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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2024-06-26 09:49:51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 리뷰

어디로 보든, 어떻게 보든 문과생이었던 나의 학창시절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당연히 수학이었다. 수식을 이해하고 아니 외워서 대입해서 푸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이었는데 증명문제가 나오면 암담해졌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 할 수 없는 이상한 문제일 뿐이었다. 특기였던 엄청난 암기력으로 증명의 과정을 모두 통채로 외워서 맞춘 적도 있었지만, 문장 너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에 맞딱드리고 나면 이걸 꼭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엔 지구 온난화나, 부의 재분배, 인권문제 같은 것들이 많은 데, 이걸 왜 증명해야 하는가? 하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수학을 포기하는 나 자신을 합리화 시켰다.

 

이런 나에게 골드바흐의 추측, 2 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그러니까 ‘1+1+1 = 3’이 성립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증명해야 하것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 마거리트에 대한 이야기는 수포자의 입장에서 조금 신선했다. “아니 그걸 증명하지 못했다고?” 하는 놀라움과 그걸 왜 증명해야 하는 걸까?” 라는 궁금증. 그리고 그걸 증명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굴까?” 라는 호기심 (문과생의 의식의 흐름) 그리고 수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내가 봐도 괜찮을까. 라는 약간의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영화는 그걸 증명해 내고 싶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무려 11명이나 배출한 수학계의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수학 천재 마거리트지금까지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고자 하는 세미나에서 오류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인해수학으로부터 도망치고 만다. ‘증명에 실패했다.’ 라는 단순한 이유보다 대학이라는 한정된 사회에서 수학의 세계에만 있던 마거리트에겐 어떤 충격 같은 것이었다나보다 더 천재인 것 같은 다른 동료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놓아 버린 것 같은 교수증명에서 오류를 지적 받은 것은단순히 마거리트가 증명하고자한 골드바흐의 추측에 대한 부정뿐만 아니라어쩌면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와장창 깨져 버리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 중에서

 

마거리트는 막 알이라는 세계에서 나오려는 중이다. 알껍질 밖의 세상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니, 불안과 공포를 가질 법도 한데, 마거리트는 지금까지 단단하게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알껍질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차단막이라고 생각 했던 것일까. 고민없이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냥(!) 해 나간다. 꼭 묶어 두었던 어떤 마음이 터져버린 것처럼.

 

 

 

매 순간의 경험은 우리의 가치를 만들기 마련이다. 수학의 세계, 그러니까 ()세계에서만 형성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마거리트는 새롭게 만난 반()의 세계에서 원나잇, 마작, 클럽윤리와 가치관이 배제된 것 처럼 거침없이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신념과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다시 사랑하는 수학을 시작한다. 수학만 탐구하던 삶에서, 수학을 사랑하는 삶으로.

 

수학은 공식대로만 하면 언제나 명쾌하게 답이 나오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학의 공식과 법칙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야 말로, 깊이 탐구하고 고민하며 길을 찾아가야 하는 인생과 닮은 학문일지도 모르겠다

 

 

작성자 . 클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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