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02-27 07:45:34
화려한 포장지, 그렇지 못한 내용물
〈살수〉 리뷰
4★/10★
각본가의 자질과 연출가의 자질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영화 〈살수〉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곽정덕 감독은 〈백두산〉의 각본을 쓰고, 〈끝까지 간다〉를 각색한 인물이다. 이 두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높게 평가하지 않더라도, 각각 상업성과 작품성 등의 측면에서 평가받은 지점이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살수〉는 조금 이상하다. 〈백두산〉은 상업영화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획이었고, 〈끝까지 간다〉는 탄탄한 구성으로 장르적 완성도를 높인 영화였다. 그런데 〈살수〉에는 둘 중 그 무엇도 없다.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화려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액션의 헐거움을 메울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지도 못했다. 몇몇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고군분투하며 영화를 지탱할 뿐이다.
조선 최고의 살수 이난은 몸이 망가져 더는 격한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는다. 그러던 중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초를 찾아 한 마을에 들렀다가, 자그만 주막을 운영하는 모자母子를 만나, 그들을 도우며 잠시 그 집에 머문다. 이 마을은 산적이 기승을 부리고, 고을의 행정 업무를 맡아 산적을 토벌해야 할 이방은 정작 산적과 내통하는 문제가 많은 마을이었다. 어쩌다 이들의 관계에 끼게 된 이난은 산적과 이방의 위협에 맞서 위기를 극복하고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이어간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살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적어도 한 측면에서는 관객을 사로잡을 수도 있었을 영화다. 화려한 사극 액션, 코믹 요소, 전개의 탄탄함……. 고루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중 하나만 확실히 잘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았을 것 같다. 지금처럼 여기저기에 발을 애매하게 걸치다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란 소리다.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를 끌고 가는 몇몇 배우에게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포장에 비해 즐길 만한 요소가 너무도 부족한 영화라는 점은 못내 아쉽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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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매체 선정, 집콕족을 위한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 10편
해외매체 더 랩(The Wrap) 선정, 집콕족을 위한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 10편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실천하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정말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바깥 외출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고 있는데요. 당연히 극장을 방문한지도 오래되었고, 다른 여타 문화생활도 즐긴지도 정말 오래됐습니다. 그 공허함을 주로 넷플릭스로 달래다 보니 넷플릭스에서도 볼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번에 미국 영화 전문 매체 더 랩에서 10편의 영화를 선정해봤다고 하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은 이번 리스트에 뽑은 것 같습니다. 그럼 해외매체 더 랩에서 선정한 집콕족을 위한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들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및 이미지 출처: 더 랩, IMDB
나 홀로 집에(Home Alone, 1990)
감독: 크리스 콜롬버스
출연: 맥컬리 컬킨, 조 페시, 다니엘 스턴
한국 개봉일: 1991년 7월 6일
선정 이유: 이 존 휴즈(나 홀로 집에의 제작자)의 고전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는 도중 가족들이 그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집에 홀로 남겨진 '케빈'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맥컬리 컬킨은 케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 홀로 집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전 세계적으로 4억 7천7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나 홀로 집에> 중에서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닉 서시, 헬렌 헌트 < 나홀로 집에> 중에서
한국 개봉일: 2001년 2월 3일
선정 이유: 톰 행크스는 격렬한 폭풍으로 인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태평양의 한 외딴섬에 고립된 페덱스사의 간부 '척 놀랜드'를 연기한다. 그는 윌슨이라는 이름의 배구공만 있는 섬에서 4년을 혼자 보낸다. <캐스트 어웨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4억 2천9백만 딜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캐스트 어웨이>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2007)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출연: 윌 스미스, 앨리스 브라가, 찰리 타핸
한국 개봉일: 2007년 12월 12일
선정 이유: 1954년 리처드 매드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윌 스미스의 스릴러는 바이러스가 인류의 대부분을 죽이고 나머지를 괴물로 몇 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뉴욕의 유일한 생종자인 '로버트 네빌'은 용감하게 치료법을 찾아 나선다. <나는 전설이다>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5억 8천5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나는 전설이다> 중에서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 2007)
감독: 숀 펜
출연: 에밀 허쉬 ,크리스틴 스튜어트, 빈스 본, 윌리엄 허트
한국 개봉일: 국내 미개봉
선정 이유: 숀 펜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갓 대학은 졸업해 히치하이킹을 하고 알래스카 황야에서 살기 위해 그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인 투 더 와일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5천6백7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인 투더 와일드> 중에서
디스터비아(Disturbia, 2007)
감독: D.J. 카루소
출연: 샤이아 라보프, 사라 로머, 데이빗 모스
한국 개봉일: 2007년 8월 30일
선정 이유: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교사를 폭행한 죄로 90일간의 가택 연금 처분을 받은 고등학생 '케일 브레히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케일은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망원경으로 이웃들을 관찰하고 엿보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그들 중 한 명이 연쇄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디스터비아>는 전 세계적으로 1억 1천8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디스터비아> 중에서
더 문(Moon, 2009)
감독: 던칸 존스
출연: 샘 록웰, 케빈 스페이시, 도미니크 맥엘리곳, 카야 스코델라리오
한국 개봉일: 2009년 11월 26일
선정 이유: 만약 여러분이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샘 록웰의 <더 문>을 찾아보자. 우주에 혼자 표류하게 된 비행사에 관한 수많은 영화 중 하나인데, 이 영화는 우주에서 3년간 홀로 근무를 하던 '샘 벨'이 여정이 끝나갈 때쯤 개인적인 위기를 맞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더 문>은 98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더 문> 중에서
127 시간(127 Hours, 2010)
감독: 대니 보일
출연: 제임스 프랭코, 케이트 마라
한국 개봉일: 2011년 2월 17일
선정 이유: 제임스 프랭코가 출연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을 홀로 등반에 나선 '아론'은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다. 그는 로프와 칼, 그리고 물 한 병으로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며 127시간을 버텨낸다. <127 시간>은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6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6억 7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127시간> 중에서
그래비티(Gravity, 2013)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한국 개봉일: 2013년 10월 17일
선정 이유: 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작품은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탐사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가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혀 우주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비티>는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7개의 오스카를 수상했고, 전 세계적으로 7억 2천3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그래비티> 중에서
와일드(Wild, 2014)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리즈 위더스푼, 로라 던
한국 개봉일: 2015년 1월 22일
선정 이유: 셰릴 스트레이드의 회고록 "Wild: From Lost to Found on the Pacific Crest Trail"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리즈 위더스푼은 개인적인 비극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100마일의 단독 하이킹을 완수하기로 결심하는 주인공 '셰릴'을 연기한다. <와일드>는 여우주연상을 포함한 두 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며, 5천2백5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기록했다.
<와일드> 중에서
마션(The Martian, 2015)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맷 데이먼, 제시카 차스테인, 세바스찬 스탠, 케이트 마라, 제프 다니엘스
한국 개봉일: 2015년 10월 8일
선정 이유: 화성에서 홀로 고립된 후 나머지 승무원들은 전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는 지구가 아닌 곳에서 1년 동안 홀로 생존하기 위해 식물학자로서의 그의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한다. <마션>은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7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 세계적으로 6억 3천2백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마션> 중에서
* 본 콘텐츠는 리쓰남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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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보낼 순 없어! 넷플릭스 5월 종료작 5
여러분! 어린이날, 어버이날 잘 보내셨나요?
지금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진출 임박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점유율 1등을 차지하고 있는 OTT 시장에서 과연 디즈니 플러스는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요?
5월엔 넷플릭스에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이 공개되는 반면, 그만큼 재미있는 영화들도 종료 예정이라고 합니다. :( 종료 예정작으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여러분들의 시간을 아껴드리기 위해서 씨네랩이 재밌는 영화들로만 선정했습니다.
1.마 Ma (2019) - 테이트 테일러
2021.05.30 종료 예정
" 10대 청소년인 ‘매기’(다이애나 실버스)는 마트 앞에서 술을 대신 구매해줄 어른을 찾던 중, 우연히 ‘수 앤’(옥타비아 스펜서)과 조우하게 된다. 처음에는 ‘매기’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던 ‘수 앤’이지만
‘매기’의 친구 ‘앤디’(코리 포겔매니스)의 얼굴을 보자 돌변한 듯 마음을 바꾸고,
심지어 ‘매기’와 친구들이 안전하게 놀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지하실을 빌려주기까지 한다. 아낌없이 친절을 베푸는 ‘수 앤’에게 마음을 연 ‘매기’와 친구들은
그녀를 ‘마(이모)’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가까워지지만,
점차 아이들과의 관계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수 앤’에게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
<마> synopsis포스터부터 강렬함이 느껴지는 영화 <마>는 옥타비아 스펜서 주연의 공포/스릴러 영화입니다. 2019년도 북미에서 개봉하여 핫한 반응을 이끌었지만,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국내 개봉은 아쉽게도 하지 않았는데요. '호러 공장'이라고 불리는 블룸 하우스에서 제작한 영화인 만큼, 스릴러 공포영화를 즐기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2. 폭스 캐처 Foxcatcher (2014) - 베넷 밀러
2021.05.30 종료 예정
"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금메달리스트이자 국민적 영웅인 친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의 후광에 가려 변변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국 굴지 재벌가의 상속인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자신의 레슬링 팀, ‘폭스 캐처’에 합류해 달라고 제안한다. 선수로서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한 마크는 생애 처음으로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폭스캐처 팀에 합류하고 존 듀폰을 코치이자 아버지처럼 따르며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기이한 성격을 지닌 존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둘 사이에는 점차 균열이 생기고 존이 마크의 형인 데이브를 폭스캐처의 코치로 새롭게 초청하면서 세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폭스캐처> synopsis2014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베넷 밀러의 영화 <폭스캐처>는 미국에 실제 있었던 '존 듀폰 살인 사건'을 다룬 드라마/스릴러 영화입니다. 감독 특유의 캐릭터 분석/관찰 능력과, 스티브 카렐, 채닝 테이텀, 그리고 마크 러팔로 세 배우의 연기력이 더해지며 [명작]이라는 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영화 <폭스캐처> 추천드립니다.
3. 미트 페어런츠 Meet the Parents (2000) - 제이 로치
2021.05.31 종료 예정
" 남자 간호사 그렉 포커(벤 스틸러 분)는 애인인 팜(테리 폴로 분)에게 프러포즈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마음을 전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 프로포즈는 수포로 돌아가는데, 그 전화는 바로 팜의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그렉은 팜과의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무서운 아버지 잭 바이런(로버트 드니로 분)에게 승낙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 승낙을 팜의 여동생 결혼식 때 참석하여 받을 것이라 다짐하고 그녀의 고향인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 CIA 심리분석가이자 일명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색기'인 잭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
<미트 페어런츠> synopsis영화 <미트 페어런츠>는 로버트 드니로 를 보려다가 영화 관람이 끝나면 결국 벤 스틸러에게 입덕 하게 된다는 영화입니다. 가끔은 머리를 비우고 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죠? 소소한 웃음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 영화 <미트 페어런츠> ,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4.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 스티븐 스필버그
2021.05.31 종료 예정
"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 분)는 이혼한 항만 근로자로 아무런 희망 없이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의 전 부인(미란다 오토 분)은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 분)와 어린 딸 레이첼 (다코타 패닝 분)과 주말을 보내라고 레이에게 맡긴그리곤 얼마 안 있어 강력한 번개가 내리친다. 커다랗고 다리가 셋 달린 정체 불명의 괴물이 땅속 깊은 곳에서 나타나 사람들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다. 레이는 그의 아이들을 이 무자비한 새로운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급히 피난을 떠나, 파괴되고 황폐해진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정에 오른다. 거기서 그들은 침략자들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피난민들을 만나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안전한 곳은 없고, 피난처도 없다. 단지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겠다는 레이의 확고한 의지만 존재 할 뿐인데....."
<우주전쟁> synopsis스티븐 스필버그 + 톰 크루즈 조합으로 흥행 안 할 수가 없는 조합인 영화 <우주전쟁>은 2005년 개봉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SF, 우주, 외계인 이 세 키워드 중 좋아하는 키워드가 하나라도 있다면 영화 <우주전쟁>을 추천들입니다.
5. 잭 리처 Jack Reacher (2012) - 크리스토퍼 맥쿼리
2021.05.31 종료 예정
" 현장의 모든 증거들이 한 남자를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는 자백을 거부한 채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메모만을 남긴다.
전직 군 수사관 출신이지만 실제 정체를 아는 이는 누구도 없는 의문의 남자 ‘잭 리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는 모든 정황이 완벽해 보이는 사건에 의문을 품고
홀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나서는데…!
법의 한계를 넘어선 자, ‘잭 리처’
이제 그의 심판이 시작된다! "
<잭 리처> synopsis톰 크루즈의 액션 영화 <잭 리처>는 액션 영화입니다. <미션 임파서블>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맡은 영화로, 원작 소설 '원샷'의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관객들에게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액션'을 주로 홍보했던 거에 비해, 막상 영화는 액션보다는 추리극에 가깝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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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고 울게 만드는 <기적>의 세 가지 특이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찻길은 있어도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서 아버지 ‘태윤(이성민)', 누나 ‘보경(이수경)'과 함께 살아가는 ‘준경(박정민)'. 누나와 함께 마을에 남아 왕복 5시간 통학길을 감수하며 지내는 그는 마을에 간이역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청와대에 계속해서 보낸다. 이러한 준경에게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는 그의 편지 쓰기를 돕기 시작하고, 준경의 편지에 지금보다 더 큰 힘이 실리도록 장학퀴즈나 대통령 배 수학경시대회에 응시할 기회도 마련해준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던 찰나에 준경에게는 따뜻한 기적이 찾아온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 <기적>은 추석 시즌 영화답게 웃음과 눈물, 감동과 풋풋한 로맨스까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준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가 결코 가볍지 않은 가운데, 두 주인공의 로맨스처럼 결이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대목은 서로 다른 두 영화를 이어 붙인 듯한 어색함도 자아낸다. 이처럼 종합 선물세트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어색한 친척 같기도 한 <기적>의 인상은 작중 빛나는 세 가지 특이점, 터널, 기적, 그리고 반딧불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기적>의 전반부를 놓고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엉성하다고 볼만한 순간이 적지 않다. 마을 주민들의 불편함은 이해가 되지만, 준경의 동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다 보니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간이역에 대한 그의 집착은 공감을 일으키지 못한다. 불도저처럼 직선적인 라희와 소심한 준경의 티키타카도 풋풋한 싱그러움과는 별개로 억지스럽다. 우연적인 만남으로 시작해 우정을 빙자한 로맨스는 간이역 설립을 위한 준경의 편지 쓰기를 라희가 도우면서 진행되는데, 애초에 준경의 동기나 목적이 와닿지를 않으니 그 과정이 지나치게 들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보는 중에는 위의 내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엄연히 픽션 영화인만큼, 기본적으로 <기적>의 매력은 동화적 판타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장훈 감독은 시작과 동시에 본인의 전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처럼 영화의 배경을 현실이 아닌 동화로 옮겨 놓는다. 예상치 못하게 터널에서 튀어나오는 화물 열차를 피하는 찰나에 준경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은 우진(소지섭)이 사별한 연인 수아(손예진)를 터널에서 다시 만나는 데서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터널이라는 존재가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처럼 흔히 특정한 시점 이전의 세상과 그 이후의 세상을 나누는 분기점처럼 활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한 편의 판타지를 그려내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덕분에 다소 엉성하고 어색할 법한 장면이나 설정도 오히려 동화적인 분위기를 살려주는 포인트가 된다.
이렇게 <기적>이 그려내는 동화적인 판타지는 보경과 관련된 부자의 가슴 아픈 과거사가 등장하는 중반부터 반전과 신파의 힘을 극대화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관객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는 오프닝에 가려져 있던 현실을 일깨우고 과거의 사연을 뒤늦게 털어놓으며 의문을 해소시키고, 역으로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면서 가족의 비극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개 역시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같은 전략이 다시 한번 적중한 결과 기꺼이 눈물을 흘리고 싶은 신파가 완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신파에서 제목인 '기적'의 중의성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선 영화 제목은 기적(miracle)을 뜻하며,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간이역을 기어코 만든 준경의 사연은 분명 기적이라고 부를 법하다. 그런데 단지 그것만이 기적은 아니다. 영화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지 못하는 같은 문제점을 공유하는 두 남자가 과거의 비극을 극복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준경은 도로조차 없는 시골 구석에서 무려 NASA에 장학생으로 유학 갈 기회를 잡지만, 과거의 아픔 때문에 집을 떠나는 것을 망설인다. 아들의 상처를 공유하는 아빠 태윤은 준경에게 자신의 아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들을 따뜻하게 대하지 않으며, 결국 고민에 휩싸인 그를 돕지 못한다. 이때 영화는 두 부자가 결코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장애물을 끝내 넘어서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붙잡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마침내 완공된 간이역에 첫 기차가 들어서는 순간과 일치시킨다. 기차의 기적 소리(whistle)가 온 마음이 흉터로 가득한 가족에게 기적(miracle)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서로 다른 기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결국에는 하나임을 표현하는 장치로 기적의 중의성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다만 터널에서 시작된 웃음이 기차의 기적 소리에 뒤따르는 눈물로 귀결되는 전개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매력과 별개로, 복고적이고 회귀적인 이 눈물이 다소 때늦은 도착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기적>의 플롯을 지탱하는 핵심 감정선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누나 보경을 향한 준경의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아빠인 태윤의 회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중 가족 이야기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동생들을 돌보기로 결심한 보경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에 대한 헌사라고 볼 여지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류의 이야기가 이미 숱하게 소비되었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6~8년에서 30여 년이 지나버렸기 때문에 영화가 보편적인 감성과 익숙함 사이의 경계에서 줄을 타는 듯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담백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자연스레 남는다.
또한 보경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에 대한 헌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보경과 같은 캐릭터를 반복하는 데서 그치기 때문이다. 당장 라희만 하더라도 그녀는 스스로를 준경의 뮤즈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예술의 원천 그 자체이자 예술가에게 영감을 심어주는 능동적 여신이었던 뮤즈의 본래 의미와 달리 그녀의 역할은 그저 준경을 뒷바라지하고 기다리는 선에서 제한된다. 라희라는 캐릭터 자체는 적극적인데, 정작 그 캐릭터가 활동할 수 있는 판을 못 깔아주기에 새로운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판타지라는 고립된 배경에서 안전하게 추억을 되살리는 것에 그친 결과 영화의 로맨스는 준경과 라희가 반딧불이를 만나는 장면의 연출처럼 판에 박은 듯 몰개성적이다.
다행히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이고, 또 다르게 보면 부정적인 <기적>의 특이점들은 배우들의 역량 아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성민이 선보이는 가슴 절절한 부성애 연기는 명불허전이고, 박정민 역시 과거의 아픔부터 현재의 망설임과 고뇌에 이르는 복합적인 감정선을 유려하게 표현해내면서 극을 장악한다. 임윤아 역시 <엑시트>나 <공조>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캐릭터를 맡아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이수경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중반부의 반전이 가져다줄 수 있는 감동이 반 이상 줄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큰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안정적인 앙상블 덕분에라도 <기적>이라는 기차는 최소한의 목표로 삼았던 간이역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동화 속 눈물과 감동에 배우들의 앙상블이 만나면 무방비로 설득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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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약한 연민이 이어지는 밤
나는 항상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철없는 나를 보듬어 주고,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런 어른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내가 (사회적인) 어른이 된 후였다.
나는 타인의 못남을 어루만지지도,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그저 그냥 그런 어른으로 자라났다. 아직도 나를 돌보기에도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타인을 위한 마음을 내는 것은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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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슬립, 2023> 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배우상을 수상한 독립영화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길호(최준우)와 기영(김영성)이 서로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캐릭터에,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새롭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냥 지나가면서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과하지 않은데 따뜻하고, 얕은 것만 같은데 묘하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담배와 식물
처음으로 피식거렸던 장면은 기영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면서 식물들에 물을 주는 씬이었다. 이 장면 하나로 별다른 설명 없이도 기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한 핑크색 슬리퍼를 대충 구겨 신고, 앞에서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물을 챙겨주는 사람이라니.
어머니가 남겨준 식물들이 죽지 않도록 정성껏 돌봐주는 행위 그 어디에도 진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잘 자라길 바란다거나, 어느 식물은 어떤 주기로 물을 주어야 한다거나 그런 깊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그게 다다. 그냥 거기에 식물이 있으니까, 할 만큼 한다. 기본적으로 기영은 생명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길호에게 식물에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줄 때는 뿌듯해 보이기까지도 한다.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기영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안 느꼈을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가 알려주고자 한 것은 물을 주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사소한 부채감과 비슷한 어떤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주는 대상이 꽃에서 길호로 옮겨간 것은 기영의 성장과도 맥락이 이어진다.
#2. 야, 일어나봐
집 앞 평상에 자는 (누가 봐도) 가출 청소년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굳이 타인과 엮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기영은 그냥 '일어나'라는 말로 길호를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 그냥 으레 그렇듯이 잔소리만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기영이 아마 길호에게 1mm의 마음의 틈을 열게 된 건 길호가 기영이 시킨 대로 평상의 쓰레기를 싹 치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말을 따르는 구석이 있는 아이들은 티가 난다.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어딘가 보살펴 주고 싶은 구석이 보인다.
기영은 본가에서 반찬을 얻어오던 날 길호를 집으로 초대한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기영의 본가에는 '아줌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기영은 꼬박꼬박 아줌마라고 부르면서도 겉옷을 사 입으라며 돈뭉치를 억지로 쥐어주고, 아줌마는 도망치다가도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별다른 부연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런 평범한 가족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런.
순간적인 연민이 불쑥 커진 그날 밤부터, 기영은 길호를 조금씩 돌보기 시작한다. 마른 흙에 물을 주듯, 서툴고 천천히 양육이 시작된다.
하지만 당연히 양육은 쉽지 않다. 길호는 기영이 집을 비운 날 친구들에게 휩쓸려 집에 패거리들을 재우고 만다. 이 상황에서 길호가 잘못한 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기영이 혼자 집을 비운 것부터 부주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또 기영도 서투른 어른일 뿐이니까. 아버지의 똥을 열심히 닦고 와보니 또 길호가 똥을 싸놨다. 기영은 남의 똥을 치우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닌데, 자꾸 주위 사람들이 똥만 싼다.
#3. 머리 위의 랜턴
영화를 보면서 랜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길호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도둑질을 할 때나, 어두운 굴다리를 걸어갈 때 주로 랜턴을 끼고 나오는데, 마치 길호의 시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랜턴이 있으면 눈 바로 앞은 밝게 잘 보인다. 내가 보고자 하는 건 잘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시야는 막상 가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어딜 봐야 하는지 당최 파악을 할 수는 없다. 길호도 마찬가지다. 길호의 눈앞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잘 곳, 먹을 것, 그리고 있을 곳이다. (잘 곳과 있어야 하는 곳은 다르다)
하지만 길호는 랜턴을 벗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진 아이다. 나쁜 일이란 걸 알고 있고, 벗어나고도 싶지만 랜턴을 벗으면 어둠뿐인 것을 알기에 벗지 못한다. 당장 먹고 자기 위해서라도 랜턴을 껴야만 했다, 기영을 만나기 전까지는.
기영은 길호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집도 기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라면도 있고 TV도 있고, 서로 결혼을 못 할거라는 사소한 악담도 나눈다. 마지막에 길호가 기영을 찾아가면서 친구들과 반대로 걷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고 좋았다. 드디어 길호는 랜턴을 본인이 정말로 가야 하는 길을 찾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길호가 랜턴이 필요 없는 일상을 보내기를 바란다.
#4. 연민의 확장
기영은 길호랑 지내는 기간 동안 직장에서도 한층 밝아진 모습을 보인다. 우는 모습도 못 본 척하며 무관심하던 기영은 어느새 초은(이랑서)과 조금씩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집에 데려다준다는 전에 없던 다정한 태도도 드러낸다.
참 조그맣던 기영의 세계는 본인도 모르게 길호로 인해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진다. 아마 길호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길호를 내쫓은 후 기영이 일하는 모습이 첫 장면과 비슷하게 나오는데, 지게차를 모는 장면은 같은 장면을 두 번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라 보였다. 원래 사람은 잃어봐야 그게 마음에 있던 거라는 것을 알아챈다고, 사실 예전 일상과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영은 많이 허전하고 공허했을 것이 분명하다. 같이 돌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 호수가 기영과 길호의 마음이라는 건 스크린에서 본 나도 알겠으니까. 던진 돌은 결코 다시 안 던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5. 빅슬립
기영은 길호에게 '불쌍한 척 하지마, 그럼 진짜 불쌍해지는 거야'라며 충고한다. 기영은 스스로를 불쌍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에 타협하지도, 반항하지도 않는 적당한 사람. 여러 사회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관객이 보기에도 그는 불쌍하지 않다. 그냥 하루를 적당히 잘 보내고, 할 만큼 하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사람.
영화는 매우 남성적이다. 영화 보는 내내 여자 두 명의 이야기였으면 갈등부터 해결까지 단 하루밖에 안 걸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소통이 불가한 캐릭터 두 명을 갖다놓으니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초은이 등장해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할 때는 마치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과 꽤 높은 수준의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력이 놀라웠다.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 몰입도를 끌어낼 수 있는 건 독립영화에서 약간 과장해서 8할은 배우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역 배우가 나온다면 연기력에 대한 기대는 사실 반쯤 내려놓고 보는 편인데, <빅슬립>의 두 배우 모두 캐릭터 그 자체로의 모습이어서 연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어디에 나온다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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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불쌍해하지 않으면서 대가 없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을까.
내가 받았었던 약한 연민들의 순간, 그리고 그 찰나들이 지탱해 준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은 잠을 청해봐야겠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 시사회에 참석하여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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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초콜릿을 한입 문 것 처럼 행복한 기분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는 남녀가 우연히 만나 호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 때문이거나, 혹은 작은 사고가 생기거나 하는 사소하거나 혹은 크나큰 오해와 위기를 맞이하지만, 결국은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는 것.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라는 한 문장의 자음과 모음 사이에 수 많은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것을 아는 나이지만, 그래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슬픈 로맨스나 쿨하게 열린 결말보다는 꽉닫힌 해피엔딩이 좋다. 달콤한 초콜릿을 입안 가득 만족스럽게 먹은 것 처럼 행복해지는 기분.
주기적으로 이 행복함을 채워주는 것은 ‘노팅힐’이다. 런던 노팅 힐이라는 마을에서 작은 여행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이혼남 ‘윌리엄 태커’ 어느 날 세계적인 스타 ’애나 스콧’이 다녀간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이 엄청난 일에 당황하던 그는 주스를 사러 다녀오다가 그녀와 다시 한번 마주치는데 들고 있던 오렌지 주스를 그녀에게 쏟고 만다. 그리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16.5m앞에 있는 파란 대문의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는데,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떠나기 전에 갑작스럽게 그에게 키스를 하고, 그는 이 일을 내내 떠올린다. 며칠 뒤 애나는 윌리엄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와달라고 하고, 윌리엄은 ‘승마와 애견’의 기자인것처럼 인터뷰를 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며 호감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날 밤 여동생 생일파티에 참석하는데, 윌리엄의 친구들과 평범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파티 이후 둘은 더욱 가까워지고 공원도 함께 산책하고 데이트를 하고 호텔에 올라가게 되는데 미국인 남자친구가 와 있다. 룸서비스직원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숨기도 돌아오는 윌리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녀를 잊지 못하는 윌리엄.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애너의 누드사진이 공개되고, 애너가 윌리엄을 찾아온다. 그리고 가난했던 무명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애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윌리엄을 찾아왔다는데, 윌리엄은 그녀를 배려하며 자신의 집에서 지내자고 한다. 하지만 윌리엄의 룸메이트 스파이크의 실수로 애너의 위치가 알려지고 기자들이 몰려든다. 애너는 배신감에 화를 내고 윌리엄을 떠나 버린다.시간은 흐르고, 애너와 윌리엄은 오해가 쌓이고, 설레는 감정이 서로에게 닿을 듯 닿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애너의 기자회견, 윌리엄은 다시 한번 기자인척 그녀에게 질문을 가장한 사랑고백을 하고,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둘은 한 기자가 던진 ‘영국에 얼마나 더 머무를 예정인가요?’ 라는 질문에 ‘영원히’ 라고 답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열애설의 현장으로 바뀌고, 둘은 마침내 결혼하고, 몇 개월뒤 공원벤치에서 임신하여 윌리엄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 애너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결말.
슈퍼스타와 서점직원이라는 서로 다른 상황에 갈라지고 멀어지지만, 소년 앞에 사랑을 구하는 소녀일 뿐이라는 애너의 고백처럼, 그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윌리엄이 처음 애너를 만났던 날 했던 말처럼 ‘비현실적인지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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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츠 인 더 무비] ‘아이스크림’ 인 더 무비
- [왓츠 인 더 무비 What’s In the Movie]:영화가 시작되고 들려오는 첫 사운드부터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까지, 당신의 귀와 눈을 자극하며 들어오는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것들은 모두 영화 속에서 저마다의 의미를 갖는다. 지나가는 행인 7의 신발색부터 ‘인셉션’의 팽이까지, 영화 속 요소가 얼마나 사소한지, 혹은 얼마나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각의 대상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토대로 작품을 바라볼 건지는 전적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달렸다. [왓츠 인 더 무비]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을 생각해 보고, 의미를 느껴본다.4월의 오락가락한 날씨 속 느껴지는 뜨거움, 벌써부터 올 한 해도 유독 뜨거운 여름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흔히 우리는 ‘여름을 이겨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사실 여름이 이겨내고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해수욕장과 계곡에서의 물놀이부터, 야구와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대회들까지 여름은 즐길 것 천지다. 물론 삼계탕과 냉면, 수박 등 과일들까지 다양한 여름 먹거리도 빠질 수 없는데, 이러한 여름의 먹거리들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아이스크림’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입만으로 여름의 더위를 가시게 하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우리 일상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에도 특별한 의미와 함께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극의 상황을 이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대신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번 [왓츠 인 더 무비]에서는 아이스크림이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소개한다. 지금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아이스크림처럼 차갑지만, 달콤한 영화의 세계에 빠져보자.<로마의 휴일>“함께였기에 더욱 자유로웠던”감독 : 윌리엄 와일러출연진 :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 에디 알버트, 마가렛 로우링스아이스크림과 영화, 이 두 가지의 단어를 놓고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로마의 휴일’이다. 특히 극 중에서 ‘앤’ 공주 역할을 한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는 장면은 아이스크림과 관련된 영화 장면 중에서 제일 유명할 뿐만 아니라, 장면 자체도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오드리 헵번이 먹는 젤라토는 아이스크림이 아니지만 말이다.‘앤’ 공주는 유럽의 여러 국가를 순방하게 된다. 그러나 공주로서의 너무나 가혹한 스케줄로 그녀는 결국 일탈을 시도한다. 숙소를 몰래 빠져나간 앤 공주는 그날 밤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 그는 그녀의 신분이 공주인 줄 몰랐기에 그녀를 잠깐 재워주고 보내주려 한다. 그러나 기자였던 조 브래들리는 신문에 나온 사진으로 앤이 공주인 것을 알게 된다. 조 브래들리는 앤을 통해 특종을 잡기로 하고, 집에 있던 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보내주는 척을 한 후 그녀를 미행한다. 작별 인사를 마친 앤 공주는 대사관으로 바로 가지 않고 로마의 일상을 즐기는데, 그러던 중 신발을 사고 머리도 자른 뒤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게 된다. 젤라토를 먹는 앤을 보고 타이밍을 잡 은 조 브래들리는 우연을 가장해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다.“잊지 못할 달콤함은 녹아버리고”이 장면에서 바로 앤 공주가 조 브래들리 곁에서 젤라토를 먹는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젤라토는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주체성을 상징한다. 앤은 한 나라의 공주로 극진한 대접을 받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완벽한 모습을 강요받는 새장 안에 갇힌 새와 같은 신분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본인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타국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소해 보이지만 공주로서가 아닌 한 손님으로서 자신이 직접 값을 지불하고, 사람들 많은 광장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젤라토를 먹는다는 것은 그녀의 처음이자 다시 오지 못할 자유이다. 많은 동화와 연극에서 그러하듯 해당 작품에서도 앤 공주와 조 브래들리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잊지 못할 평생의 추억을 선사한 조 브래들리와의 만남은 쉽게 설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다. 그들의 만남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은 어쩌면 앤의 입안에 아직 남아있던 달콤한 젤라토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포레스트 검프>“목적 없이 아름다운”감독 : 로버트 저메키스출연진 : 톰 행크스, 로빈 라이트, 게리 시니스, 마이클티 윌리엄스남들보다 낮은 지능으로 태어난 포레스트 검프 (톰 행크스). 그는 남들보다 몇 배는 어려운 자신의 환경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한 과정에서 미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겪음과 동시에 자신과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흔히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로 흔히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과 ‘핑퐁외교’, ‘엘비스 프레슬리’와 애플 컴퓨터를 소재로 다루기도 하는 등 미국의 문화를 알기에 좋은 영화로 많이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미국인들의 국민 영화로 치부되기에는 포레스트 검프가 갖는 의미는 넘쳐난다.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게 된 포레스트 검프는 졸업식 때 모병관이 준 지원서에 순진하게 지원하게 되면서 베트남 전쟁까지 참전하게 된다. 전쟁 중에, 검프는 언젠가 함께 새우잡이 배를 하기로 약속한 절친한 친구 ‘버바’를 잃게 된다. 검프는 친구를 잃었지만, 엉덩이에 총까지 맞으며 자신의 상관인 ‘댄 중위’를 구하게 되고, 댄 중위와 그는 군 병원에 함께 입원한다. 군 병원에 검프와 댄 중위를 비롯한 군인들은 원하는 대로 아이스크림을 제공받게 되는데, 검프는 이에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검프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 있던 점이 엉덩이에 총을 맞아 좋았던 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순진무구한 검프와 별개로 검프의 옆자리에 있던 댄 중위는 검프가 준 아이스크림을 바로 변기에 버려버린다. 그 이유는 그의 두 다리가 절단되었기 때문이다.“달진 않지만, 마냥 쓰지도 않은”이처럼 포레스트 검프에서 아이스크림은 검프의 순수함, 그에 대조되는 댄 중위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친구를 잃고 자신도 부상당한 비참한 상황에서 도 아이스크림 하나로도 즐거워하는 모습은 현실적인 댄 중위와의 극명한 차이를 이룬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스크림으로 대표되는 검프의 따뜻함이 결국 댄 중위의 마음을 녹이게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위로를 위해 검프가 댄 중위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는 위로의 정서로 작용해 댄 중위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에 댄 중위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버리긴 해도 댄 중위는 매춘부들이 검프를 괴롭힐 때 검프의 편을 드는가 하면 나중에는 검프를 믿고 새우잡이배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마침내 댄 중위는 세상과 화해한다. 비극적 상황에서 건넨 검프의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결국 못 먹을 정도로 썼던 누군가의 농도를 조금이나마 희석해 준 것이다.<헤어질 결심>“온전히 끌려가기에 사랑인가?”감독 : 박찬욱출연진 :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박용우부산에서 모범적 형사로 근무 중인 해준 (박해일)은 남편의 살해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른 서래 (탕웨이)를 만난다. 해준은 서래에게 용의자에게는 느낄 수도, 느껴서도 안 되는 감정을 갖게 된다. 서래 또한 그러한 해준의 태도를 이용하는가 하면, 그녀 역시 해준 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 서래에게만 유독 관대한 태도의 해준은 그녀의 알리바이와 증언을 받아들이며 그녀에 대한 의심을 없애게 된다. 그와 동시에 해준은 며칠동안 서래의 집을 몰래 보며 그녀를 관찰한다. 그러던 중 서래가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알게 된다. 해준은 본인만이 서래를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래 역시 해준을 관찰하고 있으며 자신이 해준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상황 또한 알고 있다.“맛보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마침내”작중에서 아이스크림의 의미는 해준을 향한 서래의 유혹이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 이끌리고 있으며, 사랑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 역시 품위있는 그에게 이끌리고 있다. 그러한 해준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래는 해준의 욕망을 자극한다.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서래의 모습은 검거를 마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해준과 대치된다. 그와 동시에 서래의 입이 천천히 부각된다. 이는 해준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서래의 태도와 그녀에게 해준이 빠져들게 됨을 보여준다. 해준은 부인 정안 (이정현)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에 있어서 어딘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관심과 사랑의 대상인 서래를 대하는 태도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이다.서래의 아이스크림은 유혹의 상징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동정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한 끼 한 끼 먹는 것에 있어서 진심인 해준과 달리 매번 아이스크림으로 식사를 마치고 담배마저 태우는 서래의 모습은 그녀에 대한 해준의 동정심을 끌어낸다. 또한 해준과 서래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준다. 잠을 못 자는 해준에게는 서래가 잠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는 서래에게는 해준이 식사를 제공한다. 이처럼 서래가 자신이 필요한 것과, 또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드러내는 이유는 그녀가 해준을 필요로 하고 해준 역시 그녀가 필요할 것을 알고 있어서이다.서래의 아이스크림은 녹아있다. 서래는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굳이 치우지 않고 방치한다. 차갑고 딱딱한 아이스크림이 흐물흐물한 액체가 되어 뚝뚝 흐르는 장면은 고고하고 품위 있던 형사 해준이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버려 흔들린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래의 대사에 나오는 ‘아무 생각도 못 하고 바다 밑으로 점점 내려가는 해파리’처럼 말이다. 결국 헤어지기 위해 결심까지 필요했던 그들의 사랑은 붕괴된다. 미제사건처럼 영원히 남자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던 여자의 말은 아마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다시 얼려보아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기에.<플로리다 프로젝트>“디즈니월드 반대편 또 다른 천국”감독 : 션 베이커출연진 : 윌렘 데포, 브루클린 피니스, 브리아 비나이테, 발레리아 코토천진난만한 미소의 세 아이 뒤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들이 사는 곳은 플로리다주의 올란도이다. 6살의 무니 (브루클린 피니스)는 매직캐슬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엄마 핼리 (브리아 비나이테)와 살고 있다. 매직캐슬이라는 이름도 근처 올란도 디즈니월드에서 따왔을 정도로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월드와 그들의 집은 가깝다. 그러나 언제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디즈니월드의 반대쪽에 거주하는 그들은 매주 방세를 내며 간간히 살아간다. 핼리 역시 미혼모로 향수를 팔거나 성매매로 돈을 벌어 무니와 살고 있다. 무니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항상 쾌활하고 즐겁다. 모텔의 전기를 끊어 버리거나 집에 불을 내기도 하고, 때때로는 관광객들에게 구걸해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도 한다.“하나의 아이스크림도 행복을”영화 속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하니 무엇이든 즐거운지, 구걸로 번 돈으로 산 아이스크림콘을 세명이서 나눠먹는 아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무언가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어른들이 울 것 같으면 자신은 바로 안다’는 무니의 말은 아이들의 순수해 보이는 모습이 결코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어른스럽다라는 말 자체를 부끄럽게 한다. 더운 날씨 탓에 금방 녹은 아이스크림은 빨리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뛰어다니며 한입씩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녹아버려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처럼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그들의 삶은 어쩌면 작지만 황홀한 한 입처럼 누군가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즐겁고 가치 있을 것이다.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악역은 없다. 성매매를 하며 싸구려 향수를 판다고, 무책임하고 불법적으로 보이는 헬리는 조금 자유로울 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무니와 함께 살아간다. 무니 역시 가족, 친구와 함께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에 무니를 보호하기 위해 위탁 가정에 보내려는 아동 보호국이 오히려 악역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1967년 디즈니 월드의 건설 초기 프로젝트를 의미하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든, 집 없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말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든 어떤 대상도 누군가에게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고 의미를 갖는다. 필요 없게 여겨지는 작은 동전 하나 하나가 모여 최고의 아이스크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8월의 크리스마스>“여름보다 뜨거웠던 사진의 온기”감독 : 허진호출연진 : 한석규, 심은하, 신구, 이한위무더운 여름날 정원 (한석규)는 땀을 흘리며 사진관으로 들어온다. 사진관에서 기다리는 주차단속원 다림 (심은하)은 그런 정원에게 사진을 뽑아달라 닦달한다. 정원은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직후였다. 다음에 오라고 정원은 약간은 짜증을 내지만, 그러한 짜증이 못내 미안했는지 다림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투의 정원에게 다림은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들은 가까워진다. 정원과 다림은 다른 연인들처럼 대놓고 애정 표현을 하지도, 사랑을 입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달리기를 하고, 산책하면서 그들의 말과 표정은 사랑을 전한다.
“한 순간의 달콤했던”“지난 20년간 한국 멜로는 결국 허진호였다”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오글거리는 사랑 노래 없이도 뛰어난 연출 덕에 영화의 정서는 온전히 느껴진다. 이러한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영화에는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 내내 정원과 다림 곁에 함께 등장한 것은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바 아이스크림, 컵 아이스크림, 콘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아이스크림들이 영화 속에서 역할을 한다. 시한부라는 비참한 삶과 현실에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었던 다림을 먼저 신경 쓴 정원, 그가 건넨 미안함과 선함이 담긴 아이스크림 바 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쑥스럽게 건넨 정원과 그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주는 다림. 그렇게 둘의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된다.존대하던 사이에서 반말을 하고 함께 스쿠터를 탈 정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장남이었었던 정원과 오 남매였던 다림은 가족 이야기를 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다.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사랑함을 보여줄 뿐 아니라 둘의 더욱 가까워진 사이를 암시한다. 다림과 정원은 다림이 퇴근한 후 술을 마시기로 하는데, 왠지 모르게 그날 다림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후 화장을 한 다림은 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오는데 이번엔 정원의 아이스크림도 거절하고 함께 술을 마신다. 사소한 대화를 나누던 중 다림은 ‘서울랜드’에서 일하는 친구 덕분에 언제든지 가면 공짜 표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녀의 마음은 눈치챈 정원은 웃는다.서울랜드에 놀러 가 벤치에 앉은 그들은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 딱 붙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저번과 달리 둘의 거리는 마치 한 사람의 자리만큼 벌어져 있다. 이러한 거리를 의식한 터일지 다림은 먼저 다가가 거리를 좁히는데, 정원은 그저 웃음만 보인다. 마지막 아이스크림은 그들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날에 먹은 아이스크림이다. 정원의 상황을 모르기에 다가가는 다림과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정원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슴 아픈 장면이다.놀이공원 데이트를 마치고 목욕탕에 갔다가 산책까지 하면서 알차게 하루는 끝나지만, 결국 정원이 쓰러지고 입원하면서 그 둘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영화는 정원의 웃는 영정사진과, 자신의 사진이 걸린 사진관을 보며 웃는 다림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결국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한순간이었던 다림과 정원의 사랑은 끝이 났지만 너무나 달콤했던 여름날의 사랑은 그들에게 남아있을 것이다.“영화와 아이스크림”차갑지만 따뜻하며, 딱딱하지만 부드러웠던, 녹아서 사라지기에 더욱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영화의 가치는 공유된다. 자유부터 사랑까지,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가 주는 남다른 의미는 어떤 대상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아이스크림의 의미를 중심으로 다섯 가지 영화를 함께 살펴보았다. 이러한 의미를 조금은 생각해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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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이트 리뷰 - 구담을 비틀어 뒤틀린 판타지를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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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8월 5일 개봉한 작품 ‘그린 나이트’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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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가일> 1차 예고편
장르: 판타지 스파이 스릴러 출연: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샘 록웰, 헨리 카빌, 존 시나, 두아 리파, 브라이언 크랜스톤, 소피아 부텔라, 아리아나 데보스, 캐서린 오하라, 사무엘 L. 잭슨 각본: 제이슨 푸치스 감독: 매튜 본 위대한 스파이일수록 더 큰 거짓말을 한다. [킹스맨], [킥 애스] 매튜 본 감독의 신작 [아가일]은 다시 한 번 스파이 액션 영화를 정립할 것 입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베스트셀러 스파이 소설 작가 ‘엘리 콘웨이’ 역을 맡았습니다. 집에서 컴퓨터, 고양이 '앨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내향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속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소설 속 비밀 요원 ‘아가일’이 세계적인 스파이 조직의 비밀에 근접하게 되고, 그녀의 소설이 현실 세계에서 동일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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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1차 예고편
"우린 네가 그리웠어...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