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2-10-14 00:08:22
[BIFF 데일리] 배제와 제거의 역사
영화 <무루> 리뷰
[BIFF 데일리] 배제와 제거의 역사
영화 <무루> 리뷰
감독] Tearepa KAHI 테아레파 카히
출연] Cliff CURTIS, Jay RYAN, Manu BENNETT, Simone KESSELL, Ria Te Uira PAKI, Roimata FOX, Poroaki MERRITT-MCDONALD, Tame ITI
시놉시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어 온 뉴질랜드 정부는, 동부 해안에 위치한 마오리족 마을 하나를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로 규정하고 특수부대를 파견한다. 특수부대원들이 마을을 비밀스럽게 조사하는 동안, 마을의 관할 경찰이자 같은 마우리족 출신인 태피가 그들의 임무를 눈치채게 된다. 어느 날, 평화스러웠던 마을에 총성이 울리고 태피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오리족 마을의 주민들과 경찰로서의 임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된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의 반목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에 대해 몰랐던 사람으로써 이 이야기가 지금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에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에 대해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던 영화 <무루>.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찰과 정부의 폭력성에 대해서 잘 다룬 작품이었다.
배제와 제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영화 <무루> 속에서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정부의 제거 대상이다. 그 이유는 바로 노래 속에 총리를 암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사실일까? 마오리족의 수장 타메는 항상 부르던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마오리족이 부르는 노래는 단어가 과격할 뿐 실제로 그것을 행한다는 의미보다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이 노래가 조상으로부터 내려왔고, 지속적으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뉴질랜드 정부는 가사만 듣고 이 노래는 암살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노래이며, 그 대상은 뉴질랜드 총리이기에 이들은 보안법상 제거의 대상이라며 특공대를 투입시킨다.
마오리족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자신이 결정내리고 판단한 사항에 대해서 잘못됐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초반의 결정을 그대로 밀어붙인다. 섣부른 판단을 그대로 밀고 가는 정부와 특공대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한 소년이 말을 타고 청소를 하기 위해 빗자루를 등에 메고 달리고 있었는데, 특공대는 이 빗자루를 무기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대상이라 명명하며 총을 쏜다. 이 과정에서 마오리족은 단지 소년일 뿐이며 무기가 아니라 빗자루라고 계속 설명하지만 특공대는 이를 세심하게 바라보지 않고 그저 ‘적’이라고만 판단한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족의 행동 하나하나에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는데, 뉴질랜드 정부가 마오리족을 적으로 만들어서 공격을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이득과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까지 마오리족을 배제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 말미에서 어떻게 해서든 작전을 완수하려는 특공대원에게 ‘집착을 그만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곧 뉴질랜드 정부를 향해 이 영화가 외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이상 마오리족에게 집착하지 말고 새롭게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자는 의미로 말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쓰는 것이 역사
특공대원은 마오리족 타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마오리족이 아닌 동료 경찰을 오인사격한다. 그러자 이를 덮기 위해 특공대는 이를 마오리족의 책임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 경찰을 죽인 마오리족을 만들어야 하고, 그 마오리족을 죽여서 입막음을 시켜야 하기에 특공대원은 끝까지 마오리족의 타깃을 사살하려고 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역사는 정말 살아남은 자가 해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느낄 수 있었다. 만약 특공대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2007년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의 이야기는 뉴질랜드 정부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쪽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특공대의 작전은 실패했기에 뉴질랜드 정부가 아무리 이 사건을 은폐, 엄폐를 하려고 해도 피해를 입은 마오리족이 존재하기에 이 사건의 진실이 이렇게 기록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부에 비하면 마오리족은 절대약자다. 그 약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끝까지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서든 기록하고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뉴질랜드의 역사가 편향되지 않고 제대로 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그 기록의 연장선상으로 기획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현재진행형인 뉴질랜드 정부와 마오리족의 갈등을 담아내고,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뉴질랜드의 현대사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좋았던 영화 <무루>. 국가의 폭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10-07 20:00
CGV센텀시티 6관
104
2022-10-09 17:00
CGV센텀시티 4관
259
2022-10-11 11:30
CGV센텀시티 7관
402
2022-10-12 11:30
CGV센텀시티 7관
507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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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은 할 수 없는 DC의 한방
#조커 #스포일러_없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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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흩어진 밤> 티저 예고편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갑자기 집에 찾아드는 낯선 사람들.
엄마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오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그리고 원치 않게 떠맡게 된 힘든 선택.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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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럴센스> 메인 예고편
- 색' 다른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관심가던 그녀가 '색' 달라 진다 취향존중 상명하복 큐티+섹시 로맨스!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 2월 11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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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범 | 악의 마음을 읽는 대신 가리기 급급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7살 딸 '소현'(기소유)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영은'(곽선영). 수영 강사 일을 하며 혼자서라도 딸을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버겁기만 하다. 화가 나면 엄마도 칼로 베고,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을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왜 다른 생명을 죽이면 안 되냐고 묻는 소현의 기이한 행동이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 엄마의 헌신과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소현이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이자, 영은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다.
20년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고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권유리). 그녀는 딸이 잃은 이후 자신을 딸처럼 '현경'(신동미)과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그들 앞에 해맑은 얼굴의 '박해영'(이설)이 나타난다. 가족도 없고, 과거 이력도 알 수 없는 해영이 조금씩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민은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과 해영이 갈등이 정점에 달한 순간, 그들이 각자 숨기고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악인의 서사를 거세한 스릴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잔혹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구호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애도나 연대보다 가해자의 사연, 수법 및 범죄 결과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를 비판하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외침에는 우려도 따른다. 이 구호에 내포된 사회적 악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악인의 서사는 때때로 유용하다. 가해자의 서사는 범죄 발생의 개인적, 구조적 원인이나 사회의 모순, 그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까지도 말해줄 수 있다. 일례로 조현병 환자의 살인 사건은 범죄 예방 대책과 보건 복지 대책이 더 끈끈하게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일러준다. 따라서 그들의 서사를 극단적으로 배제할 경우 동종의 범죄를 예방하고 잠재적인 피해자를 더 많이 구제할 기회를 놓칠 위험이 따른다.
악인이 아닌 사람까지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성도 유발할 수 있다. 악인의 서사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도덕적 확신이 견고할수록 더 많은 서사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 설령 악인이 아니어도 자신과는 다른 서사를 지닌 타인을 쉽게 배제하고, 악마화할 수 있으니까.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악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일부 공감하는 자신을 보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는 훈련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침범>은 단편적이다. 영화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구호에 충실하다. 악인을 순수악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며, 악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도 일부러 외면하면서 스릴러로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악인의 서사를 회피했을 때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와 메시지에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하여>와의 결정적 차이
<침범>은 1막과 2막으로 나뉜다. 그중 1막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킨다. 소재가 같기 때문.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는 엄마 '에마'(틸다 스윈튼)를 보여줬다. <침범>의 1막도 마찬가지다. 엄마 은영은 딸 소현을 키우기가 버겁다. 그녀는 기본적인 사회성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딸이 무섭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케빈을 타고난 악인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의 서사를 보여준다.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처음부터 아들을 두려워하고 밀어내려 한 엄마.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까 무서워하며 불안정해지고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아들. 영화는 모자의 갈등과 충돌이 사이코패스 살인범 케빈을 낳는 과정을 차분히 훑는다.
<침범>은 정반대다. 소현을 순수한 악인으로 묘사한다. 반려견을 죽이고, 친구들을 공격하고, 엄마도 칼로 베는 그녀의 악행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는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소현의 아빠가 가족을 떠날 만큼 그녀의 타고난 기질이 잔인하고 남다르다고 언급하고, 단순한 질투심 정도를 공격적인 행동의 이유로 등장시킬 뿐이다.
반면에 영은의 모성애는 강조된다. 영은은 딸에게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설명하고, 그녀의 공격성을 해소하기 위해 시골 농장에서 닭도 잡는다. 그녀의 헌신은 악인과 그의 서사를 애초에 배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엄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딸이 변할 기미가 없다 보니 배제의 논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이는 1막의 끝을 장식하는 수영장 시퀀스에서 영은이 딸과 함께 자살하려 하는 이유로 이어진다.
장르적으로 거부한 악인의 서사
2막도 다르지 않다. 2막에서도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는 선택적으로 다뤄진다. 그녀가 얼마나 잔혹하고 파렴치한 지를 장르적으로 풀어낼 때에만 포착하면서 영은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때 핵심은 <화차>를 연상시키는 미스터리다. 1막과 2막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 덕분에 관객은 2막에 등장한 인물 중 누가 소현인지를 알 수 없다. 이 무지에서 비롯된 서스펜스가 2막의 원동력이 된다.
소현처럼 보이는 주인공은 두 명, 김민과 박해영이다. 김민에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있다. 이 대목은 수영장에서의 자살 시도 후 영은은 입원하고, 소현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한편 갑작스럽게 등장해 김민과 현경 사이에 끼어든 박해영은 과거사가 아예 묘사되지 않는다. 공백으로 남은 개인사는 20년의 공백과 이어지면서 해영을 소현으로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소현의 정체를 다룬 미스터리는 큰 효과가 없다. 해영의 반복된 악행을 김민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소현의 정체가 일찍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현의 정체를 숨기면 김민이 현경 몰래 가족 행세를 하는지, 아니면 해영이 김민과 현경의 관계에 침범하는지가 헷갈린다. 그러나 소현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침범의 주체는 명확해지고, 미스터리도 단순 서프라이즈를 유발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지만 <침범>은 스릴러다운 공포감과 긴장감만큼은 유지하면서 이름값을 해낸다. 타인의 사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를 얼굴을 맞대고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 특히 직장과 거처를 마련해 주는 호의를 가족을 침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적의로 되갚는 해영, 곧 소현을 지켜보다 보면 왜 영은이 딸인데도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읽는 대신 덮다
에필로그에서도 <침범>의 관점은 유지된다. 물가에서 영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는 소현은 죄책감보다는 세상의 잘못을 토로한다. 엄마가 자기 말에 공감하지 않고, 도리어 수영장에서처럼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소현은 영은의 환영을 죽인다. 이렇게 <침범>은 마지막까지 소현의 서사를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하고, 그녀를 '순수악'으로 규정하며, 어떤 가족과 사회도 침범할 수 없도록 배제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다소 편의적이고 무책임해 보인다.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를 편린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비를 이루는 물과 불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물과 불의 차이에 주목하면 순수악처럼 그려지는 소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소현은 어려서부터 물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두려울 때 솔직해진다"라는 소현의 대사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본모습을 드러내면 늘 혼났다. 심지어 그녀의 본모습을 아는 아빠는 가족을 떠났고, 엄마는 자신을 버리려고 했다. 이처럼 솔직해져서는 안 되는 소현이 보기에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물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감춰야 할 때면 물과 반대되는 불을 선택한다. 가출 후 보육원에서 지낼 때 할머니가 찾아오자 정체를 들킬까 봐 보육원에 불을 지른다. 김민이 자신의 과거를 알아채자 또 한 번 불을 지르고 자신을 숨기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에필로그도 의미가 달라진다. 엄마의 환영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은 모순된 욕망과 강박이 잔혹함 대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의 대가
이처럼 극 중 흩어져 있는 파편으로부터 소현의 서사를 읽어내면 <침범>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범>은 소현을 '순수악'의 포지션에 가두면서 그 가능성 자체를 닫아 버린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케빈에 대하여>에 비하면 소재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성장시킬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소현의 서사를 일부러 무시한 선택도 역효과를 낸다. 그녀의 악행을 장르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악인과 관련된 이들의 서사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범>은 악인의 서사에 관심이 없지만, 악인의 피해자도 그의 잔혹성을 과시하는 도구로만 활용한다. 즉, 악인의 서사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때 발생할 부작용을 <침범>의 회피적 태도가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소현의 할머니는 은영이 죽은 후에도 소현이를 돌보다가 수 차례에 칼에 찔리고 베인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그저 소현의 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20년 간 할머니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지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 김민과 해영의 플롯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간 일관된 소현의 악행을 과시할 뿐이다. 소현이 도망친 후 피해자인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침범>은 장르적으로 즐길만한 스릴러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력적인 소재, 모성애와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색깔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고찰의 부작용이라고 불 수도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케빈에 대하여>, 비슷한 장르와 구성을 취한 <화차>의 그림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탐구 대신 덮어두기를 선택한 회피형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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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 여직원을 향한 원펀치 레이디 쾌감 질주
청춘들의 꿈과 열정을 담은 판타지 성장극으로 2022 재팬 필름 페스티벌에서 많은 시네필들의 개봉 요청으로 극장가에 소개되었던 ‘썸머 필름을 타고!’처럼 지난여름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첫 공개 이후 폭발적인 호평으로 관객상에 해당하는 넷팩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2022년 일본액션영화 지옥의 화원 리뷰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느 기업과 다름없지만, 속내를 보면 최강의 여직원이란 타이틀을 위해 각 부서별 파벌 싸움이 끝이지 않는 미츠후지 상사를 배경으로, 아주 평범한 회사원 나오코가 싸움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피스 코믹 액션입니다. 단 하나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도쿄 리벤저스’, ‘상남 2인조’, ‘크로우즈’ 등 익숙한 학원 액션물을 비튼 회사와 여사원들이라는 신선함은 흥미를 이끕니다. 만화 같은 오버스러운 액션과 허를 찌르는 웃음이 12월의 기분 좋은 팝콘 무비가 되어주리라 생각되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지옥의 화원 정보
너 정체가 뭐야?
평범한 기업 미츠후지 상사의 평화로운 점심시간, 동료들과 수다를 떨던 영업부 다나카 나오코의 뒤로 한 명이 날아갑니다. 그리고 조용히 회사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서열 쟁탈전을 설명해 줍니다. 귀여운 외모와는 정반대 성격을 가진 영업부의 광견 사타케 시오리, 과거 폭주족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개발부의 악마 안도 슈리, 타 회사 여직원과 다퉈 상해죄로 감옥까지 다녀온 제조부의 괴수 간다 에쓰코까지 이곳은 사무가 아닌 주먹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아주 험난한 회사였죠. 슈리가 모두를 제압하며 쟁탈전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얼마 뒤, 새롭게 들어온 호조 란이 단 하루 만에 이들을 격파하며 단숨에 판도를 뒤엎습니다. 평화도 잠시, 주변 회사까지 이름이 퍼지면서 그 사이 란의 단짝이 된 나오코가 주식회사 톰슨 무리에게 납치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地獄の花園 , 영제: Office Royale│감독: 세키 카즈아키│각본: 바카리즈무
출연진: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 나나오, 카와에이 리나, 오오시마 마유키 외 多
장르: 코미디, 액션│상영 시간: 102분
국가: 일본│등급: 15세 관람가
수입: 찬란│ 배급: 찬란, (주)하이스트레인저
평점: 기자·평론가 5.33, 왓챠피디아 예상 3.6, IMDB 6.4
수상내역: 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 25회 판타지아 영화제 베스트데뷔상-특별언급
상영 일정: 개봉일 2022년 12월 15일
# 지옥의 화원 후기
이 세상 텐션이 아닌 그녀들이 온다
원작이 있을 법해 보이는 주먹 서열이 곧 사내 서열이 된다는 독특하고 엉뚱한 상상을 마치 실사 만화처럼 코믹하게 그려낸 이번 작품은 우리가 지금껏 봐온 학원 액션물의 세계관과 구조를 충실히 따라가며 신선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만화 같은 현실을 독자처럼 설명해 주는 다나카 나오코의 내레이션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회사의 괴랄함에도 흥미를 이끌고 이에 맞춰 만화 주인공처럼 맞춰진 장면들과 캐릭터 하나, 하나에 부여된 별명들은 왠지 모르게 빠져드는 마성을 부여하죠. 여기에 초반부터 걸크러쉬 매력을 뿜어내며 누가 봐도 주인공이었던 란과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원한 힘숨찐 나오코의 충돌은 대미를 장식하며 사나이들의 의리가 무색할 만큼 찐한 케미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봐도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두 사람이 싸움도 일등이라니..
뻔해도 나가노 메이와 히로세 아리스가 하면?
평범한 학생과 일진 불량학생을 회사로 옮긴 듯한 뻔하고 허무맹랑한 저세상 이야기지만, 회사를 지배하는 것은 어느 부서할 것 없이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리고 뻔뻔하게 유치 찬란한 코믹한 상황의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 나나오, 카와에이 리나 등의 일본 내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웃음을 충분히 던져줍니다. 물론, 후반부에서 엔도 켄이치나 카츠무라 마사노부의 우스꽝스럽고 오버된 모습이 가장 큰 재미를 주지만요. 확실히 콩트 개그 연기의 달인이라 불리는 바카리즈무가 각본을 써서 그런지 능청스러움도 묻어나고, 클리셰 범벅에도 훌륭한 B급 코믹이 조화롭게 믹스된 느낌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상황과 연출에도 절로 웃게 되는 마성이 있다고 할까요?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란과 그 반대로 재능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고픈 나오토, 둘 다 굉장히 어려운 삶이라 생각됩니다. 일인자가 되려는 노력도, 평범하게 살려는 인내도 주변 환경에 따라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의미 없는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의외의 튀어나온 러브 라인 뒤로 이어지는 ‘완패’라는 큼지막한 자막입니다. 인생에서 모솔보단 커플이 100배 낫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은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신나는 락이 어우러진 OST과 스피디한 액션, 오버된 CG 효과 속 빠른 전개가 실사 만화를 보는 듯 빠져들게 만든 일본 오피스 액션 영화 지옥의 화원, 평론가들은 박할 수 있겠지만 저세상 텐션의 즐거움을 기다렸다면, 분명 만족하시리라 생각됩니다. :)
한 줄 평 : 단 하나의 변주가 뻔뻔한 클리셰 범벅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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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일본에서 주목받는 떠오르는 영화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새벽의 모든>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심한 감정 변화에 시달리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야마조에가 특별한 연대로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공감 드라마입니다.
새벽의 모든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3연속 베를린에 초청된 미야케 쇼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신예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의 섬세한 연출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9월 셋째 주 개봉예정 PICK
새벽의 모든
All the Long Nights
개요: 드라마 | 일본 | 119분
감독: 미야케 쇼
주연: 마츠무라 호쿠토, 카미시라이시 모네, 미츠이시켄, 시부카와 키요히코
개봉: 2024.09.18.
배급: (주)디오시네마
줄거리
한 달에 한 번, PMS 때문에 짜증을 억제할 수 없게 되는 ‘후지사와’. 한층 악화된 증상에 다니던 회사를 도망치듯 그만둔 그녀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 ‘쿠리타 과학’으로 이직한다.
친절한 동료들과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에 차츰 적응해 가던 중, 직장 내 자발적 아웃사이더 ‘야마조에’의 사소한 행동에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크게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야마조에’가 극심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의 고충을 나눈 두 사람 사이에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특별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수유천
BY THE STREAM
개요: 드라마 | 한국 | 111분
감독: 홍상수
주연: 김민희,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개봉: 2024.09.18.
배급: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줄거리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부탁한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 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 때문에 연출을 맡은 것이다. 촌극하는 학생들 사이에 스캔들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 전임과 외삼촌은 그 사건에 가볍게 끼어들게 된다. 그사이 외삼촌은 텍스타일과 여교수와 가까워지는데, 밤마다 하늘의 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전임은 아침마다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테인티드 러브
Tainted Love
개요: 드라마 | 중국 | 100분
감독: 마잉신
주연: 주동우, 장위, 장유호, 이몽
개봉: 2024.09.19.
배급: (주)디스테이션
줄거리
“사랑해… 거짓말” 연인에게 사기를 당한 여자 ‘저우란’. 진실을 찾기 위해 방문한 낯선 곳에서 두 남자 ‘린즈광’과 ‘쉬자오’를 만난다. 꿈 같았던 만남도 잠시, ‘저우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깊어지는 사랑과 의심 속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트랩
Trap
개요: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 미국 | 105분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조쉬 하트넷, 아리엘 도노휴, 살레카 샤말란, 헤일리 밀즈, 알리슨 필
개봉: 2024.09.18.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팝스타의 콘서트, 경찰의 거대한 덫… 탈출해야만 한다!
10대 딸과 함께 인기 팝스타의 콘서트를 찾은 ‘쿠퍼’. 신나게 콘서트를 즐기던 그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곳이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한 거대한 덫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쿠퍼’ 자신이 바로 연쇄살인마라는 것! 이제 ‘쿠퍼’는 수많은 관객과 경찰을 따돌리고 어린 딸과 함께 무사히 이 덫에서 탈출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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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2016
프랑스 / 미스터리 외 / 105분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주인공 모린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저마다 뽐내기 좋은 취향과 유일무이한 개성조차 없는 인간이란 얘기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녀에겐 '단단하고 확실한 나만의 가치관'이 없다.
모린은 이란성쌍둥이 형제, 루이스와 같은 영매지만 오빠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했다. 루이스는 자신이 영매란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바보 같은 행위라 여기지 않았다.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죽은 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생관은 모린보다 뚜렷했으며 무엇보다 미래를 꿈꿀 줄 알았다. 그는 내일을 생각하며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남들처럼', 또 '보통으로서의 개인'처럼.
내가 개인이고, 네가 개인이며, 동시에 우리까지도 '개인'이 될 수 있는.
그리하여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남들. '사람들이 다 똑같지 뭐' 할 때의 그 사람들 같은.
루이스는 영매(남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진 개체)였으나,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단지 사는 방식과 추구하는 사고가 바로 옆에 사는 이웃과 구분됐을 뿐이다. 누구든 그런 것처럼.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반면, 모린에게 영매는 삶에 혼란과 혼동만 불러올 뿐 특별한 힘이 아니었으며, 중요한 가치는 더더욱 아니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평범한 인간, 루이스가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 모린은 갖고 있던 이력(영매)을 내세우긴커녕 보통 사람인척 살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상을 보냈지만, 그녀는 사실 홀로 다른 가면을 쓴 '진짜 타자'였다. 어렵지 않게 무리에 소속되고, 일하다가도, 혼자가 될 때면 홀린 듯 스스로를 타자화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 한 척처럼, 숨 막히는 공허와 고독의 파도에 삶을 맡겼다. 그리곤 당연하게 삶에 관한 질문들을 모른 척 흘러 보냈다. 모린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떻게 되는 내버려 둔 것이다. 루이스는 그런 모린의 실체를 사람들에게서 숨겨주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린 채로, 배에 구멍이 난 채로 그녀가 침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루이스 덕이었다.
루이스가 모린을 보호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린이 루이스의 존재를 자신의 편의대로 '등대'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린의 등대엔 불빛이 없었다. 암흑 속에서 꼭 죽은 것처럼 빛 없이 선 등대만 있었을 뿐이다. 현실에서 그 등대의 가치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그녀는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안정'이라 여겼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란 근본적인 물음보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관망하는 걸 택했다. 그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모린은 자신을 아는 일을 묻어두는 것으로 삶의 고통을 피해 가려했다. 그리고 그건 루이스가 정말 죽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나'를 아는 것만큼 괴롭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내일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은 뒤로 미뤄두는 일, 모린은 가장 중요한 나를 확립하는 일을 딱 그 정도로 여겼다.
영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부터 그녀에겐 어려운 문제였다. 모린은 루이스와 달랐으니까.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루이스'는 그의 의사와 별개로 모린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문젠 '모린의 루이스'가 의사의 언어 그대로 '예외적인 사례'(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사례란 말은 모린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흔들어놓는다.
잔잔했던 수면 위로 떨어지는 돌 하나. '예외'적인 '사례'.
마치 신이 이미 결정한 일에 딴지를 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되면, 다음은 쉽다.
예외에 희망을 붙이는 거다. 이 작업이 편해질수록 마음의 안정은 빨리 찾아오게 되어있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예외를 획득한 생'은 '사'를 피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린 이 착각을 불안해하면서도 굳게 믿음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가진 불안과 안정의 저울이니까.
물론 이미 깊은 자기 비관에 빠져있던 모린에겐 통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겠다는 선택지조차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심장기형'은 의사가 말한 '예외'에 꼭 맞는 결괏값이다. 루이스의 죽음이 예외적인 사례가 된 순간, 모린의 삶 역시 예외적인 죽음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6개월 후에 보자는 의사의 말에 자조적인 눈빛으로 "글쎄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 대답한다. 내일 죽을 확률이 이미 나왔는데 어떻게 죽지 않을 희망을, 아니 아직은 죽지 않을 희망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쉽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도, 모린의 희망은 찬란한 빛이 제거된 흑백이었다. 모린은 자기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어른인 동시에 루이스의 죽음으로 분열되어버린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분열된 자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스스로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먼저 죽은 사람이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어요."
죽은 오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리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모린. 하루에 몇 번이고 기차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키라의 취향에 꼭 맞는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구한다. 일이지만, 틈만 나면 반납해야 할 옷을 갖겠다 통보하고, 유명 연예인답게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키라 때문에 모린은 견딜 수 없는 피곤과 빠져나올 수 없는 억압에 허덕인다. 그나마 그녀를 숨 쉬게 하는 건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다.
모린은 오빠의 영혼을 느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직접 영혼의 신호를 포착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만족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루이스에게 더 확실한, 더 강력한 신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유령에게 자신을 어필하란 기이하고도 이상한 모린의 요구. 그녀에게 오빠와의 약속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영매로서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오빠가 정말 옳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모린의 진심이 결정적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침묵하는 영혼에 소리를 지르는 그때, 루이스의 집엔 불안해진 자신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모린, 자신의 울부짖음만 울려 퍼진다.
모린의 거짓말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분명 원하지 않았지만)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던 검은 장막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눈을 뜬 순간 모린은 자신이 봐왔던 등대가 빛을 내뿜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내 세계에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확인한 모린은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그녀는 누구인가?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욕망을 해방하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그녀는 키라가 입을 옷을 자신이 먼저 입으며 금기를 깨트린다. 고용주의 옷을 입으면서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모린. 묘한 쾌락과 심리적 떨림을 느낀 그녀는 점점 더 과감해진다.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키라의 옷과 신발을 탐한다. 익명이 보낸 문자가 모린의 고삐를 푼 결정적 계기로 이용된다. 마침내 그녀는 키라의 집에 들어가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사적인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한다. 그러나 모린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부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키라가 누리는 모든 것을 누려도 모린은 불안해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별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안정감 때문이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루이스와의 이상적인 이별을 원한다. 그러나 모린에겐 오로지 아무것도 드러낼 수 없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모린만 존재한다. 모린은 스스로를 '모린'이라 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런 와중에 삶의 목적이 확고했던 루이스와 같은 결말을 맞아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었다.
모린은 언제든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될 수 있는 현실에서 차라리 내가 아닌 '완벽한 타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녀는 매번 실패한다.
하지만 모린은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고된 일상에도 틈틈이 심령 주의와 영매에 관한 정보를 찾고 습득한다. 자신이 영매이면서, 영매를 공부하는 아이러니라니.. 이는 모린이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믿고 써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시 루이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다"는 말과 다르게 모린은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가 아닌 다른 영혼을 마주하자 도주한다. 공포에 휩싸인 채 자신이 영매란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며 도망친다. 루이스의 신호를 정말 받고 싶으면서도, 그 메시지가 정말 루이스의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역시 같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뭐 하나 확실한 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모린에게 충분한 만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결국 모린은 영매의 입으로 사후세계를 의심하며 금기를 또다시 어긴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문자에 더욱 주도권을 뺏긴 채 질질 끌려다닌다.(그러나 모린은 그것을 위험하다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으나, 매번 흑백 프레임에 들어가 죽음과 죽은 자가 보내는 신호에 몰두한다.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지."
그녀는 사실 첫 번째 금기를 깨기 전까지 무엇이 금기이고 욕망인지 소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침대에서 누운 순간, 그녀는 달라졌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자신을 휘감고 있는 불안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위한다. 모린에게 자위는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제일 효과적인 도구로서, 허덕이는 정신을 대신하는 신체의 유일한 방식이었고,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타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애도만 하는 거 싫어.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젠 내 삶을 찾고 싶어."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라라는 새로 생긴 남자 친구의 존재를 모린에게 밝히며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모린의 남자 친구 역시 전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는 모린을 응원하고 위로했던 그는 단호하게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모린을 현실로 데려올, 루이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찾고 싶다는 라라의 고백에 모린은 묘한 낯섦과 해결되지 못한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비난하자 않는다. 라라의 걱정과 달리 모린에게 중요한 건 루이스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모린은 애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게 목표였다. 루이스가 평안을 찾길 바란다는 그녀의 속삭임은 자신을 위한 반복된 주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라라의 남자 친구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 당부한다. 라라의 남자 친구는 모린이 자신과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다. 정작 모린은 루이스에게 느꼈던 역량의 차이를 고백하며 자신이 부단히 오빠를 따라가려 노력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끝내 오빠와 같은 속도로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결말까지.
모린은 자신이 벅찰 정도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시간을 넘어 죽음에 돌진해버린, 나와 같은 심장기형을 갖고 있던 존재로 루이스를 기억한다. 따라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죠." 란 말속에, '벗어나야 하는 것'은 루이스를 향한 감정들이 아니라 모린, 자신이 망가트린 마음인 셈이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끝없던 모린의 고뇌와 방황은 키라의 죽음으로 멈춘다. 자신을 흔들어놓던 익명의 존재가 키라를 죽인 내연남이었다는 사실에 모린은 곧장 남자 친구가 있는 오만으로 떠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원했던 욕망을 채우는 행위는 이제 더는 어떠한 효과도 얻을 수 없었으며, 사실적으로 그 효력 또한 모린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 못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존재였고, 확신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건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죽은 키라의 시신과 키라를 죽인 내연남의 도주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명백한 사실로 무장한 진짜였다.
오만에 도착한 모린. 현실로 복귀한 그녀에게도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걸까?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사라졌을까? 이젠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전부 확신할 수 없다.
모린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고 있었고, <퍼스널 쇼퍼>는 그녀의 언어를 분석해 진위를 가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질문의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정말 루이스는 모린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루이스 너야?"
마침내 오만의 한 고택에서 루이스로 추정되는 영혼과 모린은 교감한다. 그녀는 루이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영혼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긍정을 의미하는 "쿵!" 소리에 힘입어 영혼의 주인이 루이스라고 확신하는 모린. 그러나 그녀는 또다시 질문하는 실수를 범한다. 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면서 스스로에게 의심을 주입하는 걸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자동차처럼 그녀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듯 군다. 결국 영혼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침묵.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믿지 말아야 할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모린은 결국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아니면 그저 내 상상인 건가?"
"쿵!"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의 인생은 온통 흑백이며, 그 안엔 대답 대신 물음이 가득하다.
우린 대답을 찾는 걸 더 선호한다. 대답을 갈구하는 일은 질문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의문과 의문이 만든 모호함과 괴이함으로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영화는 루이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모린의 물음표가 꼿꼿하게 세워질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아무도 모르게 방향을 뒤집는다. 모린이 틈만 나면 찾아봤던 심령 주의 다큐나, 영매 작가의 전시회, 빅토르 위고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손수 조각난 이야기를 삽입해 관객이 착각과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우린 루이스가 모린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지, 정말 모린의 신호에 응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모린의 착각일 수도 있다. 모린의 뒤로 둥둥 떠다니던 유리컵을 든 영혼이 루이스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확신할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있는다는 것이다. 답을 요구하지 않고, 먼저 질문하는 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이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다.
<퍼스널 쇼퍼>가 모린을 나무라지도 답답해하지도 않는 건, 물음을 가진 것 역시 그녀이고,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 역시 그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품은 물음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 방식이 또 물음표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은 '생'의 문제이기에 '사'가 관여할 수 없다.
<퍼스널 쇼퍼>는 믿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 모린의 마지막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게 불편했으나 고마웠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영화는 질문하는 것이다"라고.
질문하는 것. 그의 말이 맞다. 영화는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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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닝타임 3시간 이상인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요즘 시간이 많이 남는데 할 게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그 시간을 순삭시킬 수 있는 영화를 가져와봤는데요.
무려 러닝타임이 3시간 이상인 영화라
한 편을 봐도 3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같은 영화입니다
˚✧₊⁎( ˘ω˘ )⁎⁺˳✧༚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러닝타임 3시간 이상인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미국 남북전쟁 전후의 남부를 무대로 스칼렛 오하라가 겪은 인생 역정을 통해
생존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역사 로맨스 영화
cine pick!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거릿 미첼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빅터 플레밍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흥행작이자 한국에서 3번이나 재개봉한 걸작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랍 민족의 독립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cine pick!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가 역사, 문화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여 1991년에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보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등 주요 부문의 수상을 거두기까지 하였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 199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중국 대륙을 떠나 온 부모세대의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자녀세대의 사랑과 폭력을 담아낸 영화
cine pick!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표 작품이다.
BBC 선정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100편'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한 '아시아 영화 베스트 100'에서 10위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타이타닉
Titanic, 1997
ⓒ 네이버 영화
synopsis
우연한 기회로 티켓을 구해 타이타닉호에 올라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화가 잭은
막강한 재력의 약혼자와 함께 1등실에 승선한 로즈에게 한 눈에 반한다.
진실한 사랑을 꿈꾸던 로즈 또한 생애 처음 황홀한 감정에 휩싸이고, 둘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데…cine pick!
박스오피스 15주 연속 1위를 하고,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한 <타이타닉>.
안 본 사람도 타이타닉 속 OST와 배 위에 두 남녀주인공이 서있는 명장면은 알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여 실제 타이타닉호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카페 느와르
Cafe noir, 2009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음악교사인 영수와 동료교사인 미연, 학부모 미연, 길에서 우연히 만난 선화와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cine pick!
코리안스크린 가장 위대한 한국 영화 100 중 46위에 선정됐으며,
신하균 배우의 화보집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신하균 배우가 멋있게 나오는 영화입니다.
해피 아워
Happy Hour,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각기 다른 직업과 성격을 가진 30대 후반의 네 명의 친구들이 일상 속에 마주한 이혼과 외도,
알지 못했던 상처와 진실을 마주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cine pick!
<아사코>,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일본의 거장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An Elephant Sitting Still,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친구의 자살을 목격한 위청, 졸지에 살인자가 된 웨이부, 원조교제 중인 황링, 가족들에게 버려진 왕진.
저마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이들은 만저우리의 코끼리를 찾아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한다.
cine pick!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6%를 기록하고, 이동진 평론가가 별 4개를 준 작품.
타이베이 금마장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색상,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는 포럼 부문 국제비평가연맹 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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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뺑반>은 뺑소니라는 신선한 소재를 두고 거대 악을 물리치는 뻔한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공효진과 조정석이 드라마 <질투의 화신> 이후 다시 만났다는 소식에 기대를 하며 봤었던 영화 <뺑반>. 영화 <뺑반>이 나오던 시기 이런 류의 범죄 오락 장르의 작품들이 다시 한번 붐을 일으켰던 시기였다. 하지만 모두 베테랑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서 그렇게는 새롭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뺑반> 시놉시스경찰 내 최고 엘리트 조직 내사과 소속 경위 은시연. 조직에서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윤과장과 함께 F1 레이서 출신의 사업가 정재철을 잡기 위해 수사망을 조여가던 시연은 무리한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오명을 쓰고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된다.
알고 보면 경찰대 수석 출신, 만삭의 리더 우계장과 차에 대한 천부적 감각을 지닌 에이스 순경 서민재. 팀원은 고작 단 두 명, 매뉴얼도 인력도 시간도 없지만 뺑소니 잡는 실력만큼은 최고인 뺑반. 계속해서 재철을 예의주시하던 시연은 뺑반이 수사 중인 미해결 뺑소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재철임을 알게 된다.뺑소니 친 놈은 끝까지 쫓는 뺑반 에이스 민재와 온갖 비리를 일삼는 재철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시연.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친 그들의 팀플레이가 시작되는 가운데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사망을 빠져 나가려는 통제불능 스피드광 재철의 반격 역시 점점 과감해진다.
*본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조했습니다.
연기는 정말 잘한다...!공효진과 조정석의 만남을 기대한 이유는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 이후 재결합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두 배우가 어떤 캐릭터던 소화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공효진은 엘리트 의식이 있는 경찰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고, 류준열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뺑소니를 굉장히 감각적으로 잘 잘아내는 캐릭터를 과거 사건 한 번 저지른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았다. 그리고 조정석이 맡은 망나니 재벌 2세의 역할 역시 조정석이 단정하고 깔끔한 역할만 잘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더듬이 싸이코 캐릭터도 잘 소화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웠던 점은 각각의 배우가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은 높았을지 모르지만 배우들간의 합이랄까? 시너지는 전혀 나지 않았던 느낌이었다. 영화 속에서 배역으로 보이지 않고 배우로 보이다보니 연기는 참 잘한다~~는 느껴졌지만 영화 스토리 자체에 대한 공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 싶다.
다 봤던 내용이다..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배역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이미 다 다뤘던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화 뺑반은 소재만 뺑소니일 뿐 베테랑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유아인의 망나니 역할을 지우기에는 그 아우라가 너무 강력했고, 조정석이 아무리 연기를 훌륭하게 해냈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베테랑의 조태오 캐릭터가 이미 각인되어 있는 터라 딱히 조정석의 재철이라는 캐릭터가 악인의 존재로 한 순간에 입력이 되지는 않았다.
이미 매운맛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강도를 전달한들 큰 자극이 없는 것처럼 이미 한 번씩 다 접해봤던 내용이어서 큰 감흥과 충격을 일으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차라리 뺑소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으면 좋지 않았을까?뺑반이라는 영화 제목 답게 뺑소니 사고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기대를 했었지만, 시놉시스부터 그런 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뺑반에 대한 평들이 다들 클리셰 덩어리라고 하는 이유는 소재만 뺑소니를 선택해 그 차이를 뒀을 뿐 내용과 전개가 너무나도 기존의 범죄 오락 영화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거대악을 물리치는 경찰들의 영웅담 이야기보다는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는 소소한 악들의 모습을 바로잡는 일반사람들의 뺑소니를 다룬 내용이었다면 적어도 클리셰 덩어리라는 비판을 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뺑반>은 배우들의 연기력은 두말할 필요없이 너무나도 뛰어났지만 영화 자체의 스토리에는 힘이 없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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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은 할 수 없는 DC의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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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를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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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흩어진 밤> 티저 예고편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갑자기 집에 찾아드는 낯선 사람들.
엄마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오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그리고 원치 않게 떠맡게 된 힘든 선택.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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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럴센스> 메인 예고편
- 색' 다른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관심가던 그녀가 '색' 달라 진다 취향존중 상명하복 큐티+섹시 로맨스!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 2월 11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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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범 | 악의 마음을 읽는 대신 가리기 급급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7살 딸 '소현'(기소유)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영은'(곽선영). 수영 강사 일을 하며 혼자서라도 딸을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버겁기만 하다. 화가 나면 엄마도 칼로 베고,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을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왜 다른 생명을 죽이면 안 되냐고 묻는 소현의 기이한 행동이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 엄마의 헌신과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소현이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이자, 영은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다.
20년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고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권유리). 그녀는 딸이 잃은 이후 자신을 딸처럼 '현경'(신동미)과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그들 앞에 해맑은 얼굴의 '박해영'(이설)이 나타난다. 가족도 없고, 과거 이력도 알 수 없는 해영이 조금씩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민은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과 해영이 갈등이 정점에 달한 순간, 그들이 각자 숨기고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악인의 서사를 거세한 스릴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잔혹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구호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애도나 연대보다 가해자의 사연, 수법 및 범죄 결과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를 비판하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외침에는 우려도 따른다. 이 구호에 내포된 사회적 악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악인의 서사는 때때로 유용하다. 가해자의 서사는 범죄 발생의 개인적, 구조적 원인이나 사회의 모순, 그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까지도 말해줄 수 있다. 일례로 조현병 환자의 살인 사건은 범죄 예방 대책과 보건 복지 대책이 더 끈끈하게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일러준다. 따라서 그들의 서사를 극단적으로 배제할 경우 동종의 범죄를 예방하고 잠재적인 피해자를 더 많이 구제할 기회를 놓칠 위험이 따른다.
악인이 아닌 사람까지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성도 유발할 수 있다. 악인의 서사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도덕적 확신이 견고할수록 더 많은 서사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 설령 악인이 아니어도 자신과는 다른 서사를 지닌 타인을 쉽게 배제하고, 악마화할 수 있으니까.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악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일부 공감하는 자신을 보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는 훈련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침범>은 단편적이다. 영화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구호에 충실하다. 악인을 순수악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며, 악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도 일부러 외면하면서 스릴러로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악인의 서사를 회피했을 때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와 메시지에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하여>와의 결정적 차이
<침범>은 1막과 2막으로 나뉜다. 그중 1막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킨다. 소재가 같기 때문.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는 엄마 '에마'(틸다 스윈튼)를 보여줬다. <침범>의 1막도 마찬가지다. 엄마 은영은 딸 소현을 키우기가 버겁다. 그녀는 기본적인 사회성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딸이 무섭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케빈을 타고난 악인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의 서사를 보여준다.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처음부터 아들을 두려워하고 밀어내려 한 엄마.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까 무서워하며 불안정해지고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아들. 영화는 모자의 갈등과 충돌이 사이코패스 살인범 케빈을 낳는 과정을 차분히 훑는다.
<침범>은 정반대다. 소현을 순수한 악인으로 묘사한다. 반려견을 죽이고, 친구들을 공격하고, 엄마도 칼로 베는 그녀의 악행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는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소현의 아빠가 가족을 떠날 만큼 그녀의 타고난 기질이 잔인하고 남다르다고 언급하고, 단순한 질투심 정도를 공격적인 행동의 이유로 등장시킬 뿐이다.
반면에 영은의 모성애는 강조된다. 영은은 딸에게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설명하고, 그녀의 공격성을 해소하기 위해 시골 농장에서 닭도 잡는다. 그녀의 헌신은 악인과 그의 서사를 애초에 배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엄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딸이 변할 기미가 없다 보니 배제의 논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이는 1막의 끝을 장식하는 수영장 시퀀스에서 영은이 딸과 함께 자살하려 하는 이유로 이어진다.
장르적으로 거부한 악인의 서사
2막도 다르지 않다. 2막에서도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는 선택적으로 다뤄진다. 그녀가 얼마나 잔혹하고 파렴치한 지를 장르적으로 풀어낼 때에만 포착하면서 영은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때 핵심은 <화차>를 연상시키는 미스터리다. 1막과 2막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 덕분에 관객은 2막에 등장한 인물 중 누가 소현인지를 알 수 없다. 이 무지에서 비롯된 서스펜스가 2막의 원동력이 된다.
소현처럼 보이는 주인공은 두 명, 김민과 박해영이다. 김민에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있다. 이 대목은 수영장에서의 자살 시도 후 영은은 입원하고, 소현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한편 갑작스럽게 등장해 김민과 현경 사이에 끼어든 박해영은 과거사가 아예 묘사되지 않는다. 공백으로 남은 개인사는 20년의 공백과 이어지면서 해영을 소현으로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소현의 정체를 다룬 미스터리는 큰 효과가 없다. 해영의 반복된 악행을 김민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소현의 정체가 일찍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현의 정체를 숨기면 김민이 현경 몰래 가족 행세를 하는지, 아니면 해영이 김민과 현경의 관계에 침범하는지가 헷갈린다. 그러나 소현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침범의 주체는 명확해지고, 미스터리도 단순 서프라이즈를 유발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지만 <침범>은 스릴러다운 공포감과 긴장감만큼은 유지하면서 이름값을 해낸다. 타인의 사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를 얼굴을 맞대고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 특히 직장과 거처를 마련해 주는 호의를 가족을 침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적의로 되갚는 해영, 곧 소현을 지켜보다 보면 왜 영은이 딸인데도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읽는 대신 덮다
에필로그에서도 <침범>의 관점은 유지된다. 물가에서 영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는 소현은 죄책감보다는 세상의 잘못을 토로한다. 엄마가 자기 말에 공감하지 않고, 도리어 수영장에서처럼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소현은 영은의 환영을 죽인다. 이렇게 <침범>은 마지막까지 소현의 서사를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하고, 그녀를 '순수악'으로 규정하며, 어떤 가족과 사회도 침범할 수 없도록 배제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다소 편의적이고 무책임해 보인다.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를 편린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비를 이루는 물과 불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물과 불의 차이에 주목하면 순수악처럼 그려지는 소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소현은 어려서부터 물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두려울 때 솔직해진다"라는 소현의 대사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본모습을 드러내면 늘 혼났다. 심지어 그녀의 본모습을 아는 아빠는 가족을 떠났고, 엄마는 자신을 버리려고 했다. 이처럼 솔직해져서는 안 되는 소현이 보기에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물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감춰야 할 때면 물과 반대되는 불을 선택한다. 가출 후 보육원에서 지낼 때 할머니가 찾아오자 정체를 들킬까 봐 보육원에 불을 지른다. 김민이 자신의 과거를 알아채자 또 한 번 불을 지르고 자신을 숨기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에필로그도 의미가 달라진다. 엄마의 환영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은 모순된 욕망과 강박이 잔혹함 대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의 대가
이처럼 극 중 흩어져 있는 파편으로부터 소현의 서사를 읽어내면 <침범>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범>은 소현을 '순수악'의 포지션에 가두면서 그 가능성 자체를 닫아 버린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케빈에 대하여>에 비하면 소재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성장시킬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소현의 서사를 일부러 무시한 선택도 역효과를 낸다. 그녀의 악행을 장르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악인과 관련된 이들의 서사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범>은 악인의 서사에 관심이 없지만, 악인의 피해자도 그의 잔혹성을 과시하는 도구로만 활용한다. 즉, 악인의 서사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때 발생할 부작용을 <침범>의 회피적 태도가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소현의 할머니는 은영이 죽은 후에도 소현이를 돌보다가 수 차례에 칼에 찔리고 베인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그저 소현의 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20년 간 할머니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지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 김민과 해영의 플롯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간 일관된 소현의 악행을 과시할 뿐이다. 소현이 도망친 후 피해자인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침범>은 장르적으로 즐길만한 스릴러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력적인 소재, 모성애와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색깔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고찰의 부작용이라고 불 수도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케빈에 대하여>, 비슷한 장르와 구성을 취한 <화차>의 그림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탐구 대신 덮어두기를 선택한 회피형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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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 여직원을 향한 원펀치 레이디 쾌감 질주
청춘들의 꿈과 열정을 담은 판타지 성장극으로 2022 재팬 필름 페스티벌에서 많은 시네필들의 개봉 요청으로 극장가에 소개되었던 ‘썸머 필름을 타고!’처럼 지난여름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첫 공개 이후 폭발적인 호평으로 관객상에 해당하는 넷팩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2022년 일본액션영화 지옥의 화원 리뷰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느 기업과 다름없지만, 속내를 보면 최강의 여직원이란 타이틀을 위해 각 부서별 파벌 싸움이 끝이지 않는 미츠후지 상사를 배경으로, 아주 평범한 회사원 나오코가 싸움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피스 코믹 액션입니다. 단 하나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도쿄 리벤저스’, ‘상남 2인조’, ‘크로우즈’ 등 익숙한 학원 액션물을 비튼 회사와 여사원들이라는 신선함은 흥미를 이끕니다. 만화 같은 오버스러운 액션과 허를 찌르는 웃음이 12월의 기분 좋은 팝콘 무비가 되어주리라 생각되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지옥의 화원 정보
너 정체가 뭐야?
평범한 기업 미츠후지 상사의 평화로운 점심시간, 동료들과 수다를 떨던 영업부 다나카 나오코의 뒤로 한 명이 날아갑니다. 그리고 조용히 회사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서열 쟁탈전을 설명해 줍니다. 귀여운 외모와는 정반대 성격을 가진 영업부의 광견 사타케 시오리, 과거 폭주족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개발부의 악마 안도 슈리, 타 회사 여직원과 다퉈 상해죄로 감옥까지 다녀온 제조부의 괴수 간다 에쓰코까지 이곳은 사무가 아닌 주먹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아주 험난한 회사였죠. 슈리가 모두를 제압하며 쟁탈전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얼마 뒤, 새롭게 들어온 호조 란이 단 하루 만에 이들을 격파하며 단숨에 판도를 뒤엎습니다. 평화도 잠시, 주변 회사까지 이름이 퍼지면서 그 사이 란의 단짝이 된 나오코가 주식회사 톰슨 무리에게 납치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地獄の花園 , 영제: Office Royale│감독: 세키 카즈아키│각본: 바카리즈무
출연진: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 나나오, 카와에이 리나, 오오시마 마유키 외 多
장르: 코미디, 액션│상영 시간: 102분
국가: 일본│등급: 15세 관람가
수입: 찬란│ 배급: 찬란, (주)하이스트레인저
평점: 기자·평론가 5.33, 왓챠피디아 예상 3.6, IMDB 6.4
수상내역: 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 25회 판타지아 영화제 베스트데뷔상-특별언급
상영 일정: 개봉일 2022년 12월 15일
# 지옥의 화원 후기
이 세상 텐션이 아닌 그녀들이 온다
원작이 있을 법해 보이는 주먹 서열이 곧 사내 서열이 된다는 독특하고 엉뚱한 상상을 마치 실사 만화처럼 코믹하게 그려낸 이번 작품은 우리가 지금껏 봐온 학원 액션물의 세계관과 구조를 충실히 따라가며 신선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만화 같은 현실을 독자처럼 설명해 주는 다나카 나오코의 내레이션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회사의 괴랄함에도 흥미를 이끌고 이에 맞춰 만화 주인공처럼 맞춰진 장면들과 캐릭터 하나, 하나에 부여된 별명들은 왠지 모르게 빠져드는 마성을 부여하죠. 여기에 초반부터 걸크러쉬 매력을 뿜어내며 누가 봐도 주인공이었던 란과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원한 힘숨찐 나오코의 충돌은 대미를 장식하며 사나이들의 의리가 무색할 만큼 찐한 케미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봐도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두 사람이 싸움도 일등이라니..
뻔해도 나가노 메이와 히로세 아리스가 하면?
평범한 학생과 일진 불량학생을 회사로 옮긴 듯한 뻔하고 허무맹랑한 저세상 이야기지만, 회사를 지배하는 것은 어느 부서할 것 없이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리고 뻔뻔하게 유치 찬란한 코믹한 상황의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 나나오, 카와에이 리나 등의 일본 내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웃음을 충분히 던져줍니다. 물론, 후반부에서 엔도 켄이치나 카츠무라 마사노부의 우스꽝스럽고 오버된 모습이 가장 큰 재미를 주지만요. 확실히 콩트 개그 연기의 달인이라 불리는 바카리즈무가 각본을 써서 그런지 능청스러움도 묻어나고, 클리셰 범벅에도 훌륭한 B급 코믹이 조화롭게 믹스된 느낌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상황과 연출에도 절로 웃게 되는 마성이 있다고 할까요?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란과 그 반대로 재능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고픈 나오토, 둘 다 굉장히 어려운 삶이라 생각됩니다. 일인자가 되려는 노력도, 평범하게 살려는 인내도 주변 환경에 따라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의미 없는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의외의 튀어나온 러브 라인 뒤로 이어지는 ‘완패’라는 큼지막한 자막입니다. 인생에서 모솔보단 커플이 100배 낫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은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신나는 락이 어우러진 OST과 스피디한 액션, 오버된 CG 효과 속 빠른 전개가 실사 만화를 보는 듯 빠져들게 만든 일본 오피스 액션 영화 지옥의 화원, 평론가들은 박할 수 있겠지만 저세상 텐션의 즐거움을 기다렸다면, 분명 만족하시리라 생각됩니다. :)
한 줄 평 : 단 하나의 변주가 뻔뻔한 클리셰 범벅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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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일본에서 주목받는 떠오르는 영화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새벽의 모든>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심한 감정 변화에 시달리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야마조에가 특별한 연대로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공감 드라마입니다.
새벽의 모든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3연속 베를린에 초청된 미야케 쇼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신예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의 섬세한 연출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9월 셋째 주 개봉예정 PICK
새벽의 모든
All the Long Nights
개요: 드라마 | 일본 | 119분
감독: 미야케 쇼
주연: 마츠무라 호쿠토, 카미시라이시 모네, 미츠이시켄, 시부카와 키요히코
개봉: 2024.09.18.
배급: (주)디오시네마
줄거리
한 달에 한 번, PMS 때문에 짜증을 억제할 수 없게 되는 ‘후지사와’. 한층 악화된 증상에 다니던 회사를 도망치듯 그만둔 그녀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 ‘쿠리타 과학’으로 이직한다.
친절한 동료들과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에 차츰 적응해 가던 중, 직장 내 자발적 아웃사이더 ‘야마조에’의 사소한 행동에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크게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야마조에’가 극심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의 고충을 나눈 두 사람 사이에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특별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수유천
BY THE STREAM
개요: 드라마 | 한국 | 111분
감독: 홍상수
주연: 김민희,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개봉: 2024.09.18.
배급: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줄거리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부탁한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 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 때문에 연출을 맡은 것이다. 촌극하는 학생들 사이에 스캔들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 전임과 외삼촌은 그 사건에 가볍게 끼어들게 된다. 그사이 외삼촌은 텍스타일과 여교수와 가까워지는데, 밤마다 하늘의 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전임은 아침마다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테인티드 러브
Tainted Love
개요: 드라마 | 중국 | 100분
감독: 마잉신
주연: 주동우, 장위, 장유호, 이몽
개봉: 2024.09.19.
배급: (주)디스테이션
줄거리
“사랑해… 거짓말” 연인에게 사기를 당한 여자 ‘저우란’. 진실을 찾기 위해 방문한 낯선 곳에서 두 남자 ‘린즈광’과 ‘쉬자오’를 만난다. 꿈 같았던 만남도 잠시, ‘저우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깊어지는 사랑과 의심 속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트랩
Trap
개요: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 미국 | 105분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조쉬 하트넷, 아리엘 도노휴, 살레카 샤말란, 헤일리 밀즈, 알리슨 필
개봉: 2024.09.18.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팝스타의 콘서트, 경찰의 거대한 덫… 탈출해야만 한다!
10대 딸과 함께 인기 팝스타의 콘서트를 찾은 ‘쿠퍼’. 신나게 콘서트를 즐기던 그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곳이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한 거대한 덫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쿠퍼’ 자신이 바로 연쇄살인마라는 것! 이제 ‘쿠퍼’는 수많은 관객과 경찰을 따돌리고 어린 딸과 함께 무사히 이 덫에서 탈출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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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2016
프랑스 / 미스터리 외 / 105분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주인공 모린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저마다 뽐내기 좋은 취향과 유일무이한 개성조차 없는 인간이란 얘기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녀에겐 '단단하고 확실한 나만의 가치관'이 없다.
모린은 이란성쌍둥이 형제, 루이스와 같은 영매지만 오빠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했다. 루이스는 자신이 영매란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바보 같은 행위라 여기지 않았다.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죽은 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생관은 모린보다 뚜렷했으며 무엇보다 미래를 꿈꿀 줄 알았다. 그는 내일을 생각하며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남들처럼', 또 '보통으로서의 개인'처럼.
내가 개인이고, 네가 개인이며, 동시에 우리까지도 '개인'이 될 수 있는.
그리하여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남들. '사람들이 다 똑같지 뭐' 할 때의 그 사람들 같은.
루이스는 영매(남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진 개체)였으나,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단지 사는 방식과 추구하는 사고가 바로 옆에 사는 이웃과 구분됐을 뿐이다. 누구든 그런 것처럼.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반면, 모린에게 영매는 삶에 혼란과 혼동만 불러올 뿐 특별한 힘이 아니었으며, 중요한 가치는 더더욱 아니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평범한 인간, 루이스가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 모린은 갖고 있던 이력(영매)을 내세우긴커녕 보통 사람인척 살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상을 보냈지만, 그녀는 사실 홀로 다른 가면을 쓴 '진짜 타자'였다. 어렵지 않게 무리에 소속되고, 일하다가도, 혼자가 될 때면 홀린 듯 스스로를 타자화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 한 척처럼, 숨 막히는 공허와 고독의 파도에 삶을 맡겼다. 그리곤 당연하게 삶에 관한 질문들을 모른 척 흘러 보냈다. 모린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떻게 되는 내버려 둔 것이다. 루이스는 그런 모린의 실체를 사람들에게서 숨겨주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린 채로, 배에 구멍이 난 채로 그녀가 침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루이스 덕이었다.
루이스가 모린을 보호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린이 루이스의 존재를 자신의 편의대로 '등대'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린의 등대엔 불빛이 없었다. 암흑 속에서 꼭 죽은 것처럼 빛 없이 선 등대만 있었을 뿐이다. 현실에서 그 등대의 가치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그녀는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안정'이라 여겼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란 근본적인 물음보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관망하는 걸 택했다. 그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모린은 자신을 아는 일을 묻어두는 것으로 삶의 고통을 피해 가려했다. 그리고 그건 루이스가 정말 죽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나'를 아는 것만큼 괴롭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내일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은 뒤로 미뤄두는 일, 모린은 가장 중요한 나를 확립하는 일을 딱 그 정도로 여겼다.
영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부터 그녀에겐 어려운 문제였다. 모린은 루이스와 달랐으니까.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루이스'는 그의 의사와 별개로 모린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문젠 '모린의 루이스'가 의사의 언어 그대로 '예외적인 사례'(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사례란 말은 모린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흔들어놓는다.
잔잔했던 수면 위로 떨어지는 돌 하나. '예외'적인 '사례'.
마치 신이 이미 결정한 일에 딴지를 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되면, 다음은 쉽다.
예외에 희망을 붙이는 거다. 이 작업이 편해질수록 마음의 안정은 빨리 찾아오게 되어있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예외를 획득한 생'은 '사'를 피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린 이 착각을 불안해하면서도 굳게 믿음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가진 불안과 안정의 저울이니까.
물론 이미 깊은 자기 비관에 빠져있던 모린에겐 통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겠다는 선택지조차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심장기형'은 의사가 말한 '예외'에 꼭 맞는 결괏값이다. 루이스의 죽음이 예외적인 사례가 된 순간, 모린의 삶 역시 예외적인 죽음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6개월 후에 보자는 의사의 말에 자조적인 눈빛으로 "글쎄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 대답한다. 내일 죽을 확률이 이미 나왔는데 어떻게 죽지 않을 희망을, 아니 아직은 죽지 않을 희망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쉽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도, 모린의 희망은 찬란한 빛이 제거된 흑백이었다. 모린은 자기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어른인 동시에 루이스의 죽음으로 분열되어버린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분열된 자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스스로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먼저 죽은 사람이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어요."
죽은 오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리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모린. 하루에 몇 번이고 기차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키라의 취향에 꼭 맞는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구한다. 일이지만, 틈만 나면 반납해야 할 옷을 갖겠다 통보하고, 유명 연예인답게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키라 때문에 모린은 견딜 수 없는 피곤과 빠져나올 수 없는 억압에 허덕인다. 그나마 그녀를 숨 쉬게 하는 건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다.
모린은 오빠의 영혼을 느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직접 영혼의 신호를 포착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만족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루이스에게 더 확실한, 더 강력한 신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유령에게 자신을 어필하란 기이하고도 이상한 모린의 요구. 그녀에게 오빠와의 약속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영매로서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오빠가 정말 옳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모린의 진심이 결정적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침묵하는 영혼에 소리를 지르는 그때, 루이스의 집엔 불안해진 자신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모린, 자신의 울부짖음만 울려 퍼진다.
모린의 거짓말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분명 원하지 않았지만)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던 검은 장막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눈을 뜬 순간 모린은 자신이 봐왔던 등대가 빛을 내뿜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내 세계에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확인한 모린은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그녀는 누구인가?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욕망을 해방하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그녀는 키라가 입을 옷을 자신이 먼저 입으며 금기를 깨트린다. 고용주의 옷을 입으면서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모린. 묘한 쾌락과 심리적 떨림을 느낀 그녀는 점점 더 과감해진다.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키라의 옷과 신발을 탐한다. 익명이 보낸 문자가 모린의 고삐를 푼 결정적 계기로 이용된다. 마침내 그녀는 키라의 집에 들어가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사적인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한다. 그러나 모린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부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키라가 누리는 모든 것을 누려도 모린은 불안해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별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안정감 때문이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루이스와의 이상적인 이별을 원한다. 그러나 모린에겐 오로지 아무것도 드러낼 수 없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모린만 존재한다. 모린은 스스로를 '모린'이라 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런 와중에 삶의 목적이 확고했던 루이스와 같은 결말을 맞아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었다.
모린은 언제든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될 수 있는 현실에서 차라리 내가 아닌 '완벽한 타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녀는 매번 실패한다.
하지만 모린은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고된 일상에도 틈틈이 심령 주의와 영매에 관한 정보를 찾고 습득한다. 자신이 영매이면서, 영매를 공부하는 아이러니라니.. 이는 모린이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믿고 써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시 루이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다"는 말과 다르게 모린은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가 아닌 다른 영혼을 마주하자 도주한다. 공포에 휩싸인 채 자신이 영매란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며 도망친다. 루이스의 신호를 정말 받고 싶으면서도, 그 메시지가 정말 루이스의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역시 같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뭐 하나 확실한 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모린에게 충분한 만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결국 모린은 영매의 입으로 사후세계를 의심하며 금기를 또다시 어긴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문자에 더욱 주도권을 뺏긴 채 질질 끌려다닌다.(그러나 모린은 그것을 위험하다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으나, 매번 흑백 프레임에 들어가 죽음과 죽은 자가 보내는 신호에 몰두한다.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지."
그녀는 사실 첫 번째 금기를 깨기 전까지 무엇이 금기이고 욕망인지 소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침대에서 누운 순간, 그녀는 달라졌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자신을 휘감고 있는 불안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위한다. 모린에게 자위는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제일 효과적인 도구로서, 허덕이는 정신을 대신하는 신체의 유일한 방식이었고,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타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애도만 하는 거 싫어.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젠 내 삶을 찾고 싶어."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라라는 새로 생긴 남자 친구의 존재를 모린에게 밝히며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모린의 남자 친구 역시 전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는 모린을 응원하고 위로했던 그는 단호하게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모린을 현실로 데려올, 루이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찾고 싶다는 라라의 고백에 모린은 묘한 낯섦과 해결되지 못한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비난하자 않는다. 라라의 걱정과 달리 모린에게 중요한 건 루이스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모린은 애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게 목표였다. 루이스가 평안을 찾길 바란다는 그녀의 속삭임은 자신을 위한 반복된 주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라라의 남자 친구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 당부한다. 라라의 남자 친구는 모린이 자신과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다. 정작 모린은 루이스에게 느꼈던 역량의 차이를 고백하며 자신이 부단히 오빠를 따라가려 노력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끝내 오빠와 같은 속도로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결말까지.
모린은 자신이 벅찰 정도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시간을 넘어 죽음에 돌진해버린, 나와 같은 심장기형을 갖고 있던 존재로 루이스를 기억한다. 따라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죠." 란 말속에, '벗어나야 하는 것'은 루이스를 향한 감정들이 아니라 모린, 자신이 망가트린 마음인 셈이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끝없던 모린의 고뇌와 방황은 키라의 죽음으로 멈춘다. 자신을 흔들어놓던 익명의 존재가 키라를 죽인 내연남이었다는 사실에 모린은 곧장 남자 친구가 있는 오만으로 떠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원했던 욕망을 채우는 행위는 이제 더는 어떠한 효과도 얻을 수 없었으며, 사실적으로 그 효력 또한 모린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 못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존재였고, 확신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건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죽은 키라의 시신과 키라를 죽인 내연남의 도주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명백한 사실로 무장한 진짜였다.
오만에 도착한 모린. 현실로 복귀한 그녀에게도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걸까?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사라졌을까? 이젠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전부 확신할 수 없다.
모린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고 있었고, <퍼스널 쇼퍼>는 그녀의 언어를 분석해 진위를 가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질문의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정말 루이스는 모린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루이스 너야?"
마침내 오만의 한 고택에서 루이스로 추정되는 영혼과 모린은 교감한다. 그녀는 루이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영혼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긍정을 의미하는 "쿵!" 소리에 힘입어 영혼의 주인이 루이스라고 확신하는 모린. 그러나 그녀는 또다시 질문하는 실수를 범한다. 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면서 스스로에게 의심을 주입하는 걸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자동차처럼 그녀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듯 군다. 결국 영혼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침묵.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믿지 말아야 할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모린은 결국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아니면 그저 내 상상인 건가?"
"쿵!"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의 인생은 온통 흑백이며, 그 안엔 대답 대신 물음이 가득하다.
우린 대답을 찾는 걸 더 선호한다. 대답을 갈구하는 일은 질문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의문과 의문이 만든 모호함과 괴이함으로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영화는 루이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모린의 물음표가 꼿꼿하게 세워질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아무도 모르게 방향을 뒤집는다. 모린이 틈만 나면 찾아봤던 심령 주의 다큐나, 영매 작가의 전시회, 빅토르 위고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손수 조각난 이야기를 삽입해 관객이 착각과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우린 루이스가 모린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지, 정말 모린의 신호에 응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모린의 착각일 수도 있다. 모린의 뒤로 둥둥 떠다니던 유리컵을 든 영혼이 루이스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확신할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있는다는 것이다. 답을 요구하지 않고, 먼저 질문하는 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이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다.
<퍼스널 쇼퍼>가 모린을 나무라지도 답답해하지도 않는 건, 물음을 가진 것 역시 그녀이고,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 역시 그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품은 물음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 방식이 또 물음표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은 '생'의 문제이기에 '사'가 관여할 수 없다.
<퍼스널 쇼퍼>는 믿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 모린의 마지막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게 불편했으나 고마웠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영화는 질문하는 것이다"라고.
질문하는 것. 그의 말이 맞다. 영화는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