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8-22 12:11:44
위만 바라보다가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사람들과 이 영화.
영화 <놉>리뷰
미지의 물체도 길들일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은 각기 다른 형태로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의 오만은 목숨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게 되고 그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빨려들어 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어떤 것은 살아있음에도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는 느낌으로 나아가며 공포에 갇혔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망가뜨려야만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인해 앞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가려지며 우리가 어떤 것에 주목하고 있었는지 망각하게 만든다. 나쁜 기적의 경계에서 조차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 속, 내가 보인다.
카메라에 의해 벌어지는 ‘관심’에 대한 시선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 진다. 벗어날 수 없는 시선은 어떤 이에게는 폭력의 수단이 되어버렸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 각자 다른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에서 멈추지 않는 욕망은 인간을 압도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면서 문제가 생기고 만다. 심지어 그 공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관객조차도 OJ의 생사여부보다 미지의 물체가 사진에 담겼는지에 대한 생기게 하며 바뀌지 않는 현실이 영화를 넘어 현실로 밀려들어온다. 소외된 이에서 소외된 이들을 주목하는 이질적인 요소들도. 해석해야 하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난해하고 무언가에 갇힌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의미 부여를 해야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이미 지루해져버린 서사를 살리기에는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여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게 했다. 특히 공포 영화로서 기대했던 부분들보다 ‘놉’에서 돋보이는 여러 설정들은 전작에서 보여준 것보다 덜 무서워서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는 조던 필 감독의 ‘놉’은 나에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게 만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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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 1주 최신 개봉영화!
경관의 피 The Policeman's Lineage , 2021
조진웅과 최우식의 만남!
영화 "경관의 피"는 위법 수사도 개의치 않는 광수대 에이스 강윤과 그를 감시하게 된 언더커버 신입경찰 민재의 위험한 추적을 그린 범죄수사물 입니다.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두 경찰이 새로운 수사에 투입되며 신선한 팀워크와 긴장감 넘치는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경관의 피"는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 조진웅과, 새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일 배우 최우식의 신선한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수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
그리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경찰 민재(최우식)!
두 경찰의 색다른 팀워크!
첫번째 추천영화 "경관의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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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2게더 Sing 2 , 2021
씽의 후속작 씽2게더
'씽'의 후속작 "씽2게더"가 개봉을 하는데요
애니메이션 "씽2게더"는 오디션 그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쇼 스테이지에 오르기 위한 크루들의 고군분투 도전기를 그렸습니다.
'씽'을 통해 연기력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래 실력까지 인정받은 매튜 맥커너히, 스칼렛 요한슨, 태런 에저튼, 리즈 위더스푼, 토리 켈리 등
글로벌 흥행 스타들이 '씽2게더'로 완전체 컴백할 것을 예고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또한 대한민국 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영과 윤도현이 활약을 합니다
진영은 춤이 두려운 가수 조니 역할을 맡고 YB의 보컬 윤도현은 클레이역을 맡아 열연을 펼칩니다.
콜드플레이,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아델, 숀 멘데스, 카밀라 카베요 그리고
BTS까지 글로벌 가수들의 히트곡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
두번째 추천영화 "씽2게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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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 海灘的一天 , That Day, On The Beach , 1983
39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하는 거장의 빛나는 데뷔작!
대만 뉴웨이브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데뷔작 "해탄적일천"이 39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합니다다.
영화 "해탄적일천"은 어느 날 해변에서 남편의 실종 소식을 들은 ‘자리’와 13년 만에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웨이칭’,
두 사람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시간을 그린 영화입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데뷔작부터 걸출한 실력을 인정받아 제28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촬영상 수상, 제20회 금마장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노미네이트 등
내로라하는 아시아 영화제를 섭렵하며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내 대만을 대표하는 거장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시대적으로 앞선 중화권 여성 서사 담은 스토리
세번째 추천영화 "해탄적일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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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피아니스트 fausse note , Broken Keys , 2020
제73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새해 첫 감동 실화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는 레바논 출신 지미 케이루즈 감독이 2016년에 제작한 단편영화 '녹턴 인 블랙'을 장편화한 작품입니다.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가 된 시리아를 떠나기 위해 마지막 희망인 피아노를 구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 카림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실화 바탕으로 한 전쟁 드라마죠
제73회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과 음악상 부문에서 레바논 공식 후보로 선정되어 그 작품성을 입증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다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IS의 근거지이자 이라크와 IS의 최대 격전지였던 이라크 모술과 레바논을 오가며 촬영되었고
레바논에서는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베이루트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촬영이 중단되었으며,
스케줄을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위태롭게 가로지르는 피아니스트 카림의 긴박감 넘치는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
네번째 추천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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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 One Shot , 2021
95분 원테이크의 리얼타임 액션
영화 "원샷"은 예고된 테러의 배후를 아는 놈을 이송하기 위해,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들이 수감된 일급비밀의 섬에 도착한 네이비 씰과 놈을 탈옥시키려는 테러단과의 실시간 대결을 그린 원테이크의 리얼타임 액션 영화입니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실시간 탈출을 그린 '원샷'은 미국 워싱턴을 위협하는 테러 정보를 입수한 CIA 정보 분석가와
네이비 씰이 검은 섬이라 불리는 테러리스트들의 수용소에 들어간 뒤 거대한 사건과 마주하면서 펼쳐지는
실시간 탈출이라는 독특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액션 영화의 새로원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리얼한 탈출기를 그려내며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원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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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그때의 힘
실패의 느낌을 나는 통각으로 기억한다. 무언가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덜컥 접할 때,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라든지 실연당했을 때라든지 뭐 그런 때. 몸인지 마음인지 알 수 없는 어딘가 갑자기 주사기가 꽂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부터 아릿하게 통증이 퍼지고 눈물이 고이는 그 기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겠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그런 느낌이 있다. 실패감과 자괴감, 무력감과 절망감이 몸을 뒤덮는 아픔.
그리고 그게 두렵기 때문에 때로는 올인해야 하는 순간에 주춤거리게 되기도 한다. 있는 힘껏 몸을 던져야만 공중그네를 탈 수 있는데 떨어질까 두려워서 몸이 빳빳하게 굳는다. 다음 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순간의 아찔함이 자꾸 뇌리를 울려와 뛸 수가 없는 그런 마음.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있는 힘껏 뛰어야 한다. 공중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그 이유는 분명 그 두려움이니까. 그러니까 못 할 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될 일도 그르친다고, 그러니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쉽지. 모든 희망의 말에 냉소적이 될 만큼, 나는 계속 그런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있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이 영화가 너에게 많은 힘을 줄 것 같아.
나한테는 그런 영화였거든.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주연 배우는 마리옹 꼬띠아르라 했다. 그럼 시놉시스는? 복직을 앞둔 직원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보너스를 택했고 산드라에게는 이제 돌아갈 자리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작업반장이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된다. 산드라는 16명의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들을 설득해 보려 하고, 주어진 시간은 주말 이틀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deux jours, une nuit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고, 또 다른 제목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이게 논술 문제라고 하면 차라리 뭘 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영화 시놉시스라니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강한' 마리옹 꼬띠아르라면, 아마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꼿꼿한 인물이 투쟁을 하는 모습이 감동적인 그런 영화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내 예측은 무참히 깨졌다. 푸석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가 받은 전화, 전화를 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오븐에서 타르트를 꺼내고 칼로 자르는 그 일상적 허드렛일의 느낌... 거의 도망치다시피 뚝 전화를 끊은 산드라의 얼굴에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보여주는 강인함도 아름다움도 없었다. 다만 실패의 통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얼굴이었다. 억지로 신경안정제를 꾹꾹 눌러 삼키는 건 또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가.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저 표정을 지을 때의 마음과 생각과 얼굴 근육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영화는 단조롭다. 처음에 전화를 걸어주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입장의 사장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함께 내 준 동료도 있고,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산드라의 복직 찬성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해준 동료도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산드라가 주소를 알아내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산드라의 대사는 계속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재투표를 할 거고, 쉽지 않겠지만 날 위해 투표해 주면 좋겠어. 매번 벨을 누르기 전에는 긴장하고, 잘 되면 얼떨떨해하면서도 환한 웃음이나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만 잘 되지 않을 때는 또다시 나락으로 빠진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감정만큼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니 오히려 그간의 노력을 다 수포로 돌리게 될까 봐 두려워서인지 점점 더 괴로워한다.
그만 하고 싶어, 그냥 관둘래,라고 말하며 울기도 여러 번 한다. 심지어 남은 신경안정제를 모두 다 한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산드라는 많이 아팠고, 아프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아직도 건강하지 않다. 희로애락을 가파르게 오고 가야 하는 이 시간, 잘못한 게 없음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조르듯이 부탁해야 하는 이 입장이 산드라에게는 쉽지가 않다.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다 산드라가 주저앉을 때마다 붙잡아 주는 건 그 남편 마누다. 마누는 산드라의 아픔에 같이 한숨 쉬고, 단조로운 몇 마디 말을 건네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산드라가 울면서 그냥 다 관두겠다고 할 때도, 신경안정제를 한번에 먹어 버렸을 때도, 병원에 누운 산드라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마누는 그렇게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산드라가 걱정하는 일들이 마누에게도 큰 걱정거리일 텐데도, 산드라가 신경안정제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산드라를 신경 써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가사가 잘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줄일 만큼 예민하게 신경 쓰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톤을 고요하게 유지한다. 마누는 반짝반짝 웃는 얼굴로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대본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도 않을 단조로운 몇 마디 말만을 한다. 그러나 그 말과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산드라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러나 산드라가 그 힘을 직접적으로 느끼거나 그런 마누가 빛을 발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그냥 산드라는 허덕이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사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엄청난 대형 사건보다 매일 반복되는 것들일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를 그런 일상에서 구원해 주는 것도 그런 사소함이다. 공원에서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 점심 먹고 고르는 커피 한 잔, 뭐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는 매일 비슷비슷한 반찬과 이불 무늬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계속 함께 있는 사람들. 마누는 산드라에게 그런 사람으로 있어 준다.
주변 인물이 마치 게임 속의 성직자처럼 몇 번 힘을 부어주고, 그러면 주인공이 빙의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으랏차차 최종 보스를 무찌르고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구도는 사실 만화 속에나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그런 슈퍼히어로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고, 그러니 이 영화도 구태여 말하지도 강조하지도 않고 슥 담았다.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라고 해서 "1박 2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절망에 빠져 날려버린 한 번의 밤을 제외한 이틀이었다. 산드라는 계속해서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의 상황과 사정도 모두 다르고, 입장도 모두 다르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동료들을 범주화하지 않으려고 공 들인 느낌이 물씬 난다.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 것은 물론이다. 전화로 간단하게 찬성표를 약속한 동료조차도 이름이 카데르라는 걸 몇 번이나 불러준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입장을 말하는 동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료들 중에는 공교롭게도 이혼을 결심한 여자 동료가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지금 생활을 버리고 남자친구와 새 출발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딱 잘라 거절한다. 다른 한 명은 남편이 절대 안 된다고 돈이 빠듯하다며 펄펄 뛰는 걸로도 모자라 산드라에게 뻔뻔하다고 욕하는 걸 두고 그 집을 나와 버린다. 그리고 산드라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하며, 같이 차를 타고 가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클럽에라도 간 것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시원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 음악이 강조되는 부분은 자동차에서 음악을 듣는 두 장면뿐인데, 각각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이민계 동료들도 있다. 부득이하게 둘 다 집을 비운 상황이다. 휴일이라고 쉴 수 없는, 다른 일을 또 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고 그러니 더더욱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에서는 동료의 아내가 집을 비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산드라가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들의 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고는 짤막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나가는 길에 급하게 물을 사던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박스를 나르고 있던 그는 여전히 불편해하면서도 도저히 안 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다른 동료는 축구장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있던 참이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와서는 준비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는 산드라에게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런 투표를 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당연히 네 복직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이야기한다. 미쟝센에 정말로 햇빛이 많았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 이 장면은 축구장의 잔디밭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장면처럼 기억되어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를 노스탤지어를 자아냈다. 그의 이름은 티무르였는데, 나는 막연하게 그의 먼 선조를 상상해 보았다. 집에 들어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벙글벙글 웃고 있었을, 그의 머나먼 조상의 삶에 비하면 오늘 그의 삶은 얼마나 빠듯하고 이방인의 것이 되었나. 그럼에도 그 풍족한 마음은 잃지 않아서 그는 산드라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눈물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전의 동료가 보인 불편한 표정도 이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내가 상상한 선조 대였다면 분명 그도 넉넉하게 웃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산드라에게 벌컥 화를 낸 사람도 있고, 생활에 지친 얼굴로 삶의 경비를 헤아려 보며 안 된다고 조곤조곤 설명한 사람도 있었고, 산드라 복직의 당위성 자체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없는 척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제롬의 집에서 산드라만큼이나 어려운 제롬의 선택을 듣는다. 산드라의 복직에 찬성해야겠지만, 그러면 계약직인 제롬은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될 게 뻔했다.
아, 계약직. 70-80년대 노동의 아픔이 집약된 단어가 저임금이라면 오늘날의 아픔은 계약직이라는 단어로 수렴되는 거 아닐까. 그 아픈 단어까지도 동료들 안에 담아낸 이 넓은 스펙트럼. 제롬의 말투가 덤덤해서 더 곤혹스러웠다. 아무튼 산드라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월요일 아침 8시, 작은 회사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누구도 악역은 없는데 누구나 괴로운 시간이었다.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는 작업반장조차도 산드라에게 자기 정말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진실일까?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두세 명만 돌아와도 이야기는 와전될 수 있고, 입장의 차이가 첨예한 이런 때도 물론 예외는 아닐 테니까. 아무튼 작업반장까지 포함해 절대악은 없지만 피해는 생기는 괴로운 상황이 되었다.
투표의 결과는 8대 8. 최선을 다했지만 과반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산드라의 복직은 성사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소식,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소식, 누군가에게는 복잡 미묘한 심경이 드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산드라는 담담하다. 오히려 선심 쓰듯 산드라에게 '계약직 기간이 끝나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일어날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회사를 빠져나가며 마누에게 전화를 걸고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맞다. 산드라는 싸웠다. 동료를 설득한 게 아니라 삶과 싸웠다. 그리고 이건 패배일까 승리일까? 객관적인 지표가 변하는 건 별로 없다. 처음에 산드라가 울면서 이야기했던 괴로운 일들이 다 일어날지도 모른다. 임대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생활은 더 빠듯해질 것이며,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날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마누의 한숨이 늘고 산드라가 눈물을 훌쩍거리는 날들이 또 있을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은 정말로 내일을 위한 시간이었다. 산드라는 그 시간 동안 건강해졌다. 복직은 하지 못했지만 다른 일을 구해서 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태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한 번 병원균에 맞서 본 몸은 항체를 만들어낸다. 한 번 싸워본 사람은 싸움의 감각을 익힌다. 그렇게 우리는 연약한 와중에 실패와 싸우며 역설적으로 강해진다. 실패한 사람도, 실패가 두려워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이나 따스하고 예쁜 말이 아닌, 별 거 아닌 일상성으로 다르덴 형제는 우리를 위로한다. 나도 당신도 약하고 두렵지만 분명 그렇게,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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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
첫 장면부터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프리다는 담담하면서도 위태한 표정으로 폭죽이 터지는 하늘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이 이렇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프리다의 얼굴을 비추거나 프리다가 쳐다보는 대상을 비춘다. 가족 중 누구도 프리다가 외롭게 느낄만한 행동을 하지 않지만, 프리다는 그 속에서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워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랑받는 아이인지,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외숙모가 머리를 빗겨주는데 그 빗을 던져버리고, 일부러 신발끈을 못 매는 척 묶어달라고 하며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아나가 가져온 배추를 자신이 가져온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프리다의 이런 행동들은 아이의 사소한 장난 내지 투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프리다의 행동이 모두 웃어넘길 정도의 것은 아니다. 프리다는 아나를 숲에 놔두고 돌아와 모른 척하거나, 아나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 등 종종 선을 넘는 행동을 해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프리다를 미워할 만도 하지만, 아나는 프리다를 미워하지 않는다. 팔을 다치고도, 물에 빠진 후에도 오히려 계속해서 프리다의 곁에 있으려 하며 자신과 놀아달라고 말한다. 또한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가출하려는 프리다에게 자신은 프리다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나의 사랑과 관심이 프리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한밤중의 가출을 계기로 가족들의 진심을 확인한 뒤, 프리다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들과 화목할 것 같던 프리다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이유를 묻는 가족들의 물음에 연신 모르겠다 답하며 서럽게 운다. 이 울음은 그렇게 확인하던 가족들의 사랑을 급작스레 깨닫게 되어 터진 울음으로도 보이지만, 그보다도 엄마의 죽음을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임고 동시에 터져 나온 울음으로 보인다. 외숙모가 생리통에 힘들어하자 불안해하고,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들으며 “안 아프실 거죠?”라며 재차 되묻던 프리다의 모습에서 외숙모는 엄마처럼 아프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느끼는 안정감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가족 중 가장 서먹해 보이던 외숙모와 프리다의 관계는 어쩌면 이때부터야 비로소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생각보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한 아이가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해가는 고정을 카메라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아이의 마음에 폭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불안한 시선으로 모든 것을 응시하던 프리다가 안정감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특별한 배경음악이나 인위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이 없음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프리다의 마음에 공감하며 그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이 영화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있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비슷하게 느낄 순간을 영화화하고 싶었고, 자신의 1993년의 여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이 된 카탈로니아의 가로트아 마을은 감독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며, 프리다가 가출했다 돌아오면서 “너무 깜깜해서 내일 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의 경우, 감독의 경험을 그대로 살린 장면이다. 감독의 이런 자기 경험 투영은 영화의 사실감을 높였다.
또한 감독은 되도록 카메라를 한 장소에 두고 촬영하며, 배우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모르게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이런 점은 이 영화의 자연스러움을 배가 되게 했다. 특히나 프리다와 아나의 역할놀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 중 하나다. 여기서 프리다는 엄마를, 아나는 딸을 연기한다. 프리다가 연기하는 인물은 프리다의 엄마로 보인다. 엄마는 몸이 아프다며 딸과 놀아주지 않고 의자에 누워있는다. 이 장면은 프리다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짐작하게 만들며, 둘의 역할놀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장면을 포함한 영화의 모든 장면이 자연스럽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에도, 아이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보고 듣는 관객에게 몰입감을 준다. 프리다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다 마지막 장면을 보며 그와 함께 느낀 감정은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이런 영화를 볼 때, 좋은 영화는 구태여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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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꺼풀
눈꺼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바닷가 자갈 틈에서, 산속 개울 아래서 크고 작은 미륵불이 보이는 섬, 노인은 이 섬을 찾는 사람에게 떡을 만들어 먹인다. 멀고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은 이 섬을 찾아와 노인이 만들어준 떡을 먹으면 그가 떠나왔던 곳에서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그가 가야할 길만 기억하게 된다.
노인은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듣고, 떡을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절구에 쌀을 빻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떡을 찐다. 그렇게 하얀 백설기가 되면, 섬을 찾아온 사람은 떡을 먹고 사라진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 배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많고, 이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방송 보도가 들린다. 그리고 바다에서 섬으로 쥐 한 마리가 헤엄쳐 오고, 그 쥐는 노인의 집 천정에서 부스럭거리며 노인의 잠을 방해한다. 노인은 쥐를 잡으려 나서고, 절구공이로 절구 위에 있던 쥐를 내리치지만 절구공이만 부러지고, 쥐는 다시 도망치다 섬에서 유일한 우물에 빠진다.
섬에 학생과 선생님이 도착하고, 노인은 어린 학생을 보더니 '어린 사람이 왜 이 섬에 왔느냐'고 역정을 낸다. 학생은 '떡을 먹으러 왔다'고 말한다. 노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쌀을 빻아 떡을 만들려 하지만, 절구공이가 부러져 쌀을 빻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돌미륵불을 거꾸로 들어 쌀을 빻지만, 고통스러운 노인의 신음소리와 함께 돌미륵불의 목이 부러지고, 절구도 부서진다.
선생님은 물을 마시려 우물로 가지만, 우물은 이미 썩어버렸다. 노인은 망가진 절구와 목이 잘린 돌미륵불을 우물에 던진다. 절구와 돌미륵은 바다 깊이 가라앉고, 자욱한 모래먼지 속에서 돌덩이로 보이던 물체가 미륵불인듯, 사람인듯 눈을 감고 있는 돌같은 물체가 순간 눈을 번쩍 뜨고 정면을 바라본다.
오멸 감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편의 진혼곡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와 메타포로 일관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현실을 직접 언급할 때가 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다룰 때가 그렇다.
바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천을 상징한다. 바다는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이면서, 희생자들이 있는 삶과 죽음의 공간이자,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경계로써의 바다다. 이 바다를 건너면, 어떤 사람은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영영 바다에 살게 된다.
노인은 미륵불의 현현이고, 불쌍한 중생을 보듬는 부처이자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한없이 자애로운 보살이다. 노인은 섬을 찾아온 학생과 선생님을 보면서, 그들에게 떡을 해주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저 어린 것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깊은 바다를 건너 노인을 찾아와야 했을까. 노인은 자신을 내던져 온몸으로 쌀을 빻지만, 주체할 수 없는 비애와 아픔 때문에 목이 잘리고 만다. 미륵불 마져도 이 어린 학생과 선생님을 구할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 죄 없는 사람들만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승의 불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노인은 이승을 떠난 사람이 먹어야 하는 떡도 만들지 않고, 떡을 만드는 도구인 절구와 절구공이를 바다에 버린다. 부정한 세상에서 갈 곳 없는 영혼들은 결국 떡을 먹지 못하고 사라지고, 목이 잘린 미륵은 저 바다밑 깊은 곳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을 기다려도 뜨지 않던 눈을 뜬다.
느리고 유장한 화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깊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화인같은 슬픔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뽑은 대통령이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악랄한 쥐새끼 같은 존재였고, 인간이 아닌 존재, 저주받아야 마땅한 악귀같은 존재가 대통령이며, 공무원이며, 국회의원이며, 검찰, 경찰, 해경이며, 패륜집단이 저지른 야만의 학살이자, 집단 살해극이었고, 그 결과의 참담함은 다수의 국민들 가슴에 찍힌 고통이다.
7년.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고, 가해자들은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달마가 눈꺼풀을 잘라 낸 것은 무엇을 보려는 것이었을까. 두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저 악마들, 가해자들의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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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퇴마 판타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건에 천만 원씩 받고 가짜 퇴마극을 펼친다고 알려진 사기꾼 퇴미사 '천박사'(강동원). 여느 때처럼 특수효과 기술자 겸 유튜버인 '인배'(이동휘)의 도움을 받아 가짜 퇴마를 펼친 그에게 귀신을 보는 눈을 지닌 ‘유경’(이솜)이 찾아온다. 거액의 수임료를 제안한 그녀의 요구는 단 하나. 자기 여동생 '유민'(박소이)에게 붙은 귀신을 떨쳐달라는 것.
이번에도 가짜 퇴마극을 준비하던 천박사. 그러나 그는 곧 다른 기운을 감지한다. 귀신을 만나면 울린다고 알려졌지만 평생 울린 적 없는 방울이 울린 것. 그와 동시에 천박사는 무당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허준호)에게 습격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에게 인배와 '황사장'(김종수)은 사건에서 손을 떼자고 제안하지만, 천박사는 다른 마음을 먹는다. 그간 애써 외면한 과거를 마주하고, 당주 무당의 장손으로서 악귀와 싸우겠다고.
웹툰 실사화의 딜레마
웹툰 원작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옮길 때 항상 같은 딜레마가 있다. 바로 '톤'이다. 웹툰은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인 톤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원작을 지나치게 충실하면 작위적이거나 오그라들기 십상이다. 반대로 그렇다고 원작 색채를 과하게 빼 버리면 팬덤의 불만을 산다. 웹툰 원작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눈에 띄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는 위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후렛샤 작가의 '빙의'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철저한 선택과 집중의 미덕을 보여준다. 웹툰 느낌을 살린다는 목적을 위해 장르, 캐릭터, 볼거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질주한다. 뛰어난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은 없다. 그리고 그 계획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가능한 신선하게 비트는 노력
<천박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성은 장르다. 장르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몇 년 사이 오컬트나 퇴마물은 대중적으로 익숙해졌다.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악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형 오컬트'를 표방하는 작품이 꾸준히 제작됐다. 달리 말해 마을의 서낭당을 지키는 무당인 ‘당주무당’, 충청 지역 앉은굿에서 사용하는 무구 '설경'이라는 소재만으로는 확실한 차별화가 어렵다.
대신 <천박사>는 장르 자체를 변주한다. 우선 다른 오컬트 영화에 비해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취한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 많은 오컬트 영화는 '신적인 요소가 실재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한다. 그에 반해 <천박사>는 초반부터 <기생충>을 패러디한 도입부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당의 사기극 같은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코미디는 분위기 환기 이상의 용도로 영리하게 활용된다. 웃음은 <천박사> 세계관으로의 초청장에 가깝다. 웃음 포인트를 주로 인배가 맡기 때문. 극 중 인배는 천박사, 유경, 황사장과 달리 혼자만 무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영화는 이들의 괴리감을 주로 유머의 소재로 삼는데, 관객이나 인배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인배만 따라가도 <천박사>의 판타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오컬트 영화의 일반적인 전개를 피해 가기도 한다. 퇴마물 주인공은 주로 희생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악귀와 질긴 싸움을 펼친다. <천박사>는 다르다. 유민에게 퇴마 의식을 진행하는 천박사. 그런데 이때 악귀 범천의 선택이 흥미롭다. 그는 유민 대신 유경에게 곧장 달려든다. 또 그녀의 눈을 갖기 위해 여러 사람의 몸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천박사를 습격한다. 이 순간부터 <천박사>는 본격적으로 액션 활극을 펼쳐 보일 수 있다.
최소한의 설명
이처럼 각 장르의 장점만 모아 관객을 현혹하려면 내용을 최대한 압축해야 한다. 영화 내 설명이나 묘사가 간단하고, 빠르고, 가벼워야 한다. 진득하게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상이한 장르 간의 충돌로 인해 단점만 부각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천박사>는 미묘한 불협화음을 알아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려 한다.
핵심 소재인 설경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자막 한 줄로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설경은 귀신을 협박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경문과 문양을 한지에 조각한 부적이다.” 어떤 효과가 있고, 언제 사용해야 하고, 누가 쓸 수 있는지와 같은 자세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소재와 설정에 대한 설명도 단순하기는 매한가지다. 당주 무당의 역할, 손가락을 잘라서 만드는 주문의 정체, 범천이 무당을 사냥하는 궁극적인 목적, 칠성검에 깃든 힘...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재이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단순히 보여준다. 유경에게 신비한 눈이 있는 이유, 천박사에게 신기가 깃드는 묘사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내용 전개도 직선적이다. 천박사가 범천의 존재를 인지한 후 곧장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인상을 준다. 선녀 무당이라는 카메오를 활용해 '기승전결' 중 '승'을 생략하다시피 한다. 그 덕에 너무 단순한 장치들과 파훼법 같은 지점들이 여러 의구심이나 고민으로 떠오르기 전에 끝내버린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캐릭터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박사> 속 인물의 서사는 복잡하다. 풀어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천박사의 집안 내력, 범천의 음모, 유경과 마을 주민들의 비극이 한 데 얽혀 있다. <천박사> 속 세계에 대한 설명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액션까지 곁들여 주려면 9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 촉박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천박사>는 철저힌 선택과 집중을 보여준다. 모든 플롯을 천박사 중심으로 배치하면서 분량을 조절한다. 천박사의 개인사를 풀어낼 때 범천을 도우미로 이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의 집안과 범천의 악연을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의 서사를 동시에 풀어낸다. 이에 더해 천박사의 할아버지와 동생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설정하면서 영화를 전반적으로 단순한 복수 서사 내에 위치시킨다.
유경의 개인사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녀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유경을 단순히 범천이 노리는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릴 뿐,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녀의 부모, 그녀와 마을 주민들의 관계, 범천이 마을 주민들을 악용한 방식 등도 퇴마 판타지다운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된다. 철저히 플롯의 도구일 따름이다.
몰입은 되지만 폭발력은 없다
초중반부까지는 <천박사>의 선택이 적중한다. 코미디, 오컬트, 판타지, 액션 모두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후반부다. 이전까지의 선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화려한 CG가 천박사와 범천을 감싸고, 비장한 검투씬이 등장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다. 물론 강동원이 기본적으로 액션을 잘 소화하는 배우인 관계로 액션을 보는 재미는 있다. CG도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기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범천을 물리치는 과정과 결과에는 쾌감이 없다.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천박사>는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이듯이 액션도 서사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보인다. 전쟁이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행위라면, 액션은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작가의 도구다. 즉, 서사가 쌓이지 않은 액션은 화려한 그래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천박사>는 인물의 서사를 쌓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의 과거사를 단편적으로 알려준다. 범천을 향한 원한이 얼마나 크고 그가 사기꾼 행세를 하며 어떻게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즉, 천박사가 목숨 걸고 범천을 잡는 이유는 이해해도 그에게 공감하거나 몰입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모든 서사가 집중된 주인공이 이러니, 그에게 종속된 다른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날 일도 만무하다.
결국 강동원이 장르다
그 결과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캐릭터가 아닌 배우들의 비주얼과 존개감뿐이다. 강동원은 다시 한번 스타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 <검은 사제들>에서 봤던 강동원의 이미지가 묘하게 한 데 합쳐져 있다. 대중적으로 인식된 배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캐릭터에 이식한 느낌이다.
반대쪽에서는 허준호의 무게감이 인상적이다. 자칫 경쾌함 이상으로 가벼울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히 가라앉히는 데 최적화된 모습이다. 박정민과 지수, 두 카메오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해서 특유의 연기력과 비주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결국 <천박사>는 캐릭터와 CG, 설정이 조금 독특할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난한 명절 영화에 그친다.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의도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한 톤의 코믹 액션 오컬트 영화를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계획대로 결과물이 정직하게 뽑힌 듯 보여서 비판하기도 애매하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한국 상업 영화 중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가 엿보이는 장르 영화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Acceptable 무난함
화려하나 어색한 CG만큼 오묘한 끝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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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잡은 내 손에 흉터가 있을지라도
맞잡은 내 손에 흉터가 있을지라도, <태어나길 잘했어(2022)>
필름소피_김희연
주인공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삼촌 가족이 사는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괜한 혹 하나를 달게 되었다는 듯한 외삼촌과 외숙모의 티 나는 눈치와 구박, 동갑내기 사촌 유라와의 불편한 마찰을 뒤로하고 다락방 한 칸을 겨우 쓸 수 있게 된다.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있는 창문과 깔고 잘 이불 하나를 겨우 펼칠 수 있는 공간은 곧 춘희의 안식처가 된다. 난방도 되지 않아 옷을 껴입어야 하는 다락방이지만 나름 춘희가 꾸민 장식들로 채워지고 빛을 낸다. 처음엔 애정을 가지고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표현으로 다락방을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더 보다 보니 애정보단 이런 곳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옆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곳에서 민달팽이 한 마리를 만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등에 껍데기를 이고 있는 달팽이가 아니라 굳이 민달팽이로 연출한 이유는 민달팽이와 춘희 모두 집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옆에 자신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아마 춘희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민달팽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보는 메인 포스터 속 춘희의 모습이 모든 것을 거스른 채 자신만의 우주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저는 좀 쩔어있어요, 땀에’ 춘희는 어렸을 때부터 다한증이 있어 언제나 손뿐만 아니라 발에도 땀이 흥건하다.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과 미움을 사는 이유에는 춘희의 땀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을 타인의 따가운 시선에 스스로 이것을 오점이라 생각하고 활활 타고 있는 불에 손을 가까이 대어 흉터를 남기기도 하였다. 어른이 된 춘희는 마늘을 까 사촌 오빠의 식당에 가져다 주고 받은 돈을 모아 다한증 수술을 하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면서 보게 된 상담 센터에서 다양한 사연과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보게 된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춘희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황을 만난다.
주황은 어렸을 때부터 당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말을 더듬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주황에게 말을 잘한다고 말해준 유일한 인물이 바로 춘희였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제가 춘희 씨 지켜드릴게요.’라며 마음을 표현하는 주황에게 춘희는 ‘주황 씨,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거절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컸던 만큼 지켜주겠다는 주황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지할 수도 없었던 춘희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주황의 말이 결코 쉽게 뱉은 가벼운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황은 가정폭력을 겪은 인물로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신 하나만 지키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주황이 춘희에게 지켜주겠다는 말을 꺼내기까지는 많은 생각과 결심을 거친 진심 어린 위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 우연히 번개를 맞게 된 춘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만나게 된다.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본인을 보는 춘희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가라앉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따뜻한 말은 따로 있었지만 항상 말은 마음과 같이 나가지 않는다. 내가 쏘아붙인 모진 말들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우리는 모두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듯 맞잡은 내 두 손에 흉터가 크게 느껴질 때쯤 이 영화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 잘 커주셔서 감사하다는 최진영 감독님의 말씀에 이 영화에도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씨네랩 크레이터로서 시사회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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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호 수상작 브로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할 것
?Rabbitgumi 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가 개봉했어요.
송강호 배우가 칸 남우주연상을 탄 영화이기도 하죠.
그 외에도 아이유, 강동원, 배두나 등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답게 유사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질문을 던지는 영화에요.
굉장히 따뜻한 시선으로 이런 질문들을 하는 영화죠. 무척 따뜻해요.
영화의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을까요?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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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에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다녀왔습니다 l 해물은 싫지만 이 짬뽕은 좋아요ㅣ선우정아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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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랜만에 제 이야기겸... 영화제 이야기겸....
무엇보다... 현생에 지친 모두를 위해 제가 힐링 받았던 순간들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영상을 보시고 다들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느끼셨으면 좋겠군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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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커: 폴리 아 되> 2차 예고편
마침내 이들의 혼돈의 무대가 시작된다! 운명이 이끄는 광기의 듀오를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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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졸트> 메인 예고편
사랑하는 남친을 잃은 그녀.
더 이상의 통제는 필요 없다.
제대로 돌아버린 자.
그녀의 숨은 능력이 깨어난다!
백만 볼트 짜릿한 액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