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2-09-26 08:00:17
[DMZ DOCS] 중국 자본은 대리석을 타고
〈대리석 오디세이〉 리뷰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대리석 오디세이(A Marble Travelogue)
Netherlands, Hongkong, France, Greece/2021/99min/션 왕 감독 작품
그리스와 중국. 별다른 접점이 생각나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사실 두 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서로 가까운 관계다. 카메라로 ‘대리석’만 좇아도 둘이 얼마나 가까운지 금세 드러난다. 영화 〈대리석 오디세이〉를 따라가 보자.
나무로 뒤덮인 그리스의 한 초록색 산. 그곳에 거대한 쥐가 파먹은 듯한 패인 자국이 있다. 대리석 채굴의 흔적이다. 그리스는 엄청나게 많은 대리석을 중국으로 수출한다. 중국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고급’ 취향, 즉 대리석 선호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수출된 커다란 대리석은 공장식 작업장에서 조각되어 중국의 부호, 테마파크, 심지어 유럽과 미국에까지 팔린다. 대부분 유명한 그리스 조각상을 모방한 것들이지만 ‘짝퉁’이라고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중국의 대리석 조각상 수요는 그리스인 조각 장인을 중국으로 이주하게 할 만큼 엄청나다. 대형 작업장에서 중국인 직원들의 작업을 꼼꼼히 살피며 지시하는 그리스인 조각가가 말한다. “이건 오직 중국에서만 가능한 일이에요(Only China can do)!”
대리석은 무엇 하나 버려지지 않고 알뜰히 활용된다. 대리석상을 조각하는 과정에서 생긴 하얀 가루는 별도로 모아 다른 물질을 첨가한 후 조그만 주형틀로 들어간다. 우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마주하는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조그마한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공장에 있는 주형틀 말이다. 영화에는 프랑스 파리, 미국 하와이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그곳으로 수출될 하얗고 조그만 대리석 액세서리를 색칠하며 꿈을 키우는 장면이 나온다. 액세서리 공장에는 어린이 노동자도 많다. 매우 조그만 장식품에 색을 칠하는 세밀한 작업이기에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나와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노동은 기쁨보다는 소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받는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으로 파리와 하와이에 갈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적 관광지의 모습을 담은 악세사리 채색 노동을 하는 아이들은 아마 자신들이 색칠하는 풍경으로만 파리와 하와이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공장 한편에 있는 채색하는 기계가 머지않아 아이들의 노동을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그리스는 중국 일대일로의 핵심국 중 하나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된 그리스는 중국의 막대한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점차 강화하는 중이다. 그리스 길가 곳곳에서는 중국어를 손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투자를 부추기는 말이다. 그리스와 중국은 자본을 매개로 매우 긴밀하게 엮여 있다. 영화에는 ‘문화 사절단’을 자처하며 다양한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그리스인 쌍둥이 자매의 모습도 나오는데,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 역시 그리스인의 생존이 중국 자본에 달려 있음을 보인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Marble Travelogue’다. 직역하자면 ‘대리석 여행-로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오디세이’가 들어간 한국어 제목이 더 적합해 보인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여행기(《오디세이》)가 중국 자본을 매개한 대리석의 여정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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