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3-07-08 16:56:04
부모와 자녀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엘리멘탈>(2023)
우린 살면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한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부모부터 주변에 하나씩 생기는 친구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각각의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그 주변의 사람들이 영향을 준다. 가족부터 지역, 국가 단위까지 다양하게 확대되면서 어떤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나 외모, 습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렇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또 새로운 문화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인류는 그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과 만나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면서 우리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겁게 느껴지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고 좀 더 깊은 관계가 되고 나면 더욱더 잘 모르는 상대방의 내면에 있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원소가 어우러져 사는 도시 엘리멘트 시티
픽사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세계에는 물, 불, 흙, 공기라는 4개의 원소가 살고 있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엘리멘트 시티'는 이 네 가지 원소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꽤 큰 대도시다. 여기에 살고 있는 엠버(목소리: 레아 루이스)는 불의 원소다. 불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온 엠버의 부모님은 힘들게 가게 하나를 만들어 대도시에 자리 잡으면서 엠버를 키워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이민자들이 흔히 겪는 부모와 자녀 간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시선을 한국 사회로 돌려보면, 우리 한국 부모 세대들이 은퇴 직전에 자식과 겪는 문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부모세대들은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고등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자리를 잡고 자녀를 낳아 키워낸 그 세대는 그 모습 그대로 영화 속 엠버의 부모에 대입할 수 있다.
엠버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 똑같은 속성을 가진 불 원소와 결혼하길 빈다. 완전 상극이라고 예상되는 물 원소와는 절대 만나서는 안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엠버는 우연히 물 원소인 웨이드(목소리: 마무두 애시)를 만나 호감을 가지게 된다. 두 인물은 가게의 파이프 배관에서 물이 새는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엠버의 부모는 절대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인물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그들이 살아왔던 삶 속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줬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 부모세대들도 이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경상도 출신 부모는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전라도 출신 부모들은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자녀들이 결혼할 때 자신이 싫어하는 지역 출신과는 결혼을 반대하기도 한다.
지금 부모세대가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
비록 이해를 빠르게 하기 위해 지역을 대입하여 설명하긴 했지만, 각각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절대 만나면 안 되는 종류'가 존재한다. 그건 출신지역이 될 수도 있고, 인종이 될 수도 있고, 국적이 될 수도 있고, 학력이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각각이 느끼는 것이 다양하지만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부모가 원하는 것과 자녀가 원하는 것의 차이가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흔히 벌어지기 때문에 <엘리멘탈>이 한국에서 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녀들은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희생하며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그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안함의 힘일 것이다. 자신을 키우느라 부모 자신이 원하는 건 할 수 없었던 것을 그 자녀는 자라면서 계속 봐왔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가 바라는 이상향에 맞춰가려고 노력한다.
영화 속 주인공 엠버는 그런 삶의 한가운데 서있다. 부모는 자신의 가게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엠버는 그 가게를 물려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부모가 당연하게 물려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생각을 못한다. 여기에 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물 원소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서 엠버는 점점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긴장감을 만드는 건 빌런이 아니라 부모와 엠버 간의 간극
엠버의 고민은 사실 많은 자녀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을 키울 때 어떤 고생을 했는지 보면서 자란 자녀라면 더욱더 부모의 말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이런 자녀의 고민을 무척 섬세하게 담고 있다. 부모의 기대에 반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분노조절장애가 되는 엠버의 이미지는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엠버가 사랑에 빠지는 웨이드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데다, 만나면 서로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처럼 느껴지는 물과 불의 만남은 보는 입장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둘이 손을 잡았을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원소의 속성이 변화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부모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이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둘을 응원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가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영화 <엘리멘탈>에는 빌런이 없다. 대신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건 엠버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의 간극이다. 그 둘 사이가 벌어질만한 일이 생기면 그 긴장감은 더욱 극대화된다. 어쩌면 이런 엠버와 부모의 갈등과 간극이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엘리멘탈>은 다른 나라에서는 큰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250만 명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애니메이터 출신이다. 한국인 이민자의 자녀인 피터 손 감독은 동양적인 갈등 구소를 넣고 부모에게 하는 큰 절 같은 동양적 요소를 추가해 넣으면서 영화에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애니메이터 출신으로서 각 원소가 생활하는 모습이나 분위기를 독특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장에서 관람하기 좋은 영화다. <엘리멘탈>에는 나쁜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무서운 장면이다 선정적인 장면이 없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부모와 자녀 각각의 입장으로 영화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아직 상영 중인 극장에서 가족과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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