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8 05:27:01
신화같이 잔혹한 인류의 폭력의 역사
영화 <유니콘 전쟁> 리뷰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매년 꾸준히 참석하는 영화제들중 하나이다.
거리가 가까워서도 크지만, 결정적으로 애니메이션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상영작 공개 이후 갑자기 추가된 상영작이 있었는데, 바로 <유니콘 전쟁>이다.
어떤 작품이길래 갑자기 초청까지 된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라도 소개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해 보석같은 애니메이션 중 한 편이었다.
러브 군사캠프의 테디 베어들은 조상 대대로의 적수인 유니콘과 맞서싸우기 위해 훈련중이다.
그러다 유니콘의 근거지인 마법의 숲에서 부대가 실종되는 사고가 생기게 되고, 이들의 부대는 숲으로 투입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욕망과 본능과 갈등이 폭발하게된다.
아기자기한 그림체를 보면 '마이 리틀 포니'를 연상시키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지만,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성기 노출, 신체 절단, 유혈, 마약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맞물려 괴리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괴리감은 단순히 쾌락적, 불쾌감을 주기위한 요소가 아니다.
테디 베어와 유니콘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욕망, 폭력, 본능은 인간에게 내재된것과도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은 작화에 담아낸 인간의 폭력에 대한 은유가 담긴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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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내 안에서 영화의 개념화는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시절 영화를 제대로 전공해보자고 결심한 이후 처음 수강한 강의가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영화들로 모든 역사적 자취를 설명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화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했는지, 하다 못해 아시아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수업을 탓할 수는 없다. 영화가 설명되는 방식이 으레 그랬으며,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서양 국가를 주제로 한 발표와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발표는 분량부터 차이가 났다. 유수한 영화제라 불리우는 국제영화제들은 모두 일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그럴 만했다.
영화를 더욱 넓고 깊게 소비하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의 나 또한 변함 없이 몇 국가의 작품들과 그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다양한 국가영화를 접하고 싶던 차에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감독이 여성 주연들과 함께 연출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눈이 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으나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멀리서나마 접해왔기에 영화로 만나는 인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지 하루 빨리 알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
미리 말해두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성영화는 아니다.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라는 문장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주거공간을 꾸려 나가거나, 기혼/미혼/비혼 여성들의 각 가치관들이 모여 건강한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렇다면 해당 작품을 관람하고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오히려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주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 내에 만연한 종교에 따른 가치관과 여성을 억압하는 뿌리 박힌 것들에 맞서는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도 여성'들에게 동일시되어야 조금 더 잘 보이는, 하지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 섬세한 작품임은 명확하다.
* 뭄바이를 느낄 수 있는 오프닝 시퀀스
극의 첫 장면은 누군가가 인터뷰를 하는 듯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뭄바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겪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들이 짧게 풀어낸다. 그리고 배경은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의 밤을 그대로 담아낸 샷들이 나온다.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가운데 수많은 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자동차 전조등, 조명, 기차 혹은 지하철이 뿜는 빛. 고스란히 빛을 받는 사람들은 어쩐지 지쳐보인다. 이렇다 할 주인공 없이 도시 그 자체를 담으며 꽤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흡사 다큐멘터리 영화 같기도 하다.
그만큼 도시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아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복잡한 도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행렬은 베트남 하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하노이에서 잠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며 영상도 제작하고자 했던, 도시를 마음껏 즐기다 떠나면 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문득 외로움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버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상상만 하던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도로의 소음, 즐비해 있는 길고 얇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의 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샷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여성들의 사소한 일상 또한 상세하게 묘사된 덕분에 그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는 극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
초반부가 다큐멘터리 같았다면, 중반부는 실험영화 같은 면모를 보인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프라바'와 '아누'의 일상이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함께 독특한 편집으로 표현된다. 하루종일 좁디 좁은 사무실에서 고객 응대를 하고 있는 '아누'가 종종 나누는 문자 텍스트가 자막으로 화면에 보이는 호흡은 여느 극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힙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장난기 서린 음악이 본능적인 호감을 자아냈다. '아누'가 단독으로 나오는 사무실 몽타주는 아주 귀엽고 익살스러운 연기가 매우 돋보인다.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는 주로 밤으로 표현되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바닷가 마을로 모인 세 주인공의 시간들은 대부분 낮으로 구성된다. 어둠에 잡아먹힌 도시와 달리 한적한 바닷가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차 있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뻗어 나가는 빛줄기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주인공이 모인 장면에서는 ㅡ 알게 모르게 쌓아 두었던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린 채 ㅡ 새까만 하늘과 밤바다 속에 별과 조명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비로소 그들의 주변 환경을 이루던 모든 빛이 한 데 만난 것이다.
다만, 극영화로서의 힘은 약하다. 각 등장인물의 서사는 미약하며, 접점은 모호하다. 현재진행형의 일상을 제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연락이 오지 않는 남편을 기억하는 '프라바'와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숨겨야 하는 '아누', 일평생 살아왔던 공간을 집이라고 인정 받지 못하는 '파르바티'. 각 사건들의 앞뒤상황이 제시되지 않는 만큼 그들의 감정선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플롯 자체는 느리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명확한 대사보다는 주어가 분명하지 않은 비유적 표현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흐름에 탑승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수작이라고 판단했을 거 같다.
***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극중 '빅 클로즈업' 샷이 자주 사용되는 특징이 눈에 띄었다. 특히 얼굴, 그리고 얼굴 중에서도 눈 주위를 중심으로 샷을 잡는다. 눈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의 상을 담는다. 그리고 그 눈은 항상 빛이 있다. 주인공 자체가 빛이기에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에도 자연스럽게 빛이 옮기는 건지, 눈이 향하는 모든 곳에 빛이 있었고 그대로 담아냈을 뿐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건, 빛은 어둠이 있기에 인식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나자신 혹은 어둠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빛 그 자체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독이 바라보는 인도, 여성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드러낼 줄 알고 그들의 우정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애써 빛을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애초부터 희망이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당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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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들은 환호하고 여성들은 불쾌해하는 영화의 뒷면
*스포 포함
애마는 유명한 19금 영화 <애마부인>을 모티브로 만든 시리즈이다. 시리즈를 보기 전에도 제목만 듣고서는 애마부인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애마부인은 오로지 "야함", "자극"으로 유명한 영화인데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가장 궁금했다. 보기 전에는 이하늬, 조현철, 진선규 등 연기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더욱 기대감이 컸다.
1980년대 영화 시장
이 드라마는 새로운 신인배우인 주애(방효린)가 기존 유명 배우인 희란(이하늬)을 재치고 애마 부인으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내용을 담는다. 희란을 보고 꿈을 키워온 신인 배우 주애는 노출, 19금 장면이 가득한 자극적인 각본들에도 성공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걸 바쳐 성공한다. 언제까지나 표면적으로 보면은 그렇다.
드라마의 배경은 1980년대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민주화 운동을 얘기할 것이라는 예고다. 애마 역시 그렇다. 극 중 <애마>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시련은 시대 배경 때문에 발생한다. 야한 장면을 넣고 싶은 감독(조현철)의 요구 또한 올바른 문화를 만든다는 정부에서 컷 당하고, 희란을 포함한 여러 배우가 윗선에서 하는 모임, 파티 등에 끌려가 속된 말로 술집 여자처럼 춤추고 옷을 벗고 그들의 방 안까지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영화는 없다.
영화사 사장(진선규)은 배우들을 팔아넘기고 주변 스태프들은 침묵한다.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경고에 쉽게 말할 수도 없고 배우들은 착취의 길로 빠져 죽기까지 한다. 도무지 인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사장은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그들과 연을 만들고, 장부를 만들어 윗선을 견제할 생각까지 한다.
극 중 계속 나오는 단어가 썅X인데 주인공인 희란은 초반에는 나에게 못되게 대하는 여자, 감당하기 힘든 여자로서의 썅X으로 묘사되다가 후미에서는 이런 그지 같은 상황 속에서 악바리로 버티는 썅X으로 감히 존경스럽게까지 여겨진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희란은 자신의 먼저 걸어온 길을 후배들이 겪지 않기 하기 위해, 굴복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더 뻣뻣이 드는 썅X이 된다. 그런 희란의 노력 덕에 주애는 모욕을 참지 않는 사람, 영화를 위해 나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마지막 화쯤 되어서, 희란은 이런 시대의 고리를 완전히 끊기 위해 배우 인생을 놓을 각오를 하고 진실을 밝힌다. 그들을 돕는 사람들도 목숨을 다해 진실을 알리고자 하고, 영화를 위해 배우를 팔던 사장은 그토록 원치 않은 안기부로 들어간다. 다른 의미의 새 시대의 영화를 맞이한 것이다.
야한 영화의 감독
애마의 스토리, 연출, 호불호야 어쨌든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뭐냐, 이 드라마의 의의가 뭐냐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초반에 나온 이 말을 뽑겠다. " 각본이랑 XX하지 말고, 실제 여자랑 좀 해." 극 중 어리숙하고 현실에서는 말도 잘 못하는 감독의 노출, 욕망, 말도 안 되는 에로티즘을 그득히 넣은 각본을 보고 10년 차 배우인 희란이 하는 말이다. 희란이 받아본 각본은 도대체 주인공이 어디서 어떻게 욕망을 느낀다는 건지 이해는 어렵지만, 여하튼 감독이 보고 싶은 것이 분명한 것들로 꽉꽉 차있다. 다르게 말하면 "더럽고 저급하지만 보고 싶은" 장면들의 연속이다.
감독은 은근한 것을 원했다. 은근히 꼴리는 거. 사람들이 찾는 것. 그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상상할 법한 것. 1970년대까지의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 다만 영화사 사장은 새 시대가 열렸으니 대놓고, 모두가 알만한 야한 장면을 원한다. 충실한 욕망, 자극적인 19금. 그저 잘 팔리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예술적 욕망을 원하는 감독이든, 상업적 욕망을 원하는 영화사 사장이든 그중 어느 것도 "여성의 욕망"의 형태는 없다. 그래서 희란은 "새로운 애마부인"을 요한다.
감독은 말한다. 여성이 소심해서 직접은 말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은근 원하고 있던 그 욕망을 윗집 사는 첫사랑이 여성을 거칠게 억지로 범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숨겨진 여성의 진짜 욕망이라고. 다만 희란은 새로운 1980년대를 본다. 사장은 대놓고 19금으로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희란은 여성도 납득 가능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단순히 벗는 얘기가 아닌 정말 여자의 이야기. 남자에서 벗어나 여성 둘이서 새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
외압에 의해 사장의 손으로 그 더러운, 잘 팔리는, 남성은 환호하지만 여성은 불쾌한 영화가 세상에 나왔지만 희란의 이야기는 뒤늦게라도 오리지날레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현재까지도 영화사 사장의 상업적인 야한 영화나 감독 같은 은근히 예술적으로 야한 영화가 지판에 널리고 널렸지만 희란의 "진짜 여성의 욕망"을 넣은 영화는 드물다. 19금은 남성의 전유이고, 그들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2025년까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링 위에서 이를 악물고 관심을 받기 위해 이 직업을 이어가기 위해 옷을 벗는 여성 배우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도 이 말을 대신 바치고 싶다. "각본이랑 하지 말고 실제 여자를 좀 만나라"라고.
애마의 이야기
애마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했으나 아직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다. 희란이 많이 참고 있었고 할 말을 했다는 건 알겠지만, 민주화 단체의 활동이나 그들의 조력자가 어째서 마음을 굳힌 건지 등의 이야기는 분량 상인지 그닥 도파민이 돌지 않아서인지 많이 빠져있다. 그래서 마지막 화가 나왔을 때는 조금, 아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은 영화 <러브라이즈 블리딩>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르기도, <델마와 루이스>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일부로 판타지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나 생각했다. 다만 당혹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짧은 화 탓에 충분히 킬링타임 용으로 좋았고 이하늬, 진선규, 특히 조현철의 연기가 연기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다만 인물 간 관계성이나 개연성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6화는 많이 짧았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많은데 킬링타임용은 되어야 해서 그것을 생략하고 축약하다가 살짝 아쉬워졌지만 그 덕에 접근성은 좋아진 듯하다.
웃기지만 생각할 만한 주제가 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을 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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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지만, 우리는 사람의 한쪽 면 밖에는 보지 못한다. 과학적으로도 사람은 4차원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이 보는 세상은 너무나 평면적이다. 세상은 나라는 1인칭 시점에서 본 2차원 평면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밈으로,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비둘기 아래 담장 있어요'가 있다. 서로 다른 입체 공간의 색이 비슷하기만 해도 그 사이에 공간이 있는지 언듯 알기 쉽지 않아 일어나는 착시에 대한 밈이다.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걸 알려면 다양한 경험과 보이는 대로 다 믿지 않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초등학교 5학년인 무기노 미나토(쿠로가와 소야)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모습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과 주변인물들을 바라본다. 말 그대로,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그 시점이 달라져가며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면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을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라쇼몽>이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해하거나 거짓말하는 인간 모두에게 담긴 이기주의를 다루고 있다면, <괴물>은 보이지 않는 진실을 오해하거나 이해하게 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여기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진 세상을 향한 서늘한 비판적 시선이 더욱 날카롭게 꽂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괴물은 누구게?
무기노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미나토를 혼자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그녀는 일찍 죽은 남편을 대신해, 바쁘게 살며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점점 알기 어려워지고, 어떤 학교생활을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어느날부터 미나토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한다. 걱정이 되지만 아무렇지도 않으려 애를 쓰는 사오리. 결국 그녀는 미나토의 담임선생인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폭력을 썼다고 듣게 되고 학교를 찾아간다.
지금까진 평범한 영화 같았지만, 여기서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기이한 흐름을 타게 된다. 교사폭력으로 학교에 항의하러 온 걸 아는 선생님들은 무언가 대책회의를 하고 방안을 마련한 모양인데, 그 모양새가 너무도 기이한 나머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느낌이다. 학부모인 사오리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반응하며 답을 하고, 그녀의 말이나 항의에는 고개나 몸을 살짝 틀며 회피할 뿐이다. 대놓고 무시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정상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해결하려 했다는 결과를 남기려는 것인지, 무언가를 숨기는 것인지, 학교는 왜 호리 선생님을 감싸는 것인지, 호리 선생님은 왜 이런 와중에 사탕을 먹거나 웃고 있는 것인지. 관객마저 너무도 답답하고 이상해 공포감을 느낄 정도다. 게다가 호리 선생님은 유흥업소를 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미나토와 친하게 지냈다는 호시카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와도 만나보지만 무언가 이상하고 찝찝한 느낌이 든다. 괴물은 학교인가? 호리 선생님인가? 요리인가?
그러다 시간을 거슬러, 영화의 시점이 호리 선생님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유흥업소에 다닌다는 것은 동거하는 애인과 같이 다니는 걸 보고 아이들이 제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처럼 보인다. 사오리의 시선과 달리, 호리 선생님은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폭력교사라는 오해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애인도 떠난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호리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몰아간 거짓말을 한 미나토가 밉다. 괴물은 미나토인가? 집요한 사오리인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학교인가?
영화가 조금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지만, 우리는 타인의 삶을 온전히 알지도 못한 채,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사람을 재단하곤 한다. 이제 이어지는 미나토의 시선에서, 미나토는 '괴물은 누구게'라는 게임을 한다.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자신이 못 보게 자신의 머리에 붙이고, 상대가 설명하는 것으로 그림을 맞추는 게임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상대방의 시선으로만 알 수 있다. 내가 왜 괴물로 보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괴물은 누구게?'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괴물은 없다
미나토와 요리는 과연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반 아이들은 키가 작고 여자애 같고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하는 요리를 괴물 취급한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요리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이긴 해도, 나빠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면 사오리가 느끼던 미나토의 조금 이상한 행동들은, 미나토가 요리에게 잘보이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두 아이의 순수한 우정, 아니 우정을 넘어선 그 무언가. 미나토는 요리의 세계를 받아들이며 고민한다. 미나토가 엄마인 사오리에게 물어본,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라는 말은 사실 요리의 아빠가 요리를 학대하며 한 말이었다. 미나토는 요리의 존재, 나아가서 요리가 따돌림당하고 학대받는 아이라는 걸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 좋은 호리 선생님의 핑계를 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모든 것들의 오해의 시작이고 틀어지게 된 이유였다.
호리 선생님과 학교를 괴물로 알고 있었던 사오리. 미나토를 괴물로 알고 있던 호리 선생님. 그러나 모두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은 누구게?'를 맞추려고 했지만 다들 괴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막 2차 성징이 오려는 시기, 5학년. 그 사이에 알게 되는 같은 성별의 친구에 대한 우정을 넘는 마음. 그것에 미나토는 혼동을 느끼고 갈등하고 감추려 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미나토의 그런 마음을 감싸준 것은 사오리에게 괴물 같아 보이던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 그런 얼빠진 행동을 하고 있던 것도, 사오리나 호리 선생님에게는 좋지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나토의 마음을 해소해 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었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되며 초반 건물에 불을 지른 것이 미나토처럼 보였다가 사실은 요리였다는 식으로 흘러가, 요리가 정말 괴물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요리의 그런 행동들은 아버지의 학대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각각의 사람들은 잘못을 하고 죄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그저 오해이기도 했고,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게 과연 그들을 탓하기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과연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던 사람들, 괴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혹 괴물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괴물은 있다
이렇게 시점이 달라지며 서로 다른 저마다의 이유를 조금씩 드러내는 중에도, 여전히 감독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잘못을 덮으려는 일본 문화와, 낙인 찍힌 이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 그리고 아동학대다. 애초에 학교는 왜 폭력교사 때문에 찾아온 학부모를 그렇게 대했을까?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어떤 잘못 때문에 이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법적으로 막으려 한 조치들이다. 사실 그런 대응과 조치들이 일을 더욱 확산시켰고, 미나토와 사오리, 호리 선생님 간의 오해를 더욱더 크게 만들었다.
일본에는 '臭い物に蓋をする (냄새가 나는 것에 뚜껑을)'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단 일단 덮어서 그것이 없던 것처럼, 그저 가리고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만 한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일본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박힌 문화를 설명해 준다. 한국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그것을 떠나서, 가깝게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나 코로나19의 대응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더욱 큰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덮어두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문제가 더욱 커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괴물 같아 보이는 개개인에게는 애정을 드러내면서, 일본의 이런 문화는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하나의 괴물은 바로 집단 따돌림이다. 여자애 같고 조금 특이하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이지메는 '그런 일은 당연히 있지'정도로 보여준다. 이 아이들이 가장 큰 괴로움도 바로 그런 집단 따돌림, 자신들이 다수이고 따돌려도 되는 정당한 타깃이 정해지면 누구나 놀이하듯 죄책감없이 참여하는 것. 아무도 그것을 들여다보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 이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따돌림이 심하다. 심지어, 되게 이상하지만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따돌림도 성행한다. 얼마 전에는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를 따돌림시켜서 문제가 되었었다.
처음엔 요리가 따돌림당하지만, 나중에는 호리 선생님이 따돌림당한다. 아니, 처음부터 호리 선생님은 따돌림을 일삼는 아이들의 먹잇감이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선생님이 여자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상을 찍으며 걸스바에 드나든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선생님에게 요리와 미나토에 대한 거짓 정보를 준다. 결국 호리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렸을 때는, '돼지의 뇌'를 문 앞에 두고 그를 조롱한다. 너희 같은 것들은 죽어라라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 따돌림 문화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할 수 없다. 감독은 따돌림하는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괴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혐오해도 되는'누군가에게 마음대로 집단 혐오를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죽어라'라고 노래를 부르며.
또한 요리의 아빠는 요리를 학대하고 있다. 부동산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부인도 어디 갔는지 없고, 매일같이 욕조에 가두고 때리는 것 같다. '돼지의 뇌'는 그런 요리를 학대하며 내뱉은 말이다. 사실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에도 이유를 찾자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감독은 단순히 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해서 요리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뺀 것은 아니다. 교장선생님도 슬쩍 풀어주지 않았던가? 요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성정체성이 어떻든, 어떤 특이한 생각을 하든, 그것이 학대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곧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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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오해와 불행이 한 지점으로 뭉쳐, 요리가 말하던 빅 크런치가 가까워지고 있다. 미나토의 이상행동은 요리와 비밀기지에서 놀며 생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이었다. 그들이 뛰어노는 터널 저편의 숲에 놓인 기차, 그곳은 그들만의 낙원이다. 하지만 그 기찻길을 따라 달리다가, 결국 폐쇄되어 있어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 안에서 행복했다. 미나토는 그것이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 요리가 불을 지른 것이라는 걸 깨닫고 혼란이 오지만 결국 사랑을 찾아간다.
폭풍우가 치는 세상, 미나토와 요리는 빅 크런치를 맞이하기 위해 그들만의 터널 끝 기차에 앉는다. 사오리와 호리 선생님이 그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어 찾아 나설 때, 그들은 빅 크런치를 맞이한다. 마치 질을 통해 세상에 다시 태어나듯, 터널 밑 작고 축축한 통로를 기어가 새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곳엔 폭풍우가 없고 햇살이 내리쬔다. 그들이 가지 못했던 막혀있던 기찻길 다리도 어느새 열려있다. 미나토와 요리는 새로 태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괴물로 바라보는 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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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보다 더 컸던 내 맘 속 너의 자리
너는 내 세상이었어
레오와 레미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다. 매일 붙어 다니는 레오와 레미. 넓은 세상으로 나 아길 길이 없다. 당연하지. 매일 학교 다니고 집에 오는 일상의 반복인데. 둘은 둘에게 세상을 만들어준 사람이다. 그러나 애들이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면 애들아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관심이 너무 많은 아이들. 같은 반 친구들은 툭툭 한 마디씩 던진다. ‘너희 둘 사귀어?’ 발끈하는 두 사람.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이 둘을 멀어지게 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흠집이 간다. 13살인 레오와 레미. 인생의 10%는 함께 쌓아온 셈이지만 사이가 깨지는 건 이렇게나 쉽다. 원래 서로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각자를 기다렸던 레오와 레미. 레미는 어느 날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 레오의 얼굴을 확인하고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다. 서서히 멀어지는 두 사람.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close) 질 수 있을까?
각본의 섬세함
<클로즈>는 두 아이의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다. 레오와 레미가 서로의 관계를 겪으며 감내하는 일들을 영화의 중심 서사로 삼은 것이다. 퀴어 코드가 영화의 핵심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묘사하는 데 있어 무조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것이다.
영화를 지켜보는 시선은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레오-레미를 영화가 어떻게 바라보는가? 와 두 주인공을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 대한 것이다. 글쓴이는 둘 다 영화의 강점으로 뽑고 싶다. 첫째. 레오와 레미 사이에 불필요한 장면이 없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느닷없이 볼에 뽀뽀하는 신이 없다. 여기서 두 사람이 스킨십을 하면 영화의 핵심인 선 타기가 무너진다. 우정과 사랑 사이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마음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미스터리가 유지되어야 2부의 이야기전개에 감정전달이 성립한다. 이 선 타기는 단순히 스킨십을 들어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는 절묘하게 친구사이와 사랑사이의 간극을 타는 듯 보인다. 여기서 뭐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보이고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해피 투게더>나 <우리, 둘>같이 기존에 나왔던 퀴어 로맨스의 방식이 일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레시피로 맛없게 만드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 영화가 다른 퀴어 로맨스/성장서사와는 살짝 다른 지점은 여기에서 온다. 두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과 나이에서 오는 특성은 한 세트처럼 느껴지는데, 이 부분이 관객에게 있어 강렬한 여운과 설득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레오와 레미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도 영화에서 강점으로 뽑을 수 있다. 이런 영화를 볼 때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라 빌런 유형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몇 있다. 대표적으로 <파벨만스>에서 새미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몇 있었다. 물론 <파벨만스>에서 빌런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들아가야 하는 연출이다. 대신 이런 10대 성장서사에서 자극적으로 퀴어를 소비하거나 폭력적인 시선이 들어갈 법도 하다. 비단 퀴어 소재를 다루지 않았더라도 <7번 방의 선물>같이 자극적인 소재에서 최대한 인물을 깎아내리는 연출방식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이들이 레오와 레미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센 단어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센 한방을 때리는 듯하다. 진짜 이걸 염두하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없는 것들로만 대사를 구성한 것이다. 각본 역량이 빛났다. 뭐 이외에도 인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한 다음 다시 나타나는 형태도 섬세한 터치로 구성되어 있다.
무너지다
영화 자체가 소담한 작품이다. 거리 이동이 별로 없는 느낌? 뭐 13살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엔딩 와서 느끼는 여운은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왜일까? 영화는 장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장소를 활용하는 방식이 눈에 띈다. 장소를 어떻게 활용했나? 바로 반복이다. 영화는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두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일례로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인물들이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근거가 된다. 또 이 장소는 후반부에 다시 돌아와 인물의 정서를 나타내는 도구가 된다. 스포일러가 돼서 자세히 쓸 수 없지만 영화의 두 장면에서 그렇게 엄청난 무언가가 없음에도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이 장면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반복이 안 됐다? 그러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사실 사랑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익숙했던 것들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그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이런 사랑의 속성을 장소로 표현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이를 돋보이기 위해서 인물들의 리액션에 집중한 촬영 방식이 영화의 미장센이라는 측면에서도 나름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영화는 비움과 채움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제목이 왜 'close'인가를 생각해 보면 되는 문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왜 이 인물이 앞으로의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작품 자체가 처연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러니까 그땐 왜 몰랐을까? 에 괜한 것들이 사람을 앞으로 살아가게 만든다는 아이러니를 잘 담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런 영화에도 아쉬운 지점은 있다. 잘 만든 영화고 여운도 길게 남지만 영화의 이야기 전개가 전형적인 느낌이 좀 있다. 사실 영화 보기 전에 포스터 보고 대충 예상한 바가 있다. 아. 이거 아마 섬세한 화법으로 이야기 전개할 거야. 퀴어 소재인 것 같으니 자극적이지도 않겠지. 아마 인물들 이렇게 될 듯. 촬영으로 임팩트 딱 주겠지? 정확히 그대로 흘러간다. 대신 후반부에 어떤 장소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인상 깊긴 했지만 영화가 약간 강박적으로 짜여있다는 느낌은 아쉽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도 봤었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우리, 둘>의 감정선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에 따라서는 좀 지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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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
- 이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우리 모두에게 큰 보호막이 되어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는 엄마일 것이다. 출산 전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내며 생명을 지원받고, 태어나서는 먹고 마시고 잠에 드는 그 모든 과정의 보살핌을 받는다. 태어난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부모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그때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전까지 엄마라는 큰 울타리가 아이가 자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이다. 심지어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 전보다는 영향력이 줄어들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해주는 모든 보살핌은 일종의 봉사라고 할 수도 있을것이다.특별한 대가 없이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은 그것의 대가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지속된다.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또 다른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어떤 경우에는 그 마음이 강해져 아이를 향한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 집착이 지속되면 아이와 대립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그 대립은 커지고 서로에 대한 애증은 심화된다.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런>
영화 <런>은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 클로이(키에라 엘런)와 함께 살고 있다. 당뇨병, 천식, 하반식 장애 등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딸을 돕기 위해 다이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클로이는 극 중에서 내년이면 대학교에 갈 나이가 된 상황이고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클로이에게 다이앤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자신을 보살피는 엄마에게 의지하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클로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래서 집 안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설과 계단을 편하게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영화 초반 집안에서 클로이와 다이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제로 장애가 있는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어떤 모습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영화 초반 클로이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목적도 있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집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집의 구성과 배치, 그리고 클로이의 생활 동선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더욱 긴장하게 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엄마 다이앤의 출산 장면을 보여준다. 사산이 될 뻔한 아이를 겨우 살려내 인큐베이터에 넣었으나 그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스릴러 영화 장르를 많이 본 관객들이라면 그 아이의 생존 여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런>은 다이앤이 의료진들에게 아이가 살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장면이나, 현재 다이앤이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을 때, 자신의 딸에 대한 의견을 낼 때 건조한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 등을 통해 후반부 다이앤의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암시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딸
클로이가 엄마가 장을 봐 사 온 물건들을 뒤적거릴 때 처방받은 약통을 발견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긴장을 유발하기 시작한다. 그 약은 클로이가 아플 때 먹던 약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약통의 겉에는 엄마 다이앤의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초록색 알약이 야기한 마음의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클로이가 계속 그것에 대해 추적하게 만든다. 엄마의 활동 일정과 동선을 알고 있는 그는 영리하게 엄마가 추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약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쓴다.
사실 많은 관객들은 다이앤에게 동정과 위로를 주고 싶을 것이다. 장애아를 키웠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해할 정도로 그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했다. 그런데 엄마가 딸을 위해 했던 모든 행위들이 드러난 이후, 심지어 딸을 방안에 가두었을 때 관객들의 마음은 요동친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우리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실제로는 흔히 생각하는 선한 존재가 아니었을 때, 집이라는 공간은 지옥이 된다.
장애를 가진 클로이가 집안에서 최선을 다해 엄마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은 꽤 긴장감이 있다. 그가 창문을 기어서 넘어가고 또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다른 방으로 탈출하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사실 클로이 입장에서 엄마를 벗어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간 받았던 모든 지원들을 포기해야 하며, 혼자 세상 밖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그 존재로부터 탈출을 결심한다.
독립 직전의 딸과 엄마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긴장감으로 표현한 영화
영화 <런>은 독립하기 직전의 딸과 엄마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20년간 자식 뒷바라지를 했던 엄마가 아이의 독립을 바라보며 기대감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느끼고, 아이는 그저 독립된 생활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사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입장에서 자식을 볼 때 그런 복잡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런 복잡해진 엄마를 보는 아이는 그렇게 변한 엄마가 무섭고 두려워질 수도 있다. 자신의 자유로운 독립을 막는 존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엄마와 딸 간의 애증의 시기를 아주 단순하고 짜임새 있는 스릴러 장르에 대입에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이앤 역할을 맡은 사라 폴슨은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나 넷플릭스 <래치드> 같은 시리즈에서 두각을 보였던 배우다. 그는 차갑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또 반면에 여리고 지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연기가 가능한데, 특히 차가운 악역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차가운 엄마 연기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딸 클로이 역을 맡은 키에라 엘런은 독립을 원하는 딸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동하는 모든 장면은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스릴러 영화로 약간의 반전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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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제철 시詩시詩한 영화 8선
가을만큼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요?
제철을 맞아 시詩시詩한 영화 8선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시인 윤동주와 친우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동주>
-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전기 영화 <네루다>
-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사랑을 다룬 <브라이트 스타>
- 첫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 진아의 이야기 <한강에게>
- 생전 단 7편의 시를 출간했지만, 사후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 영화 <조용한 열정>
- 재능 없는 마흔 살의 시인,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 파도처럼 휘청이는 소년 세 사람을 다룬 <시인의 사랑>
- 故 윤정희 배우의 유작이자 난생처음 시를 쓰게 된 ‘미자’의 이야기 <시>
- 버스를 운전하며 틈틈이 시를 쓰는 패터슨의 이야기 <패터슨>
영화 속 ‘시’가 여러분의 마음에 안착하기를 바래봅니다.
혹, 여러분만이 간직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댓글로 나누어주세요 !
줄거리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어둠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줄거리
권력에 저항한 정치인이자 민중을 대변하는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 ‘네루다’.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그를 잡아오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비밀경찰 ‘오스카’는 도피를 위해 아내 ‘델리아’와 함께 은둔생활을 하는 ‘네루다’의 흔적을 밤낮 없이 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은둔생활이 길어질수록 ‘네루다’는 세계적 영웅이 되어가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오스카’조차 그가 남긴 책 속 문장들에 매료되고 마는데…
줄거리
1818년 영국 런던, 23살의 시인 존과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옆집 소녀 페니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싹튼다. 처음에 존은 페니를 철부지 말괄량이로만 여겼고 페니도 시를 비롯한 문학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히 존의 동생으로 인해 시작된다.
줄거리
첫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 ‘진아’. 오랜 연인 ‘길우’의 뜻밖의 사고 후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대학교에서 시 수업을 하고, 친구를 만나며 괜찮은 것 같지만 추억과 일상을 헤매며 써지지 않는 시를 붙잡고 있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 줘…”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 해야되잖아”
줄거리
19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선택이 아닌 결정되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무이던 시대. 독립적이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에밀리는 획일적인 교육과 억압이 만연한 기숙학교를 나와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유일한 삶의 행복이자 위로가 되는 시(詩)를 쓰면서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며 혼자만의 고독에 깊이 빠지게 되는데…
줄거리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마흔 살의 시인은 시를 쓰는 재능도, 먹고 살 돈도, 심지어 정자마저도 없다. 그리고 시인의 곁에는 무능한 남편을 구박하면서도 세상에서 그를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진짜 시를 쓰는 일이 뭘까 매일 고민하는 시인, 그리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 앞에 어느 날 파도처럼 위태로운 소년이 나타나고, 시인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데... 그 사람 생각이 자꾸만 나서요.
줄거리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레 인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줄거리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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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되면 과장 부장 사장과 직급 떼고 붙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메이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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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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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침투로 시작된 사내배틀로얄무비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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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리뷰 - 아버지 부조금으로 장례식장을 노름판으로 만든 불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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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는 반드시 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
일촉즉발! 수습불가!
과연 X버릇 남 못 준 `호성`에게 봄날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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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니피그를 좋아하세요> 메인 예고편
만화가가 꿈이었던 료타. 꿈을 이어가던 중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우연히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많은 일을 배우며 동물들과 교감하고, 동물원에서 운좋게 만화도 그리면서 좋은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료타가 맡았던 기니피그가 죽게 되고, 료타는 허탈함과 정말감에 빠진다. 료타와 동물원 사람들은 동물원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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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숏버스 배우행> 메인 예고편
오늘도 배우들은 연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상에선 내가 톱스타! <OK,탑스타> 녹색창에 떠야만 배우인가요? <31,내리다> 감독님, 제 메일은 언제 확인하실까요? <오디션>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나는 연기가 고프다 <언젠간 터질 거야> 오디션, 아빠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클라운> 이들은 그토록 바라던 연기의 꿈을 펼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