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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2025-02-23 17:51:57

그림자를 따라가면 실체가 있다

해피 투게더

로멘스 영화를 추천할 때마다 항상 인지부조화가 걸린다. 머릿속으로는 <해피 투게더>를 외치고 입으로는 <비포 선라이즈>를 외치는 내 모습(물론 <비포 선라이즈> 역시 훌륭한 영화다.). 홍콩영화와 왕가위의 영향력이 개인적으로 상당하고, 그중에서도 <해피 투게더>를 정점이라고 여기는데도 말이다

 

어떠한 영향력도, 자격도 없는 주제에 가식적인 의견을 내는 태도는 비단 영화뿐만이 아닐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패션, 남들도 좋아하겠지 같은 안일함에 일상을 녹이는 현실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 속 그토록 좋아하는 양조위와 장국영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그들은 사랑하기 위해 홍콩에서의 삶을 접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간다. 용기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은 불안정하고,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서로에게 불만은 쌓여간다. 함께 가기로 한 이과수 폭포는 점점 램프 속 삽화처럼 철 지난 꿈으로 남고, 오직 집착만이 불쾌하게 피부에 닿다가 이내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하지만 함께하지 못하니 사무치게 그립다. 함께 있으면 미칠 듯이 불안한 걸 알면서도.

 

결말에서 두 인물의 마지막이 갈린다. 장국영은 끝내 여권을 찾지 못해 아르헨티나에 남으며 원망과 후회가 뒤섞인 눈물을 흘리는 반면, 양조위는 혼자서 나마 이과수 폭포를 보고 아르헨티나를 떠난 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제법 멋들어진 대사로 극을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보면 양조위만 해피엔딩을 맞이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진 않다. 그는 오직 사랑만을 이유로 모든 걸 포기하고 택한 장소를 떠났다. 장국영 역시 오직 과거 만을 소비하며 목적 없는 낯선 땅에 남을 것이다. 어찌 됐건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직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람은 한치 앞의 미래도 모른다. 뜬구름처럼 무수히 스치는 생각들에도 여과가 없는데 미래는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사람은 한없이 유한하며 무능한 존재이고, 역설적으로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해서 우리 삶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결말을 알았으면 그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아르헨티나에 갔을까, 어차피 헤어질 거 집착은 덜 하지 않으면 어땠을까. 아니 애초에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우리는 무수한 삶의 작용점을 지나치면서 불필요함을 느끼기도 한다. 장국영처럼 깊은 후회로 과거만을 소비한 채 한참을 보내기도, 때로는 누구를 원망하기도 하며. 출구는 없을까. 다행히,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이러한 감정조차 오래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불안한 미래에 다시 기댈 것이다. 양조위의 모습처럼. 어쩌겠는가. 지나온 추억마저 모두 미지에서 발생한 산물일 뿐이다. 우리가 <해피투게더> 속 주인공들을 두고 어느 한 쪽을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우리 내면의 일부이고, 그것이 어찌 됐건 삶의 다양함을 만들기 때문이지 않나. 그들은 마음껏 기대하고 실망했으며, 헤어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오로지 그들이 사랑했던 과거다. 생소한 나라의 생소한 사랑 이야기에 울림이 있는 이유는 모두 이곳을 지나간다. 그들처럼 용기 있는 자세로 착각 속에 흠뻑 빠지고 싶은 요즘이다.

 

 

 

 

두 사람을 ''''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만약 이 공간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면 제일 먼저 보일 사람이 장국영이에요. 모든 사람이 집중하고, 그렇게 주목을 받아야만 하는 배우가 장국영이죠. 양조위는 이 공간에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눈에 안 띄게 어디론가 숨을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서서히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거예요." -왕가위

작성자 . 뜬구름

출처 . https://blog.naver.com/qksksktbvj/22358973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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