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18 16:03:56
10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세계로 뻗어나가는 k-contents! 넷플릭스 <발레리나> 글로벌 흥행중입니다!
홍상수 김민희 우리의 하루 오는 19일 개봉
<우리의 하루>가 19일 국내에서 개봉합니다. 홍상수의 서른 번째 장편 영화로, 김민희가 제작실장과 주연을 맡았다고 합니다. 은퇴한 배우 ‘상원’과 70대 시인 ‘의주’에게 각각 방문객이 찾아오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줄거리로 올해 76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감서독 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전종서 발레리나 89개국 top10
이충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가 글로벌 TOP10 영화 부문 1위에 등극했습니다.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 기록, 대한민국을 포함한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대만 등 89 개국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범죄도시3 시체스 영화제 ‘포커스 아시아 최우수 작품상’
액션 영화 <범죄도시 3>가 제56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 부문 중 '포커스 아시아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범죄도시 3>은 지난 5월 국내 개봉 이후 천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올해 나온 작품 중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됐습니다.
전두환 된 황정민 <서울의 봄> 11월 22일 공개
<서울의 봄>이 다음 달 공개됩니다. 이 작품은 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 출연을 확정했습니다. 믿고 보는 배우진과 <아수라>를 만든 김성수 감독이 만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탈 할리우드 중국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 영화시장을 다투고 있는 중국이 급격하게 할리우드 손절에 나섰습니다. 오는 20일 전 세계에서 개봉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신작 <플라워 킬링 문>이 중국 개봉이 확정됐었지만 배급사 사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중국 본토 개봉이 전면 취소됐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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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졸업> : 진정한 어른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안판석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졸업> (TvN, 2024) 은 공개 전부터 관심과 우려를 한 번에 받았다. 시장이 감독의 전작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5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느린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합이라도 하듯, 콘텐츠는 조각나 숏폼으로, 유튜브 축약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시대 속 문학적인 대사, 켜켜히 쌓이는 감정선, 그 안의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안 감독의 <졸업> 은 느린 이야기의 건재함을 증명한다.
안 감독은 항상 로맨스의 외피를 통해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 왔다. 이번 작품 역시 학원 강사들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사회에 자리 잡은 계급과 교육 문제를 드러낸다. 드라마의 배경은 사교육의 천국, 대치동 학원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는 계급을 결정하는 첫번째 통과의례이다. 모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고난 계급을 지키거나,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시에 전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조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노린다. 드라마 속 한밤중까지 불이 켜진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은 이런 욕망이 얽힌 한국 사회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극은 일타 강사 서혜진(정려원)과 10년 전 제자 이준호(위하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과거 혜진이 처음으로 가르쳤던 이준호는 혜진의 가르침을 통하여 꼴찌 생활을 청산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정석 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어느 날 준호가 혜진의 학원에 선생으로 입사하며 혜진의 일상에는 큰 파문이 인다. 준호는 혜진의 실적 중심의 교육 신념을 흔들고, 주변 대치동 사람들은 혜진을 끌어내리기 위한 공작을 끊임없이 펼친다.
문제의식이 없던 한 인물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사랑. 그로 인해 문제에 눈을 뜨고 변화하는 인물. 안 감독이 유구하게 추구하는 로맨스의 방식이다. 혜진은 10년 전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인 국어의 본질을 가르침으로써 학생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인물이었다. 지금의 혜진은 성공했지만 더이상 자신을 교육자라 여기지 않는다. 혜진에게 자신의 역할은 “학생들 성적이나 올려서 좋은 대학 보내는 사람”이고,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관문일 뿐이다. 연인으로 발전한 준호와 혜진은 교육관의 차이로 부딪힌다. 성적 상승이 입시교육의 목적이라는 혜진의 의견은 계급 담론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교육의 현주소를, 국어가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이고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준호의 의견은 교육의 본질적 측면을 강조한다. 여기에 힘없는 공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원 선생이 된 표상섭(김송일)과 문제 풀이를 넘어 텍스트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 이시우(차강윤)가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로맨스를 넘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교육과 배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학생들이 12년의 학제를 통틀어 좇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좋은 대학에 가는 물질적인 목표를 이룬 후에,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남는가. 준호와 상섭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아가는 혜진의 모습을 통하여 감독은 말한다. 입시 교육이 대변하는 무한 경쟁과 물질주의에 경도된 삶을 살아가는 한, 우리는 평생 ‘졸업’하여 어른이 되지 못할 거라고. 우리의 삶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또 성찰하라고. 또 교육은 그런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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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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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도의 탈을 쓴 심리 체험 드라마!
다수의 스포츠인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싶다고. 권투, 태권도, 유도 등 눈앞에 있는 상대와 시합을 벌이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검도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색의 옷과 호구를 쓰고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 스포츠에서 상대 선수는 곧 자신처럼 보이기 마련. 검도를 소재로 한 <만분의 일초>는 이 점을 극대화하며 오롯이 체험하는 자신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대회에 참가한 재우(주종혁). 외딴 산속 내 합숙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곳에서 과거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 태수(문진승)를 만난다. 재우가 태수를 더욱더 증오하는 건 사고 이후 검도 사범인 아버지가 그를 애제자로 삼았기 때문. 악연이자 이제는 경쟁자로서 태수를 만나야 하는 재우는 훈련에만 매진한다. 하지만 선발대회 참가자 중 가장 좋은 실력을 갖춘 태수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어렸을 적부터 친분이 있었던 감독이 대회 참여 기회를 줬다는 오명도 그를 괴롭힌다. 매주 탈락자가 생기는 선발 시스템의 압박을 받는 재우는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며, 결국 다른 참가자에게 피해를 주고 만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만분의 일초>는 검도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살리는 연출이 돋보인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선수들의 호흡과 음성, 죽도의 타격음, 구르는 발걸음 등 검도 이외의 것은 음소거 된다. 기존 스포츠 영화와 달리,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갖가지 요소는 일부러 배제한다. 이로 인해 오롯이 선수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자신도 모르게 숨죽여 이들의 대결을 바라본다.
1:1 대결이라는 점에서 대련 시 죽도를 잡은 손이나 구르는 발의 리듬과 스텝 등을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마치 서부극에 나오는 총잡이들처럼 결전을 벌이기 전 눈과 손을 클로즈업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부분과 오버랩된다. 경기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면을 부각하지 않으며, 최대한 담백하고 건조한 카메라 워킹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영화는 오롯이 검도를 체험하는 동시에 주인공 재우의 심리를 체험하는 여정을 그린다. 풍경 소리로 시작해 풍경소리로 끝나는 형식은 마치 정신과 상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듯한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로 빨려 들어가는 극 중 내용은 결국 검도를 소재로한 한 인간의 내면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송태섭이 농구로 형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면, 재우는 검도를 통해 자신을 옥죄는 미움과 증오의 늪에서 벗어난다. 재우에게 검도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매개체로 비춰지는데, 이는 아버지라는 대상과 오버랩된다. 재우에게 아버지란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족을 버리고 형의 원수인 태수를 애제자로 받아들인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 이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태수도 마찬가지다. 태수를 향한 재우의 증오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극 중 재우가 태수를 이기지 못하는 건 일렁이는 마음의 동요다. 검도는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글거리는 분노는 그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죽도를 잡은 손의 떨림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결국 지난한 과정을 통해 그가 깨달은 건 최종 상대가 바로 유년 시절 상처를 간직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 마지막 대결에서 죽도의 끝을 향하는 건 태수이지만,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재우의 내면 밑바닥까지 끌고 가는 영화 특성상 보는 이의 감정 소모가 심한 편이다. 점차 강박에 시달리는 재우의 트라우마 극복기는 보는 이들에게도 그 힘겨움이 느껴지고, 때로는 피로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재우의 심리 여정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드라마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주종혁은 대사 보단 표정과 움직임으로 인물이 가진 감정을 표출하고 토해낸다. 특히 애증의 관계인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놓지 않은 손, 마지막 태수와의 대결 때 비로소 놓는 손 등 손 연기도 탁월하다. 맞상대인 태수 역의 문진승 또한 과거의 일에 죄책감을 가진 상황에서도 스스로 채찍질하고 연마하며 비워내는 구도자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준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관객이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성환 감독의 말처럼, <만분의 일초>는 검도의 세계, 인간 심리의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 강도를 높이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고 쭉 뻗어 나가는 이야기, 재우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둠으로 시작해서 끝내 자신을 이기고 새하얀 세상을 바라보는 마무리가 깔끔하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영화적 체험, 극장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평점: 3.0 /5.0
한줄평: 검도의 탈을 쓴 심리 체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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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변화하는 고전의 목록이 던지는 질문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샹탈 아커만/벨기에, 프랑스/1975/202min/'25주년 특별전 RE:Discover' 세션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주의 영화의 역작. 잔느는 사춘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집에서 성매매를 한다. 평범한 일상이 되풀이되던 어느 날, 잔느는 한 손님의 방문을 계기로 폭발한다. 가정을 성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 은폐하는 공간으로 폭로하는 동시에 주부의 시간성을 말 그대로 경험하게끔 하는 도발적인 영화. 왕립벨기에필름아카이브 시네마테크와 샹탈아커만재단에서 복원했다.(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년, 전 세계 씨네필이 들썩였다. 영국영화협회가 발간하는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역대 최고 영화 순위 1위에 〈잔느 딜망〉이 오른 것이다. 1952년부터 10년마다 전 세계 영화 전문가의 추천으로 역대 최고의 영화를 선정해온 이 잡지에서 2002년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해온 건 〈시민 케인〉(1941)이었다. 2012년, 이 자리를 히치콕의 〈현기증〉(1958)이 대체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22년, 여성 감독 샹탈 아커만이 연출한 여성 영화 〈잔느 딜망〉(1975)이 이 자리를 다시금 대체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꼽은 영화 순위를 그 자체로 존중할 이유는 없다. 이 순위만으로 영화의 권위와 영향력을 확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우습다. 하지만 〈잔느 딜망〉이 역대 최고의 영화로 꼽힌 데서 우리는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다. 동시대 영화계의 거대한 변화와 거기에 투영된 욕망의 지형 말이다.
고전의 목록이 늘 남성 감독의 작품으로만 채워지고, 이렇게 확립된 고전이 다시금 남성 작가/남성 서사의 권위를 재확증해온 영화(그리고 예술)의 역사는 유구하다. 〈잔느 딜망〉은 바로 여기에 주목할 만한 균열을 낸다. 고전의 목록은 시대마다 다시 작성되어야 하고, 새로 작성된 고전의 목록은 변화한 시대의 가치관을 담지해야 한다. 우리는 〈잔느 딜망〉이 〈시민 케인〉과 〈히치콕〉을 뒤로 하고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로 꼽힌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무엇이 50여 년 전 영화를 우리 시대로 소환했는지를 살펴보자.
잔느에게는 정해진 일상의 규칙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비누로 손을 씻는다. 청소년 아들의 구두를 닦고 그의 아침 식사를 챙긴다. 설거지를 마친 후 아들의 침구를 정리하고, 오후에 올 성매매 남성 손님을 받기 위해 자신의 침구 역시 정돈한다.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면 외출해서 장을 보고 은행, 옷 수선 등의 볼일을 본다. 카페에 가면 늘 마시던 커피가 나오지만 입을 데지 않고 금세 나온다. 집에 도착해서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성매매 남성을 맞는다. 손님이 나가면 씻은 후, 아들에게 그 흔적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 욕실도 깔끔하게 정리한다. 곧 아들이 집에 돌아온다. 아들과 저녁을 먹은 후에는 뜨개질, 편지쓰기 등의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영화는 잔느의 3일을 천천히 좇는다. 3일 내내 잔느는 위의 루틴을 따라 움직인다. 잔느의 일상을 담는 정적인 카메라의 시선은 그녀 일상의 패턴과 리듬을 관객에게 새긴다. 그녀의 행동에는 군더더기와 낭비가 없다. 우리는 잔느가 이다음에 무엇을 할지 알 수 있고, 잔느가 그 일을 하며 짓는 표정을 보며 그녀의 감정과 기분 상태를 추측할 수 있다(어쩌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첫째 날에는 모든 게 완벽했고, 둘째 날에는 살짝 헝클어지며, 셋째 날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어그러졌다. 그래서 셋째 날은, 잔느가 침대 위에 누운 성매매 남성을 찔러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무엇이 그토록 짜임새 있게 구성된 그녀의 일상을 흐트러뜨리고 끝내 그녀를 일상의 완전한 파괴로 내몰았을까? 몇몇 단서를 따라가 보자. 첫째 날, 아들이 잠들기 전 잔느에게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잔느의 남편은 2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해방군 신분으로 잔느를 만났다. 잔느는 그를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선택했다. 아들은 아빠가 죽은 지 한참 됐는데 재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다시 묻는다. 잔느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다시 누군가에게 적응하며 살기는 싫다는 게 이유다. 아들이 학교 친구의 뻗치는 성적 욕망을 언급하며, 그는 자신이 여자라면 사랑 없이 섹스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을 잇는다. 이번에는 잔느가 네가 여자가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
아들은 잔느의 성노동/성매매에 기생한다. 하지만 자기 존재를 가능케 하는 돌봄의 물질적 기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악의 없이 엄마를 모욕한다. 성매매/성노동은 잔느에게 자립의 토대다. 이 덕에 재혼할 남편에게 자신을 맞출 필요 없이 일상을 조직할 수 있고 자신과 아들의 삶을 꾸릴 있다. 그러나 아들은 이 모든 것에 무지하다. 심지어 아들이 아직 아버지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중인 데도 그렇다. 아들은 남성 성기가 칼, 불과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엄마와 섹스한(즉, 엄마를 ‘칼로 찌른’) 아빠를 미워하고 악몽을 꾼 적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여자는 사랑 없이 섹스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세계를 배반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는 남자와의 섹스가 여자에게는 근본적으로 폭력이라는 아들의 말, 즉 자기 삶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조건을 부정하는 아들의 말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근본적인 폭력 상태에 머무름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간파가 역설적으로 잔느의 현실을 비가시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이를 원해 결혼하고,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성매매/성노동하는 잔느의 노동/행위는 그 근본적인 대상인 아들로부터 배반당한다.
잔느를 살인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동기는 성매매 남성들이다. 잔느가 자립의 근거로 삼은 성매매/성노동은 그녀가 직접 선택한 일이지만 그녀의 통제하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성매매 남성이 잔느의 예상보다 집에 오래 머물 경우, 혹은 그녀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려 할 경우 잔느가 구축한 일상의 리듬과 패턴은 깨진다. 잔느는 성매매/성노동하는 동안 주방에서 감자를 삶는다. 그런데 남자가 예상보다 오래 머무르면 감자는 타 버린다(즉 일상이 어그러진다). 또한 성매매/성노동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구매자 남성의 욕망에 가중치를 두기에 잔느의 욕구와 일상은 줄곧 뒷전으로 밀린다. 즉 성매매/성노동의 구조는 잔느의 자립을 제한적으로 조건 짓는다. 때문에 잔느가 가위를 성매매 남성의 목에 찌르는 행위, 즉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의 방향을 뒤바꿔 살인하는 행위는 자립하여 돌봄을 수행하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가 불가능해진 데 대한 그녀의 자각이 발현된 사건이다.
잔느의 살인은 버거운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남성 폭력의 중단)의 표현인 동시에 자립의 목적인 일상을 깨버린 남성에 대한 분노 표현이기도 하다. 여성이 자신이 꾸려나가는 일상에 품는 양가적 욕망의 발현으로써 그녀의 살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살인 후 불이 꺼진 거실에서 가만히 앉은 잔느의 표정은 편안하다. 혹은 해탈한 듯하다. 여성의 자립과 일상의 자립 대한 모순적 감각이 이 영화를 5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우리 앞에 소환했다. 동시대 고전의 목록은 동시대인의 삶 감각을 담지한다. 또 다른 고전의 목록이 확립될 때까지, 〈잔느 딜망〉의 의미는 계속해서 탐구되어야만 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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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한 풍자, 개운치 않은 비행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말도 안 되는 설정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2024년에 '여장남자' 설정이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잘해도 본전이라는 것도 모두 인지하고 있다. 대놓고 밀어붙이니까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긴 하다만, 풍자가 애매해서 영 개운치 않다.
영화 '파일럿'은 잘 나가던 비행기 조종사 한정우(조정석)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실직하자, 여동생 한정미(한선화)로 위장해 항공사에 재취업한 뒤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그렸다. 스웨덴 영화 '콕핏'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조정석의 여장'을 전면적으로 앞세운 만큼, '파일럿'은 조정석의, 조정석에 의한, 조정석을 위한 영화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식상한 여장남자 콘셉트도 지켜보게 만들고, 이를 특유의 코미디 감각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허술한 설정과 비호감인 캐릭터가 미워 보이지 않는 건 전부 조정석 때문이다. 이미 '헤드윅'을 통해 여장남자 연기에 능통한 그가 맛깔나게 살리자,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자연스레 동화된다.
조정석의 원맨쇼를 지원사격하는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한정우의 동생이자 '진짜 한정미' 역의 한선화, 한정우를 각성시키는 파일럿 윤슬기 역의 이주명, 한정우의 엄마 김안자로 분한 오민애의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정석이 말아주는 코미디는 취향, 나이, 성별과 무관하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00% 흡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어디에 초점을 뒀는지 모를 만큼, 산만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여장을 감행하면서까지 취업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한정우의 고충에 몰입하려고 하면, 갑자기 가장으로서 소홀했던 지난날의 반성으로 옮겨간다. 그러다 자식들을 모두 키운 뒤 칠순의 나이에 자기의 삶을 즐기는 어머니 김안자의 이야기가 부각된다.
관객들이 흐린 눈으로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기엔 개연성이 너무 널뛰기하듯 뒤죽박죽이다. 허술하게 위조한 한정미의 이력서로 부기장에 합격했다는 설정이나, 뛰어난 미모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한정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 모습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중 한정우의 후배인 서현석(신승호)이 한정미를 알아보지 못하고 되려 한눈에 반한다는 설정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어 했던 '젠더 이슈'와 '성 인지 감수성 표현'이다. 한정우의 '꽃다발' 발언부터 서현석의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 발언, 내부고발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윤슬기 등 여장남자 설정을 통해 실제로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깊이감 없이 가벼운 유머 속에 담아내는 데에만 급급해 보였다.
결국 풍자가 애매해지니, 관객들을 태우고 이륙한 '파일럿'의 코믹 비행이 그리 개운치 못했다. 박스오피스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긴 하나, 주변인들에게 추천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YES"라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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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진정한 '억압받은 것의 귀환'
<서브스턴스>, 진정한 '억압받은 것의 귀환'
영화 비평을 하다 보면, 나와 관객 속 나를 분리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브스턴스>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좌석에 앉아 있는 한 여성으로서 나는 프레임 단위로 영화를 분석할 수 없었다.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그저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그녀가 느끼는 혼란과 자멸감을 함께 느낄 뿐이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반짝이는 분홍색 별로 각인된 엘리자베스 스파클 이름이 점차 잊히고 더럽혀지는 간결한 씬은 영화를 관통한다.
그럼에도 한 번 더 요약해보자면 <서브스턴스>는 가장 날 것의 나를 들춰 눈앞에 들이미는 영화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연에 묻힌 기억을 기어코 끌어내 관객석에 앉히는 영화다. 무심코 들어갔던 영화관 화장실 문에 붙은 다이어트약 랩핑 광고, 강남역 인근의 성형외과 버스 광고, 젊은 여성들이 MC로 대체되며 이어지는 프로그램 명줄. 자기 관리라는 이름 아래 깎아 만들어지는 수많은 육체들이 영화관 안팎을 걸어 다닌다. 영화는 이 모든 사실을 '고어틱'한 장면으로 고발한다. 기괴한 쇳소리로 소리친다. 그러니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리라고. 이것이 <서브스턴스>의 끔찍한 고어함이 영화의 주제보다 더 주목받지 않았던 이유다.
척추에서 탄생한 이상적인 아름다움
가장 끔찍했던 건 고어한 장면이 아닌, 척추를 찢고 나온 어리고 예쁜 엘리자베스인 수(마가렛 퀄리)가 익숙해졌을 때다. 혹은 포르노에 가까운 모닝 에어로빅 쇼 총괄 책임자의 입안으로 탱글탱글한 새우가 누런 이에 갈려 으깨 들어갈 때였거나. 스물다섯 살 전후로 매력적인 여성의 생명이 나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장소, 레스토랑 식탁에서 스몰토크로 소모된다. 이 불합리함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노화된 피부와 처져버린 몸을 탓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출처가 불명확한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체내에 주입하는 데에 논리적인 사유를 친절히 다루지 않는다. 이젠 늙어버린 엘리자베스와 달라진 대우가 모든 이유를 대신한다. 서브스턴스로 인해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모습으로 일주일을, 다음 일주일은 또 다른 자신인 수로 지낼 수 있게 된다. 수는 이십 대의 얼굴과 젊고 탄탄한 몸을 가진 이상적인 여성의 외형을 띤다. 결국 형광빛을 띄는 노란 약물이 비극을 만들어내지만, 엔딩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이들이 한몫한다. 엘리자베스를 대신할 자리에 홀연히 나타난 수의 외모와 관능적인 몸매를 보고 환호하는 대중들. 얼굴에서 귀가 떨어져 나와도 드레스를 입고 있는 수를 향해 오늘도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는 관계자들. 이 맥락에서 영화는 기존의 호러 장르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혐오에서 파생된 피와 살
<서브스턴스>는 신체 변형을 소재로 한 '바디 호러' 장르이면서 동시에 질서와 규범을 파괴하는 위반의 호러 장르로써 자리한다. 으레 호러 장르에서는 억압하고 숨겨놓은 것들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과잉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가령 피해자로 그려지던 여성이 막강한 여귀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서브스턴스>의 경우 엘리자베스가 나이 든 노인을 넘어선 징그러운 외형을 띈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공포를 자아내게 만드는 대상은 사실 우리가 배제하고 혐오해 온 결과물의 집합체라고. 영화는 혐오의 기반이 되어왔던 늙고 병든 여성의 몸으로 고발한다. 기괴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 피를 내뿜는 엘리자베스를 보여주는 엔딩씬이 필요했던 이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억압받아온 것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극중 배경은 미국이다. 그리고 <서브스턴스>는 국내 55만 관객 수 돌파라는 이례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약 11년 만에 해외 청소년관람불가 예술영화가 사십만 이상 관객을 모은 쾌거다. 이것의 기반에는 젊은 여성 관객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한국의 대부분 여성 또한 외모 강박과 함께 자라났다. 너 좀 뚱뚱한 거 같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 말을 듣고 무리한 절식으로 한 달 만에 14kg가량을 감량했다. 수능을 마치고 친구들은 성형외과 상담 예약을 했다. 한창 커야 할 여자아이들이 튼튼한 뼈를 갈아 마시며 '더 나은' 몸을 탄생시켰다.
서브스턴스는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중안부 정병의 시대다. 중안부가 길면 남상과 노안의 이미지가 강해진다는 주장은 설화가 되어 여성들의 입에서 눈과 손으로 전해진다. 중안부 커버 메이크업과 동안 얼굴형을 위한 성형 시술 영상이 유튜브에서 성행한다. 더 어려 보이기 위해서 귀 뒤에 테이프를 붙여 쫑긋 세우는 방법이 여성 출연자만의 비법으로 송출된다. 방금 영화를 보고 나와서 탄 지하철 옆자리의 여성이 코 수술을 검색하는 핸드폰 화면이 보인다. <서브스턴스> 속 장면들은 한국의 일상에서 철저히 치환이 가능하다. 지독하리만치 완전하게. 영화의 주요 대사였던 'REMEMBER YOU ARE ONE'은 서브스턴스 약물을 주입하지 않은 현실에서도 쉽게 성립될 수 없다. 단어는 바뀌더라도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디에든 수많은 엘리자베스가 살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척추를 짓이기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울부짖는. 왜 너 따위가 나왔냐며 나를 향해 주먹과 발차기를 기꺼이 행하는.
나는 이들의 더없이 평범한 자유를 꿈꾼다. 약속에 나갈 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수백 번 뜯어보며 화장을 고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자신의 몸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고 싶은 일을 예전과 같은 몸과 얼굴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자유. 끝끝내 그 분노를 자신을 분열시켜 표출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녀들의 그런 자유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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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디즈니 플러스 티비시리즈 총정리 (feat. 마블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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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왓 이프...?
08:40 호크아이
09:41 미즈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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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NordVPN
14:20 디즈니플러스의 의미"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0. 11. 2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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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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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퍼펙트 케어>
영혼까지 탈탈 터는 ‘완벽 케어’ 서비스!
친~절 머리나는 그들이 온다!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CEO 말라,
알고 보면 일사불란한 한탕 털이 기업이다.
사람을 요양원으로
집과 가구는 경매로
모든 것을 탈탈 터는 게 그들의 주업.
법꾸라지 그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법의 테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한 말라의 케어 비즈니스에
순진한 양 같은 다음 타겟이 잡히고
더욱 더 완벽한 케어 서비스를 계획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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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황비홍: 무신임세영> 예고편
진정한 영웅이 깨어난다!
실력을 숨긴 채 평범한 상인으로 살아가던 ‘임세영’은
일본인들이 시장 이웃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려는
‘임세영’ 앞에 전설적인 무림 고수 ‘황비홍’이 나타나는데…