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터에 현미경을 갖다대면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뭐가 될까? 이 영화가 된다.
영화 <히어>다.
들어가며 : 먼저 남기는 총평
제리 맥과이어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히어>는 포레스트검프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와 각본가인 에릭 로스가 협업을 했고 톰행크스도 주역으로 참여했다. 이래저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식상함과 실험의 밸런스에서 개인적으로는 호의 영역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덕후의 개취로는 메인메뉴보다 가니쉬가 맛있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드라마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그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적 실험기법들이 새로워서 스토리 외적으로 상상력이 구동되는 영화랄까. 특히, AI와 CG 기술로 구현한 젊은 톰행크스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관객인 나와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도 했으므로 이제는 영화의 주제가 AI기술을 통해서 와닿을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자. 일단 줄거리부터다.
<히어>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 : 주인공은 집입니다만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이 주인공이라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장소’다. 그 위로 백악기 시절부터 코로나19가 창궐한 현재까지 한 공간에 살았던 존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생로병사 희노애락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그러니까 <히어>는 일반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자신의 초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을 일직선으로 전진시키는’ 법칙을 따르는 대신 자연의 내러티브라 할 수 있는 탄생과 소멸, 그 사이의 길흉화복을 기승전결로 따른다. 굳이 말하자면 옴니버스적 구성에 가깝달까. 그렇다보니 이야기 자체는 서스펜스도 없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을 ‘집(공간)’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은 어느 시대이건 반복된다는 전제 하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역사성(시간)’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 그 곳에 인물들이 생기는 느낌. 이런 이야기에서 인물들에게 캐릭터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메인스토리라인에 등장하는 리차드의 인생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풍부하게 그려진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차드는 로즈와 알의 첫째 아들로, 화가를 꿈 꾸는 소년이었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아버지 밑에서 대공황을 겪으며 어른이 된 그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마가렛과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마가렛은 대학을 포기하고 (한국식으로 시부모의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시작한다. 그녀는 분가를 희망하지만 경기는 계속 나쁘다. 리차드는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노력하고 마가렛도 비서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장성한 그녀의 딸은 로펌에 들어가고 그 사이 로즈와 알은 쇠약해진다. 부모들이 캘리포니아의 요양원으로 떠난 뒤에야 비로소 마가렛이 그토록 원하던 ‘둘만 사는 집’을 갖게 되지만 그녀는 이혼을 원한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는데 말이다. 잠시나마 리차드의 인생에 몰입했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원하는 걸 갖는 순간은 왜 이토록 찰나인가?
이 필연적인 질문 위로 리차드 이전에 이 곳에 살았던 인물들의 인생들이 겹쳐진다. 만나고 꿈꾸고 떠난다.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 같던 인물들의 삶은 사실 하나의 질문을 위한 반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나니 이 영화에 한 명의 주인공이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만 특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이유도 없다. 이 집이 역사적으로 남은 유명 정치인(아마도 프랭클린)의 저택이 아니라 그의 앞집에 사는 평범한 가정집으로 설정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유추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모두 꿈이 있다.
<히어>는 결국 심심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죽는 이야기다.
허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따뜻할까? 아마 그것이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2시간 내내 정박되어있던 카메라를 객석으로 돌려보자. 주인공이 된 우리의 인생은 카메라 너머 캐릭터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또 얼마나 같은가? 아무리 특별한 사건도 둘러보면 나만의 사건이 아니게 되는 보편의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인들의 삶이 평범하고 심심하기만 할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에 짧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희망과 좌절 그리고 꿈이 있었다. 각자의 객석의 앉은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이 대목에서 마가렛의 50살 생일파티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 동안 미뤄왔던 꿈들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가 그것들을 이루는 것을 담아준다.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결국 죽는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들을 놓치지 마세요.”
집은 언젠가 빈집이 되고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남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나쯤은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는 맛있는 가니쉬에 대해서 이야기할 차례 :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없다.
<히어>에서 작품의 의미와 개성을 만드는 포인트는 역시 포인트다.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공룡이 등장했다 퇴장했던 것처럼 인류도 그리고 그 안에 나라는 인물도 등장했다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메타포를 가장 잘 활용한 매체는 사실 연극이다. 전통적인 연극은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통해 무대 위에서 사건을 전개시켰다. 이 작품은 매우 영화적이지만 프레임인-아웃이 마치 연극의 등퇴장처럼 느껴지는 효과도 백분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무대는 정박되어 있고 객석도 고정되어 있으니 궁금하다고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럴거면 영화일 이유가 없다. 감정을 전달받아야 하는 씬은 어떻게 하지?
정답! 배우들이 다가온다.
<히어>의 싱글 카메라의 위치는 집안의 중심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거실과 부엌 사이의 어느 벽 또는 경계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의 외곽이다. 연극에선 인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상수든 하수든 사이드로 내려오면 관객에게는 가까워지고 무대의 균형은 깨트리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듯 튀어나온 것에 눈과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다. 그렇게 전달받는 정보는 자연히 귀기울이게 된다. <히어>는 클로즈업이 필요한 씬에서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 가까이로 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카메라 거치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 감정 전달을 해냈다.
예컨대 로즈와 집주인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씬, 성장한 리차드(=젊은 톰행크스)가 등장하는 첫 씬, 원주민족의 여성(태초의 여성)의 시체를 운반하는 씬, 가족들의 추수감사절 식사씬, 분가를 원하는 싸움신 등에서 배우들의 동선은 무대의 외곽이자 카메라 가까이로 조정된다. 기발했다. 위치를 정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히어>에는 정말 카메라 무빙이 없나요?
사실 있다. 딱 한 번. 영화의 엔딩에 단 한번 카메라의 무빙이 있다. 치매로 기억을 잊어가는 로즈를 위해 리차드는 빈집에 그녀를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는 집을 둘러보고 문득 기억을 찾는다. 집을 둘러보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제껏 벽이라고 생각했던 관객의 시점은 마치 새의 시점처럼 집의 반대편을 처음으로 보게 되고 그녀의 회한에 젖은 표정을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이 곳을 좋아했다’는 마가렛의 대사를 끝으로 창밖으로 빠져나간 카메라는 관객들 역시 이 영화라는 공간에서 퇴거시킨다. 시간이 되었다는 듯. 그리고 평범한 집들이 보이는 풍경에 고대의 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담이지만 : 다 좋았냐?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가장 현재의 집주인이었던 아프리카계 가족들의 삶의 쓰임이 현대적 인물로서의 특성이 있기보다 오직 앞서 보여준 에피소드와 대응하는 위치에서 식민지 시대와 달리 개선된 인권, 달라진 생일파티 풍경, 코로나,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회적 차별 같은 걸 보여주는 기능으로만 쓰였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운 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연의 공간이었던 곳에 원주민이 살게 되고 그곳이 어는 미국인 가정의 자산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역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이었다.
사실 영화예술이 모든 면에서 육각형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침략을 당해온 민족의 입장에선 침략을 해온 민족들의 영화는 어느 순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좋은 점이 9개가 있는 영화에도 이 부분에선 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게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고도의 문화통치인가. 이거 뭐 답이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여담이지만2 : 어떻게 찍은걸까?
<히어>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집 자체가 변화무쌍한 캐릭터 같다. 초기의 빈집부터 맥시멀리시트의 집까지 그 사이 가족구성원들의 변화와 크리스마스처럼 특수한 날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한 소품과 미술이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시간대 내에서도 밤과 낮에 따라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미묘한 변화들이 굉장하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작업을 하면서 카메라 한 대를 어떻게 단일 장소, 단일 지점에 고정해서 찍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튜디오 집 내부에 두 개의 세트를 만들어서 한 세트에서 촬영하는 동안 다른 세트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식으로 찍었다고 한다. 방의 창문 뒤에 위치한 LED 벽은 배경이자 방의 조명기이기도 했다고.
총 촬영기간은 33일에 불과했지만 첫 촬영 몇 달전부터 블로킹을 해서 완벽한 타임라인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컷이나 다른 각도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모두 카메라 뒤로 돌아가서 테이크를 확인했다는 것도 대단하다. 알면알수록 어마어마한 제작진에 어마어마한 작업물이다.
여담이지만3 : 영화의 미래
<히어>의 장르는 휴먼드라마지만 여느 SF장르 영화와 견주어도 될만큼 화려한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나 CG야! 느낌은 전혀 없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동일 배우가 20대부터 80대까지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도 굉장한 부담이었을텐데 다운에이징 스킬, 디지털 메이크업 기술 등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들도 20대였던 시절의 신체반응이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러프버전이나마 현장에서 바로 AI기술로 20대의 얼굴로 바뀐 자신들의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스토리에 완벽히 스며드는 기술이라니, 앞으로 펼쳐질 영화스토리텔링의 변화도를 상상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