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리2025-06-01 00:18:06
<신성한 나무의 씨앗>, 통제에 저항하는 이란 여성의 숨겨진 목소리
<신성한 나무의 씨앗>
이란의 수도 테헤란. 가장 '이만'에게 수사 판사 승진이라는 경사가 찾아온 것도 잠시, 도시 전역은 히잡 반대 시위로 들끓는다.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망한 마흐사 아마니를 추모하는 이 시위는, 검열된 언론으로 인해 '폭도'의 소행으로 왜곡된다.
그러나 시위에 휘말려 잔인하게 린치를 당한 친구 '사다프'와 경찰이 시위대를 폭행하는 모습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한 첫째 딸 '레즈반'과 둘째 딸 '사나'는
언론이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민중을 통제하는 이란 정부의 '외부적 통제'와 가장으로서 가족을 억압하는 이만의 '내부적 통제'가 숨막히게 조응하는 영화로,
국가와 가정에서 여성의 자유가 억눌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성으로서의 레즈반과 사나, 그리고 어머니 나즈메가 연대하고 저항하는지를 보여준다.
여성 간의 감시와 연대—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어머니이자 아내인 나즈메는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말보다 남편과 언론을 신뢰하며, 남편의 삶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삶을 택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두 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동기가 되어, 억압받은 여성이 또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악순환을 구축한다.
나즈메의 아버지가 호색가였고, 국가 종교가 여성 억압적 교리를 강조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성평등 의식을 제대로 학습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 유추되지만 말이다.
반면, 대학생 레즈반과 청소년 사나는 자신만의 삶을 꿈꾼다. 이들은 매니큐어, 염색, 옷 수선 등의 자유로운 외적 표현을 통해 주체적 자기 결정권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남편보다 여성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나즈메와 대립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같은 여성 집단 내에서도 존재하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 불신과 갈등은 연대의 어려움을 유발한다.
이들의 불합일은 여성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남성(남편)과 국가'의 유기체에 여성이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로, 여성에 대한 통제력을 놓지 않으려는 가부장제의 또다른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 간의 연대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들의 연합이 어떤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각인해주는데.
후반에 이루어지는 이만과의 추격씬에서 나즈메와 두 자매가 단합해 이만을 마침내 처단하면서 단합하면서 두드러진다.
이들의 단합과 처단의 성공은 여성의 연대가 어떠한 힘을 잠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장장 20분 간 이어지는 추격씬-정말 필요했을까?
그러나, 이 추격씬이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가부장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흐려진다.
이만으로부터 머리채가 잡힌채 큰 저항없이 무력하게 끌려가는 나즈메의 모습은, 여성이 여전히 남성의 무지막지한 힘에 끌려가는 취약한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나아가 막내 사나가 엉성하게 권총을 쥐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이만을 구덩이 밑으로 추락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우발적으로 얻어걸린 결과로,
여성을 대표하는 사나가 무언가를 스스로 쟁취했다는 느낌을 주는데에는 실패한다.
결국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 사회의 억압 구조를 생생히 그려내지만, 여성 해방의 명확한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한 채 미완의 상태에 머문다.
이 미완의 틈새를 통해 국가나 남성, 그리고 서스펜스의 수단으로 소비되지 않고 고유한 주체로서 여성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본글은 씨네랩 크레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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