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rewr2023-09-06 07:46:55

나를 억누르는 문제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겠다는 결심

〈어느 멋진 아침〉 리뷰

6★/10★


  파리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생활을 꾸려가는 산드라. 그녀에게는 여덟 살 난 딸이 있고,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가 있다. 오랜 친구인 클레망과 새로운 사랑을 싹틔우는 중이기도 하다. 행복과 슬픔이 수시로 교차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요양원에 들어가야만 할 상황이 된다. 철학 교수로 제자들에게 존경받아온, 집안을 온통 책으로 채운 아버지의 현재는 산드라를 슬프게 한다. 그녀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어떤 책을 버리고 어떤 책을 남길지를 고민하는 장면은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부모의 삶을 자식이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수많은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아버지의 서재는 그가 평생을 걸쳐 모아온, 즉 아버지 선택의 누적이다. 즉 아버지의 장서는 아버지의 삶 궤적의 일부다. 때문에 어떤 책을 버리고 간직할지의 문제는 아버지 삶 중 무엇을 취하고 기억할지의 문제다. 기억을 잃고 기본적인 활동에마저 돌봄이 필요해진 아버지 앞에서, 산드라는 그녀가 받은 돌봄을 되갚는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 삶을 갈무리하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많은 사람이 정답을 알지 못하고 현실에서 끙끙거릴 수밖에 없는 문제에 놓인 것이다. 요양원 비용과 건강 상태에 따른 요양원 변경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그만큼 어렵다. 돈이 넉넉하다면 고급 사설 요양원을 택하면 되고, 공공 요양원 인프라가 넉넉하고 탄탄하다면 별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산드라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산드라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그러나 산드라의 일상에는 기쁨도 있다. 딸에 대한 사랑이 첫째다. 연애, 성애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산 지 오래지만 산드라는 딸과 주고받는 사랑에서 전자의 결핍을 메운다. 클레망은 그런 그녀에게 오랜만에 설렘을 선물한 남자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클레망은 유부남이다. 산드라와 사랑을 나눈 후 늘 그의 법적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둘은 클레망의 일정이 허락할 때만 만날 수 있고 부인과 이혼하겠다는 클레망의 약속은 자꾸만 유예된다. 그는 어느 날 갑작스레 가족을 버릴 수 없다며 이별을 선언하고는 이내 역시 너 없인 못 살겠다고 돌아오는 영 미덥지 않은 남자다.     

  문제는 산드라의 마음이 클레망의 변덕에 쉬이 휘둘리는 취약한 상태라는 점이다. 산드라는 자주 눈물 짓는다.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고 클레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 마음의 면역력은 극도로 떨어진 상태다. 감당하기 벅찬 문제는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순차적으로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씨름해야 하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수시로, 제멋대로,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수시로 솟구치는 산드라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일상의 자극에 민감하며, 최선이 아닌 대상에게도 끌릴 때가 있다. 당장 내게 위안을 주는 존재는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산드라의 문제를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안락사를 논의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고, 클레망은 여전히 가족과 산드라를 동시에 갖겠다는 듯 군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어느 멋진 아침’의 풍경이 나쁘지만은 않다. 심지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산드라를 수시로 눈물 흘리게 하는 상황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인데도 그렇다. 도대체 왜일까? 많은 평범한 사람이 산드라와 같은 삶을 산다. 대체로 괴로워하고 드문드문 행복해하는 그런 일상 말이다. 감독은 그런 삶이 반드시 고통으로만 가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도 종종 기억할 만한 멋진 아침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 순간을 만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또 하루를 살아가고,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할 수 있을 테니까. 나를 짓누르는 문제가 내 삶을 온전히 잠식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314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