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11-15 07:52:27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앵그리 애니〉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앵그리 애니〉
아래로6★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레벤느망〉에서 주인공 안은 두 번의 임신중지를 시도한다. 뜨개질바늘을 사용해 혼자서 한 번, 불법 시술소에서 또 한 번. 〈레벤느망〉은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비껴가지 않는다. 안의 거친 호흡과 고통스러운 신음, 날카로운 시술 도구가 안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으로써 ‘불법’이라는 추상적 규범이 초래하는 위험과 이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수치심을 고발한다.
〈레벤느망〉의 배경은 1963년의 프랑스다. 〈앵그리 애니〉는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을 다룬다. 두 아이가 있는 엄마 애니는 임신중지가 가능한 곳을 수소문해 한 서점을 찾는다. 서점 직원은 찾는 책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혹시 모임에 온 것이라면 커튼 뒤쪽으로 가 보라고 말한다. 커튼 뒤에는 ‘불법이지만 비밀은 아닌’ 일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임신중지가 필요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들에게 사려 깊은 태도로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임신중지에 어떤 도구를 활용할지 하나하나 일러주고, 모든 궁금증에 상냥히 응대한다. 겁에 질려 그곳을 찾은 여성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그들은 MLAC, 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활동가다.

이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애니는 임신중지를 위해 침대에 눕는다. 의사 한 명과 활동가 둘이 애니 곁에 있다. 그들은 애니에게 거울로 자궁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기 위함이다. 의사는 애니가 불편함을 느끼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활동가는 애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내내 곁을 지킨다.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끝났다고요?” 임신중지가 마무리되자 애니가 깜짝 놀라 묻는다.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애니에게는 이토록 쉽고 간단하고 안전하게, 심지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임신중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레벤느망〉의 임신중지 장면과 달리, 〈앵그리 애니〉의 임신중지 장면은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영화가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이 어떤 환경과 맥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MLAC 덕에 공포가 안도로 바뀐 애니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경험에 계속 잊히지 않는다. MLAC의 도움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은 안전하고 믿음직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기부금 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됐다. 그들의 활동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커다란 평온에 감명받은 애니는 순수한 호기심이 인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불법 행위를, 심지어 비밀리에 진행하지도 않는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데, 애니는 그런 그들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애니에게도 각성의 순간이 온다. MLAC 조직이 여러 곳에서 활동하긴 했어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모든 여성을 돕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여전히 많은 여성이 위험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이 이 과정에서 죽었다. 애니의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애니는 본격적으로 MLAC 활동을 시작한다. 활동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조금씩 수정해나가고, ‘생명 파괴’ ‘문란함’ 등의 낙인 때문에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얼마나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도 직접 대면한다.
애니가 MLAC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영화의 질문은 확장된다. 〈앵그리 애니〉는 그저 임신중지의 합법화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더 크고 깊은 질문이 담겼다. MLAC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활동가, 의사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오랫동안 단체에서 의사를 돕던 활동가들이 직접 임신중지 시술을 집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MLAC의 의사들이 반발한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전문가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의사 없이 임신중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출산을 인류의 탄생 때부터 서로 도우며 해왔고, 시술법이 발전한 덕에 임신중지의 절차가 비교적 간단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MLAC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이는 남성/국가/전문가 집단이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애니는 화를 내는데(‘앵그리 애니’), 그 이유도 이 때문이다. MLAC의 활동이 큰 이슈가 되어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으나 합법화가 의료 기관이 그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MLAC에서 가능했던 여성들 간의 연대, 여성 경험의 가시화 등은 배제된 채(즉 MLAC에서 여성들이 쌓아 온 역량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채) 여성이 다시금 남성/국가/전문가의 수동적 객체로 위치지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애니는 화가 난다. 임신중지가 합법화된 후 병원에서의 임신중지는 위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여성을 다시금 외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MLAC 활동을 하며 애니가 가족에 ‘소홀해지는’ 과정과 이로 인한 가족 내 갈등을 통해서는 여성이 가사노동의 책무 때문에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는 상황을 짚기도 한다. 〈앵그리 애니〉는 단순히 낙태죄 폐지가 진보·정답이 아님을, 여기에는 이를 초과하는 다양한 결의 질문과 고민이 동반되어야 함을 보인다. 임신중지에 관한 단편적 이해와 서사를 넘어, 여기에 무수히 많은 이슈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이는 이 영화는 낙태죄가 페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후속 입법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무책임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임신중지 이슈에 관한 필람작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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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변질시킨 두 사람의 관계
정치는 세상을 바꾼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접 정치를 하려고 선거에 나선다. 선거에 당선되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정치인을 위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진심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모여드는 모든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정치는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려 애쓴다.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까지 진짜 자신을 생각해주는 존재들은 정치라는 것을 떼어놓고 봤을 때도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온갖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주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변의 친구들은 정치적인 의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의견을 내놓으며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론 다른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서로 거리를 두며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건 그들이 가진 정치적인 생각과 해석들이다.
정치인 운범과 조력자 창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킹메이커>
영화 <킹메이커>는 정치인 운범(설경구)과 조력자 창대(이선균)의 이야기를 담는다. 운범은 몇 번의 선거에 실패하다 사무실에 찾아와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창대와 만난다. 창대는 운범에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실제로 그 방법은 운범을 선거에서 이기게 만든다. 영화는 초반에 창대의 선거 전략을 영상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아주 기발한 방법이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방법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느끼는 그 불편한 마음을 운범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정치는 대체적으로 불쾌한 것이다. 그 불쾌함은 그동안 정치인들의 행태가 만들었다. 선거 전에 이야기했던 여러 공약들은 당선 후 지켜지지 않고 어물쩍 폐기되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 다시 들고 와 이번에는 해내야 할 공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치적 노림수들이 이제는 많이 알려져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 영화 속 창대의 선거 전략들은 그런 정치적 노림수가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이 방법에는 일반 국민을 교묘히 속이면서 여론 몰이를 하는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것이 상대 정당의 전략을 그대로 되치는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정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운범은 창대를 한동안 중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다음 당내 선거에 창대를 불러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그가 썼던 정치적 모략은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용당하고 나쁜 이미지를 만든다. 이용하는 수단이 좋은지 나쁜지는 ‘승리’라는 큰 목표 앞에서 판단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들은 그저 승리하기 위해 어떤 수단들을 쓴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제대로 먹혀 승리로 이어지게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런 나쁜 면이 악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모든 것이 행해지고 난 이후에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대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면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없어지지 않게 된다.
씁쓸하게 만드는 운범과 창대의 관계
이 영화를 보며 씁쓸해지는 건, 꽤 오랜 시간 이어질 것 같던 운범과 창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가진 이상은 비슷한 듯 보였고, 이들의 전략이 성공했을 때 오래도록 계속될 것만 같았다. 비록 정치판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그 둘은 잘 맞는 친구였다. 서로의 생각과 전략은 달랐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선거의 결과들은 훌륭했고, 그건 정치적 경쟁자들에게도 위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창대가 가진 전략의 불편함은 운범과 창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영화 속 어떤 사건이 그들을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가진 정치적 과정과 방법이 너무 다른 것이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맨 마지막 몇 년이 지난 후에 한 식당에서 운범과 창대가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운범은 활짝 웃지만 창대는 그렇게 크게 웃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서로 과거와 같은 가까운 관계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은 그저 예전처럼 밥한 숟가락을 뜨면서 대화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선다.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에서 외로움이 그대로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도, 마지막 장면도 창대의 모습이 화면에 담긴다.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은 정치라는 혼탁한 영역에서 아주 영민하고 똑똑한 전략가였지만 결국 외로움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어서 씁쓸해진다.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외롭지 않았을까. 영화는 그것에 대한 답을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는 관객들은 이 영화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엄창록 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이었는지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적을 통해서 대충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운범은 창대의 나쁜 선거 전략을 활용하지 않고도 정치인으로서 성공했고 크든 작든 자신의 정치를 펼쳤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의 삶의 어떤 부분에는 그만의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듯.
‘정치란 무언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영화 <킹메이커>에는 정치와 친구, 그리고 배신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다. 운범과 창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다 보면 결국 정치라는 것이 무언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과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담길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덕이 컸다. 운범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연설의 모습과 목소리 톤을 그대로 보여주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창대를 맡은 배우 이선균은 부드럽지만 교묘한 선거 술수를 가지고 있었던 선거 전략가 역할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조연 배우들도 눈에 띄는데, 박 비서 역을 맡은 배우 김성오와 이실장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은 평소에 연기했던 발성과 다른 톤으로 연기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2017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이 영화 만의 팬덤을 가지고 있다. 크게 관객을 모은 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계속해서 재개봉시키면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었다. 이번 <킹메이커>에서는 좀 더 안정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찬찬히 두 인물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좀 더 촘촘해졌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도 어렵지 않아 이전 연출작보다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킹메이커>는 두 인물의 이상과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한 방법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 두 인물의 우정도 같이 담겨있다. 정치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영역에서 만났던 두 인물의 궤적이 영화에 잘 담겨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인물의 감정 모두를 다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기에 정치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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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인디고 걸스의 노래를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
저는 뮤지컬은 좋아하지 않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은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성향을 갖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글리>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오래된 명곡을 새롭게 편곡하거나 의외의 곡들을 매쉬업하여 극에 삽입하는 것이 <글리>가 음악을 대하는 방법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이러한 <글리>의 감성을 되살린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글리터와 둠
Glitter & Doom
Summary
인디고걸스의 상징적인 곡들로 풀어낸 환상적인 여름 로맨스 뮤지컬. 뮤지션 '둠'과 자유분방한 '글리터'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29일은 정말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Cast
감독: 톰 구스타프슨
출연: 알렉스 디아즈, 알란 카미시
<글리터와 둠>은 1987년 데뷔하여 포크 음악과 펑크락을 결합한 음악을 선보인 인디고 걸스의 음악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입니다. 이 뮤지컬 영화에는 오직 인디고 걸스의 음악만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하겠다는 외고집이 보입니다. 작품 속에는 'Closer to fine', 'World falls', 'Get out the map' 등의 노래가 적재적소에 쓰이는데요. 조금만 보아도 캐릭터와 장면을 만들어 놓고 인디고 걸스의 노래를 붙인 것이 아니라, 인디고 걸스 노래의 가사와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중 음악을 활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인디고 걸스를 잘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노래 가사와 짜맞추기 위해 넣은 장면들도 튀거나 어색하지 않게 세심하게 만들었으며, 편곡 자체가 완결성을 갖추어 무척 세련되기 때문인데요. 특히 '1 2 3 & Leads & I'll change'과 같이 여러 곡을 하나로 매쉬업하여 각기 다른 캐릭터의 상황을 표현하는 시퀀스들은 이야기의 선봉에서 이끄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줍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처음인 사람도 금세 빠져들 수 있도록 만인에게 익숙한 사랑, 꿈,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또한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요인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글리터'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가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 자신을 가둬 버린 '둠'입니다. 극과 극의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게는 꿈이 가로막힌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죠. 여느 사랑이 그렇듯 두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우연히 사랑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꿈과 가족에 관한 갈등을 해소하는 여정이 <글리터와 둠>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익숙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뻔해 보이는 이야기는 인디고 걸스의 노래와 어울리게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생기를 얻습니다.
익숙함과 뻔함의 자리를 메우는 또 다른 요소는 독특한 영화적 편집입니다. 이 작품은 음악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동안에도 다양한 편집 기법을 활용해 지루할 틈 없는 화면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씨네21 송경원 편집장은 과거 뮤지컬 영화인 <라라랜드>에 대해 "영화인 척하는 실황 공연"이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요. 적어도 이 작품은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오직 영화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나 판을 뒤집어 놓는 반전이 없더라도 소소한 이야기들을 지루하지 않게 펼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글리터와 둠>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하기도, 예상치 못하게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정상성의 범주라는 건 없다는 듯 퀴어들이 잔뜩 등장하는 점도, 간만에 떠오른 <글리>의 추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지요. <글리>의 '커트'와 '블레인'처럼 탁월한 연기와 노래, 그리고 케미스트리로 극을 더 흥미롭게 만든 두 명의 배우를 새로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합니다. 아직도 <글리> 사운드 트랙가 돌아가고 있는 제 음악 스트리밍 앱에 <글리터와 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새로이 추가된 채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습니다.
9월 7일(토) 20:00 제천시문화회관
9월 9일(월) 19:00~20:54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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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는 감 잡히는데 결과적으론 글쎄올시다
츠카모토 신야 감독은 1989년 "철남"을 통해 화려한 대뷔를 해 흥행, 비평적 성공을 거뒀다. 그 이후로 메이저 영화사를 통해 "요괴헌터 히루코"를 감독하고, 동경의 주먹, 총알발레, 쌍생아 등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2018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을 통해 "킬링"이라는 신작을 발표하면서, 그의 새로운 세계를 만날 생각에 관객들은 설랬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보니 생각나는 한 고사성어가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본 영화에서 인간의 분노와 복수의 순환, 인물 사이의 갈등 등 여러가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이를 전부 포용하지 못하고 애매함만 보여주다가 끝이 난다. 차라리 하나의 주제의식이나 키워드에 집중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나왔을 거 같다는 기대감이자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카모토 신야 감독이 독창적인 작품 정신을 보여주는 감독이라는 것은 여전하며, 필자는 그의 새로운 영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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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희생하는 엄마는 그만!
레다는 자식들을 두고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다. 그리스 휴양지에서 친절하게 맞이해주는 펜션 주인인 라일을 만나고 평온한 휴가를 보내려는데 그때 니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어디서 왔고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레다는 이탈리어 비교 문학 교수이면서 보스턴에서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니나의 딸이 실종이 되고 니나와 그녀의 가족은 큰 슬픔에 빠지지만 레타가 니나의 딸을 찾아 니나에게 데려다준다. 그리고 레타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의 레타는 두 딸에게도 놀아주지도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잘 챙겨주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을 회상하고 난 뒤 레타에게는 두 딸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왔을까?
레타에게 두 딸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아온 희생적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자식 상팔자라더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레타는 오로지 자신이 인정받는 논문을 쓰느라 두 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고 상처를 주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비교 문학 교수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녀가 쓴 논문이 인정을 받자 두 딸에게 사랑을 주지만 자신에게는 내연남이 있었고 남편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로 집을 나오면서 속이 시원했다고 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 같이 느껴진 레타는 자유를 찾은 것이다. 그래도 두 딸은 20대 초 중반이 되었고 해수욕장에서 니나의 딸이 잃어버린 인형을 자신이 가져가면서 숨겨놓고 가끔씩 꺼내면서 인형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왠지 모르게 내가 느꼈던 것은 부모로서 자식들을 지키려고 하는 모성애가 없는 것을 인형을 통해 대리만족을 했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인생을 자식들에게 바치지 않는 부모였던 레타에게 두 딸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자식들에게 희생하고 싶지 않은
레타의 심정을 보여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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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진정한 '억압받은 것의 귀환'
<서브스턴스>, 진정한 '억압받은 것의 귀환'
영화 비평을 하다 보면, 나와 관객 속 나를 분리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브스턴스>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좌석에 앉아 있는 한 여성으로서 나는 프레임 단위로 영화를 분석할 수 없었다.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그저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그녀가 느끼는 혼란과 자멸감을 함께 느낄 뿐이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반짝이는 분홍색 별로 각인된 엘리자베스 스파클 이름이 점차 잊히고 더럽혀지는 간결한 씬은 영화를 관통한다.
그럼에도 한 번 더 요약해보자면 <서브스턴스>는 가장 날 것의 나를 들춰 눈앞에 들이미는 영화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연에 묻힌 기억을 기어코 끌어내 관객석에 앉히는 영화다. 무심코 들어갔던 영화관 화장실 문에 붙은 다이어트약 랩핑 광고, 강남역 인근의 성형외과 버스 광고, 젊은 여성들이 MC로 대체되며 이어지는 프로그램 명줄. 자기 관리라는 이름 아래 깎아 만들어지는 수많은 육체들이 영화관 안팎을 걸어 다닌다. 영화는 이 모든 사실을 '고어틱'한 장면으로 고발한다. 기괴한 쇳소리로 소리친다. 그러니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리라고. 이것이 <서브스턴스>의 끔찍한 고어함이 영화의 주제보다 더 주목받지 않았던 이유다.
척추에서 탄생한 이상적인 아름다움
가장 끔찍했던 건 고어한 장면이 아닌, 척추를 찢고 나온 어리고 예쁜 엘리자베스인 수(마가렛 퀄리)가 익숙해졌을 때다. 혹은 포르노에 가까운 모닝 에어로빅 쇼 총괄 책임자의 입안으로 탱글탱글한 새우가 누런 이에 갈려 으깨 들어갈 때였거나. 스물다섯 살 전후로 매력적인 여성의 생명이 나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장소, 레스토랑 식탁에서 스몰토크로 소모된다. 이 불합리함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노화된 피부와 처져버린 몸을 탓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출처가 불명확한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체내에 주입하는 데에 논리적인 사유를 친절히 다루지 않는다. 이젠 늙어버린 엘리자베스와 달라진 대우가 모든 이유를 대신한다. 서브스턴스로 인해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모습으로 일주일을, 다음 일주일은 또 다른 자신인 수로 지낼 수 있게 된다. 수는 이십 대의 얼굴과 젊고 탄탄한 몸을 가진 이상적인 여성의 외형을 띤다. 결국 형광빛을 띄는 노란 약물이 비극을 만들어내지만, 엔딩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이들이 한몫한다. 엘리자베스를 대신할 자리에 홀연히 나타난 수의 외모와 관능적인 몸매를 보고 환호하는 대중들. 얼굴에서 귀가 떨어져 나와도 드레스를 입고 있는 수를 향해 오늘도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는 관계자들. 이 맥락에서 영화는 기존의 호러 장르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혐오에서 파생된 피와 살
<서브스턴스>는 신체 변형을 소재로 한 '바디 호러' 장르이면서 동시에 질서와 규범을 파괴하는 위반의 호러 장르로써 자리한다. 으레 호러 장르에서는 억압하고 숨겨놓은 것들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과잉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가령 피해자로 그려지던 여성이 막강한 여귀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서브스턴스>의 경우 엘리자베스가 나이 든 노인을 넘어선 징그러운 외형을 띈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공포를 자아내게 만드는 대상은 사실 우리가 배제하고 혐오해 온 결과물의 집합체라고. 영화는 혐오의 기반이 되어왔던 늙고 병든 여성의 몸으로 고발한다. 기괴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 피를 내뿜는 엘리자베스를 보여주는 엔딩씬이 필요했던 이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억압받아온 것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극중 배경은 미국이다. 그리고 <서브스턴스>는 국내 55만 관객 수 돌파라는 이례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약 11년 만에 해외 청소년관람불가 예술영화가 사십만 이상 관객을 모은 쾌거다. 이것의 기반에는 젊은 여성 관객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한국의 대부분 여성 또한 외모 강박과 함께 자라났다. 너 좀 뚱뚱한 거 같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 말을 듣고 무리한 절식으로 한 달 만에 14kg가량을 감량했다. 수능을 마치고 친구들은 성형외과 상담 예약을 했다. 한창 커야 할 여자아이들이 튼튼한 뼈를 갈아 마시며 '더 나은' 몸을 탄생시켰다.
서브스턴스는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중안부 정병의 시대다. 중안부가 길면 남상과 노안의 이미지가 강해진다는 주장은 설화가 되어 여성들의 입에서 눈과 손으로 전해진다. 중안부 커버 메이크업과 동안 얼굴형을 위한 성형 시술 영상이 유튜브에서 성행한다. 더 어려 보이기 위해서 귀 뒤에 테이프를 붙여 쫑긋 세우는 방법이 여성 출연자만의 비법으로 송출된다. 방금 영화를 보고 나와서 탄 지하철 옆자리의 여성이 코 수술을 검색하는 핸드폰 화면이 보인다. <서브스턴스> 속 장면들은 한국의 일상에서 철저히 치환이 가능하다. 지독하리만치 완전하게. 영화의 주요 대사였던 'REMEMBER YOU ARE ONE'은 서브스턴스 약물을 주입하지 않은 현실에서도 쉽게 성립될 수 없다. 단어는 바뀌더라도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디에든 수많은 엘리자베스가 살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척추를 짓이기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울부짖는. 왜 너 따위가 나왔냐며 나를 향해 주먹과 발차기를 기꺼이 행하는.
나는 이들의 더없이 평범한 자유를 꿈꾼다. 약속에 나갈 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수백 번 뜯어보며 화장을 고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자신의 몸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고 싶은 일을 예전과 같은 몸과 얼굴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자유. 끝끝내 그 분노를 자신을 분열시켜 표출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녀들의 그런 자유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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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 같은 사랑 사랑 같은 요리 따뜻한 음식의 탄생!
시놉시스
도댕은 주방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동반자인 외제니가 곁에 있다. 도댕이 외제니에게 거듭되는 구애를 하지만 외제니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0년 동안이나 요리를 함께 해온 도댕과 외제니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레시피 연구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외제니는 몸이 아프다. 도댕은 그런 외제니를 보고 걱정하지만 언젠가 청혼을 할 예정이다. 과연 이 둘의 요리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아티스트 같은 요리 드셔볼래요?
도댕은 지금의 주방장이 되기까지 꽤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외제니도 어머니가 파티시에였으나 빨리 돌아가셨고 요리법만 배워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이들의 조수이자 비올레트의 외조카인 폴린이 요리와 미식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걸 외제니가 재빨리 캐치하면서 폴린의 부모에게 요리사가 될 재능이 높은 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폴린의 부모는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외제니가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죽고 나자 음식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도댕에게 찾아와 폴린을 맡아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폴린이 견습생으로서 자질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맛을 보면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린이 도댕의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진정한 요리란 무엇일까? 도댕이 폴린에게 말하길 그 음식에는 수십 년간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숙성된 김치처럼 오래오래 익혀두면서 배움과 함께 익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진정한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도댕처럼 유라시아의 왕세자의 만찬에 초대받아서 8시간 동안 만찬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그 방법이 굳이 아니어도 셰프가 되기 위한 길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이 영화는 요리와 미식에 다루고 있지만 도댕과 외제니의 사랑을 다루기도 한다. 인간의 가치 중에 사랑만큼 친숙한 것도 없을뿐더러 요리에도 먹는 사람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첨가되듯이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도댕과 외제니의 사랑도 오래 가지 못한다. 20년 동안 동반 지기로 음식 레시피를 연구하며 쌓아 올린 공로도 있는데 외제니는 결혼 후 얼마 안 돼서 사망한다.
도댕도 그 이후로 이틀 동안 음식도 안 먹고 술만 마셔댔지만 20년의 동반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는 건 정말 버티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가는데 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도댕과 외제니가 가을에 결혼하자고 했을 때 외제니가 도댕에게 묻길 당신의 아내인가? 아니면 당신의 요리사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도댕의 대답은 자신의 요리사라고 말한다. 그만큼 도댕은 요리와 음식에 대해 열정이 가득했으며 외제니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렇게 큰 동반자라고 보지 않은 듯하다.
다만 도댕은 외제니를 파트너 이상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가 죽은 후에도 큰 후회는 있었지만 요리 연구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도댕의 친구들도 외제니를 아티스트(예술가)라고 한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프렌치 수프>라는 영화는 프랑스의 맛난 음식들을 보여주며 공복에 보면 안 된다는 영화 평가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미식가의 길은 무엇이고 셰프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요리사 견습생이 보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댕과 외제니의 짧은 사랑도 흥미로웠지만 20년간 외제니도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그 부담감은 심적 부담이 넘쳐서 가끔씩 쓰러지는 형태로 발생했으나 사랑으로 조금이라도 극복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20년간의 요리 연구에만 몰두한 서로의 동반자인 도댕과 외제니의 사랑을 그린 영화!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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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25배속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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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수:서영은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oWj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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