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1-08-01 21:35:31
남과 북의 실감나는 모가디슈 탈출기
-<모가디슈>(2021)
어두컴컴한 방의 테이블에 막 준비한 음식들이 보인다. 테이블에는 컵라면과 밥, 김치, 통조림 같은 간단한 음식뿐이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다. 남한 사람들이 먼저 음식을 먹기 시작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선뜻 그 음식을 먹지 못한다. 남한 쪽 사람 중 한 명이 밥을 바꿔 먹는 걸 본 이후, 그제야 북한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독이라도 있을까 봐 먹지 못했던 북한 사람들은 의심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 적국인 남한을 신뢰하지 못한다. 과거, 현재 등 어떤 시기에도 이에 대한 태도는 남과 북 모두 똑같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은 영화 <모가디슈>의 중반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발생한 내전으로 생사를 걸고 탈출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당시 UN에 가입하기 위해 회원국인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외교전을 벌이고 있었던 남한과 북한은 소말리아에서도 소말리아 정부의 지지를 받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때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거리감은 영화 중반에 그들이 밥을 먹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서로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완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은 배고픔 앞에서도 상대방을 의심한다. 영화는 그 당시 남과 북의 거리감과 불신, 경쟁관계를 여러 에피소드로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다.
1991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탈출기를 그린 영화
영화의 초반에는 한국 대사관 사람들의 외교전을 긴박하게 그린다. 한신성 대사(김윤석)를 중심으로 안기부 출신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서기관 공수철(정만식)은 소말리아 대통령과 고위급 인사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선물을 소말리아 무장단체에 뺏기거나 북한 림용수 대사(허준호) 일행에게 선수를 빼앗기기도 한다. 소말리아의 고위급 인사들과 미팅을 하는 모습을 통해 소말리아의 정치적인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주요 권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말리아의 상황은 반대 세력들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결국 힘을 키운 반군은 소말리아에서 긴 분쟁을 시작한다.
<모가디슈>의 이야기는 사실 한 줄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급작스럽게 내전이 발생한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실제 있었던 상황을 영화적으로 각색했는데, 여러 상황이나 인물 구도를 복잡하게 가져가지 않음으로써 영화적인 긴장감과 속도감을 잃지 않았다. 남과 북의 대립과 각각에 속한 인물들의 생각도 복잡하게 꼬아놓지 않고, 단순히 탈출에만 집중한다. 사실 한신성 대사와 림용수 대사의 관계를 조금 더 감정적으로 가져가거나 아니면 서로 완전히 믿지 못하는 존재로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인물은 탈출에만 집중하며 그 사이에는 어느 정도 상대방을 신뢰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기보다는 딱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 동료 정도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가장 적대적으로 부딪히는 인물은 강대진 참사관과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다. 각각의 정보부 역할을 하는 그들은 마치 남한과 북한의 군대로서 대리전을 펼치듯 격렬하게 부딪힌다. 두 대사가 외교적인 차원으로 서로에게 접근한다면, 두 참사관은 좀 더 적대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실제로 격투까지 벌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등, 이 둘이 부딪힐 때 영화의 긴장은 높아진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두 인물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런 두 인물의 관계가 오히려 더 영화의 현실감을 높인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은 내전 발생 후 한국과 북한 대사관의 각기 상황이 나오고, 대사관을 습격받은 북한 사람들이 한국 대사관으로 오면서 모든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 후 각 대사와 참사관은 자신의 국가와 수교 관계에 있는 나라의 대사관에 각각 나뉘어서 방문하게 되고 다시 한국 대사관에 모여 모든 인물이 한 번에 탈출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는 맨 마지막에 다시 남한과 북한이 각자의 길을 간다. 마치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긴장관계에 있다 다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였다가 또다시 긴장관계에 처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두 갈래에서 한 갈래, 다시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반복한다. 이는 카체이싱 장면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북한 대사가 다른 길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장면이 대표적일 것이다.
영화는 남과 북의 사람들을 어떤 편견도 없이 그린다. 어디가 더 잘 살고 어디가 더 맞는 체제라는 정치적인 관점은 철저히 배제하는데,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밥과 반찬을 먹는 것처럼 그들은 그 상황에서 만큼은 똑같이 탈출만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의미에서 마지막 자동차를 이용한 탈출 장면에서도 남과 북의 사람들은 소속 국가와 상관없이 섞여 타서 탈출하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그들 간의 교류는 크지 않지만 중반부터 만들어져 지속되는 그들 간의 서로에 대한 신뢰는 영화 끝까지 깨지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진 카체이싱으로 느껴지는 영화의 긴장감
영화는 다른 국가의 반응이나 남한과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온전히 모가디슈에서 두 대사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처럼 관객들도 같이 도시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내부의 인물과 상황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 주요 인물들이 어떤 방법으로 탈출을 할 수 있을지에 보다 포커스를 두고 영화를 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병렬적으로 이 얘기, 저 얘기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직선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끝까지 영화의 힘을 잃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후반부 카체이싱 장면이다. 차량 4대에 책이나 모래주머니 등을 총알을 최대한 막아내기 위해 설치하고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가는 과정을 담은 장면은 무척 박진감이 넘친다. 카메라가 차량 4대를 통과하면서 앞뒤의 상황과 차에 탄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주면서 그 상황을 다채롭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상황의 긴장감까지 디테일하게 전달한다.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4대의 차량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면서 서로 여러 번 부딪치고, 총알을 받아내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남한과 북한의 대사를 연기한 김윤석 배우와 허준호 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특히나 참사관을 연기한 조인성 배우와 구교환 배우의 연기가 특히 좋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믿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각자의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두 인물은 두 배우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영화 중반 두 배우가 서로 대립하며 아주 치열하게 격투를 벌이는 모습은 이제 막 만들어진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깨져버릴까 더욱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약간은 어리바리하게 나오는 서기관을 연기하는 정만식 배우나, 대사 부인을 연기한 김소진 배우의 연기도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었다.
영화 전체를 아프리카에서 모두 촬영한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의 로케이션 촬영을 경험을 통해 성공적인 로케이션 촬영을 이끌었고, <군함도>의 실패로 실화에서 올 수 있는 정치적 논쟁들을 어느 정도 비껴간 연출로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냈다. 마치 1990년대 그 당시에 방문한 듯한 아프리카 현지의 모습과 여러 가지 다양한 차량들도 영화의 사실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영화는 감성적인 신파로 흐르지 않고 그들이 탈출을 완성하는 것에만 오롯이 관심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바로 떠오르는 영화는 비슷한 탈출 영화인 <아르고>다. 배우 벤 에플렉이 연출한 <아르고>도 훌륭한 탈출극이었지만, 영화의 긴장감과 현실성에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또한 총기 액션의 타격감도 살아있어 전쟁영화의 분위기도 꽤 많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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