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7-16 16:28:47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리뷰 (미야케 쇼 감독)
청각 장애인 여성 복서. 당신의 머릿속에는 이미 영화 한 편이 그려졌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클라이맥스에서 멋진 승리를 거두고, 희망찬 미소 혹은 결연한 눈빛 같은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그러나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장애는 “극복”의 대상인가? 그렇다고 치더라도, 경기에 승리하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실 장애 유무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이런 스토리에 속절 없이 약하다. 그러니까 신체의 한계까지 몰아붙여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의 스포츠에,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삶에 매번 감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화를 더 보고 싶은지 물어보면, 좀 망설여진다. 보기 전에도 다 본 느낌이 들어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씨네21> 인터뷰에서 “수많은 권투 영화 명작이 있다. 그들이 했던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건 큰 승리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시행착오 또한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 20대 후반쯤 되면 지금 삶의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도 될 것인가 점검하게 되지 않나. 케이코 역시 권투로 정점을 찍고 난 후 권투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라고 밝혔으니까.
그 마음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메시지는 이를테면 분자 단위 정도의 크기로 잘게 곱게 분쇄되어 있었고, 영화를 보는 동안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게 내게 녹아 스며들었다. 연출도 연기도 모두 훌륭해서 그런가? 소리 없이 전해지는 말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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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가사와라 케이코라는 복서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우리는 어쩐지 ‘실화 바탕’이라는 말에 자꾸 집중하게 된다. 마치 거기에 단호하게 선을 긋듯이, 영화가 시작되면 오가와 케이코라는 복서의 기본 정보가 텍스트 자막으로 깔린다. 그리고 체육관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어쩐지 ‘여기까지 기본 정보는 줬으니, 이다음부터는 영화로만 집중해 줘’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 내리는 고요한 날, 체육관 바닥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낡은 운동기구가 삐걱거리고 줄넘기가 바닥에 탕탕 부딪는 소리가 우리를 영화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필름의 질감 안으로. 남녀 탈의실조차 분리되어 있지 않은 낡은 체육관에서, 필담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케이코의 세상으로.
필름에 담긴 도시 외곽은 어쩐지 채도가 낮다. 곳곳에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불빛들만 담겨 있는 시간 케이코가 달리기를 위해 집을 나설 때는 더욱 그렇다. 이른 새벽의 전등들은 왜 그리 피로해 보일까? 밝지 않은 불들이 서서히 켜지는 어슴푸레한 새벽은 왜 스산해 보일까? 그 도시에서 케이코는 채도가 낮은 푸른색으로 표표히 존재하고 있다. 체육관에서 입는 티셔츠도, 성실하게 훈련 일지를 기록하는 노트 옆의 파란 얼음 컵, 한 번씩 덧바르는 짙푸른 매니큐어도.
영화는 케이코의 푸르스름한 세상을 유난스럽지 않게 펼쳐 보인다. 한겨울에 웬 선풍기일까 하고 보면 이내 그 선풍기가 핸드폰과 연동된 아침 알람임을 닫게 되고, 초인종이 울릴 때 집 안에서 플래시가 번쩍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일터에 수어로 말을 걸어오는 동료도 있고, 케이코에게 살가운 수어로 다가오는 남동생도 있지만, 케이코의 언어는 수어만이 아니다. 케이코에게는 다양한 소통의 수단이, 다양한 언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싱이 그의 언어가 된다. 이 영화는 케이코가 복싱을 언어로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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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은 혼자 할 수 없다
케이코에게 다양한 언어가 있지만, 케이코는 그 언어들을 적극 사용해 외부로 나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케이코는 자기 세계가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 관장님 말대로 복싱에 재능은 없지만 (청각 때문이 아니라 “작고, 짧고, 주먹도 느리”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 왔다. 복싱은 원래도 개인 스포츠지만, 경기 중에도 아무 훈수를 들을 수 없는 케이코에게는 더더욱 철저하게 자기만의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고민하는 중에도 케이코는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려 한다. “말하면 기분이라도 나아지지 않냐”는 남동생에게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다”며 말하지 않으려 하고, 사람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고함이 케이코 나름의 강인함일 수 있을 것이다. 복싱은, 특히나 케이코의 복싱은 철저하게 혼자 하는 개인전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러나 아무리 자기 세계가 견고한 사람이라도 혼자 살 수는 없다. 개인전인 복싱도 사실 상대와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혼자 할 수 없는 스포츠이다. 케이코의 세계에도 이런저런 고민들이 들어온다. 프로가 된 것은 대단하지만 이제 그만하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만류, 갑작스럽게 체육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 귀가 들리지 않는 케이코를 모든 체육관에서 기꺼이 받아주는 것은 아니므로, 케이코는 복싱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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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과 타성을 뚫고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지점이다. 진짜 계속할 마음이 있는지. 계속할 것인지. 계속할 수 있는지.
가끔은 그런 질문들이 삶에 벼락같이 찾아오는 일도 있다. 어쩌면 체육관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기로 한 것 또한 그런 순간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언젠가 올 날이 코로나19가 앞당겨 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도 있지만, 도시 외곽의 낡은 복싱 체육관의 경우처럼 이미 멀어져 가던 것들을 코로나19가 가속화한 것들도 있다. 마스크로 인해 입을 읽어낼 수 없어 언어 하나를 잃은 청각 장애인들의 일상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케이코와 부딪혔을 때 무례한 언사를 펼치던 어떤 행인처럼, 누군가의 언어 하나를 틀어막는 일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던 방향성인지 모른다.
그러니 코로나19는 특수 상황이었다고, 이 바이러스가 한물갔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길 수는 없다. 코로나19 없이도 언젠가는 왔을 날이다. 관장님의 육체처럼, 낡은 복싱 체육관처럼, 모든 것은 언젠가 쇠잔해지니까. 우리 삶은 날마다 쇠잔해지는 가운데 우리에게 몇 개의 선택지 사이 고민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완승하고 링 위에서 기뻐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링에 오르기 위해 땀 흘리는 날이 있으며, 때로는 그조차 막막해지는 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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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어딘가에서
복싱은 무수한 반복이다. 고쳤다고 생각한 버릇을 또 고치고, 뛴 곳을 또 뛰고. 자꾸 힘이 들어가는 몸에 힘을 빼고, 심호흡을 하면서. 숨 하나씩, 주먹 하나씩, 쌓아 올리는 하루하루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힘들고 고단한 길이지만,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이 영화의 엔딩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눈 부릅뜨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올리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훅 다가와서. 세상은 복싱이 사장되어 간다고 하고, 사실 필름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듣지. 그밖에도 당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들 또한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 면면들은 어딘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잠깐 지나가는 것 같았던 의사 역할을 나카무라 유코가 맡고 있어, 잠시지만 반가웠던 것처럼. 곳곳에, 어딘가에, 빛나는 면면들이 여전히, 있다.
영화 내내 도시의 불빛과 질감이 피로해 보이고 스산해 보이기만 했는데, 문득 그 불을 밝히며 하루하루를 쌓고 호흡을 가다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힘이 솟았다. 눈을 마주할 상대가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가장 좋은 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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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사람이 복싱을 하면 등을 보이고 도망갈 것 같지만 오히려 앞으로 뛰어든다. 몸을 숙여 피해야 하는데, 어쩐지 몸을 피하는 그 잠깐이라도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기가 불안해, 피하지 못하고 주먹만 휘두르면서 앞으로 나가곤 한다. 케이코는 프로 선수니까 나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점, 두려움으로 나아간다는 나쁜 습관 하나는 공통점이었다.
케이코가 배워야 했던 것은, 물러서지 않는 마음. 물러서지 않고 대신 가드를 든든하게 올릴 것. 세상에는 겁나는 일이 많지만, 도망치고 싶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진퇴양난에 빠지는 순간의 괴로움도 깊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물러서지 않기, 대신 가드를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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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마음이 없으면 계속할 수 없는 게 복싱이다. 고민 끝에서 51:49의 아슬아슬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만드는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결국 삶에서 결정적으로 소중한 것들은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며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눈물 고인 눈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케이코처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일 체육관에 가면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케이코가 몇 번씩 하던 콤비네이션을 연습해 보기로 다짐했다. 이 동작을 잘하려면 어퍼와 위빙 사이에 몸을 잘 틀어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한쪽 발은 계속 단단한 축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마침내 계속 “할 마음(やる気)”이 생긴 케이코의 모습이 링 위에서 드러났듯이, 나 또한 한쪽 발을 단단한 축 삼아 또 계속해 보기로 한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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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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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푸팬더 4 | 익숙한 맛으로 생명 연장하는 시리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면의 평화도 찾고, 숱한 빌런을 물리치며 용의 전사다운 위업을 쌓아 올린 쿵푸팬더 '포'(잭 블랙). 마스터 '시푸'(더스틴 호프먼)는 그에게 새 과제를 낸다. 이제는 평화의 계곡을 지키는 보호자가 아니라, 계곡을 이끌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라는 것. 그 일환으로 포는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가 좋은 포는 스승의 과제가 마뜩잖다.
때마침 과거의 숙적 '타이렁'(이언 맥셰인)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리고, 포는 시푸와 수련하는 대신 새 모험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는 쿵푸 마스터의 유물을 훔치려는 도둑 여우 '젠'(아콰피나)을 붙잡고, 그녀에게서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빌런 '카멜레온'(비올라 데이비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 그렇게 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용의 전사로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여정을 떠난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할리우드 영화에 가해지는 여러 비판 중 하나가 속편 제작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등장하면,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할 때까지 속편을 계속해서 찍는 경우가 많다. 물론 속편 제작 자체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죽은 자식 불알을 계속 만지니 문제다. 시리즈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1편에서 참신했던 캐릭터나 스토리가 모두 무너지고 오로지 돈 만을 쫓는 작품이 양산되기 때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시작은 화려했다. 1편 <블랙펄의 저주>는 <컷스트로 아일랜드> 이후 명맥이 끊긴 할리우드 해적 영화를 부활시켰다. 조니 뎁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였을 정도. 하지만 삼부작으로 끝난 이야기를 무리하게 늘리면서 프랜차이즈는 무너졌다. 5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주인공 잭 스패로우의 캐릭터성도, 전편과의 연결고리도 지키지 못하면서 팬들의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쿵푸팬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캐리비안의 해적>을 향한 눈초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의 이야기는 지난 삼부작으로 이미 깔끔하게 끝났기 때문. 제작사인 드림웍스의 전례 때문에 우려는 더 컸다. <슈렉> 시리즈를 4편까지 늘리다가 시리즈의 명성에 금이 갔으니까. 다행히도 <쿵푸팬더 4>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시리즈를 이어져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 생명 연장에 성공했다.
포의 새 과제
<쿵푸팬더> 트릴로지는 포의 성장기로서 흠잡을 데 없었다. 1편은 포의 육체적 각성을 보여줬다. 쿵푸 마스터를 꿈꾸지만 정작 주방에서 국수를 만들어야 했던 포. 그는 본인도 모르던 쿵푸 마스터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고, 평화의 계곡을 지켜내는 '용의 전사'로 거듭났다.
2편에서 포는 자기 과거를 극복했다. 아버지는 거위인데 자기는 판다인 이유를 궁금해했던 포. 그는 출생의 비밀에 관한 환상을 본 후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포는 자기처럼 과거의 상처에 집착하는 빌런 '셴'을 만나고, 그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단단한 용의 전사가 됐다.
3편에서 포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용의 전사이자 쿵푸 마스터로서는 과거 자기가 동경했던 '무적의 5인방'까지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으로 거듭난다. 그와 동시에 팬더로서의 정체성도 확립한다. 마침내 친부를 만나고, 팬더 마을에서 다른 팬더들을 만나며 마음속 응어리를 완전히 해소한다.
<쿵푸팬더 4>는 포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이제 그는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용의 전사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토양을 마련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포는 이제 직접 빌런을 무찌르는 대신, 그의 후계자가 빌런을 대적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다져주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마치 우그웨이가 시푸와 포에게 그러한 존재였듯이.
진정으로 변화하는 법
물론 포는 변화를 거부한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려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새로운 빌런 카멜레온이 나타나 포를 공격한다. 그녀는 누구로든 변신하는 능력을 살려 포의 숙적이었던 타이렁을 가장해 그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 틈을 노려 우그웨이가 포에게 남긴 영혼의 지팡이를 탈취하려 든다. 지팡이가 있어야만 영혼계로부터 모든 쿵푸 마스터를 소환하고, 그들의 무력을 탈취할 수 있으니까.
카멜레온의 능력은 의도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이 능력 덕분에 포와 카멜레온의 대결을 능력을 갖고도 변하지 못하는 빌런과 능력 없이도 진정으로 변할 줄 아는 영웅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포는 카멜레온을 쉽사리 이기지 못한다. 모든 쿵푸 마스터의 능력을 지닌 상대에게 숱하게 패한다. 하지만 파훼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온다. 포가 후계자 젠에게 기회를 양보하며 스승으로 거듭날 때, 마침내 카멜레온은 패한다.
<쿵푸팬더 4>는 이 대결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직접 부딪혀 봐야만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그때서야 비로소 낯설고 어색한 자리와 새로운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단순히 외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도, 성장도 아니라고. 카멜레온이 남의 능력을 탐내듯이 재물과 권력, 지위를 탐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캐릭터에 조금만 신경 썼다면
다만 포의 새로운 성장담은 기존 서사에 비해 얕고 급하다. 포를 도와줘야 할 새 캐릭터가 기존 주인공과 빌런을 대체할 만큼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빌런인 카멜레온은 효과적인 도구다. 포가 왜 한 번 더 성장하고 변해야 하는지를 적당히 전달하는 장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는 않다. 돈을 강탈하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평범한 악당에 불과하다. 만약 쿵푸 마스터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과거 개인사를 강조했다면 포의 아치 에너미로서 기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서사를 대사 몇 마디로 축약해 버린 나머지 가능성을 살리지는 못했다. 도심 추격전이나 술집 액션처럼 다소 길고 늘어지는 대목을 줄이고, 카멜레온에게 분량을 조금 더 나눠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이유다.
그 결과 카멜레온은 시리즈의 완성도와 매력을 망치는 주범에 가깝다. 타이렁, 셴, 카이 등 지난 악역을 모두 소환하고도 정작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 액션을 보여주는 건 타이렁뿐이다. 다른 빌런은 한 두 컷 스쳐 지나가는 데서 그친다. 심지어 타이렁조차도 개그 캐릭터로 허비된다. 그 결과 용의 전사가 되겠다는 야심, 스승을 뺏기지 않으려는 결핍이 더해져 묘한 매력을 뽐냈던 시리즈의 개국공신은 허망하게 퇴장한다.
포의 후계자가 될 젠 역시 불만족스럽다. 물론 기존 시리즈와 결이 다른 재미를 주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포와 버디 영화를 찍는 대목은 익숙한 캐릭터만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히 변주를 준다. 때마침 젠이 여우이다 보니 마치 <주토피아> 속 닉과 주디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첫 등장부터 젠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다 보니 나름 힘을 준 반전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맛집이 괜히 맛집인가
더 나아가서 전반적인 구조와 구성도 좋게 말해 익숙하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다. <쿵푸팬더 4>는 시리즈의 기본 패턴을 반복한다. 포의 활약을 짧게 보여준다. 우그웨이나 시푸가 던져주는 새로운 이슈가 등장한다. 뒤이어 빌런이 등장하자 포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의 첫 도전은 실패한다. 그러나 이내 각성한다. 결국에는 빌런을 격퇴하고 스승이 준 과제를 끝내면서 성숙해진다.
물론 장점이나 특별한 점은 아니어도 단점이라 말하기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종종 다른 잣대가 필요하기도 하고, 애초에 이 맛에 <쿵푸팬더> 시리즈를 찾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 다만 4편까지 나온 상황에서 '식상하다' 내지는 '안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익숙한 맛에 풍미를 더하는 여러 조미료에 힘입어 영화는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내달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머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다른 제작사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꼽자면 성인 취향의 말장난 대사를 많이 쏟아낸다는 점.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포가 등장하는 모든 컷마다 개그씬을 연출하려고 애쓴다. 이때 유머 타율이 꽤 높다. 특히 포와 시푸의 투닥거림은 이번에도 미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쿵푸팬더 4>는 비록 삐걱거릴지언정, 모두가 기대한 맛을 선사하며 오랜만의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6편까지 기획 중이라는 소식에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키워볼 만하다. '무적의 5인방'의 복귀가 화룡점정을 찍는 크레디트가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욱 그렇다.
Acceptable 무난함
살아남는 국밥집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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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보다 수월해진 공조!
2017년 설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공조>는 당시. 경쟁작 "한재림" 감독의 <더 킹>에 밀린채 박스오피스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내 가족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와 함께 국내 박스오피스 1위와 함께 누적 관객 수 781만명으로 <더 킹, 531만명>을 눌러버렸다.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은 전작의 주인공 남한의 "강진태(유해진 분)"와 북한의 "림철령(현빈 분)"이 다시 공조 수사를 한다는 내용으로 이번 속편에서 미국 FBI 요원의 "다니엘 헤니"와 악당 "진선규"가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1. 캐릭터들의 역할이 달라졌다!
이전 게시글들에서도 말했듯이 속편 가운데, 2편은 비교적 쉬운 숫자이다. - 장점은 계승하되, 단점은 개선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늘어난 제작비만큼이나 새로운 캐릭터들과 함께 펑펑! 터지는 볼거리 등은 전작에 비해, 커진 규모를 가늠케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조2: 인터내셔날>도 이런 "속편의 법칙"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아니,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봐야겠지!
뻔하다면, 뻔한데 어째서 전편보다 재밌는걸까?일단, '캐릭터들의 변화'에 있다.
전작의 경우. "강진태(유해진 분)"와 "림철령(현빈 분)"의 역할은 웃음과 액션으로 구분되었다.
그에 비해서, 이번 속편에서는 영화의 시직과 함께 차에 메달리는 액션을 선보이는 "강진태(유해진 분)"처럼 다른 남자에게 한 눈 파는 "민영(윤아 분)"을 향해 질투하는 "림철령(현빈 분)"의 장면으로 '멀티 포지션'으로 변경된다.2. 동일해도 상황은 달라요.
물론, 이에 대한 걱정은 있다!
서로 잘 하는 것을 넘어 딴길로 샐 수 있지만, 영화는 "코미디"쪽에 좀 더 진화된 게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웃음과 액션으로 각 역할이 구분되었던 캐릭터들에 비해, 좀 더 세세한 상황들을 제시해 역할이 겹쳐도 각 캐릭터들만의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가령, 어설픈 러시아어로 심문하는 "잭(다니엘 헤니 분)"과 "림철령(현빈 분)"를 사이에 둔 "민영(윤아 분)"의 모습으로 재미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서사들에 비해 악당 "장명준(진선규 분)"의 인상은 옅다.
긴 머리에 콧수염으로 외견을 달리했지만, 쓰이는 어투가 북한말이기에 자꾸만 <범죄도시>의 "위성락"이 겹친다.
이런 이유에는 해당 배우분의 연기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동기들을 말하지만 이를 납득하기엔 너무 급한 감이 없지 않나?2. 잦은 슬로모션에 액션이 늘어진다.
이외에도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역시 액션이다.
이번 <공조2: 인터내셔날>에서 잦은 "슬로 모션"이 나오는데, 이게 영화를 촌스럽게 만든다.
분명히, 멋있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코미디"에 활용하려드니 어색하게만 보여져 전작의 "두루마기 휴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운 점이 아닐까?
그럼에도, <공조2: 인터내셔날>는 즐기는 데에 문제 없는 작품이다. - 무엇보다 펑펑! 터지는 볼거리까지 있으니까!특히, 이번 "잭"의 등장으로 여러 국가 기관들을 활용한 "시리즈"의 청사진과 달라진 "철령(현빈 분)"과 "민영(윤아 분)"의 모습은 더 큰 기대치를 품게 만든다.
· tmi. 1 - 고증이라면, 해당 영화의 'FBI'는 미국내 사건을 전담 부서이다. 해외 전담은 'CIA'인데? (아시는 분들은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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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 엣 더 팜 / Tom at the Farm
/줄거리 스포주의/
애인 기욤의 부고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톰
참담한 심정으로 기욤의 집에서 장례식때까지 지내기로한다.
톰이 그와 기욤이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욤의 어머니에게 알리려했으나
기욤의 형인 프란시스의 협박에 의해 그의 계획은 무산되고
프란시스는 어머니에게 기욤의 애인이 사라라고 지어낸다.
어머니가 톰에게 사라와 기욤의 사이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톰의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다.
톰에게 계속되는 프란시스의 협박과 폭력.
더이상 못 버티겠어서 장례식이 끝나고 떠나버리는 톰
그러나 가방을 두고온걸 뒤늦게 알아채고 다시 돌아간다.
더 있으라는 프란시스와 어머니의 권유.
그는 이기지 못한채 몇 일 더 머물기로 한다.
머물면서 프란시스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에게 감정이 생기게 된다.
기욤의 집으로 오게 된 사라.
그녀도 프란시스에게 폭력을 당하고
톰에게 프란시스는 미친것 같으니 같이 떠나자고 말한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편을 들며 남아버리는 톰
그리고 몇일이 지나 프란시스의 소문을 듣게 된 톰
그는 다시 탈출을 결심하게 된다.
.
.
.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닮아 고통스러워도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YELM의 한줄소감
/감상평/
자신이 애인이고 그의 연인이었다는 것을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으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 기분을 이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해 준 것 같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느낄 수 있었던 씬은
톰이 기욤에게 쓴 편지를 마치 사라가 전해달라고 한 것처럼
읊조릴 때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슬픔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감명 깊었던 부분은 위에서 말한 부분 뿐만이 아니었다.
톰이 프란시스를 떠나지 못하고
그의 올가미 속에서 계속 방황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해낸 해답은 "기욤을 너무 닮아서." 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낸 것 보다 돌란이 의도했던거겠지만.
기욤을 닮았다는것이 외모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도 나왔지만, 냄새도 닮아있고
그 이외에 프란시스의 행동하나하나 모든 것이 기욤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
프란시스가 톰에게 행하는 폭력들이
톰을 극한의 불안한 상태로 끌어들인 것은 아닐까?
불안한 상태 + 기욤을 닮은 그의 모습
= 그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그렇기 때문에 그가 프란시스를 변호한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씬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프란시스에게서 벗어난 그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느껴지는
자유.
그 상황에 어울리는 배경음악
"나는 미국이 질렸어 - 벗어날래 - "
라는 가사들은 USA 옷을 입고있던 프란시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서 떠난다는 돌란의 마지막 인사 같은 느낌이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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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여담 /
역시 돌란의 영화는 배경음악이 신의 한 수 다.
어쩜 그렇게 상황에 딱 맞는 음악을 넣는지 놀라울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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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가스라이팅 사이
믿음과 가스라이팅 사이
영화 클럽 제로 리뷰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시놉시스] STEP 1. 깊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보세요 STEP 2.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보세요 STEP 3.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여러분을 이제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임명합니다.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간다.
#스포일러 유의#최면과 같은 음악
영화 클럽 제로는 굉장히 전위적인 음악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사람들의 허밍과 단조로운 리듬감으로 구성된 bgm을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지루하다기 보다는 무언가 최면에 걸리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클라이막스가 있다기 보다는 계속해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상황 속에서 집중하고 빠지게끔 만드는 전개여서 미스 노백의 기이한 수업에 관객마저도 홀리게끔 만드는 요소였다.
이처럼 영화 클럽제로의 음악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세팅하고, 관객은 미스 노백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그 기괴한 수업 방식에도 미스 노백의 말을 그저 듣게끔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덕분에 2023년 35회 유럽영화상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내내 음악이 흘러나오면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을 통해 미스 노백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 강력한 반감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지만 영화가 딱 끝나고 나면 음악은 딱히 기억나지 않으면서 미스 노백의 논리에 대해서 완벽한 반감이 들게 만들어서 이것이 집단 최면인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가스라이팅인가? 믿음인가?미스 노백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간다. 초반에는 이런 선생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까지 내면서 자신의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관리한다. 그리고 초반에는 의식적 식사법이라는 굉장히 이 시대에 합리적인 논리를 가지고 수업에 임하면서 학생들에게 과한 식습관을 고쳐주려는 너무나도 선량한 영양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날은 먹을 것이 넘처나는 시대다. 특히 부를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음식량보다 훨씬 더 많은 요리를 함으로써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함께 미용적인 부분에서 언제나 다이어트가 각광받고 있으니 의식적인 식사를 통해 체중관리 및 올바른 식습관 정립을 통해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 자체는 엘리트와 부자들만 모인 최고의 학교에서는 싫어할 수가 없는 수업이다.
초반 이렇게 믿음의 세팅을 잘 해둔 덕분일까? 절식에서 범차 금식의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아이의 탓이 아닌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부모가 원인임을 지적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유'를 강조한다. 항상 학교와 부모,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이들에게 '자유'를 쥐어주는 수단으로 금식을 제안하면서 아이들은 정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예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 '클럽 제로'의 회원이 된다.
최고의 시설에서만 자라온 엘리트 집단의 자녀들은 각자의 이유로 미스 노백의 수업을 듣는다. 자기 통제, 환경 보호, 체중 조절, 장학금 등 이유는 다채롭지만 결국 그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서 미스 노백은 아이들을 교묘하게 자신에게 의존하게끔 만들었고, 믿음이라는 포장 아래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클럽 제로는 굉장히 기괴한 논리를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엄청난 반감보다는 그 논리에 이상하리만큼 빠져들었던 기이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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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서 보내는 응원
"나이 드니까 눈물만 많아져. 어쩐지 눈물이 나네." 같은 말에서는 괜스레 낙엽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내 입에서 나오기엔 좀 방정맞은 것 같다고, 아마도 십대쯤이었던 나는 생각했다. 삼십 대에 들어선 지금도 자신이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이들이 왜 저런 문장을 골랐는지 알 것 같은 순간들이, 가끔 그 비슷한 말이 슬쩍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이전에는 무심하게 넘어가던 일들이 실은 여상하지 않음을 깨달아가는 탓이다.
꽃 한 송이 피는 순간이나 새 살이 돋아 상처가 아문 자리는 어쩜 그리 경이로운지. 남들 다 하고 사는 일 중에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들이 많은지. 반쯤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느낌을 즐기며 천문학 책을 읽어보는데 중력이나 관성 같은 개념은 어쩜 그렇게 신비로운지. 모두 다 이전에는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두 번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 깨달음이 켜켜이 쌓인 자리에 무언가 와 닿았을 때, 그래서 물방울이 터지듯 눈물이 훅 고일 때, 그럴 때 우리는 "어쩐지" 눈물이 난다고 한다. 기실 이게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걸까 곰곰이 따져보고 생각할 시간이 우리에겐 많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나이 드니까', '어쩐지'라고 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많은 시간을 그렇게 허덕허덕 보내고 있는 것이다.
윤이형 작가의 <작은 마음 동호회>에 수록된 단편을 읽다가 그렇게 "어쩐지" 울컥한 장면이 있다. 어떤 자매의 이야기였는데, 동생에게 생긴 큰 변화를 엄마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언니가 엄마의 입장을 헤아려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이었다. 버는 돈 대부분을 책과 영화에 쏟아내며 사는 자신의 존재는 엄마에게 어떨까 생각하는, 뭐 대략 그런 문장이었다. 전철 한가운데서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눈물이 터졌다. 어쩐지 울컥하네. 그리고 마침 전철 한가운데였으므로, 종점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있었으므로 그 "어쩐지"의 정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건 내가 가진 불안과 맞닿아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안정적인 것들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히려 점점 멀어지는 스스로를 보면서, 엄마도 아빠도 눈치를 주지 않건만 괜스레 눈치 보게 되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십대 때처럼 대단한 입신양명을 꿈꾸는 건 아니라 해도, 최소한 이 정도는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니 하는 세간의 말에 나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아씨들>의 조가 그 '세간'과 반대로 가는 삶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은 그 걸음조차 흔들리는 그대로 괜찮다고 끌어안아준다. 좋은 영화, 마음에 남는 영화가 많지만 찬실은 마치 어려운 날 함께 앉아있어 주는 친구처럼 따스하고 다정하다.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 정말 굉장히 운이 좋은 찬실이란 사람이 나오나 봐 ” 라고 생각한 한국인이 있을까? ( 내 친구는 자꾸 “ 찬실이는 복도 없지 ” 로 기억했다. ) 시놉시스를 볼 것도 없이 찬실이의 날들이 꽤나 박복하게 굴러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제목이기도 하다.
찬실은 영화를 사랑하는 프로듀서다. 즉 감독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영화라는 형태에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할 때, 그걸 현실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기획과 제작부터 홍보와 개봉까지 전 과정에 손이 닿는 사람, 본인 말을 빌자면 "돈도 관리하고 사람들도 모으고 뭐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다. 찬실은 예술 영화로서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감독과 오래 같이 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영화 찍으며 평생 살 줄 알았다. 감독이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될 때까지는.
찬실이의 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OST 가사처럼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는 현실이 갑작스럽게 부대껴오는 것이다. 시간과 애정을 다 바쳐 사랑한 영화가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때로는 엉엉 울기도 하고 때로는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기도 하면서 찬실은 씩씩하게 삶을 다시 꾸려나간다. 얼마 안 되는 짐을 추려 언덕길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 문간방으로, 사각형도 오각형도 아니고 반지하도 1층도 아닌 방으로 이사한다. 생계를 위해 친하게 지내던 배우 소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급브레이크 걸린 길에서 방향을 어디로 틀어야 하나.
찬실에게는 별로 여유가 없다. "한국 영화계의 보배"라며 찬실을 추켜세우던 영화사 대표는 ‘감독의 예술이었으니 프로듀서가 누구여도 상관없었을 것’이라며 직업인으로서의 찬실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때마침 소피에게 불어를 가르친다는 단편영화 감독 영을 보면서는 또 나름대로 심경이 복잡하다. 좋아하고 어쩌고 할 만큼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리고 정작 알아보면 그렇게까지 잘 맞지도 않지만 ("노올란?!"), 이 정도면 대충 업계도 맞겠다 사람도 다정하니 괜찮은 것 같은데 적당히 연애라도 해볼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조각배 같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던 찬실의 일상에 한 남자가 더 나타난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맘보 춤을 출 것만 같은 속옷 차림새에, 추위에 파르라니 떨면서도 콘셉트에 충실하게 머리카락까지 고슬고슬 만지작거리는 그는, 자신이 장국영이라고 주장한다. 유령일까 환상일까 아니면 영화의 현신 같은 존재일까. 아무튼 그는 본인이 장국영이라고 주장하고, 찬실은 "이제 내가 미칬는갑다... 완전히 돌았는갑다..." 하고 서러워한다.
이 모든 주변인 틈바구니에서 찬실은 어떤 카테고리로 규정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뚜렷하게 계약서 찍힌 직업도 없고, 함께 서로를 보듬자고 미래를 약속한 사람도 없고, 하다 못해 여태까지 해왔던 일조차도 없어졌지만 찬실은 늘 최선을 다한다. 장국영에게 고민 상담을 하거나, 영과 잘해보겠다고 도시락 싸들고 따라가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소피에게도 너 자신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해 보라고 하고, 더듬더듬 한글을 배우는 집주인 할머니 숙제를 도와드리거나 함께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그리고 그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 도시 곳곳에 세금으로 조성한 공간을 저렇게 귀엽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 크리스토퍼 놀란을 무시하고 오즈 야스지로(를 비롯해 '시네필'들이 좋아하는 감독)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저렇게 유쾌할 수도 있구나. 빛날 찬 열매 실, "내하고 닮았나" 고민했던 모과처럼 단단하고 향기로운 사람이다. 모과 바로 뒤에 붙어나온 배, 사과, 곶감 등 영화 대박 기원 고사상의 과일들은 끝내 그녀의 것들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찬실에게는 알찬 열매라면 으레 그렇듯 은은한 윤기가 돈다.
그러는 동안 장국영은 찬실에게 계속 묻는다.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뭐냐고. 영화를 "해나갈 수 있을까" 묻는 찬실에게, 찬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묻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영과 "잘될 수 있을까"를 묻는 찬실에게, 외로운 건 외로운 것일 뿐이니 상대가 아닌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일련의 일들 끝에 찬실은 모든 걸 게워낸 사람이 물병을 더듬더듬 붙들듯 다시 영화를 잡는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찬실은 "하고 싶은 일"의 첫걸음을 떼어나간다.
영화 끝에서 찬실은 장국영이 메어주는 아코디언을 한 품 가득 끌어안고 희망가를 연주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시작과 끝에 어쩐지 쓸쓸한 바람 소리를 품고 있는 악기여서일까. 제목은 희망이라지만 어쩐지 절망적인 시대에 불리던 아득한 노랫말이어서일까. 그 장면은 어쩐지 눈물겹다.
이 영화에서 내게 "어쩐지" 눈물이 난 부분은 이 장면이었다. 차분한 연주 끝, 그동안 자기 일처럼 열을 내며 해준 장국영의 조언이 더 이상 찬실에게 필요치 않다는 걸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 제가 멀리 우주에서 응원할게요 "
" 고마웠어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그 차분한 인사는 마치 영화와 주고받는 말 같았다. 우리는 이래서 영화를 보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에 있어 늘 외부자라고만 느꼈던 내게도 영화가 말을 걸어주는 순간이었다. 우주 어딘가에서도 누군가가 담은 마음을, 때로는 택배 받듯 때로는 유리병 편지 받듯 건네어 받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오래오래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이따금 끄집어내어 살펴보는 것. 그게 영화와 나의 관계였다. 찬실처럼 프로듀서가 되고 감독이 될 일도, 영처럼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업을 두루 섭렵할 일도, 하다 못해 이미 폐간된 <키노> 지를 쌓아놓고 정성일 평론가의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일도 없지만 그런 나에게도 영화는 선물처럼 가까이 와준다. 마치 이 영화, 찬실이 그랬듯.
영상으로 보다 보면 닮아 보인다. 진짜다.
영화의 현신 장국영. 그를 우리가 길이길이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잘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는 영화의 아우라가 있으니까. 이 영화에도 나온 <아비정전>의 옷차림이 그의 외적 시그니처라면, <패왕별희>는 그의 내적 시그니처였다. <패왕별희>에서 그가 맡은 데이는 철저하게 이야기 속으로 침잠한 인물이었으니까.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가장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가 데이인데, 그럼에도 그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건 영화가,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 때문이다.
그가 이야기의 극단에 서 있다면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쥬샨이다. 거친 현실을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했던 쥬샨과,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던 데이. 샬로는 그 사이에서 남편이었다 패왕이었다 하며 갈지자로 걸었다. 이야기 안에만 있고자 한 이에게 현실은 너무 거셌고, 현실을 바지런히 걷고자 한 이에게 이야기는 너무 매혹적이었다. 끝내 현실은 이야기를 밀어내지 못했고, 이야기는 현실을 지우지 못했다. 공리와 장국영은 대척점에 있었지만 실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찍힌 대척점이었다. 현실과 픽션은, 삶과 영화는 그렇게 먼 것 같지만 멀지만은 않다.
이따금 <패왕별희>의 어떤 장면이 생각나는 이유. 장국영의 눈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 삶에 에너지가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찬실을 만난다는 기분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들여다보는 이유. 우리가 늘 이야기를 찾는 이유는, "사는 게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라는 찬실의 말에, 다른 이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뒤에서 비춰주는 찬실의 플래시에 녹아 있는지 모른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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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x책] 우진은 복수 후에 행복했을까? ;감정을 읽는 시간.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마!! 내애가 임마!! 간짜장이라도 갖고 온나!
“
공포와 무서움은 동의어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구분해야 한다. 무서움은 구체적인 사건을 향하며 즉각적 도피, 회피, 방어 태도를 유발하는 기초 상태다. 따라서 무서움은 '실제 공포'라고도 칭한다. 반면 공포는 더 복잡한 부정적 감정으로 가상의 위험을 향한다.-56P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라고 붙인 이름을 가진 남자, 오대수는 이유도 모른 채 거나하게 취한 기억을 마지막으로 어딘 가에 감금된다. 대충이라도 수습해야 할 그 오늘이 언제 인지도, 몇 평 남짓한 이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늘 같은 시간에 주어지는 군만두 만이 어쩌면 자신이 세상과 완전히 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절박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군만두만 줘서 고문인 게 아니라 짜장, 짬뽕, 탕수육이랑 같이 안 줘서 고문인 게 팩트)그런 대수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던 가장 큰 두려움은.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위인 자살 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무능력 감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들이 십오 년이라고 말해 줬다면 조금이라도 견디기 쉬웠을까
“
복수심은 은밀히 자라나다가 결국 그 사람을 완전히 집어삼킨다.-210P
그 영겁의 시간과 감정과 체력을. 대수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살기등등하게 채우기로 결정한다. 문신으로 시간을 체크하고, 벽에 그린 사람을 향해 주먹을 꽂는 것으로 자신이 피우기로 작정한 불을 마음껏 피워 댄다. 그러다 마치 마법처럼. 혹은 너무도 허무하게. 대수는 그토록 그리던 바깥세상으로의 탈출 역시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이, 엉겁결에 이루게 된다.
15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 같으면서 치열했을 중 장년의 허리를 베어간 그 놈을 위한 복수심 하나로 이뤄진 대수는 자신의 기억과 실낱 같은 단서들을 근거로 그 놈의 그림자 끝을 자박자박 밟아 나간다. 15년이나 먹은 사료 같았던 군만두의 기억을 시작으로, 대수는 그와 대척점에 있는 그 놈 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나간다. 그와 함께 그 녀석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야겠다 는 마음속의 분노와 복수심도. 더더욱 커져간다.
일 더하기 일은 귀요... 귓방맹이다 이놈아.
“
한 가지 명확한 결과는, 정의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복수심도 강하다는 사실이다. -219P
그것이 정의라 생각했다.
나를 아무 이유 없이 가둬 둔 녀석의 시체를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도록 하는 것. 그 놈의 시체를 잘근잘근 씹어 먹어버리는 것.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그 녀석에게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복수라고 생각했기에(213P), 대수는 그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험난한 기억의 끝에는, 자신이 스스로 지워버린, 혹은 외면해 버린 기억의 가련한 연인, 우진과 우진의 누나가 있었다. 고작 말 한마디로 자신을 15년 동안 가두었다니. 대수는 괘씸했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진이 내민 앨범의 끝에, 점점 성장해 온 자신의 딸이자 연인인 미도의 모습을 본 순간. 대수는 깨달았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그게 신호야 아저씨.
“
복수가 가장 달콤할 때는 언제일까? 복수를 당한 사람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다. 그가 후회의 뜻을 비치고 복수 행위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 말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복수란 상대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상대에게 가 닿았는지의 여부이다. -223P
대수 자신은 존중받고 싶은 마음으로 복수를 시작했지만.
또 다른 복수를 하려는 사람인 우진은 대수가 근거 없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복수를 감행했다는 사실을 대수가 알아채는 그 순간이야 말로 우진의 복수가 완성되는 시점이었다.(213P)
우진과 대수의 복수가 부딪치는 그 순간에, 그렇게 대수의 하루는 영원히 수습되지 않을 것처럼 정점으로 치닫는다. 대수는 혀를 잃었고 우진은 복수를 얻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과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한 누이이자 연인이었을 것이다.
과연 너희는 그럴 수 있었을까?
“
감정은 극히 개인적인 삶과 연관 짓지 않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이 겁을 먹었는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이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혹은 어떤 경험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 아무리 자세한 뇌 영상도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12P
복수의 방점을 찍을 카타르시스는 안타깝게도 그 두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혀를 잃은 아픔과, 딸을 만난 기쁨, 그리고 미도에 대한 사랑이 뒤섞인 지옥에서 울부짖는 짐승이 된 대수를 뒤로한 채 돌아선 우진은, 이내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스로의 머리를 권총으로 날려버린다. 이토록 성공적인 복수를 뒤로한 채로. 대수의 복수 과정 중에서 그의 연인을 떠올리고, 그리고 복수의 완성 지점에서 그녀의 최후 역시도 만나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녀의 죽음을 방조했던 최후였기에 더더욱 쓰라렸을 것이다.
과연 이 길고 긴 복수를 계획한 우진은. 단 한순간이라도 기뻤던 적이 있었을까? 그가 결국 복수하려던 대상은 어쩌면 자신이 아니었을까?
참고
1.감정을 읽는 시간(Chapter8 복수심;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2.올드보이
추신. 솔직히 개봉한 지 7년이나 지났는데 스포일러라고 하지 말자.
복수 후에 행복했을까? ;감정을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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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영화 감기와 코로나 사태는 얼마나 닮았을까?
#감기 #리뷰 #코로나
재미 없다는 추천 때문에
오랫동안 안 보고 묵혀뒀던
영화 감기를 꺼내 봤습니다시국이 시국인만큼
흥미로운 요소는 가득했지만
결국 보지 말라는 평이
왜 나왔는 지 이해만 해버렸습니다다음 재난 영화는 부디
제대로 된 영화가 나와 보기를
희망해봅니다물론 그전에 코로나부터
어서 빨리 잡히면 좋겠네요모두 화이팅입니다!
※ 추천 영상
1. 토니피터 환상의 케미,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명장면'
https://youtu.be/CoQ2ne32vHU
2. 극장내 침묵금지! '북미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https://youtu.be/K2L99rGOyS8
3. 나루토 질풍전 오프닝, '이승열 풍운'
https://youtu.be/t3W9eVu1m5E
4. 천조국 관객 클라스, '인피니티 워 리액션'
https://youtu.be/aKr-hZJtBcU
5. 어벤져스 어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https://youtu.be/X5MqhEaF3Is
6. 예고편에서 히나만 모아봤다, '날씨의 아이 히나 예고편'
https://youtu.be/BWPZiHAm9no
7. AV보다 야하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리뷰'
https://youtu.be/rXgpROvqxvo
8. 불매운동 중에 일본 애니를? '불매운동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알려드림'
https://youtu.be/ow10tiErTiU
9.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과 얼마나 똑같을까?
https://youtu.be/O4TpyQm9L_M
10. 토니는 영화에서 멱살을 얼마나 잡힐까?
https://youtu.be/v7au_Lx_N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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