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징2023-06-11 00:38:05
박스오피스 1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4DX 후기
쿠키 있음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3.04.26 개봉)
감독: 아론 호바스, 마이클 제레닉
더빙: 크리스 프랫, 안야 테일러 조이 등
드림, 짱구는 못말려 등을 뚫고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렸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저는 닌텐도 유저도 아니었고... 슈퍼 마리오라곤 캐릭터 얼굴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이걸 굳이 돈 내고 영화관 가서 봐,,,?? 싶었었는데
주변 후기가 너무너무 좋길래~ 보러 갔어요
총평부터 말하자면 슈퍼 마리오는 무조건 4DX로 봐야 한다!
2D로 봤으면 재미가 반감 될 거 같거든요
내용도 재미있긴 하지만 4D가 진짜,,,
역대급으로 바람 불고 역대급으로 흔들리는 ㅋㅋㅋㅋㅋㅋㅋ
안전벨트 없으면 날아갈 것만 같은 (근데없음)
저 롯데월드 온 줄 알았잖아요
그만큼 신났다는 뜻입니다
저는 슈퍼 마리오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라 알고 있던 사람들보다는 이해가 어렵더라고요
나오는 캐릭터들, 아이템들, 레이스들 모두 게임에 나온 거라던데
저는 사전 정보가 1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살짝 정신이 없기도 했고 스토리상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마리오와 루이지의 형제애를 메인 스토리로 잡고 가나 보다 싶었는데요
다크 세곈가,, 거기에 빠진 루이지를 구하기 위함이라기보단
그냥 버섯 세계에서의 일들을 보여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리오가 원탑으로 빌런을 무찌른 것도 아니고
공주와 키노피오를 포함하여 마리오를 돕는 인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엔딩에서 루이지와의 우애를 강조하는 게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락성만 놓고 보자면 완벽했어요
쳐지는가 싶으면 바로 코믹 요소 작용하고 또 재미없어지는가 싶으면 바로 다음 레벨로 넘어가거든요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최대 장점 아닐까 싶어요!
그걸 4DX로 경험하면 더욱 더 배가 되는 거구요...
왜 자꾸 포디에 집착해 하시겠지만 이건 정말 4DX로 봐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ㅠㅠ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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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건 럭키 - 스티븐 소더버그
로건 럭키 - 스티븐 소더버그
제목이 조금 특이하다 싶었고, 애덤 드라이버 얼굴이 보여서 재미있을 것 같아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왠걸.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감독이 스티븐 소더버그였네. 어쩐지, 연출 솜씨가 대단히 훌륭했는데, 혹시 코언 형제의 손길이 닿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 이렇게 말하면 소더버그 감독이 기분 나쁘겠구나.
스티븐 소더버그라면, '오션스'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부터 봤고,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사이드 이펙트'였다. '사이드 이펙트'는 몇 번을 봤는데, 볼 때마다 흥미진진한 영화다.
그런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영화였으니, 모르고 봤지만 '로스트 인 더스트'와 '친절한 금자씨'의 착한 버전을 결합한 듯한 기분 좋은 영화다. 등장하는 배우만 해도 알고보면 어마어마한데, 의외로 단역으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007'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와 영화 끝부분에 엄청 멋지게 나오는 힐러리 스웽크가 그렇다. 배우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시나리오가 뛰어나다. 시나리오는 레베카 블런트인데, 이 이름은 가명이고 '줄스 애스너'가 본명이다. 특이하게도 시나리오는 이 영화 한 편 뿐이고, 영화감독이자 배우가 본업이다. 주로 TV시리즈 쪽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사는 주인공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은 성실하게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그가 다리를 전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의자에 앉아 기계를 조작하는 일이라 다리를 저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의 상관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해고 사유가 된다고 했다. 더 정확하게는 '보험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미는 아내와 이혼하고 따로 살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엄마와 함께 사는 딸 세이디를 만나는 시간이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지미의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양육권과 공동소유의 주택 문제가 남아 있고, 딸이 중간에 있어 딸을 데리러 갈 때마다 얼굴을 본다.
지미는 학생 때 잘 나가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졸업하고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가 갑자기 해고당한 것이다. 지미는 동네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동생 클라이드를 찾아간다. 클라이드는 왼쪽 팔꿈치 아래가 없다. 중동에 파병나갔을 때 부상당했고, 지금은 한쪽 팔로 바텐더 노릇을 하고 있다.
클라이드의 부상에 관해서 나중에 진실이 드러나는데, 원래 클라이드는 뛰어난 투수였다. 그의 실력이면 내셔널리그에서도 가장 유망한 선수가 분명했는데, 형인 지미가 풋볼을 포기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클라이드가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자원해서 군인이 되어 중동에 나갔다가 부상당한 것이다.
로건 집안은 징크스가 있는데, 뭔가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악운이 겹친다는 것이다. 1983년 매기 이모가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복권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바람에 그 엄청난 행운을 날려버린 것이다. 할아버지 다이아몬드 사건, 삼촌 감전 사고,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보험금을 받았는데, 그 직후 엄마는 병이 나서 앓아 누웠다. 지미는 다리를 다쳤고, 클라이드는 팔목을 날려버렸다. 유일하게 아무 일도 없이 건강한 사람은 막내 멜리 뿐이다.
클라이드가 일하는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던 지미는 동생을 놀리는 사내들과 한바탕 싸움을 하고, 클라이드에게 '콜리플라워'라고 외치고 떠난다. 다음날 클라이드는 형이 만들어주는 아침을 먹으면서 '콜리플라워'에 대해 말한다.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던 지미는 클라이드와 함께 레이싱 경기장의 금고를 털자고 말한다.
이 경기장은 매립지 위에 지은 거라서 씽크홀이 발생하는데, 지미는 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할 때, 지하 통로를 통해 현금이 오가는 파이프를 보았고, 그때부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지미와 클라이드는 감옥에 있는 조 뱅을 만나러 간다.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은 폭파전문가로, 지미 형제와 안면이 있다. 지미는 조 뱅을 설득해 함께 일하기로 한다. 조 뱅은 함께 일하되, 자기의 두 동생도 팀원으로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클라이드는 편의점을 자동차로 밀고 들어가 체포되고, 징역 90일의 비교적 가벼운 판결을 받고 '먼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여기에는 앞서 면회한 '조 뱅'이 있었다.
지미는 딸 세이디를 데리고 막내 멜린이 일하는 미용실에 왔다가 바깥에서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나는데,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실비아는 같은 학교 후배라고 밝힌다. 하지만 지미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해고 당한 회사에 짐을 가지러 간 지미는 공사가 일찍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옥에 있는 동생 클라이드에게 계획을 일주일 앞당기자고 말한다.
레이싱 경기장의 대형 금고에서 일하는 글리마는 택배로 생일케이크를 받는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글리마는 고맙게 생각하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는다. 글리마에게 케이크를 보낸 사람은 미용실에서 일하는 멜리인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들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는다. 어떤 경로든 멜리는 글리마가 레이싱 경기장의 대형 금고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 뱅의 두 동생은 늦은 밤, 씽크홀 공사장으로 들어가 노출되어 있는 현금수송 파이프를 통해 바퀴벌레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이 계획은 낮에 글리마에게 케이크를 보낸 것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직원들은 대형 금고 안에서 어제 먹었던 케이크에 바퀴벌레가 잔뜩 붙어 있는 걸 보고 기겁하고, 해충 관리회사 직원을 불러 소독한다. 이때 소독하는 직원이 조 뱅의 두 동생이다. 이들은 작업을 마치고 지미에게 전화해서 '코드 핑크'가 떴다고 말한다. 지미는 멜리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조 뱅은 감옥 동료 네이먼에게 제안을 한다.
연중 가장 큰 레이스가 펼쳐지는 날, 지미는 계획을 실행한다. 먼저, 감옥에서는 교도소장이 식당 점검을 하러 나오고, 모두 문제 없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조 뱅이 갑자기 토하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교도소 병원에서 조 뱅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클라이드와 만나 탈옥한다. 이들은 교도소를 드나드는 수송트럭 아래쪽에 나무관을 짜서 붙이고, 그 속에 들어가 숨는다.
감옥에서는 네이먼이 동료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킨다. 교도소장은 '코드 레드'를 선언하고, 교도소를 외부로부터 차단한다.
식당에서 간수 몇 명을 포로로 잡고 농성하는 네이먼과 동료들은 요구조건을 내건다. 폭동의 이유가 웃기는데, 교도소 도서관에 '왕좌의 게임' 5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도소장은 죄수들이 원하는 책을 곧 구입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네이먼은 6권과 7권도 가져오라고 말한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을 달라는 것인데, 교도소장이 아무리 설득해도 이들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식당의 폐쇄회로를 차단하고, 창문까지 모두 막은 다음 불을 지른다.
지미는 조 뱅의 두 동생을 깨워 레이싱 경기장으로 가라고 독촉한다. 경기장 바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통신망이 있는 외부 건물에 폭탄을 제조해 터뜨리고, 경기장 상가의 통신망이 차단된다. 카드결제가 안 되면서 현금만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현금은 곧바로 파이프를 타고 대형금고로 모인다.
조카 세이디를 학교에 데려다 준 멜리는 이혼한 새언니의 남편 차를 훔쳐 어느 주유소 앞에서 기다린다. 이 주유소는 교도소를 드나드는 수송트럭이 항상 멈추는 장소를 멜리가 미리 확인해 둔 곳이다. 조 뱅과 클라이드는 수송트럭 바닥에서 내려와 멜리의 차로 옮겨탄다. 알고 보니 멜리는 스피드광이었다. 영화 초반에 이미 멜리가 과속했다는 말이 지미의 이혼한 아내의 말로 나왔지만, 멜리는 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조 뱅과 클라이드는 지하 공사장으로 내려가고, 미리 와 있던 지미와 합류한다. 조 뱅은 젤리, 소금, 펜 같은 평범한 물건들을 조합해 폭탄을 만들어 내는데, 이 장면은 '브레이킹 배드'에서 마약을 만들어내는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를 뛰어 넘는, 대단한 화학 지식을 보여준다. 조 뱅은 화학식을 벽에 써가며 이 물질들이 결합해서 어떻게 폭발 효과를 내는지 지미와 클라이드에게 설명한다. 그렇게 튜브를 타고 들어간 폭탄이 터지고, 이들은 다시 튜브를 통해 돈을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대형금고에 있는 돈을 빼내기 시작한다.
돈은 쓰레기 봉투에 담아 밖으로 빼내는데, 조 뱅의 두 형제가 맡는다. 이들이 쓰레기차에 돈봉투를 싣고 나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잠깐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출입문이 열리지 않도록 만든 것도 지미였다.
돈을 다 밖으로 빼낸 이들은 조 뱅과 클라이드가 다시 멜리의 차에 타고 먼로 교도소 근처 소방서에 대기한다. 교도소에서는 네이먼이 식당에 불을 지르고, 화재 신고를 하자 소방차가 출동하고, 조 뱅과 클라이드는 소방차에 숨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간다.
멜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조카 세이디의 머리를 만져주고, 조 뱅은 교도소 병원 침대에 여전히 누워 있으며, 지미는 세이디의 학교 발표회에 참석한다. 세이디는 원래 부를 노래 대신, 존 댄버의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를 부른다. 이 노래는 영화 전편에 흐르며, 특히 지미가 즐겨 듣는 노래여서 세이디에게도 의미가 있다.
방송에서 경기장 강도 뉴스가 나오고, 경찰과 FBI가 투입된다. FBI 요원 세라(힐러리 스웽크)는 영화 뒷부분에만 나오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멋진 역할을 보여준다. 세라 요원은 교도소장을 만나 감옥에 있던 조 뱅을 면회한 사람이 지미와 그 동생 클라이드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들은 조 뱅을 두 번 면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이드가 편의점을 차로 들이박고 감옥에 들어온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교도소장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세라 요원은 지미의 핸드폰과 자동차를 추적하지만, 핸드폰은 요금을 내지 않아 정지 상태였고, 자동차는 구형이라 GPS 수신기가 달려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90일이 지나면 클라이드가 출옥한다-교도소에서 나오는 클라이드를 멜리가 마중한다. 클라이드는 '국가보훈처'가 찍힌 큰 가방을 하나 받는데, 관객은 내용물을 볼 수 없지만, 그게 돈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강도 당한 돈은 트럭에 담겨 발견되었고, 뉴스에서는 이들이 '촌뜨기 강도단'이라고 이름 붙인다. 즉, 갖지도 못한 돈을 털었다는 것이다.
조 뱅도 형기가 만료되어 교도소에서 나오고, 클라이드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간다. 조 뱅은 지미의 소식을 캐묻지만 클라이드는 지미가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조 뱅도 뉴스에 나오는 소식을 듣고, 빼돌린 돈이 전부 트럭에 실려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조 뱅의 집에 누군가 삽을 놓고 가는데, 조 뱅은 잠시 생각하더니 마당의 큰나무 밑을 파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지미와 클라이드가 교도소로 조 뱅을 만나러 갔을 때 나온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 사이 FBI의 수사는 종결되는데, 돈을 도난당한 '스피드웨이'에서는 보험금을 받아서 만족한다고,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결국 피해자가 없는 셈이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돈이 어떻게 빼돌려지는가를 보여준다. 단역에 불과했던 멜리가 큰 역할을 한다. 결국 이 모든 계획은 지미에서 시작해 클라이드, 멜리 세 남매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것이다.
지미는 자신의 계획에 도움을 준 네이먼, 실비아, 글리마에게 선물을 보낸다. 지미는 엄청난 돈을 숨겨 놓고도 평상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한다. 지미는 실비아를 만나고, 멜리는 조 뱅과 데이트를 하며, 클라이드는 술집에 처음 온 세라-바로 그 FBI 요원-를 만난다.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지미가 왜 '스피드웨이' 회사의 대형 금고를 털 생각을 한 것일까였다. 그가 갑자기 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이혼한 아내와의 법정 싸움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려고? 술집에서 싸운 건방진 레이싱 회사 사장 때문에?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서?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나 공식적으로는 사건이 종결되었지만, 세라 요원은 이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라 요원이 술집에 나타난 것은, 앞으로도 이야기가 계속 진행될 것이며, 지미를 비롯한 동료들이 조금만 실수하면 체포당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지만, 세라 요원을 보여줌으로써, 결말을 열어 둔 것이다.
지미는 대기업이 번 돈을 훔치고, 대기업은 잃어버린 돈을 보험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게 된다. 세라 요원이 스피드웨이 사장에게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잃어버린 돈의 총액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험금을 산정할 수 있는가. 이들은 막대한 자본이 움직이는데 서로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만, 그 돈 역시 자기 돈이 아니며, 거액의 보험금이라 해도, 전체로 보면 푼돈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는 많은 제작비를 들이지 않아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능력 있는 감독의 연출이 결합하면,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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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이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모든 것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독일 물리학자들이 우라늄의 원자핵을 쪼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를 비롯한 미국 물리학자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원자폭탄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국 정부 역시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을 책임자로 삼고 신무기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을 추진한다.
하지만 맨해튼 계획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로브스 대령은 오펜하이머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인 로스 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짓고 가능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과거 공산주의에 경도됐던 오펜하이머 이력이 재조명되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는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공격에 직면한다.
크리스포터 놀란 필모의 정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기영화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쓴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스크린에 옮겨 미국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다뤘다. 영화는 특히 그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과정과 전후 수소폭탄 반대 운동을 펼친 뒷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부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CG 없이 트리니티 실험의 핵폭발 장면을 재현했다고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1달 전에 개봉한 영화 <바비>와 '바벤하이머' 밈으로 얽혀 이슈였고, 해외에서는 <바비>와 함께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다. 워너 브라더스가 아닌 유니버설 픽처스가 처음으로 놀란 영화를 단독 배급한 점도 화제였다.
사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3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는 작업은 어렵다. 원작 평전은 심지어 오펜하이머의 삶만 다루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을 사건과 정치인, 과학자의 이름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펜파이머>는 더욱 놀랍다. 놀란의 스타일, 기술, 직관, 통찰력이 한 데 모여 모순적인 물리학자의 일생을 긴장감 넘치게 재구성했기 때문. 달리 말해 <오펜하이머>는 영화감독 놀란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폭탄 같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기본에 충실하다.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사실 그의 내면과 감정선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좌익 과학자.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지휘한 유능한 행정가. 자기 손으로 만든 신무기를 경계하는 야심 찬 정치인. 모순적인 세 인물이 한 사람이니 당연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마치 원자폭탄처럼 재구성한 놀란의 각본은 그의 내면을 유려하게 보여준다. 핵분열물질의 원자핵에 중성자가 충돌하면 원자핵은 분열되고, 더 많은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과 충돌해 새 핵분열이 발생한다. 원자폭탄은 이 연쇄반응에서 생긴 에너지를 활용한다.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트리니티 핵실험이라는 목표까지 거침없이 질주한다. 관객의 시선을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 헌신하는 오펜하이머에게 집중시킨다. 그러고 나서는 트리니티 실험이라는 클라이맥스가 유발한 연쇄적인 폭발로 시선을 돌린다.
미국 정치권과 과학계는 수소폭탄 개발을 두고 갈등을 빚는다. 오펜하이머의 주변인도 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져 계속해서 충돌한다. 오펜하이머는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공격당한다. 놀란이 처음 1인칭으로 작성했다는 각본은 이 지점에서 빛난다. 트리니티 실험 전까지는 맨해튼 계획이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이 주인공이 된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양심의 가책, 매카시즘과 스트로스에게 시달리는 고통 등 오펜하이머의 감정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원자폭타과 같은 구조는 절제미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 직후, 영화는 순간적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원자폭탄이 터질 때 극장은 순간적으로 고요해진다.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를 개발했다는 기쁨에 심취하지 않는다. 인류가 다룰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힘을 손에 넣은 두려움이 정적 속 독백을 통해 전해진다. 그 덕분에 관객은 오펜하이머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다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강당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흥분한 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는 폭탄 폭발음과 오버랩된다. 이 장면은 원자폭탄으로 인한 흥분과 열광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그가 받은 충격과 죄책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원자폭탄 희생자 시신을 오펜하이머가 밟는 환상이 나오기도 전에, 관객은 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날 때, 그의 선택 중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 없을 정도다.
양자역학의 인문학
<오펜하이머>는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펜하이머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그가 소련의 스파이가 아니었다고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복권한 게 불과 반년 전 일이다. 영화는 이 모순적인 물리학자에게 스스로를 변론할 기회를 준다. 동시에 관객이 스스로 그를 판단할 공간도 열어준다.
핵심은 컬러와 흑백의 전환이다. 오펜하이머의 시점에서 흘러가는 'Fission(핵분열)'이라는 제목의 파트는 컬러로, 스트로스가 중심이 되는 'Fusion(핵융합)'이라는 이름의 장면은 흑백으로 묘사된다. 원자폭탄의 원리인 '핵분열'은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과정을 보여준다. 수소 폭탄의 원리인 '핵융합'은 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은 마치 양자역학의 인문학적 해석 같아 보인다. 양자 역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관측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전자나 빛이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중첩되어 있는 두 가지 상태는 관측을 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한 가지 성질로 표현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관점에서 주인공을 관측한다.
애국심이 투철한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자이고,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지만 반핵 운동의 중심에 선 정치인이 있다. 그는 자신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영화는 그의 시점에서 그 모순점을 이해시키고, 타인의 시점에서 그 역설과 중첩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인간이 그 자체로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 그렇기에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상기시킨다. 이는 제목에 걸맞은 접근법이다. 오펜하이머는 본래 양자 역학 연구자였으니까.
놀란의 <소셜 네트워크>
그래서일까? <오펜하이머>는 마치 놀란의 <소셜 네트워크> 같다. <소셜 네트워크> 역시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모아놨기 때문. 저커버그의 시점과 동업자였던 윙클보스 형제 및 왈도 세브린의 시점을 충돌시킨다. 두 영화가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도 흡사하다. <소셜 네트워크>는 법원 조정 과정으로, <오펜하이머>는 청문회로 서로 다른 시점의 충돌을 보여준다.
<소셜 네트워크>가 받은 찬사를 생각하면, <오펜하이머>는 작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역량을 재증명하는 장이기도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놀란의 통찰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므로. 그간 놀란은 캐릭터를 플롯의 장치와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르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통찰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조연 캐릭터가 여전히 수단처럼 느껴지기는 해도 이번만큼은 놀란이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놀란의 트레이드 마크
그러면서도 놀란은 자기만의 스타일과 색채를 잃지 않았다. <덩케르크>처럼 <오펜하이머>도 시간대가 세 개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까지, 또 그 이후로 이어지는 시간대가 주 재료다. 1954년 원자력 협회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청문회는 양념이다. 특히 두 시간대는 철저히 조각난 상태로 삽입된다. 주요 사건에 따라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 형태로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을 비트는 연출과 구조는 주제의식과 긴밀히 연관된다. 오펜하이머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 붙임으로써 과학자의 책임을 논할 공론장을 연다. 통상적으로 과학자는 신기술의 개발자로만 인식된다. 그들의 역할은 기술을 만드는 데서 그친다고 여겨진다. 오펜하이머도 그랬다. 그는 원자폭탄의 오남용과 악영향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건 과학자의 몫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기가 바꾼 새로운 세상을 목도한 뒤로 그는 달라진다. 과학자에서 행정가, 정치인으로 변한다. 새 기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앞장서야 한다고 확신한다.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Thomas P. Hughes)의 표현대로 이제 그는 '시스템 건설자'(system builder)가 되려 한다. 그는 사회 구조와 관계망 안에서 신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원자력을 평화롭게 이용할 체계를 만들지 못했고, 수소폭탄의 개발도 막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의 삶도 지키지 못했다. 대통령을 설득할 만큼 신중하지 못했고, 앙심을 품은 정치인을 꺾을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마치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지만, 정작 자기 미래는 지키지 못한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 기술자로서 성공했지만, 시스템 건설자가 되지 못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 없이 들춘다.
SF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기 영화
이러한 맥락에서 <오펜하이머>는 외관과 달리 SF 영화 같은 면도 있다. 많은 SF 영화는 과학의 발달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우려로 가득하다. 달리 말해 SF 영화는 과학에 근간을 둔 스펙터클을 통해 오히려 인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통로나 다름없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SF 영화의 본질을 품고 있다. 영화는 만약 오펜하이머의 고뇌를 잊는다면, 그의 업적과 과오에서 현명한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손으로 전 세계를 초토시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설령 0에 가까운 확률이라 해도 인류가 세상의 파괴자가 되는 날이 멀지 않을 거라고.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정점은 멕시코에서 핵폭탄이 폭발한 순간이 아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킬리언 머피의 표정과 지구를 불바다로 만드는 핵 미사일이 교차되는 결말이 정점이다. 오펜하이머와 놀란이 입을 모아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경고를 가득 담고 있으니 뇌리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오펜하이머>는 테넷의 정신적 속편이자 프리퀄인 셈이다. <테넷>의 주된 플롯은 핵폭탄을 막는 미션이었고, 인류의 존속을 위한 현재와 미래의 전쟁이 시대적 배경이었으니까. 이는 SF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준 놀란스러운 착상이기도 하다.
모두가 좋아할 영화는 아니다
물론 <오펜하이머>는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영화다. 천 페이지 분량의 책을 영화화한 만큼 밀도가 높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놀란의 꼼꼼한 각본이 반갑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맨해튼 계획 이전의 오펜하이머의 개인사나 초기 생애에 관련한 내용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도 낯선 영화다.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 대신 트리니티 실험을 기점으로 영화가 다시 시작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 친절한 영화도 아니다. 1930~50년대 미국 사회를 강타한 정치적, 국제적 이슈에 대한 배경 지식을 요한다. 갈 길이 바쁜 만큼 상세한 설명은 제공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기대에 비해 시각적 임팩트가 약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쾌감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그래도 배우 덕분에 진입장벽이 낮아지기는 한다. 우선 킬리언 머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놀란 사단 중 하나로만 알려졌던 그는 이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다. 명배우들의 향연도 인상적이다.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데인 드한, 라미 말렉, 플로네스 퓨는 앙상블을 이루며 머피 뒤를 단단히 받쳐준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니었다면 후반부는 힘이 빠져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몇몇 단점은 취향의 문제이지, 완성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놀란이 의도한 방향성만 정확히 짚어 쫓아간다면 <오펜하이머>는 <인셉션>, <다크 나이트>, <덩케르크> 보다도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놀란이 그간 자기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스타일과 장점, 통찰력을 한데 모아 만든 폭탄 같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종합하면, 단언컨대, <오펜파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마스터피스다.
Outstanding 특출함
원자폭탄 섬광과 굉음으로 빚어낸 프로메테우스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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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99%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방금 카페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켰다. 늘 먹던 딥초코라떼를 주문했다. 그리고 뚜벅뚜벅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뭐라고 쓰지? 고민했다. 갑자기 지갑과 휴대전화가 어디 있지? 생각했다. 에어팟으로 음악은 나오는 거 보면 분명히 전화기는 근처에 있다. 주머니를 뒤졌다. 여긴 없다. 내가 지금 앉은 책상이 유리로 된 책상이 있고 아래에 투명한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 손을 슬쩍 넣었다. 역시 없다. 뭐지? 갑자기 오싹해졌다. 가방에 있나? 가방에 손을 슬쩍 넣었더니 여기에도 없다. 순간 당황했다. 어쩌지. 근처의 가방을 다른 의자로 가져다 놓으려고 할 때 전화기와 지갑이 보였다. 노트북을 열어놨고, 그 기계에 가려져서 못 찾는 것이었다.
늘 있는 일인 것 같아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갑자기 상상에 빠졌다. 만약 누가 훔쳐간 거라면? 지금 앉아있는 자리 위치상 제일 구석에 있기 때문에 나를 굳이 찾아오는 게 아닌 한 내 걸 가져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만약에 어린, 한 7살쯤 되는 애가 내 걸 훔쳐갔다고 하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전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생각난다. 소매치기 같은 범죄가 어리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역시 나쁜 놈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구먼'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난 경찰서에 가지 않을까? 그리고 어리다고 봐주고 이런 것 없이 처벌받게 했을 것 같다. 그게 그 애한테도 좋은 거고. 나 자신한테도 좋을 테니까. 당연하지. 나는 저 애의 도둑질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까. 이런 나의 마음가짐은 평소에 뉴스를 볼 때에도 이어진다. 내가 강박장애가 있어도 돈을 훔치고 싶은 강박에 시달렸던 적은 없다. 비슷한 느낌으로 '저 사람을 칼로 찌르지 않으면 불안할 것 같다'라고 생각한 적 역시 없다. 난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이 소년이라고 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년원 제도가 그렇게 옳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도덕관념과 나이는 별개의 문제니까. 이런 나에게, 또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넷플릭스가 드라마 한 편을 가져왔다. 과연 소년범죄의 해답이 강한 처벌에만 있을까. 넷플릭스로 가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드라마인가요?
한 판사가 있다. 이 판사는 소년범죄에서 일하는 판사다. 판사는 연화 지방법원이란 곳에 발령받는다. 판사는 자기의 후임을 확인한다. 마음 따뜻해 보이는 남자 판사와 아래 직원들이 있다. 근무 첫날. 소년범죄 전과자들과 함께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식당의 손님이 지갑을 분실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판사는 전부터 표현하고 있던 소년범죄자들에 대한 혐오를 분출하며, 일행이었던 한 여자아이에게 책임을 묻는다. 적당히 타이르고 이해해주고 이런 거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아이의 도둑질을 들춰내 망신을 준다. 주인공 심은석 판사는 그런 사람이다. 온정도, 따뜻함도 없는 그런 법관이다.
드라마는 이 심 판사에 대한 인물 제시를 베이스로 소년범죄자들에 대한 판결 과정을 보여준다. 드라마의 핵심 소재는 이 것이다. 토막살인사건,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 집단성폭행 등을 다루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 소년범죄의 이면을 다룬다. 아. 드라마에서 다루는 세부 소재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년범들을 수용하는 소년범센터도 드라마에 담겨있다. 그러니까 소년범죄자들이 벌이는 범죄자가 얼마나 잔혹하냐가 소재가 아니라는 뜻이다(물론 폭력 수위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수적인 것일 뿐). 소년범죄가 어떻게 일어나고, 왜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처분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로 나서는지도 묘사한다. 이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다.
2. 어떤 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 역시 소년범을 싫어한 것 같다. 강박장애가 있어도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이 정신질환이 있다는 묘사 하나만으로도 무슨 병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드는 살인귀가 된다는 식의 인식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몇몇 병이 그런 폭력적인 수위로 분출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런 폭력성과 내면의 아픔이 무조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이 어리다고, 정신질환자라고 봐주고 이런 게 좀 맘에 안 들었다. 나 역시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 가령 나 역시 '시험지 유출 범죄'에 노출될 뻔했던 사실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일은 공정을 해치는 일이라 절대적으로 일어나선 안 되는 게 맞고 피해자는 엄벌에 처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서울대를 위시한 명문대 지상주의를 만든 쪽에 기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범죄에 기여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내가 뭘 바꿀 수 있었을까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쉽다. 나 역시 학벌에 지배당하고 있던 사람일까 봐. 그런 마음이 하나둘씩 쌓여서 지금의 10대가 고통받는 세상을 만든 건 아닐까 싶어서. 이런 미친 세상에 1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를 강요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소년심판은 이런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것에 대한 응당한 처벌만을 핵심 키워드로 삼지 않는다. 나름의 균형 있는 시각으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어른들을 두세 번 생각하게 만든다.
3. 소년법을 소재로 다뤘습니다. 소년범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나요?
폭력의 수위를 미화해 무조건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적절한 처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년범 센터를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 에피소드 중간에 센터장과 10대 아이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1) 아이들이 먼저 심한 말과 함께 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2) 센터장의 폭언과 푸대접 때문에 먹지 않았다가 대립하는데, 이 경우를 둘 다 상황 극화시켜 제시한다. 난 이게 분명한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연출자가 일단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두 번째. 이 두 가지 논쟁에서 '어느 게 옳은가'를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실제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나서 좀 화가 났다. 이렇게 한쪽의 시선만을 제시하는 연출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후반부에 집단성 범죄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기서 성범죄 용의자가 피해자 아버지와 대화하는 신이 있는데, 아이패드에다 침을 뱉고 싶었다. 그러니까 범죄자들의 악성을 묘사하는 데는 가감이 없었고 이들의 범죄행각에 처벌이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제시했다는 뜻이다. 무조건 미화하는 듯한 태도를 걱정하시는 분들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된다.
4. 폭력의 수위는 어떠한가요?
성범죄 묘사가 있다. 또 학교폭력 묘사가 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아는 10대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 묘사는 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근데 쓸데없이 외설적이고 잔인하고 이러지는 않다. 적당히 화나고 적당히 거부감이 있다.
5. 이 드라마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3번에서 쓴 부분이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이다. 드라마는 쉽게 편을 들지 않는다. 즉 무작정 소년들을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쓰지 않았다. 이와 반대급부로 무조건적인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도 말한다. 왜 소년범죄가 일어나는지. 일어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이들에게 과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교화의 효과가 어떤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섬세하게 녹아내리며 탄탄한 극본의 힘을 보여준다.
다른 장점은 떠나간 이들에 대한 예우다. 소년범죄로 인해 세상을 떠난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고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화가 여전히 날만한 일이다. 이 드라마는 이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해서 사려 깊은 묘사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쓸데없이 잔인하지도 않고 외설적이지도 않다. 적당히 거부감이 들어 화가 나는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또 떠난 이들에게 억지 신파를 주입시키지 않고도 감정이입을 하게 해 주니 난 이 정도면 좋은 시각으로 이들을 대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주인공 심은석의 입체성은 어느 정도 생각하기 쉬웠지만 차태석-나근희-강원중 캐릭터는 이제까지 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인물들이라고 생각한다. 클리셰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 분들도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단적으로 극을 위해 희생당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존재 이유만으로도 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이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다. 속사정을 가지고 있는 심은석 역은 김혜수 배우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또 입에 욕을 달지 않고 연기를 하는 김무열 배우도 연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신선했다. 또 이성민 배우는 찐 50대 가장의 잔소리 톤이 나와서 놀랐다. 그중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이정은 배우다. 이정은 배우는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그분의 다른 특성에 그런 모습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조연진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보셨으면 알 염혜란-이상희-이석형-유재명-이봄-심 달기 등 짱짱한 배우들이 드라마의 재미를 덧붙인다.
6. 이해가 어려운 작품은 아닌가요?
아니오.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7.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없다. 무난하게 볼 수 있다.
8. 왜 추천하고 싶나요?
드라마에서 이성민 배우가 맡은 강원중이 이런 대사를 한다. "중요한 건 법이 아냐. 시스템이지." 또 이정은 배우가 맡은 나근희 역이 이런 대사를 한다. "소년법은 스피드예요." 이 두 가지 대사는 상충한다. (드라마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쓰지 않겠다) 법원이 범죄자들에게 사려 깊은 성찰 없이 교화 명령을 내리거나 강한 처벌을 했다고 해보자. 과연 그게 능사일까? 교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은 사실 많은 것을 염두하지 않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극 중 한 인물의 대사처럼 다른 나라에서의 예를 들며 소년범죄의 강한 처벌이 모든 해결책이 아니라는 게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 또 징역 15년 받고 다시 사회에 나온 전과자가 다른 범죄를 일으킨다는 보장이 있나?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것에 대한 예시가 첫 번째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폭력의 대물림과 범죄자들에게 냉담한 시선이 또 다른 범죄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내는 분노 이면에 깔려있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소년범죄자는 가해자가 맞다. 그리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절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끔찍한 폭력을 일으켜 당연히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이기도 하고, 어리기 때문에 더 나은 인간이 될 교화의 기회를 받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있는 부모님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적절한 교육이 없다고 누구는 범죄 저지르기가 쉽다면 그게 100% 그들의 탓이라고 볼 수 있을까. 드라마는 이 두 가지의 처지가 절대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제시한다. 설득력 있게. 말과 글로는 이렇게나 쉽지만 시각이 트이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탁월한 깊이로 관객들에게 도움을 준다.
뉴스로 접하는 강력범죄는 전체 소년 범죄 중 1% 정도라고 해요. 그런 나머지 99%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심은석 역의 배우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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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하는 노동자, <미싱타는 여자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함
*영화 개봉은 내년 1월 예정
암살되거나 탄핵되거나 재판받은 역대 대통령들의 공적을 평가할 때 흔히 나오는 소리가 있다. 비록 독재를 좀 했지만, 사람을 좀 고문했지만, 대량학살을 좀 명령했지만 그래도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지 않았느냐고, 그 덕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라는 소리이다. 민주주의와 사람의 목숨과 존엄을 희생해 경제를 도모하는 것 자체도 합리화될 수 없지만, 칭송받는 발전의 과정에서 죽어가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시몬 베유가 <중력과 은총>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 중 이반의 말을 인용해 "이 거대한 건축물이 더없이 훌륭하다 한들, 이것을 얻기 위해 어린아이의 눈물 한 방울이라도 치러야 한다면 나는 거부하겠"다고 했듯이, 한 명의 노동자로서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것에 반대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자본주의 논리 하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한 사회와 자본가와 정부에 맞서 싸우고 저항한 노동운동가들의 이야기이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시사회는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휴식할 권리를 위해 투쟁한 주인공들이 청춘을 보낸 평화시장에서 멀지 않은 장소다. 본인 역시 어린 나이부터 노동해야 했던 전태일은 청계천의 공장들, 특히 자신이 일하던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고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분개했다. 그는 몇 년 간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동료 노동자들을 모으고 근로기준법을 알리려 노력했다. 1970년 11월에 시위를 계획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시위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몸을 불살라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환경 개선을 부르짖었다. 전태일의 분신 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이 다큐멘터리는 전태일이 지핀 작은 불씨를 이어받은 투쟁자들이 겪은 싸움과 삶을 조명한다.
평화시장의 의류 공장에서 일한 '시다'들은 주로 13~17세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환기도 되지 않고 섬유먼지가 날리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잘 먹지도, 쉬지도, 다리를 펴지도, 화장실을 편하게 가지도 못한 채 하루의 반이 넘는 시간을 일해야 했다.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는,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오게 된 계기도 다양하다 - 어떤 이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어떤 이는 여자가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 끔찍한 일터에 오게 되었다. 전태일 분신 사건을 계기로 평화시장에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조직한 노동자들은 배워야 부당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어린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노조교실이 열렸다. 인터뷰에서 한 분이 말하기로, 노조교실에서 1부터 조까지 숫자를 한자로 읽고 쓰는 법(당시 은행은 금액을 표기할 때도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을 배우고 받은 과제가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고 예금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교육은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성취감을 얻는 경험을 주어 세상을 바꾸려는 적극성이 발아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독재 정부는 노동자가 배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경찰은 강압적으로 노동교실을 폐쇄했다. 1977년 9월 9일, 180여 명의 조합원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노동교실 건물 안에 들어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이고 민주화운동가인 '어머니' 이소선의 석방과 노조교실 반환을 요구했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던 노조원 중 한 명은 3층에서 뛰어내려 척추에 큰 부상을 입었고, 셋은 유리조각으로 배와 팔을 그어 심각하게 피를 흘렸으며, 많은 어린 여성 조합원들이 전태일처럼 분신하겠다고 경찰을 위협하며 사무실 집기에 불을 질렀다.
이날 53명의 조합원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주동자'로 추정되는 노조원들은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며 감옥에 갇혔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온 대학생들과 달리 학력 없는 노동자들은 감옥 안에서도 간수들에게 차별적이고 더 가혹한 대우를 받았고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씻거나 속옷조차 갈아입지 못하게 하는 학대가 그 일부였다. 반공 사상이 권력을 강화하고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던 시대, 독재 정권은 살기 위해 투쟁한 노동자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로 몰아세웠다. 누가 노동조합에 나가라고 시켰냐고 배후를 캐묻는 것은 물론,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을 지원한 이소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니냐고 다그치고 이들이 시위한 날짜인 9월 9일이 김일성의 생일이니 공산주의에 매수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사수투쟁 당시의 상황을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생생하고 자세하게, 고통스럽고 슬프게 들려준다. 평범하게 바다로 놀러 가기도 하고, 장시간 노동에 지쳐 남산에 수면을 취하러 올라가기도 했던 일상도, 노동조합과 노조교실을 위해 맹렬하게 저항한 투쟁기도 모두 하나의 인생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함께 싸우던 동지와 가정을 이뤘고, 오랜 기간 가족에게 아픈 기억과 영광을 숨기고 살다 뒤늦게야 말하기도 했으며, 한때 같은 길을 걸었지만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의 연락을 기다려오기도 했다. 담담한 텍스트로 전달할 수 없는 열정과 분노, 슬픔과 감동. 역사의 한 장이자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미싱타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지금을 살고 있는 관객인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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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가장 빛나는 시
영화 <패터슨>은 단조롭다면 단조롭고, 풍성하다면 풍성한 일주일을 담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버스를 운전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그 날 분량의 창작 혼을 발휘해 무언가를 리폼하고 있고, 저녁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서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들이켜는 삶. 본인의 이름과 같은 패터슨이라는 도시에서 그렇게 매일 비슷하지만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패터슨의 일주일이다.
작은 진폭으로 일상은 매일 다르게 변주된다. 어떤 날은 아내가 컵케이크를 굽고, 어떤 날은 기타를 사고 싶다고 한다. 어떤 날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남성들의 대화를 듣게 되고, 어떤 날은 이 마을에 유일한 아나키스트 십대 커플의 대화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내내 패터슨은 끊임없이, 부지런히, 쉬지 않고 시를 캐낸다. 버스를 출발하기 전에, 점심시간에, 작은 노트를 들고 앉아서 계속 쓴다. 직장 동료가 아침마다 "물어본 김에 말이야" 하면서 매일 다르게 변주되는 일상에서 자질구레한 불평을 셀 때, 패터슨은 매일 다르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적확한 단어로 붙잡아 엮으며 시를 쓴다.
가끔 나도 시를 쓴다. 휴대폰 메모장에 [작은 시]라는 폴더가 있다. 다듬다 만 시, 언젠가 빚어내고 싶은 시어, 만족스럽게 완성한 시, 다시 읽다가 반쯤 지운 시, 같은 것들이 섞여 있다. 그것들을 모아 언젠가 공모전에 시를 내보려고 한 적이 있다. 최소 편수에 맞추기 위해 그동안 썼던 모든 시를 다 끌어모으다가 도저히 부족해 중2병 시절 썼던 노트까지 뒤진 적이 있었다. 그 시를 모두 인쇄해 침대 위에 펼쳐놓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묶어 보면서 순서를 배열하는 내내 나라는 인간의 지난 십여 년 변천사를, 어쩌면 나의 내장 같은 것을 펼쳐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십수 년의 장구한 시간이 불과 몇십 장 되지 않는 종이로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매일 다른 시구를 적는 패터슨이 굉장히 다작(多作)한다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패터슨 자신에게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공모전 같은 곳에 내기 위해 시를 정리하고 묶는 일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의 시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세상에 내놓자고 계속해서 그를 설득한다. 아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과 패턴을 과감하게 집안 곳곳에 드러내고, 자신 있게 컵케이크를 만들어 마켓에 내놓으면서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새로이 가슴 뛰는 일이 생기면 남편을 졸라 기타를 사고, 혼자 뚱겨 보면서 이미 포크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시를 마음 다해 자랑스러워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분명 아름답고 다정하다. 그리고 글은 분명 읽는 사람에게 닿아야 하니 사실 그의 말이 맞다. 패터슨이 그토록 좋아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또한 그의 시를 소리쳐 드러냈기에 지금 패터슨의 손에 시집이 놓여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은 글을 쓰고 싶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꼭 등단을 하거나 학력이 높거나 특이한 경험을 한 사람이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등단보다 셀럽이 되는 쪽이 책을 내기엔 훨씬 빠르고 쉬울지도 모른다. 우후죽순처럼 책이, 작가가 솟아나는 세상. 그곳에서 우직하게 얼굴을 붉히며, 아직은 드러내지 않을 시를 쓰는 사람은 확실히 섬 같은 구석이 있다.
시집 한 권 내지 않았어도, 늘 자신을 버스 운전기사라고 소개해도 패터슨에게는 그런 섬 같은 시인의 면모가 보인다. 먼 훗 날 패터슨 시의 누군가가 (예를 들면 엄마와 언니를 기다리며 시를 쓰던 여자아이 같은 누군가가) 패터슨의 초기 시집을 들고 걸어 다닐 것만 같은, 지금 이 모습은 그 시대의 프리퀄 같다는 예감에 휩싸인다. 좋은 시는, 시인은 시간을 초월하므로 과거는 먼 미래를 닮아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해서, 조바심이 난다. 더 좋은 문장을, 더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길을 잃는다. 글을 향한 짝사랑은 그렇게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정말 좋은 문장으로, 좋은 이야기로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어 하다가도, 어떨 때는 그냥 내 이름자 박힌 책과 작가라는 타이틀과 거기서 나오는 지적 허영심만 쏙쏙 취하고 싶은 것 같다. 세상에 인정받는 글을 보며 부러워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마음이 비단 시와 글에 대한 마음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정답을 모르고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의 태도로 사는 게 문제라는 걸. 고쳐야지 마음 먹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과제로만 부여하곤 하는 스스로를 잘 안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 일본인이 던진 말처럼, 때로는 여백이 상상의 여지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패터슨이 일상 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지금, 아직 등단 전이고 원고 청탁이나 강연 요청이 들어오지 않고 그에 대한 비평이 들려오지 않는 지금이 그에게 가장 빛나는 시를 쓸 수 있는 때인지 모른다. 정말 그의 정수가 흘러나오는 건 지금일 것이다. 누군가의 초기 작품이란 가장 거친 날것으로 그가 드러나는 방식이니까. 가장 그다운 것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니까.
그 사실이 기묘하게 나에게 위안을 준다. 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시간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것들을 이루어가는 시간이라는 점이. 패터슨이 긴 다리를 성큼성큼 옮기며, 그냥 좋은 사람 소리 듣는 평범한 이웃처럼 웃으며, 그런 날들을 담담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면 지금이 그의 가장 빛나는 시라는 생각이 드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어느새 조바심을 내려놓고, 여백이 주는 여지를 즐길 수 있다.
패터슨이라는 캐릭터뿐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나를 그렇게 가르친다. 개가 납치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협박처럼 들리는 젊은이들의 경고 이후에도 패터슨은 여전히 개를 바 밖에 묶어놓는다. 조금 머뭇거리다 개에게 "납치당하지 마."라고 말해두는 게 전부다. 당연히 납치 예방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부부가 개를 잃어버리게 될까 계속 불안했다. 1장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 반드시 쏴야 한다며? 어디서 체호프의 총 얘기는 주워듣는 바람에. 그러나 그건 나만의 불안이었다. 단편적인 지식은 나름의 쓸모가 있지만, '그래야 한다'라고 사람을 옭아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너무 많은 순간 누군가의 정의를 기다린다. 시란? 시는 이런 거야. 시는 어떤 순서로 묶어야 하지? 이런 규칙에 따라 묶어야 하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바보짓을 자꾸만 반복한다. 이런 건 문예창작과에 갔으면 배웠으려나?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툭하면 전공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해도 되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누군가 맞다고, 혹은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길 기다린다.
시는 그런 마음 바깥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 시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모른다. 다만 지금 쓰는 대로, 나의 시들은 내가 묶고 싶은 대로, 그 느낌과 그 속도가 맞다. 잘 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 대로 담담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맞다. 마음이 또 불안해지거든 눈을 들어 패터슨을 보자. 그리고 조용히 작은 노트를 펴자. 다시 지금의 빛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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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위해 억지로 찍어낸 비극의 -The end-
디 엔드 (The End)
삶을 위해 억지로 찍어낸 비극의 -The end-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SF, 뮤지컬
러닝타임 : 148분
감독 : 조슈아 오펜하이머
출연 : 틸다 스윈튼, 조지 맥케이, 모지스 잉그럼, 마이클 섀넌, 브로나 갤러거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없음
<디 엔드>는 <액트 오브 킬링>, <침묵의 시선>으로 국내에서도 긍정적인 평을 받았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신작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SF, 아포칼립스, 뮤지컬 장르가 섞인 영화지만 앞서 그가 보여줬던 깊은 통찰력과 고뇌는 그대로 담겨있는 작품이다.
알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난 듯한 지구. 한 부유한 가족은 소금 광산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꾸민 후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간다. 엄마, 아빠, 아들, 그리고 엄마의 친구와 집사, 의사. 이들은 나름의 체계와 각자의 역할을 지키며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든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소녀가 광산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바깥세상에서 살다 온 소녀는 가족들이 애써 외면해온 세상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건드리기 시작하고 굳건했던 그들의 세상이 조금씩 흔들린다.
<디 엔드>는 살기 위해 망각을 선택한 어른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모든 게 바다 밑으로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 가족은 행복하고 완전한 가족의 삶을 노래한다. 시들지 않는 꽃, 아름다운 그림, 번영할 우리 가족.
무너진 바깥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듯한 이 광산은 외부인의 침입이 불가능한 요새 구조로 되어있고 먹거리를 구할 생태계도 잘 조성되어 있으며 주요 동력이 될 불은 앞으로 100년은 더 타오를 것이다. 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아들이 만들고 있는 미니어처와 그가 쓰고 있는 (검열된) 아빠의 자서전 내용처럼 완벽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편하고 묘하게 인위적인 느낌이 있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변화에 관심을 갖는 아들과 그렇지 않은 가족들아들은 바깥세상에 대한 기억이 없다. 세상은 아들이 아주 어릴 때 붕괴됐고 그는 사진과 그림으로만 바깥세상을 경험하며 자란다. 그런 아들에게 외부인, 그것도 비슷한 또래의 이성을 만나는 건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큰 자극이다. 안절부절하던 아들은 소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시계를 선물한다. 시간 관리에 좋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아들은 등장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간과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갖는 인물이다.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함만 가득한 광산에서 자라온 아들은 사진으로만 봤던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한다.
바깥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살아남은 이들에겐 그저 나의 순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 앞으로 생존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들을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바깥세상에서 보낸 시간을 망각하고 최후의 방주 같은 광산 속에서의 생활을 이어간다. 어쩌다 들어오게 된 소녀 또한 아들의 시계 선물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광산에서의 삶을 이어가길 소망한다.
후회를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성장이란, 생존이란 이렇게 슬픈 것인가어른들은 시간을 잊고 살아간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나온 시간 속 사람들과 자신을 잊고 살아간다. 엄마는 함께할 수 있었음에도 끝내 데려오지 않은 엄마와 언니 (아들이 본 사진 속 할머니와 이모), 아빠는 석유 회사를 운영하며 저질렀던 사회적 폭력과 세상을 망하게 만든 어떠한 사건 (신문 기사 속 사건들), 친구는 약쟁이 아들 톰을 버리고 광산으로 들어온 것. 이 세 사람은 지나온 시간에 얽힌 죄책감을 외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말을 꾸며낸다. 소녀는 처음엔 어른들과 다르게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과 슬픔을 반복해 드러내지만 살아남기 위해 결국 슬픔을 망각하는 선택을 한다.
아들은 가족들의 거짓말들을 진짜라 믿으며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톰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던 친구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되고 이 광산이 누구를 위한 안식처냐며 분노한다. 가족들이 만들어준 안정적이고 후회 없는 삶만을 살아온 아들은 가족들의 ‘어쩔 수 없었다’는 말과 의도적인 망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가족들을 이해하게 만들만한 사건이 생긴다. 그건 바로 아들이 가장 의지했고,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던 친구의 자살이다. 친구는 아들의 분노를 통해 오랫동안 외면한 톰에 대한 죄책감을 다시 마주한다.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아들은 친구의 자살에 크게 슬퍼하고, 화를 낸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후회와 아픔을 망각하는 걸 선택한다.
아들의 나이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20년 전 외부인이 들어왔을 때 아들이 죽을뻔했다는 엄마 아빠의 말, 아들의 외모를 보면 그는 최소 20살은 넘은 청년일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광산 안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고, 아들을 한번 잃을 뻔했던 가족들이 열심히 그를 케어했기에 그의 인생엔 사랑 같은 부드러운 감정만 있었다.
친구의 죽음을 겪기 전의 아들은 슬픔과 후회를 모르는 몸만 큰 어린아이였다. 아들은 파자마를 입은 채 잠이 오지 않는다며 친구의 방을 찾아가 응석을 부리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 나이답지 않게 어른들의 말에 휩쓸리거나 쉽게 당황하고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랬던 아들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앞서 다른 가족들이 느꼈던 후회와 슬픔이라는 감정을 학습하며 어른이 된다.
친구가 죽고 남겨진 가족들은 언제 아픔을 겪었냐는 듯 다시 행복하고 완벽한 가족의 모습으로 아이의 생일파티를 즐기고 사진을 찍는다. 이상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후회와 아픔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것들을 잊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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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고스트 버스터즈 다시 출동!!!
1980년대 두 편이 개봉했던 고스트 버스터즈의 세 번째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2016년에 만들어진 여성 중심의 고스트 버스터즈가 있었지만 좀 실망스러웠는데요.
이번에 개봉하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기존 시리즈를 정식으로 이어가는 영화입니다.
기존 시리즈의 감독인 이반 라이트만의 아들인 제이슨 라이트만이 감독을 맡아 기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요.
먹깨비나 머쉬멜로우맨 같은 유령들도 그대로 등장합니다.
오리지널 멤버들도 등장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리뷰 영상을 봐주세요!! :)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Ghost Busters' third film, which was released in the 1980s, was released.
There was a women-centered Ghost Busters created in 2016, but it was a little disappointing.
Ghost Busters Afterlife, which will be released this time, is a film that officially continues the existing series.
Jason Reitman, the son of Ivan Reitman, the director of the existing series, is the director and captivates the hearts of existing fans.
Ghosts such as Muk-Kae-bi and Mushmallowman also appear as they are.
The original members are coming out, so if you're curious, please watch the review vid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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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질 결심] 끝장리뷰(ENG) | 내 인생을 ‘붕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 | 더할 나위 없는 김신영 | 쉬운 해석 + 어려운 해석
[헤어질 결심](2021)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쉬운 해석
Chapter 2 어려운 해석
00:00 깐느 박
01:53 쉬운 해석법
02:58 외도 세 번
05:47 이과적, 엑스레이
06:49 담배, 스마트폰 상징
08:45 어려운 해석
09:40 김신영 캐스팅
10:17 박찬욱이란 사람
11:09 편견, 선입견 타파
13:39 별점 및 한 줄 평
13:5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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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인더스트리> 공식 예고편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5명이 런던에 있는 국제 투자은행 피어포인트사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잔심부름만 도맡아 하거나 의욕만 앞서는가 하면 상사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6개월 뒤에 있을 인원 감축에서 살안마고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열의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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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화의 거리> 30초 예고편
영화 로케이션 매니저와 감독으로 부산에서 재회한 선화와 도영.
헤어진 연인에서 일로 만난 사이가 된 이들의
끝났는데 끝난 것 같지 않은
쎄한 fall in 럽케이션 밀당 로맨스가 시작된다!
♥ <영화의 거리> fall in 럽케이션 키워드 가이드 ♥
* 장르/배경: 로맨스, 현대물, 코미디, 전문직
* 관계: 연인>일.만.사, 재회물, 오래된 연인, 엇갈림, 밀당, 첫눈에 반한
* 여자 주인공: 로케이션매니저, 사이다녀, 능력녀, 유쾌녀, 우월녀
* 남자 주인공: 영화감독, 츤데레남, 뇌섹남, 능력남, 계략남, 후회남
* 이럴 때 보자: 헤어진 연인이 일로 만난 사이가 된 리얼 이불킥 로맨스가 보고 싶을 때
* 공감 대사: “니 진짜 사람 속 헤집어놓는데 뭐 있네. 여기 왜 다시 왔는데”
“일단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일한 땐,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