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미2022-10-13 16:40:58
먼 나라에서 더럽게 얽혀 버린 두 남자
실화가 더 드라마 같은 <수리남>
넷플릭스 <수리남> 포스터
편성 : 넷플릭스, 6부작·완결 │ 장르 : 한국, 범죄·드라마
연출 : 윤종빈 │ 극본 : 윤종빈, 권성휘
출연 : 하정우(인구), 황정민(요환), 박해수(창호), 조우진(기태), 유연석(데이빗) 외
시청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넷플릭스 <수리남> 스틸컷
홍어 팔러 간 남자 VS 마약 팔러 간 남자
‘수리남’은 남아메리카에 있는 인구 60만의 작은 나라다. 한국에서 카센터와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살던 가장 ‘인구’는 수리남에 돈을 벌러 갔다. 배를 타던 친구가 그러는데 수리남에는 홍어가 지천으로 깔렸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홍어 삼합을 없어서 못 먹는데 수리남에서는 수요가 없어 그냥 버려진다니, 거기에 가서 홍어를 만지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겁도 없지. 인구는 그렇게 돈의 냄새를 맡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 수리남으로 향한다.
거기에서 인구는 목사 ‘전요환’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같은 한국인이자 수리남에 오래 뿌리내린 듯한 그를 믿고 의지하며 지내던 어느 날. 한국으로 홍어를 실어 보내던 인구의 배에서 코카인이 발견되어 영문도 모른 채 구금이 되고 만다. 이때도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전요환 목사뿐. 그러나 해결해보겠다던 그에게선 연락이 없고 엉뚱한 사람이 인구를 찾아온다. 그는 국정원 요원 ‘창호’. 창호는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이 그 목사이며, 사실은 목사가 아니라 수리남 최고 마약왕임을 설명한다.
사연인 고로, 국정원은 오래전부터 이 마약사범 전요환을 검거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꾸리던 중이었으나, 수리남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어 전요환을 체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인구가 전요환을 유인해줄 미끼로 낙점된 것이었는데, 잘못한 것도 없이 남의 나라 감옥에서 썩게 생긴 인구에게 선택지가 있을 리 만무. 결국 인구는 국정원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넷플릭스 <수리남> 스틸컷
원래 실화가 더 드라마 같다지요
홍어와 코카인과 국정원이라니. 이 뜬금없는 막장 범죄 소설 같은 이야기는 놀랍게도, 모두 실화다. 실제 수리남에서 목사 행세를 하며 코카인을 팔던 ‘조봉행’의 일화를 모티브로 했는데, 우연히 조봉행의 일화를 알게 된 배우 하정우가 윤종빈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했고, 그러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라고. 이 비현실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에 놀라기는 이르다.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고퀄리티 촬영 스케일과 배우 라인업은 더 놀라우니. 인구 역에 하정우, 사기꾼 조봉행 역에 황정민, 국정원 요원 역에는 박해수에다, 조연으로는 무려 조우진 유연석이 있다. 때문인지 6화라는 이야기가 참 짧게 느껴졌다.
더불어 이 이야기는 두 주인공이 ‘돈’을 대하는 각기 다른 태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재미 요소가 있었다. 평범한 우리 눈에는 수리남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먼 나라 땅이다. 그런데 인구도 요환도 모두 돈을 벌러 수리남에 갔다. 전요환은 그 곳에서 코카인이라는 돈을 보았고, 인구 역시 홍어를 팔아 큰 마진을 남기겠다며 수리남으로 향했더랬다. 둘은 어찌 보면 비슷한 유형이다. 그런데 참 묘하다. 전요환도 인구도 돈을 좇는 건 매한가지인데, 우리는 왜 전요환은 욕하면서 보고, 인구는 이해하면서 보았을까. 그 이유는 평범한 우리가 돈을 대하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넷플릭스 <수리남> 스틸컷
먹고사니즘 또는 종교
누구나 ‘돈’에 일찍 눈을 뜨는 계기가 있다. 인구는 어린 시절 가난했다. 밤낮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과로사하고, 두 동생과 세상에 남겨졌을 때. 어린 인구의 가치관은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굶어 죽지 않아야겠다는 것.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소년가장이었던 인구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된다. 그 시절 아버지들이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랬듯, 낮에는 카센터를, 밤에는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인구는 버티고 또 버틴다. 그러니까 인구에게 돈이란, 가난을 벗고 온 가족이 등 따습게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 평범한 우리들이 돈을 좇는 대표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제 아무리 인구가 아가씨 나오는 유흥업소를 운영한들 욕하지 않는다. 그게 다, 평범한 먹고사니즘이란 걸 이해하니까.
전요환, 실존 인물로는 조봉행. 나는 그 인간도 무척이나 가난했을 거라 본다. 가난이 엄청난 콤플렉스였기에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 점은 인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그는 뭔가 역겹다. 단지 부도덕한 업종으로 돈을 벌어서가 아니다. 돈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우리와’ 달라서다. 그는 우선 처자식이 없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행복하게 그 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는 돈 자체를 숭배하는 사람. 돈으로 권력을 사고, 돈에 방해되는 인간은 죽이고, 무덤에도 다 못 가져갈 돈을 벌고 또 벌어 자신의 우월감을 채우는 인간. 그러고 보니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애초에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돈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넷플릭스 <수리남> 스틸컷
돈방석 위에 앉아도 외롭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게 된들 그 행복을 나눌 사람이 없는 텅 빈 삶은 무의미하다. 결국 돈이란 건‘쓰기 위해’서 의미 있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쓸 수 있어’ 의미 있는 게 아닐까. 같은 이유로 드라마의 마지막, 인구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카센터를 운영하던 그 모습이 내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홍어로 떼돈을 벌 수도 있었고, 수리남 마약왕의 오른팔이 되어 더 큰 돈을 만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한국에 돌아와 결국 평범한 삶을 택했다. 수리남에서 파란만장한 일화를 겪고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돈에 둘러싸여 있어도 결국 외롭게 살고 싶지 않다는걸. 훗날 카센터에 찾아온 국정원 요원 ‘창호’가 큰돈을 벌어줄 유흥업소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을 때도 인구는 그래서 거절했을 것이다. 평범하고 안온하게 가족들과 투닥거리며 사는 게, 돈방석 위에 살다가 끝내 체포되어 감옥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삶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리남으로 점프해 마약과 살인과 중상모략이 판을 치는 이야기를 듣다 텔레비전을 끄니, 문득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그런 끔찍한 일들에 연루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오늘도 아주 평화롭고 고요하다. 돈은 적지만 외롭지 않고,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걸 함께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돈만을 쌓던 전요환이 불쌍하다면, 그는 나를 비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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