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7-16 16:28:47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리뷰 (미야케 쇼 감독)
청각 장애인 여성 복서. 당신의 머릿속에는 이미 영화 한 편이 그려졌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클라이맥스에서 멋진 승리를 거두고, 희망찬 미소 혹은 결연한 눈빛 같은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그러나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장애는 “극복”의 대상인가? 그렇다고 치더라도, 경기에 승리하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실 장애 유무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이런 스토리에 속절 없이 약하다. 그러니까 신체의 한계까지 몰아붙여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의 스포츠에,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삶에 매번 감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화를 더 보고 싶은지 물어보면, 좀 망설여진다. 보기 전에도 다 본 느낌이 들어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씨네21> 인터뷰에서 “수많은 권투 영화 명작이 있다. 그들이 했던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건 큰 승리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시행착오 또한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 20대 후반쯤 되면 지금 삶의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도 될 것인가 점검하게 되지 않나. 케이코 역시 권투로 정점을 찍고 난 후 권투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라고 밝혔으니까.
그 마음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메시지는 이를테면 분자 단위 정도의 크기로 잘게 곱게 분쇄되어 있었고, 영화를 보는 동안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게 내게 녹아 스며들었다. 연출도 연기도 모두 훌륭해서 그런가? 소리 없이 전해지는 말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영화는 오가사와라 케이코라는 복서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우리는 어쩐지 ‘실화 바탕’이라는 말에 자꾸 집중하게 된다. 마치 거기에 단호하게 선을 긋듯이, 영화가 시작되면 오가와 케이코라는 복서의 기본 정보가 텍스트 자막으로 깔린다. 그리고 체육관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어쩐지 ‘여기까지 기본 정보는 줬으니, 이다음부터는 영화로만 집중해 줘’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 내리는 고요한 날, 체육관 바닥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낡은 운동기구가 삐걱거리고 줄넘기가 바닥에 탕탕 부딪는 소리가 우리를 영화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필름의 질감 안으로. 남녀 탈의실조차 분리되어 있지 않은 낡은 체육관에서, 필담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케이코의 세상으로.
필름에 담긴 도시 외곽은 어쩐지 채도가 낮다. 곳곳에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불빛들만 담겨 있는 시간 케이코가 달리기를 위해 집을 나설 때는 더욱 그렇다. 이른 새벽의 전등들은 왜 그리 피로해 보일까? 밝지 않은 불들이 서서히 켜지는 어슴푸레한 새벽은 왜 스산해 보일까? 그 도시에서 케이코는 채도가 낮은 푸른색으로 표표히 존재하고 있다. 체육관에서 입는 티셔츠도, 성실하게 훈련 일지를 기록하는 노트 옆의 파란 얼음 컵, 한 번씩 덧바르는 짙푸른 매니큐어도.
영화는 케이코의 푸르스름한 세상을 유난스럽지 않게 펼쳐 보인다. 한겨울에 웬 선풍기일까 하고 보면 이내 그 선풍기가 핸드폰과 연동된 아침 알람임을 닫게 되고, 초인종이 울릴 때 집 안에서 플래시가 번쩍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일터에 수어로 말을 걸어오는 동료도 있고, 케이코에게 살가운 수어로 다가오는 남동생도 있지만, 케이코의 언어는 수어만이 아니다. 케이코에게는 다양한 소통의 수단이, 다양한 언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싱이 그의 언어가 된다. 이 영화는 케이코가 복싱을 언어로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인전은 혼자 할 수 없다
케이코에게 다양한 언어가 있지만, 케이코는 그 언어들을 적극 사용해 외부로 나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케이코는 자기 세계가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 관장님 말대로 복싱에 재능은 없지만 (청각 때문이 아니라 “작고, 짧고, 주먹도 느리”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 왔다. 복싱은 원래도 개인 스포츠지만, 경기 중에도 아무 훈수를 들을 수 없는 케이코에게는 더더욱 철저하게 자기만의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고민하는 중에도 케이코는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려 한다. “말하면 기분이라도 나아지지 않냐”는 남동생에게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다”며 말하지 않으려 하고, 사람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고함이 케이코 나름의 강인함일 수 있을 것이다. 복싱은, 특히나 케이코의 복싱은 철저하게 혼자 하는 개인전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러나 아무리 자기 세계가 견고한 사람이라도 혼자 살 수는 없다. 개인전인 복싱도 사실 상대와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혼자 할 수 없는 스포츠이다. 케이코의 세계에도 이런저런 고민들이 들어온다. 프로가 된 것은 대단하지만 이제 그만하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만류, 갑작스럽게 체육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 귀가 들리지 않는 케이코를 모든 체육관에서 기꺼이 받아주는 것은 아니므로, 케이코는 복싱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관성과 타성을 뚫고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지점이다. 진짜 계속할 마음이 있는지. 계속할 것인지. 계속할 수 있는지.
가끔은 그런 질문들이 삶에 벼락같이 찾아오는 일도 있다. 어쩌면 체육관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기로 한 것 또한 그런 순간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언젠가 올 날이 코로나19가 앞당겨 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도 있지만, 도시 외곽의 낡은 복싱 체육관의 경우처럼 이미 멀어져 가던 것들을 코로나19가 가속화한 것들도 있다. 마스크로 인해 입을 읽어낼 수 없어 언어 하나를 잃은 청각 장애인들의 일상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케이코와 부딪혔을 때 무례한 언사를 펼치던 어떤 행인처럼, 누군가의 언어 하나를 틀어막는 일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던 방향성인지 모른다.
그러니 코로나19는 특수 상황이었다고, 이 바이러스가 한물갔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길 수는 없다. 코로나19 없이도 언젠가는 왔을 날이다. 관장님의 육체처럼, 낡은 복싱 체육관처럼, 모든 것은 언젠가 쇠잔해지니까. 우리 삶은 날마다 쇠잔해지는 가운데 우리에게 몇 개의 선택지 사이 고민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완승하고 링 위에서 기뻐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링에 오르기 위해 땀 흘리는 날이 있으며, 때로는 그조차 막막해지는 날도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어딘가에서
복싱은 무수한 반복이다. 고쳤다고 생각한 버릇을 또 고치고, 뛴 곳을 또 뛰고. 자꾸 힘이 들어가는 몸에 힘을 빼고, 심호흡을 하면서. 숨 하나씩, 주먹 하나씩, 쌓아 올리는 하루하루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힘들고 고단한 길이지만,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이 영화의 엔딩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눈 부릅뜨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올리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훅 다가와서. 세상은 복싱이 사장되어 간다고 하고, 사실 필름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듣지. 그밖에도 당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들 또한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 면면들은 어딘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잠깐 지나가는 것 같았던 의사 역할을 나카무라 유코가 맡고 있어, 잠시지만 반가웠던 것처럼. 곳곳에, 어딘가에, 빛나는 면면들이 여전히, 있다.
영화 내내 도시의 불빛과 질감이 피로해 보이고 스산해 보이기만 했는데, 문득 그 불을 밝히며 하루하루를 쌓고 호흡을 가다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힘이 솟았다. 눈을 마주할 상대가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가장 좋은 점인지도 모르겠다.

겁 많은 사람이 복싱을 하면 등을 보이고 도망갈 것 같지만 오히려 앞으로 뛰어든다. 몸을 숙여 피해야 하는데, 어쩐지 몸을 피하는 그 잠깐이라도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기가 불안해, 피하지 못하고 주먹만 휘두르면서 앞으로 나가곤 한다. 케이코는 프로 선수니까 나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점, 두려움으로 나아간다는 나쁜 습관 하나는 공통점이었다.
케이코가 배워야 했던 것은, 물러서지 않는 마음. 물러서지 않고 대신 가드를 든든하게 올릴 것. 세상에는 겁나는 일이 많지만, 도망치고 싶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진퇴양난에 빠지는 순간의 괴로움도 깊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물러서지 않기, 대신 가드를 올리기.

싸울 마음이 없으면 계속할 수 없는 게 복싱이다. 고민 끝에서 51:49의 아슬아슬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만드는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결국 삶에서 결정적으로 소중한 것들은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며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눈물 고인 눈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케이코처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일 체육관에 가면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케이코가 몇 번씩 하던 콤비네이션을 연습해 보기로 다짐했다. 이 동작을 잘하려면 어퍼와 위빙 사이에 몸을 잘 틀어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한쪽 발은 계속 단단한 축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마침내 계속 “할 마음(やる気)”이 생긴 케이코의 모습이 링 위에서 드러났듯이, 나 또한 한쪽 발을 단단한 축 삼아 또 계속해 보기로 한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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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신청 받은 주제는 바로 '새벽에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사랑이 권태로운 남자 엔드레는 눈이 소복이 쌓인 숲속에서 암사슴과 짝을 지어 함께 뛰노는 꿈을 꾼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새로 온 여자 마리어에게 자꾸 관심이 가고 우연히 그녀와 똑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cine pick!
색다른 소재와 연출 방식으로 전세계를 휩쓴 <토리노의 말> <사울의 아들> 잇는 헝가리 거장 감독 엔예디 감독의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2017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했으며, 전죽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한 순간 감정이 폭발해 아내, 직장, 집은 물론, 정신까지 잃게 된 이 남자.
8개월의 병원 생활 후 ‘긍정의 힘’을 믿으며 아내와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노력중!
긍정의 주문을 외우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지만, 감정은 통제불능이요 ~아내에게는 접근명령 상태라~
남편의 죽음 이후 외로움 때문에 회사 내 모든 직원들과 관계를 맺은 티파니.
저돌적인 대시와 내숭 없는 애정 표현으로 티파니는 팻의 인생에 갑자기 뛰어든다.
그의 조깅코스에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함께 자자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팻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그녀, 그런 티파니가 팻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재생률 100%! 연애세포 복구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쉽게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는 ‘팻’을 위해 티파니는 ‘헤어진 아내와의 재결합을 도와주는 대신,
자신과 함께 댄스 대회에 참가’하자는 달콤한 제안을 하는데…cine pick!
아카데미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국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브루클린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낯선 뉴욕 브루클린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낮에는 고급 백화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서 공부하며 브루클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일랜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다.
한편, 공동 생활을 하는 아일랜드 커뮤니티 여성들의 도움과 격려로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에일리스는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에모리 코헨)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점차 독립적이고 세련된 뉴요커로 변해간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럽게 날아온 언니의 부고. 급히 고향으로 날아간 에일리스는 그곳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짐(돔놀 글리슨)과의 만남으로 흔들리게 되는데…cine pick!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해 아름다운 영상미가 매력적인 영화이다.
1950년대의 브루클린을 재현해 레트로한 색가뫄 감각적인 의상과 소품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라며 해외 언론의 극착을 받은 작품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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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오웬 윌슨)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곳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난 '길'은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게 된다.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cine pick!
영화에 재즈를 자주 사용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이기에 이번 영화에도 재즈 음악을 사용해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파리를 가고 싶게 만드는 파리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는 영화.
프랭크
ⓒ 네이버 영화
synopsis
뮤지션을 꿈꾸지만 특출난 경력도, 재능도 없는 존은 우연히 인디밴드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 밴드의 정신적 지주인 프랭크는 샤워할 때 조차 커다란 탈을 벗지 않는 남자.
이후 존은 앨범 작업과정을 트위터와 유튜브에 올린 덕에 음악 축제에 오를 기회까지 얻지만, 멤버들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설상가상으로 프랭크의 불안증세는 나날이 심해지고, 답답한 존은 프랭크의 탈을 벗기려고까지 드는데…
cine pick!
영상미가 아름다우며, 음악 영화인만큼 음악도 좋은 영화이다.
밝은 분위기의 영화는 아니지만, 공감을 많이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레이디 버드
ⓒ 네이버 영화
synopsis
잘 나가던 광고 기획자였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과거를 숨긴 채 요트에서 살고 있는 남자 ‘샘’.
어느 날 그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즐겨 찾는 클럽에 갔다가 무대에 오른다.
뮤지션이 꿈인 소심한 청년 ‘쿠엔틴’은 ‘샘’의 노래에 반해 함께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러덜리스’ 밴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시작이었지만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매력적인 노래에 밴드는 점차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그들의 곡들이 사실 세상을 떠난 ‘샘’의 아들이 만든 노래라는 비밀이 밝혀지게 되는데…cine pick!
지금까지 나온 음악 영화와 또 다른 결에 있는 음악 영화이다.
음악의 가사에 주목하면 좋을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이다.
러덜리스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 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cine pick!
<작은 아씨들> <친구와 연인사이> <로마 위드 러브> 등을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품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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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부터 이어진 스파이더맨 사가에 대한 헌사
샘스파, 어스파, 톰스파 모두를 하나의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기발한 장치, 멀티버스
2002년부터 시작되어 2021년까지 이어진 스파이더맨 실사화 영화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이 오랜 기간 동안 시리즈에 변화가 없지는 않았으며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자 속칭 샘스파, 마크 웹 감독의 어스파, 존 왓츠 감독의 톰스파까지 총 2번에 걸친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는 각 시리즈마다 본연의 특색을 가지고 있도록 하여, 스파이더맨이란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있을 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의 성격이 천지차이일뿐더러 등장하는 빌런들도 전혀 겹치지 않는 등 별개의 시리즈로 보아도 무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별로 어떤 시리즈를 특히 더 좋아하는지와 같이 선호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 스파이더맨 시리즈 모두를 좋아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세 시리즈의 스파이더맨과 수많은 빌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와 같은 팬들의 염원은 무시 못 할 정도로 거대해졌습니다.
하지만 배경도, 주인공도, 빌런도 모두 다른 세 시리즈를 한곳으로 모이게 하기 위한 합리적이면서도 마땅한 장치가 그동안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 팬들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 세 작품을 모으기에는 아무리 히어로 무비라고 할지라도 "왜 세 명의 스파이더맨과 빌런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었는가?"란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납득이 가능한 해답, 다시 말해 서사의 핍진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은 MCU의 히어로 중에서 치트키 수준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등장시킴으로써, 더 자세히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을 통해 평행우주의 개념인 멀티버스를 사용함으로써 핍진성도 가지면서 세 작품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무리 최근에 MCU의 멀티버스로 무리한 세계관 확장 시도와 그에 따라 생긴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는 차치하고, <노 웨이 홈>만으로 한정 짓는다면 멀티버스를 적절하고 완벽하게 활용했습니다.
스파이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시작점,
멀티버스로 핍진성과 흥미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오랜 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들만 모아놓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악일 수도
감상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영화이지만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물론 영화 전부가 또렷하게 기억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감상 도중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씬들을 중심으로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때 <노 웨이 홈>은 앞선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인상 깊은 씬들을 차용하여 그대로 사용하거나, 혹은 적절하게 변형하여 오마주 형식으로 영화에 등장시킵니다. 가령 <스파이더맨 2>에서 오토 옥타비우스와 피터 파커가 "잘 지내니?"와 "노력하고 있죠"란 대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 <노 웨이 홈>에서 동일한 배우가 동일한 대사로 안부를 묻는 장면으로 다시 등장함으로써 <스파이더맨 2>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 외에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의 피터 파커가 그웬 스테이시를 철탑에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노 웨이 홈>에서 추락하는 MJ를 구출하는 적절한 변형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씬을 통해 톰스파뿐만 아니라 다른 스파이더맨들 또한 들러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성장의 주체로서 표현한 점을 호평하고 싶습니다.
전작들과의 연계성에 기반한 측면에서 호평하고 싶고 리뷰에 다루고 싶은 부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톰스파는 피터 파커란 일반인으로서, 혹은 스파이더맨이란 히어로로서 전혀 성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점이 스파이더맨의 아이덴티티 부재와 더불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노 웨이 홈>에서 MCU 스파이더맨이 극중 사건들로 발생한 상실이란 아픔을 겪고, 이를 통해 비로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게 된다는 스파이더맨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여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도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들을 위한 헌사가 가득 담겨 있을지언정 어디까지나 <노 웨이 홈>의 주인공은 톰스파입니다. 영화의 모든 서사가 톰스파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수많은 과거의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위상에 가려지지 않도록 적절하고 영리하게 그들을 배치했습니다. 이처럼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줌과 동시에 톰스파의 부족한 면들을 채우면서 마무리 지었단 점에서 <노 웨이 홈>은 톰스파 트릴로지를 넘어 2002년에서 시작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피날레를 훌륭하게 장식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이어진 호평들은 어디까지나 샘스파, 어스파를 모두 감상한 관객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불어 앞선 시리즈들을 단순 감상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영화들이 극장에 개봉했을 적에 극장에서 감상했던 경험이 있는, 다시 말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던 관객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평가입니다. <노 웨이 홈>은 성장을 주된 테마로 하고 있는 만큼 그들과 함께 성장한 관객들에게는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성장했거나 노쇠한 배우들을 주축으로 다시 보였을 때 감회가 남다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앞선 시리즈들을 한 번에 몰아서 감상한,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함께 성장해 오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이 장면을 여기서 다시 사용했구나'라고만 생각할 뿐, 이와 같은 오마주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즉 <노 웨이 홈>은 오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팬들에게 바치는, 그들만을 위한 영화일 뿐 일반 관객층들을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MCU의 진입 장벽을 무지막지하게 높여버리는 데 일조한 작품 중에 하나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어쭙잖은 팬들은 나가떨어지도록 하고, 진성 팬들만을 데리고 가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상 깊은 장면들을 활용한 오마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면서, 톰스파의 성장 서사를 훌륭하게 담아낸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피날레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스파이더맨 팬들만의 잔치일 뿐, 새로운 입문자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만점을 줄 수 없도록 만드는 최악의 오점, CG
이 영화는 서사와 관련된 오마주 외에도 액션에 관련해서도 종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이 가지고 있는 액션에 대한 오마주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홀로 웹슈터를 사용하지 않고 몸에서 거미줄이 나가는 샘스파에 대해 펼쳐지는 어스파와 톰스파의 질문 공세, 또는 샘스파가 그린 고블린을 내려다보는 자세는 <스파이더맨 1>의 유사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스파이더맨 별로 웹 스윙 이후 착지하는 자세를 각 시리즈별 시그니처 자세로 그대로 표현하는 등 이전 영화들의 크고 작은 액션들을 오마주 하여 이 영화의 액션들로 편성하였습니다. 물론 <노 웨이 홈>이 오마주한 액션들로만 이뤄져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수많은 빌런들이 본인만의 특색을 뽐내면서 등장한 후 벌이는 전투씬들을 비롯해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하여 스파이더맨들이 협공하여 빌런들을 하나씩 격퇴해 나가는 이 영화만의 익숙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액션들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액션이 매끄럽기 위해서는 액션을 뒷받침하는 CG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이라 할지라도 섬세하거나 정교하지 않은 CG 작업물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위화감은 절대 무시하지 못하며, 이는 곧이어 보여지는 액션의 몰입에 적지 않은 방해 요소가 됩니다. 이때 <노 웨이 홈>은 단순히 어색한 정도를 넘어 정말 실망스러운 엉망진창인 수준의 CG가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등장합니다. 아무리 서사, 핍진성, 오마주 등의 구성이 좋을지라도 이 영화의 근본은 액션에 있습니다. 그 근본을 제대로 신경 쓰지는 못할망정 저품질 수준의 끔찍한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선 좋은 평가를 다 깎아먹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20년을 아우르는 모든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를 마무리 짓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인데도 작품의 퀄리티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부분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킬 지경입니다. 한 가지 단적인 예를 들자면 위 단락에서 언급했던, 이 영화의 피날레격 액션인 자유의 여신상 액션 시퀀스의 배경은 어두컴컴한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빌런 일렉트로의 특징상 어두운 배경이 필요함을 감안하더라도 어색하고 성의 없는 CG를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한 얄팍한 처세 목적의 비중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액션도 오마주 하면 뭐 하나, 그 액션의 품질이 저품질인 것을
MCU의 고질적인 CG 문제가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물
마지막으로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언급하고 싶었던 내용들에 대해 짧게 짚고 이번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윌렘 대포의 그린 고블린은 19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름 끼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얼굴이 가면에 가려져 있던 <스파이더맨 1>과 달리 <노 웨이 홈>에서 맨얼굴에 담겨 있는 광기를 직접 직면하니 더 공포스러웠고 강렬했습니다. 두 번째로, 샘스파와 어스파의 테마들을 적절하게 편곡함으로써 그 당시의 영화에 담겨있던 분위기를 훌륭하게 가져온 마이클 지아키노의 노고가 정말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세세한 설정 오류와 함께 빌런들의 비중 분배가 아쉬웠습니다. 물론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다는 측면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활약하는 부분을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끝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장장 20년에 걸친 스파이더맨 사가의 마무리 격인 작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완벽한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근본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조그마한 핸드폰 화면에서도 이렇게 심하게 체감되었는데 IMAX와 같은 대형 스크린에서는 얼마나 더 눈에 띄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이 정말 좋았기에 스파이더맨 사가의 마지막 작품을 IMAX로 접하지 못했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여러분들은 <노 웨이 홈>이 어떠셨나요?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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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0년의 기다림> "이야기, 그 사람의 기나긴 우주의 일부를 함께 한다는 것."
*해당 게시물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했습니다.
지난 12월 27일, 조지 밀러 감독이 7년 만에 낸 신작 <3000년의 기다림>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유사한 장르의 영화들이 지니고 있었던 틀을 깨어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일러 없는 후기, 함께 자세히 알아보자!
<3000년의 기다림>은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등의 배우들이 출연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샀다. 총 러닝타임은 108분이며 국내 정식 개봉은 1월 4일이다. 제 75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해외 유력 매체의 언론과 세계 평단의 찬사가 쏟아진 작품이다.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다한 서사학자 알리테아(배우 틸다 스윈튼)가 골동품 가게에서 산 공병으로부터 우연히 소원을 이뤄주는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를 깨워낸다.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3번, 마음 속 가장 깊은 곳! 가장 오랫동안 바라온 소원을 말하면서 알리테아와 지니의 사이는 깊어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어떤 장르인가 생각해봤다. 역사물도 아니고, 철학물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닌 그 셋을 아우르는 영화다. <3000년의 기다림> 역시 그러길 바란다.” - 조지 밀러 감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영화의 폭주하는 쾌감과 스릴로 러닝타임을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매드맥스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사뭇 느낌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3000년의 기다림>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걸쳐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긴, 3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났던 환상적인 이야기를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현해내고 있다. 시각적으로 강렬하지만 부드러웠으며 청각적으로 웅장한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최고의 오감만족을 선사해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스크린이 선사하는 경험에 자신을 맡기면 영화로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므로 <3000년의 기다림>은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1.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과 소원을 비는 사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묘하게 <미녀와 야수>,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알라딘>, <팬텀스레드> 영화가 생각났다.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소위 말해, ‘지니’겠다)과 소원을 비는 사람 간의 아련하고도 슬픈 관계는 사실 어느 영화에서나 성립했다. 그러나 <3000년의 기다림>은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강렬한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호평을 하고 싶다. 지니가 왜 그 병에 3천 년 동안 갇혀 있었는지, 왜 알리테아가 그에게 평생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인물인지 풍부한 서사로 관객들을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니의 3천 년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부족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 화려함 안에는 정령의 아픔, 사랑 그리고 고통이 모두 섞여 있었다.
한편, 알리테아는 이성적인 캐릭터로 본인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므로 처음 지니를 마주하며 소원을 빌어야 할 때, 그 절실함을 느끼지 못 한다. 하지만 지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층 그의 삶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정확히 형언하지 못할 사랑을 느끼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소원을 빌게 된다. 그렇다, 이 과정에서 기존 영화에서 비쳐졌던 소원을 비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의 관계가 타도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아름답고 서글프게.
2. “우린 고독을 함께 해요”
알리테아가 지니에게 던진 한 마디, 어쩌면 그들의 3000년의 기다림을 요약해주는 한 마디였다. 이 영화를 보면, 단순히 판타지‧멜로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로맨스가 아니라 외로운 두 인물이 함께, 새로운 고독함을 맞닥트린 영화라고 생각했다. 알리테아에게 닿기 위해 지니가 버텼던 3천 년은 분명 행복한 꿈이었을 것이다. 한편, 지니에겐 3천 년의 기다림이었겠지만 알리테아 또한 얼마나 그 무던한 시간을 홀로 버텨왔을까? 평소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그런 그녀에게 감정의 요동을 선물해준 지니였다. ‘내가 미친 건가? 무엇이 진짜일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라며 끝없는 고뇌 안에 갇혀있었던 알리테아. 정령 지니는 알리테아에게 존재의 이유를 선물해줬다고 느꼈다.
지니가 살아온 삼천 년도 도착지 없는 여행이었겠지만, 알리테아가 겪은 무수한 고독함 또한 그랬을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함 2명이 만나면 묘한 사랑으로 번져지는, 정말 물감이 묻은 하나의 붓이 천천히 물병 안에서 퍼졌던 영화였다.
지니, 알리테아; 각 캐릭터가 지닌 공허함을 잘 표현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이드리스 엘바다. 특히나 오랜만에 틸다 스윈튼을 큰 스크린으로 보니, 어딘가 모르게 갈 곳 잃어버린 그녀의 눈동자는 더더욱 아름다웠다.
3. 이야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갈망
가수 아이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잘 잤으면 하는 건 사랑이라고. 이 말을 본 영화에 비유해보자면,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사랑해’라는 피상적인 말이 없어도, 그 사람이 건너온 무수한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본인 내면 속, 무의식 안에서 피어올랐던 진정한 ‘갈망’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을 첨예하고도 부드럽게 그려낸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이다.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연출이 관객에게 선물해주는 ‘타임캡슐’. 실제 지니 역을 맡은 배우 이드리스 엘바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타임캡슐에 담긴 영화같다. 배우와 감독이 함께 이야기를 꺼내서 들려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갈망에 관한 교훈적인 이야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관객은 지니의 3천년의 기다림, 그리고 알리테아와 지니가 앞으로 함께 걸어나갈 무수한 시간의 외로움이 담긴 타임캡슐을 고스란히 극장에서 열어볼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이야기 속에서 아름답고도 고통스럽게 피어오르는 3천년의 기다림과 그들의 미래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 사람의 기나긴 우주의 일부를 함께 한다는 것."라고 나의 한 줄을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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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부탁해 / 2001
나는 연말이 되면, 자꾸만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한 해의 마무리에는 꼭 당신들의 올해 끝얼굴을 함께 마주봐야 편안해지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가족이 아닌 오랜 친구들에게 무언가 복고하는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우리가 놓고 온 중요한 것이 자꾸만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그걸 당신들의 얼굴을 통해 알고 싶어하지만, 몇 해를 보고 또 보아도 공허한 마음은 계속 커져간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언지는 아무도 알려 하지도, 알 수도 없다. 정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인지, 나 혼자 길을 헤매는 건지도 영문 모를 일이다.
왜 난 이제 네 얼굴을 깜박깜박 들여다보면 더 슬퍼지는 걸까? 지금의 나는 몹시 충분한 사람인데도 당신들과 마주하고 나면 반토막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걸까? 즐겁고 공허한 양가적인 마음이 스무살 때부턴 계속 이어져왔다. 더 알고 싶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가 그리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꼭 손을 쥐고만 서 있었던.
“스물셋.. 아니 늦어도 스물 넷에는 꼭 이 영화를 봐야 해. 더 늦으면, 이 영화는 볼 수 없거든. 아무리 봐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걸?”
먼저 이 영화를 본 H언니가 내게 당부하며 말해주었다. 참. 세상에 그런 영화가 어디있어? 라는 생각과 호기심으로 가볍게 보았다. 언니의 말은 정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서른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후회했을거야, 언니. 해주와 지영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안간힘을 썼을거야.
<고양이를 부탁해>.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던 다섯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스물이 되어버린그녀들. 각자의 삶이 지고 있는 각기 다른 무게를 감당해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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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는 증권사의 계약직 직원이다. 이른 나이에 일찍이 좋은 직장에 취업한 해주는 자신의 직장을 자랑스러워 하며, 더욱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열심히 일한다. 상사의 무시, 성희롱 등을 견디면서도
해주는 꿋꿋이 해낸다.
해주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직장, 자신의 외모, 또 자신의 가정사 등. 어른이 된 해주는 더이상 친구들에게 예전만큼의 관심을 쏟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 열심히 나아가기에 급급하다. 우리의 사회초년생들의모습과 다를 바 없는 해주. 너무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해주의 방식만이 이 사회에선 어린 우리가 살아남는방법일지도 모른다.
해주와 가장 친했던 지영. 지영은 집이 가난하다. 부모는 일찍이 여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여러 종이를 겹쳐 대충지은 듯한 집에서 사는 지영은 직장에서 잘린 후, 매일을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지영에게는 삶이 지옥이다. 자신의 가난이 끔찍히 싫고,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세상은 자꾸만 그녀를 단념시킨다.
그럼에도 꿈을 갖고 있는 그녀. 지영은 텍스타일 아트에 관심이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 지영. 매일 같이한 칸씩 색을 칠해나간다.
또 다른 친구인 태희. 태희의 집은 큰 찜질방을 운영한다. 부유한 집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가는 태희는 자신보다 못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매일 같이 장애인 봉사활동을 나가고, 그 봉사활동에서 만난 지체장애인의 시를 대신 써주며 사랑하기도 한다. 지나치는 작은 것에도 동정을 갖는 태희. 그런 그녀는 자신에게 올곧은 길만 요구하는 집안이 힘들다. 자꾸만 멀리 떠나고 싶어하는 태희.
그런 태희는 다섯 친구의 관계가 소중하다. 고등학생 때 친구였던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유일하게 노력하는 인물이다. 자신만 이 관계에 항상 노력하고, 마음을 쏟는 게 서운하지만 결국 또 모든 걸 도맡아하고 있는 그녀. 그녀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어슬퍼진다.
해주: 미안하다. 이거 오늘까지 꼭 해야한다는데. 낸들 어쩌냐? 야. 내 생일이라서 안된다고 그럴 순 없잖아.
태희: 왜 맨날 내가 전해야 하는건데? 일일히 연락해서 약속 잡는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지 알아? 결국 나만 연락하잖아 매일.
해주의 생일로 오랜만에 모이게 된 다섯 친구들. 하나씩 해주에게 선물을 건넨다. 비류,온조는 뽕브라를. 태희는 립스틱. 세 친구들은 스무살에 걸맞는 선물을 준다. 지영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해주에게 준다. 자신이 열심히 손수 그린 텍스타일 포장지로감싼 상자에 담아.
선물이야. 이름은 티티야. 예쁘게 키워.
이 장면이 결국 친구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장면이란 생각이 든다. 해주는 지영의 선물을 받고는 당장 포장지를 찢어버린다. 지영의 정성과 꿈이 담긴 텍스타일 그림은 해주에겐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짓. 돈도 안 되는 쓸모 없는 낙서에 불과하다. 그 찢어진 그림을 들어 지영에게 말을 거는 태희.
태희: 이거 네가 그린 그림 맞지? 야. 멋있는데? 근데 이거 하나하나 다 그리려면 조금 지루하겠다.
태희는 항상 버려지고 찢긴 것을 주워 다시 봐준다. 정확히는 봐주려고 노력하지만, 하지만 그 공감은 전적으로 상대를 위로해주지 못한다. 그저 씁쓸히 웃어보이는 지영. 친구들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다섯 중에서도 해주와 지영은 더욱 친했다. 같은 무리에서도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듯, 두 사람은 그런 특별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후,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너무도 달라져버린 둘. 지영은 고등학생 때와 다를 것 없이 해주에게 진심이지만, 해주는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벌써 어른이 된걸까. 자꾸만 지영의 마음에 흠집을 내는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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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야 서지영. 진짜 놀랬다? 난 네가 나한테 고양이 선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지영: 예쁘게 키워.
해주: 근데 너 요새 뭐해?
지영: 뭐 좀 생각하느라고. 그냥 있어.
해주: 생각? 무슨 생각?
지영: 유학 가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요즘 텍스타일 공부하는 사람들 외국으로 다들 나가잖아.
해주: 유학은 뭐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 그러지말고, 이 언니가 알바 자리 소개해줄테니까 용돈이나 벌어서 학원이나다녀보던지 해. 어때?
(지영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해주: 야.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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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의 회사에 찾아온 지영. 자신이 준 고양이를 버려버린 해주이지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믿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흘리듯 한말을 기억할리 없는 해주. 지영은 몇시간을 지하철 역에 앉아 기다린다. 너무도 달라진 둘의 관계.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이 똑같은 경험을 하며 같이 울고 웃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이제는 서로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된 둘. 각자가 처한 환경은 이제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멀어져버리는 옛 친구들.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는 다르고, 서운함은 쌓여만 가고 편한 존재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주게 된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던 우리가, 사회의 발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녀들의 등 뒤로 보이는 “좋은 여행, 영원한 추억”이라는 문구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 영화가 하는 말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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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래된 집이 가라앉기 시작한 지영. 지영이 처한 현실처럼 그녀를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점점 좁아지고 설 곳이 없어지는 지영. 여기저기 일을 구해보다 태희에게 결국 돈을 빌리게 된다.
그런 지영의 부탁에 자신의 전단지 알바를 반 나눠주곤
돈까지 빌려주는 태희.
태희: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아 맞다. 까먹기 전에. 여기 돈.
지영: 고마워. 언제까지 주면 돼?
태희: 그냥. 돈 생기면 갚아.
근데 어디에 쓰려 그래?
지영: 그냥 좀 필요해서. 그런 얼굴로 쳐다보지 좀 마.
태희: 네가 전화해서.. 의외였다?
지영: 그래? 내가 그렇게 전화를 안했나?
태희: 우리 모일 때는 맨날 내가 먼저 연락하지. 네가 먼저 연락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졸업하니까 애들이랑 멀어지는거. 그게 젤로 섭섭하다?
학교 다닐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매일 만나다가 떨어져 지내니까 이젠 만나도 별로 할 얘기도 없고.
개인적으로 태희의 이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매일 보던 사이가, 단지 물리적으로 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우리들은 이렇게 변해버리는 건가? 라는 서운함을 스무살 때 너무 큰 혼란으로 겪었다. 서로를 낱낱이 알던 때와는 달리, 몇 달만에 만나 간간히 그동안의 일상을 전하는 것은 꽤 우리의 졸업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반갑고 자꾸만 텅 비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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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 길에서 노숙자를 만난 지영과 태희.
지영: 아까 그 거지 말이야. 난 솔직히 그렇게 될까봐 좀 무섭다?
태희: 글쎄, 난 무섭단 생각은 안 해봤고. 가끔 그런 사람들 보면 궁금해서 따라가보고 싶기는 하다? 매일 뭐하면서 지내는지. 아무런 미련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지낼 수 있다는 건 좋은 거 아닐까?
지영: 그걸 자유라 그러니? 난 그렇게 생각 안해. 그렇게 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태희는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이는 선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입장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건그녀가 그런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부족함 없이 자란 태희는 거지, 외국인 노동자들, 고기잡이 배를 보며 “자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지영은 가난을 안다. 그것이 자유가 아닌 보이지 않는 감옥이라는 현실의 쓴 맛을 직접 겪어본 인물이다. 지영에게 그것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 그 자체이기에, 자꾸만 지영은 걱정한다. 당장 집이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저러다무슨 일을 당하면 어떡하지? 하고서 말이다.
결국 마음뿐인 연민을 가진 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 가지고 남은 여유로 남들을 돌보는이들과, 진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을 아는 이의 차이가 무언지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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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고, 또 다시 만나기로 한 친구들. 이번에도 역시 태희의 제안으로 약속은 진행된다. 지영은 해주와의 저번 일로 아직마음이 상해 더이상 해주를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건 상관 없이, 그저 지기와 가까운 곳에서 효율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해주. 각 인물들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
지영: 꼭 그래야해?
태희: 한 달에 한번씩은 꼭 만나줘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우정에 금이 안가지.
해주: 우정? 참.
비류, 온조: 아. 그럼 말이 또 달라지지.
해주: 근데 언제 인천까지 가니. 니네가 서울로 오면 안돼?
비류, 온조: 하여튼 얘는 꼭 지 생각만 한다니까.
지영: 난 해주한테 가는 거면 안 가.
태희: 우리 넷이 서울을 가는게 낫니. 너 하나가 인천을 오는 게 낫니?
해주: 너희 넷이 서울로 오는거 !
결국 인천에서 만난 다섯 친구들. 시작부터 지영은 해주와 말도 섞지 않으며 둘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태희: 야. 너 지영이한테 왜 그래 자꾸. 학교 다닐 땐 너네 둘이 제일 친한 사이였잖아.
해주: 예전에 친한 사이였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현재가 중요하지.
태희: 현재? 그래서, 현재 너한테 중요한 게 뭐야?
해주: 옷이다. 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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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서로가 소중하지만, 서로가 가장 중요하진 않게 되어버린 우리들. 이건 결국 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스물을 겪은 청춘들이 알게 된 씁쓸함일 것이다. 다섯 친구들이 인천에서 쇼핑을 하며 각자 둘러보는 장면은 결국 아무리 친구여도, 자신의 인생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뜻인 것처럼 느껴져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해주와 지영이, 태희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과 꿈으로 가득차 멀리 떠나버리기도, 현실에 안주하기도 하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안에 종종 만나 서로를 바라봐주는 따듯함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의 내 나이는 어쩌면 가장 혼란스럽고, 바쁘며 치열한 나이인지도 모른다. 졸업의 끝과, 새로운 시작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그 속에 걸쳐있는 우리들. 앞으로도 우리가 더 멀어진다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겠지만, 문득 생각나면 서슴없이 연락하고 언제나열여덟처럼 깔깔대며 철없는 소리만 하는 우리이길 바란다. 다들 나와의 여행을 영원한 추억처럼 계속한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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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가 지영에게 한 말이 자꾸만 남는다.
태희: 지영아. 나는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 그래도 니편이야.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거라고 생각해. 나 너 믿어.
가끔은 해주였고, 또 가끔은 지영이었으며 종종 태희였던 모든 방황하는 스물에게 보내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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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틴 코미디로 그냥 넘어가기엔 좀 그렇지
난 인기가 있는 사람일까? 내 뒤에 있는 아빠는 인기가 많다. 사진작가로서 잘 나간다. '매사에 겸손해라'라고 하긴 했지만 인기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방송 출연도 하고 책도 나오지. 사실 아빠가 부럽다. 나도 내가 미래에 직장을 갖고 싶은 분야에서 전문가 대접받고 싶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이런저런 경험치도 많이 쌓았다. 뭐 26살이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경험과 공부들이 미래의 성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냥 별 볼일 없는 20대 중반의 평범한 사람이다. 공부할 것 많은데 오늘 4시에 일어났으며 한 일이라곤 이 글을 쓰는 것 빼곤 없다.
가끔 저 인스타그램 안의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부럽다. 나도 이 노예생활 끝나고 좋은 직장 가져서 저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인기가 많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나도 저 사람들처럼 무언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내 이름 아래에 '인기 많다'는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느닷없이 이불 킥을 유발하는 20대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으으. 과연 나는 관심받기 위해 어떤 미친 짓까지 했단 말인가. 홍상수의 영화 몇 편이 생각나며 이 모습이 과연 나와 다른 점이 있을까 싶어 픽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지만 나의 흑역사는 어마 장장하니 오답노트가 필요하다. 37살, 미국의 어느 곳에서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갱신 중인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이런 우리에게 자기의 흑역사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생중계하고 싶다고 한다. 넷플릭스로 가보자.
20년이 사라졌다
호주에서 전학 온 10대 여학생 스테프. 스테프는 새로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고 싶다. 뭔가 열심히 연구하는 스테프. 그녀는 인기가 많아지고 싶었다. 고등학교 4학년이 된 그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내 치어리더 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내 원했던 목표들이 점점 이뤄지는 걸 확인하는 스테프. 인싸가 되기 위해 보내왔던 것들이 효과가 있어 나름 뿌듯하다. 스테프의 행보에 화룡정점을 찍는 것은 역시 섹시한 남자 친구다. 블레인을 점찍어 놨었던 스테프. 역시 인생은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맞다. 스테프는 블레인과의 연애에 성공한다. 그렇게 원하는 것들이 다 만족됐던 10대. 학교 치어리더 팀 단장이었던 스테프는 자신감 풀 충전의 상태로 치어리더 공연을 나선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다. 받아주는 사람 없이 뒤쪽으로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던 스테프. 17살이었던 그녀가 37살의 몸을 갖게 되었다. 살도 찌고, 운동능력도 떨어졌다. 예뻤던 10대 시절은 이제 없다. 스테프에겐 꿈이 있었고 목표도 있었다. 졸업식의 퀸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스테프. 상큼 발랄한 꿈과 희망이 사라졌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법도 했지만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던 것이 있었다. 스테프는 친구 마샤가 다니던 학교의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점을 이용해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영화는 몸은 37살이지만 정신연령은 17살인 스테프의 학교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아
영화는 편하다. 이 영화는 편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영화다. 어려운 메타포도 없고 긴박한 서스펜스도 없다. 톡톡 튀는 주인공의 매력과 코미디가 함께 있어 보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다. 또 후반부를 넘어가면 묵직한 메시지까지 안고 있다. 주인공은 내적 성장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삶의 교훈까지 얻게 된다. 이 영화는 쉽게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던지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좀 뻔뻔한 느낌이었다. 이 뻔뻔함이 능글맞아서 장점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쉬운 영화의 특성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이다.
2002년과 2022년 사이의 시간 차를 묘사한 거 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비판은 충분히 유효타로도 작용했다. 예를 들어 스테프의 입에서 '게이'라는 단어가 나오며 유머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어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어 '미안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장면을 이렇게 구성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뭐 그리 불편한 게 많아?'라며 흔히 말하는 '불편러'를 비판하고 싶었던 의도는 좋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에 대해 반대의 시각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학교 안의 어떤 단체에 대해 특정 셀럽이 혐오 집단으로 규정했다는 말은 영화에서 나름의 균형감각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인 사람들의 움직임의 허상도 꼬집었으니 영화가 풍자하고 싶었던 것들은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모호하게 퉁 치는듯한 이야기
영화는 구멍이 많다. 37살이 고등학교를 다시 다닌다? 아무리 교장이 친구라도 해도 설정에 대한 큰 구멍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친구가 교장이라고 37살이 고등학교 생활을 재개한다고 하면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영화의 만듦새를 지나치게 따지는 건 살짝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개연성, 핍진성, 현실성을 따진다고 했을 때 내가 최근에 재미있게 봤던 <닥트 스트레인지 2>나 <범죄도시 2>도 말이 안 될 것이다. 마 석도 같은 괴물 형사나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 설정의 현실성 문제는 또 다른 부분의 단점을 낳는다. 20년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던 인물이 며칠 만에 치어리더 팀의 수장이 되어 춤을 춘다. 최소한의 재활훈련도 없이 이 사람은 모든 일들에 무리가 없다. 또 영화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은 '스테프의 혼수상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부분일 것이다. 이 범인의 존재가 굉장히 쉽게 드러난다. 그런데 쉽게 드러나기만 하고 끝나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줬던 문제 해결 방식은 솔직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내 입장이라면 그렇게 안 했다. 또한 극에서 한 모녀관계가 있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모녀다. 모녀로서의 유대감을 묘사도 없이 '그냥 그래야만 한다' 식으로 어물쩡 넘어간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들 성격 묘사가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이 주위 사람들의 성격은 주인공의 개과천선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중요할 것이다. 친구들에 감정 이입해서 대신 말해주는 사이다가 터져야 극에 집중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들이 착하다. 후반부의 강한 임팩트를 위해 인물이 희생된 것이다. 이런 단점들을 품고 있다 보니 극의 메시지에 강하게 집중이 안 된다. 끝에 하고 싶은 말을 빡 하기 위해서만 이뤄지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이야기했듯 단점이 많은 영화지만 장점도 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아직도 인간관계의 부담감을 느끼는 나. 나름 학습해야 했던 관계에 대해서 10대 때 놀았으니 이 대가는 필연적이다. 그래서 가끔 인스타그램의 누군가들이 부럽다. 내 짝은 누굴까?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못 받을까? 난 누군가에게 진심이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이 마음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힘 있는 메시지를 보낸다. 극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긴 하나 어렵지는 않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감동이 분명히 있긴 할 것이다. 후반부 어떤 인물의 입에서도 나오듯 현실은 인스타그램 밖에 있다.
또 주인공을 맡은 레벨 윌슨의 열연이 돋보인다. 레벨 윌슨은 미국에서 유명한 개그우먼이자 여배우라고 한다. 코미디/로맨틱 코미디 장르 장인으로 유명한 그녀. 연기라는 주종목을 살린 탁월한 열연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또 인스타그램 인기의 허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적절했다. 이것 하나 때문에 좀 많은 게 희생된 것 같긴 하지만 나 같은 유사 아웃사이더들에게 좋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이외에 이런 코미디 요소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난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안무 짠 배우들이 고생 많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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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과정에서 지나치지 않은 감정 속을 유영하다
테이블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네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공간 자체의 긴장감과 대화가 동시에 펼쳐진다. 비극적인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두 부모의 조우 속,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책으로도 꼭 만나고 싶은 영화, 매스를 소개한다.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야기를 듣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온전히 누르기는 힘들었다.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펼쳐지는 대화는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흐름을 유지한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더 숨 막히게 만드는 자리 배치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수많은 대사는 그들이 겪어 왔던 고통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시선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사람의 용서는 고통에 따라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들이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고통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기에 변하지 않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이는 표정이나 시선,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감정이 더욱 극대화된다. 대사로 표현되는 감정들이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먹먹하다. 가해자의 부모이기 때문에 온전한 슬픔과 그리움을 표출할 수 없었던 가해자 부모의 표정이 떠오르며 그 감정이 커진다. 용서할 대상이 불명확한 이 상태에서 모두가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거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나눠야 할 것이다.
화면이 검게 변해도 빛만큼은 사라지지 않는 모습에 영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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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의 파국을 담은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가 개봉했어요.
항상 괴물이 등장했던 그의 영화에 이번에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데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한 인간의 욕망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겼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참 아름답고 몰입감있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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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스타일의 리메이크 / 말할 수 없는 비밀 / 판타지 로맨스 멜로 / 도경수, 원진아 주연 / 행복한 잔상의 수작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말할 수 없는 비밀"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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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테헤란 시즌2> 공식 예고편
액션 가득한 '테헤란' - Tehran의 새 시즌에 글렌 클로즈가 합류해 니브 술탄, 샤운 토웁과 함께 열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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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래곤 솔져> 예고편
깨어난 전설의 드래곤 vs 최정예 특수대원
마을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습격당한다.
특수부대 용병들이 투입되고 산을 수색하는데
그들이 마주한 것은 전설의 거대한 드래곤이다.
영리한 드래곤에게 용병조차 하나 둘씩 당하고
드래곤과의 정면 대결을 위해 최후의 작전에 돌입하는데…
상상초월의 대결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