God Knows Everything)’라며 슬그머니 자신의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신앙을 값싼 용서의 도구로 사용해 버린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은 <밀양>에서와 같은 인간적 고뇌의 흔적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미스터리한 신의 저주와 같은 복수는 그리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고, 어머니를 잃고 고통스러웠던 아픈 상처를 치유해 내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역부족이다. 그저 용서를 베풀지 못한 사제로서의 죄책감을 공감하고 이해를 구하는 결말은 아쉬움을 더할 뿐이다. 영화 초반에 사제로서 가졌던 용서와 복수사이에서의 갈등은 명징한 복수의 결말 앞에서 얕은 사색의 깊이가 드러나 버렸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고백은 용서를 베풀지 못한 한 사제를 위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연기 변신을 꾀한 배우들의 강렬한 모습과 열정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영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 포스터

 

 

 

2025.8.12

작성자 . 제이바다

출처 . https://brunch.co.kr/@jeijsea/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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