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06 12:53:06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
영화 <토리와 로키타> 리뷰
영화를 보기 전, 다르덴 감독이 한국 관객에게 남긴 메시지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토리와 로키타>를 보는 한국 관객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또 다른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들의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온 ‘특별 기여자’들과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건강한 담론보다는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기 일쑤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래도 여론이 갈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일해 온 ‘특별 기여자’들인데 팽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인의 의리가 불안을 이겨낸 목소리가 있었다. 여론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무사 귀환에 안심한 후로는 나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친구들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서모임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당시 특별 기여자 자녀들이 학교에 갈 때, 기존 학생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고. 이것이야말로 아이히만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과 무엇이 다르냐며 분개했다. 차라리 옛날 반장 엄마들처럼 햄버거나 쫙 돌리는 게 낫지, 기존 학생들이 시혜를 베푼 것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저자세로 들어가게 만드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경계를 넘어설 텐데 어른들이 먼저 선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뒤늦게 들은 내가,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의 친구라 말할 수 있나. 지긋지긋한 내 안의 아이히만을 인지하며, 다소 무거운 감정을 안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토리와 로키타의 행복과 무운을 비는 마음으로.

영화는 불안한 눈빛의 로키타에서 시작한다.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인데, 관객은 금방 로키타의 거짓말을 눈치챌 수 있다. 로키타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와 함께 가다 보면, 로키타의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토리와 로키타는 각자의 이유로 아프리카 어딘가를 떠나 온 아이들이다. 벨기에에 정착해서 함께 살고자 하지만, 진작에 체류증을 받은 토리와 달리 로키타의 서류 발급은 계속해서 지연된다. 두 사람은 남매임을 증명해서 체류증을 받고자 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돈은 모이지 않는다.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서 입국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는 브로커들이 있고, 고용주 또한 여러 모로 아이들을 착취하며, 심지어 로키타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돈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은 피자도 배달하고, 식당에서 노래도 한다.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이어 이탈리아어로 노래한다. 이국의 언어로, 서사를 부여하면서 불러야 하면 노래도 노동이 된다. 이들의 일은 점차 위험해진다. 위험한 밤의 거리에서, 마약 배달까지 하고 있다. 아직 어려도 야무진 토리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야무지게 챙겨 받을 줄 안다.
노동이 되어야 하는 노래와 대조적으로, 두 사람의 지친 밤을 위로하는 노래가 있다. 토리가 따라 부르는 로키타의 자장가. 실제 카메룬 언어로 된 자장가라는데, 내 귀에는 어쩐지 자꾸 익숙한 찬송가처럼 들렸다. “사랑의 주 사랑의 주 내 맘 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 맘 고치소서”라는 한 구절처럼. 아무리 뒤져봐도 찬송가라는 말은 없던데. 그러나 진짜 찬송가였다고 해도 그 노래는 로키타를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브로커들이 로키타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장소는 언제나 교회다.

아직 어린 어깨에 책임이 너무 많다.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도 어린데, 자기 세상을 지켜야 한다. 그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로키타에게는 토리, 토리에게는 로키타이다. 두 사람이 어떤 서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이런 유대 관계를 쌓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유독 힘든 날 보고 싶은 사람도 서로이고, 학교에서 ‘아는 사람’ 그리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도 서로일 뿐이다. 겁먹고 숨을 헐떡일 때 약과 물을 건네주는 한 사람, 대신 문을 두드려 따져 물어주는 사람, 착취의 세상 속에서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다.

아이들의 깊은 우정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피부로 감각하여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환영 못 받잖아.” 로키타가 시시각각 처하는 상황은 분명 비극이지만, 세상이 로키타를 그전까지 대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끌고 가고, 무슨 일이 생겨도 탈출구가 없는 건물에 들어가야 하고, ‘원한다 je veux’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로키타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는데도, 흥청망청 사는 어른보다도 훨씬 똑똑하게 삶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이들의 노동하는 등을 따라간다. <로제타> 때부터 일하는 누군가의 등을 다정하게 따르던 그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러나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가 만드는 영화의 감각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걸. 영화 속에도 친절한 개인은 있었다. 기꺼이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잘 곳 없을 때 오라고 주소를 주는 쉼터 선생님도. 그러나 개인의 친절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는 말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마음에 남은 것이 있길 바란다고, 그래서 주변과 이야기를 나눠 주길 바란다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왜 다르덴 형제가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되어 달라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세상만큼은 아니었으면, 사라지지 않도록 아이들이 그 자리에만 있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어 갔으면.
그런 마음으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으니, 세상은 어린이날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얼마나 환대하고 있을까. <토리와 로키타>가 던진 질문을 계속 입 안에서 굴려 본다. 담담하여 다정하며, 더 깊은 담론을 끌어내는 이 영화는, 아마 남은 오월 내내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해맑은 노래와 함께 잔상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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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닝타임 3시간 이상인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요즘 시간이 많이 남는데 할 게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그 시간을 순삭시킬 수 있는 영화를 가져와봤는데요.
무려 러닝타임이 3시간 이상인 영화라
한 편을 봐도 3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같은 영화입니다
˚✧₊⁎( ˘ω˘ )⁎⁺˳✧༚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러닝타임 3시간 이상인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미국 남북전쟁 전후의 남부를 무대로 스칼렛 오하라가 겪은 인생 역정을 통해
생존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역사 로맨스 영화
cine pick!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거릿 미첼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빅터 플레밍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흥행작이자 한국에서 3번이나 재개봉한 걸작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랍 민족의 독립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cine pick!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가 역사, 문화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여 1991년에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보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등 주요 부문의 수상을 거두기까지 하였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 199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중국 대륙을 떠나 온 부모세대의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자녀세대의 사랑과 폭력을 담아낸 영화
cine pick!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표 작품이다.
BBC 선정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100편'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한 '아시아 영화 베스트 100'에서 10위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타이타닉
Titanic, 1997
ⓒ 네이버 영화
synopsis
우연한 기회로 티켓을 구해 타이타닉호에 올라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화가 잭은
막강한 재력의 약혼자와 함께 1등실에 승선한 로즈에게 한 눈에 반한다.
진실한 사랑을 꿈꾸던 로즈 또한 생애 처음 황홀한 감정에 휩싸이고, 둘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데…cine pick!
박스오피스 15주 연속 1위를 하고,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한 <타이타닉>.
안 본 사람도 타이타닉 속 OST와 배 위에 두 남녀주인공이 서있는 명장면은 알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여 실제 타이타닉호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카페 느와르
Cafe noir, 2009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음악교사인 영수와 동료교사인 미연, 학부모 미연, 길에서 우연히 만난 선화와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cine pick!
코리안스크린 가장 위대한 한국 영화 100 중 46위에 선정됐으며,
신하균 배우의 화보집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신하균 배우가 멋있게 나오는 영화입니다.
해피 아워
Happy Hour,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각기 다른 직업과 성격을 가진 30대 후반의 네 명의 친구들이 일상 속에 마주한 이혼과 외도,
알지 못했던 상처와 진실을 마주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cine pick!
<아사코>,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일본의 거장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An Elephant Sitting Still,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친구의 자살을 목격한 위청, 졸지에 살인자가 된 웨이부, 원조교제 중인 황링, 가족들에게 버려진 왕진.
저마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이들은 만저우리의 코끼리를 찾아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한다.
cine pick!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6%를 기록하고, 이동진 평론가가 별 4개를 준 작품.
타이베이 금마장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색상,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는 포럼 부문 국제비평가연맹 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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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주차, 위클리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지난 한 주,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
그럼,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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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롯데시네마, 2022 아카데미 수상작 상영회 개최
출처 | 네이버 영화
롯데시네마에서 2022 아카데미 수상작 6편을 상영한다고 밝혔다.
작품상을 차지한 <코다>, 감독상을 차지한 <파워 오브 도그>,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킹 리차드>,
각본상을 받은 <벨파스트>, 음악상, 촬영상, 미술상 등 6관왕을 차지한 <듄>,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본 상영회는 31일부터 4월 12일까지 진행된다.
무주산골영화제, 서울 팝업스토어 운영
출처 | 무주산골영화제 인스타그램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를 홍보하기 위해 서울 성수동에서 9일까지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팝업스토어에서는 영화제 가이드 매거진, 굿즈샵, 카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준비돼 있다.
팝업스토어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된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5년 만에 개봉 확정
출처 | 네이버 영화설경구 주연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4월 27일 개봉을 확정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연극을 원작을 한 작품으로,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다.
<미싱타는 여자들>, 1만 돌파
출처 | 네이버 영화1970년대 소녀 미싱사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작품인 <미싱타는 여자들>이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해외
넷플릭스, 윌 스미스 주연 <패스트 앤 루즈> 제작 미루다
출처 | Rotten Tomatoes윌 스미스가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폭행을 저지르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2일, 넷플릭스는 이러한 이유로 윌 스미스 주연의 <패스트 앤 루즈> 제작을 미루기로 했다.
브루스 윌리스, 실어증으로 연기 활동 중단
출처 | Rotten Tomatoes
브루스 윌리스의 가족은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윌리스가 최근 실어증을 진단받았고,
인지 능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연기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짐 캐리, 은퇴 언급출처 | Rotten Tomatoes짐 캐리는 <수퍼 소닉2> 개봉을 앞두고 홍보를 위해 출연한 NBC 방송에서
<수퍼 소닉2>를 마지막으로 쉬고 싶다며 은퇴 의사를 밝혔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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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신, 희생, 그러나 우정
<아워 프렌드>는 사랑, 우정, 이별, 죽음이라는 주제를 일상적 배경에서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말이죠, 사실 아주 뻔한 이야기를 예상했어요. 당연히 눈물이 약간 나겠고, 심금을 울리려고 꽤 노력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 예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어디에선가 있을 법하면서도 어디에서도 없을 것 같은 이야기였고, 사랑, 우정, 이별, 죽음이라는 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함부로 쓰지 않는 세심한 영화였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아워 프렌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아워 프렌드>는 2023년 11월 22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아워 프렌드
Our Friend
<아워 프렌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 '니콜'과 그의 남편 '매튜', 그리고 그들의 곁에 함께하는 친구 '데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작품은 에스콰이어 매거진에 실린 'The Friend'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반으로 하는 실화 영화입니다. 극 중에서처럼 남편 '매튜'가 직접 에세이를 썼죠.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이른바 ‘신파’라고 부르는 감성 팔이 영화의 대표적인 소재거리입니다. 그런 영화에서는 다 죽어가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없던 힘을 짜내어 십여 분이 넘도록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두고 감정의 요동을 겪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구태여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거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사람의 모습 뒤에 더 슬픈 음악을 깔곤 하죠. 그러나 <아워 프렌드>는 조금 다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과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억지로 슬픔을 짜내기보다는 죽음의 그늘에서 그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찬찬히 짚어가는 데 집중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는 '니콜'이 암 선고를 받는 시점을 중심으로 시간 순서를 이리저리 뒤섞는 플롯을 사용합니다. 퍼즐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퍼즐 조각을 맨 처음부터 하나씩 순서대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재미가 없을 테지요. <아워 프렌드>의 플롯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이야기 조각을 차례대로 배열하지 않고, 이곳저곳의 퍼즐을 조금씩 채워가는 방식을 취하죠. 그렇게 세 사람이 어떻게 우정을 쌓았고, '데인'이 왜 ‘니콜'과 '매튜' 가족 곁에 머물렀는지를 알게 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제시하는 시간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모으다가, 이윽고 ‘세 사람의 우정’이라는 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 ⊙ ⊙
영화는 인트로를 포함한 몇몇 장면에서 인물들을 근거리에서 포착했다가 조금씩 원거리로 이동해 관조하는 촬영 방식을 택합니다. 가까이에서 촬영할 때와 멀리서 촬영할 때 관객이 화면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의 명언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하곤 합니다.
멀리서 보면 '니콜'과 '매튜' 가족, 그리고 '데인'의 관계는 단순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암에 걸린 친구에게 과하리 만치 헌신하는 연민 많은 친구. 친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호구 같은 친구. 하지만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데인'은 자신을 깎아내리고 낮추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니콜'은 그런 '데인'의 진짜 가치를 알아봐 준 유일한 친구였죠. '데인'은 바보 같이 우직하고, 우스꽝스러운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며, 실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언제나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한참을 망설이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사는 곳을 떠나는 결정쯤이야 가뿐하게 내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남들에게 '데인'은 그저 별난 놈이었을지 몰라도, '니콜'은 그런 그를 프루트 루프(Fruit Loop, 어리석고 이상한 사람을 부르는 말)라는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니콜' 덕분에 만나게 된 '매튜' 역시 '데인'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매튜'는 '데인'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때 그를 외로움의 늪에서 꺼내준 동아줄이었거든요.
그럼,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니콜'과 '매튜' 가족을 위해 사는 곳, 직장, 애인을 떠나 1년이 넘는 뒷바라지를 자처한 '데인'의 행동은 과연 지나친 헌신과 희생일까, 진정한 우정일까?
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서로의 이야기를 쭉 지켜봐 온 ‘니콜', '매튜', 그리고 '데인'뿐일 것입니다. 극 중 어느 과거 회상 장면에서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는 '니콜'을 두고, 그녀의 오랜 친구 '샬럿'이 이런 말을 합니다. "I have stories." 너의 지나간 시간들을 아는 친구는 나뿐이라는 의미의 말이었는데요. 이 대사는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대입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 역시 단편만 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죠.
그렇지만 이 영화가 세 사람의 지나간 시간들을 지근거리에서 천천히 알아갈 수 있도록 했으니, 이를 핑계 삼아 감히 저 질문에 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데인’의 행동은 분명한 헌신과 희생이었으나, 명백한 우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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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하고 만든 영화에는 끄떡없지만, ‘울지 않아도 돼.’ 하고 만든 영화에 하릴없이 무너지시는 분들 계신가요? 그렇게 저는 <아워 프렌드>의 내용을 곱씹을 때마다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아워 프렌드>는 마음 한구석이라도 따뜻하게 데우고 싶은 추운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꺼내볼 따뜻함과 애틋함을 가진 영화로 제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올 겨울 이 영화와 함께 따뜻한 우정의 온기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Summary
두 딸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니콜'과 '매튜' 부부. 어느 날, '니콜'이 말기암 선고를 받고 '매튜'는 점점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져 내리던 중 두 사람의 오랜 절친인 '데인'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가브리엘라 코우퍼스웨이트
출연: 다코타 존슨, 케이시 애플렉, 제이슨 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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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2023
영국 / 109분
감독: 소피 바르트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적당한 공포와 적절하게 배합된 연민과 침묵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장치로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이 순뱡향이든 역방향이든 상관없이, '멈춰 있는 순간'에만 발동한다. 절대 피할 수 없으며, 강제적으로 작동해 기어이 멈춰 선 이의 발을 지면에서 떼게 한다. 인간에게 '정지' 행위는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 필수조건은 철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거창한 방책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얻은 교훈과 지식을 축적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게 된 이른바 생존 본능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인간을 위해 비극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며 사는 일이 자연의 순리와 같다는 점에서 우린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가지만 절대 죽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인간은 단순하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본능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우린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정립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중 세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다. '나와의 분리', '조건 없는 수용', '맹목적인 믿음'. 앞서 언급한 공포와 연민, 침묵이 인간의 내면에 박힌 생존용 고정핀이라면 분리와 수용, 믿음은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구가 실행되는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인간인 우린 계속 길을 걷는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소멸을 부정하기 위해 시작된 인간의 생존 본능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개인의 가치관, 신념, 취향,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누리고 바라고 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도 죽음은 물론이고, 죽음이 주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됐다. '어떻게 죽음을 피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앞으로 있을 죽음'보다 '지금 당장 없는 무언가'를 더 갈망하게 됐다. 흥미로운 건, 삶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되었어도 고정핀은 여전히 박혀있으며 공통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온전히 '나'를 따로 분리해 보호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며, 그 선택을 진실하다 믿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린 어떠한 상황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스릴 있게 투쟁하는, '격렬하게 애쓰는 존재'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인간은 더 이상 살고 죽는 간단한 문제에 속한 동물이 아니니까. 자연의 순환 속에서 경계 없이 자기 세상을 확장하면서 그에 따른 온갖 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활용까지 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우린 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예측불허하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정말 단순하면서 그만큼 복잡한 인간. 죽음과 생존을 같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삶을 욕망하는 인간. <팟 제너레이션>은 이 모든 걸 담고 있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난 여성 임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사용하며 합리적으로 편하게 산다. 하지만 앨비는 다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다.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적 세계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은 다르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행복 지수가 말해준다. 앨비는 늘 낮거나 측정 불가이지만 자기만의 자연(섬에 있는 집)을 갖고 있어 진짜 미소를 지으며 산다. 레이첼은 인공지능의 행복 지수 관리를 신뢰한다. 적당한 지수를 유지하면서 간혹 높지 않은 날엔 거짓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공원에 설치된 '네이처팟'에 들어가면 된다. 굳이 자연을 현장 체험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현재, 레이첼이 사는 곳은 쓸모보다 편리함이 더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아주 좋은 세상이다.
레이첼에겐 '이 환경'이, 앨비에겐 이 환경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생존한 자연'이 존재하기에, 부부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인지능력이 더 높은 인공지능 '마샤'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회사가 그녀에게 승진 혜택으로 인공 자궁(팟)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부부에게 인기몰이 중인 페가수스의 자궁 센터는 팟이란 플라스틱 알 모양의 기기로 임신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사실 레이첼도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남편 몰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었다. 예상대로 자연 임신을 원했던 앨비는 아내에게 논의 없이 아기가 알에서 나오게 하는 대가를 지불했다며 화를 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선택. 앨비와 레이첼이 함께 쌓아온 규칙이 다시 재정립되는 순간인데, 그 공은 두 사람이 아니라 레이첼의 심리치료사 일라이저, '인공지능'에 있다. 거대한 눈, 일라이저는 훌륭한 아이를 갖는 것뿐이라며 레이첼이 내면 깊숙이 원했던 말을 대신해 줬고, 인공지능이기에 인간의 영혼을 못한다고 믿는 앨비에겐 최고 등급의 사생활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편의 반대와 자연을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된 레이첼과 자연만을 믿고 살면서도 혼자 남모를 속앓이를 했던 앨비는 일라이저의 한 마디 처방에 그동안의 문제를 '나'에게서 분리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전환한다. 이제 두 사람의 목적은 혼란스럽고 낯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우리의 팟을 잘 돌보는 일이다.
팟은 정말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영양분을 달라며 알람을 울려대고, 자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앨비와 레이첼은 각자의 속도로 팟을 받아들인다. 팟을 먼저 품기 시작한 건 예상과 달리 식물학자 앨비다. 팟 캐리어(유모차 같은)를 메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새 캐리어 달인이 되어 팟을 자기가 일하는 온실에 동행한다. 나아가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팟과 교감한다. 팟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예외적 선택으로 자연이 됐다.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진 후 계속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살던 레이첼은 백팔십도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빠가 어떻게 엄마보다 더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자연대로라면 태아와의 강력한 교감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엄마만이 체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인공 자궁을 선택한 레이첼이 무슨 수로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레이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산부의 배에 손을 올리고 태동을 느끼며 자신도 임신 중이라고, 당신처럼 아기를 품고 있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나'의 임신과 '그녀'의 임신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레이첼은 팟과 남편을 데리고 다시 일라이저를 찾아간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팟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부터 볼록하게 나온 자기 배를 만지며 평화로운 모래사장을 걷는 꿈을 꿨었다. 팟이 생긴 이후엔 조그만 알을 출산하는 섬뜩한 꿈을 꿨었는데, 일라이저는 꿈은 자의적이며 구시대적인 산물일 뿐이라며 더 이상 인간은 꿈을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안심시켰었다. (자궁 센터 원장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당당히 말했고, 한술 더 떠서 아기에게 부모가 원하는 꿈도 꾸게 할 수 있다며 신제품 드림팟을 선전한 바 있다) 즉, 자연과 여자의 자궁, 이젠 인간의 꿈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하는 레이첼의 우려는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고민을 떨쳐내지 못하는 그녀에, 일라이저는 팟 안에 든 태아와 자신을 연결해 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레이첼과 앨비는 처음으로 멈칫하며 거대한 눈에게서 빠르게 도망친다.
그동안 그들은 숱하게 합리화를 해왔다. 여성의 자궁 대신 팟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뿐이며, 자연임신으로 부모가 된 부부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레이첼의 말처럼, 중요한 건 플라스틱 알이 아니라 태어날 '우리 아기'니까. 분명 자연의 선물로 받은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 태어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같은, 이 불쾌감과 거북스러움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해왔던 분리와 수용, 믿음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 레이첼은 남편처럼 회사에 팟을 들고 다니면서, 아기와 유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자신에게 올 '아기'만을 생각하면서.
팟의 대기 명단이 길어지자, 자궁 센터는 부부에게 유도분만을 제안한다. 광고할 때만 해도, 아기가 스스로 나오고 싶은 순간에 신호를 주면 출산 과정을 돕는다며, '자연이 결정'한다고 온갖 위대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자본의 흐름에 아기를 다루고 있던 것이다. 레이첼과 앨비는 거부한다. 팟은 페가수스의 자산이지만, 그 안에 든 아기는 우리 전부니까. 앨비는 곧바로 팟을 몰래 집으로 데려오고, 아기를 백화점에서 골라 사는 꿈을 꾼 레이첼은 섬에서 가정 분만을 하자고 선언한다. 부부는 진짜 자연 속에서 진짜가 된 팟을 품고 자연과 온전히 동화된 시간을 보낸다. 원격으로 팟의 기능을 꺼버린 페가수스의 저급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기를 믿고 기다린다. 드디어 온 아기의 신호. 앨비는 플라스틱 알을 강제로 개봉해 아기를 꺼내 품에 안는다. 감격스러워하는 앨비와 레이첼 그리고 그들의 축복, 팟 제너레이션의 탄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분리, 수용, 믿음. 두 사람은 부단히 노력해 아기를 얻었다. 그럼 된 것일까? 해피엔딩인가? 태어난 아기는 부부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레이첼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더 편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의 복제품(일라이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라이저를 통해 팟 서비스가 좋은 선택임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확인받았다. 그러나 부부가 사는 세상이 오직 지금, '현재에 사는 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인 것처럼, 그들의 선택 역시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아기를 욕망하던 오늘의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꿈꾸지 않는 팟 제너레이션을, 아니 '꿈꿀 수 없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꿈은 영화 속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꿈이 인간다움이라면, 팟 제너레이션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의 아이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계속 태어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미래엔 무엇이 살아남을까.
<팟 제너레이션>은 우리가 얼마나 변덕을 부리면서도, 카멜레온처럼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긍정하며 사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나아가 이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부의 새로운 도전을 평범한 일상 안에 평이하게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변화무쌍한 능력들도 악인의 횡포처럼 풀지 않는다. 단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부부의 개인사가 끝을 향해 갈수록 우리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뿐이다.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는 위기감과 섬뜩함에 생존 본능이 발동되는 순간, 페가수스 사장이 쿠키 영상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궁 센터의 고객은 부모가 아닌 아기임을 확인시키며 언젠가는 아기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디, 그들이 현명한 부모를 선택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친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분명 팟으로 합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아기를 얻으려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부일뿐인데, 물음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역시 어쩔 수 없겠지?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여러모로 행복 지수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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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묘한 심리전 이 후, 진정한 목표에 도달하다.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눈빛에서 오는 사소한 오해에 놓인 관계는 섣부른 판단과 엇갈린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행동이 아닌 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린 수많은 관계를 경험하면서도 쉬이 지나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을 잘 풀어놓은 영화 ‘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ㄴ이 누구인지 추리 해보면서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대 저택에서 사용인으로 일하고 있는 하윤은 새로 들어온 지영과 사장님 사이의 묘한 기류를 감지한다. 그것도 잠시 사장님의 사냥 제안에 모두가 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다수의 목표가 되어버린 ㄴ을 잡기 위한 사냥이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단어가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ㄴ‘이라는 단어 선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다수의 목표인 ’ㄴ’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게 한다. ㄴ은 누구일까.한 사람을 사랑할 때 그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말이다. 대화가 이루어지고 눈빛과 행동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미숙함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괴롭히는 행동을 통해서 전달하곤 했다. 그것은 폭력의 일부임에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이렇게 당연한 것들은 우리가 표현하는 모든 것에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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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 스포일러 有
#시놉시스
인기 많은 젊은 정치가와 그의 유능한 비서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취재하게 된 신문기자가 그들에게 숨겨진 과거가 자신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스릴 휴먼 서스펜스극
🎵BGM : 드래곤 포니 - 꼬리를 먹는 뱀 (Ouroboros)
https://www.youtube.com/watch?v=axcHmayliNM
#끝없는 반전 속에서 찾는 진실
웃는 마트료시카는 끊임없이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로 시청자를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현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반전의 연속, 그리고 그 의미
처음에는 충격적인 반전들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점점 반전이 반복될수록 '이번에도 반전이겠지..'하는 체념의 태도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많은 반전을 이야기 전개의 장치로 활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시청자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본질적인 구조 체제가 반전 속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겉을 벗겨도 또 다른 반전이 존재하며, 이는 권력과 시스템의 본질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세이케 이치로 : 자아가 없는 자의 강함
세이케는 처음에는 자아가 없지만 능력이 많아, 그저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시스템을 장악하며 조정하려고 한 존재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는 원래부터 자아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환경 속에서 생겨난 것일까?
작품을 통해 보이는 세이케의 특성은 철저한 적응력과 감정의 배제이다. 그는 권력을 쥐려는 욕망이 크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오히려 강한 권력욕과 소유욕을 가졌던 인물들은 체제에 의해 제거되거나 무너진다.
#미치우에 카나에 : 끝까지 저항하고 진실을 택한 인물
미치우에는 세이케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자신이 직접 본 것을 토대로만 판단하며 부조리한 시스템에 저항하려 했다. 결말을 통해 미치우에가 결국 패배를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그녀가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은 자신만의 도덕적 신념을 지닌 사람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녀의 선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치우에는 "저는 세이케를 다시 보려고 해요. 그리고 제가 알게 된 것도 사람들에게 알려 줄 거예요. 모두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믿어도 되는지요."라고 말한다.
미치우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지만, 나는 생각하는 개인 혹은 세상 속 누군가는 미치우에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미치우에는 단순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이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적대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녀의 선택은 단순히 패배로 끝났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신의 본질을 이해할 순 없어요. 하지만 알게 된 게 있어요. '저를 잘 지켜봐 주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생각했어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당신도 무섭잖아요.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니까요. 세이케씨, 저는 당신을 계속 알아갈 겁니다. 그래야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본질을 타인이 정의할 수 있는가?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세이케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를 도구로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운 존재로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이케 스스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끝까지 모른 채 살아간다. 미치우에는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을 세이키의 진짜 모습을 알기도 전에 그를 선택해 버렸다. 이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을 정의하고,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판단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사람을 선택했다."
이는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회 속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도 보여준다. 이처럼 웃는 마트료시카는 반전을 통해 우리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을 담고 있지 않기에 용두사미라는 평도 많지만, 이 결말을 통해 작품의 진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무관심한 사회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와 사건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몇 줄의 기사나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한 사람의 인생과 성격 등을 쉽게 판단한다. 그것이 정말 진실일까?
작품 속 미치우에는 세이케를 단순한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직접 보고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결말은 현실과 다르지 않아 더 씁쓸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발달한 SNS를 통해 빠르게 판단하고 깊이 고민하지 않으며 편한 결론을 선택한다. 한 사람의 삶이나 사건의 본질을 알기도 전에 단 몇 개의 정보만으로 선악을 나누고, 정의를 내린다. 이러한 사회적 태도는 결국 또 다른 세이케를 만들어내거나, 또 다른 용기 있는 미치우에를 외롭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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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2 vs 듄 흥행예측!! 과연 어떤 영화가 흥행할까? 토론 배틀(feat.댓글 이벤트)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10월 초대형 기대작 베놈2와 듄이 개봉을 앞두고있습니다. 씨네랩과 씨네마사지가 만나 어느 영화가 흥행할것인지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벤트 알림 10월 20일까지 어느 영화가 흥행할지 댓글로 달아주시면(각 영화 개봉 후 1주차 국내 관객수) 정답을 맞추신 분들중 추첨하여 '프리미엄 영화관람권 2매'를 보내드립니다!! 많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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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빌리 홀리데이> 티저 예고편
팝 보컬의 예술을 영원히 바꿔 놓은 재즈의 초상 ‘빌리 홀리데이’
무대 위에선 모두의 박수를 받는 ‘레이디 데이’였지만
무대 아래에선 시대의 폭력과 광기에 끝없이 시달렸다.
도망칠 곳 없이 어둠으로 내몰린 삶 속에서도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세상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사랑.
Stay tuned for LAD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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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00년의 기다림> 메인 예고편
"Make a Wish" 신비로운 비주얼, 매혹적인 미장센! 사랑, 모험, 드라마, 로맨틱..? [3000년의 기다림]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