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10-28 17:41:47
만약에... 이들이 만난다면?
씨네픽 유니버스_if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바로 씨네픽 SNS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인 유니버스를
새로운 버전으로 준비를 해봤는데요.
서로 다른 작품 속 인물이 한 세계관에서 만난다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만약에 유니버스 시작해볼까요?٩( ᐛ )و
<별에서 온 그대> 천송이 X <시크릿 가든> 김주원
만약 <별에서 온 그대> 속 사고뭉치 한류 여신 ‘천송이’와
<시크릿 가든> 속 오만한 성격의 백화점 사장 ‘김주원’이 만난다면?
<호텔 델루나> 장만월 X <도깨비> 김신
만약 <호텔 델루나> 속 1340년을 살아온 호텔 델루나의 사장 ‘장만월’과
<도깨비> 속 940년을 살아온 도깨비 ‘김신’이 만난다면?
<진검승부> 진정 X <천원짜리 변호사> 천지훈
만약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또라이 이단아 검사 ‘진정’과
법계의 짱돌 같은 이단아 변호사 ‘천지훈’이 만난다면?
<손 the guest> 최윤 X <검은 사제들> 최부제
만약 원칙을 중시하는 얼음과 같은 성격을 가진 ‘최윤’과
밝지만 안에 깊은 상처를 간직한 ‘최부제’가 만난다면?
여러분들 서로 다른 두 작품 속 등장인물 중에 한 극에서 보고 싶었던
등장인물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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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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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독일군에 의해 침공당한 소련 어느 한 도시의 참상을 한 소년의 시각을 통해 조명한 작품.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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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내가 여태껏 봐온 모든 전쟁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였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주인공이 군인으로 등장해서 전장에서의 그의 활약을 보여주거나, 나치영화의 경우에는 유대인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 주인공 소년이 전쟁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겪는 시련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전개는 이 소년이 전쟁에 참여하여 폭탄을 실어나르든, 총을 쏘든 하며 그 군대에 어우러지고, 생존하는 전개였다.
근데, 이 영화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매우 현실적인 전쟁 상황을 보여준다.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들과 자란, 고등학생정도의 나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군대에 입대하면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적군을 향해 돌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소음에 정신도 못차리고 여기저기 숨느라 바쁠 것 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폭풍에 휩쓸려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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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이다.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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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깊은 장면은 역시 마지막씬.
히틀러를 향한 주인공의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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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글이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되게 좋은 영화인만큼 여러분들이 한번쯤 감상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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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시각장애인이 살인현장을 목격했다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IMDB 역대 평점 TOP 200과 로튼토마토 100%를 등극한 흥행작인
영화 <블라인드 멜로디>입니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아유쉬만 커라나 | 아카쉬
FILMOGRAPHY
드림걸: 수상한 콜센터 (2019)
블라인드 멜로디 (2018)
메리 피아리 번두 (2017)
AWARDS
BIG Star Entertainment Awards, India, 2012
Apsara FIlm Producers Guild Awards, 2013
Asiavision Awards, 2018
타부 | 시미
FILMOGRAPHY
산주 (2018)
블라인드 멜로디 (2018)
골말 어게인 (2017)
AWARDS
Alliance of Women FIlm Journalists, 2007
Zee Cine Awards, 2019
Indian FIlm Festival Of Melbourne, 2019
라디카 압테 | 소피
FILMOGRAPHY
시크릿 에이전트 (2019)
블라인드 멜로디 (2018)
매들리 (2016)
AWARDS
Indian Film Festival of Los Angeles, 2016
Tribeca FIlm Festival, 2016
GQ Awards, India, 2018
어떤 내용인가요?
가짜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 아카쉬.
라이브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단골 손님에게
결혼 기념일을 맞아 아내를 위해 깜짝 연주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연주를 하러 단골손님의 집으로 간 그는 손님의 시체를 보게 되고
그는 당황하지 않은 척 손님의 아내에게 화장실로 데려가 달라고 하는데
화장실에서는 단골손님을 죽인 범인까지 만나게 된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경찰에 신고하러 갔고, 그곳에서 남편을 죽인 범인을 마주치게 되는데...
Reviews
"반전의 반전의 반전"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추측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추리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에게 딱인 영화가 될 것 같은데요. 정말 예측하기 힘든 영화일 것입니다.
"인도영화 = 음악"
인도 영화 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 하나가 있죠! 바로 음악입니다.
사실 영화가 스릴러 장르라 음악이 나올까 싶었는데 역시나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음악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음악이 나오는 순간만큼은 재밌고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답니다.
지금까지 <블라인드 멜로디>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블라인드 멜로디>는 인도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추리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고 계시는 분에게 추천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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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여왕으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다!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논란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대중매체에 공개되는 영국 여왕 가문의 모습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다가가기 어렵고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성격이 까칠하다. 하지만 영국 여왕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은 항상 따라왔다. 영국의 여러 고위 관료들이나 중요 인물에게 훈장을 서사하고(이 훈장들은 몇 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녀가 쓴 왕관 역시도 그만큼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 연방 국가들의 수장으로써 순방을 다녀오면서 많은 업적도 이뤄냈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에서 돋보이는 건 대한민국의 글로벌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회장인 이건희와 만나고 여러 반도체 시설들을 순방했는데 영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이게 바로 삼성전자의 저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의 자식들이 스캔들에 휘말리고 사건의 주목 인물이 되면서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의 고단함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한다. 또한 영국 왕실 가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평생 먹고 노는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인 대답도 내놓았는데 버킹엄 궁전도 화재로 대부분을 잃었고 영국 국민들에게 밉상이 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아들도 공군에 보내고 자신도 전장에서 영국 군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는데 엘리자베스 2세의 공이 컸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영국 왕실 가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국인들에게 신뢰가 잃어가고 부조리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영국의 코미디언들은 영국 왕실 상황을 패러디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파시즘이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단체 운동에 의해 비판의 대상도 되었다. 여기서 고난은 끝이 나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온갖 사치를 누리면서도 어떤 국민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저 영국 왕실 가문으로써 대중매체에 공개되어 파파라치들에게 타깃이 되었던 불쌍한 이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고급스러운 호화 궁전에 살면서 모든 걸 누린 사람들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일대기를 챕터식으로 나뉘면서 관객들에게 영국 왕실의 숨은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풀어낸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나왔지만 영화 곳곳에 나오는 영국 여왕을 찬양하는 팝 음악과 더불어 영국 여왕에게 몰려든 영국인들을 벌집에 모여든 꿀벌들로 묘사하고 영국 여왕의 포스와 영국 국민들에게 말하는 메세지 하나하나가 크게 다가왔다.
엘리자베스 2세의 다사다난한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내고 풍자하기도 하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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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구심점 없이 흩어지는 이야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깊은 숲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전영하'(김윤석).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소원이 담긴 펜션을 소중히 운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께름칙한 손님 한 팀이 나타난다. 어린 남자아이와 함께 펜션을 예약한 '유성아'(고민시). 그녀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영하를 불편하게 만든다.
다음날 아침, 영하는 유성아가 새벽 일찍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관심을 보이던 LP판에는 혈흔을 묻혀 놓고, 화장실은 락스로 깨끗하게 청소했으며, 수장 두 건을 없앤 채로. 직감적으로 유성아가 데려 온 아이를 살해했음을 눈치챈 영하. 하지만 그는 남은 증거를 불태우고 모른 척하기로 결심한다. 혹시나 소문이 나면 펜션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1년 뒤, 유성아가 그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보상받지 못한 호불호
작품성과 대중성. 영화, 드라마 제작진이 언제나 고민할 딜레마다. 다른 예술도 다르지 않지만, 특히 영상 매체는 막대한 제작비를 필요로 하기에 항상 대중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중성이 언제나 옳은 길인 것도 아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선택이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대중은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OTT의 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OTT가 불러온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는 작가와 제작자의 두려움이 줄었다는 것. 크리에이터의 비전에 크게 개입하지 않으니 이전까지는 관객 수나 시청률, 대중의 호불호를 우려해 제작하지 않던 작품이 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대중성과 괴리되는 작품이 늘어나면서 OTT의 파급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실험적인 스릴러다. 관련 없어 보이는 과거와 현재를 느린 호흡으로 교차하다가 마지막에야 모든 감정선을 폭발시킨다. 서스펜스보다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이고, 대중적으로 익숙한 작법이 아니니 호불호도 필연적이다. 하지만 호불호를 불사한 선택이 역으로 드라마 전체의 만듦새를 무너뜨린 나머지 실험은 무위에 그쳤다.
돌 맞은 개구리 이야기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우연히 범죄자와 마주쳐 피해자가 된 이들의 사연이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범죄자가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비춘다. 과거 모텔 사업을 하던 '구상준'(윤계상)은 연쇄살인범 '지향철'(홍기준)을 만난 후 가정이 무너진다. 현재 펜션을 운영하는 영하도 사이코패스 살인자 유성아를 고객으로 만난 뒤 일상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더해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또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살인자뿐만 아니라 기자나 경찰, 자극적인 이슈에 몰입한 이들 또한 돌을 던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극 중 기자와 경찰 모두 그럴듯한 대의나 정의감 대신 특종이나 자기만족을 위해 상준과 영하를 이용하니까. 신문사 기자는 지향철 관련 특종을 잡으려 상준과 인터뷰하려 하고, '윤보민'(하윤경/이정은)도 연쇄살인범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에 상준을 이용한다.
이 상황에서 개구리에게는 두 선택지가 있다. 상준처럼 과거에 갇힌 채 무너질 것인지, 아니면 상준의 아들인 '기호'(박찬열)처럼 자기 방식으로 과거와 맞서 싸워 트라우마를 이겨낼 것인지. 이 지점에서 무관해 보이는 과거와 현재는 접점이 생긴다. 아직 유성아와의 악연이 끝나지 않은 영하는 상준이 될 수도 있고, 기호가 될 수도 있으니까. 따라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영하가 어떤 결정을 할지 쫓는 심리극이라 할 수 있다.
잘못된 역할의 부작용
그러다 보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느낌이 다르다. 중반부까지는 미스터리 드라마에 가깝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전개돼야 비로소 그들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 그들의 접점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전체적인 흐름을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모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스릴러를 기대한 시청자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악수를 뒀다. 각 캐릭터에게 역할을 잘못 부여하면서 이질감을 극대화한다. 사실 상준과 영하의 시점으로 나뉜 이야기를 접합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윤보민이 그 접착제다. 과거 신참 형사로서 상준 사건에 참여했고, 지금은 새로 부임한 소장으로서 영하 사건에 개입하는 윤보민. 드라마는 그녀를 매개로 접점이 없는 두 아버지의 이야기를 엮어내려 한다.
그런데 정작 윤보민은 철저한 관찰자다. 그녀가 주도적으로 두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는, 두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을 때 옆에서 조망할 뿐이다. 여기에 더해 그녀 자신의 이야기도 과거와 현재 두 시점에서 따로 펼쳐진다. 그 결과 윤보민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드라마는 오히려 구심점을 잃어버린다. 두 이야기를 엮기 위해 만든 인물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후반부로 갈수록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가지가 너무 많아진다. 각 플롯이 각자 할 말만 한다. 영하와 유성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려고 하면 상준의 이야기가 끼어든다. 성인이 된 기호가 등장하면서 상준의 플롯은 더 복잡해지고, 기호와 영하의 접점을 묘사하는 동안에는 유성아가 잠시 잊히는 느낌마저 든다. 차라리 철저히 윤보민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갔다면 난잡함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진한 캐릭터 활용
이에 더해 반전을 주려고 전개를 꼬는 중에 메시지와 스토리의 모순도 노출하고 만다. 그 중심에는 유성아가 있다. 사실 시청자 입장에서 그녀는 좀처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가 동기가 뭔지, 그녀가 왜 아이를 살해했는지, 왜 영하의 펜션에 집착하는지. 그녀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가 이해할 수 없어서 두렵다. 그러다 보니 영하가 돌 맞은 개구리가 되는 과정에도 몰입하기 쉽다. 영하만큼이나 시청자도 영문을 알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사족을 덧대 매력을 스스로 가린다. 재벌가 출신 사이코패스라는 개인사가 드러는 순간, 유성아는 개성을 잃는다. 그녀는 이제 익숙한 한국형 악역이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신비감이나 공포감도 일순간 사라지고, 그녀가 원우먼쇼로 지탱해 온 서스펜스도 단숨에 사라진다. 그녀가 그린 그림, 펜션 인테리어, 고민시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자아낸 답답한 분위기마저 불친절한 과시로 보이기 십상이다.
결국 드라마의 주제마저 모호해진다. 사고와도 같은 범죄자와의 만남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핵심 소재다. 그런데 유성아의 가족사는 그 사고를 통속적인 가족극으로 뒤바꿔 버린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딸, 유성아가 아버지 영하의 사랑을 받은 딸, '의선'(노윤서)을 노리는 꼴이다. 즉, 메시지를 집약하고 있는 상준과 영하의 접점 대신 유성아와 영하의 딸의 차이만 부각되면서 평범한 범죄 드라마로 귀결된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범죄자나 형사의 시점이 아니라 피해자 관점에서 진행되는 스릴러라는 특징이 확실했다. 범죄 사건 피해자의 고통보다 사건의 자극성에만 열광하는 세태를 지적하는 의도도 시의적절했다. 그저 일관된 방향성을 잡지 못한 나머지 주요 플롯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졌을 따름이다.
결국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애매한 스릴러, 평범한 넷플릭스 작품 중 하나로 남는다. 캐릭터가 인상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메시지가 뇌리에 꽂히지도 않는다. 전달 방식이 독특하지도 않다. 그나마 고민시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는 사실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지 않을까.
Poor 형편없음
산해진미도 요리사가 레시피를 잘못 선택하면 무의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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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의 여정이 수직적인 세상에 가져올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소영(이지은)'은 부산의 한 교회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 '우성'을 내려놓고 떠난다. 때마침 베이비 박스 당직을 서던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소영이 남긴 쪽지에 아기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그러나 다음 날 빚에 시달리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이 불법 입양 브로커로서 길을 나서려는 찰나에, 예상치 못하게 엄마 소영이 아기를 되찾기 위해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결국 자신들이 브로커임을 고백한 상현과 동수. 이에 소영은 우성이의 양부모를 찾는 여정에 동행하기로 한다. 한편 이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한 형사 '수진(배두나)'은 후배 ‘이형사(이주영)'와 함께 두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는 부모의 사정상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로, 한국에서는 2009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후 현재 3곳의 종교시설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실 베이비 박스는 선한 목적과는 별개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아이를 유기하게 만든다고 말해왔고, 긍정하는 쪽에서는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미혼 부모처럼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현실과 이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태도가 중첩된 결과 베이비 박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촬영하고 연출하여 제75회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브로커>가 베이비 박스 앞에서 시작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이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가족이나 소외된 이들의 삶처럼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들을 스크린 위로 끄집어 올리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은 서늘한 현실감을 유지한 채 해당 문제들을 파고들면서도, 섣불리 비판할 대상을 정하는 대신 그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경우도 많다.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영아 납치와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브로커의 여정을 포착한 이 로드무비는 악행과 선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수직적인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순
그 아이러니는 울진의 한 수산물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우성이를 사려는 한 부부를 만난 소영, 동수, 상현. 부부는 우성이의 눈매나 눈썹을 살펴보면서 못생겼다며 외모를 품평하고, 친부의 직업이나 과거사를 따진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본래 약속보다 낮은 가격에 할부로 우성이를 구매하겠다는 제안하는 부부. 이에 당황한 상현과 동수는 어떻게든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 흥정을 해보지만, 아기를 비하한 부부에게 분노한 소영 덕분에 흥정은 이내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 대신 아기가 거래 대상인 것이나, 아기를 파는 사람이 아기의 가치를 존중해 달라고 구매자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것이나, 브로커에게 더 나은 구매자를 찾아달라는 소영의 모습은 무엇 하나 말이 되지 않는다. 아기를 팔려고 하는 순간 이미 도덕과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진 듯 한데, 그 안에서 또 도덕을 따지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이처럼 악행을 저지르는데 정작 그 안에서는 선의가 느껴지는 모순은 러닝타임 동안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때 작중 모순은 서로 다른 세상의 논리가 충돌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직적인 세상 안에서 수평적인 관계가 부딪힌 결과다. 우선 <브로커>의 세상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 계급 우화"인 <기생충>처럼 수직적으로 묘사되며, 영화는 꾸준히 오르고 내린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날에 소영은 아기를 버리기 위해 골목길을 올라가고, 수진과 이 형사는 그런 소영을 내려다본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친구를 만나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헛헛한 인생 이야기를 한 동수는 보육원으로 향하는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동선과 시점에 더해 인간관계도 수직적이다. 조폭들에게 5,000만 원을 빚진 상현은 일원 중 하나인 태호 앞에서 쩔쩔매고, 후반부에는 그와 담판을 짓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영화의 배경마저도 수직적인데, 부산답게 걸어 올라가기조차 벅찬 계단들이 잊을 법하면 등장한다.
거듭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선, 시점, 관계는 세 인물이 사회적 시스템에서 가장 아래에 있고, 밀려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러 상자인 베이비 박스, 네모난 봉고차와 보육원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베이비 박스가 상현, 소영, 동수 개개인의 삶이라면, 자동차는 가족을 상징하며, 보육원은 가족보다 조금 더 큰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육원 밖에는 사회라는 가장 큰 상자가 있다. 이때 가장 큰 상자로부터 작은 상자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어려움은 결국 베이비 박스에 아이가 들어가게 만든다. 상현은 조폭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불법 브로커로 활동한다. 보육원을 떠났지만 이렇다 할 희망을 찾지 못한 동수는 상현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밀매한다. 가족을 이룰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소영은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영화는 수직적인 세계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사연을 베이비 박스 안에 담는다.
수평의 동행이 만든 가족
그러나 <브로커>는 아픈 사연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지상과 지하, 계단 위와 아래 사이에 냄새조차 넘어가서는 안 될 명확한 선이 있었던 <기생충>과는 달리 <브로커>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는다. 상승과 하강의 세계가 극한으로 향하기 전에 동행이라는 이름의 수평축을 새로이 끼워넣기 때문이다. 소영이 동수에게 자신이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수평적 동행이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꿈속에서 비를 맞고 깨끗해지는 꿈을 꾼다는 소영은 그 꿈이 그저 꿈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러자 동수는 두 명이 쓸 수 있을 만큼 큰 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소영이 비를 맞으며 아이를 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고물이 되어버린 봉고차 안에서 만난 이들과의 관계가 그 비를 피할 우산이 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봉고차를 세차하던 중 다섯 일행이 비눗물을 뒤집어쓰고, 상현과 소영이 각자 쓰던 가명 대신 본명을 털어놓으며 깨끗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수직적인 세상과 대조되는 수평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봉고차의 여정과 인천으로 향하는 KTX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동행은 수직적인 세계에서 지친 이들, 특히 가족이 부재한 이들이 봉고차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과정이라서 특별하다. 성매매 여성인 소영은 상현과 동수를 만나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소속된 느낌이 무엇인지를 새로이 깨닫는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소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혼 후 딸과 별거 중인 상현은 몰래 보육원을 빠져나와 봉고차에 탄 해진에게서 딸의 모습을 본다. 이는 오르내리는 대관람차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 찬가로 이어지는 봉고차
이때 영화는 유대감과 치유의 이야기를 인간 내면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대한 믿음으로 확장한다. 사실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은 예기치 못하게 만났고 또 좋은 일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 아기를 유기하는 소영의 행동이나 그 아기를 교회에서 맡아 기르는 대신 팔아버린 상현과 동수의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범죄였다. 그러나 영화는 악행 기저에 깔린 선의들의 만남에 주목한다.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두고 떠났지만 되돌아온 소영의 모성애,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려 했다는 상현의 배려심, 버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동수의 동병상련은 한 데 모여 치유의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물론 자신들의 행적을 둘러대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진심인 선의가 만나 새 가족을 만들고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이 감동은 엄마이자 딸로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 소영이 모두에게 전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로 함축되어 있다. 달리 말해 이 대사에는 악행을 저지른 모든 이들의 내면에도 미처 꺼내지 못했을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함 덕분에 모두의 생명이 특별하다는 인간 찬가가 담겨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모두가 최선을 선택하며, 자신들이 마주해야 했던 인생과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책임을 아이 엄마에게 묻는 대신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간의 선의에 대한 희망은 <브로커>만의 따스함이 감도는 영상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인위적인 설정 대신 햇빛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있는 그대로 포착해 찍어낸 덕분이다. 상현과 소영의 진심이 튀어나오는 KTX 안에서의 대화 장면이 밝음과 어둠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처럼 수직의 세상에 피어난 선함이라는 주제는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돌아간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소시민적으로 수직적인 세상을 사는 인물이면서도 수평적 여정의 끝에서 인간의 선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인 상현은 영화에 담긴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흔들리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렇다고 해서 <브로커>가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이고, 밝은 태도만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답게 상현, 동수, 소영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즉 수진의 시점에서 따라가도록 권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수진의 세계를 보여준다. 수진이 소영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소외된 이들을 보는 시점으로, "버릴 거면 낳지를 말라"는 수진의 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또 아기를 실은 상현의 봉고차를 수진이 조용히 쫓는 장면에서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것도 관찰자이기에 관객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그녀의 관점을 강조해준다.
그리고 수진의 관점과 태도가 뚜렷하기에 브로커 일행을 쫓는 그녀의 여정에는 더욱 깊은 드라마가 담긴다. 단순한 관찰자였던 그녀가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동행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이면을 마주하고, 자기 내면에 찾아온 혼란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냉철한 신념과 태도는 "낳고 나서 죽이는 게, 낳기 전에 죽이는 것보다 죄가 더 가볍냐"는 소영의 반박에 꺾인다. 아이를 매매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그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편견과 제도의 공백이 그녀를 흔든다. 또 멀쩡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만 비로소 우성이가 행복할 거라는 그녀의 고정관념은 "아이를 가장 팔고 싶은 건 나였나 봐"라는 대사를 통해 고발된다.
이렇게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미리 단정 짓지 말자고 설득한다.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직과 수평의 충돌 안에 담는다. 사회 제도에 대한 의문과 통념으로 자리 잡은 윤리적 판단에 대한 의심으로 악행과 선의의 딜레마를 장식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진과 동일한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결말을 마주한 순간 긴 여운 속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만 영화적 뚝심과는 별개로 <브로커>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크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여정, 곧 소영과 우성이/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브로커를 추적하는 수진과 이 형사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사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를 고려하면 이 많은 캐릭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이는 특히 최후반부에 얽히고설키는 상현, 소영, 동수, 수진의 선택에서 그들의 심경 변화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보육원 시퀀스처럼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도 감상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물론 이러한 단점은 이지은의 연기가 눈부시게 빛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로 묶는 접점도 소영이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것도 소영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의 퍼포먼스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덕분에 언제나 수심 가득하던 얼굴에 슬며시 웃는 미소를 지나 당찬 의지가 담기고, 진한 스모키 화장이 지워지는 그녀의 변화만 따라가도 <브로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다만 완성도 때문에 영화의 온기와 따스함이 지닌 설득력이 약화되는 게 결국 문제다. 인신매매와 살인처럼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닌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낙관적이고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 듯한 경향성이 살짝 엿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상적이고 작위적인 화법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면, <브로커>는 그저 순진하게 풀어낸 인간 찬가로 기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가 갖는 중요성과 가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역량과 명망을 생각하면 이는 퍽 안타까운 결과다.
A(Acceptable, 무난함)
인간의 선함을 믿어보자는, 따뜻함과 나이브함 사이에 있는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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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치의 투명함
<힘찬이는 자라서>(2022, 김은희)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김진화)
<세기말의 사랑>(2023, 임선애)
<살인자ㅇ난감>(2024)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 위 작품들의 장면과 결말 포함
손수현을 보기 위해 재생한 단편 <힘찬이는 자라서>, 노재원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주인공 정희의 친구의 남편 강석, 적당히 내향적이고 친절한 남자인 그는 대화의 주제가 달랐다면 예의바른 미소로 일관하다 퇴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영화가 만들어질 까닭도 없었겠지.) 정희가 쓰는 시나리오가 테이블에 올라오며 두 사람은 부딪힌다. ‘이퀄리스트’적 논리를 따박따박 나열하는 강석의 언행에 딱히 악의는 없다. 그는 모르고 또 알려 하지 않으므로 ‘억울’해 하는 게다. 강석은 현실을 반영해 구성된, 특정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물이었다. 배우는 역할에 충실했고, 나는 강석이 밉고 갑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직설이 차라리 반가웠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리도 솔직한 표정을 짓는 저 배우는, 주어진 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이가 정희의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왠지 그럴 것 같다. 그건 노재원의 연기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어졌다는 신호였다.
첫 만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서서히 스며들게 되는 이도 있다. 노재원은 말하자면 후자였으나, 어느 정도 전자이기도 했다. 타 배우를 염두에 두고 관람한 작품들에서 그를 목격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놀랐다.
자주 길을 잘못 들거나 가다 멈추곤 하는 로드무비 <윤시내가 사라졌다>. 운시내=준옥은 완벽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반짝이는 재킷을 걸친 그가 카메라에 잡힌 순간, 노재원의 이름을 기억했고, 좋아하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다. “원조 가수랑 똑같기만 하면 매력이 있나, 저는 그냥 저 마음가는 대로 부르거든요. 그래서 일이 안 들어와요.” 그 자조 섞인 담백한 대사에 준옥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의 공연은 본인의 설명대로다. 힘주지 않아도 깊이가 느껴지는, 차분한 ‘엣지’를 품은 목소리. 섬세한 선을 그리는 움직임. 노재원은 단지 노래를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음으로 관객의 심장을 울릴 줄 아는 공연자였다, 꼭 운시내처럼. 무대 위의 옅은 웃음기는 후에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보며 짓는 미소와 닮아 있다. 미묘한 카타르시스. 겸손함, 당당함, 자만하지 않는 자신감.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운시내’가 노래하는 자세는 ‘정준옥’이 살아가는 자세와 닮았다. 식탁 밑에 있는 하다(=처음 보는 사람)를 동그란 눈으로 응시하다 한쪽 이어폰을 슥 빼 제 귀에 끼우는 그 독특한 붙임성. 당황한 하다가 식탁에 머리를 박자 튀어나오는 진심어린 감탄사 “아이고.” 그 마주침부터 줄곧, 하다는 무례하고 준옥은 스스럼없다. 준옥의 친절은 형식적 예의 이상이다. 어머니 뻘인 순이를 ‘친구’라 부르며 벽없이 훅 다가가는 그는 하다의 말처럼 “선을 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단 ‘선을 잘 넘는 법을 아는’ 이였다. 꿍꿍이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내면의 깊이마저 갖춘. 그 넓은 마음 씀씀이는 절로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스스로 투명하므로 타인의 속도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걸까. 그는 하다의 셈과 위악을 어느 정도 간파하면서도 섣불리 평가해버리지 않고 조용히 지켜본다. 은근히 끼고 싶어하는 속내를 눈치채고 보내는 눈웃음, 삐딱한 행동을 관찰하는 진지한 눈길. 준옥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형과 함께 모녀의 갈등을 터트린 것은 글쎄, 아마도 의도적이다. 가운데 끼어 욕을 먹고 눈치를 보며 기어이, 중요한 이야기를 던지고야 만다. 하다의 케케묵은 감정을 자꾸만 건드린다. 일부러 걸림돌이 되고 기꺼이 거슬린다. 노재원의 자잘하고 천연덕스러운 제스처들은, 준옥의 신묘한 중재자(!)적 능력을 의심케 했다.
그런 그가 살짝이라도 차가워지면 이쪽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단호해지면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준옥의 위로는 빈말이 아니고 그의 조언은 불쾌한 맨스플레인이 아니다. 그가 ‘실패한’ 과거를 꺼내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와닿았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진심을 체화한 노재원, 그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드문 종류의 것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굳이 말하자면 하다와 순이의 영화이기에, 준옥은 도중 하다에게 버려지며 화면을 빠져나간다. 화내거나 패닉하는 대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마는 것마저 그답다 싶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퇴장하는 그를 ‘메시지의 의인화처럼 보이는 존재’라고 해버리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 갈무리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노재원을 만나 생명력을 얻은 준옥, 그의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안 정도는 빌고 싶어진다. 한편으로는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그는 잘 살아가리라 짐작하게 된다.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 ‘관종’과 ‘짝퉁’들의 언더월드에서 운시내=준옥은, 우아한 미스핏, 골목길의 귀인,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도인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여기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가 또 있다. <세기말의 사랑> 속 도영이다. 모순된 묘사로 들릴 것이다, 그는 회사 돈을 횡령한 범죄자이니. 가출한 조카가 위장결혼한 와이프 명의를 도용해 만든 카드값을 혼자 메꾸려다 그렇게 되었다. 앞 두 문장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으나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다. ‘위장결혼’의 자간에는 사랑과 배려가 묵음처리돼 있다.
영미와 도영은 조금은 동족이다. 사랑하는 이의 범죄를 덮으려 밤새 부업을 하고 형까지 산 영미, 기다려달라는 영미 말을 따르다 그런 건지 뭔지 자수도 못하고 체포된 도영. 뒤늦게 꼬박꼬박 돈을 갚는 그를 미워할 수 있는 관객은 별로 없었으리라. 캐릭터의 사연도 성격도,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세기말의 사랑>, 도영의 껍질은 투명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소재를 클로즈업해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순간은 도영과 만나 유독 빛났다. 비엔나 소시지에는 타인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배려심이 묻어 있었다. 모기 물린 자국에 찍은 십자가에는 살짝 엉뚱한 유머감각과 순수한 설렘이 눌려 있었다. 도영의 스크린 타임은 짧았으나, 그의 됨됨이를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유진과 도영이 마주하는 시퀀스는 겨우 둘이었고 개중 하나는 화상면회 씬이었으나, ‘위장 결혼 상대’를 향한 도영의 사랑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좋아해요”를 뱉어버리고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입가에, 호텔 창문 너머 반짝이는 관람차를 보며 (혹은 보지 못하며) 섬세하게 일그러지는 뺨에, 작품이 생략한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도영은 그럴듯하게 멋져 보이는 법을 모르는 듯한 사람이었다. 어쩐지 노재원도 그런 사람일 것만 같았다. 수줍은 손끝과 내리깔린 눈꺼풀, 자주 흐리는 말끝에 가득 담긴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영에겐 그런 드문 자질이 있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고, 노재원은 이상한 배우다.
<세기말의 사랑>(2023)
최근 노재원은 넷플릭스를 누비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D.P> 시즌2에 군복을 입은 실루엣을 비추었고, 최근에는 <살인자ㅇ난감>에 출연하며 ‘범위’를 증명했다. ‘하상민 역에 노재원’이라니, 뜻밖의 캐스팅이었다. <힘찬이는 자라서>까지를 포함해도, 앞뒤가 다른 하상민은 그가 이제껏 보여준 이미지와는 한참 먼 캐릭터로 느껴졌다. 허나 곧 (정이서와 더불어) 꽤나 영리한 캐스팅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노재원은 어떤 전형을 따라하는 대신 저만의 스타일로 보통의 악인을 소화했고, 결과적으로 시청자가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도왔다.
움츠러든 어깨, 차마 피하지 못하는 눈, 머뭇거리는 말투, 하상민은 매혹적인 젠틀맨이 되기보단 유약함과 무해함을 가장해 상대의 경계심을 해제한다. “혹시 연락을… 해도 되나?” 수락을 해도 반대로 거절을 해도 괜찮을 듯한 톤이다. 그 탁월하게 균형잡힌 딜리버리에 감탄했다. 경아에게 ‘너는 나와 동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 꾸며낸 피해 서사 자체보다는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의) 태도이고 마스크다. 악의라곤 없어 보이는 노재원의 눈빛에, 원작의 전개를 알고 있음에도 속아넘어갔다. 거울 앞에서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하상민에게 이유있는 싸함을 느끼면서도, 거기 속셈은 없다고 믿고 싶었다. ‘이번엔 믿어봐도’ 될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최우식과는 또다른 방향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두른 배우. 그렇게 노재원은 성공적으로 경아와 시청자의 의심을 풀었고, 배신감을 극대화했고, 최후의 순간에는 이희준과 만나 더없이 보잘것없어졌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평범하여 더 유해한 비겁자 하상민. 송촌 앞에서 벌벌 떨고, 울며 애원하고, 먹어 들어가는 발성으로 죄를 고백할 때보다- 경아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이내 이성을 잃고 목을 조를 때, 그는 가장 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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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행이었다, 그 직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시청한 것은. 노재원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이 작품을 최근에야 보게 됐는데, 이미 목격한 매력과 범위를 놀라운 형태로 재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서완은 일단, 조심스럽고 순하고 해맑다. 날카로운 눈매와 맑은 눈동자가 안경과 만나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쭈뼛거리는 눈가와 입가, 어깨. 말투는 정중하고, 발걸음은 자유롭다. 스토리텔링을 장황하게 늘이다 끝을 흐리는 점, 몸을 슬며시 뒤트는 점, 시선을 허공이나 바닥에 두는 점, 그러한 디테일은 대사와 맞물려 서완의 ‘컨디션’을 암시한다. 허나 캐릭터성 또한 나타낸다. 그 흐름에는 개성이 있다. 다은이 떠온 “암브로시아”를 공손히 받아드는 제스처에 뱃속이 간질간질해 진 이는 (이미 배우를 좋아하는) 나뿐이 아니었으리라.
작품은 서완의 스크린 타임을 영리하게 조절했다. 은은한 잔상을 남기고 박보영과 연우진에게 포커스를 넘기며 슬금슬금 퇴장했다가, 동네 주민처럼 가끔 얼굴을 비추며 독보적인 그림자를 흘리는 서완. 인자하고 어색하게 유유자적하던 그는, 자신의 견고한 세계가 외부 자극에 의해 깨질 위기를 감지하자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노재원은 그 간극을 설득하고, 인물의 사연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4화에선 조심스러운 선의로 주위를 밝히고, 5화에선 시청자의 심장을 잔뜩 졸인 끝에 허탈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 다음 화에서, 우리는 서완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를 떠나보내게 된다.
자신이 구성한 판타지 월드 안 서완은 지쳐 있지만 단단하다. 발음과 말씨도 분명한 편이다. 그 세계가 스스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는 서늘한 눈동자엔 공허가 있다. 고요하고 무기력한 수긍이 이어진다. 유하고 공손한 그의 언어가 날카롭게 꽂히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 입원 전, 속상할 만큼 이성적인 자각을 털어놓는 상태와, 병 인지 후 조바심과 자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는 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은의 멍든 손을 보고 제가 더 아파하는 이다.) 노재원은 누르고 파고들고 덜어냄으로써, 공시를 준비하던 서완의 마음을 드러냈다. 참고 참아 무뎌져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 성마른 입술을 통해 뱉어내는 자조에 여러 해에 걸쳐 어마어마한 밀도로 압축된 응어리가 언뜻 비쳤다. 노재원은 쌓이고 뒤엉켜 본래의 색을 잃은 인물의 내면을 신중하게 내보이는 법을 아는 배우였다.
저마다 개성있고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로 가득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노재원은… 조금 달랐다. 무엇이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조금 달랐’다. 엉망으로 울게 했고, 기습적으로 웃게 했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그리고 서완의 마지막 순간, 노재원은 모조리 비워냈다. ‘차 한 잔’을 청하던 떨리는 목소리가, 허탈하고 자유로워 보이던 미소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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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기말의 사랑>을 관람하며, <힘찬이는 자라서>를 돌이켰다. 노재원에게 받은 첫인상과, 현재 머릿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이미지를 번갈아 떠올렸다. 각이 예리하게 두드러지는 얼굴은 일관성을 유지하며 다채롭게 변했다. 그는 부드러운 피부를 입고 단단한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한없이 약해질 수 있었다(하상민). 전부 내려놓거나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무던한 듯 통통 튀는 손수현, 예민함과 유함이 공존하는 노재원. 두 배우의 에너지가 보다 친밀하게 엮이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이주영, 이유영, 스치듯 화면을 공유했던 최우식까지- 관심을 보다 먼저 두었던 배우들과 노재원이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얽히는 모습을 은근히 그려보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남자 배우가 선뜻 내보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미지를 노재원은 스스럼없이 둘렀다. 힘주지 않고 깊이를 담는 연기자. 노재원의 인터뷰들을 읽으며, 자주 준옥이 겹쳤다. 일에 대한 사랑과 겸손한 자신감이 진중하고 솔직한 언어에 실려 있었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스포츠경향]는 그는 현명한 걸음을 저답게 내딛고 있다.
“당신의 다정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일본 TV 시리즈 <그래도, 살아간다> 속 대사다. <세기말의 사랑>, 도영을 보며 그 문장이 떠올랐다. 도영만이 아니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준옥,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서완, 그들은 웃는데 이쪽은 자꾸 울먹이게 됐다. 이들의 살갗에 안착한 배우가 노재원이 아니었다면 내 눈물샘이 이토록 왕성하게 활동할 일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노재원은 이상하고 소중한 배우다. 그가 수줍게 뿜어내는 무해한 아우라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영제는 “Daily Dose of Sunshine하루치의 햇빛(멋대로 의역. 배경이 병원이니 ‘복용량’을 살려 번역하는 게 더 맞을 테다.)”. 스크린 위 노재원을 보면, 하루치의 투명함을 보충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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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좀비와 #살아있다 가 의미하는 것
영화 살아있다가 개봉했습니다.
저는 시사회를 통해 그럭저럭 봤던지라,
개봉 이후 관람객 평이 생각보다도 더 좋지 않아 조금 놀랐는데요.
이 콘텐츠는 영화 살아있다를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만들게 됐습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살아있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살아있다 #유아인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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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한 맛이지만 강렬한 "에이리언: 로물루스" /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 / 새로운 젊은 캐릭터들 / 강렬한 긴장감과 몰입감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에이리언: 로물루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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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 메인 예고편
전설적인 탐험가 패밀리 '클레이드' 3대 가족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디즈니의 판타스틱 비주얼 어드벤처 [스트레인지 월드]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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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킬러의 카운슬러> 예고편
루 판트는 히스테리와 치매가 있는 노모를 모시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우연히 그녀의 롤 모델이자 라이프 코치인 당당한 여성 발 스톤을 만나 모든게 바뀌게 된다.
사실 살인 중독자인 발 스톤은 루를 자기의 후계자로 여기며 자기 개발을 위한 '살인자의 여행'에 동참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