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9-24 22:49:37
[DMZ DOCS] 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극과 공포를 보여주는 작품
<아침이슬 - '세뇌'라는 스티그마> 리뷰
감독: 금선희
출연진: 제일 조선인들
시놉시스
일본에 살던 제일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남한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북한에 있던 제일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에서도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살기 힘들었으나 북한을 탈출한 이들에게는 제대로 머물 곳이 없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여기 있다. 이 작품은 금선희 작가가 만든 작품으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부터 지금의 제일 조선인들로 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고난을 겪어왔단 것을 3중 스크린으로 통해 볼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혼란스럽지만 하나만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시선을 고려했기에 3개로 된 장면들이 영상에 나타났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과연 금선희 작가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어떤 것일까?
제일 조선인들의 슬픔과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금선희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여러 개가 있다. 타국의 하늘(Foreign Sky)이라는 작품과 비스트 오브 미(Beast Of Me)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제일 조선인들처럼 소외받는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을 영상으로 표현해낸다. 그들이 가진 역사적 아픔과 겪어왔던 고난들을 금선희 작가는 영상으로 재현해낸다.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인들과 6.25 전쟁이 일어났던 일들을 영상으로 담아 파운드 푸티지라는 영상 기법으로 관객들의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이런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숨은 의도의 메세지를 공개한다. 북한으로 돌아간 제일 조선인들이 탈출을 결심할 정도로 북한이란 나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조차 반역죄로 여길 만큼 자유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북한에서 도망쳐 갈 곳 잃은 이들을 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준비된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극은
그들이 갈 곳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2022.09.24 (토)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 4관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09월 22일 - 09월 29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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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을 쥐었다, 폈다
최근 <오징어 게임>까지 'K-콘텐츠'가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 도전하지 못한 장르가 있다면 "뮤지컬"이다.
물론, <삼거리 극장, 2006>이 존재하나 '상업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가 상업적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뮤지컬 영화'이다. - 물론, 개봉을 기다리는 <영웅>도 있다!
혹자는 국내 뮤지컬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에 '가사가 한국어'라는 이유를 언급하나, <라라랜드, 2016>를 보는 "미국인"과 <레미제라블, 2012>을 듣는 "프랑스인"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영화는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세연'이 남편 '진봉'에게 마지막 생일 선물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이야기이다.
1. 왜, 인기가 없을까?
앞서 말했듯이 유독, 국내에서의 뮤지컬 제작이 꺼려지는 이유에 '가사가 한국어'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외국 작품을 가져와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가사와 음의 길이가 맞지 않아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이를 핵심으로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1952>는 일련의 과정으로 통해서 "뮤지컬"을 제대로, 설명한다.
영화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뮤지컬"을 소개하나 만만치 않는 그 과정을 소개한다.배우가 마이크에 대사를 하지 않아 녹음이 안되거나 몸에 부착하면, 심장 박동이 들리고 오디오 선에 넘어지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보여준다. - 극 중. 시사회에선 진주 목걸이 만지는 소리도 들린다!
이외에도 그동안 표정과 몸짓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던 배우들은 발음과 대사 암기 등 변화에 따른 발전이 동반된다. - 실례로 많은 무성 영화 스타들은 유성 영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지거나 새로운 얼굴들이 출연했다!
이렇게, "뮤지컬"은 문화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면 동시간대의 국내 상황은 어땠을까?2. 많고 많은 시대 중에서...?
현재,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로 정의되는 "나운규"의 <아리랑, 1926>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개봉한 작품이다.
이후 "한국 전쟁"과 "냉전"을 맞이한 영화는 "반공"을 앞세운 선전물이 되었으니 문화의 발전을 떠나 감히, 낭만을 논할 수나 있었을까?
그렇다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왜, 1990년으로 설정했을까? - 극 중. 서울 극장에 <사랑과 영혼, 1990>이 걸려있다.
이런 이유에는 90년대만큼이나 문화의 다양성을 논하기에 좋은 시기가 없기 때문이다.대통령 직선제(6월 민주항쟁)를 가져왔으나 "군부"가 유지되며, 지속되는 데모로 사회는 불안정했지만 "X세대"가 등장하는 등 문화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음악만 살펴보면, "김수희"의 "애모(트로트)"를 비롯해 "서태지와 아이들(힙합)", "신승훈(발라드)", "김건모(레게)", 그리고 "HOT(아이돌)"까지 한 번의 성공으로 우르르 뒤따라가는 펭귄들이 아니라 무모한 콜럼버스들이 판치던 시대이다.
여기, <쉬리, 1999>를 시작으로 "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탄생하는 등.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3. 옛 방식이 무식하지만...
이렇게, 모든 환경이 갖춰진 <인생은 아름다워>이나 보여주는 결과물은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오리지널 넘버'를 대신해 '이문세'의 <조조할인>을 비롯해 '이적'의 <다행이다>와 '토이'의 <뜨거운 안녕> 등 익숙한 대중가요를 뮤지컬스럽게 편곡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갖춰진 세트에서 보여주는 군무들을 하나의 테이크가 아니라 '편집'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앞서 말했듯이 "뮤지컬"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르로 고집스럽게 긴 테이크를 가져간다.
이런 이유에는 당시. "편집"이라는 기술이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얼굴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이야기의 현실성을 지켜냐야하는 '고육책'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본 작품에서 보여주는 "뮤지컬"은 90년대~00년대 이야기가 있는 뮤직비디오 "드라마 타이즈"에 더 가깝다.4. 첫 술에 배부를 쏘냐!
물론, 영화가 선정한 선곡 리스트와 편곡은 마음에 들지만 힘을 받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뮤지컬 장면에 들어가는 순간이 어렵다!
이런 이유는 이야기의 톤과 음향이 갑자기 튀기 때문인데, 완력기가 있었으면 할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할 정도로 힘들었다.
극 중. 마지막에 "세연"과 아이들의 통화에서 눈물이 날 뻔하면서도, 비염(훌쩍훌쩍)에 그친 점도 이러하다!무엇보다 이야기에도 아쉬움이 생긴다.
극 중. 아내 '세연'의 모습은 희생만을 강요하는 윗세대 어머님들의 모습이 겹치며, 무심한 남편 '진봉'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지나치게 "스테레오"이다.
결국, 이 모든 갈등이 봉합되는 전개와 개연성도 어설픈 노랫소리에 잠식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날 뻔한 건 어디까지나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니 오해하지는 말자!그래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끝나고 나서 플레이 리스트로 또 한 번 즐기는 미덕을 제공하니 좋게 봐주시길... :)
· tmi. 1 - 결혼식 장면에서 부르는 "이적"의 <다행이다>는 공교롭게도, 실제 아내분과의 결혼식 축가로 만들어진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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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액션은 어디로 갔는가?
드니 빌뇌브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느낌을 매우 좋아한다. <컨택트>와 <시카리오> 등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미장센, 대사 없이 많은 설명을 담는 능력, 진중한 메시지 등 헐리우드의 젊은 3대 천재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만든 <듄> 시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감독인 한스짐머까지 합류해 기대가 컸고, 많은 유명한 SF에 영향을 준 이야기답게 무게감 있고 멋지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번 <듄: part2>는 마치 20년 전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트릴로지 무비들-<스파이더맨>, <엑스맨>,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의 2편처럼 1편보다 더 광대하고 박진감 있다.
그러나 2편에도 여러 가지 단점들이 존재했다. 1편에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살라메)의 고난과 역경을 다루었다면, 2편은 그가 안티메시아로써의 도약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가득 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에서는 액션의 서사나 성장이 아주 부족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아, 어떤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정도다. 영화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액션 매니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서, <듄: part 2>를 액션 영화의 관점으로 다뤄보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캐릭터성이 사라진 액션
액션 영화에서 무술은 한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가문,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듄: part 2>에서는 게릴라전을 하는 프레멘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징 있는 무술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액션에 캐릭터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마블의 <어벤저스>는 이런 캐릭터 액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 걸로 유명하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가 시대적으로 다른 사람이라 총 파지법이 다르다던지, 토르와 로키 등 아스가르드인들은 쓰는 무술이나 준비자세가 같다던지 하는 식으로. <샹치>와 같은 중국식 무협에서는 캐릭터의 인생철학이 캐릭터가 쓰는 무술에 담겨있고, 싸우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무술의 합으로 표현했다.
<듄: part 2>에서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며 공포스러운 존재인 황실친위대 사다우카가 황제 옆에서 칼을 들고 있는 모습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마지막 선을 지키던 공작 친위대가 칼을 든 모습은 서양 롱소드 검술로, 둘 구분이 거의 가지 않는다. 가문 성격이 완전히 다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도 무술 동작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액션을 잘 짠다는 것은 단순히 합을 잘 짜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의상, 외모, 대사 등 캐릭터를 대비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 치고 액션의 캐릭터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단 얘기다. 다만, 1편에서 처음 폴이 액션을 배울 때 했던 실수 - 목을 겨누느라 배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그보다 성장한 마무리는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서 무술을 배운 것처럼 단조롭다.
프레멘의 무술은 단도를 주로 사용하고, 몰래 빠르게 움직여 죽이는 암살과 게릴라전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군용 무술보단 잠입암살 무술인 닌자에 더 가깝고, 그 부분은 프레멘의 특징을 잘 살려서 좋다. 그러나 이는 폴이 배운 '펜싱 자세를 기본으로 한 검술'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렇다면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행을 할 때 무술을 배우는 장면도 있어야 했다. 물론 1편에서 무술수련을 할 때 이미 다양한 무기들로 수련을 해온 설정이 어렴풋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실제와 자료로 보고 배운 건 다르다. 영화에서는 '사막 걸음'을 프레멘인 챠니가 제대로 된 걸로 다시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액션에서도 필요했다.
그리고 폴이 하는 검술의 펜싱자세는 다른 무술과 달리 주손 주발이 앞으로 나와있는 오소독스 자세다. 그 이유는 긴 칼로 빠르게 찌르고 빠지기 위함인데, 단도를 들고 육탄전을 감안해 싸우는 <듄> 세계의 특성상 잘 맞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준비 자세만 펜싱 자세고, 싸울 땐 그냥 군용 무술이다. 즉 '귀족'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준비자세만 멋으로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액션을 죽이는 잘못된 무기들
라반은 채찍을 사용하는데, 이게 그의 캐릭터가 말랑해지는 데 한몫했다. 채찍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 큰 덩치에 조그만 채찍을 꺼내드는 모습은 조금 코믹하다. 페이드 로타는 칼을 두 개 든 이도류지만, 액션이 그의 캐릭터성을 나타내기엔 평범했다. 그 이유도 무기 때문이다. 페이드 로타의 검은 앞이 길고 내려앉은, '정글도'로 잘 알려진 마테체의 한 형태다. 정글도는 원래 도끼와 단검의 중간 형태로, 정글에서 생존용으로 쓰는 칼이다. 실제 무기로도 자주 쓰이지만, 날 앞쪽에 무게중심이 있고 손잡이 위에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어서 가까이에서 찌르기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마테체는 오히려 덩굴을 베듯 도끼처럼 내려찍는 무기다. 그런데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일반 백병전 단검술이다. 그러니 동작이 둔해지고,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오히려 예리한 단검술보단 위협적으로 내리찍는 무술을 했다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레멘의 무기, 크리스나이프도 그렇다. 크리스나이프는 샤이 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단검으로, 날과 손잡이의 두께가 거의 같으며 역시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다. 키용이 없는 칼은 사실 대부분 찌르는 전투용 칼이 아니다. 그런 칼로 유명한 것은 일본의 시라사야인데, 이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지팡이로 위장한 칼이며 베는 칼이다.
서양의 칼에서 손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날과 손잡이 사이의 키용
영화 <듄> 시리즈의 크리스나이프
칼과 칼이 맞붙는 싸움에서 키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듄> 시리즈에서는 칼을 칼로 막고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진검이라면 날끼리 미끄러진 다음 키용끼리 부딪혀, 칼과 키용의 십자 모서리 부분끼리 엇갈려야 힘겨루기가 가능해진다. 즉, 키용이 없는 칼끼리 싸우면 금방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용이 없는 칼끼리 너무 챙챙 맞부딪힌다. 날끼리 부딪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자체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판타지 액션 연출이지만, 키용까지 없는 칼로 그렇게 싸우는 건 조금 그렇다. 사실 키용은 손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칼을 뺏거나 부러트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검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폴과 페이드 로타 둘 다 칼에 그게 없으니, 단순하게 찌르거나 휘두르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키용이 없다면 손이 미끄려져 힘을 준 찌르기가 힘들며, 오히려 내 손이 날까지 미끄러져 손이 다치게 된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식칼로 찌르다 엄지손가락이 나간 것을 기억해 보자. 즉 <듄: part 2>의 무기들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디자인부터 잘못되었다. 단순한 액션 고증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영화의 액션을 심심하게 만든다. 칼 디자인은 그냥 영화적 장치니까 멋으로 보자고 하기엔, 다른 부분들에서 세계관을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고 칭송받는 소설이 원작이라 아쉬울 뿐이다.
또한 <듄> 시리즈에서는 핵무기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고대의 엄청난 무기를 발견한 것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나 파괴 리액션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폴은 핵무기를 군대 뒤에 산을 폭파하는 데 쓰고, 그 잔해들이 운석처럼 군대를 덮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 핵무기의 가장 큰 위력은 폭발 반경에 1억 도가 넘는 순간온도와 몇천 도가 넘는 '열폭풍'이다. 수십 킬로미터 반경에 달하는 열폭풍으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녹이고 날려버리는 것이 핵무기인데, <듄: part 2>에서는 그저 조금 센 미사일 수준으로만 보여서 너무 심심했다. 황제까지 죽이면 안 되니까 그랬다고 변명한다면, 황제는 우주선 안에 있으므로 그 정도는 견딜 수 있고 밖에 주둔한 군대를 싹 쓸어버리는 용도로 쓴다고 설정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안된 이유는, 모래벌레가 공격하는 장면이나 백병전 장면을 넣기 위해서로 보인다. 사실 애초에 핵무기를 백병전 전초전 격으로 발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 일대가 수십 년 이상 방사능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또 샤이 훌루드는 마지막 전투에서 등장만 화려할 뿐, 구체적으로 적들을 어떻게 섬멸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깔고 뭉개는 건지, 잡아먹는 건지, 차에 치이듯 사람들이 날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매머드가 적들을 상아로 쳐내 날려버리는 모습이나 밟는 모습이 세세하게 나와서 위압감을 줬던 걸 생각하면, <듄: part 2>에서의 샤이 훌루드를 활용한 액션은 많이 아쉽다. 지하에서 나와서 군인들 수십 명을 잡아먹거나 하늘의 비행정을 통째로 삼키는 등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걸 보여줬어야 더 재미있었을 텐데.
대단하지 않은 액션 서사의 포장
사실 이게 <듄: part 2>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폴이나 페이드 로타 둘 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을 했는데도 대단하다고 리액션을 하며 엄청난 음악을 깔아주고 있는 연출이 그것이다. 그것은 조금 과장하면, 동남아의 무술 고수라면서 손도 안 대고 제자들을 쓰러트리는 사기영상처럼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말했듯 <듄: part 2>에서는 프레멘이 되기 위해 폴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기 힘들다. 거기에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부분이, 고작 '미끼가 되어 방어막이 풀리는 순간을 노리도록 한 것'이라는 게 많이 의아하다. 그 정도의 전술은 미리 가르치고 시작하던지,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배우는 부분이 삭제되었다면, 프레멘이 생각하지 못할 기발한 작전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대단했을 것이다. 혹은 비행정에서 무기를 사용할 때만 방어막이 풀리는 것을 프레멘들이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럼 폴이 직접 포를 쏴서 그 짧은 틈을 맞추는 장면을 보여줬다면 뒤에 프레멘들이 폴을 대단하게 여기고 환호하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챠니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챠니가 포를 쏴서 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죽었다. 웅장한 화면에 더 엄청난 음악을 깔아버려 뭔가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별거 없는 걸 포장한 것이다. 비행정의 움직임을 미래를 봐서 예측한 것도 아니고.
거꾸로, 프레멘의 액션도 그렇다. 프레멘은 적들이 사막에서 방어막을 켜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샤이 훌루드가 방어막의 진동 때문에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에서 게릴라전을 잘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수도에 들어가면 적들은 방어막을 켜고 있다. 방어막을 켠 상태에서의 검술은 일반 검술과는 달리 몸 근처에서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방어막을 켠 적을 별로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프레멘은 그 검술을 어떻게 익혔을까? 폴이 그걸 가르쳐줬다면 더 폴의 능력을 높게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 서사도 그렇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그의 캐릭터와 위압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등장 전부터 그를 '싸이코닉'하다고 말하거나, 칼을 점검하며 주변 사람들을 찔러 죽여보는 모습 등으로 하코넨 남작이나 라반보다 더 대단할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상은 그가 자기 혀에 칼을 가져다 대려다 피도 안 내고 그냥 옆사람을 찔러보던 장면처럼 맥이 빠졌다. 원작에서 그는,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굉장히 교활한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면모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럼 그냥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라도 부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차라리 비슷한 장면의 비교라면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가 훨씬 교활하고 사이코 같고 두려움의 대상처럼 보인다. <듄>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으므로 <글래디에이터>가 그것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원작을 살펴보니 페이드 로타의 생일 검투장면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교활한 최면 술수를 써놓고 마치 자기가 정당하게 힘으로 이긴 것처럼 포장해서 영웅처럼 그려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폴과 싸우다 그 최면이 자기한테 걸린 거라 착각해서 스스로를 옭아매 죽게 되는 게 원래 내용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화에선 페이드 로타의 그런 술수나 자업자득의 교훈도 없이 그냥 칼싸움해서 지는 걸로만 보여줘 페이드 로타의 서사가 사라졌다. 그러니 밋밋한 것이다. 서사를 없앴다면 액션에서 캐릭터성을 부여할 수도 있었는데, 페이드 로타는 검술을 잘해서 오만하다는 거 말고 딱히 액션에서 드러난 게 없었다. 만약 페이드 로타가 너무 검술을 잘해서 폴의 검술을 흉내 낸 설정이었다면,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게 연출을 했다.
오히려 액션의 캐릭터 서사에서는 1984년 데이빗 린치의 <듄>이 조금 더 낫다
또한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서사도 대단하게만 보이지 실제로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 1편에서 프레멘에게 신처럼 여겨지던 샤이 훌루드가 2편에서 교통수단으로 다뤄지는 게 좀 의아했는데, 원작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 부분 묘사를 보면, 프레멘이 샤이 훌루드를 생각하는 감정이나 느낌은 모아나가 바다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하다. 인격체 신이라기 보단 만물이 창조된 대자연으로써의 경외감 같은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는 장면은 사실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폴이 왜 대단한지, 샤이 훌루드와의 교감이나 길들이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서사가 전혀 없다. 이전에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토루크를 길들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듄: part 2>에서 보이는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교감 서사보단 낫다.
샤이 훌루드를 타는 것은 갈고리를 걸면 끝나는 것이고, 그 거대한 것을 손으로 버티며 조종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쳐도 1편에선 분명 공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갈고리가 걸쳐졌다고 해서 모래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친절하게 모래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태워주는 것은 왜인가. 또 갈고리를 풀면 바로 튕겨나가 떨어질 텐데 내릴 땐 어떻게 내린단 말인가. 베네 게세리트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보이스'를 쓰는 것이 1편에 나왔었는데, 폴은 '보이스'를 이용해 남다르게 샤이 훌루드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설정이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마치 이 장면은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게 되어 프레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한 문장을 대충 영상으로 멋지게 '설명'한 것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특별한 교감이나 길들임 없이 되는대로 타는 설정은 샤이 훌루드의 캐릭터를 빈약하게 만들었다.
빈약한 전술
그리고 영화의 내용상으로 보자면, 황제의 군대를 잡는 마지막 전투는 전쟁액션 개연성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멀다고 해도 언덕 뒤에서 크게 연설을 하고 온 군대가 개전 전에 소리를 지르다니, 이건 기습전에서 해선 안될 일이다. 이런 장면은 남부에서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액션에서 종종 뒤에서 기습하는 적이 소리먼저 지르고 공격하려다 소리 듣고 눈치채고 피하거나 되받아치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기습전은 조용해야 한다.
그리고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게릴라 전술은, 적들이 가는 길목을 예측하고 함정을 파서 기습할 때 쓴다. 앞에 스파이스 채굴기를 공격하는 건 그게 맞았다. 그러나 적의 진지 앞에서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부터 거기에 숨어있었던 걸까. 아니면 모래 속을 기어서 거기까지 간 걸까. 그럼 그 뒤에 단체로 백병전을 위해 달려서 뛰어오는 건 왜 그럴까.
폴이 이 전투에서 특별히 한 것은 거대한 모래폭풍 예측이다. 나머지 전술이라는 건 그냥 순서대로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전술이랄 게 없었다. 왜 이렇게 황제와 하코넨의 군대가 허무하게 당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폭풍이 먼저 수도를 감싸고, 비행정이 뜨지 못하는 가운데 익숙한 프레멘들만 자유롭게 움직이며 적들을 썰어버렸다면 모르지만 영화에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프레멘들은 애초에 방어막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레이저 빔으로 쓸어버리면 그만 아닐까? 하코넨한테 고전 무기도 다 허용했던 황제인데. 왜 황제 앞까지 왔는데 사다우카는 칼로 싸우는 걸까. 멋있고 장대한 장면들을 늘어놓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듯 보였다.
게다가 하코넨은 프레멘을 상대한 게 처음이 아니다. 지금이 가장 격렬한 저항이라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아라키스 행성을 지배하며 그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데 프레멘의 저항이 거세진 상황에서 채굴기의 방어인력은 왜 이리도 허술한가? 거꾸로 채굴기를 미끼로 해서 프레멘을 몰살시킬 생각은 왜 못하나? 여기선 프레멘이 폴에 대한 종교적 믿음으로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기보다, 그냥 하코넨 쪽이 너무나 바보같이 보인다. 황제 또한 그렇다. 황제는 은하계의 대 가문들을 사다우카의 무력과 자신의 정치력으로 조율하는 세력이다. 물론 그 뒤에 베네 게세리트가 있었다고 해도, 여기서 보여주는 황제의 모습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다. 만약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원작에 있다!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팬끼리 돌려보는 2차 창작 팬무비에 불과하다. 영화는 영화로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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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듄의 스토리가 현재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아주 궁금해진다. 모티브를 따온 종족과 별개로 내용을 보자면 아트레이데스는 영국(미국) / 하코넨은 나치 / 프레멘은 유태인과 흡사하다. 현재 2편까지의 내용을 보면 영국이 유태인을 나치에게서 구해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준 역사와 비교되는데, 그 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주변 아랍국가와 팔레스타인과 끝없이 전쟁해 왔다. 이는 3편에 나올 내용, 대가문들과의 전쟁과도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듄: part 3>가 이것을 어떻게 느끼게 만들까? 미국인과 이스라엘 인들은 그 내용을 자신들의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드니 빌뇌브가 소설 <듄>을 너무나도 멋지게 실사 영화로 만들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의 고질적인 약점인 빈약한 액션 서사가 더욱 두드러졌다. 게다가 그 빈약함을 영상미와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이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는 모양새다. 1편보다 2편이 조금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면, 3편은 부족함을 더 채워서 나왔으면 좋겠다. 장대한 우주 대 서사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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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운 게 늘어난다. 예전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실패하면 더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고 괜히 도전했다가 허송세월을 보내게 될 거란 걱정에 시달린다. 그렇게 익숙한 사람과 환경 속에 몸을 숨긴 채 새로운 일은 매번 다음으로 미룬다.이전에 하던 대로, 주어진 대로 지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문득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 생긴다.
게다가 지금처럼 망설이다가 후회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날이면 용기 내서 도전하는 사람에게 괜히 시선이 향한다. 그들을 보면 자극을 받아 용기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그런 날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보면 어떨까? 불도저 같은 성격의 주인공 '롤라(빅토리아 저스티스'에게 용기를 배울 테니까.
영화 <퍼펙트 페어링>
영화 <퍼펙트 페어링>은 2022년 5월 19일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최신 로맨스 영화이다. 주인공 '롤라'는 승진을 앞둔 발표에서 친한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상사에게 무시당한다.
큰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와인 회사를 그만두며 스스로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완벽한 홀로서기를 꿈꾸며 유명 와인 회사 대표 '헤이즐'을 찾아'호주의 낯선 목장에 도착한 그녀 앞에 의문의 남자 '맥스(아담 데모스)'가 나타난다.
티격태격 다투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예고편을 통해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만나보세요!
영화 <퍼펙트 페어링>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유능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의 모든 클리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꾸준히 봤던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에 어떤 행동과 대사를 할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이다.
주인공의 퇴사, 낯선 곳으로의 여행, 여자들의 우정, 멋있지만 비밀 많은 남자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한 번쯤 마음에 품었을 로망이 모두 담겨있다.단순하게 클리셰가 많아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로맨스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유지하되, 독특한 개성을 더하는 게 흥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퍼펙트 페어링>은 뻔한 스토리에 와인이라는 세련된 소재를 더하고 아름다운 호주 농장을 배경으로 얹었다.
덕분에 과도한 긴장감이나 격한 감정 소모를 겪을 필요 없이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Q. 용기 낼 타이밍은 언제일까?영화 속 모든 클리셰는 당연하게 주인공 '롤라'를 향한다. 정확히는 모든 요소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이끈다.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반할 때처럼 과하게 느끼던 그녀의 열정에 점점 빠져든다.
예를 들어 '롤라'는 '헤이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가축의 배설물을 치우는 작업 등이 처음이라서 계속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도 그녀는 늘 자신감 넘치게 지금껏 못해본 일이 없으니 해낼 거라고 답한다.특히 영화는 관객들이 그녀의 열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구구절절한 서사를 부여한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그녀가 '헤이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이유가 결코 돈이나 명예가 아닌 와인을 향한 애정임을 강조한다.
그러니 남자 주인공 '맥스'가 그녀를 위해 수 천만 원이 넘는 와인을 준비해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직접 그린 영화 속 한 장면
반면 그녀에게 농장 일을 알려주는 '맥스'는 잘생긴 외모, 농장 주인이라는 직업 등 객관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와인 회사 CEO '헤이즐의 친동생이며. 심지어 가족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초반에 도와준 투자자이다.
일말의 부족함 없이 지낼 것 같지만, 사실 '맥스'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세상에서 도망쳐서 지내는 겁쟁이다.
영화 내내 현실에 만족한다며 누나 '헤이즐'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농장 주인으로 존재를 숨기다가 결말이 되어서야 '롤라'를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다.'롤라'와 '맥스'의 관계를 보니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누군가의 용기를 마주하면 처음엔 호기심이 생겨 살짝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사람의 열정에 조금씩 빠지다가 어느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도 모르게 열정이 생겨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생긴다.
와인이 달콤하다는 이유로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어느새 취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인사불성의 상태와 닮았다.그러니 용기 낼 타이밍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신중해도 괜찮다. 도망칠 만큼 도망쳐 더는 갈 곳이 없는 곳에 숨어 있어도 상관없다.
당신에게 용기 내는 법을 알려 줄 누군가를, 무언가를 깊이 사랑할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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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사람들은 삼시 세 끼도 귤로 때운다고 하지 왜
분노 조절 못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노조절장애 경찰 조수광(곽시양)이다. 소리를 지르며 범죄자에게 다가가는 수광. 갈고닦은 무술 실력으로 범죄자들을 때려눕힌다. 그리고 들어가는 레슬링 기술. 암바를 걸었다. 다리가 부서진 용의자. 범죄자들을 잡는 열정이야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다리를 부러트리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제주로 좌천되는 조수광. 어디 수학여행 때나 갈법한 제주에 유배된다는 건 조수광에게 낯선 일들 투성이었다. 애 먼 곳에 혼자 사려니까 웬만한 인맥 없이는 방 구하기도 힘들다. 투덜대는 조수광. 하지만 이런 조수광에게도 구원자가 있었다. 후배 경찰 이수진(정유진)에게 도움을 받아 유 회장(예수정)의 집에 셋방살이를 시작한 조수광. 무탈히 경찰 생활만 잘하면 될 것 같았는데 조수광의 레이더에 새로운 범죄자가 등장한다. 그건 바로 전설적인 사기꾼 김인해(박성웅)와 흑사회의 일원 주린팡(윤경호)다. 죽기 직전까지 쫓는 수광의 추격이 시작된다.
의외로 놀란 것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예상외로 좋았던 건 액션이다. 첫 번째로 이 장면이 좋았던 이유. 나름 액션영화로서의 당위성을 나름대로 챙겼기 때문이다. 전반부까지 사건만 나열하던 이야기 전개가 중반부에 변곡점을 찍으며 정돈된다. 목적이 불분명하던 영화에 추진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영화의 전반부를 (선해하자면) 조수광의 일상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특정 목표를 바탕으로 인물들이 대립한다. 단순히 액션을 눈요깃거리로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인물이 빠져나가야 하거나 / 이걸 빼앗아야 하거나 /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보여주기 위해 꼭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이 외의 나머지가 겉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해도 그게 중요해? 뭐가 됐건 장르를 고른 이유는 충실히 구현했으니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액션의 내실도 잘 챙긴 편이다. 어설프게 합을 맞춰서 때리는 척 티가 난다던가 하지 않다. 나름의 생동감을 살리려는 노력이 보이는데, 이 영화가 고른 것은 테이크 길이를 늘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연출에 있어 오마주를 따온 작품이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영향을 받은 듯한 촬영 구도가 있다. 구도가 비슷해서 ‘아이 이거 따라 하겠네’ 싶었지만 살짝 다르다. 기본적인 틀은 비슷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액션에 사용되는 무술이나 캐릭터의 개성도 잘 살린 액션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들이 도구를 사용하는데,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고 기획됐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왠지 모르게 MCU 히어로 중 하나가 생각나기도 하고 어디서 본 이미지를 차용한 것 같다. 하지만 일반적인 중년 관객들이라면 이런 걸 다 알리가 없으니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하다.
보여줄 것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웃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웃기지 않을까'에 천착해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가 아무렇게나 대충 움직이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에겐 고유한 행동 패턴이라는 게 있다. MBTI로 치면 P쯤 되는 인간들도 가지고 있는 습관이란 게 있고 자주 가는 곳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행동 양태를 띄지 않는다. 풀어써보자면 어떤 걸 보여주려고 했는지가 장면마다 종잡을 수 없다. 시퀀스들이 대부분 길다. 그 시퀀스에서 플롯을 위해 보여줘야 할 정보가 있다. 그 정보는 시퀀스의 길이에 비해 대게 짧다. 그 나머지는 안 웃긴 개그다. 그래서 초반부를 넘어 초중반부 이후 플롯부터 이야기가 늘어진다. 이야기가 늘어지니까 이 영화에서 그 어떤 드립을 치고 슬랩스틱을 해도 몰입이 안 된다. 이 무질서한 리듬이 초반부터 시작되는데, 그래서 초반부 한 1시간을 봐도 남는 것이 ‘조수광이 제주살이에 있어 애를 먹는다’ 말곤 없다. 안 그래도 안 웃긴 개그감각이 더 지루하게 느껴지고,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트린다.
대표적으로 만복(손종학)이 이끄는 이야기는 줄거리가 루즈해지는 주요 원인이다. 이 인물은 유 회장 옆에서 얼쩡거리는 인물이다. 이 얼쩡거리는 일이 일단 웃기지 않아서 영화에 거슬리는 건 둘째 문제다. 이 인물을 잘 생각해 보면 단지 그 캐릭터의 욕망만 돋보일 뿐 영화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 이 사람이 큰 갈래가 되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아니다. 단지 플롯을 한 번 뒤엎기 위해 존재할 뿐.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이 인물을 설명해 주지만 이 장면이 연출을 통해 쾌감이 느껴지는 형태가 아니다. 다른 영화면 길게 설명했을 부분을 단적인 장면으로만 보여주니 맥이 빠지고 이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중에 어디서 본 것들
이 영화가 그나마의 독창성도 챙기지 못한 이유. 기존의 특정 한국영화 시리즈를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어떤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예고만 봐도 우리가 20년 전즈음에 봤던 코미디/스릴러물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그 내실을 열어보면 또 다르다. 분노조절장애 형사라는 캐릭터 설정만 읽고 유추하기는 어렵다. 사연 있는 주인공들이야 이 지구상에 널렸다. 하지만 이 인물은 영화 팬이라면 잘 알고 있는 특정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했다. 단순히 오마주일 수도 있다. 가령 귤 작업하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몸싸움 장면을 보면 그렇다. 이 오마주가 이 장면 하나에만 사용됐으면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답습은 후반부에 다시 반복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보면 이야기의 끝마무리를 낸다는 쪽에 있어 조악하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 개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강력한 근거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다. 뭐 분노조절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 그 병에 직업적으로 장애물이 생길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건 경찰 내부에서나 조수광 본인이나 분노조절장애에 대해 별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뭐가 문제냐. 분노조절장애라는 성격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장면들이 생길 당위성이 만들어진다는 점이 이 캐릭터를 조악하게 만드는 점이다. 이 장면에 있어 고유의 개성이 넘치지 않는다. 이렇다면 영화가 무기를 가졌다고 봐도 무방한데, 어떤 영화를 답습했으니 얕은 깊이가 영화를 겉돈다.
<게이샤의 추억>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는 '오리엔탈리즘'이었다. 이 용어는 서구권 사람들이 동양을 경외심과 공포,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미국과 유럽이 동양을 묘사하려 할 때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오리엔탈리즘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게이샤의 추억>이다. 이 <게이샤의 추억>이란 영화는 게이샤라는 직업과 일본 사회를 왜곡하며 동양 문화를 오해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이 <게이샤의 추억>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국적은 중화권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배우들이 일본어로 대화하지 않고 영어로 대화한다. 이 설정 자체가 근본이 없는데, 더 중요한 건 영화 플롯에 있다. 게이샤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연출, 기모노와 쪼리, 게이샤라는 직업적 특성을 저속하게 이해했다는 점까지 영화는 남자가 주체가 되어 여성을 억압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패착을 저질렀다. 이 당시 이런 폭력적인 시각 때문에 <게이샤의 추억>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이 영화 <필사의 추적>이 제주라는 지역을 보여주는 방식은 <게이샤의 향기>과 유사했다. 일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그러니까 타문화에 대한 낮은 이해가 기반이 됐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게이샤의 추억>을 비판하면서 쓴 첫 번째 근거. 언어다. 제주는 사투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특이하다. 역설적이게도 특이한 만큼 덜 알려졌다. 왜? 다른 지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상상도 못 할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사투리의 두 특성이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 건 맞다. 글쓴이가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주라는 지역이 닫혀있는 지역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거기에 언어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거랑은 별개로 일상적으로 대화할 땐 표준어 쓰고 다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경찰이 조직 내부에서 사건 브리핑할 때 제주 사투리 안 쓴다(그 경찰 조직 구성원들이 다 제주도민인 게 말이 되냐는 건 둘째 치기로 한다). 제주가 그렇게 도시화가 덜 된 지역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택시 운전사가 승객 태울 때 '혼저옵서예'라고 안 하고 바가지도 안 씌운다. 아니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서 '이 사람은 육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정확히 맞춘다는 것이 가능한가? 이 영화는 한 번에 그걸 맞춰버린다. 단지 공항에서 사람이 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택시 안의 장면을 보여준다. 누구는 이런 장면들이 별 것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글쓴이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 영화 전반부에 중국 자본이 제주에 침투했다는 상황과 마약 유행이라는 사회적인 맥락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두 맥락이 영화 안에 들어간 이상, 육지 사는 사람들이 이 대사가 가진 허점을 체감할 수 있을까? 셋 다(마약/중국 자본의 침투 / 외지인들 향한 텃세) 우리 근처에 있는 맥락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이 영화에서 마약만큼 중요한 소재인 집에 대한 부분도 현실적이지 못한 전개다. 일단 이주민이 집을 쉽게 못 구한다는 설정 자체도 무리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외지인이라서 쉽지 않다'라는 전제조건도 이상하게 들린다. 글쓴이가 지금 당장 '제주시 평대(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 중 몇은 구좌읍 평대리였다)리 월세'라고 치면 결과물이 나온다. 요즘은 이렇게 온라인상으로 전, 월세 구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2020년대를 사는 우리는 이 현상에 올라타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굳이 오프라인에서 도움을 받아 '선주민들은 외지인이라면 공인중개사 일도 제대로 안 한다'란 장면을 보여준다. 이 설정이 특정 캐릭터를 위해 들어갔다는 걸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글쓴이는 이것이 '굳이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취지를 떠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보기 충분하다. 문제는 이런 불필요한 것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는 점이다. 중후반부 반동인물에 해당하는 캐릭터는 혼자만 괸당을 빗겨나가는 것처럼 행동해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차라리 괸당문화를 묘사할 거라면 영화 덕지덕지 붙여놓을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장면에만 등장하는 방식으로 연출했을 것 같다). 이런 연출이 왜 일어났을까. 글쓴이는 낮은 이해에 온다고 봤다. 한 지역의 병폐가 24시간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용된다는 게 말이 되나? 더 깊게 이해했다면 단 한 장면으로도 많은 걸 보여주지 않았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글쓴이의 이런 지적이 의미 없지 않다는 걸 보여주듯 '감귤'이라는 소재도 영화 안에서 맥없이 소비된다. 제주는 귤만 팔아서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곳인가? 일반적으로 직장 다니는 직장인은 없나? 이런 허점들이 영화가 자신이 없으니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제주에 며칠 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몇 마디만 들었다고 해서 제주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단지 그대로 따랐다.
드 팔마가 정색해
전체적인 총평. 낡았다. 제주에 사는 글쓴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제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그럴 것이 없다. 기껏해야 윤경호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것 정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나머지 배우들이 그렇게 속 시원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건 아니라 전체적인 연기를 보면 좋았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깔깔깔 웃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최근 제주에 있었던 '비계 오겹살 논란'을 언급할 수 있다. 제주에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영화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고 이해해야 할 리듬이란 것이 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다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영화에서 사건만 짠하고 보여준다고 해서 충격적이지 않다. 또 빌런이 사회통념상 악랄한 짓을 한다고 해서 나쁜 놈이 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장르를 얕게 이해하듯 제주라는 지역도 조금만 안 티가 난다. 낮은 이해도가 어떤 허점을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예시가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제주에 사는 팬으로서 이야기의 완성도로 승부하는 제주 영화가 만들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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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슬리 영혼 구하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레슬리에게>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레슬리에게>는 2023년 11월 29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레슬리에게
To Leslie
To. 레슬리 씨
안녕하세요, 레슬리 씨. 당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레슬리에게>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영화의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자꾸만 당신에게 마음이 동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감상한 이후 줄곧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참으로 기구하더군요. 복권 당첨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확천금의 행운을 얻었지만, 6년 후 당신에게는 단 한 푼의 돈도 남지 않았지요. 하지만 스스로 자초한 불행이기에 마냥 기구하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다 타버린 담배를 끝까지 부여잡고서 마지막 한 모금을 쥐어짜내던 당신의 모습은 안쓰러웠으나, 안쓰럽지 않았어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만 달러라는 돈을 모두 써버린 것도 모자라 돈을 벌 생각도 없이 술만 마시는 당신의 모습은 전혀 좋게 보이지 않았죠. 게다가 6년 만에 만난 아들이 부탁한 것은 딱 하나, 술을 입에 대지 말라는 거였잖아요. 그러나 당신은 아들 친구의 돈을 훔쳐서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이러다가 제임스 씨가 당신을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어요.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더군요. 그렇게 당신은 유일한 생의 동아줄이었던 아들에게도 완전히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버리고 떠났던 그 마을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때, 당신이 짓고 있던 표정이 떠오릅니다. 부끄러워 보이지도, 주눅 들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전적이었죠. 돈이 있건 없건, 아들을 버렸건 아들에게 버려졌건, 고개를 빳빳이 드는 당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호전적인 당신의 에너지는 오직 술에서 나온 거니까요. 겉과 속이 같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뿌연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 자욱한 안개 속에 평생 머무르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요.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안갯속이 현실보다 더 나았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에는 당신을 향한 연민보다는 질책이 더 많이 차올랐습니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었더라도 나는 분명 제임스 씨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옳지 않은 선택을 한 당신을 떠났겠지요. 본인에게서 시작된 문제이므로, 해결도 스스로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겁니다. 세상 탓만 하는 것은 피해의식이라고 치부하고, 결국은 회생하지 못하겠다 생각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모텔 직원 스위니 씨 곁에서 당신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술의 세계로 도망치기를 멈추고, 침잠하기를 그만두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는 당신을 보았죠. 못마땅하던 마음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맘속으로 당신을 마냥 비난만 하고 있던 제가 못나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왜 스위니 씨처럼 당신의 의지에 지지라는 바람을 불어넣어 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게다가 나는 끝까지 당신을 믿지도 못했습니다. 스위니 씨와 의기투합하여 식당을 차린 그날, 당신은 로열 씨의 품에서 술병을 몰래 꺼내 그 향을 맡았지요. 나는 당신이 그 술을 마시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죠.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불씨가 없으면 불은 절대 붙을 수 없는 법임을 잊고 있었습니다. 스위니 씨는 분명한 지지자였지만, 레슬리 씨의 영혼을 구한 것은 바로 당신이었어요.
편협한 옳고 그름의 기준에만 사로잡혀 당신을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 감히 판단해서 미안합니다. 나는 마음이 아픈 당신을 이해할 만큼의 아량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당신을 믿지 못한 저는 어쩌면 당신보다 더 괜찮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답도 없는 옳고 그름만을 따지다가 못난 외골수로 늙어버릴까 문득 겁이 나네요.
"영화 같은 삶은 없다"는 로열 씨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 말에 반대표를 던집니다. 영화는 우리의 삶이고, 삶은 모두 영화지요. 영화가 있기에 저는 당신과 만났고, 당신을 만났기에 제 삶은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사는 세상에서 또 다른 레슬리 씨를 만난다면, 꼭 당신을 떠올리겠습니다. 그때는 그를 함부로 재단하여 안개 속으로 밀어 넣기보다는 기꺼이 도움으로써 안개 밖으로 손잡고 빠져나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삶에는 때때로 안개가 스미겠지만, 그것은 금세 왔다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부디 행복만 하시길.
P.S. 당신을 이 세상에 선보인 배우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에게 찬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카메라에 그의 얼굴이 담길 때마다 당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공간을 뒤트는 부탁이지만, 꼭 들어주시길 바라봅니다.
From. 방자까
Summary
술에 빠져 수억의 복권 당첨금까지 잃은 레슬리는 몇 년 후, 사이가 틀어진 아들 제임스와 재회하지만 달라지지 못한 모습 탓에 그와 다시 멀어진다. 그런 레슬리에게서 과거를 떠올린 모텔 주인 스위니는 레슬리에게 모텔 청소부 일을 제안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마이클 모리스
출연: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오웬 티그, 마크 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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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같이 달콤한 꿈을 향해 나아가기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절망을 주기도 한다. 쉽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 꿈이 막혀버리기 쉽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기까지 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오기 전에 일반적으로 꿈은 우리에게 달콤한 환상을 준다. 꿈을 이룬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달콤함을 느낀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 달콤함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과 계기를 찾으려고 애쓴다.
꿈은 초콜릿과 닮았다. 한 입 베어 물고 입안에서 녹는 초콜릿의 맛이 느껴졌을 때 느껴지는 달콤함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그렇게 달콤함을 느끼면서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마치 힘든 삶의 감초처럼 초콜릿은 모든 이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한다. 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꿈을 꺼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할 때 마치 그 꿈을 이룬 것 같은 달콤함이 느껴진다.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몸 안에 도파민이 퍼지며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초콜릿과 꿈의 달콤함이 영화 <웡카>에 가득 담겨있다.
첫 번째 감정 - 웡카의 설레임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맨 첫 장면 배를 타고 새로운 도시에 입성하는 장면부터 웡카는 자신의 꿈이 모두 이루어질 거란 생각을 한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이 만든 초콜릿으로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긍정성을 드러낸다. 긍정적인 말을 뱉으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웡카가 자신의 목표에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달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강하게 믿는다는 것이,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바보 같은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웡카의 자신감은 그가 무언가를 이룰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웡카가 도착한 도시는 쉽지 않다. 첫날부터 웡카가 가진 돈을 쓰게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물가는 비싸다. 하지만 웡카가 가진 설레임은 그 모든 걱정을 날려버릴 만큼 강력하다. 자신이 만든 초콜릿을 처음 세상에 내놓을 거라는 꿈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는 것은 웡카를 더욱더 설레이게 한다. 이런 웡카의 설렘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그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는 관객들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웡카를 돕는 인물들에게도 전달되어 꿈을 위한 도전을 하게 만든다.
결국 꿈을 향하게 하는 건 그 꿈이 이루어질 때의 설레임 때문이 아닐까.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최악의 상황에 놓이지만 웡카의 설레임에 공감하면서 그 설레임을 꿈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돕는 것이 결국 그들 모두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설레임의 힘이다.
두 번째 감정 - 웡카의 그리움
웡카는 돌아가신 엄마(샐리 호킨스)를 그리워한다. 늘 엄마표 초콜릿을 먹으며 행복함을 느꼈던 웡카는 늘 엄마가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마치 그 초콜릿이 엄마인 것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이 맞이하는 도전적인 순간과 환희의 순간들을 함께한다. 그런 중요한 순간이 시작되기 직전 늘 월카는 혼잣말로 주문처럼 이야기한다.
엄마 한 번 해볼게요. 잘 보세요!
마치 마법처럼 웡카가 자신의 초콜릿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모습은 무척 자신감이 넘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치 엄마가 지켜보는 것처럼 웡카의 마음속엔 늘 엄마라는 존재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웡카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감정이자 위기에 빠져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또한 무엇보다 웡카는 엄마가 초콜릿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알고 싶었지만 결국 엄마에게 듣지 못한 채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미 웡카는 최고의 초콜릿 제조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가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좀 더 완벽한 초콜릿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을 만들어낸다. 그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엄마표 초콜릿의 맛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완벽한 맛이었기 때문이다.
웡카가 그리워하는 엄마는 웡카의 꿈을 만들어준 인물이면서 완벽한 스승과도 같다. 그래서 웡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에너지를 초콜릿 연구에 쏟아내고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완벽한 초콜릿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사해내고 만다. 어쩌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 웡카에게 그런 완벽한 꿈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감정 - 초콜릿 회사 사장의 두려움
영화에는 기존 초콜릿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심에 서있는 슬러그워스(패터슨 조셉)는 처음부터 끝까지 웡카가 도시에서 초콜릿을 팔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초콜릿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이미 엄청난 성공을 한 그는 웡카가 만든 초콜릿을 먹어본 이후, 웡카를 도시에서 몰아내려 무척 노력한다. 사실 슬러그워스는 웡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세고 성공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웡카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용납하지 못한다.
슬러그워스는 왜 그렇게 두려움에 빠져있는 걸까. 그는 이미 경쟁회사의 사장들과 연합해서 도시의 모든 초콜릿을 독점 공급하고 있었다. 경쟁사의 사장들과 연합하면서 다른 작은 경쟁사들을 배제하기로 담합한 것이다.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콤한 초콜릿에 빠져있는 그 상황에서 새로운 경쟁자의 유입은 그들의 입지를 줄일 수 있으니 더욱더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초콜릿의 맛이 웡카가 만든 것보다 떨어졌으니까!
슬러그워스의 두려움이 강력한 힘으로 표출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약점을 드러낸다. 돈과 초콜릿으로 많은 사람을 매수하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만, 자신들만의 순수한 꿈을 가지고 있는 선한 사람들에게 그것이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슬러그워스를 포함한 초콜릿 회사 사장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계속 표현했다고 느껴진다. 영화의 초반, 초콜릿 판매매장이 있는 거리에서 웡카가 자신의 초콜릿을 판매하려고 노래를 부르는 그때, 각자의 매장에서 웡카를 보는 그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두려움을 볼 수 있었다. 이후 그 두려움이 영화 내내 표현된다. 결국 그 두려움은 그들을 몰락시킨다.
영화 <웡카>는 꿈에 대한 동화다. 꿈이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설레임을 느낀다. 그리고 어려움이 앞에 닥쳤을 때, 과거의 어떤 순간이나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며 상황을 돌파할 힘을 얻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두려움을 맞는다. 꿈을 이루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지나고 나서, 그 꿈이 진짜 이루어졌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든 어쨌든 우리 모두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 속 웡카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힘을 합쳤던 것처럼 우리도 친구들과 함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 모든 감정들과 함께. 무척이나 긍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한 초콜릿 같은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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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시대 공성전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했는지 리얼하게 보여주는 영화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아이온크래드2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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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효자> 메인 예고편
저 세상 엄니가 ‘좀비’로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닥친 태풍 소식에 5명의 형제들은 함께 산소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 부서진 관 사이로 엄마의 시신이 온데간데 사라졌다? 알 수 없는 기막힌 상황에 집으로 돌아오자 ‘좀비’로 변한 엄마가 이들을 기다리는데! 이렇게 된 이상, 본격 효도에 들어간다! 불효자들의 좌충우돌 효도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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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은 미 서부극 스타일과 SF 영화를 합친 액션 우주 활극이다. 일명 ‘카우보이’로 불리는 세 명의 현상금 사냥꾼들이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치명적인 것만큼이나 각자 개성이 뚜렷한 스파이크 스피겔(존 조), 제트 블랙(무스타파 샤키어), 페이 발렌타인(다니엘라 피네다)이 태양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자들을 잡으려 팀을 이룬다. 목적은 단 하나, 고액의 현상금. 비록 정신없고, 제각각인 일당들이지만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다. 그러나 티격태격하며 기분 좋게 악당을 잡으러 다니는 것도 잠시뿐. 곧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가 덮쳐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