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The Policeman's Lineage, 2021)
개봉일 : 2022.01.05.
감독 : 이규만
출연 :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권율, 박명훈, 이얼, 이현욱, 백현진
쿠키 영상 : 없음
관람 등급 : 15세
너무 안전한, 슴슴한 누아르
멋진 중년 배우의 표본인 조진웅 배우와 삐약삐약한 시절을 지나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최우식 배우, <마이네임>을 통해 “엄마, 나 아저씨 좋아해.”드립의 주인공이 된 박희순 배우. 그리고 권율, 박명훈, 이얼, 이현욱 배우 등 기대감이 절로 드는 배우진을 갖춘 누아르 영화 <경관의 피>.
일찍이 2020년 2월에 크랭크업이 됐으나, 코로나로 인한 극장의 침체기를 의식해서인지 꽤 오랜 시간 부유하고 있던 이야기가 2022년이 되어서야 제자리를 찾았다.
누아르의 불패 소재들을 모으고 모아
사사키 조의 동명 소설 [경관의 피]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3대째 경찰의 길을 걷고 있는 신입 경찰 민재가 흙탕물 속에서 뒹굴고 있는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융통성 없다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신입 경찰 민재는 최우식 배우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수대 반장 강윤은 조진웅 배우가 맡았고, 민재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청문 담당 인호 역은 박희순 배우가 맡았다.
빠릿하고 올바른 신입 경찰,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정체와 속을 알 수 없는 광수대 반장.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얕은 우정과 완전히 털어내기 힘든 불신. 그리고 강윤의 비밀을 알아오라는 언더커버 작전까지. 누아르의 불패 소재들을 잔뜩 가져와 섞어놓은 느낌이다.
기대감과 그 뒤에 남은 실망감
경관의 피 시놉시스와 주연 배우들의 이미지 합을 보자마자 문득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떠올랐다. 언더커버 작전을 벌이는 대상은 사뭇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경관의 피>는 나의 기대감을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많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의 아쉬운 점으로 꼽는 대사의 낮은 명확도. 그리고 컷이 바뀔 때마다 심하게 튀는 엠비언스와 날카로운 치찰음이 꽤 있었다. 거기에 캐릭터와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배우의 이미지. 길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진행까지. 겉으로 보이는 깔은 좋았으나, 막상 마주해보니 단점이 명확히 다가오는 영화였다. 그중에서도 음향의 퀄리티가 정말 아쉬웠다.
더불어 조진웅, 최우식. 멋진 두 배우의 케미를 기대했으나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적지 않은 실망감이 남았다. 민재와 강윤이 부딪히고 뒤섞이며 케미를 만들어냈다면 좋았을 텐데, 민재는 둥둥 떠있고 강윤이 그를 감싸 안기만 하는 느낌이었달까. 딱 막걸리 장면까지는 괜찮았는데 말이다.
실패하지 않을 명확하고 자극적인 소재들을 버무렸지만 <경관의 피>는 슴슴한 맛이 강하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속된 표현으로 ‘안전빵’ 같은 소재들을 사용했음에도, 이 이야기는 그저 같은 궤도를 머물다 못해 서서히 텐션을 잃어간다. 심장을 조이기 위해 열심히 음악의 힘을 빌려보지만 끓는 점에 가닿지 못한다. 배우의 매력을 제외하고 캐릭터 자체만의 매력도 크지 않다. 누군가는 어울리지 않고, 누군가는 너무 뻔하고, 누군가는 큰 사건의 중심으로서 응당 지녀야할 존재감을 부여받지 못하고 묻혀버린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완전히 거친 누아르보다 슴슴한 맛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잔인하거나 성애적인 장면은 없고 욕조차도 거의 나오지 않는 이 진라면 같은 누아르를.
아쉬움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
아쉬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살아남은 부분들이 있다. 조진웅 배우의 묵직한 연기와 올바른 수트핏. 간간이 등장하는 믿음직스러운 얼굴들이 터주는 작은 숨통. 그리고 완전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보여준 최우식 배우.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가 호에 가깝진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였다고 한마디 보태고 싶다. 최우식 배우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 믿으면서.
흑과 백. 그 경계에서
브로맨스, 3대째 이어져오는 경관의 피, 사명감과 가장 효과적인 범죄 소탕 방법 등 여러 주제들이 솟아오르고 그 안에서 가장 그럴싸한 물음은 하나뿐이다. ‘나쁜 놈들을 잡을 때, 넘어도 되는 선은 어디까지인가?’
독보적으로 유능하지만 어딘가 검게 느껴지는 강윤과 사수가 징계를 받게 될 것이 명확함에도 사실을 고하는 꿋꿋하고 하얀 신념을 가진 민재. 그리고 민재가 경찰의 꿈을 갖게 만든, 흐린 회색만을 남긴 그의 아버지 최동수
강윤은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민재는 눈앞에 있는 현행범조차도 손대지 못한다. 완전한 흑과 백의 특징을 가진 강윤과 민재가 만나고, 두 사람은 흐린 회색빛을 띈 민재의 아버지, 동수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 그리고 민재는 강윤의 강한 색에 물들기 시작한다.
선을 지키기 위해 악을 타도하는 방법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무작정 사건에 뛰어들고, 우직하게 법을 지키는 일명 ‘깨끗한 방법’이 있고, 큰 사냥을 성공하기 위해 작은 끄나풀을 남겨두거나 흙탕물에 함께 뒹굴며 함정을 파는 등 처절하고 강력한 ‘지저분한 방법’도 있다.
경찰로서 ‘악을 타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숙명인데, 이를 이루기 위해 깨끗함을 포기해도 되는 것인지, 민재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혼란을 느낀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어두운 세계와 기밀로 부쳐졌던 진실이 커다란 공이 되어 민재에게 부딪힌다.
경관의 피 시놉시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수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가 투입된다. 강윤이 특별한 수사 방식을 오픈하며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신종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되고 민재는 강윤을 둘러싼 숨겨진 경찰 조직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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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색을 가진 강윤과 민재의 만남
범인을 꿇어앉혀놓고 사건의 관계자를 캐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 선배를 말리던 민재는 법원에 앉아 그의 폭력을 인정한다. 범인의 증언은 수사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민재는 폭력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 최민재, 너만 옳은 것 같지?” 분노 반, 비꼬는 마음 반으로 던진 질문에 민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이게 올바른 선을 행하는 경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 올곧은 사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 이 길에 뛰어든 사람. 그게 바로 최민재다.
독보적으로 유능한 능력을 가진 강윤은 뒤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있는 광수대 반장이다. 혼자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크기의 조직들을 척척 잡아넣는 그는 비교적 몸집이 작은 악을 이용하는 경찰이다.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선을 아슬히 넘나드는 그는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을 다 잡겠다며 위험한 수사를 계속한다.
민재는 경찰의 뒤를 캐는 것은 불명예라며 언더커버 작전을 거절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인호가 내민 동수에 대한 기밀문서를 보고 마음을 바꾼다.
밝혀진 비밀과 새로운 길
기밀로 묻혀있었던 조직 연남회와 흐려진 물 안에서 살다 떠난 동수의 흔적을 발견한 민재는 고민에 빠진다. 조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폰서를 모집하고,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주사기를 배에 꽂았던 동수. 강윤은 그가 키워낸 새까만 그림자다.
연남회의 시작은 새하얀 눈밭이었지만, 끝은 더럽게 녹은 눈만이 가득한 진흙 밭이었다. 윗선에서는 썩어버린 뿌리를 뒤흔드는 노란 이파리들을 털어내고 싶어 한다. 이들은 연남회와 동수의 사건 경위를 극비에 부치고 강윤의 꼬리를 밟기위해 민재를 이용하려 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민재는 강윤과 함께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을 그대로 밟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출소한 강윤을 태우러 온 민재는 “저보다 더 나쁜 놈들을 모두 잡을 때까지 해보려고요”라고 말한다. 흑과 백, 명확히 나눠져있던 선안을 벗어나 그 위를 아슬하게 걸어가겠다는, 막무가내인 조금은 나쁜 놈이 되겠다는 이야기다.
착한 놈들 중에 가장 나쁜 놈
수사를 위해, 아주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위장을 하고, 법의 울타리를 넘는 강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인물은 착한 놈들 중에 가장 나쁜 놈이라고. 근데 도저히 척결할 수 없는 나쁜 놈이라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나누기엔 너무도 애매한 회색 선 위에서 민재와 강윤이 나쁜 것들의 잔재를 훌훌 털어낼 수 있을지, 그대로 물들어버리진 않을지. 그들의 패기가 어디까지 뻗쳐나갈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