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3-26 00:00:00
'나'의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규정될 때
<톰보이> 2011, 셀린 시아마 감독
‘나’의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규정될 때
<톰보이>에는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들어진 지점들이 존재한다.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영화는 '로레'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로레는 차 위로 상반신을 내밀고 팔을 뻗어 바람을 느낀다. 영화의 초반부까지 영화가 로레의 성별에 대해서 관객에게 알려주는 단서는 없다. 관객은 그저 파란색 벽지를 좋아하고, 런닝티와 반바지를 좋아하는 짧은 머리의 아이와 마주할 뿐이다. 로레는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소개한다. 친구들은 그의 성별을 묻지 않을뿐더러 그의 외형과 이름을 통해 그가 남자라 생각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로레가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소개했지만, 자기 자신이 남자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로레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백히 말하자면 로레는 그들을 의도적으로 속인 것이 아니다. 로레는 단지 남자아이처럼 하고 다녔으며,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소개했을 뿐이다.
로레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로레는 단순히 남자아이들과 놀기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리사의 말처럼 남자아이들은 여자라고 껴주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길 바라는 마음에서 순간적으로 남자 이름을 말한 것일 뿐인데 일이 예상과 다르게 커졌는지도 모른다. 혹은 로레는 정말 남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생 '잔'과 목욕한 후, 로레는 그만 씻고 나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욕조에 앉아 잠시 동안 나가기를 주저한다. 욕조에서 일어나서 몸을 타올로 닦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핀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등과 팔의 근육을 살피고 침을 뱉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웃통을 까고 침을 뱉으며 축구를 하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똑같이 행동하기도 하고, 자신의 수영복을 잘라 남자 팬티 수영복으로 만들어 입기도 한다. 로레가 남자아이처럼 보이도록 행동한 이유는 뭘까. 남자아이들과 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남자가 되고 싶어서였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점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한다. 로레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이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그런 로레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에 더 관심을 보이며 그 본질에 대해 묻는 것처럼 보인다. 로레는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의해 남자아이가 된다. 그가 자신의 성별이 무엇이라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외형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된 것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그를 남성이라 여겼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 영화를 카메라의 초점이 두드러지게 찍었다. 카메라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출 때 배경은 흐리게 처리되며, 카메라의 초점 이동이 분명하게 드러나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을 명확히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은 더욱 인물과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감독은 이런 촬영 방식과 더불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모범적으로 만드는 방식을 지양했다. 그래서 주인공 로레를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다소 서툴다. 로레의 엄마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는 아마 로레에게 이전보다 덜 신경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이를 때린 '미카엘'을 찾기 위해 한 아이와 그 엄마가 집으로 찾아온 것으로 모자라,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동네 아이들 모두가 자신의 아이가 남자아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엄마는 순간적으로 로레의 뺨을 때리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로레의 엄마는 로레에게 파란 원피스를 입으라 건네고, 로레가 여자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로레를 억지로 끌고 가던 중에 멈춰 로레에게 이렇게 말한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본인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로레 엄마의 결정은 그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로레는 로레가 때렸던 아이의 집을 들러 로레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린 후, 곧장 리사의 집으로 향한다. 리사는 모든 사실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로레는 리사의 집에서 뛰쳐나가 숲을 향해 달린다. 숲은 리사와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레는 입고 있던 파란 원피스를 벗어던진다. 로레가 나무 위에 올려둔 파란 원피스가 카메라에 비춰지고, 로레는 그 자리를 떠난다. 로레는 친구들에게로 간다. 자신이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겁이 나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으며 접근한다. 친구들은 로레를 발견하고 도망가는 로레를 쫓아가 붙잡는다. 남자아이들은 로레가 여자인지 사실 유무를 확인하려 하고, 리사가 그들을 제지하자 여자인 리사가 직접 그것을 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낀 로레는 그 자리를 뛰쳐나간다. 그리고 리사는 로레를 찾아온다. 창밖을 보고 있는 로레의 눈에 나무 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리사가 보인다. 둘은 다시금 서로를 마주한다. 마치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같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자못 다르다. "넌 이름이 뭐야?"라는 리사의 물음에 로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한다. "로레"라고. 그러고는 살짝 웃는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로레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 스스로가 규정한다.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만 우리는 이들의 관계가 바로 그곳에서부터 비로소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이들이 함께 춤출 때 들렸던 곡 "널 사랑해, 언제나(I Love You Always)"가 들려온다. 로레와 리사는 춤을 춘 후 서로를 꼭 붙잡던 두 손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우정을 계속 키워가지 않을까.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로레는 더이상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로레를 사랑해줄 리사와 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있기에.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영시코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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